• 최종편집 2026-04-18(토)
 
  • 무기의 그늘 상·하-황석영 저자(글), 창비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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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두 번 읽었다. 여러 해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로웠다. 그동안 내용을 다 잊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베트남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베트남 다낭은 아직까지는 비싸지 않은 관광지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간다. 오죽하면 ‘경기도 다낭시’라고 하겠는가? 아무생각 없이 쉬고 오다가 갑자기 베트남전이 떠 올랐고 이 책이 떠 올랐다. 역시 황석영은 대단한 작가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전에 대한 여러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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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영규는 행정이 무엇인가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늪지대를 목과 총만 내놓고서 허우적거리며 건널 적에도. 사실은 상황실의 작전 장교들이 커피잔을 들고서 삼각자와 컴퍼스로 내리긋는 좌표 위에 그들이 헤매고 있다는 상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영규는 보급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활주로의 모퉁이에 서서 씨레이션과 탄약을 싣기에 분주한 헬리콥터들을 구경하기만 했다(p. 24).

 

팜 민의 대답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엄청난 질문이었다. 그러나 민은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았다. 죽음의 가운데를 향하여 제 발로 찾아들어온 자가,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팜 민은 머리털이 곱슬곱슬하고 치열이 가지런하던 교사 출신의 동료를 떠올렸다. 그의 시체가 지금쯤 중부 산악지대의 어디에 누워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이제는 나무와 풀숲의 덩어리 가운데서 거기가 베트남의 어느 곳인지 모두 잊어버렸다. 시체가 일어나서 걷지 않는 한 그것은(p. 114) 그 잊혀진 자리에서 도마뱀과 파리떼에 뒤덮여 소멸되어갈 것이다. 폭격에 맞아 가족들의 곡성에 둘러싸여 죽음을 당하는 것과는 달랐다. 게릴라는 이름도 정체도 과거도, 그리고 얼굴도 없는 자가 아닌가. 탄이 말하고 있었다. "알리지 못하는 게 아니야. 우리의 죽음은 베트남 민족해방에 바쳐지는 거야.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야 할 곳은 단 한군데....민족해방전선뿐이다. 신념없는 죽음처럼 참혹한 것은 없어."(p. 115).

 

팜 꾸엔은 이 낙관에 찬 단순한 동남아 전문가들의 머리에서 나온 신생활운동에 대해서 전혀 확신하지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의 상황과 국면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일찍이 고문관의 눈에(p. 154)들었던 모기약논쟁 때처럼 문제제기를 피하는 대신 그들의 사고에 영합하는 쪽이 훨씬 이롭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성장의 기획자인 팜 꾸엔이 이런 계획에서 미국은 무조건 지원하고 빠져라 한다면, 이는 곧 베트남에서 미군이 나가라는 논리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팜 꾸엔은 부서가 바뀌거나 아니면 다른 사소한 일로 책임을 지 고 전선으로 쫓겨가게 될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미국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퍼뜨리게 되는 원인일 것이다. 참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지혜롭게 표현할 줄 알았다. 남부 베트남과 중부 이남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신생활촌을 그들은 미꾸어도(미국촌)라고 불렀던 것이다. 괌 꾸엔은 혼자 있을 때에는 언제나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주의이고, 그러나 절대로 손해보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입장이며 드디어는 싱가포르나 타일랜드쯤에 정착하고 싶은 개인적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싸이공대학의 우수한 법률학도였다. 그는 이른바 도시부르주아의 자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다낭 시내에서 가장 큰 약종상을 경영했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그의 집 창고에는 투본 일대의 계피가 늘 산더미처럼 쌓여서 다른 지방의 중개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언제나 계피 향내가 났고 온갖 이름도 모를 건과와 약재가 뜨락에 빈틈없이 널려 있었다. 그의 부친은 그 세대의 남자들이 반 이상이나 죽었는데도 요행히 수를 누리며 유복하게 살았다. 부친은 고혈압으로 목욕중에 죽었다. 베트남의 여러 촌락들이 네이팜이나 소이탄으로 곤죽이 되던 1940년대와 50년대를 보내고 나서 그는 욕탕에 누워서 운명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숙부가 있었다. 숙부는 후에에 살고 있었다. 그는 부친과는 좀 다른 사람이었다. 항불운동에도 참가했고 젊을 때에는 프랑스에 가서 노동을 하면서 안남청년노동동맹에도 들었다. 그러나 제네바협정으(p. 155)로 17도선의 분단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과 북을 선택했을 때 그는 후에에 남았다. 그는 한의사였다. 팜 꾸엔은 사남매의 장남이었다. 위로 누나가 있는데 쾅나이로 시집갔다가 몇년 전에 과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바로 아래 남동생 팜 민은 아주 내성적이고 얌전한 후에의과대학 학생이었고, 그 아래는 리쎄(중고학교)에 다니는 레이라는 누이동생이 있었다. 팜 꾸엔의 모친은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평생 고생 않고 살아온지라 나약하고 결단성이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 교육은 미션 계통의 학교를 나왔고 집에서는 엄한 유교식 교육을 받았다. 팜 꾸엔은 내심으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 해방전선에서 관여하는 어느 독서클럽에 나갔다가 검거된 적이 있었고, 그의 친구는 두 손 열 손가락의 손톱마다 대나무침을 박고 비명을 지르다가 미쳐버렸다. 그는 칸라오에게 협조하기로 약속하고 풀려났다. 칸라오는 디엠의 동생 고 딘 누의 비밀경찰조직이었다. 그의 도덕적 결단은 시초에 어긋나버렸고, 디엠이 붕괴할 때까지 그 자괴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때 굳게 다짐했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 그는 허무주의 자였다. 아니 주의도 아니었다. 그는 돈을, 그것도 국제통화인 달러를 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계속 모아서 그는 이 나라를 빠져나갈 작 정이었다. 그곳은 동양의 낙원 싱가포르였다. 그는 먼지나는 일번도로 위를 행정시찰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싱가포르의 야경을 상상하곤 했다(p. 156).

 

도 쭈끄: 나는 마흔여덟입니다. 모든 전쟁을 보았지요. 직업은 농부지요. 나는 해방전선이나 정부군이나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발 내 마을에서 전쟁의 포연이 멀리 가기만 바라고 살았습니다. 그날 미군들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우리 가족은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미군들의 명령에 따라 집을 나선 우리는 다른 마을 사람 여러 명과 같이 광장으로 몰려갔습니다. 미군들이 우리에게 모여서 앉으라고 명령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어요. 모든 사람들은 웃고 농담도 하며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미(p. 242)군들이 기관총을 걸어놓은 것을 보고 그제야 눈치를 채고 울고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사람들 몇은 정부 발행의 신분증을 미군에게 보여주었지만 미군은 그저 미안하다고만 말했지요.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다리를 다쳤는데 계속해서 쓰러지는 송장들 틈에 깔려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내 두 딸과 아내를 그 자리에서 잃었습니다. 한시간쯤 죽은 체하고 누웠던 나는 송장을 헤집고 나와서 밀림으로 달아났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이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웃으면서 미군을 환영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돌아 갈 나의 마을과 가족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다시는 미군을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p. 243).

 

영규가 병장에게 물었다. "갖다 팔려고 산 건 아니지?" "왜요, 팔다뇨. 사기두 어려운데 어디다 팔아요?" "레이션 카드 없나?" "그게 뭡니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당연했다. 어느 놈들 몇몇이 그들이 구입할 수 있는 구매카드를 가로채서 그 수량만큼을 수령해다가 현지에 팔아 먹고 있는 것이다. 영규가 말했다. "연합군은 누구나 레이션 카드가 나오게 되어 있어. 그게 없으니까 물건을 뺏긴 거 아냐" "그런 소리 처음 들었습니다." 병장은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졌다. 영규는 그것도 잘 알았다. 전투에서 방금 풀려난 자는 누구나 그 자리를 떠나면 대단히 섬약해지는 것이다. 술을 마신 것 같은 감정의 흥분 때문에 정상적인 후방의 분위(p. 289)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영규는 작전에서 돌아와 우편물로 도착한 신문들의 극장 광고를 훑어보면서 죽죽 울었던 기억이 났다. 거기에는 자신의 극단적인 순간이 빠져버린 채로 사람들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무기를 가졌다면 그는 자기를 쏘거나 거리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런 사람이 돌아간다. 집에 가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채로 그는 서서히 되살아나거나 변모하겠지. 그런데 이백 달러를 어쩌겠다는 건가(p. 290).

 

-하권-

중대장도 말했다. 팜 꾸엔은 풀밭의 사방에 널린 갖가지 모양의 시체들을 또 한번 돌아보았다가 풀 위에 엎질러진 흰 뇌수와 그 위의 파리떼를 보았다. 갑자기 구역질이 울컥 솟았다. 파리는 죽은 자에게뿐만 아니라 또한 산 자의 살냄새와 땀냄새를 찾아서 차별없이 날아들었다. 팜 꾸엔이 코와 입을 막고 대숲을 빠져나오자 뒤에서 대대장이 따라오며 물었다. "실장님, 괜찮습니까?" "괜찮소. 속이 좀 거북하군." 대대장은 침을 뱉더니 팜 꾸엔의 팔을 잡고 나직하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런 일은 정글의 작전지역에서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또 실장님께서 명령을 문서로 내려준 것도 아니잖습니까?" 팜 꾸엔은 이젠 대대장의 교활함에 진저리가 나서 쏘아주었다. "이봐요 소령, 이 작전의 지휘관은 바로 당신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나는 연락장교야." 그러나 대대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요, 우리야 사단과 군단의 계통에 따른 명령을 수행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니까요." "염려?" "네, 여기가 어딥니까? 그들은 거의 우리 베트남 민족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기서부터 라오스 국경까지의 산악에 사는 카투족입니다. 저들은 온 부족이 해방전선측에 가담했습니다. 카투족은 호찌민 루트의 안내인들입니다. 병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p. 245). "여기서 정글의 서쪽까지 다 그런가?" "그렇다고 봐야죠." 팜 꾸엔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정글과 산은 베트남 사람의 것이오. 이제부터 어느 마을에서도 잔류한 주민들은 후송하지 마시오." 수색소대가 협곡 안으로 출동했고 다른 소대들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참호를 파고 방벽을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팜 꾸엔은 이번의 계피작전이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곧 고개를 흔들어 버렸다. 계피가 거기 있는 한,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p. 246).

 

"행운을 빈다."

스태플리는 돌아보지 않고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탐조등 불빛이 가끔씩 번쩍, 하면서 바다 위로 미끄러져가는 게 보였다. 토이와 영규는 담배를 한대씩 물고 지켜보았다. 그 다음부터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스태플리의 껑충한 몸집이 왼편 초소로 다가가자 초병과 뭐라고 얘기하고, 이어서 그 중위인 듯한 자가 나와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철망 울타리를 통해서 그들이 나란히 걸어가는 게 보였다. 오른편 초소에서 미군 SP가 나왔다. 그의 흰 헬멧이 보였다. 뭐라고 묻는 듯했다.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다시 다른 SP가 초소에서 나왔다. 그들은 경계선 철망 쪽으로 다가서면서 또 뭐라고 물었다. 중위가 돌아서서 대꾸하는 듯했다. 그때 스태플리가 부두 쪽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헤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에는 길 건너편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돌아와, 정지, 정지, 곧이어서 짧은 연발사격의 총성이 들렸다. 토이와 영규는 스태플리의 몸집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맞았다, 라고 토이가 중얼거린 듯했다. 영규는 초소를 향하여 달려 갈 자세로 몇걸음 내디뎠고 토이가 그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다. "소용없어. 우리에게 불리하다." 울타리 안쪽에서 차츰 여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늘어가고 있었다. 토이가 영규를 잡아끌었다. 그들은 세워둔 지프차로 돌아갔다. 왔던 길을 되돌아 질주했다. 영규는 펜던트를 손아귀에 꽉 쥐고 있었다. 토이가 핸들을 잡고 전방을 응시한 채로 중얼거렸다. "그는 운이 나빴어." 영규는 꼭 스태플리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울고 싶었(p. 314)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p. 315).

 

"잘 아는군. 너는 뭐 해먹고 사나? 너는 배신자야, 여기서 우리 전선의 약식재판을 하겠다. 첫째, 너는 피치 못할 병역의무를 마친 뒤에 도적의 정보기관에 자진해서 투신했다. 더구나 그 적은 외국세력이다. 둘째, 너는 현재의 전민족적 투쟁을 외면하고 해방전선의 역사적 과업을 정탐 방해하여왔다. 셋째, 그것을 미끼로 애국자를 협박하고 금전을 요구했다. 그러므로 민족해방전선 남지구위원회는 인민의 이름으로 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말을 마치고 그가 차례로 돌아보자 사내들이 각각 사형, 이라고 되받았다. 토이는 미처 변명할 틈도 없었다. 마주앉은 자가 말했다. "우리는 파렴치한과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우리의 투쟁이 올(p. 334)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사내가 팔을 크게 휘둘렀고 토이는 입을 딱 벌렸다. 그는 멍청하게 자기 배를 내려다보고는 옆으로 넘어졌다. 그의 배에는 끝을 뾰족하게 깎은 짧은 대나무막대가 깊숙이 꽂혀 있었다. 지방게릴라들이 마을에서 처형하는 식이었다. 그들은 쓰러진 토이의 몸을 뒤져 보관증을 찾아내고는 재빨리 그 집을 떠났다. 길 건너편에서 박스 차의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그들은 차에 탔다. 구엔 타트는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 사내가 그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자 그가 말했다. "찢어버려." "어떡하실 겁니까?" 구엔 타트는 명랑하게 대꾸했다. 지하로 들어가야겠지(p. 335).

 

스태플리와 같은 행동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토이의 죽음은, 무수히 죽고 다쳐서 한줌의 재로 아니면 팔다리를 잘리고 병신이 되어서 실려간 다른 한국군 병사들의 것처럼 욕스러운 것이었다. 영규는 자기연민 때문에 자신을 향하여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영규의 뺨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나는 이제 지쳤다,라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목이 아팠다(p. 339).

 

폭음과 함께 불길과 화약냄새가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중사가 먼저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드르륵 하는 연발사격의 소리가 들렸고 뒤미처 달려들어간 영규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어림하여 사격했다. 거의 천장에 닿을 듯이 쌓아올려진 밀가루포대가 넘어져오면서 검은 사람의 몸집이 한데 밀려 떨어졌다. 천장에 매달린 갓 달린 전등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영규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곤 했다. 영규는 얼핏 총구를 그 사내의 몸 위에 겨누었다. 사방에 찢겨진 포대에서 날아오른 밀가루의 흰 연기가 자욱했고 베트남 사내는 영규를 올려다보았다. 영규는 그가 팜 소령의 아우임을 알아보았다. 그의 구부러진 팔 옆에 AK47 자동소총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총을 다시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영규는 그대로 몇발 더 쏘았다. 사내의 몸이 근거리 사격의 충격으로 꿈틀거리더니 곧 동작이 멎었다. 밀가루포대는 붉게 젖어갔다(p. 340).

 

혜정이 말을 꺼냈다. "제 부탁은 딴게 아니구요, 짐은 부쳤거든요. 이게 화물넘버하고 확인증이에요. 부산에 내리시면 통운에다 이 주소로 부쳐만 달라구요." "그렇게 하죠." 영규는 의정부 어딘가로 적혀 있는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사는 집의 주소 쪽지를 건네받았다. "잘 가세요" 혜정이 일어났다. 영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열식을 하는지 연합군의 노래가 취주악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영규는 탁자 위에 돈(p. 347)을 놓고 일어섰다. 길 건너편에서 흰 원피스 자락이 흔들리며 인파 속에 묻히고 있었다. 영규는 배를 향해 걸어갔다. 새벽까지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시며 빈둥거리겠다던 생각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알았던 그 어느 얼굴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p. 348).

 

해설: 베트남전쟁과 제국의 정치-임홍배 

베트남전쟁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가장 야만적인 폭력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전쟁이다. 알다시피 북베트남의 잠수함이 미군함정을 공격했다는 '통킹만 사건'을 자작극으로 날조하여 침공의 구실로 삼은 미국이 북베트남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 것은 1964년이지만, 이미 그전부터 미국은 냉전체제의 구축과정에서 베트남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이 베트남에서 물러난 공백을 틈타 다시 베트남의 식민지배를 노린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하는 과정(1946~54)에서 미국은 후에 그들 자신이 직접 10 년 동안 벌인 전쟁에 쏟아부은 군사비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군비를 프랑스에 지원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54년 항불투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은 제네바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어 있(p. 349)었지만, 구식민지 지배권력을 충실히 계승한 남쪽정권에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1956년 제네바협정의 합의사항인 총선거를 무산시키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군대의 장교집단으로 구성된 남베트남의 부패한 독재 권력을 무조건 지원하는 모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거대 제국의 의지를 작동시키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지배고리를 보철하기 위해 미국은 냉전체제의 종주국답게 남베트남을 잃으면 자유세계가 무너진다(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발언)는 이른바 '도미노이론'을 앞 세워서 베트남에 대한 무력개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지작업을 병행하였다. 이로써 미국은 표면상 2차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열강과는 달리 식민지배가 목적이 아니라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대의 명분을 얻는 듯했지만, 정작 서방세계 안에서도 호응을 얻지 못한 그러한 명분과 무관하게 중요한 것은 2차대전에 투입된 연합군의 군비 총량을 능가하는 엄청난 무력으로 미국이 베트남을 유린했다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딱지를 떼어내려는 온갖 호도지책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책략이 침략의 명분으로 동원될수록, 종전의 제국주의를 능가하는 폭력이 아무런 금기 없이 그만큼 더 무자비하게 행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제국적 독선과 제국주의적 폭력의 완벽한 결합물이라는 사실은 베트남 민중의 입장에서 본 베트남전쟁의 성격과, 미국의 '우방국'으로 참전한 한국의 역할, 그리고 베트남전쟁의 이 모든 국면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파헤친 황석영의 역작 『무기의 그늘』을 이해 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p. 350).

 

미국과 함께 집단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우리로서는 전쟁에 짓밟힌 베트남인들이 과연 승리한 투쟁의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되묻게 된다. 해방전선의 투사로 참여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 (예담 1999)에서도 통절하게 확인되지만, 해방투쟁에 승리한 베트남인 자신들에게 정작 전쟁의 승패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다름아닌 그 승리를 위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동족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 지켜낸 무수한 베트남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이 살아남은 자에게 고통스런 중압만은 아니라는 것도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바오 닌 과 마찬가지로 해방전선 투사였던 또다른 베트남 작가는 전선에서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해방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뜨거운 인간애야말로 전쟁도 파괴하지 못한 베트남인들의 영혼임을 역설하고 있거니와, 전쟁의 상처와 폐허를 딛고 베트남인들이 그들(p. 364)이 갈망하던 평화로운 삶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일구어갈 수 있는 희망의 조건도 그런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무기의 그늘』을 30년 전 베트남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소설로 읽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1991년 걸프전을 끝낸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제 베트남전쟁의 악몽을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고 호언함으로써 걸프전이 베트남전쟁의 연장선에 있음을 본의 아니게 실토한 적이 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라크를 강점 한 채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을 강요하고 있다. 『무기의 그늘』을 통해 베트남전쟁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냉정하게 되새기는 독자에게는 지금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자명할 것이다(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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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6】 베트남 전쟁에 얽힌 인간사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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