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07(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책소개

실시간뉴스
  • 【양대식 목사 칼럼32】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영국을 다녀와서)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 (영국을 다녀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GMS 세계 선교회 영국 3개 지부 수련회 인도 차, 영국을 다녀왔습니다(7월 27일 - 8월 5일). 영국에 머무는 동안 선교사님들을 격려해주고, 설교와 특강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머무는 기간, 재영 총신 동문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설교했고, 주일은 영국 주찬양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훌륭한 선교사님들도 많지만, 두 가정의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헌신, 친절에 감동을 받았고, 제 마음이 기뻤습니다. 하나님만 기쁘게 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K. 선교사님은 이스라엘과 프랑스에서 선교 사역을 했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선교하고 목회에 열정적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역자들같이 열심히, 부지런히 선교 사역하고, 이민 목회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 두 부부가 영국의 이민 교회를 섬기고,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위의 선교사나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선교사님이십니다. 또한 J.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친절, 섬세함과 헌신, 진실성에 감동 받고, 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체코에서 열린 GMS 유럽 선교 대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번에 영국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진실되고 정성 되이 한결같이 섬겨주심에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섬겨보려고 노력하는데 J. 선교 사님 부부의 섬김은 지금도 기억되고 앞으로 계속 인간관계 맺고 싶어집니다. 섬기기 힘든 시대인데, 섬기시는 주님처럼 지금도 섬기고 섬김받으면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줍 니다. 큰 자는 섬기는 자이고, 리더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계산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사랑하고 섬기면 감동을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삶에 큰 지혜입니다. 영국에서 만난 두 부부의 섬김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J. 선교사님의 아내, K. 선교사님의 아내 선교사의 섬김, 친절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관계 잘 맺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7
  • 【북토크437】 삶을 어루만지는 고전들
    공부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의 학인들이 저마다 꼽은 ‘인생 고전’을 들고, 어떻게 이 고전과 만나게 되었는지, 이 만남이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었는지 이야기하는 책. 오래된 미래인 동양고전 장자와 주역, 맛지마니까야와 법구경 등의 불경은 물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등과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고민이 펼쳐진다.-예스24 아직 읽지 못한 고전들이 많다. 젊을 때는 다 읽겠다는 욕심을 냈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고전은 저 멀리 있다. 남은 삶 동안 고전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다. 세월과 인종을 이겨낸 책들이기에. 도덕의 계보학 명랑한 중년을 위해-최소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서문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반갑고도 놀라웠다. 요즘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고민은 남편의 은퇴, 딸의 독립, 시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원 등의 일들이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다. 니제는 우리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집(p. 28)으로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진심으로 마음을" 쏟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자신의 직업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은 무언가를 빨리, 많이, 오랫동안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이며, 무언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러니 우리는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돈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내 삶의 궤적 또한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임신 6개월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이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딸이 특목고에 들어갈 때는 살맛이 났다. 재테크로 투자한 편드가 반 토막이 될 때는 밤잠을 설쳤고, 딸이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무기력과 불안에 시달렸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남편이 2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모았고,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이만하면 나름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나를 위한 인생 후반기를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뭔가 혹하고 빠져나간 것처럼 큰 상실감이 느껴졌고, 뭘 해도(p. 29) 채워지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니체는 우리가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열 두 번의 종소리”에는 한 번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더 이상 집으로 가져갈 것이 없어지자 상실감, 헛헛함, 불안에 휩싸이는 내 모습이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돈으로 채웠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것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많은 것들을 소외시키는 한없이 빈곤한 삶이었다. 현재가 좀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충만함, 의지, 용기, 확신, 미래가 점점 위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소진 시키는 위기의 삶이다. 니체는 내가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적 가치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도덕은 원래부터 주어져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보편적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고,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도덕 또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그러니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얽매이는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도덕을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니체(p. 30)는 노예 도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들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생겨났으며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따져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도덕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그 보답으로 삶의 '명랑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제 청년과는 다른, 새롭게 창조된 중년의 명랑함을 위해 나 자신의 '도덕의 계보'를 밝혀 보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안내자인 니체와 함께(p. 31). 장자 쓸모없음의 큰 쓸모-이경아 "승진이나 상은 남한테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라.”-내가 항공사에 입사하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의 욕망과 내 욕망이 만나 승진을 위해 달렸다. 승진을 하면 월급 인상 외에 권력이 생긴다. 비행기 매니저를 하게 되면 평가권도 갖고, 그 비행에서는 최고 권력을 갖는다. 대형기일수록 더하다. 그래서 다들 빨리 승진해서 매니저가 되고자 한다. 회사는 승진을 미끼로 충성을 요구한다. 승진을 하면 다음 승진을 위해 또 달린다.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본다. 소모품 중 품질 좋은 소모품이 되라며 충성을 요하는 건 기본이고 성형과 몸매관리도 자기관리라며 독려한다. 그러다 기내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병가(p. 60)가 길어지면 그 직원은 쓸모가 없어지고 회사의 지출을 늘리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회사는 그런 불편함을 당사자가 느껴 그만 두도록 압박을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도 윗선의 필요 에 따라 같은 처지가 된다. 더 윗선은 오너의 마음에 달렸다. 승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체력에 한계가 왔고, 더는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기 싫었기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회사가 나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싫었는데도 여전히 삶은 돈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당당하고 남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백수생활 시작 후 처음 한 일도 재건축 관련 일이다. 그곳은 회사보다 더했다. 오직 돈이었다. 청렴하다고 믿었던 현직 교수인 조합장이 뇌물 관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것을 보며 그곳을 떠났다. 유용성에 대한 내 전제는 의심하지 않고 남들만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삶 말고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사당목인 상수리나무를 예를 들어 무용지용을 역설한다. 목수 석이,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이고 둥치가 백 아름 정도나 되는 사당목을 보며, 제자에게 배로 만들면 가라(p. 61)앉고 관을 짜면 곧 썩을 나무인데 그 덕에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당목이 석의 꿈에 나타나 "나를 무엇에 비교하는지? 열매를 맺는 재능이 있는 나무는 그 재능 때문에 가지가 꺾이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쓸모없기를 바라왔는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당신 덕에 완전히 그리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였다"고 이야기한다. 또 둘 다 하찮은 사물인데 어찌 상대방을 하찮다고 하며,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쓸모없는 나무 운운하느냐고 반문한다. 장자는 삶을 삶 자체로 보라고 한다. 무엇이 진정 생명을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장자가 말하는 큰 쓸모는 양생(養生)이다. 이 사당목은 남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재능이 없기에 오히려 천수를 누리고 있다. 돈이 없다고 비루한 삶인가? 돈이 많으면 고귀한 삶인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돈이 많아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나? 부자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삶을 중독이나 폭력으로 몰고 가나? 장자는 내가 쓸모없음의 유용성에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난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 일상은 무시하고 살았다. 돈을 버는 것도 일상을 살기 위한 일인데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들을 절대화하며 소중한 일상과 내 몸을 제물로 삼았다. 돈이라는 작은(p. 62) 것으로 큰 내 삶을 평가받고자 했다. 이제 장자를 통해 새로운 삶의 비전을 만나 굳어 버린 전제들을 하나하나 깨며 자유로워지고 싶다(p. 63). 말과 사물 '당연히'와의 결별-전현주 과연 『말과 사물』은 놀라운 책이었다. 진리는 연속적으로, 진보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인식의 틀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던 그것은 여하튼 '우리 시대'의 진리일 뿐이다! 이럴 수가, 내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무엇이었나. 무지에서 진리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사회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 역사 아닌가. 그런데 각각의 시대적 지반 위에 세워진 진리'들'이라니, ‘단절’의 역사라니! 『말과 사물』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말과 사물』에서 이 새로운 진리를 뒷받침해 줄 증거들을 발(p. 174)견할 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기분이 있다. 그런데...그렇게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리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시대 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또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거지? 헐! 내가 푸코(Michel Foucault)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니. 푸코에게는 각각의 앎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서 있는 지반에 질문을 던진다. 각 시대가 자신들만이 구성하는 진리를 갖듯, 푸코 역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풀어 헤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며 완전히 다른 역사를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앎의 길을 내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 바로 여기가 내 공부자리여야 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며 답답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 일로 외국에 살던 시절 집에서는 영어식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성인이 되면서는 ‘인간’ 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놀고 먹는 잉여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p. 175)해 필사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보험을 들었다. '생명'은 당연히 죽음과는 반대편에 있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외에도 나는 수많은 '당연히'들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분명 힘들고 혼란스러웠음에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니까. 푸코를 만난 이후 나의 '당연히'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당연히'들이 구성된 지반을 잘 보여 주었다. 그 지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좇아 사느라 힘들었었다.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조심 조심 '당연히'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네. 괜히 피곤하게 살고 있었네. 그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되겠군. 신난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섰다. 편안함 위에, 푸코를 새로운 진리로, 또 다른 당연함으로 붙잡으면서 말이다. 이는 공부하기 전에 있던 '당연히'를 다른 '당연히'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는 고민을 배우는 대신, 나를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용만 취하고 있었다. 나아가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식을 찾아냈다. 배운 내용을 진리로 받(p. 176)아들이기. 그것으로 나의 편안해진 삶을 계속 유지하기. 『말과 사물』은 이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든다. 편안함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자신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푸코의 공부가 배우고 싶었다. 나의 ‘당연히’를 뿌리째 뒤흔드는 공부를. 잘 가, ‘당연히’~. 나는 이제 푸코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겠어(p. 177).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6】 의사는 누구인가?
    이 책은 매일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부딪치고 목격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의학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또 의사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얼마나 고뇌하는지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총 3부에 걸쳐 의료현실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들, 즉 환자와 의사를 똑같이 보여주며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과 근본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한다.-예스24 생각해 보면 의사는 업보같다. 머리가 좋아 공부 잘했기에 의사가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안정된 수익을 얻지만 평생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나 하고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병원은 앞으로도 아플 때나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기를 바래본다. 의사란 참 기이하고 또 여러 면에서 겁나는 직업이다. 위험부담이 높은데도 엄청난 재량권이 주어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관을 삽입하고, 화학적• 생리적 •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무의식상태로 몰아넣고 몸을 열어제키기도 한다. 물론 전문인으로서 우리의 노하우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서 한다. 하(p. 12)지만 좀더 가까이, 잔뜩 찌푸린 미간, 의혹과 과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까지도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마도 의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지럽고, 불확실하고, 예측불허한지 보게 될 것이다.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이다. 이 점은 아직도 나를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의학과 그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과, 과학이 질병과 고통에 맞서 싸우도록 우리에게 준 수단들, 즉 여러 가지 검사와 의료기기, 약품, 수술 등을 떠올 린다. 그러한 것들이 의학이 이루어낸 사실상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는 좀체 보지 못한다(p. 13).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외과에서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 가며 얻어진다. 테니스 선수나 오보에 연주자나 하드드라이브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일에 능숙 해지려면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학에서 연습 대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점뿐이다(p. 30). 이러한 종류의 소모는 의외로 흔하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도 잘 견디고 강하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혹독한 수련기간 동안 약골들은 다 추려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여러 증거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연구조사에 따르면 알콜중독은 다른 집단만큼이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흔하다고 한다. 의사들은 처방용 마약이나 안정제에 중독되기 쉽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전체 노동연령층 인구의 약 32%는 한 가지 이상의 심각한 정신질환을 보인다. 주로 심한 우울증, 조증, 공포증, 정신이상, 중독증 같은 질환들인데, 그러한 질환이 의사들에게서는 덜 나타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물론 의사들도 병들고, 늙고, 사명감이 없어지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정신이 산란해지기도 하며,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소홀하게 되거나 흔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문 제의사들을 비정상분자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40년간 의사생활을 하면서 한두 해 정도 고전한 시기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일 것이다.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라도 현직 의사 중 3~5%는 사실상(p. 129) 의료행위를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추정된다. 의사사회에 그러한 의사들을 처리하는 공식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런 의사의 동료들은 즉각적으로 합심해 시술을 못하게 하고 의사 면허당국에 보고하여야 하며, 보고를 받은 당국은 그들을 처벌하거나 의사사회에서 제명시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조직사회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p.130).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5】 체크리스트는 쉬우면서도 유익하다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 그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한 해결책으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체크리스트의 사용이 업무의 효율뿐만 아니라 일의 성공과 실패, 나아가 사람의 생사도 좌우한다고 말한다.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실수를 막아준다. 불완전한 기억력과 정신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한 사람의 기억력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아온,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실수들이 때로 뼈아픈 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체크리스트는 바로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로 외과의사인 저자는 수술실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그가 고안한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전 세계 8개 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동안 합병증 비율은 36%가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 그 결과,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는 현재 WHO에 공식 채택되어 세계 각지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체크리스트는 끔찍한 사고를 막아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인 프로젝트를 보호해준다. 체크리스트는 단지 ‘지켜주기만’ 하는 방어기제가 아니다. 끔찍한 재난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생명을 구해내며, 금융위기도 피할 수 있게 하고, 한 개인을 성공으로도 이끌어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예스24 나는 실제로 여러 경우에 체크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의학이든 그 무엇이든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유익하다. 단순한 것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현재 이 책은 품절됐다. 우리는 초전문가의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일류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임상의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전문가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요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이 종사하는 특수한 분야의 복잡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상황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수술보다 더 극도로 전문화된 분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수술실은 집중치료실에서 하는 업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이다. 수술실에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마취의들이 있다. 그런데 마취의들조차 여러 분과로 나뉜다. 소아전문 마취의, 심장전문 마취의, 출산전문 마취의, 신경전문 마취의 등(p. 42) 여러 마취의들이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들도 전공 분야에 따라 분화되어 있다. 외과의 또한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오른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와 왼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가 따로 있다는 농담을 하고 나서 정말로 그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볼 정도다. 나는 일반외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상 일반외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궁벽한 시골 병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 사람의 외과의가 모든 수술을 해낼 수는 없다. 나는 종양학에 집중해서 환자를 보기로 결심했지만 이조차 너무 광범위했다. 그래서 응급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외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내분비샘암 제거에 대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쌓아왔다. 한때 아주 간단한 수술에서조차 사망위험률이 두 자리 숫자였던 적이 있었다. 수술 후 환자의 회복 과정이 길었고, 장애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급격하게 외과 수술이 전문화되면서 수술 능력과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줄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7번 수술을 한다. 외과의들은 매년 5000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한다. 너무 많은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로 인한 피해 역시 크다. 미국에서는 매년 15만 명 이상의 환자가 수술로 인해 사망한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3배가 많은 수치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수술로 인한 사망과 주요 합병증의 절반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극도로 전문화되어서(p. 43) 그에 따른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실수할 것이다. 실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학이 거둔 눈부신 성공 뒤에는 많은 실수와 실패가 존재한다. 의학계는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의 전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초전문가까지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 의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얻었다(p. 44). 1935년 10월 30일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미 육군항공대에서 군에 차세대 장거리 폭격기를 공급하고자 경합을 벌이던 항공기 제조업 자들을 대상으로 비행 시합을 열었다. 사실 그건 시합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초반 평가에서 보잉의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합금 모델 299기가 다른 항공기 제조회사들, 즉 마틴과 더글라스를 제치고 완승을 거둔 상황이었다. 보잉의 폭격기는 육군이 요청했던 것보다 5배나 더 많은 폭약을 탑재할 수 있었고, 이전에 나온 폭격기들보다 훨씬 빠르며, 2배나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시애틀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던 모델 299기를 본 한 기자는 '하늘의 요새'라는 표현을 썼고, 그것이 그 폭격기의 별명이 되었다. 군 역사가인 필립 마일링거에 따르면 그 비행 시합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육군에서는 그 항공기를 최소 65대 주문할 계획이었다(p. 47). 이날 군 고위층과 항공회사 중역들이 모여 모델 299기가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델 299기는 날개 길이가 31미터에 달하고, 날개에서 그때까지 일반적이던 쌍발 엔진이 아닌 4발 엔진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주 날렵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부드럽게 이륙해서 100미터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며 한쪽 날개에 의지하더니 그대로 폭발해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조종사인 육군 소령 플로이어 힐을 포함해 승무원 5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 결과 기계 결함이 아닌 '조종사의 실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델 299기에는 4개의 엔진과 접어 넣을 수 있는 착륙 장치, 날개 플랩, 속도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전기 트림 탭(trim tab), 비행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유압 조정 장치로 조정하는 정속 프로펠러를 포함해 조종사가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장치들이 아주 많았다. 힐은 이 모든 장치들을 조종하느라 승강타와 방향타의 새 제어 장치를 깜빡 잊고 해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모델 299기는 한 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한 사람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비행기’였던 것이다. 육군항공대는 더글라스의 좀 더 작은 폭격기를 시합의 승자라고 발표했다. 보잉은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하지만 육군은 모델 299기를 테스트 비행기로 몇 대 구입했다. 육군에 이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p. 48).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이 모여 어떻게 이 폭격기를 조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모았다. 그들은 모델 299기를 모는 조종사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훈련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육군항공대의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 가운데서 최고였던 힐 소령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조종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 덕분에 이후 항공술은 고도로 발달했다. 초기 비행 시대에는 비행기를 상공에 띄우는 일이 불안하기는 해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비행이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빼는 것처럼 단순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때는 체크리스트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성능 좋고 복잡한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조종이 어려워 졌다. 비행사가 아무리 노련한 전문가라고 해도 한 사람의 기억력에만 의존해 조종하기에는 복잡한 장치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은 한 장의 색인카드에 모든 내용이 들어가는, 짧고 단순하며 핵심 사항만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을 단계적으로 체크할 수 있었다. 체크리스트에는 모든 비행사들이 알고 있는 사항과 꼭 실시해야 할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브레이크를 풀었는가, 계기가 제대로 세팅 되었는가,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가, 승강타 제어 장치가 풀려 있는 가 등 간단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조종사들은 모델 299기로 총 180만 마일을 비행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육군은 모델 299기를 1만 3000대 더 주문했고, 이 폭격기에는 B-1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p. 49)제 이 거대한 야수를 다를 수 있게 된 미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보이면서 나치 독일에 치명적인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p. 50).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일부 비행 조종사들은 아무리 신중하게 고안된 준비 절차라고 해도 콧방귀를 끼어대며 무시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난 비행하면서 한 번도 문제가 없었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냥 가. 다 괜찮을 거야” 혹은 "내가 캡틴이야. 이건 내 비행기야. 너 희들이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도 자주 했을 것이다(p. 238). 1977년에 일어난 테네리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고는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안개가 낀 카나리아제도 활주로에서 보잉 747 여객기 2대가 고속으로 충돌해 비행기에 탑송한 583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대인 KIM 항공편의 기장이 활주로에서 이륙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관제탑의 지시를 오해하고, 관계의 지시 내용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조종사의 말도 무시 했다. 사실 그때 같은 활주로의 반대편에서 팬암 여객기가 먼저 이륙하고 있었다. "팬암 여객기가 이륙 승인을 받은 거 아닐까요?" 부조종사가 기장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받았다니까." 기장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계속 활주로로 나아갔다. 기장이 틀렸다. 부조종사는 이 점을 즉시 간파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한 팀이 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부조종사는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장을 멈추게 해서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기장은 막무가내로 계속 밀고 나갔고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로토콜을 충실하게 따르면 경직돼 보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따르면 아무 생각 없는 로봇처럼 체크리스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느라 밖을 내다보고 그들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면 실상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고, 일상(p. 239)적인 일들(예를 들어, "승강타 제어 장치가 세팅이 됐나?" "환자가 항생제를 제때 맞았나?" "매니저들이 모두 주식을 팔았을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했나?" 등)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주며 중요한 일("어디에 착륙해야 할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서 내가 본 예리한 체크리스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이 하나인 세스나를 몰다가 엔진이 작동되지 않을 때 적용하는 것으로 브리티시에어라인과 조건이 같다. 다른 점은 조종사가 한 명뿐이란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의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 연료 차단 밸브가 오픈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예비 연료 펌프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6단계로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다. 이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라'가 그것이다. 조종사들은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추가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생각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깜박 잊어버릴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따른다고 경직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크리스트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p. 240). 다른 수많은 분야도 사정은 같다. 우리는 교육계, 법조계, 정부 프로그램, 금융계, 혹은 다른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나 실패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실수의 패턴을 찾지도 않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안하거나 개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핵심 포인트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실패들, 즉 빠뜨리고 지나간 세부적이고 미묘한 사항들, 못 보고 지나친 정보와 터무니없는 실수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개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군 조종사들이 반짝거리는 신형 모델 299 폭격기(B-17, 너무 복잡해서 어떤 인간도 조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p.250)계)를 보면서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 이 조종사들 역시 ‘좀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그 비행기의 추락 사고를 ‘실력이 부족한’ 조종사의 실패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을 받아 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의 단순함과 진가를 알아 차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사실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주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을 지닌 사람들조차 계속 같은 공을 떨어 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패턴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 체크리스트를 써보라(p. 251).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4】 가끔은 처세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가 품격을 만든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남긴 삶의 지침서인 〈The Art of Worldly Wisdom〉은, 시대와 세계를 초월해 사랑받은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에 관한 짧은 격언과 조언 300여 개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담긴 300여 개의 격언과 해설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우정, 윤리, 대화법, 신중함,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는 그의 조언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판본은 스페인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한 조셉 제이콥스의 뛰어난 번역을 바탕으로, 본문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격언과 해설만을 엄선하여 일상 속 통찰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이 책은 오늘날 AI 시대 정보 과잉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답을 준다. 실용적인 지혜는 물론, 자기관리, 인간관계, 리더십, 상황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선택의 중요성 등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서다.-예스24 흥미롭게 읽은 처세술이다. 가끔은 이런 종류의 책도 도움이 된다. 윗사람을 이기는 것은 피하라 모든 승리는 증오를 낳으며, 윗사람을 상대로 한 승리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론 치명적이다. 우월함은 항상 미움을 사며, 하물며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한층 더 그렇다. 당신이 평범한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면 신중하게 그것을 감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잘생긴 외모라도 일부러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하여 감출 수 있다. 어떤 윗사람들은 당신이 운이 좋거나 성격이 좋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 하지만 '좋은 판단력' 만큼은 누구라도, 특히 군주라면 당신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조언할 때에는 그들이 찾지 못한 것을 안내한다기보다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해야 한다. 별들이 이 기술 을 잘 알고 있다. 별들은 행복한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보여준다. 별들은 태양의 자녀이며 태양처럼 빛나지만, 결코 태양의 광채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p. 27). 지식과 선의 지식은 선의와 함께 할 때 성공을 지속시킨다. 훌륭한 지성이지만 악의와 결합한 경우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괴물을 낳았다. 사악한 의지가 결합되면 모든 탁월함은 독이 되고 거기에 지식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교묘한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파멸만을 낳는 우월함은 비참한 우월함이고 분별력 없는 지식은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p. 38). 행운을 얻는 기술 행운에도 법칙이 있다. 현명한 사람에게 행운이란 전적으로 우연만은 아니다. 주의 깊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운명의 문 앞에 당당히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더 현명한 이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영리함과 대담함을 활용하여 앞으로 밀고 나아가고, 자신의 미덕과 용기로 날개 짓하며 행운의 여신에게 다가가 그녀의 호의를 얻어낸다. 진정한 철학의 잣대로 보면 심판자는 미덕과 통찰력이다. 왜냐하면 행운이나 불운은 결국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43). 사람마다 가진 약점을 찾아라 이것은 타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이는 결단력 보다는 더 많은 노련함을 요한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의지는 각자의 동기가 있고 동기는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간은 우상 숭배자다. 어떤 이는 명성을, 어떤 이는 사리사욕을, 대부분은 쾌락을 우상으로 삼는다. 노련함이란 바로 이러한 우상들을 파악하여 그런 우상을 지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알게 되면, 당신은 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열쇠를 쥔 것과 같다. 그들의 원초적 동기를 활용하라.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의 본성 중 고귀한 부분보다는 가장 저열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잘 조직된 성향보다는 뒤죽박죽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 사람의 지배적인 열정을 추측하고, 한마디로 그것에 호소하며, 유혹으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의 자 유 의지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p. 48). 생각은 소수처럼 하고 말은 다수에 맞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다수의 생각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오히려 위험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일은 오직 소크라테스처럼 특별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상대는 모욕으로 느낀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진짜 생각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생각에 반할지라도 대중의 목소리로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을 반박하지 않으며 반박당하는 것도 피한다. 마음속에서는 판단이 서 있지만, 그걸 아무 데서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현명한 사람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며, 은밀하게 소수의 적절한 사람 앞에서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p. 65). 명예와 관련된 문제는 애초에 피하라 이는 신중한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멀리하고 항상 신중함이라는 중간 지점에 머물기 때문에, 그 신중함을 뚫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 문제가 생겨 거기서 훌륭하게 벗어나는 것보다 처음부터 그런 문제를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명예 문제는 우리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거기서 승리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의 명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명예를 위한 싸움에 쉽게 뛰어들곤 한다. 하지만 이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명예 문제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아예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싸움을 거절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p. 69). 자존심을 잃지 말라 그러나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지도 말라. 당신의 올바른 감각이 곧 당신 정직함의 진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어떤 처벌보다도 스스로에게 내리는 엄격한 판단을 더 중요한 규범으로 삼아라. 보기 흉하거나 부적절한 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권위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점을 늘 기억한다면, 세네카가 말한 '가상의 가정교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p. 72). 이를 드러낼 줄 알아라 사자가 죽은 뒤에는 토끼라도 갈기를 뽑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용기란 그런 우스운 장난이 아니다. 처음 한 번 물러서면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밀려 결국 마지막까지 내주고 만다. 초기에 단단히 버텼다면 피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생을 하게 된다.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보다 더 고귀하다. 그것은 신중함의 칼집에 꽂힌 채 언제든 뽑아 쓸 준비가 된 정신의 점이다. 높은 지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도 바로 이 도덕적 용기다. 육체적 겁쟁이보다 도덕적 겁쟁이가 훨씬 더 비천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생기가 빠지고, 결국 게으름과 무기력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현명한 자연은 벌에게 꿀의 달콤함과 침의 날카로움을 사려 깊게 결합해 놓았음을 기억하라(p. 76). 마무리를 잘하라 행운의 집에서는 기쁨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슬픔의 문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마무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구에서 받는 박수보다 품위 있는 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운이 나쁜 사람들에게 흔한 일은,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비극적인 경우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때 누구나 받는 그 박수가 아니라, 떠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전체적인 인상이다. 인생에서 '앙코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운의 여신도 대개 누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지는 않는다. 찾아 오는 손님은 따뜻하게 맞이해도, 떠나는 손님에게는 대체로 차갑기 마련이다(p. 80).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 것보다 규칙을 얼마나 성실히 지켰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최종적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보다, 결과가 좋았는지만 본다. 목적을 이루었다면 잃을 것은 없다. 결말이 좋으면, 과정이 다소 미흡했더라도 모든 것이 용서되고 빛난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결과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면, 규칙을 벗어나는 것조차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p. 87). 항상 농담만 하지 말라 지혜는 진지한 순간에서 드러나며, 가벼운 재치보다 훨씬 더 값지게 평가된다. 늘 농담할 준비만 되어 있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농담만 일삼는 사람은 거짓 말쟁이와 닮았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를 믿지 않듯, 농담만 하는 사람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늘 거짓을, 다른 쪽에서는 늘 농담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신이 언제 진지하게 판단하고 말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농담은 결국 재미마저 소진시킨다. 많은 이들이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얻지만, 그 대가로 '분별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잃는다. 농담은 잠시 머물러야 하고, 진지함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p. 97). 지위를 과시하지 말라 개인적 매력으로 두드러지는 게 아니고, 위엄으로 남을 압도하려 드는 것은 더 불쾌감을 준다. 스스로를 중요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태도는 미움을 사기 쉽다. 사람들의 질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데 말이다. 존경을 더 많이 얻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덜 얻게 된다. 존경은 타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직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가 없으면 직무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위엄은 유지해야 한다. 존경심을 강요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라. 자신의 직위가 지닌 위엄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없음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며 그 직위가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면, 우연히 얻은 지위나 배경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재능 때문에 존중받도록 하라. 실제로 왕들조차도 자신의 왕좌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질 때문에 존경받기를 원한다(p. 125). 타인의 치부를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남의 나쁜 평판에 관심 두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미 자신의 명예가 흐려졌다는 신호다. 어떤 이들은 남의 오점을 들춰내며 자신의 흠을 가리거나 씻어내려 한다. 혹은 거기서 위안을 얻지만, 그것은 바보들만이 찾는 가장 비겁한 위안일 뿐이다. 남의 험담을 파헤칠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에게 흠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덜 알려진 사람의 경우 결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잘못을 기록하는 결점 기록관이 되지 말라. 그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며, 인간적인 심장을 잃은 자만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p. 144). 어리석음은 저지름이 아니라 감추지 못함에서 드러난다 당신의 욕망은 봉인하고, 결점은 더욱 철저히 감추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현명한 이는 그것을 덮고 어리석은 이는 떠벌린다. 평판은 드러난 행위보다 오히려 감춰진 것들로 결정된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면, 최소한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위대한 인물의 실수는 일식이나 월식과 같다. 빛이 클수록, 그 그늘은 더 많은 눈에 띈다. 친구라 해도 자신의 치부를 쉽게 드러내지 말라. 가능하다면,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질 만큼 감추는 편이 낫다. 이를 돕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혜가 있다. 바로 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 145). 말할 때 주의하라 경쟁자 앞에서는 신중하게 말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는 품위 있게 말하라. 말을 덧붙일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마치 유언장을 작성하듯 말하라. 말이 적을수록 시비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줄어 든다.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말조심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래야 정말 중대한 순간이 닥쳤을 때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깊은 침묵과 비밀을 지키는 힘에는 신성에 가까운 광채가 깃들어 있다. 경박하게 입을 놀리는 자는 머지않아 추락하거나 실패하게 된다(p. 180). 동정심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불행한 이의 운명과 엮지 마라 한 사람의 불운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 사람은 대개 많은 이들의 불행을 발판 삼아 행운을 누리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들에게는 사람들의 선의를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는, 즉 쓸모없는 호의로 그들의 불운을 보상해 주려 한다. 그래서 잘나갈 때는 미움을 받던 사람도, 역경에 빠지면 순식간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도 한다. 상대의 성공을 시기하며 날을 세우던 복수심은, 그가 추락하는 순간 가련한 이를 향한 동정심으로 뒤바뀌고 만다. 그러나 운명이 카드를 섞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라. 늘 불운한 사람들의 곁을 맴도는 이들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이 날며 행복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새 그들 곁에서 함께 비참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 받는 자와 운명을 함께하는 일은 고귀한 영혼의 증거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아니다(p. 183).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친밀함을 피하라 타인에게 허물없이 대하지도 말고, 타인이 당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허락하지도 마라. 격식을 무너뜨리며 친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지닌 영향력의 우위, 곧 존중의 근거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밤하늘의 별이 광채를 유지하는 까닭은 사람들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적인 것은 언제나 예의와 거리를 요구한다. 지나친 친밀함은 필연적으로 경멸을 낳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낼수록 사람은 가진 것이 적어 보인다. 격식 없는 교류 속에서는 침묵과 절제가 가려주었을 결점들까지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밀함은 미덕이 아니다. 윗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위험해지고, 아랫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품위를 잃는다. 특히 무지한 사람과는 결코 친밀해지지 마라. 그들은 당신이 베푼 호의를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로 착각하고, 서슴없이 무례하게 굴 것이다. 지나친 친밀함은 천박함과 맞닿아 있다(p. 197). 마음의 평화가 곧 좋은 인생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면,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라.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관찰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다툼 없는 하루는 근심 없는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평온하고 즐거운 삶은 마치 두 번 사는 것과 같은 풍요로움을 선사하니, 이것이 바로 내면의 평화가 주는 진정한 열매다.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들을 가볍게 흘려보낼 줄 아는 이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다. 모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 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는 없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 쓰며 괴로워하는 것과, 정작 마음을 쏟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어리석은 태도다(p. 212). 가치를 알아보는 곳으로 옮겨 가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때로는 익숙한 터전을 떠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향은 때때로 천재들에게 계모처럼 냉대한다. 시기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움트며, 사람들은 당신이 이룬 위대한 성취보다는 당신의 미미했던 시작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먼 곳에서 온 평범한 물건조차 귀하게 대접받고, 낯선 땅에서 건너온 색유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미지의 곳에서 온 것은 본질적으로 존중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지닌 신비로움과 함께, 이미 완성된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한때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받던 인물이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존경받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외국인들은 그가 먼 곳에서 왔기에 존경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은 그가 이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존경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원 구석에 굴러다니던 평범한 나무토막이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제단 위에서 숭앙되는 그 나무 조각상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다(p. 218). 항상 갈망할 무언가를 남겨두어라 모든 것이 충족된 완벽한 행복은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육체가 호흡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열망해야만 한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흔히 환멸과 불만뿐이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태울 '미지의 영역'이 항상 남아있어야 한다. 지나친 행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을 돕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갈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남는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다. 이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소멸하는 순간, 공포는 고개를 드는 법이기 때문이다(p. 220). 쉬운 일은 신중히,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다루라 이는 쉬운 과제 앞에서 자만심이 피어나지 않도록 하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지레 겁먹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업무의 실패는 흔히 '이미 다 된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꾸준한 노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조차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크고 복잡한 일을 마주했을 때는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여 압도당하지 말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어려움을 미리 헤아리려 하면, 오히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다(p. 224). 무관심이라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하라 원하는 것을 얻는 기발한 방법 중 하나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그림자와 같아서, 쫓아가면 멀어지고 외면하면 따라오는 법이다. 또한 무시야말로 가장 정교한 형태의 복수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글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러한 방어는 언제나 논쟁의 흔적을 남기며, 상대를 벌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는 위대한 사람과 싸우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만약 뛰어난 상대가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망각보다 더 혹독한 복수는 없다. 망각은 그들을 보잘것없음이라는 먼지 속에 완전히 묻어버린다. 대담함을 가장한 사람들은 위대한 것을 무너뜨리면 그것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추문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추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된다. 설령 이긴다 할지라도 명성에는 얼룩이 남게 되고, 상대에게는 만족감만 줄 뿐이다. 이 작은 얼룩의 그림자는 명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 빛을 흐리게 만든다(p. 225). 바보들의 병에 죽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이성을 잃은 뒤에야 죽지만, 바보는 이성을 찾기도 전에 죽는다. '바보들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심신이 병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에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기에 오히려 삶을 이어간다.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여 생존하는 자들 역시 어리석은 부류이지만, 그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병드는 이도 있고, 너무 무지하기에 병드는 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어리석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끝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는 거의 없다(p. 228). 영원히 사랑하지도, 영원히 미워하지도 말라 오늘의 친구가 내일 가장 지독한 적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니,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정의 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훗날 당신을 공격할 무기가 될 만한 정보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는 우를 범하지 말라. 반대로 적들에게는 언제든 화해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그 문이 관용을 베푸는 태도로 열린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는 더 큰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오랜 복수는 때로 현재의 고통이 되어 돌아오며, 타인에게 가한 악행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기쁨은 결국 더 큰 슬픔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p. 237). 세상사의 결을 읽고 긍정적인 면을 보라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거스르거나 부정적으로만 치우쳐 해석하지 말라. 모든 일에는 매끄러운 겉면과 거친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도 잘못 잡으면 손을 다치지만, 적이 던진 창조차 자루를 잡으면 당신을 지키는 견고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많은 일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그 이면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있으며, 진정한 지혜는 바로 그 유리한 측면을 찾아내는 기술에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항상 사물의 가장 좋은 면을 바라보고, 선한 의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 누군가는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슬픔만을 찾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은 가혹한 운명이 드리울 때 당신을 보호해 줄 거대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며, 모든 시대와 상황에 적용되는 삶의 중요한 원칙이다(p. 244). 신(神)의 영역은 신에 의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는 인간의 노력이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신의 뜻에 맡겨라 이것은 위대한 거장의 법칙이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p. 271). 한 번에 너무 큰 호의를 베풀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베풀어라 상대가 되돌려줄 수 없을 만큼 과하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사함을 바닥까지 긁어내지 마라. 받은 사람이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아예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감당 못 할 만큼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한 채무자로 남기보다, 차라리 당신의 '적'이 되어 도망치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상이 자신을 만든 조각가를 늘 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듯, 은혜를 입은 사람도 은인을 항상 마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베풂이란, 비용은 적지만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어 그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p. 275). 반박하는 자에게 곧바로 맞대응하지 말라 상대의 반론이 '교활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천박함'에 서 나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상대의 반박이 늘 고집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교묘한 술책 일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라. 천박함에 응수하면 곤경에 빠질 수 있고, 교활함에 휘말리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음험한 자들을 상대할 때만큼 경계가 요구되는 순간은 없다. 상대가 당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자물쇠 따개'에 맞서는 최상의 방책은, 주의력이라는 열쇠를 아예 자물쇠에 물려두어 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p. 299).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북토크433】 신화를 통해 분석한 오늘날의 남성됨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2024년 복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여신의 언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신화학자이자, 꿈 해석과 신화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치유에 매진해 온 고혜경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인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일차적으로 ‘건강한 어른 남성’이 부재한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잃은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만 자신을 욱여넣느라 깊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 전체를 향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신과 여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10쪽)이라는 심층심리학·원형심리학적 시각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섯 남신을 들여다본다. 올림포스의 12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우리 내면의 여러 원형 역시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7쪽)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성향만이 과잉된 현시대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피상적인 삶을 좇느라 ‘참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롭고도 신비로운 시야를 틔워 줄 것이다.-예스24 여성 신화학자, 정신분석가가 진단한 남성의 위기 현상을 통해 남성인 나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게 됐다. 흥미롭게 읽었다. 이 저자의 책을 계속 읽기 위해 몇 권을 대출했다. 모처럼 실력있는 저자를 알게 되어 기쁘다. 옛것으로부터 새것이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늙어 쇠락한 자리에 다시 젊음이 꽃피는 것도 이치다. 그런데 이 마땅한 순리가 지금의 세상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운명은 두려움이 있는 자리에서 형상화된다'는 말이 있다. 아(p. 33)버지와 아들 사이의 운명도 크로노스의 두려움이 빚어 냈다. 갈등의 기저에, 이 원형적 드라마가 어김없이 작동하나 보다. 변화는 구질서나 기존 세대에게는 도전이고 위협이다. 새로운 질서나 가치 확립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아버지가 구축한 체제에 반기를 드는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다. 크로노스는 세대 간 전환에 연루되는 불가피한 폭력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다(p. 34). 이제 헤파이스토스의 결함과 장애, 결핍이 강변하는 교훈이 선명해진다. 삶이 불완전하듯 우리가 하는 시도 또한 모두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그 불완전한 시도 끝에 놀라움과 기쁨이 태어난다. 예술품이 예술가가 자신을 말하는 방식이라면, 궁극적이며 진정한 예술은 결국 자신을 빚어내는 예술이 아닌가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장애와 결핍과 추함에 온 힘을 다해 헌신했다. 그 사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천공이 탄생했다(p. 94). 헤파이스토스의 삶은 버겁지만 숭고하다. 열등과 추함 또한 신의 본질이기에 신성하다는 신화의 가르침은 더 이상 결함을 숨기려 괜찮은 척 위장을 하지 않아도, 못난 나를 혐오하거나 이런 내 모습을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장애도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표식일 따름이다. 이렇게 나의 취약함을 인간다움으로 이해하면 타인의 장애나 결점도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신성한 장애'란 신화 이미지는 상처의 심오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할 뿐 아니라 인간다움의 품을 넉넉하게 키워 준다. 헤파이스토스 삶의 핵심은 상처에 대한 헌신으로 보인다. 지난한 세월, 그는 온 힘을 쏟아 담금질과 망치질로 천품들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천공으로 빚어 냈다(p. 122). 결국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자기 상처나 장애에 대한 헌신이 아닐까? 이런 태도야말로 최선이며 또 삶에 대한 예의 같다. 상처나 장애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추한 게 아니라 특별함이고 신령함이라는 시각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나의 열등함과 추함마저 귀하게 보듬는 진정한 자기 수용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헤파이스토스가 렘노스를 떠나 올림포스에서 제자리를 되찾았듯, 우리 역시 자기 소외와 고립이라는 자기 감금에서 벗어나 본연의 참 터전을 찾아 그에 합당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발터 F. 오토가 말했듯 비로소 찾아온 마음의 자유와 평안, 그 안으로 스며들 관계의 풍요와 삶의 다채로움은 그간 어둠에 싸여 드러나지 않았던 새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림의 맛은 자유와 기쁨일 것이다(p. 123). 신전 박공벽에 새겨진 글귀에서도 '아폴론이 누구인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유행시킨 이 말은 본래 아폴론의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우주와 사물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라는 뜻이다. 결국 '너는 신이 아닌 인간이니 주제 파악하고 분수 지키라'는 명료한 선 긋기다. 정확한 경계 설정 또한 아폴론의 핵심 특질이다. 아폴론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애매하게 선을 넘나들거나 경계 너머에 함부로 침입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신이다(p. 129). ‘영웅은 반만 듣는다.’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니 그러하다. 심층심리학적 관점으로 표현하면, 1장에서 제우스를 탐색하며 이야기한 것처럼 영웅은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른 자들이다. 나는 역사에 기록된 여러 영웅에 대해 개인적인 물음을 품고 있다. 영웅은 왜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할까? 남의 땅을 정복하며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파괴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잔혹성은 영웅의 덕목인가? 어떤 가치관을 지녀야 영웅이 벌이는 행위들을 '영웅적' 이라 칭송할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도 라이오스도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에 속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부자의 공통 취약점은 바로 인내심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재빨리quickly’ 다. 이들은 모호함을 못 견딘다. 만일 라이오스가 친부 살해라는 신탁을 한 번쯤 깊이 되새김질했다면, 즉 그에게 신탁을 듣는 귀가 있었다면 신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들 오이디푸스도, 자신이 아버지를 극복하고 더욱 부강한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은유로서 신탁을 받아(p. 155)들일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혼인을 ‘궁극의 자궁’, 곧 영원한 피안(彼岸)으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숙명으로 깊이 사유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신탁은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향한 거대한 공안(公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본래 신탁의 언어는 마치 꿈처럼 ‘영웅의 귀’가 아니라 '심리학적 귀'를 필요로 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와의 대화를 자신의 심리학적 귀를 훈련하는 기회로 삼았더라면, 또 오이디푸스가 폴리스의 오염에 대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신전에 신탁을 구했더라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다혈질인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깊이 성찰하며, 그 의미가 저절로 앎이 되어 떠오를 때까지 '신중하고 적극적인 수동'의 태도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가족 드라마는 비극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판기를 쓰듯, 즉답만을 구하는 자리에서 신성한 언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나 보다. 델포이 오라클은 사라졌다. 영웅의 후예인 현대인은 '이제 오라클은 침묵한다'고 단정한다. 폐허가 된 델포이 신전처럼 오라클도 그저 과거의 유물일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는 영웅의 귀를 물려받아 오라클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영혼의 감각을 잃고 피상적인 세계에서 무의미하게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내려진 신탁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영웅의 귀가 비극을 초래한다!"(p. 156).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고하는 능력과 동일시한다. 이전의 전체론적, 애니미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를 내세우며 인간 사고의 우월성을 선포한다. 그런데 무의식 탐색에 주안점을 두는 심층심리학의 입장에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설득력이 낮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인간은 비이성에 속하는 감정이나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이며, 특히 삶의 방향이나 중요한 결정은 무의식적 동인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뉴턴도 기계론적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 '과장된 비전'이 현대인 내면의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을 한편으로 인정한다. 이성과 합리를 토대로 하는 '거리 두기'와 '객관성 확보'는 학술적 연구 과정에서 필수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적 진술은 현시대 우리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 뉴턴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모두 아폴론의 후예들이다(p. 165). 헤르메스는 머리에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마법의 지팡이를 든 채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모습으로 유명하다. 동작도 생각도 잽싸고 날렵해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가장 높은 올림포스에서 가장 깊은 하데스의 세계까지, 헤르메스가 가지 못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물처럼 돌아들고 바람처럼 가변적이라 어떤 걸림돌도 장애물로 헤르메스 앞에서는 작동하지를 않는다. 지혜로운지 장난꾸러기인 건지, 영리한지 교활한지, 심지어 골탕 먹고 있는 건지 같이 즐기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할 틈을 주지 않는 샘솟는 위트와 트릭의 소유자다. 그러니 헤르메스를 '규정'하거나 단정'하는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이거다!' 하는 순간 헤르메스는 이(p. 175)미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표현 중에선 ‘도깨비 같다’ 는 말이 헤르메스가 가진 뉘앙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한다. '애매모호'는 헤르메스의 핵심 특질이다. 우리말로 헤르메스를 찾아보면, '도둑'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서술이 많다. 그러나 이는 헤르메스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헤르메스는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도둑질당한 당사자는 그를 받고 만족해 하며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헤르메스에게 직접 '당신은 도둑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뻔뻔하고 당당하게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마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오히려 내가 손해 봤다'며, 상인들이 자주 쓸법한 말도 덧붙일지 모른다.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 무역의 신, 부의 신이다. 잘 알려진 고가의 명품 '에르메스'는 이 신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구매자도 판매자도 헤르메스의 트릭을 존중할 줄 아는 듯하다. 누구도 에르메스 제품의 값어치를 상세히 따지지 않는다. 원가는 얼마인지, 가성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비싸기 때문에 갖고 싶어지는 사람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그에 걸맞은 값을 매겨 사는 이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파는 이는 그 대가로 부를 얻는다. 헤르메스의 트릭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이라도 숨겨져 있나 보다. 헤르메스가 부의 신이 된 데에는 그가 언어의 연금술사, 대화의 신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헤르메(p. 176)스는 흥정과 협상의 달인이다. 헤르메스에겐 그 자체가 놀이 인지라, 정찰제는 헤르메스 영성에 대한 모독이다. 뜨거운 논쟁이 한창인 회의장도, 언어 구사에 있어 고도의 기술적 우아함을 요하는 외교 현장도 헤르메스 신이 관장한다. '말 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또한 헤르메스가 수호신이다(p. 177). 혁명가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을 주로 섭외한다. 소외와 열등의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가져 보지도 내어 보지도 못하던 사람들로부터 우렁찬 함성을 끌어낸다. 이 자체로 해방이다. 소위 '성공'이나 '꿈' 같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부터 차단된 채 좌절과 무기력에 지배당하는 계층의 내면에(p. 238)는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 분노와 공격성이 잠들어 있다. 선동가는 바로 그 자리에 현란한 수사의 화염병을 던져 넣는다. 이는 단지 가난이나 기회 박탈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물기 없는 고목처럼 우울이나 권태로 말라 죽어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마치 좀비처럼 살아 있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많은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그러하고, 억압된 학교에서 나날이 숨 막히는 청소년들이 그러하고, 각종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죽음 같은 외로움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구호의 내용보다는 함성의 강도나 전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훨씬 중요한지도 모른다. 갑갑한 가정을 뛰쳐나와 산과 들에서 광란의 춤을 추던 마이나데스처럼, 강요된 순응으로 질식해 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마이나데스가 된다. 이들에게 '디오니소스 해방자'는 곧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마법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관계를 깨고 체제를 해체할 필요가 있는 자리는 디오니소스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해야만 지킬 수 있다. 개성이 억압되고 표준화된 단정과 예의가 교리처럼 강요되는 곳에는 '착해야 돼' '말 잘 들어야지' '순응해'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이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혁명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디오니소스 해방자는(p. 239) '디오니소스 독재자' 없이는 오지 않는다. 잔뜩 술에 취해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난 다음날 아침, 심신에 멍이 든 가족의 얼굴과 부서진 살림살이가 나뒹구는 씁쓸한 풍경을 마주한다. 흥분한 관중들이 격렬히 충돌한 경기장에는 치우고 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와 파괴의 잔해가 널려 있다. 유리창을 깨고 건물로 난입해 무법천지 활극을 벌인 자들은 '폭도들'이라는 낙인과 함께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이 모두 어제의 해방자가 독재자로 탈바꿈하는 순간들이다. 역사는 혁명가가 독재자로 바뀌는 순간을 '부패'나 '타락'이라 부른다. 혁명의 상상력에는 혁명 뒤에 올 독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보다. 자유와 평등과 해방의 깃발을 치켜드는 혁명은 분명 디오니소스 신의 영감 하에 일어난다. 선동가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혁명 이후에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만이 통치하는 것을 최선이라 여긴다. '영구 집권'은 독재와 폭압에서 빠지지 않는 구색이다. 이러니 지구상에서 혁명이 거듭 되풀이되나 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화학자의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보자. 소위 문명화된 현 사회에,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심리적 평안을 위협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왜 다시 표면으로 올라 와 세계 곳곳을 위협하는가? 법을 어기고 질서를 파괴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집단무의식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디오니소스는 정통을 위협한다. '정통' '정통주의'라(p. 240)는 뜻의 영어 'orthodoxy'는 '곧은' 올바름'을 뜻하는 그리스어 'ortho'와 '생각' '견해'를 뜻하는 'doxy'가 결합하여 탄생한 말이다. 사회가 정한 '바른 생각'에 동조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필연적으로 그 틀을 벗어나 '다른 생각heterodoxy' 을 품는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디오니소스는 후자를 위한 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통 수호는 귀족들의 가치였고, 이들은 주신으로 제우스나 아폴론을 섬겼다. 여성과 농민과 노예의 주신은 물론 디오니소스다(p. 241). 기꺼이 하강하는 사람만이 풍요를 누린다 하데스는 그림자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신이라 했다. 하데스의 세계에서 놀라운 통찰을 얻은 카를 융은 '구원의 열쇠는 그림자 속에 있다'고 선언했다. 인류가 '제임스 웹' 이라는 괄목할 망원경으로 우주라는 미지를 탐사하듯, 내면 세계 또한 안으로의 또 깊이로의 탐험이 절실한 때다. 특히 우리 의식에서 제일 멀리 유배시킨 하데스에 구원의 열쇠가 놓여 있다면, 네키아는 택해야만 할 필연이자 구원의 길이다. 융은 자신의 탐색을 '내면 여정inner journey'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여정journey out'이라고 말했다.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없음을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다. 궁극의 자리에서 안과 밖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철저하게 무시해 온 우리의 가까운 미지, 각자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데스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p. 291). 어떻게 하면 하데스의 부로 영혼이 비옥해질 수 있을까? 영웅이고자 매진해 온 현대인이 남겨진 삶을 영혼의 돌봄으로 갈무리하고자 할 때, 즉 자아에서 자기로 삶의 중심을 이동하고자 할 때 하데스는 그를 위한 필연적인 길이자 방향이고, 허기진 우리 영혼의 자양분임을 앞선 선각자들이 삶으로 드러내 보여 주었다. 마침내 저마다 자신의 '마음 오디세이아'를 시작하려 할 때,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와 현대의 융이 뱃사공 카론이 되어 하데스로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내면 깊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자를 만나 보이지 않는 운명의 그물을 가시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의 지도는 이미 그려져 있다. 먼저 탐색했던 선조들의 선물이다. 여정에 오르면 수많은 난관을 맞닥뜨리고, 난파되고 표류할 것이다. 삶에 쉬운 길은 없지만, 나만의 길은 있음을 믿는다. 모험으로 가득할 나의 길이 결국 풍요의 길이자, 영예로운 길이고, 또 유일한 길이다(p. 292).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실시간 책소개 기사

  • 【양대식 목사 칼럼32】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영국을 다녀와서)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 (영국을 다녀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GMS 세계 선교회 영국 3개 지부 수련회 인도 차, 영국을 다녀왔습니다(7월 27일 - 8월 5일). 영국에 머무는 동안 선교사님들을 격려해주고, 설교와 특강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머무는 기간, 재영 총신 동문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설교했고, 주일은 영국 주찬양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훌륭한 선교사님들도 많지만, 두 가정의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헌신, 친절에 감동을 받았고, 제 마음이 기뻤습니다. 하나님만 기쁘게 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K. 선교사님은 이스라엘과 프랑스에서 선교 사역을 했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선교하고 목회에 열정적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역자들같이 열심히, 부지런히 선교 사역하고, 이민 목회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 두 부부가 영국의 이민 교회를 섬기고,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위의 선교사나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선교사님이십니다. 또한 J.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친절, 섬세함과 헌신, 진실성에 감동 받고, 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체코에서 열린 GMS 유럽 선교 대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번에 영국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진실되고 정성 되이 한결같이 섬겨주심에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섬겨보려고 노력하는데 J. 선교 사님 부부의 섬김은 지금도 기억되고 앞으로 계속 인간관계 맺고 싶어집니다. 섬기기 힘든 시대인데, 섬기시는 주님처럼 지금도 섬기고 섬김받으면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줍 니다. 큰 자는 섬기는 자이고, 리더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계산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사랑하고 섬기면 감동을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삶에 큰 지혜입니다. 영국에서 만난 두 부부의 섬김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J. 선교사님의 아내, K. 선교사님의 아내 선교사의 섬김, 친절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관계 잘 맺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7
  • 【북토크437】 삶을 어루만지는 고전들
    공부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의 학인들이 저마다 꼽은 ‘인생 고전’을 들고, 어떻게 이 고전과 만나게 되었는지, 이 만남이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었는지 이야기하는 책. 오래된 미래인 동양고전 장자와 주역, 맛지마니까야와 법구경 등의 불경은 물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등과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고민이 펼쳐진다.-예스24 아직 읽지 못한 고전들이 많다. 젊을 때는 다 읽겠다는 욕심을 냈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고전은 저 멀리 있다. 남은 삶 동안 고전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다. 세월과 인종을 이겨낸 책들이기에. 도덕의 계보학 명랑한 중년을 위해-최소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서문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반갑고도 놀라웠다. 요즘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고민은 남편의 은퇴, 딸의 독립, 시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원 등의 일들이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다. 니제는 우리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집(p. 28)으로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진심으로 마음을" 쏟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자신의 직업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은 무언가를 빨리, 많이, 오랫동안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이며, 무언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러니 우리는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돈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내 삶의 궤적 또한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임신 6개월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이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딸이 특목고에 들어갈 때는 살맛이 났다. 재테크로 투자한 편드가 반 토막이 될 때는 밤잠을 설쳤고, 딸이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무기력과 불안에 시달렸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남편이 2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모았고,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이만하면 나름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나를 위한 인생 후반기를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뭔가 혹하고 빠져나간 것처럼 큰 상실감이 느껴졌고, 뭘 해도(p. 29) 채워지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니체는 우리가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열 두 번의 종소리”에는 한 번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더 이상 집으로 가져갈 것이 없어지자 상실감, 헛헛함, 불안에 휩싸이는 내 모습이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돈으로 채웠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것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많은 것들을 소외시키는 한없이 빈곤한 삶이었다. 현재가 좀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충만함, 의지, 용기, 확신, 미래가 점점 위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소진 시키는 위기의 삶이다. 니체는 내가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적 가치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도덕은 원래부터 주어져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보편적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고,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도덕 또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그러니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얽매이는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도덕을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니체(p. 30)는 노예 도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들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생겨났으며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따져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도덕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그 보답으로 삶의 '명랑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제 청년과는 다른, 새롭게 창조된 중년의 명랑함을 위해 나 자신의 '도덕의 계보'를 밝혀 보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안내자인 니체와 함께(p. 31). 장자 쓸모없음의 큰 쓸모-이경아 "승진이나 상은 남한테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라.”-내가 항공사에 입사하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의 욕망과 내 욕망이 만나 승진을 위해 달렸다. 승진을 하면 월급 인상 외에 권력이 생긴다. 비행기 매니저를 하게 되면 평가권도 갖고, 그 비행에서는 최고 권력을 갖는다. 대형기일수록 더하다. 그래서 다들 빨리 승진해서 매니저가 되고자 한다. 회사는 승진을 미끼로 충성을 요구한다. 승진을 하면 다음 승진을 위해 또 달린다.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본다. 소모품 중 품질 좋은 소모품이 되라며 충성을 요하는 건 기본이고 성형과 몸매관리도 자기관리라며 독려한다. 그러다 기내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병가(p. 60)가 길어지면 그 직원은 쓸모가 없어지고 회사의 지출을 늘리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회사는 그런 불편함을 당사자가 느껴 그만 두도록 압박을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도 윗선의 필요 에 따라 같은 처지가 된다. 더 윗선은 오너의 마음에 달렸다. 승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체력에 한계가 왔고, 더는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기 싫었기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회사가 나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싫었는데도 여전히 삶은 돈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당당하고 남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백수생활 시작 후 처음 한 일도 재건축 관련 일이다. 그곳은 회사보다 더했다. 오직 돈이었다. 청렴하다고 믿었던 현직 교수인 조합장이 뇌물 관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것을 보며 그곳을 떠났다. 유용성에 대한 내 전제는 의심하지 않고 남들만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삶 말고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사당목인 상수리나무를 예를 들어 무용지용을 역설한다. 목수 석이,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이고 둥치가 백 아름 정도나 되는 사당목을 보며, 제자에게 배로 만들면 가라(p. 61)앉고 관을 짜면 곧 썩을 나무인데 그 덕에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당목이 석의 꿈에 나타나 "나를 무엇에 비교하는지? 열매를 맺는 재능이 있는 나무는 그 재능 때문에 가지가 꺾이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쓸모없기를 바라왔는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당신 덕에 완전히 그리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였다"고 이야기한다. 또 둘 다 하찮은 사물인데 어찌 상대방을 하찮다고 하며,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쓸모없는 나무 운운하느냐고 반문한다. 장자는 삶을 삶 자체로 보라고 한다. 무엇이 진정 생명을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장자가 말하는 큰 쓸모는 양생(養生)이다. 이 사당목은 남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재능이 없기에 오히려 천수를 누리고 있다. 돈이 없다고 비루한 삶인가? 돈이 많으면 고귀한 삶인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돈이 많아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나? 부자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삶을 중독이나 폭력으로 몰고 가나? 장자는 내가 쓸모없음의 유용성에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난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 일상은 무시하고 살았다. 돈을 버는 것도 일상을 살기 위한 일인데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들을 절대화하며 소중한 일상과 내 몸을 제물로 삼았다. 돈이라는 작은(p. 62) 것으로 큰 내 삶을 평가받고자 했다. 이제 장자를 통해 새로운 삶의 비전을 만나 굳어 버린 전제들을 하나하나 깨며 자유로워지고 싶다(p. 63). 말과 사물 '당연히'와의 결별-전현주 과연 『말과 사물』은 놀라운 책이었다. 진리는 연속적으로, 진보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인식의 틀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던 그것은 여하튼 '우리 시대'의 진리일 뿐이다! 이럴 수가, 내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무엇이었나. 무지에서 진리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사회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 역사 아닌가. 그런데 각각의 시대적 지반 위에 세워진 진리'들'이라니, ‘단절’의 역사라니! 『말과 사물』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말과 사물』에서 이 새로운 진리를 뒷받침해 줄 증거들을 발(p. 174)견할 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기분이 있다. 그런데...그렇게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리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시대 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또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거지? 헐! 내가 푸코(Michel Foucault)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니. 푸코에게는 각각의 앎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서 있는 지반에 질문을 던진다. 각 시대가 자신들만이 구성하는 진리를 갖듯, 푸코 역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풀어 헤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며 완전히 다른 역사를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앎의 길을 내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 바로 여기가 내 공부자리여야 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며 답답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 일로 외국에 살던 시절 집에서는 영어식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성인이 되면서는 ‘인간’ 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놀고 먹는 잉여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p. 175)해 필사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보험을 들었다. '생명'은 당연히 죽음과는 반대편에 있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외에도 나는 수많은 '당연히'들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분명 힘들고 혼란스러웠음에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니까. 푸코를 만난 이후 나의 '당연히'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당연히'들이 구성된 지반을 잘 보여 주었다. 그 지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좇아 사느라 힘들었었다.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조심 조심 '당연히'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네. 괜히 피곤하게 살고 있었네. 그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되겠군. 신난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섰다. 편안함 위에, 푸코를 새로운 진리로, 또 다른 당연함으로 붙잡으면서 말이다. 이는 공부하기 전에 있던 '당연히'를 다른 '당연히'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는 고민을 배우는 대신, 나를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용만 취하고 있었다. 나아가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식을 찾아냈다. 배운 내용을 진리로 받(p. 176)아들이기. 그것으로 나의 편안해진 삶을 계속 유지하기. 『말과 사물』은 이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든다. 편안함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자신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푸코의 공부가 배우고 싶었다. 나의 ‘당연히’를 뿌리째 뒤흔드는 공부를. 잘 가, ‘당연히’~. 나는 이제 푸코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겠어(p. 177).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6】 의사는 누구인가?
    이 책은 매일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부딪치고 목격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의학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또 의사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얼마나 고뇌하는지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총 3부에 걸쳐 의료현실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들, 즉 환자와 의사를 똑같이 보여주며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과 근본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한다.-예스24 생각해 보면 의사는 업보같다. 머리가 좋아 공부 잘했기에 의사가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안정된 수익을 얻지만 평생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나 하고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병원은 앞으로도 아플 때나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기를 바래본다. 의사란 참 기이하고 또 여러 면에서 겁나는 직업이다. 위험부담이 높은데도 엄청난 재량권이 주어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관을 삽입하고, 화학적• 생리적 •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무의식상태로 몰아넣고 몸을 열어제키기도 한다. 물론 전문인으로서 우리의 노하우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서 한다. 하(p. 12)지만 좀더 가까이, 잔뜩 찌푸린 미간, 의혹과 과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까지도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마도 의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지럽고, 불확실하고, 예측불허한지 보게 될 것이다.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이다. 이 점은 아직도 나를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의학과 그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과, 과학이 질병과 고통에 맞서 싸우도록 우리에게 준 수단들, 즉 여러 가지 검사와 의료기기, 약품, 수술 등을 떠올 린다. 그러한 것들이 의학이 이루어낸 사실상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는 좀체 보지 못한다(p. 13).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외과에서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 가며 얻어진다. 테니스 선수나 오보에 연주자나 하드드라이브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일에 능숙 해지려면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학에서 연습 대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점뿐이다(p. 30). 이러한 종류의 소모는 의외로 흔하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도 잘 견디고 강하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혹독한 수련기간 동안 약골들은 다 추려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여러 증거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연구조사에 따르면 알콜중독은 다른 집단만큼이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흔하다고 한다. 의사들은 처방용 마약이나 안정제에 중독되기 쉽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전체 노동연령층 인구의 약 32%는 한 가지 이상의 심각한 정신질환을 보인다. 주로 심한 우울증, 조증, 공포증, 정신이상, 중독증 같은 질환들인데, 그러한 질환이 의사들에게서는 덜 나타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물론 의사들도 병들고, 늙고, 사명감이 없어지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정신이 산란해지기도 하며,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소홀하게 되거나 흔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문 제의사들을 비정상분자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40년간 의사생활을 하면서 한두 해 정도 고전한 시기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일 것이다.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라도 현직 의사 중 3~5%는 사실상(p. 129) 의료행위를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추정된다. 의사사회에 그러한 의사들을 처리하는 공식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런 의사의 동료들은 즉각적으로 합심해 시술을 못하게 하고 의사 면허당국에 보고하여야 하며, 보고를 받은 당국은 그들을 처벌하거나 의사사회에서 제명시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조직사회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p.130).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5】 체크리스트는 쉬우면서도 유익하다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 그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한 해결책으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체크리스트의 사용이 업무의 효율뿐만 아니라 일의 성공과 실패, 나아가 사람의 생사도 좌우한다고 말한다.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실수를 막아준다. 불완전한 기억력과 정신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한 사람의 기억력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아온,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실수들이 때로 뼈아픈 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체크리스트는 바로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로 외과의사인 저자는 수술실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그가 고안한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전 세계 8개 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동안 합병증 비율은 36%가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 그 결과,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는 현재 WHO에 공식 채택되어 세계 각지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체크리스트는 끔찍한 사고를 막아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인 프로젝트를 보호해준다. 체크리스트는 단지 ‘지켜주기만’ 하는 방어기제가 아니다. 끔찍한 재난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생명을 구해내며, 금융위기도 피할 수 있게 하고, 한 개인을 성공으로도 이끌어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예스24 나는 실제로 여러 경우에 체크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의학이든 그 무엇이든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유익하다. 단순한 것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현재 이 책은 품절됐다. 우리는 초전문가의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일류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임상의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전문가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요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이 종사하는 특수한 분야의 복잡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상황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수술보다 더 극도로 전문화된 분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수술실은 집중치료실에서 하는 업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이다. 수술실에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마취의들이 있다. 그런데 마취의들조차 여러 분과로 나뉜다. 소아전문 마취의, 심장전문 마취의, 출산전문 마취의, 신경전문 마취의 등(p. 42) 여러 마취의들이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들도 전공 분야에 따라 분화되어 있다. 외과의 또한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오른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와 왼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가 따로 있다는 농담을 하고 나서 정말로 그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볼 정도다. 나는 일반외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상 일반외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궁벽한 시골 병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 사람의 외과의가 모든 수술을 해낼 수는 없다. 나는 종양학에 집중해서 환자를 보기로 결심했지만 이조차 너무 광범위했다. 그래서 응급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외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내분비샘암 제거에 대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쌓아왔다. 한때 아주 간단한 수술에서조차 사망위험률이 두 자리 숫자였던 적이 있었다. 수술 후 환자의 회복 과정이 길었고, 장애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급격하게 외과 수술이 전문화되면서 수술 능력과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줄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7번 수술을 한다. 외과의들은 매년 5000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한다. 너무 많은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로 인한 피해 역시 크다. 미국에서는 매년 15만 명 이상의 환자가 수술로 인해 사망한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3배가 많은 수치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수술로 인한 사망과 주요 합병증의 절반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극도로 전문화되어서(p. 43) 그에 따른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실수할 것이다. 실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학이 거둔 눈부신 성공 뒤에는 많은 실수와 실패가 존재한다. 의학계는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의 전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초전문가까지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 의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얻었다(p. 44). 1935년 10월 30일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미 육군항공대에서 군에 차세대 장거리 폭격기를 공급하고자 경합을 벌이던 항공기 제조업 자들을 대상으로 비행 시합을 열었다. 사실 그건 시합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초반 평가에서 보잉의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합금 모델 299기가 다른 항공기 제조회사들, 즉 마틴과 더글라스를 제치고 완승을 거둔 상황이었다. 보잉의 폭격기는 육군이 요청했던 것보다 5배나 더 많은 폭약을 탑재할 수 있었고, 이전에 나온 폭격기들보다 훨씬 빠르며, 2배나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시애틀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던 모델 299기를 본 한 기자는 '하늘의 요새'라는 표현을 썼고, 그것이 그 폭격기의 별명이 되었다. 군 역사가인 필립 마일링거에 따르면 그 비행 시합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육군에서는 그 항공기를 최소 65대 주문할 계획이었다(p. 47). 이날 군 고위층과 항공회사 중역들이 모여 모델 299기가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델 299기는 날개 길이가 31미터에 달하고, 날개에서 그때까지 일반적이던 쌍발 엔진이 아닌 4발 엔진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주 날렵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부드럽게 이륙해서 100미터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며 한쪽 날개에 의지하더니 그대로 폭발해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조종사인 육군 소령 플로이어 힐을 포함해 승무원 5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 결과 기계 결함이 아닌 '조종사의 실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델 299기에는 4개의 엔진과 접어 넣을 수 있는 착륙 장치, 날개 플랩, 속도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전기 트림 탭(trim tab), 비행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유압 조정 장치로 조정하는 정속 프로펠러를 포함해 조종사가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장치들이 아주 많았다. 힐은 이 모든 장치들을 조종하느라 승강타와 방향타의 새 제어 장치를 깜빡 잊고 해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모델 299기는 한 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한 사람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비행기’였던 것이다. 육군항공대는 더글라스의 좀 더 작은 폭격기를 시합의 승자라고 발표했다. 보잉은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하지만 육군은 모델 299기를 테스트 비행기로 몇 대 구입했다. 육군에 이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p. 48).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이 모여 어떻게 이 폭격기를 조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모았다. 그들은 모델 299기를 모는 조종사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훈련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육군항공대의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 가운데서 최고였던 힐 소령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조종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 덕분에 이후 항공술은 고도로 발달했다. 초기 비행 시대에는 비행기를 상공에 띄우는 일이 불안하기는 해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비행이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빼는 것처럼 단순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때는 체크리스트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성능 좋고 복잡한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조종이 어려워 졌다. 비행사가 아무리 노련한 전문가라고 해도 한 사람의 기억력에만 의존해 조종하기에는 복잡한 장치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은 한 장의 색인카드에 모든 내용이 들어가는, 짧고 단순하며 핵심 사항만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을 단계적으로 체크할 수 있었다. 체크리스트에는 모든 비행사들이 알고 있는 사항과 꼭 실시해야 할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브레이크를 풀었는가, 계기가 제대로 세팅 되었는가,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가, 승강타 제어 장치가 풀려 있는 가 등 간단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조종사들은 모델 299기로 총 180만 마일을 비행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육군은 모델 299기를 1만 3000대 더 주문했고, 이 폭격기에는 B-1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p. 49)제 이 거대한 야수를 다를 수 있게 된 미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보이면서 나치 독일에 치명적인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p. 50).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일부 비행 조종사들은 아무리 신중하게 고안된 준비 절차라고 해도 콧방귀를 끼어대며 무시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난 비행하면서 한 번도 문제가 없었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냥 가. 다 괜찮을 거야” 혹은 "내가 캡틴이야. 이건 내 비행기야. 너 희들이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도 자주 했을 것이다(p. 238). 1977년에 일어난 테네리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고는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안개가 낀 카나리아제도 활주로에서 보잉 747 여객기 2대가 고속으로 충돌해 비행기에 탑송한 583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대인 KIM 항공편의 기장이 활주로에서 이륙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관제탑의 지시를 오해하고, 관계의 지시 내용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조종사의 말도 무시 했다. 사실 그때 같은 활주로의 반대편에서 팬암 여객기가 먼저 이륙하고 있었다. "팬암 여객기가 이륙 승인을 받은 거 아닐까요?" 부조종사가 기장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받았다니까." 기장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계속 활주로로 나아갔다. 기장이 틀렸다. 부조종사는 이 점을 즉시 간파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한 팀이 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부조종사는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장을 멈추게 해서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기장은 막무가내로 계속 밀고 나갔고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로토콜을 충실하게 따르면 경직돼 보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따르면 아무 생각 없는 로봇처럼 체크리스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느라 밖을 내다보고 그들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면 실상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고, 일상(p. 239)적인 일들(예를 들어, "승강타 제어 장치가 세팅이 됐나?" "환자가 항생제를 제때 맞았나?" "매니저들이 모두 주식을 팔았을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했나?" 등)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주며 중요한 일("어디에 착륙해야 할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서 내가 본 예리한 체크리스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이 하나인 세스나를 몰다가 엔진이 작동되지 않을 때 적용하는 것으로 브리티시에어라인과 조건이 같다. 다른 점은 조종사가 한 명뿐이란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의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 연료 차단 밸브가 오픈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예비 연료 펌프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6단계로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다. 이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라'가 그것이다. 조종사들은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추가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생각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깜박 잊어버릴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따른다고 경직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크리스트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p. 240). 다른 수많은 분야도 사정은 같다. 우리는 교육계, 법조계, 정부 프로그램, 금융계, 혹은 다른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나 실패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실수의 패턴을 찾지도 않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안하거나 개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핵심 포인트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실패들, 즉 빠뜨리고 지나간 세부적이고 미묘한 사항들, 못 보고 지나친 정보와 터무니없는 실수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개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군 조종사들이 반짝거리는 신형 모델 299 폭격기(B-17, 너무 복잡해서 어떤 인간도 조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p.250)계)를 보면서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 이 조종사들 역시 ‘좀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그 비행기의 추락 사고를 ‘실력이 부족한’ 조종사의 실패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을 받아 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의 단순함과 진가를 알아 차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사실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주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을 지닌 사람들조차 계속 같은 공을 떨어 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패턴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 체크리스트를 써보라(p. 251).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8-04
  • 【북토크434】 가끔은 처세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가 품격을 만든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남긴 삶의 지침서인 〈The Art of Worldly Wisdom〉은, 시대와 세계를 초월해 사랑받은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에 관한 짧은 격언과 조언 300여 개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담긴 300여 개의 격언과 해설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우정, 윤리, 대화법, 신중함,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는 그의 조언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판본은 스페인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한 조셉 제이콥스의 뛰어난 번역을 바탕으로, 본문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격언과 해설만을 엄선하여 일상 속 통찰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이 책은 오늘날 AI 시대 정보 과잉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답을 준다. 실용적인 지혜는 물론, 자기관리, 인간관계, 리더십, 상황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선택의 중요성 등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서다.-예스24 흥미롭게 읽은 처세술이다. 가끔은 이런 종류의 책도 도움이 된다. 윗사람을 이기는 것은 피하라 모든 승리는 증오를 낳으며, 윗사람을 상대로 한 승리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론 치명적이다. 우월함은 항상 미움을 사며, 하물며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한층 더 그렇다. 당신이 평범한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면 신중하게 그것을 감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잘생긴 외모라도 일부러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하여 감출 수 있다. 어떤 윗사람들은 당신이 운이 좋거나 성격이 좋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 하지만 '좋은 판단력' 만큼은 누구라도, 특히 군주라면 당신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조언할 때에는 그들이 찾지 못한 것을 안내한다기보다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해야 한다. 별들이 이 기술 을 잘 알고 있다. 별들은 행복한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보여준다. 별들은 태양의 자녀이며 태양처럼 빛나지만, 결코 태양의 광채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p. 27). 지식과 선의 지식은 선의와 함께 할 때 성공을 지속시킨다. 훌륭한 지성이지만 악의와 결합한 경우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괴물을 낳았다. 사악한 의지가 결합되면 모든 탁월함은 독이 되고 거기에 지식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교묘한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파멸만을 낳는 우월함은 비참한 우월함이고 분별력 없는 지식은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p. 38). 행운을 얻는 기술 행운에도 법칙이 있다. 현명한 사람에게 행운이란 전적으로 우연만은 아니다. 주의 깊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운명의 문 앞에 당당히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더 현명한 이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영리함과 대담함을 활용하여 앞으로 밀고 나아가고, 자신의 미덕과 용기로 날개 짓하며 행운의 여신에게 다가가 그녀의 호의를 얻어낸다. 진정한 철학의 잣대로 보면 심판자는 미덕과 통찰력이다. 왜냐하면 행운이나 불운은 결국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43). 사람마다 가진 약점을 찾아라 이것은 타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이는 결단력 보다는 더 많은 노련함을 요한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의지는 각자의 동기가 있고 동기는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간은 우상 숭배자다. 어떤 이는 명성을, 어떤 이는 사리사욕을, 대부분은 쾌락을 우상으로 삼는다. 노련함이란 바로 이러한 우상들을 파악하여 그런 우상을 지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알게 되면, 당신은 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열쇠를 쥔 것과 같다. 그들의 원초적 동기를 활용하라.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의 본성 중 고귀한 부분보다는 가장 저열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잘 조직된 성향보다는 뒤죽박죽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 사람의 지배적인 열정을 추측하고, 한마디로 그것에 호소하며, 유혹으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의 자 유 의지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p. 48). 생각은 소수처럼 하고 말은 다수에 맞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다수의 생각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오히려 위험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일은 오직 소크라테스처럼 특별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상대는 모욕으로 느낀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진짜 생각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생각에 반할지라도 대중의 목소리로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을 반박하지 않으며 반박당하는 것도 피한다. 마음속에서는 판단이 서 있지만, 그걸 아무 데서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현명한 사람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며, 은밀하게 소수의 적절한 사람 앞에서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p. 65). 명예와 관련된 문제는 애초에 피하라 이는 신중한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멀리하고 항상 신중함이라는 중간 지점에 머물기 때문에, 그 신중함을 뚫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 문제가 생겨 거기서 훌륭하게 벗어나는 것보다 처음부터 그런 문제를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명예 문제는 우리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거기서 승리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의 명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명예를 위한 싸움에 쉽게 뛰어들곤 한다. 하지만 이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명예 문제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아예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싸움을 거절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p. 69). 자존심을 잃지 말라 그러나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지도 말라. 당신의 올바른 감각이 곧 당신 정직함의 진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어떤 처벌보다도 스스로에게 내리는 엄격한 판단을 더 중요한 규범으로 삼아라. 보기 흉하거나 부적절한 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권위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점을 늘 기억한다면, 세네카가 말한 '가상의 가정교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p. 72). 이를 드러낼 줄 알아라 사자가 죽은 뒤에는 토끼라도 갈기를 뽑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용기란 그런 우스운 장난이 아니다. 처음 한 번 물러서면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밀려 결국 마지막까지 내주고 만다. 초기에 단단히 버텼다면 피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생을 하게 된다.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보다 더 고귀하다. 그것은 신중함의 칼집에 꽂힌 채 언제든 뽑아 쓸 준비가 된 정신의 점이다. 높은 지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도 바로 이 도덕적 용기다. 육체적 겁쟁이보다 도덕적 겁쟁이가 훨씬 더 비천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생기가 빠지고, 결국 게으름과 무기력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현명한 자연은 벌에게 꿀의 달콤함과 침의 날카로움을 사려 깊게 결합해 놓았음을 기억하라(p. 76). 마무리를 잘하라 행운의 집에서는 기쁨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슬픔의 문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마무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구에서 받는 박수보다 품위 있는 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운이 나쁜 사람들에게 흔한 일은,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비극적인 경우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때 누구나 받는 그 박수가 아니라, 떠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전체적인 인상이다. 인생에서 '앙코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운의 여신도 대개 누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지는 않는다. 찾아 오는 손님은 따뜻하게 맞이해도, 떠나는 손님에게는 대체로 차갑기 마련이다(p. 80).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 것보다 규칙을 얼마나 성실히 지켰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최종적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보다, 결과가 좋았는지만 본다. 목적을 이루었다면 잃을 것은 없다. 결말이 좋으면, 과정이 다소 미흡했더라도 모든 것이 용서되고 빛난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결과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면, 규칙을 벗어나는 것조차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p. 87). 항상 농담만 하지 말라 지혜는 진지한 순간에서 드러나며, 가벼운 재치보다 훨씬 더 값지게 평가된다. 늘 농담할 준비만 되어 있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농담만 일삼는 사람은 거짓 말쟁이와 닮았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를 믿지 않듯, 농담만 하는 사람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늘 거짓을, 다른 쪽에서는 늘 농담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신이 언제 진지하게 판단하고 말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농담은 결국 재미마저 소진시킨다. 많은 이들이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얻지만, 그 대가로 '분별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잃는다. 농담은 잠시 머물러야 하고, 진지함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p. 97). 지위를 과시하지 말라 개인적 매력으로 두드러지는 게 아니고, 위엄으로 남을 압도하려 드는 것은 더 불쾌감을 준다. 스스로를 중요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태도는 미움을 사기 쉽다. 사람들의 질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데 말이다. 존경을 더 많이 얻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덜 얻게 된다. 존경은 타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직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가 없으면 직무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위엄은 유지해야 한다. 존경심을 강요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라. 자신의 직위가 지닌 위엄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없음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며 그 직위가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면, 우연히 얻은 지위나 배경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재능 때문에 존중받도록 하라. 실제로 왕들조차도 자신의 왕좌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질 때문에 존경받기를 원한다(p. 125). 타인의 치부를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남의 나쁜 평판에 관심 두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미 자신의 명예가 흐려졌다는 신호다. 어떤 이들은 남의 오점을 들춰내며 자신의 흠을 가리거나 씻어내려 한다. 혹은 거기서 위안을 얻지만, 그것은 바보들만이 찾는 가장 비겁한 위안일 뿐이다. 남의 험담을 파헤칠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에게 흠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덜 알려진 사람의 경우 결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잘못을 기록하는 결점 기록관이 되지 말라. 그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며, 인간적인 심장을 잃은 자만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p. 144). 어리석음은 저지름이 아니라 감추지 못함에서 드러난다 당신의 욕망은 봉인하고, 결점은 더욱 철저히 감추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현명한 이는 그것을 덮고 어리석은 이는 떠벌린다. 평판은 드러난 행위보다 오히려 감춰진 것들로 결정된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면, 최소한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위대한 인물의 실수는 일식이나 월식과 같다. 빛이 클수록, 그 그늘은 더 많은 눈에 띈다. 친구라 해도 자신의 치부를 쉽게 드러내지 말라. 가능하다면,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질 만큼 감추는 편이 낫다. 이를 돕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혜가 있다. 바로 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 145). 말할 때 주의하라 경쟁자 앞에서는 신중하게 말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는 품위 있게 말하라. 말을 덧붙일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마치 유언장을 작성하듯 말하라. 말이 적을수록 시비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줄어 든다.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말조심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래야 정말 중대한 순간이 닥쳤을 때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깊은 침묵과 비밀을 지키는 힘에는 신성에 가까운 광채가 깃들어 있다. 경박하게 입을 놀리는 자는 머지않아 추락하거나 실패하게 된다(p. 180). 동정심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불행한 이의 운명과 엮지 마라 한 사람의 불운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 사람은 대개 많은 이들의 불행을 발판 삼아 행운을 누리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들에게는 사람들의 선의를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는, 즉 쓸모없는 호의로 그들의 불운을 보상해 주려 한다. 그래서 잘나갈 때는 미움을 받던 사람도, 역경에 빠지면 순식간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도 한다. 상대의 성공을 시기하며 날을 세우던 복수심은, 그가 추락하는 순간 가련한 이를 향한 동정심으로 뒤바뀌고 만다. 그러나 운명이 카드를 섞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라. 늘 불운한 사람들의 곁을 맴도는 이들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이 날며 행복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새 그들 곁에서 함께 비참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 받는 자와 운명을 함께하는 일은 고귀한 영혼의 증거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아니다(p. 183).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친밀함을 피하라 타인에게 허물없이 대하지도 말고, 타인이 당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허락하지도 마라. 격식을 무너뜨리며 친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지닌 영향력의 우위, 곧 존중의 근거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밤하늘의 별이 광채를 유지하는 까닭은 사람들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적인 것은 언제나 예의와 거리를 요구한다. 지나친 친밀함은 필연적으로 경멸을 낳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낼수록 사람은 가진 것이 적어 보인다. 격식 없는 교류 속에서는 침묵과 절제가 가려주었을 결점들까지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밀함은 미덕이 아니다. 윗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위험해지고, 아랫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품위를 잃는다. 특히 무지한 사람과는 결코 친밀해지지 마라. 그들은 당신이 베푼 호의를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로 착각하고, 서슴없이 무례하게 굴 것이다. 지나친 친밀함은 천박함과 맞닿아 있다(p. 197). 마음의 평화가 곧 좋은 인생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면,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라.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관찰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다툼 없는 하루는 근심 없는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평온하고 즐거운 삶은 마치 두 번 사는 것과 같은 풍요로움을 선사하니, 이것이 바로 내면의 평화가 주는 진정한 열매다.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들을 가볍게 흘려보낼 줄 아는 이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다. 모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 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는 없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 쓰며 괴로워하는 것과, 정작 마음을 쏟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어리석은 태도다(p. 212). 가치를 알아보는 곳으로 옮겨 가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때로는 익숙한 터전을 떠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향은 때때로 천재들에게 계모처럼 냉대한다. 시기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움트며, 사람들은 당신이 이룬 위대한 성취보다는 당신의 미미했던 시작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먼 곳에서 온 평범한 물건조차 귀하게 대접받고, 낯선 땅에서 건너온 색유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미지의 곳에서 온 것은 본질적으로 존중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지닌 신비로움과 함께, 이미 완성된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한때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받던 인물이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존경받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외국인들은 그가 먼 곳에서 왔기에 존경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은 그가 이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존경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원 구석에 굴러다니던 평범한 나무토막이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제단 위에서 숭앙되는 그 나무 조각상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다(p. 218). 항상 갈망할 무언가를 남겨두어라 모든 것이 충족된 완벽한 행복은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육체가 호흡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열망해야만 한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흔히 환멸과 불만뿐이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태울 '미지의 영역'이 항상 남아있어야 한다. 지나친 행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을 돕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갈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남는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다. 이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소멸하는 순간, 공포는 고개를 드는 법이기 때문이다(p. 220). 쉬운 일은 신중히,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다루라 이는 쉬운 과제 앞에서 자만심이 피어나지 않도록 하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지레 겁먹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업무의 실패는 흔히 '이미 다 된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꾸준한 노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조차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크고 복잡한 일을 마주했을 때는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여 압도당하지 말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어려움을 미리 헤아리려 하면, 오히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다(p. 224). 무관심이라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하라 원하는 것을 얻는 기발한 방법 중 하나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그림자와 같아서, 쫓아가면 멀어지고 외면하면 따라오는 법이다. 또한 무시야말로 가장 정교한 형태의 복수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글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러한 방어는 언제나 논쟁의 흔적을 남기며, 상대를 벌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는 위대한 사람과 싸우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만약 뛰어난 상대가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망각보다 더 혹독한 복수는 없다. 망각은 그들을 보잘것없음이라는 먼지 속에 완전히 묻어버린다. 대담함을 가장한 사람들은 위대한 것을 무너뜨리면 그것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추문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추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된다. 설령 이긴다 할지라도 명성에는 얼룩이 남게 되고, 상대에게는 만족감만 줄 뿐이다. 이 작은 얼룩의 그림자는 명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 빛을 흐리게 만든다(p. 225). 바보들의 병에 죽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이성을 잃은 뒤에야 죽지만, 바보는 이성을 찾기도 전에 죽는다. '바보들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심신이 병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에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기에 오히려 삶을 이어간다.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여 생존하는 자들 역시 어리석은 부류이지만, 그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병드는 이도 있고, 너무 무지하기에 병드는 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어리석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끝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는 거의 없다(p. 228). 영원히 사랑하지도, 영원히 미워하지도 말라 오늘의 친구가 내일 가장 지독한 적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니,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정의 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훗날 당신을 공격할 무기가 될 만한 정보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는 우를 범하지 말라. 반대로 적들에게는 언제든 화해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그 문이 관용을 베푸는 태도로 열린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는 더 큰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오랜 복수는 때로 현재의 고통이 되어 돌아오며, 타인에게 가한 악행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기쁨은 결국 더 큰 슬픔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p. 237). 세상사의 결을 읽고 긍정적인 면을 보라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거스르거나 부정적으로만 치우쳐 해석하지 말라. 모든 일에는 매끄러운 겉면과 거친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도 잘못 잡으면 손을 다치지만, 적이 던진 창조차 자루를 잡으면 당신을 지키는 견고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많은 일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그 이면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있으며, 진정한 지혜는 바로 그 유리한 측면을 찾아내는 기술에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항상 사물의 가장 좋은 면을 바라보고, 선한 의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 누군가는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슬픔만을 찾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은 가혹한 운명이 드리울 때 당신을 보호해 줄 거대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며, 모든 시대와 상황에 적용되는 삶의 중요한 원칙이다(p. 244). 신(神)의 영역은 신에 의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는 인간의 노력이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신의 뜻에 맡겨라 이것은 위대한 거장의 법칙이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p. 271). 한 번에 너무 큰 호의를 베풀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베풀어라 상대가 되돌려줄 수 없을 만큼 과하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사함을 바닥까지 긁어내지 마라. 받은 사람이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아예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감당 못 할 만큼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한 채무자로 남기보다, 차라리 당신의 '적'이 되어 도망치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상이 자신을 만든 조각가를 늘 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듯, 은혜를 입은 사람도 은인을 항상 마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베풂이란, 비용은 적지만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어 그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p. 275). 반박하는 자에게 곧바로 맞대응하지 말라 상대의 반론이 '교활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천박함'에 서 나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상대의 반박이 늘 고집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교묘한 술책 일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라. 천박함에 응수하면 곤경에 빠질 수 있고, 교활함에 휘말리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음험한 자들을 상대할 때만큼 경계가 요구되는 순간은 없다. 상대가 당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자물쇠 따개'에 맞서는 최상의 방책은, 주의력이라는 열쇠를 아예 자물쇠에 물려두어 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p. 299).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북토크433】 신화를 통해 분석한 오늘날의 남성됨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2024년 복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여신의 언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신화학자이자, 꿈 해석과 신화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치유에 매진해 온 고혜경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인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일차적으로 ‘건강한 어른 남성’이 부재한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잃은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만 자신을 욱여넣느라 깊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 전체를 향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신과 여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10쪽)이라는 심층심리학·원형심리학적 시각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섯 남신을 들여다본다. 올림포스의 12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우리 내면의 여러 원형 역시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7쪽)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성향만이 과잉된 현시대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피상적인 삶을 좇느라 ‘참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롭고도 신비로운 시야를 틔워 줄 것이다.-예스24 여성 신화학자, 정신분석가가 진단한 남성의 위기 현상을 통해 남성인 나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게 됐다. 흥미롭게 읽었다. 이 저자의 책을 계속 읽기 위해 몇 권을 대출했다. 모처럼 실력있는 저자를 알게 되어 기쁘다. 옛것으로부터 새것이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늙어 쇠락한 자리에 다시 젊음이 꽃피는 것도 이치다. 그런데 이 마땅한 순리가 지금의 세상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운명은 두려움이 있는 자리에서 형상화된다'는 말이 있다. 아(p. 33)버지와 아들 사이의 운명도 크로노스의 두려움이 빚어 냈다. 갈등의 기저에, 이 원형적 드라마가 어김없이 작동하나 보다. 변화는 구질서나 기존 세대에게는 도전이고 위협이다. 새로운 질서나 가치 확립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아버지가 구축한 체제에 반기를 드는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다. 크로노스는 세대 간 전환에 연루되는 불가피한 폭력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다(p. 34). 이제 헤파이스토스의 결함과 장애, 결핍이 강변하는 교훈이 선명해진다. 삶이 불완전하듯 우리가 하는 시도 또한 모두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그 불완전한 시도 끝에 놀라움과 기쁨이 태어난다. 예술품이 예술가가 자신을 말하는 방식이라면, 궁극적이며 진정한 예술은 결국 자신을 빚어내는 예술이 아닌가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장애와 결핍과 추함에 온 힘을 다해 헌신했다. 그 사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천공이 탄생했다(p. 94). 헤파이스토스의 삶은 버겁지만 숭고하다. 열등과 추함 또한 신의 본질이기에 신성하다는 신화의 가르침은 더 이상 결함을 숨기려 괜찮은 척 위장을 하지 않아도, 못난 나를 혐오하거나 이런 내 모습을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장애도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표식일 따름이다. 이렇게 나의 취약함을 인간다움으로 이해하면 타인의 장애나 결점도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신성한 장애'란 신화 이미지는 상처의 심오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할 뿐 아니라 인간다움의 품을 넉넉하게 키워 준다. 헤파이스토스 삶의 핵심은 상처에 대한 헌신으로 보인다. 지난한 세월, 그는 온 힘을 쏟아 담금질과 망치질로 천품들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천공으로 빚어 냈다(p. 122). 결국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자기 상처나 장애에 대한 헌신이 아닐까? 이런 태도야말로 최선이며 또 삶에 대한 예의 같다. 상처나 장애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추한 게 아니라 특별함이고 신령함이라는 시각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나의 열등함과 추함마저 귀하게 보듬는 진정한 자기 수용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헤파이스토스가 렘노스를 떠나 올림포스에서 제자리를 되찾았듯, 우리 역시 자기 소외와 고립이라는 자기 감금에서 벗어나 본연의 참 터전을 찾아 그에 합당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발터 F. 오토가 말했듯 비로소 찾아온 마음의 자유와 평안, 그 안으로 스며들 관계의 풍요와 삶의 다채로움은 그간 어둠에 싸여 드러나지 않았던 새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림의 맛은 자유와 기쁨일 것이다(p. 123). 신전 박공벽에 새겨진 글귀에서도 '아폴론이 누구인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유행시킨 이 말은 본래 아폴론의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우주와 사물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라는 뜻이다. 결국 '너는 신이 아닌 인간이니 주제 파악하고 분수 지키라'는 명료한 선 긋기다. 정확한 경계 설정 또한 아폴론의 핵심 특질이다. 아폴론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애매하게 선을 넘나들거나 경계 너머에 함부로 침입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신이다(p. 129). ‘영웅은 반만 듣는다.’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니 그러하다. 심층심리학적 관점으로 표현하면, 1장에서 제우스를 탐색하며 이야기한 것처럼 영웅은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른 자들이다. 나는 역사에 기록된 여러 영웅에 대해 개인적인 물음을 품고 있다. 영웅은 왜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할까? 남의 땅을 정복하며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파괴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잔혹성은 영웅의 덕목인가? 어떤 가치관을 지녀야 영웅이 벌이는 행위들을 '영웅적' 이라 칭송할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도 라이오스도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에 속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부자의 공통 취약점은 바로 인내심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재빨리quickly’ 다. 이들은 모호함을 못 견딘다. 만일 라이오스가 친부 살해라는 신탁을 한 번쯤 깊이 되새김질했다면, 즉 그에게 신탁을 듣는 귀가 있었다면 신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들 오이디푸스도, 자신이 아버지를 극복하고 더욱 부강한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은유로서 신탁을 받아(p. 155)들일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혼인을 ‘궁극의 자궁’, 곧 영원한 피안(彼岸)으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숙명으로 깊이 사유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신탁은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향한 거대한 공안(公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본래 신탁의 언어는 마치 꿈처럼 ‘영웅의 귀’가 아니라 '심리학적 귀'를 필요로 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와의 대화를 자신의 심리학적 귀를 훈련하는 기회로 삼았더라면, 또 오이디푸스가 폴리스의 오염에 대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신전에 신탁을 구했더라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다혈질인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깊이 성찰하며, 그 의미가 저절로 앎이 되어 떠오를 때까지 '신중하고 적극적인 수동'의 태도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가족 드라마는 비극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판기를 쓰듯, 즉답만을 구하는 자리에서 신성한 언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나 보다. 델포이 오라클은 사라졌다. 영웅의 후예인 현대인은 '이제 오라클은 침묵한다'고 단정한다. 폐허가 된 델포이 신전처럼 오라클도 그저 과거의 유물일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는 영웅의 귀를 물려받아 오라클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영혼의 감각을 잃고 피상적인 세계에서 무의미하게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내려진 신탁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영웅의 귀가 비극을 초래한다!"(p. 156).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고하는 능력과 동일시한다. 이전의 전체론적, 애니미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를 내세우며 인간 사고의 우월성을 선포한다. 그런데 무의식 탐색에 주안점을 두는 심층심리학의 입장에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설득력이 낮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인간은 비이성에 속하는 감정이나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이며, 특히 삶의 방향이나 중요한 결정은 무의식적 동인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뉴턴도 기계론적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 '과장된 비전'이 현대인 내면의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을 한편으로 인정한다. 이성과 합리를 토대로 하는 '거리 두기'와 '객관성 확보'는 학술적 연구 과정에서 필수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적 진술은 현시대 우리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 뉴턴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모두 아폴론의 후예들이다(p. 165). 헤르메스는 머리에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마법의 지팡이를 든 채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모습으로 유명하다. 동작도 생각도 잽싸고 날렵해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가장 높은 올림포스에서 가장 깊은 하데스의 세계까지, 헤르메스가 가지 못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물처럼 돌아들고 바람처럼 가변적이라 어떤 걸림돌도 장애물로 헤르메스 앞에서는 작동하지를 않는다. 지혜로운지 장난꾸러기인 건지, 영리한지 교활한지, 심지어 골탕 먹고 있는 건지 같이 즐기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할 틈을 주지 않는 샘솟는 위트와 트릭의 소유자다. 그러니 헤르메스를 '규정'하거나 단정'하는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이거다!' 하는 순간 헤르메스는 이(p. 175)미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표현 중에선 ‘도깨비 같다’ 는 말이 헤르메스가 가진 뉘앙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한다. '애매모호'는 헤르메스의 핵심 특질이다. 우리말로 헤르메스를 찾아보면, '도둑'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서술이 많다. 그러나 이는 헤르메스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헤르메스는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도둑질당한 당사자는 그를 받고 만족해 하며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헤르메스에게 직접 '당신은 도둑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뻔뻔하고 당당하게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마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오히려 내가 손해 봤다'며, 상인들이 자주 쓸법한 말도 덧붙일지 모른다.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 무역의 신, 부의 신이다. 잘 알려진 고가의 명품 '에르메스'는 이 신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구매자도 판매자도 헤르메스의 트릭을 존중할 줄 아는 듯하다. 누구도 에르메스 제품의 값어치를 상세히 따지지 않는다. 원가는 얼마인지, 가성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비싸기 때문에 갖고 싶어지는 사람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그에 걸맞은 값을 매겨 사는 이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파는 이는 그 대가로 부를 얻는다. 헤르메스의 트릭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이라도 숨겨져 있나 보다. 헤르메스가 부의 신이 된 데에는 그가 언어의 연금술사, 대화의 신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헤르메(p. 176)스는 흥정과 협상의 달인이다. 헤르메스에겐 그 자체가 놀이 인지라, 정찰제는 헤르메스 영성에 대한 모독이다. 뜨거운 논쟁이 한창인 회의장도, 언어 구사에 있어 고도의 기술적 우아함을 요하는 외교 현장도 헤르메스 신이 관장한다. '말 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또한 헤르메스가 수호신이다(p. 177). 혁명가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을 주로 섭외한다. 소외와 열등의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가져 보지도 내어 보지도 못하던 사람들로부터 우렁찬 함성을 끌어낸다. 이 자체로 해방이다. 소위 '성공'이나 '꿈' 같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부터 차단된 채 좌절과 무기력에 지배당하는 계층의 내면에(p. 238)는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 분노와 공격성이 잠들어 있다. 선동가는 바로 그 자리에 현란한 수사의 화염병을 던져 넣는다. 이는 단지 가난이나 기회 박탈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물기 없는 고목처럼 우울이나 권태로 말라 죽어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마치 좀비처럼 살아 있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많은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그러하고, 억압된 학교에서 나날이 숨 막히는 청소년들이 그러하고, 각종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죽음 같은 외로움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구호의 내용보다는 함성의 강도나 전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훨씬 중요한지도 모른다. 갑갑한 가정을 뛰쳐나와 산과 들에서 광란의 춤을 추던 마이나데스처럼, 강요된 순응으로 질식해 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마이나데스가 된다. 이들에게 '디오니소스 해방자'는 곧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마법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관계를 깨고 체제를 해체할 필요가 있는 자리는 디오니소스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해야만 지킬 수 있다. 개성이 억압되고 표준화된 단정과 예의가 교리처럼 강요되는 곳에는 '착해야 돼' '말 잘 들어야지' '순응해'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이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혁명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디오니소스 해방자는(p. 239) '디오니소스 독재자' 없이는 오지 않는다. 잔뜩 술에 취해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난 다음날 아침, 심신에 멍이 든 가족의 얼굴과 부서진 살림살이가 나뒹구는 씁쓸한 풍경을 마주한다. 흥분한 관중들이 격렬히 충돌한 경기장에는 치우고 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와 파괴의 잔해가 널려 있다. 유리창을 깨고 건물로 난입해 무법천지 활극을 벌인 자들은 '폭도들'이라는 낙인과 함께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이 모두 어제의 해방자가 독재자로 탈바꿈하는 순간들이다. 역사는 혁명가가 독재자로 바뀌는 순간을 '부패'나 '타락'이라 부른다. 혁명의 상상력에는 혁명 뒤에 올 독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보다. 자유와 평등과 해방의 깃발을 치켜드는 혁명은 분명 디오니소스 신의 영감 하에 일어난다. 선동가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혁명 이후에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만이 통치하는 것을 최선이라 여긴다. '영구 집권'은 독재와 폭압에서 빠지지 않는 구색이다. 이러니 지구상에서 혁명이 거듭 되풀이되나 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화학자의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보자. 소위 문명화된 현 사회에,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심리적 평안을 위협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왜 다시 표면으로 올라 와 세계 곳곳을 위협하는가? 법을 어기고 질서를 파괴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집단무의식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디오니소스는 정통을 위협한다. '정통' '정통주의'라(p. 240)는 뜻의 영어 'orthodoxy'는 '곧은' 올바름'을 뜻하는 그리스어 'ortho'와 '생각' '견해'를 뜻하는 'doxy'가 결합하여 탄생한 말이다. 사회가 정한 '바른 생각'에 동조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필연적으로 그 틀을 벗어나 '다른 생각heterodoxy' 을 품는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디오니소스는 후자를 위한 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통 수호는 귀족들의 가치였고, 이들은 주신으로 제우스나 아폴론을 섬겼다. 여성과 농민과 노예의 주신은 물론 디오니소스다(p. 241). 기꺼이 하강하는 사람만이 풍요를 누린다 하데스는 그림자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신이라 했다. 하데스의 세계에서 놀라운 통찰을 얻은 카를 융은 '구원의 열쇠는 그림자 속에 있다'고 선언했다. 인류가 '제임스 웹' 이라는 괄목할 망원경으로 우주라는 미지를 탐사하듯, 내면 세계 또한 안으로의 또 깊이로의 탐험이 절실한 때다. 특히 우리 의식에서 제일 멀리 유배시킨 하데스에 구원의 열쇠가 놓여 있다면, 네키아는 택해야만 할 필연이자 구원의 길이다. 융은 자신의 탐색을 '내면 여정inner journey'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여정journey out'이라고 말했다.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없음을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다. 궁극의 자리에서 안과 밖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철저하게 무시해 온 우리의 가까운 미지, 각자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데스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p. 291). 어떻게 하면 하데스의 부로 영혼이 비옥해질 수 있을까? 영웅이고자 매진해 온 현대인이 남겨진 삶을 영혼의 돌봄으로 갈무리하고자 할 때, 즉 자아에서 자기로 삶의 중심을 이동하고자 할 때 하데스는 그를 위한 필연적인 길이자 방향이고, 허기진 우리 영혼의 자양분임을 앞선 선각자들이 삶으로 드러내 보여 주었다. 마침내 저마다 자신의 '마음 오디세이아'를 시작하려 할 때,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와 현대의 융이 뱃사공 카론이 되어 하데스로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내면 깊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자를 만나 보이지 않는 운명의 그물을 가시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의 지도는 이미 그려져 있다. 먼저 탐색했던 선조들의 선물이다. 여정에 오르면 수많은 난관을 맞닥뜨리고, 난파되고 표류할 것이다. 삶에 쉬운 길은 없지만, 나만의 길은 있음을 믿는다. 모험으로 가득할 나의 길이 결국 풍요의 길이자, 영예로운 길이고, 또 유일한 길이다(p. 292).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북토크432】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치료를 받으라
    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는 귀차니스트, 죽도록 먹거나 먹지 않는 사람들, 무언가에 중독되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외모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 늘 피곤하다는 사람들, 그들은 언뜻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 같지만 모두 우울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이 우울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혀내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우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또 인터넷과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을 타고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심각한 언어 파괴 현상, 인터넷 폐인과 리플족의 탄생, 조폭영화와 코미디에 열광하는 심리 등을 통해 우울에 빠진 시대를 짚어내고 우울한 시대가 만든 사람들, 키덜트족의 심리를 파헤친다.-예스24 인간의 심리는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내게는 아직 우울증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 짓는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투성이다(p. 21).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 대 1.0이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사노라면 우리의 희망과 상관없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불행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불행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자세는 아무리 부정적인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먼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를 따져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러나 그렇게 따져 들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도 조금 관대해져 보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p. 22). 남들의 시선에 목숨 거는 당신, 그래서 어느 순간 우울에 빠진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남들이 뭐라든 당신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중 받아 마땅한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껏 남들의 찬탄을 받기 위해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왔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당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면, 이제는 그 껍데기 같은 삶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라. 더 이상 그 신호를 무시함으로써 더 깊은 우울에 빠져 들지 말고 말이다(p. 27). 이러한 상실의 고통이 시간의 강물을 타고 흘러가서 과거라는 시간의 바다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애도 과정' 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심리학자 볼비는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번째 단계는 절망에 빠지면서 무감각해지고 항의를 하는 단계다. 이 때는 죽음을 부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고 찾아 다니는 단계로 안절부절못하며 그저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와해의 단계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모두 끊고 고립되며, 무감각해지고, 불면증과 체중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끊임없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다, 그것이 단지 기억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회복의 단계다. 이제 상실의 고통은 줄어들면서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떠나간 그 사람이 가슴속에 살아 있으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보통 이 과정은 6개월 정도를 필요로 한다. 이 동안 충분히 슬퍼하면서 그 사람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떠나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뜻언뜻 그의 모습(p. 59)을 보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죽은 사람을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고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와 그 사람 없는 세상에서도 살만 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아주 서서히 에너지가 다 소진되면 그 사람과의 단절이 일어난다. 즉 고통스런 슬픔을 거쳐 애도를 끝내면 그 슬픔의 도가니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p. 60). 그러니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면, 마음껏 슬퍼하라. 그런 뒤에야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랑을 만나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다(p. 64). 그리고 그 시간을 우울의 감정으로 흘려 보내기엔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우울에 빠져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삶은 떠나간 이에게도, 남은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니다(p. 65). 술이든 약물이든 모든 중독 행동은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특히나 무능감이란 감정에 상당히 취약해서,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극심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독을 통해 재빨리 무능(p. 110)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독에 잘 빠져 드는 사람은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아 발달에 손상을 받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저하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약물이나 술을 통한 즉각적인 기분 상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 상태가 되면 오래 전 엄마 뱃 속에서 느끼던 깊은 안락감을 맛볼 수 있어서 중독자들은 더욱더 술과 약물에 빠져 든다.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술이나 약물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물러나서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특히 약물 중독의 경우 대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투약을 하며 환각 상태로 빠져 드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어릴 적 부족하던 애정 어린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렇게 우울해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만족을 약물이나 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약효가 사라지면 현실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또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면 그 깊은 우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다시 약물에, 술에 손을 뻗치게 된다. 그렇게 우울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p. 111). 순덕 씨처럼 오랫동안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계속 참기만 해서, 그러한 화가 쌓이고 쌓여 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화병' 이라고 한다. 우울과 화가 마음속에 쌓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병은 대부분 힘든 과정이 다 끝난 후에 생길 확률이 높다.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술과 여자 문제로 평생을 속 썩이던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등 힘들던 일이 지나가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좀 편해진다 싶으면 몸이 이상해지면서 화병이 오기 시작한다(p. 211). 이것은 억압이 풀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힘들 때는 자신을 억압하면서 참는 데만 급급하지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억압이 느슨해지면 그 동안 쌓인 우울과 분노가 "이제 나도 좀 숨을 쉬어야겠다" 며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p. 212). 다만 나는 말해 주고 싶을 뿐이다. 우울은 그저 견디거나, 삶에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넘어서 뛰어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 우울의 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우울이라는 고통스런 감정을 잘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충분히 있음을 말이다. 누구는 우울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누구는 우울로 인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p. 247).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려 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세상은 때로 우울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도, 피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계속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음을 기억하자. 그런 마음으로 우울의 강을 건너자.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우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감정을 경험하면서 우울이 우리에게 주는 ‘성숙’ 이라는 선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p. 256). 아무런 상처나 고통도 없는 완전한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인생은 유한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처럼 인간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고 발버둥쳐 봐야 외로움을 없애기는커녕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이 나와 타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는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하게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며 외로움과 싸우지 말라. 그건 당신이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는 약한 사람이라는 반증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p. 275).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루소,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리아 여왕, 링컨, 차이코프스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생의 한때를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일정 기간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우울증을 앓아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괴로움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것은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이다. 그 고통에 대해 인생의 반 이상을 우울증으로 보낸 링컨은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나는 현재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만일 내가 느끼는 것이 온 세상 사람에게 나뉠 수 있다면 이 지구상에는 기쁜 얼굴이란 단 하(p. 283)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대로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거나, 아니면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좋아지거나 해야 한다." 심지어 《우울증에 관한 희망의 보고서》를 쓴 루이스 월퍼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경험이었다. 아내가 암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 아내의 죽음보다 우울증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인정하는 것은 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이렇게 말 못할 고통을 동반하는 우울증은 전체 인구의 5명 중 1 명이 걸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다. 오죽하면 마음의 독감 이라고 불리겠는가.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깊은 거부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병원을 찾거나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면서도, 마음이 아프거나 우울하다고 하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성격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아니면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거나, "그건 의지가 약해서 생긴 병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네 의지로 고쳐 봐라" 혹은 "여행을 가거나 푹 쉬면 나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한다. 정신과 병원에 가 보라고 하는 이는 드물다. 왜냐하면 사람들은(p. 284) 정신과 하면 으레 텔레비전에서 봄직한 괴상한 환자들이 가는 병원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 먹으면 중독되고 바보가 된다", "정신과에 입원하면 사람을 때리고 묶는다"는 등의 잘못된 믿음은 그러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한약이나 안수 기도, 굿 등 이것저것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본 다음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정신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에 걸리기라도 하면 병을 고칠 생각은커녕 창피하게 생각하며 쉬쉬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환자 자신도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며,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뇌의 병일 뿐이다. 증세는 심각하지만 치료하면 완전 회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빠른 진단과 바른 치료만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듯이 ‘마음의 독감’ 인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울증의 기미가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항우울제를 사용한 약물치료, 전기경련요법, 광선치료, 대인관계 정신치료, 인지치료, 행동치료, 정신 분석적 정신치료, 가족치료, 집단정신치료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p. 285)가 높다. 항우울제로는 뇌에서 노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의 시냅스 농도를 높여 주는 삼환계 항우울제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은 효과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사람에 따라 졸음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인 프로작 같은 약물이 우울증 치료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우울증 약물은 그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기까지 3~4주 기다려 봐야 한다. 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약물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항우울제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습관성이 없다. 이처럼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3개월 내에 호전된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울증은 6~13개월 지속되며, 그 극심한 고통은 개인을 황폐화시키고, 심리적 • 사회적 합병증까지 부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자살의 위험성은 특히나 심각하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치료를 받으면 회복되는 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심하게 탓하거나, 다른 그 누구를 비난하 는 것은 병을 더 키울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286). 우울증은 분명 치료될 수 있는 병이며, 그 지옥 같은 어둠의 끝은 반드시 있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울증을 앓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 윌리엄 스타이런은 어둠의 끝을 이렇게 말한다. "깊이 모를 지옥의 심연에서 위로 위로 힘겹게 걸어 오르면 마침내 눈부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고, 평정과 기쁨을 즐길 수 있는 능력 또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망을 넘어선 절망을 견딘 자들에게 돌아가는 충분한 보상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도 희망은 있다.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며 꼭꼭 숨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독감에 걸린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p. 287).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북토크431】 밥 벌이와 하고픈 일 사이의 인생살이
    “수고했어, 오늘도” 매일 일하며 살아가는 일개미들에게 보내는 위로. 『땀 흘리는 글』은 꾸준히 노동 관련 서적을 출간해 온 ‘작은책’의 편집장을 비롯하여 현장 교사, 소설가가 한데 모여 일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을 가려 엮은 생활글 선집이다. 이 책은 N포 세상에 내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선집 『땀 흘리는 소설』의 후속 시리즈로,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야말로 ‘생생’하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기에 억지스럽지도, 과장되지도 않는다. 글쓴이들은 나는 이런 고민을 했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뿐이다. 여기 담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했던 고민과 내가 겪은 아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에 안도하게 된다.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 때로는 구체적인 말보다 깊은 공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까운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내 마음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어느새 사르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책이 당신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예스24 일생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내려놓고 산다. 그만큼 먹고 사는 일은 절박하다. 그럼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삶은 한번 뿐이니 말이다. 나는 어떻게 작사가가 되었나-김이나 나는 작사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다만 음악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공연 기획사에 이력서를 넣어 보고,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화성학 책을 보고 남은 월급으로 전자 키보드를 사서 작곡을 해 보기도 했다.(물론 다시 들어 보면 표절이라 번번이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일들은 평범한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아등바등 벌인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독립을 최대한 빨리 이뤘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내(p. 12)세울 만한 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간절하게 음악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 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그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나는 '간절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급하기만 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환경을 탓하고, 잘된 사람들에게서 다른 외부적인 이유만을 보며, 결국에는 쉽게 포기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당장 하루하루가 당신을 죄여 올 텐데, 어떻게 마냥 재능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한 우물을 팔 수 있겠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핏줄 부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저런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 취직했다. 이동 통신사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한때 여기저기서 난립했던 부류의 회사 중 하나였다. 모바일 콘텐츠라 해봐야 당시만 해도 벨 소리가 다였다. 어느 회사가 더 많은 음반 기획사와 계약하여 벨 소리를 납품하느냐가 관건일 때였다. 나는 벨 소리 차트 페이지에 올릴 추천곡을 고르고, 벨 소리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 등을 맡았다. 마치 음반 기획사에 입사한 기분이었다. 내가 음 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흥미로(p. 13)웠다. '음악 일을 하고 싶은데, 고작 벨 소리 차트나 만들고 있다니'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간절함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언저리 일인들, 음악 관련 일이면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음악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즈음에 김형석 작곡가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돌하기 짝이 없다. 그 대단한 작곡가에게 대뜸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있었다니. "팬이에요." 하고 사인이나 받고 말 법도 한데, 어려서 그랬을까. 낯짝이 굉장히 두꺼웠다. 그때는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김형석 작곡가가 ‘희망의 빛 덩어리’로 보였을 뿐,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재능이 있어야 가르칠 수 있어요. 작업실에 한번 와 봐요." 백 프로 빈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몇 번이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배울 수 있나요?"라고 묻자 웃기만 하시다가, 빨리 나를 보내려고 그냥 하신 말씀 같다. 하지만 나는 작업실 주소를 적어 갔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진짜로 찾아갔다. "피아노 칠 줄 알아요? 한번 쳐 봐요." 뚱땅뚱땅, 뻔한 코드를 쳤던 기억이 난다. 멋 부린답시고 말도 안 되는 멜로디도 넣어 가며. 다소 난감해했던 그의 표정이 기억난다(p. 14). "글쎄요••••· 기본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야 알게 된 김형석 작곡가의 특징은 한마디로 마음이 약해도 너무 약한 분이라는 거다.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게 덤비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기회를 주시더라. 거절을 잘 못하는 스타일, 그조차 나에겐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작곡가는 안 되는 모양이구나. 그럼 그렇지. 나는 그래도 감사한 마음에 '김형석 with Friends' 콘서트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러 오시라고 내 홈페이지 주소를 적어 드렸다. 사진을 구경하던 김형석 작곡가는 내가 쓴 일기 게시판을 둘러보고는, 글을 재미있게 쓰는데 작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언제든지 기회만 주세요!" 이토록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이어져 이루어졌다, 작사가로서의 내 시작은. 음악에 대한 동경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해 준 모바일 콘텐츠 회사, 김형석 작곡가의 콘서트 맨 앞줄을 예매한 일, 그 콘서트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포스팅한 일, 별것 아닌 하루들을 기록한 일, 작곡가님을 만났을 때 뻔뻔스럽게 들이댄 일. 간절한 소망은 일상 속에서 작은 우연이 되어, 훗날 큰 기회가 왔을 때 폭죽이 되어 터진다. 작사가가 되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나에게도 방법은 없었다. 화가, 소설가 등등 창작 방면의 직업에는 '방법'이 명확하게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p. 15).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 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그리고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p. 16). 인터넷으로 책을 팔고 있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손님이 이곳에 방문해서 책을 구입해야 한다. 책은 솔직한 물건이다.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라는 말은 수학 명제만큼이나 확실한 정의다. 그러니 내가 좋은 책을 알(p. 48)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헌책방에서 그 책을 팔면 된다. 그건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다른 이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내가 가진 강점은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잘 맞는지 알아내는 게 아니라 책 그 자체에 담긴 작가의 진정성과 노력을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다. 그러니까 우리 헌책방에 오면 누구든지 괜찮은 책 한두 권 정도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손님이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면 책을 보여 줄 수 없고 당연히 구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p. 49). 그러나 소중하다고 해서 꼭 그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보람이나 자부심보다는 월급을 동력으로 일했다. 많을 땐 하루에 지퍼나 단추를 몇만 개씩도 만들었지만, 전혀 성취감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만들 뿐,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는 물건, 내가 없더라도 돌아가는 공장, 내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 딱 그랬다. 주물 공장의 일은 내 삶에 안정감을 주었지만, 그 일 속에 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근속 연수가 늘어날수록 일이 너무 지겨워졌다. 환경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주물 공장의 일은 출근해서 기계 앞에 앉으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일어날 일이 없다. 쇳물의 위험성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일 하느라 대화가 힘들고, 쇳물이 튈까 봐 자리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 다. 출근해서 벽만 보고 기계처럼 단순 반복 작업을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10년간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이 한 문장으로 10년을 설명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공장에서 이십 대를 다 보내고 서른을 맞이한 게 8년 차쯤이었는데 그때 번아웃이 왔다. 출근하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언제 퇴근 시간이 오는지 벽시계를 돌아보는 것이(p. 156)었다. 그런 모습을 들켜서 한 소리 듣고도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난 지쳐 있었다. 단 1년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일을 포기할 때의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을 그만둘 순 없었다. 대단치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일이니까. 매일 똑같은 단순 반복 작업이 아무리 지겨워도, 어차피 내가 살면서 본 노동자 중에 일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나처럼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하는 듯했고, 거기에 자부심이나 보람, 적절한 보상 같은 동력을 더해서 견디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생활의 보장을 동력으로 견딜 뿐이었다. 일은 원래 견디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결론지은 까닭은, 평생 한 번도 일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일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누어질 뿐, 좋아하고 말고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서른두 살에 기적처럼 좋아하는 일이 찾아 왔다. 2016년 5월 16일.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p. 157). 어떤 사람이 잘 산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보통 돈이다. 직업을 정할 때도 연봉의 유혹은 크다. 월급 많이 주는 곳이 가장 좋은 회사다. 그런데 그런 직장이 나의 좋은 삶을 지속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원래 돈은 속삭인다. 나를 줄 테니 너의 모든 것을 달라고. 그래서 특히 젊은 나이에 첫 직장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p. 168). 돈의 쓰임이 곧 삶의 자세이다. 젊을 때부터 나를 던져 돈과 삶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돈의 흐름에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게 된다. 내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다.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가령 고액 연봉을 받는 학원 강사가 처음부터 그 일을 오래 하려고 마음먹지는 않는다. 메뚜기도 한철이니 벌 수 있을 때 한몫 챙기자며 밤낮으로 몸을 불사르는데, 큰돈을 쉽게 만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보수가 적은 일은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돈이 기준이 되면, 삶의 만족을 돈 아니면 채우기 힘들고 적은 돈으로 행복을 창안하는 일에 무능해진다. 또 그런 일터에는 비슷한 가치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이 또한 중요하다. 인생의 벚꽃 시절을 누구와 보내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행복은 결코 혼자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도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 번뿐인 인생. 잘 벌어 잘 먹고 잘 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의 세계관에 맞게 추구하면 될 일이다. 한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돈의 세례 속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인생이 많지도 않거니와 돈은 속성상 충족을 모른다. 바닷물처럼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킨다. 돈의 만족보다 삶의 만족을 이루기가 더 쉽다. 이른 나이부터 안빈낙도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찌감치 돈에 정신을 묶어 두는 것도 서글프다(p. 169).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양대식 목사 칼럼30】 명예를 주는 지혜
    명예를 주는 지혜 (잠언 22 : 1) 명예가 중요합니다. 명예는 좋은 이름입니다. 인간은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잠언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명예욕은 삼가야 합니다. 주어지는 명예는 받아야 합니다. 명예가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셉과 아브라함 다윗 바울은 좋은 명예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의 이름을 높여주셨습니다. 명예에 맞게 혜택과 권위가 주어집니다. 장관이라는 명예, 총장과 이사장이라는 명예가 주어지면 거기에 따르는 많은 특전과 혜택이 주어집니다. 명예를 싫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재물보다 명예를 택해야 합니다. 명예가 주어지면 재물도 따라옵니다. 명예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명예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명예를 얻으면 기쁘고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게 됩니다. 어떤 단체에서 회장이나 직책, 명예가 주어지면 명예를 위해 헌신하고 기쁨으로 돈을 사용합니다. 명예박사가 주어지면 명예박사를 준 학교에 도네이션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명예를 주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교회 직분이 감투나 권력은 아니나 선한 명예입니다. 교회에서 직분 받고 임직식할 때 교회를 위해 재물을 기쁨으로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명예나 직분을 주어서는 안되나 어느 정도 검증되고 자격이 되는 자에게 명예를 주고 직분 받아 임직시키는 것은 사역의 지혜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직분 자를 교육시키고 때가 되면 직분을 주고, 명예를 주어 임직식하게 되고 그들의 물질 헌신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리더는 누군가에게 명예를 주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명예가 주어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인정받는 기쁨으로 무엇인가 드리려는 헌신이 있게 됩니다. 때에 맞게 적절하게 명예를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나 사도, 목사라는 명예를 주어 기쁘게 사역하게 하십니다. 명함과 이력서 경력들도 명예인데 자신의 명예를 유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조직에서 자신의 직책 명예가 소홀히 여김 당할 때 시험들고 섭섭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문광고에 어떤 조직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 명예, 직책이 나올 때 흐뭇해하고 신문을 보고 싶어 합니다. 어떤 조직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빠지면 분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명예에 대해 예민합니다. 사람들에게 명예를 주어야 합니다. 명예가 주어지면 헌신하고 돈도 내고 열심히 사명 감당하려고 합니다. 명예는 아름답고 귀합니다. 명예박사, 명예이사장, 명예총장, 명예권사, 명예가 너무 귀한 것입니다.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명예를 칭찬하고 축복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리더는 훈련과 교육을 시키고 기회가 되면 사람들에게 명예를 주어야 합니다. 학교의 이사라는 명예를 받으면 돈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에 최고의 명예를 주셨습니다. 명예는 은혜요, 특혜요, 축복입니다. 어떤 기관에서 명예가 주어지면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지혜의 능력 주시고 돕는 자들을 붙여주십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5
  • 【북토크430】하고 싶은 인생을 살아야 후회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행복한 진로학교’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에는 삶과 직업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 요기와 같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7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남 못지않은 학벌과 스펙을 가졌으면서도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아 웹툰 만화가, 노동운동가, 빈민운동가, 생협활동가 등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래서 행복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한결같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들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그리 높은 장벽은 아니다,’-예스24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하다. 돈을 목표로 한 인생은 언젠가 삶을 돌아보며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다. 집안 형편상 장학금이 많은 국립대 미술교육과에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가서 보니 실기 비율이 10%밖에 안 되는 거예요. 순수회화 같은 경우는 60% 정도였어요. 실기시험장에서 석고데생을 하는데 시험 보는 친구들이 모두 글씨 쓰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더군요. 그래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합격을 해도 속상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어요. 전화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날 아버지께(p. 14)서 "재수할래 어떡할래? 인문계 쪽으로 공부해서 다시 시험 봐라. 우리 집 형편에 미대 진학은 무리다"라고 하시길래 "여태까지 미술만 했는데 인문계 애들이랑 경쟁해서 어떻게 대학에 가요. 만화 그리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저의 묘한 박력에 놀라셨는지 "그럴래?" 하시더군요. 만화로 진로를 정한 뒤 만화학원에 갔습니다. 그 당시 꽤 진보적인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은 운동권 사람들이 편집기자로 활동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화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아버지를 졸라서 그 학원을 다니게 되었죠. 학원이 서울 강남역에 있었어요. 어느 날 강 남역에서 고등학교 때 꽤 친하게 지냈던 같은 반 친구를 만났습니다. 동창회를 하기로 했으니 며칠 후에 오라며 반장이었던 친구의 하숙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더군요. 반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친구가 대학 다니는 친구들만 모인다며 굉장히 난처해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고 나니 부글부글 끓더군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너희들이 군 제대하고 학교 졸업했을 때 나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을 거야.' 분노에 찬 결심을 한 것입니다. 스물다섯이 되는 1993년에 데뷔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p. 15). 너무 비참해서 데뷔를 포기하고 다시 문하생으로 들어가 도대체 창작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무시하는 만화가라고 해도 내가 앞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아 그려야 하는 만화가 단지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 다시 화실로 들어가면서 만화책은 다 버리고, 어릴 적부터 그림으로만 익숙해진 제 손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무조건 필사를 했어요. 저같이 기초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림만 그려온 사람들은 글을 쓰려고 하면 무엇보다 엉덩이가 들썩거려 힘이 들어요. 그림은 거침없이 그릴 수 있는데 글은 진도가 느려 좀이 쑤시게 됩니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하면 늘 어딘가가 아파요. 이런 증상을 고치려고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잘못된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는 게 제 원칙인데 이 원칙을 스토리를 공부하는 데 적용한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데만 익숙해진 제 신체 근육을 글을 쓰는 데도 적응시키기 위해 〈모래시계〉 대본, 최인호 시나리오 전집을 모두 베껴 썼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필사를 해서 뭔가를 배우려 했다기보다 제 자신에게 화가 난 상태여서 저를 학대하는 과정이었어요. 화실에서 퇴근해서 제가 짜놓은 책장에 1시간은 배경 연습해서 올려놓고, 1시간은 인물 연습 해서 올려놓고, 1시간은 데생 연습해서 올려놓고, 1시간은 습작 연습 해서 올려놓았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지옥이었습니다. 연습을 하면 성과가 눈에 보여야 하는데 한 시간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한다는 것이(p. 19) 굉장히 힘듭니다. 책장에 올려놨던 그림을 다음 날 다시 내려서 그려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니 양이 묵직해졌습니다. 높이도 상당했죠. 그 종이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기 그지없어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더군요(p. 20). 집이 가난해 열등감도 심했고, 자존감도 낮아서 친구들 눈치를 보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웃었어요. 또 거짓말을 정말 잘했어요. 자존감은 낮았지만 그림만큼은 제일 잘 그리는 아이가 되고 싶었어요. 어느 동네 태호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소문이 났어요. 그림 좀 잘 그린다는 아이들은 주변에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태권브이 같은 것을 그려주었지만 저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그 친구를 그려줬어요. 친구들은 싫어했죠. 애들이 그려달라는 그림은 자기 얼굴이 아니라 자기가 되고 싶은 태권브이였으니까요. 어릴 때 교회 선생님이 오르간을 치시면 제가 칠판에 선생님이 오르간 치는 모습을 크로키로 그렸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어쩜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냐"고 칭찬해주셨죠. 그 칭찬에 빠져서 교회에 다녔어요. 당시 그림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 그림 그리다 숙제 못했다고 하면 선생님이 그림 확인하시고는 숙제를 한 것으로 인정해주실 정도였거든요. 저는 친구들을 향해 '너희들과 나는 격이 달라' 하면서 우쭐했었죠(p. 23). 저는 1974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운명적인 해였죠. 유신헌법이 197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고3이었던 1973년 1년 동안 유신헌법을 토씨 하나까지 다 외워야 했습니다. 시험문제에 나올 테니까. 대학 신입생 때인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습니다. 고등학교 문예 반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던 선배들이 신문 기사 조직도에 간첩으로(p. 52)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 친한 착한 선배가 징역을 15년씩 받고 그러는 거예요. 당연히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우리 때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15퍼센트 정도가 대학에 갔어요. 저는 그때 ‘대학에 가지 못한 85퍼센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시건방진 엘리트주의죠.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자명했어요.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은 긴급조치에 의해서 징역 15년형을 받았습니다. 사흘 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학교도 가지 않았어요. 데모하고 잡혀가는 것도 물론 두려웠지만 제가 간직해왔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저를 더 망설이게 했습니다. 그건 우리 가문의 꿈이기도 했거든요.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어보고 닫곤 하셨습니다. 씻지도 않고 양치도 안 하고 방에서 뭉개면서 '옳지 않은 일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데, 내가 정말 용기가 없구나. 참 비겁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흘째 날 아침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밥을 푸시면서 중학교 다니는 여동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오빠가 하는 고민의 내용을 우리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오빠가 괴로워하는 모습 보면서 우리는 가족으로서 오빠가 지금 세상을 바르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세상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그런데 그동안 엄마가 너희들에게 세상을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느냐? 그렇게 가르쳐온 엄마로서, 오빠가 이번에 어떤 결정을 하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그 말씀을 차마 저를 보지 못하고 동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흘 동안 고민하는 아들을 지켜보시다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p. 53). 그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제가 얼마나 비겁한 사람이겠어요. 며칠 뒤에 등사기를 하나 구해서 밤새도록 유인물을 직접 만들었어요. 유인물을 라면박스에 담아 학교로 가지고 갔습니다. 아침 10시 반에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고 그날 저녁 7시엔가 잡혔습니다. 저를 잡아가던 형사가 그러더라고요. "야 인마, 손에 묻은 잉크나 좀 지우고 가라." 손에 묻은 등사 잉크조차 지우지 못한 채 잡혔던 거죠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가 어떻게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두고두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고민을 할 때, 나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삽니다(p. 54). 제가 노동상담을 좀 이른 나이인 20대 말에 시작했습니다. 산업재해를 당한 나이 많은 노동자를 만났을 때가 제일 당혹스러웠어요. 상담소 출입문에 유리창이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는데, 어느 날 퇴근 무렵에 누가 그 창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 들 어왔습니다. 나이가 쉰이 훨씬 넘은 분인데 술에 잔뜩 취했더군요. 식기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된 노동자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두 딸을 볼 낯이 없다는 얘기를 계속하시는 거예요. ‘우리 아빠는 실패한 인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 냐고.... 산에 올라가서 어디 목매달 나뭇가지가 없나 하루 종일 찾다가 내려왔다고 울먹거리며 말하는데, 그런 분한테 20대 새파란 놈이 노동법 좀 공부했답시고 책상머리에 앉아 뭘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때부터 제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는 정신과 치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잘린 손가락 붙이는 것 못지않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20년쯤 전, 산업재해노동자회가 만들어졌어요. 구로시장 허름한 건물 지하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노동법 교육을 해달(p. 62)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첫날 갔더니 지하실에 습기가 얼마나 많이 찼는지 비닐 장판이 물기로 번들번들했어요. 그런 곳에 팔이나 손이 잘리거나 화상을 입은 노동자 10여 명이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구석에 앉아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회원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한 욕설들을 주고받더군요. "야, 이 새끼야, 너 팔 잘린 거 잘된 거야. 4천만 원 받았잖아. 니가 노동자로 평생 살면서 4천만 원 모을 수 있을 거 같아?"라고 막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4천만 원이면 당시 서울 변두리에 당구장 하나를 낼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큰돈이긴 했죠. 보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팔이 없어요. "나는 사고 나고 공장이 망하는 바람에 보상금 한 푼도 못 받았어. 너는 4천만 원이나 받았잖아. 넌 니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뭘 느꼈겠어요. 저처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팔 잘리고 4천만 원 받고 절망에 빠져 있는 노동자에게 잘된 거라며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 뭇매 맞을 일이잖아요. ‘똑같은 말도 자격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큰 고통을 겪었으나 그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를 위로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노동자의 고통을 제가 다 미리 겪어볼 수는 없잖아요. 상담실에 오는 노동자들은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당하고 찾아옵니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국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삶에 대한 진정성 외에는 답이 없었습니다(p. 63). 분신을 시도해 은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노동자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내 자식은 열심히 가르쳐서 저런 신세는 면하게 해야지 생각하시겠지만, 열심히 공부해도 마찬가지예요. 석 박사 연구원들이 무더기로 해고됐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석사, 박사가 된다고 해도 비정규직 신세 면하기 어렵다는 거죠.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한국 사회가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쟁취한 민주주의까지 파괴됩니다.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요. 지금 10명이 취직하면 8명이 비정규직입니다. 우리 자녀 중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 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게 몇 년 전에 문서로 통보했다는 점 입니다. 국제금융자본조차 투자할 때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비정규직 고용은 심각한 상황이란 거죠.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 진보적 요구를 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IMF가 2012년 10월 〈한국 경제 지속 성장 보고서〉에서 '한국이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면 10년간 연평균 1.1% 성장할 것이다'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습니다(p. 66).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사교육 없는 세상, 경쟁하지 않고도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경쟁하는 교육도 나름 일리가 있어요. 다만 그 경쟁이 승자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에 유익하려면 두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그 경쟁이 공정해야 합니다. 핀란드 교육의 특징은 한마디로 극단적인 평준화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8학군 학교나 저 시골 분교나 학교 시설, 교사 수준, 수업 내용 모두가 극단적으로 균일하다는 말이죠. 다른 말로 하면,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남보다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없앤 겁니다. 두 번째, 탈락자에게 계속 패자부활전 기회가 보장되어야 해요. 시험을 봐서 공부 잘하는 1등을 뽑을 수도 있죠. 그러면 나머지 학생들 중에서 노래를 잘하는 학생, 운동을 잘하는 학생, 마음이 따뜻한 학생, 이웃의 불행에 대해 관심이 큰 학생들에게도 1등 기회를 줘야죠. 그래서 한 반 30명 모두가 1등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는 공부를 잘하고, 누구는 노래를 잘하고, 누구는 운동을 잘하고.... 이걸 어떻게 비교합니까?(p. 80). 사람은 살면서 여러 난관과 장애물에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그렇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생에 걸쳐 해결해야 할 도전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 중에 아주 크고 더 도전적이고,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성찰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섭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혹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문제가 보이고, 그래서 자신을 위한 문제해결이 사회적 문제해결의 기회로 연결되거나 확장되곤 합니다. 저도 그런 과정을 비슷하게 겪었습니다. 제가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 첫 번째는 바로 제가 매우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청소년 시기는 그래서 제(p. 86) 문제이기도 하고 또 많은 청소년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이유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과 지내지 못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 했고, 그러다 보니 가족관계가 원만할 수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취, 가족과의 재결합, 얹혀살기 등을 반복했습니다. 부모 없이 형제들끼리만 지내보기도 하고, 빚쟁이에 시달려보기도 하고, 자취를 하면서 돈과 쌀이 없어서 애를 끓여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빈곤에 대한 설움을 조금은 느껴보았죠. 그렇게 지내는 과정에서 몸에 밴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도 해서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불규칙하게 살기, 되는대로 하기, 외박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씻고 먹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잘 씻지 않고, 라면이나 3분 조리 음식 등 가공음식 먹기 등등, 많은 좋지 않은 습관이 이때 들었죠. 그런데 이 어려운 청소년기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문화적 유산 이외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지역사회 자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교회 중고등부, 청년부가 제게는 정서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습의 기회도 제공했습니다. 교회에서 제공해준 장학금도 큰 도움이 되었죠. 당시 목사님이 참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일종의 지역사회 방과 후 학교, 주말 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저같이 떠도는 청소년에게 중요한 품이 되어주었다 고 생각합니다(p. 87). 청소년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예전에 제가 출연한 EBS 라디오 방송에서 아주 유명한 교수님이자 연출가인 분이 항상 옛 음악만 들으시길래 '왜 옛 음악만 듣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즐겼던 음악이 지금도 여전히 좋다고 하셨죠. 그러면서 그때 감성이 나이 든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의 가슴 뛰던 그 열망과 감정이 인생을 이끄는 엔진이죠. 저도 청소년기에 들었던 음악이 지금도 좋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청소년기 때부터 꿈을 가졌다는 것 아닐까요. 사람은 청소년기에 가졌던 꿈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꿈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누구나 청소년기 때 가졌던 꿈을 실현하며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기 때 아무런 꿈이 없으 면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을 살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청소년기에 시험 문제만 풀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p. 93). 제가 최근에 〈공부상처〉라는 책을 냈어요. 별학교의 경험과 아이들(p. 98)을 상담하면서 얻은 경험이 책의 배경이 되었죠. 한 아이가 제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저는 꾸중 들은 것밖에 없는데 왜 제가 잘되기를 바라죠?" 그 아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총 꾸중량이 총 격려랑보다 많은데 잘될 수가 있겠어요? 학부모 교육장에 가서 아이에게 몇 번 격려하고 몇 번 칭찬했느냐고 물어보면 칭찬은 한두 번 하거나 거의 안 했는데 혼내기는 열 번 이상 했다고 해요. 이러니 아이가 잘될 수 있겠어요? 아이가 잘되려면 총 꾸중량 이상의 총 칭찬량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저는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에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 초등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동과 청소년에게 "못한다"라는 말을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단어 모두 아이들을 평가하는 말이에요. '잘한다, 못한다'라는 말은 필요 없고 각자 취향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없어요. 사람은 다 각자의 속도와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잘했다’, ‘못했다’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고 '열심히' '진실하게' 했느냐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p. 99). 고아원을 떠난 뒤에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런 상황이 제게는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힘들게 사는 분들은 술 먹고 다투기도 하고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옥신각신하지만 잔정이 많고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요. 그런 면에서 바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가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체험이었죠(p. 126).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와 네 가구가 몇 년간 그들의 생존을 지켜 준 에스코프생협에 감사하는 뜻으로 네 농가 사이에 있는 밭 수백 평을 기증하고, 그곳에 조합원들과 협동의 집을 설립하자는 구상을 했답니다. 농민과 소비자가 마을을 지켰다는 상징물로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는 협동의 집을 건립하고 언제든지 조합원 가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생산자, 소비자가 함께 건설하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땅문서를 들고 생협을 찾아갔는데, 생협에 도착해 전무님을 찾았으나 직원들이 전무이사 소재지를 가르쳐주지 않더래요. 할아버지와 마을 분들이 알려줄 때까지 안 가겠다고 버티자 직원들이 마지못해 일러주는데 찾아가봤더니 전무와 이사들이 노점에서 확성기를 들고 감귤을 팔고 있었다고 해요. 에스코프생협은 규모가 작아 감귤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까 전무이사가 직접 노점에서 좌판을 연 것이죠. 하지만 직원들에게 당부하여 할아버지에게는 절대 알리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마음에 짐이 될까 봐. 할아버지와 마을 분들이 감동해서 대성통곡을 하며 당신들과 영원히 함께 가겠다고 하셨다더군요. 그리고 자신들은 친환경 농업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팔 곳이 많아졌으니 에스코프 생협에는 필요한 만큼만 납품하겠다고 말했답니다. 그곳 우정의 집에서 이틀을 잤어요. 우리가 이런 기업가가 된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겠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분명히 바뀌겠죠.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꿈은 현실이 될 테고, 현실이 상식이 된다면 세상은 많이 바뀌겠죠. 상식이 된다는 것은 흔한 일이 된다는 뜻이죠. 흔한 일이 되면 누구든 협동조합을 직장으로 선택하는(p. 136)것도 별일이 아닌 게 되겠죠(p. 137). 어쨌든 저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걷기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첫날 해남에서 서울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스스로 정말 뿌듯했어요. 배낭 하나 메고 혼자 걸었습니다. 잠은 모텔에서 자고 빨래는 가방에 옷핀을 매달아서 결고,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난 너무나 거룩한 여행을 하고 있어. 내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하지만 발바닥에 물집도 생기고 정말 힘들었어요. 나주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주머니께서 "어디 가세요?" 하고 묻길래 "땅끝 마을에서 서울까지 걸어갑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그런데 식당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야아~ 팔자 좋으시네요. 돈 있으니까 여행도 하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쾅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어떤 사람들에게는 꿈을 찾는 것조차 사치구나!' 그(p. 170)런 생각이 머리를 친 거죠. 그러고는 바로 여행을 접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나면 여러분 원효와 의상이 함께 당나라 로 떠난 이야기 아시죠? 원효가 동굴에서 썩은 물을 먹고 나서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 날 신라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정도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도보 여행을 멈추고 서울행 버스를 타면서 ‘나는 원효야’ 하는 마음을 먹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다시 생각하면서 제 주위를 둘러 보기 시작했죠.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그러면서 발견한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위 사진은 제가 강의할 때 프로필로 보내는 것입니다. 강의할 때 강사들은 프로필 사진으로 멋진 정장을 입은 사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저는 항상 이 사진을 보냅니다. 왜냐하면 제 꿈을 찾게 해준 사진이니까요. 서울시 일곱 개 대학 학생들을 모아 봉사활동을 다닐 때 서울 종로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 끝나고 저도 모르(p. 171)게 찍힌 사진입니다. 정말 해맑고 순수하게 웃고 있지 않나요? 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정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순간은 '봉사'할 때라는 걸 알았어요(p. 172). 저 나름의 삶의 모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웃으면서 출근하자.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웃는 사람 보신 적 있습니까? 웃으면서 출근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매일 아침 직장 가는 길이 가슴 뛰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가슴 뛰는 삶을 살자는 것이 목표이자 첫 번째 모토입니다. 두 번째, 내 자식에게 당당하게 말할 자격을 갖추자. 지금은 아이가 없지만 미래에 태어날 내 아이에게 "아빠는 이렇게 꿈꾸면서 살았어. 너도 꿈꾸면서 살아" 하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꿈꾸면서 살아야지 내 아이들에게 꿈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제가 아이들을 1년에 만 명 정도 만나요. 만나보면 아이들은 단순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철저히 감정적인 반면 자기가 싫어 하는 것에는 철저히 이성적이죠. 세 번째, 나 자신을 온전히 나로서 평가하자. 대한민국 사회는 나를 온전히 나로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명품백 들어야 하고, 이른바 SKY(서울대 · 고려대 · 연세대) 가야 하고, 스타벅스 커피 마셔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평가하자는 마음을 가지면 남들과 나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행정고시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 배가 아팠어요. 하(p. 176)지만 제가 마음을 바꾸니 너는 네 갈 길을 가라며 박수 쳐주고 저는 제 갈 길 갑니다. 우리 삶은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어요. 제가 저를 사랑하기에 저에게 나쁜 것 은 안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내 안에 사랑이 넘쳐야 남도 사랑할 수 있더라고요(p. 177). 가끔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지 않나 싶어요. 삶을 꼭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제 삶의 원칙 중 하나가 ‘항상 더 나은 방법이 있다’입니 다. 그래서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프레젠테이션 자료 같은 것도 만날 늦(p. 179)게 보내요. 분명히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p. 180).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진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대학의 서열과 수능 점수를 따라서 대학을 선택해야 하고, 좋은 순위의 대학에 입학(p. 201)해야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학생들의 이 맹목적인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왜 그렇게 서열에 목을 매는 것일까요?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마도 ‘예측’이라는 것을 선택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혹은 우리 아들, 딸이 이 대학에서 저런 전공을 선택하면 몇 년 후에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말이죠. 그런데 그 예측이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나요? 최소한 제 경우에는 예측이 들어맞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 는 예전에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였습니다. 주식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트레이더가 예측이 들어맞은 적이 거의 없다고 얘기하면 제가 완전히 능력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죠. 주식과 관련한 미래를 예측하는 게 제 전문 분야였는데 말입니다. 사실 제가 거래를 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터무니없는 근거를 가지고 주식 가격을 ‘예측’하고 거래를 합니다. 그러면 주식 가격이 너무 높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낮아지기도 하죠. 저 같은 트레이더는 그때 돈을 법니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상품은 팔고, 낮게 형성된 주식은 매입하면 되거든요. 그럼 가격은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되게 마련입니다.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주식 가격을 판단하는 개미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비단 주식시장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불확실성이 예측을 통해서 제거될 수 있나요? 여기 계신 분들은 그 렇지 않다는 걸 잘 아시죠? 지금까지 예측해왔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 맞은 적이 얼마나 됩니까? 진로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딸이, 아들이 서울대 연대 고대에 가면 큰 문제없이 직장생활을 하리라(p. 202)고 예측하시죠? 그런데 예측이 들어맞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저는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요, 과연 언제까지 명문 대학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찾을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예측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에게 위로를 줄 뿐이지 예측을 기반으로 선택을 한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예측’이 선택의 기준이 되면 지속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선택의 기준으로 예측이 아닌 '해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서른여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짧은 삶을 반추해보면서 대부분의 중요한 사건들이 아주 우연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그렇게 우연히 다가오는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해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삶을 선사해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p. 203).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전혀 모르고 전공을 선택한 거예요. 사실 우리 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잖아요. 고등학생들이(p. 209) 스스로 전공을 선택합니까?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요. '내가 이만큼 공부했으니까 이 학교 이 학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선택 같지만 사실은 우연 아닙니까? 그리고 대학 때 선택한 전공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연과 해석이 있을 뿐입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좋은 대학을 가든 못 가든 그 어떤 것도 우리 삶을 최종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도 수많은 우연 때문에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패는 아닙니다. 우연은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니까요(p. 210). 저는 행복할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계속 행복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행복이 우리 인생의 목표인가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 의미가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우리가 전진하도록 힘을 주는 것은 언제나 의미입니다. 사건을 해석하는 것은 바로 그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p. 217).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 무언가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반해서 선택을 하게 되면 수없이 밀어닥치는 우연적 사건에 의해 삶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삶에서 불확실성은 제거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게 들이닥치는 우연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석할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을 갖춘다면 어떤 우연에도 우리는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그렇게 바라보면 우연이라는 단어가 정말 좋아집니다.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니까요. 진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진로를 선택할까요? 저는 진로가 곧 직업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업은 나의 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를 하는 제게 사람들은 학위를 받으면 뭐 할 거냐고 물어봅니(p. 229)다. "공부 마치고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습니다. 그런데 “교수가 되어야죠”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교수가 되면 좋겠죠. 그리고 교수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러나 교수가 되는 것이 저의 진로는 아닙니다. 열심히 연구하고 후배들을 길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이지 교수라는 직함을 얻는 것이 제가 선택한 진로는 아닙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열심히 연구하고 후배들 길러내는 데 꼭 교수 직함이 필요한 건 아 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무엇이 되든지, 어디에 있든지 그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진로는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 어떤 직함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흐름 위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합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 위에 있는지 아는 것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역사의 흐름, 역사의 진보에 서서 어떻게 후배들에게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우연히 밀려오는 사건 하나하나를 역사적 이해를 가지고 해석할 수 있게 되고 단순한 우연을 필연적 사건으로, 곧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p. 230).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 지금부터는 대안을 이야기할 거예요. 우선 좋은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겠죠. 현재 좋은 일자리 기준은 앞에서 봤죠? 이것 이젠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기준은 그저 이상적이기(p. 252)만 하면 안 됩니다. 이상적이지만 동시에 현실 속에서 작동 가능한 것 이어야 합니다. 저희 단체는 그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제시합니다. 즉, “(제1기준) 자기 재능과 적성 활용하여 직업을 선택하고”, “(제2기준) 그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절대적 만족감을 경험하며”, “(제3기준) 가정을 떠나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이렇게 말입니다. 월급 많이 주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재능과 적성을 활용해서 그 직업으로 사회에 봉사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정도가 되면 좋은 일자리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재능과 적성 대신 점수와 등수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으로 나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 만족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할 것, 이게 현재의 좋은 일자리 기준에요. 재능, 적성 필요 없고 SKY 대학을 거쳐 대기업 들어가서 안정되고 여유 있게 살면 되는 것 이에요. 그 기준과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이 새로운 기준들만 충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기준이 허황됩니까? 아니에요. 매력적이에요. 비현실적입니까? 아니에요. 경제적으로도 독립된 생활을 한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최소한 이 정도 아닙니까?(p. 253). 상당히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거창고등학교에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그 학교 설립자인 전영창 교장선생님이 만든 계명입니다. 거창고 직업 선택 십계명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p. 262)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 직업 선택 십계명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자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장의사, 시체 염하는 사람, 그런 길일까요? 그런데 이 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졸업생이 졸업할 때 소위 ‘답사’라는 것을 썼는데 그 글도 유명합니다. 거창고 졸업생의 답사 거고인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농부가 키운 작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거고인 의사는 사람 생명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p. 263)거고인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거고인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고 거고인 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거고인 역사가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 한다. 그래서 세상은 거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한다. 분명히 교장선생님은 비천하고 위험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한 것 같은데,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건축가 농부•의사•판사 · 직공•선생님•관리자 · 기자 · 역사가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이 잘못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직업 선택의 십계명은 특정 직업을 선택하라는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직업이든 관계없이 직업에 대해서 사람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한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되 세상에 기여하라는 얘기죠(p. 264).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7-2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