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김여환 저자(글), 포레스트북스 ·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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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의사가 쓴 책이다. 직업상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그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는다. 연로하신 부모님 때문에라도 언젠가 있을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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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이 온다는 사실보다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의 신이 언제 오는가보다 불확실한 것은 없다'는 독일 격언처럼, 죽음은 말기 암에 걸린 나의 환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우리에게도 내일 당장 올 수 있다. 죽음은 자신이 찾아가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인생에서 얼마나 기막힌 일을 겪었는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자비도 연민도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마지막과 접촉해야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연예인의 일상은 꿰고 있으면서,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을 영어 단어를 외우는 데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정작 미래에 반드시 닥칠 죽음의 길에 대해서는 아무 지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p. 7) 아이러니한가(p. 8).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p. 8)거쳐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육신이 늙어 가는 것처럼 마음도 육체와 함께 자연스럽게 노화하다 수용의 단계에 이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에 호락호락하게 얻어지는 건 없는가 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음을 배웠거나 삶의 과정에서 죽음과 가까이 맞닿아 있었던 사람들은 죽음을 잘 수용한다. 내가 본 바로는 자식을 앞세운 부모나 장애인이 그랬다. 삶이 고달팠던 사람에게 죽음이 좀 더 쉬운 걸 보면 인생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다. 또, 아직 죽음이 다가오지 않은 보호자도 환자와 같은 마음의 단계를 거치는 것을 보면 죽음의 5단계는 삶의 5단계와 근본적으로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죽음은 예고편 없이 들이닥쳐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므로 폭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딱 한 번 오기 때문에 공평하다. 그 한 번을 '잘' 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배워야 한다(p. 9).

 

호스피스 의사로 있으면서 천 명이 넘는 환자들을 떠나보내며 나는 나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불행의 근원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인생 목표였던 경제적 풍요, 지적 우월, 공부 잘하는 자식, 자상한 남편과 부모는 내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었을까(p. 20).

 

나는 이곳에 와서, 편안하게 삶을 끝내는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웰 다잉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입관 체험도 해본 적 없다. 사전 의료 지시서나 유서 등으로 삶을 미리 정리해둔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거나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자연스레 긍정적인 죽음관에 이르는 것 같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워져서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긍정적인 죽음관도 나쁜 소식을 안 후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나쁜 소식을 알리는 것은 가족 사이의 정이 두터운 우리나라 사람들이(p. 31) 가장 어려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쁜 소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죽음관도 없다는 것이다(p. 32).

 

'나쁜 소식을 알면 빨리 죽는다'는 근거 없는 상식은 환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가족들은 자신의 병명을 모른 채 고통스럽게 떠나는 환자를 통해 죽음은 힘들고 무서운 것이라 인식하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기회마저 놓쳐버린다(p. 37).

 

'이제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은 인생의 큰 사건이다. 환자가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으로 숨기기만 하면 환자는 비현실적인 희망 뒤에 드러난 절망을 감내하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해버린다. 그렇게 환자는 남겨진 삶을 여행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나쁜 소식을 알고 난 뒤의 부정은 참된 긍정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그 과정은 반드시 지나간다. 죽음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등 뒤로 다가온 나쁜 소식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이 그 자체로 불행은 아니다. 나쁜 소식을 불행으 로 연결시키지 않기 위해선 떠나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슬픔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이 하얗게 화하는 것 같은 슬픔이 지나가면 평온이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떠날 사람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 서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p. 41)누고, 응어리진 일에 관해 화해하며 서로의 슬픔을 애도하고 위로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해피엔딩이다(p. 42).

 

죽어감과 죽음에 대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죽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의학적으로만 설명하자면 임종의 단계부터 임종에 이르는 시간까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임종에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먹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잠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나흘을 내리자고 잠깐 가족의 얼굴을 알아본 뒤 다시 깊은(p. 54)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몸은 탈수현상을 일으키고 분비활동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소변을 볼 수 없고 폐의 점액질이 줄어든다. 그러면서 복부의 고통이 덜해지고 구토감도 없어지고 기침도 하지 않게 된다. 몸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말기 섬망이 와서 정신이 산만해지는 일도 있는데, 그럴 때 병원은 적절한 약을 쓰기도 한다. 대체적으로는 편안히 잠든 상태처럼 보인다. 그래도 가족이 애타게 부르면 눈물을 흘리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가족들은 환자의 손을 잡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종교 음악을 틀어주거나 성경이나 경전의 구절을 들려주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수포음이라고 하는 호흡 소리가 들리는 일도 있다. 호흡은 불안정해지고 몸과 얼굴에 불수의 수축이 일어난다. 대소변이 나오지 않고 검은 눈동자는 커진다. 근육이 이완되고 심장이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임상의학적인 '죽음과 죽어감'은 사람들이 생각 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다(p. 55).

 

호스피스 병동은 삶과 죽음의 교과서다. 처음 호스피스 생활을 시작한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테두리를 벗어난 타인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배운 것은 행복, 애정, 이해, 연민처럼 따뜻한 단어들만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얽힌 돈과 사랑, 그것들이 빚어낸 갈등과 비극에 관해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죽음과 죽어감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안식이 되지만, 갈등이 있는 가족은 죽음을 비극으로 만든다. 안타깝지만 그 또한 인생인 것이다(p. 80).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그중에는 참고 견디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시간조차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결국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고, 미래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결국 삶과 죽음의 열쇠는 행복과 희망에 달려 있을 것이다(p. 122).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와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호스피스 의사가 된 뒤 신이 인간에 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모르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803년 독일의 세터너가 꿈의 신인 몰페우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약을 사람들은 마약이라고만 알고 있고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핀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준다(p. 156).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면서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을 포기하면 뜨거운 오늘이 있다. 나중에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아닐까? 오늘을 즐기는 사람이라야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삶도 즐길 수 있다. 이 순간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다(p. 187).

 

이태석 신부님의 죽음이 멋진 것은 죽음 이전에 빛나는 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남에게 기쁨을 주며 살았던 사람은 갑작스런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의 생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 중 하나는 결국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이다. 좋은 삶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해야 한다. 좋은 죽음이 좋은 삶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좋은 삶은 좋은 죽음을 상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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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7】 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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