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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부, '현대 교회론의 위기와 대안' 세미나 및 신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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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회기 총회 신학부(부장 박의서 목사)가 “현대 교회론의 위기와 대안”이란 주제로 지역별신학세미나 및 4차 신학포럼을 7월 10일 오전 10시 30분 총회회관 2층에서 개최했다.
신학부장 박의서 목사가 “신학부가 4번에 걸쳐 세미나와 포럼을 했다. 참여하신 분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계속해 총회의 신학 기조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라고 인사말했다. 다음은 인사말 전문이다.
"개혁 교회의 미래와 신학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할렐루야!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총회 산하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과 109회 신학부에서 '신학과 교회'라는 주제로 실시하는 지역별신학세미나 및 신학포럼에 참석할 모든 분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겨울의 추위도 물러가고 새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와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소망합니다. 시대는 변해도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돌아보고 세상을 향해 도전해 나가야 할 지혜와 통찰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시기에 신학부에서 지역별로 실시하는 신학과 교회 지역별세미나 및 신학포럼은 개혁주의 교회론과 본 교단 총회의 신학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에 바탕을 둔 교회론의 부재 속에 점점 혼탁해져가는 위기 상황을 돌아보며, 그 뿌리를 튼튼하게 세워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로 세상을 향해 도전해 나가는 교회와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강사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생생하고 역동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목회 현장에 실제적인 유익이 되도록 도울 것입니다. 신학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조국 교회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개혁 교회의 역사적 가치와 성경적 원리를 제시함으로 총회 산하 모든 교회가 공존할 수 있는 신학적 이해와 목회 적용 사례를 제시할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총회 산하 12,000여 교회와 목회자들이 개혁 교회의 미래와 신학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세워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신학과 교회를 주제로 하는 지역별세미나와 포럼을 위하여 수고해주신 총회 교육 전도팀 관계자들과 장소를 제공하고 후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총회와 산하 교회들을 섬기는 109회 신학부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예배는 신학부 서기 윤00 목사의 인도로 신영호 목사가 기도, 인도자가 딤전 1:12-14을 봉독했다.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값 비싼 은혜’란 제목으로 “바울의 회심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는 하나님을 오해했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목회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신다. 목회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부르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삶으로 개혁주의를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같이 우리도 붙드심을 굳건히 믿자.”라고 설교 후 총회신학정체성위원회 회계 양민호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세미나는 신학부장 박의서 목사의 사회로 총신대학 김길성 교수가 ‘박형룡 박사의 교회론의 특징과 의의’란 제목으로 “벌코프 조직신학 교회론은 110페이지에 불과하나 박형룡은 조직신학 교회론에서 415페이지로 다루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충실하게 따라 조직신학 책을 기술했다. 박형룡 박사는 창조 원리에 근거해 여성 임직에 대해 반대했다. 박형룡 박사의 조직신학은 여전히 우리 교단 신학에 유용성을 갖고 있다. 조직신학은 성경신학에 기초해야 한다.”라고 강의했다.
대신대학 임종구 목사가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현대교회의 위기와 대안’이란 제목으로 “4차 혁명 시대를 보내며 환경오염과 이상기후가 심각해지고 있다. 현대교회는 성경관에 위기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여러 차례 변경이 있었으며 이로인해 신학의 변질이 생기게 된다. 세상의 유일한 대안으로서의 교회 역할을 해야한다. 병든 도시를 품고 이웃이 되며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라고 강의하고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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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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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S, 제28회 선교사 자녀(MK) 수련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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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계속되는 한낮에 월문리 GMS(이사장 양대식 목사)본부를 찾았다. 제28회 선교사 자녀 수련회가 지난 월요일부터 다음주 화요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마침 예배실에서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30여분 그들을 지켜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만약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들이 선교사를 부모로 선택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은 부모가 선교사라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출국하거나 또는 선교 현지에서 태어난다. 성장하면서 문화적인 충격과 자기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아 선교사들이 자녀로 인해 선교 사역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선교사 자녀 문제는 관심있게 들여다 보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GMS는 1994년부터 선교사 자녀 수련회를 시작해 올해로 28회기를 맞이한 국내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선교사 자녀 수련회다.
GMS 선교사 자녀 수련회 특징은 선교사들이 주도하는 수련회가 아니라, 선교사 자녀들이 주도하는 수련회라는 점이다. 모든 스태프는 선배 MK들이며, 이들의 주도하에 수련회가 기획되고 운영된다. 또한, 이들을 지도하는 선교사 역시 MK 출신이기에,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GMS 선교사 자녀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는, 청소년기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로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심리사회적 위기라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선교사 자녀들은 다문화적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일반 청소년들보다 더 혼란스러워한다. 선교사 자녀들의 이러한 특수한 상황들로 인하여 선교사 자녀들의 정체성 문제는 일관성 있는 정체감을 형성하는 본국의 청소년에 비해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다문화적 상황에서 자기의 고유성, 소속감을 찾는 정체성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자녀들에게 정체성 확립에 대한 교육과 프로그램 즉, 수련회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의 목적을 갖고 수련회로 모인다. ① 정체성 회복 (하나님의 자녀/ 선교사 자녀/ 한국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선교사 자녀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을 발견한다. ② 신앙 회복 (믿음/ 구원의 확신/ 신앙생활): 개인의 믿음을 점검하고, 구원의 확신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③ 공동체성 회복 (GMS MK): GMS MK 공동체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며, 함께 신앙을 나누고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④ MK 네트워크 형성: 다양한 MK들과의 교제를 통해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평생의 동역자 관계를 맺는다. ⑤ 선교적 삶: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올해는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를 주제로 GMS총회세계선교회 선교 본부와 원주중부교회에서 진행된다. 대상은 GMS 청소년 선교사 자녀(중고등학생)로 학생 45명이 전 세계에서 와 참여했고, 스텝은 30명으로(대학생, 직장인 선교사 자녀) 교사 20명(정교사, 보조교사) + 진행 10명(진행, 촬영, 찬양, 의료), 총괄 3명(MK담당 선교사, MK전문 사역자)이 섬긴다.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축복의 선물은 MK(Missionary Kids)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단지 부모님이 선교사라는 이유 하나로 그 땅을 밟아야만 했던 여러분들은 마음 한 구석에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로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편 37편 25절~26절). 제가 지금까지 본 MK들은 이 말씀과 같이 축복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들의 눈물이 여러분들을 세상의 가장 귀한 보배들로 세워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 수련회 기간 7박 8일 동안 여러분들의 삶의 가장 귀한 분, 예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좋은 친구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만남을 넘어 좋은 관계로 이어져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늘 머무르는 삶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축복의 통로로 하나님의 손에 귀하게 쓰임 받아 여러분들이 발로 밟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했다.
서정수 행정사무총장은 “자녀들이 선교사 부모에게 떠밀려 억지로 참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련회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일이 많으며, 부모를 이어 선교사에 지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며 선교사 자녀 수련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선교사들이 자녀로 인해 사역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선교사 자녀와 가정에 대한 관심과 배려, 기도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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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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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도 외면하는 전광훈을 계속 추종하는 합동측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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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독교연합회관 15층에 있는 한기총 사무실에 가보니 대표회장을 역임했던 전광훈의 사진이 없어졌다. 사무실 입구에 역대 대표회장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전광훈만 사진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2020년 대표회장에서 사퇴했었다.
보수주의 단체인 한기총 입장에서도 전광훈은 지우고 싶은 흑역사(黑歷史, ‘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이다. 그럼에도 합동측에는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있다.
예장합동교단은 2021년 106회 총회에서 전광훈과 관련해 집회 참여 금지를 결의했었다. "발언 내용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신앙적 집회 참여 금지를 촉구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전광훈을 추종하는 자들을 어찌해야할 것인가? 오죽했으면 보수 연합단체인 한기총이 왜 전광훈과 절연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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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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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회,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상생과 헌신 Center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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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에 소재한 대한교회와 윤영민 담임목사는 최근 지하 1층, 지상 10층의 교육관을 신축하면서 미래세대와 지역 주민을 위해 4층 한층 전체를 헌신했다. 그 결과 7월 8일 지역 아동을 위한 서울형키즈카페 양천구 신정4동점을 개관하게 됐다. 아이들이 와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시설이다. 원래 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했으나 윤영민 담임목사의 결단과 교인들의 동의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 됐다. 윤영민 목사는 “여기 신축한 교육관의 이름은 'Center WITH'로서 하나님과 다음세대 그리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다음세대를 위해 공간을 사용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교회는 세상과 함께(with)해야 한다. 교회가 크든 작든 형편에 맞게 지역과 주민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역 주민들이 교회와 교인들을 자기들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게토)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을 위해 신축 건물 1층을 내놓은 대한교회의 헌신은 앞으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며 지역 사회를 섬기는 일에 대한교회와 윤영민 목사는 좋은 본을 보여줬다.
관련기사:윤영민목사 대한교회, 지역주민 위한 서울형키즈카페 개관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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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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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민목사 대한교회, 지역주민 위한 서울형키즈카페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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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를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대한교회(윤영민 목사 시무)가 지하 1층, 지상 10층 교육관을 신축하고, 4층을 서울형키즈카페 양천구 신정4동점으로 개관하는 기념식을 7월 8일 오후 3시 구청 관계자와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관 지하 1층에서 가졌다. 대한교회가 실버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한 곳을 다음세대를 위해 사용하는 큰 결정을 한 것으로 앞으로 교회가 위탁 운영하게 된다.
윤영민 담임목사가 “여기 신축한 교육관의 이름을 'Center WITH'로 정했다. 하나님과 다음세대 그리고 지역주민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형키즈카페는 구청 보육과와 협력으로 개관하게 됐다. 이곳을 잘 운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교회는 공간을 제공하고, 설치하는데 구청이 잘 협력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인사말했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이 “윤영민 담임목사께서 미래 세대를 키우는 일에 진력하겠다고 말씀하셔서 참으로 존경스럽다. 덕분에 이곳에 키즈카페를 설치하게 되어 감사드린다. 현재 양천구에 6번째 개관했고 올해 9번째를 개관하기 원한다”라고 개관 축하 인사말했다.
개관식은 출생장려팀장의 사회로 구립 무지개 어린이집의 합창 공연, 내빈 소개, 보육정책과장이 경과 보고 후 기념촬영하고 4층 키즈카페 시설을 관람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서울형 키즈카페 소개
아동의 놀이권이 보장되는 행복한 보육도시 양천
1. 재미•안전 보장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요!"
• 신체놀이와 창의역할놀이의 균형 있는 배치
• 연령별 신체발달 수준을 고려한 놀이기구 구성
• 주기적인 안전점검 및 소독
2. 안심 돌봄
"급할 때는 아이를 대신 돌봐드려요!"
• 36개월 이상 아동 대상
• 자격을 갖춘 돌봄요원 배치(돌봄비 2천원 별도)
3. 부담 없이, 즐겁게
"저렴한 요금으로 마음 편이 즐겨요!"
• 2시간 기준 2천원(보호자 1천원 별도)
• 2명 이상 다둥이가족, 어린이를 동반한 65세 어르신 무료
양천구 신정4동점 시설 안내
1. 주요놀이시설
• 신체놀이공간
아동의 대근육 발달을 돕고, 모험심을 기를 수 있는 그물놀이터(스카이포켓)와, 미끄럼틀, 오르기, 건너기 등으로 구성된 플레이파워존
• 창의놀이공간
인지능력 발달과 또래 유대관계 형성을 위한 칠판자석놀이, 블록•일상놀이
2. 이용대상
서울시 거주 2~6세 아동
※ 2~6세 : 2025년 기준 2019년생~2023년생
3. 이용요금
2시간 기준 아동 2천원, 보호자 1천원
4. 운영시간
월~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휴관)
평일 10:00~18:00(3회차), 토요일 09:10~18:50(4회차)
※ 회차별 2시간 이용
5. 이용방법
온라인 예약 후 이용 (이용일 기준 7일 전부터 예약 가능, 우리동네 키움포털
https://icare.seoul.go.kr/icare/indexP.do 클릭, 터치 하면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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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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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총 한국장로교의날, ‘연합과 일치 통해 새롭게 도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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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이 주최한 제17회 한국장로교의날 기념식이 7월 6일 오후 4시 대표회장 권순웅 목사가 시무하는 주다산교회에서 열려 예배하며 자랑스러운 장로교인상을 시상하고 한국장로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컬 “빛의 길”을 공연했다.
대회장 · 대표회장 권순웅 목사가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한국장로교회가 샬롬 부흥하기를 원한다. 오늘은 맥추절로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첫 열매이다. 한국장로교회는 형제이다. 연합해 하나님나라 부흥을 섬기자. 또한 빛과 소금으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며 살롬부흥하자.”라고 대회사했다. 다음은 대회사 전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샬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샬롬 제17회 한국장로교의 날 행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26개 회원교단 산하 노회와 지교회 위에 그리고 한국교회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올해는 한국 기독교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로교 연합과 일치를 위해 시작된 한국장로교의 날이 17회를 맞이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한국장로교의 날은 성경, 찬송, 교회, 주일학교, 기독교학교, 사회봉사, 해외선교, 비전 8가지 주제를 가지고 회원 교단 총회장님들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회원교단의 연합과 일치를 통해 한국장로교회의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장로교회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와 자매입니다. 한국장로교회의 하나됨을 위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여 경건과 균형잡힌 영성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17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맞아 장로교회가 더욱 하나되어 힘을 모아 한국사회에 실추된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론분열, 저출생, 고령화, 기후 환경, 경기침체, 고실업율, 외교안보 등 시급한 당면과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 선출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관계의 단절, 소통의 부재, 갈등의 심화 모두가 죄성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샬롬이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샬롬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26개 교단이 함께하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구호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장로교의 신앙을 정신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혜롭게 섬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샬롬 부흥!'을 주제로 모이는 제17회 한국장로교의 날 다함께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장로교회가 한마음되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며 새롭게 도약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제17회 한국장로교회의 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한국장로교총 연합회의 선교적 사명의 부흥을 이루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는 상임회장 이 선 목사의 인도로 기수단 기수 입장, 개혁개신 총회장 김 선 목사가 기도, 전국장로성가합창단이 찬양했다.
기장 부총회장 이종화 목사가 히 4:12을 본문으로 “말씀으로 돌아가자”라고, 마 16:18을 본문으로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자”라고, 호헌 총회장 김종주 목사가 눅 2:52를 본문으로 “부모와의 통합 예배를 통해 바른 신앙을 전수하자”라고, 대신 부총회장 정정인 목사가 마 28:29-20을 본문으로 “교회가 학교를 세워 입학하는 학생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자”라고, 합신총회장 박병선 목사가 마 28:20을 본문으로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을 의지해 다시 세계선교에 힘을 내자”라고, 합동 부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창 22:14을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붙들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굳건히 믿자”라고 주제 설교했다.
재정위원장 김재선 장로가 헌금기도, 김민숙 소프라노가 특별찬양했다.
주제 기도
합동동신 총무 강세창 목사가 ‘샬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장로교회 되게 하소서’, 개혁 총무 김순귀 목사가 ‘샬롬, 다음세대에 믿음의 유산과 소망을 이어가게 하소서’, 웨신 총무 김복래 목사가 ‘샬롬, 이 땅에 평화와 복음통일이 속히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주제기도했다.
기장 총회장 박상규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을 하고 직전대표회장 천 환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자랑스러운 장로교인상
한국장로교의날 기념식은 준비위원장 김영구 장로의 사회로 시상식 위원장 이영한 목사가 대독하고 대표회장 권순웅 목사가 목회부문 안봉웅 목사, 선교부문 이성화 목사, 교육 및 신학부문 김병훈 교수, 복지부문 정신길 목사, 기업인 부문 전우수 장로에게 시상했다.
축사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종혁 목사가 “장로교 신학은 거룩한 교회를 회복하는 기초가 된다. 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고 말씀에 굳게 서자”라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고경환 목사가 “장로교가 끝까지 노력해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라고, 한국기독교교단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선규 목사가 “샬롬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한국교회는 장로교와 함께 했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라고,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이 시대 필요한 사명 잘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예배위원장 김종명 목사와 비전선언위원장 정성엽 목사가 비전선언문을 낭독했다.
“2025년은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온지 140주년이 되고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선교 초기 교파를 초월해 선교사들이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평양대부흥 성령의 불길이 퍼져 나갔던 사실을 돌아보아야 하겠다. 신앙선배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는 제17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맞아 ‘샬롬 부흥!’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 그리고 세계를 섬기는 참된 장로교회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하나님 앞과 모든 성도들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1. 우리는 ‘샬롬 부흥’으로 한국장로교회의 회복과 연합을 이루어 거룩한 교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부터’, ‘날마다’ 개혁을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2.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지키고 장로교정치체제를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장로교회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3. 우리는 교회에서 청년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넘쳐나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믿음을 이어가게 하는 책임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4. 우리는 약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역할에 힘쓴다. 또한 자유 대한민국 정부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북한 교회 재건의 원칙을 세워 일체감을 가지고 복음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사명을 지속적으로 감당한다.
2025년 7월 6일 제17회 한국장로교의날 참석자 일동
뮤지컬 "빛의 길"
한국장로교의 날 뮤지컬은 언론위원장 박용규 목사의 사회로 “빛의 길”(한국장로교희 역사)를 공연 후 개혁 부총회장 이빛나 목사가 파송의 기도 한 후 운영위원장 강동규 목사의 알림하고 감동적이며 은혜로운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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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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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남교회, 설립101주년 맞아 몰도바공화국에 선교사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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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진주성남교회(양대식 담임목사, 총회 GMS 이사장)가 설립 101주년을 맞아 7월 6일(주일) 한인 선교사가 거의 없는 지역인 몰도바공화국에 황진우 · 박성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날 파송예배는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의 사회로 드려졌으며, 1부 예배는 서정수 GMS 행정사무총장이 설교, 2부 파송식은 허성회 GMS 선교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어진 순서에서 GMS 전 총무 박춘근 목사와 진주성남교회 영어담당 선교사 스캇 라빈슨 선교사의 축사 후 사천교회 원로 정계규 목사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은혜롭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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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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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연대, 제115차 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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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차 세계선교연대(대표 최요한 목사, 세선연) 포럼이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명동 소재 프린스호텔 컨벤션홀 2층에서 열려 예배하며 기도하고 선교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요한 세선연 대표가 “하나님이 하시면 할 수 있다. 나날이 더 좋아질 것이다. 포럼이 115차까지 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라고, 이선구 세선연 이사장이 “지난 번 아프리카에 사랑의빵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갔는데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들에게 빵을 제공하고 우물 물을 제공하고 있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선교이고 선교와 구제가 기독교의 핵심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빵공장 설립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인사말했다.
1부 예배는 총회신학원 원장 강장렬 목사의 인도로 한국시민단체 총재 고종욱 장로가 기도,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롬 13:11-14을 봉독, 일본 김보미 선교사가 특송, 조윤하 전도사가 바이올린 특주했다.
전 웨신대 총장 정인찬 목사가 '시대불변과 우리의 삶'이란 제목으로 “국내 파송 선교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최선 다해 선교하고 있다. 로마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 신자들도 시대를 잘 분별해 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일본 박영애 선교사가 헌금기도, 찬양 사역자 방근숙 선교사가 헌금송, 국제선교신문 사장 김주덕 장로가 광고 후 정인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와 인사
찬양하는 정은영 전도사
2부 선교포럼 및 사역 소개는 세선연 대표 최요한 목사의 사회로 선교사들 일동이 찬양, 신상철 목사가 “115차 포럼을 축하드린다. 이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참석하신 분들을 축복한다”라고, 국제선교협의회 회장 이종득 장로가 “이 모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저도 선교 위해 헌신하도록 하겠다.”라고, 시민단체 고종욱 총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자”라고, 박영수 목사가 “최요한 목사님과는 40여년의 인연이 있다. 공무원 하실 때도 열심히 전도했는데 이후 선교사로, 목회로 큰 일을 하시고 계셔서 축하드린다. 요 1:12 말씀으로 능력 전도하자”라고 인사말 하고, 명동국제교회 정은영 전도사가 찬양했다.
선교사 사역소개 및 발표
필리핀 김문순 선교사가 “우는 자들과 울고, 웃는 자들과 웃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최요한 목사님을 만나게 됐다. 현지에서 목회자를 세우는 일에 수고하고 있다.”라고,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가나에서 30년 사역하고 있으며 신학교를 통해 많은 신학생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100여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일본 박영애 선교사가 “일본을 위해 계속 기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라고, 태국 최정민 선교사가 “다음세대 사역과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즐겁게 선교사역 하고 있다.”라고, 일본 김정모 선교사가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곳이다. 지속적으로 일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일본 교회는 사멸하고 있는데 한국계 교회를 통해 사역자들이 배출되고 있다.”라고, 과테말라 최민기 선교사가 “한국은 선교사가 세운 나라다. 저도 선교지가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사역하고 있다.”라고 선교보고했다.
태국 송용자 선교사가 “주님의 능력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 태국도 아이들이 감소하고 있고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에 빠져있다.”라고, 칠레 김남은 목사가 “가장 착하고 욕심없는 나라가 칠레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국가라 전도하기가 쉽지 않아 수지침으로 전도했다. 현재는 은퇴해 미국에 거주하며 영육 치료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라고, 불가리아 배점선 선교사가 “아들도 불가리아에서 선교하고 있다. 70세라 교단에서는 은퇴지만 한식으로 계속해 사역하고 있다.”라고, 다빈치 조(조명원)가 “갓을 쓰고 전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권 바나바 선교사가 “탈북자 사역을 하고 있다.”라고, 이바울 선교사가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 말씀을 옷에 붙이며 생활하고 있다.”라고, 방광민 목사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화물 배달자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라고 사역보고, 열린교회 최태선 목사가 합심기도 후 주기도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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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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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수련회 둘째날, 전승덕 목사 - ‘내 교회를 세우라’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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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회기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란 주제로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월 1일부터 3일까지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개최됐다.
둘째날 특강(9)은 부회장 박근우 장로의 사회로 부회장 김흥선 장로가 기도, 부서기 허효권 장로가 마 16:16~20을 봉독, 부총무 박정수 장로가 광고, 큰빛교회 김종철 목사가 축도했다.
총회 이만교회 운동 본부장 · 전 총회 회의록 서기 · 전 전국영남교직자회 대표회장 설화교회 전승덕 목사가 ‘내 교회를 세우라’는 제목으로 특강했다. 다음은 강의 전문이다.
내 교회를 세우라(마 16:16~20)
교회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공동체, 또 나아가서 운명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신앙의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의 광활한 공간에 특별히 자기 이름을 두시기 원하셨습니다. (느 1:9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한 곳에...)
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한 곳을 원하셨는가?
출 25:22 거기서 너와 만나고 - 만남의 장소로 자기 이름을 두기 원하셨습니다.
출 29:42 내가 거기서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 말씀의 지시를 받는 곳
신 27: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 하나님과 화목하는 곳,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곳
1. 교회(성막, 성전)가 세워지기 위해서
- 유월절을 통과하라(출12장)
- 홍해를 건너라(출14장)
- 마라와 엘림을 체험하라 (출15장) 십자가의 은혜 체험
- 만나와 생수를 공급받으라 (출 16~17)
- 아말렉을 이기라 (출 17장)(기도신앙)
- 말씀을 심비에 새기라(출 20강)(말씀신앙)
2. 교회가 세워지면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마 16:18)
(벌의 원리-쏘면 죽는다. 꿀 따고 열매 맺는다)
- 지경이 넓어지고 (미 7:4)
- 복을 받고 (줄 39:43)
- 성령이 거하신다. (고전 3:16)
3. 교회의 유형
- 생명나무 교회와 선악나무 교회
- 예수 부활 전의 교회와 예수 부활 후의 교회
-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중심되어야 한다.
마 5:2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 오늘날 교회 안에
- 귀신의 가르침(딤전 4:1) - 다른 복음(갈 1:7)
- 사람의 가르침(골 2:22) - 다른 교훈(딤전 6:3)(히 13:9)
* 말씀이 증거 될 때 나타나는 현상
- 근심하며 돌아가는 가는 자(마 19:22)
- 돌을 들어 치는 자(행 7:54~)
-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행 2:37~28)
4.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배에 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주의 성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예배를 통하여 마른뼈에 살이 붙여지고 생기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진다.
2. 세상과의 관계에서 교회 존재 목적은 전도에 있다.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있다. 구제와, 봉사, 나눔과 교제다. 그러나 핵심적 요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의 대속의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 아들 사역이다.
3. 개인적 차원에서 교회 존재 목적은 훈련에 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훈련,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바꾸는 훈련이 교회에 있다. 교회 밖에서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 될 수 있다. 윤리적 사람, 도덕적 사람은 되어도 영성의 사람은 교회 안에서 신앙적 훈련을 통해 된다.
5. 현대 교회의 문제가 되는 것은?
1. 사람 중심의 교회
고전 1: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인본주의 신앙과 세속적 신앙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
2. 자기 의를 드러낼 때
행 6:1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3. 전통적 신앙관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복음전파에 율법적 전통 신앙을 가지고 와서 문제 제기.
6.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 기도할 때(행 2:1~ )
- 가르침을 받을 때(행 2:42~ )
-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성령으로 교회 일을 하게 해야 한다.
7. 교회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 5:2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결론
이 시대는 말씀의 홍수시대 속에 있지만, 아모스 8:1절처럼 말씀에 기갈을 만난 시대입니다. 이제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에 힘쓰고 은혜와 진리로 세워지면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와 아름다운 성도들과의 교제가 있어 불신자들에게 칭송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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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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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수련회 둘째날, 박노섭 목사 - ‘성전의 역사’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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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회기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란 주제로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월 1일부터 3일까지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개최됐다.
둘째날 특강(4)는 부회장 전병하 장로의 사회로 부회장 손정호 장로가 기도, 다문화선교부위원장 황진수 장로가 요 2:19~22을 봉독 후 자문위원 노호곤 장로가 색소폰 특주했다.
삼광교회 박노섭 목사가 ‘성전의 역사’란 제목으로 “첫번째 성전은 야곱이 세운 돌 제단이다. 야곱은 도망 가던 중 잠을 자다 꿈에 하나님을 만나 단을 쌓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이는 성전으로 야곱은 최초로 성전을 세운 사람이다. 이후 환난 날에 다시 벧엘로 올라가게 된다. 두 번째 성전은 모세가 세운 성막, 장막이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만들었는데 이동식 텐트였다. 하나님은 거기서 사람을 만나주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성막을 충만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었다. 세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셨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성전을 건축했다. 낙성식 때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서 하루에 세 번 고국의 성전을 향해 기도했다. 네 번째 성전은 에스겔 성전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의 자세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겔 43장에 하나님의 영광이 동문을 통해 들어오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왔다. 완벽한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섯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다. 그런데 이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솔로몬이 만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여섯 번째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신자들은 성전이 된다. 이제 건물 성전이 몸의 성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신자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것이다. 행 2:3 오순절 때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강림하셨다(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에게 임했다). 신자 개개인이 성전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러한 보여지는 현상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성전이기이 이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신다고 경고하고 있다. 성전된 우리는 성전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성도로서 성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신자의 삶은 거룩해야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에 관한 환상을 6장에서 보았다. 사도 요한도 계 7:15에서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이 땅의 성전은 하늘 성전의 그림자이다.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라는 찬송가처럼 이 땅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거룩하게 살아가자”라고 강의했다.
박 목사의 성전에 대한 강의는 구약의 성전이 어떻게 참 성전이신 예수님과 연관되고 이것이 성전된 신자와 그리고 천상의 성전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잘 설명해 성경을 통전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환기시킨 유익한 강의였다. 아울러 성전된 우리가 신자로서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강력하게 도전하는 메시지였다.
부총무 강복희 장로가 광고 후 예수열방교회 박순석 목사의 축도로 유익한 특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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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오피니언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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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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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끝날 때 결의문을 채택한다. 올해도 그랬는데 역시나 장로들은 목사들의 정년제 연장을 적극 반대했다. “우리는 항존직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우리 교단은 헌법에 항존직 정년을 70세로 명시하고 있다. 급변하는 AI시대에 걸맞게 젊고 열정이 있는 목회자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이것을 가리켜 혹자는 노(장로)사(목사)갈등이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목사 중에는 연장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 109회 총회에서 잠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로들의 벌떼 같은 항의로 곧 무효가 됐다. 올해도 정년 연장안과 고수안이 헌의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목사들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매년 연장안을 올리고 거기에 목을 매달 것인가?
사회 통념상 보면 70세까지 목회하는 것은 많이 하는 것이다. 젊어서 개척한 경우는 30년, 40년 목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40대 후반에 담임으로 나가는 지금 현실에 부임하면 25년 정도 목회를 한다. 그러면 일반 직장인 보다 많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교단마다 정년이 없거나 긴 경우도 있으니 70 정년제에 해당하는 목사들은 이래저래 심난할 것이다. 목사는 70이 넘어서도 더 목회하고 싶고, 장로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매년 총회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이는데 올해도 재탕이 될 것 같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해법은 그 어디에 있는가? 뭐든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과거 정년제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왜 그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한 이 노사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노년 정년 연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 글의온도 · 2025년)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p. 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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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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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여전히 흥미로운 마음공부, 인생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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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부터 심리, 상담은 흥미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와 관련한 책들은 꾸준히 읽고 있다. 한때 심리나 상담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어렵다고 생각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이러한 책들은 흥미롭다.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것이다.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나이든 나로 살아갈 시간이 길어진만큼 다양한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진료실에서 10대 청소년부터 90대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을 10대부터 90대까지 한평생 동안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이를 위해서는 8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여러 연령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10대부터 90대까지의 인생사를 전 체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20여 년 동안 이들의 삶을 관찰한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본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필요 한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과거의 나와 화해하자. 나이가 들면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젊은 시절 왜 그렇게 살았는지 혹은 왜 그러지 못했는지 후회하거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또 책망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해서 미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시절의 선택을 50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이를 먹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나는 그 시절보다 지혜로워졌다. 세상사를 보는 관점과 가치가 변했기 때문에 후회와 아쉬움은 당연하다. 그때 나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노력했음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50 이후에도 꿈을 가져 보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50대 이후에도 꿈이 필요하다는 것은 삶의 목표, 목적성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열정을 포기하지 말자는 뜻이다(p. 39). 5060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고 싶다'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혹은 '어떤 삶을 살고 싶다'가 될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거나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여러 차례 장래 희망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때 품었던 꿈에 대한 관심이 식기도 하고 또 좌절되기도 한다. 이처럼 무엇이 되겠다는 것은 변할 수 있으며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고수하던 사람은 그것이 좌절되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겠다는 목적, 방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좌절을 잘 극복해 낼 수 있다. 그 좌절된 목표가 그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살겠다는 것은 나의 조건과 상황이 달라져도 삶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내 삶의 목표는 내가 발견한 마음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사람들과 나누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성장을 돕겠다는 것이다. 언젠가 진료를 그만두는 날이 오더라도 그 목표는 내 삶의 중심을 잡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나이 듦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는 공부하는 자세이다. 노년의 공부는 새로운 지식이나 악기를 배우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취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인생에 대한 배움이다. 50 이후 자신을 이해하고 나이 듦에 대해 배우겠다는 의지가 우리를 성장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물론 용기를 내고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해도 나이 듦과 관련된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외모의 변화, 죽음, 은퇴, 신체 기(p. 40)능의 쇠퇴, 자녀의 독립,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나이 듦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 즉 나이 듦에 대한 태도이다. 내가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자녀를 포함한 인생의 후배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늘 내가 걸어간 발 자국은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의 삶을 통해 배웠듯이 자녀들과 인생의 후배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인생과 나이듦을 배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잘 나이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지 목표를 설정해 보자. 이것이 5060 이후 삶의 지향점이 되어 줄 것이다. 내 안의 소망을 소리 내어 이야기하거나 글로 적어 보는 것은 마음속에 품고만 있는 것과는 다른 강력한 힘을 가진다(p. 41).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심리적인 면에 있어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반복되는 실패로 수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상담받는 것조차 거부한다. 이들은 일견 성장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삶의 영역은 좁아져 있고 인간관계도 소수의 친구나 가족에 국한된다. 성취와 성장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녀의 모습에 부모는 당황하고 안쓰러운 동시 에 화가 난다. 그런 자녀를 외면하고 눈감고 살거나 억지로 끄집어내 등 떠밀어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심각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자녀를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첫째,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을 선택한 자녀들에게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형제, 친구 누구라도 그를 세상과 다시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둘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해가 중요하다. 자신의 방 안에 숨어 버린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의 실패로 상처투성이인 모습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마음을 열어 보인다.
셋째, 서로 간의 대화 즉 소통이 중요하다. 말로 하는 대화를 먼(p. 92)저 떠올리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심전심으로 전달되는 심이다. 움츠러든 자녀는 그간 반복된 상처로 타인의 시선과 감정에 민감하게, 또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아무리 친절한 말이라 하더라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진심이 전달되어야 마음을 열고 부모가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넷째, 자녀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자녀가 은둔하게 된 이유와 운둔의 상태는 다양하다. 일부는 비교적 단기간 지속되다가 스스로 회복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도 한다. 이와 달리 우울증이나 조현병처럼 비교적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잠복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은둔은 상당히 장기간 지속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 뒤늦게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다행이다. 하지만 일부는 이러한 은둔을 회복하지 못하고 후유와 장애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다섯째,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혹시 자녀의 은둔이 회복하기 어려운 장애를 남겨 앞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봐서는 많이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임은 포기와 다르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가능한 성장의 목표를 찾는 것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그것을 통해 나름의 성장을 할 수 있다.
여섯째, 자녀가 가지고 있는 장애가 심해서 앞으로 경제 활동이(p. 93)나 사회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라도 그 안에 도달 가능한 성장점이 반드시 있다. 돈을 벌 수는 없지만 삶의 기본이 되는 자조 능력을 키우는 것, 즉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설거지하는 것을 돕고 빨래와 집 안 청소를 하는 것 등도 성장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일곱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때 자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네가 문제가 있으니 그걸 고쳐야 한다라는 자세보다는 '부모와 가족 모두가 서로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할 지 배운다'는 마음으로 진료실을 찾아야 한다. 이런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압력에 시달려 왔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치료받는 것을 어린 시절에 부모 손에 이끌려 가기 싫은 학원에 갔던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진료받는 것을 자신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으니 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여긴다. 실제로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을 그들은 기민하게 알아 차리고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 자녀들이 치료를 거부한다면 우선 부모라도 먼저 전문가를 만나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모가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향후 치료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여덟째, 부모의 노력은 성실하게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가지를 하루 이틀 혹은 한두 달 실천하다가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실망하며 화를 낼 수도 있다. 그(p. 94)럴 때 '내가 이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너는 왜 달라지는 것이 없느냐' 혹은 '왜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느냐'라고 책망하기보다는, 내 마음 속에 현재 자녀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가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성장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 있다. 자녀에 대한 실망감, 미움, 분노, 화, 후회, 자책, 수치심,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식을 향해 미움을 느끼는 자신을 또 자책한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런 고통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을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먼저 공감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의 감정을 처리하는 것이다. 날것 그대로 쏟아 내거나 억눌러서 우울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의 꿈, 소망, 기대를 투영한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적인 자녀를 마음속에서 키워 온다. 이제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아 이를 떠나보내고,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료실에서는 여러 유형의 부모를 만난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어머니들을 만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내가 만난 어머니들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분들은 자폐나 지적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다. 그분들은 성장의 한계를 예상할 수 있는 자녀들과 함께 평생을 걸어왔다. 수많은 실망의 날(p. 95)을 어떤 희망과 격려로 견뎌 오셨을까? 그분들은 매일 불행감에 압도되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 오셨다. 그것이 힘든 날들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은둔해 있는 자녀를 대할 때 필요한 것은 결국 부모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의 노력으로 자녀가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마음을 써서 노력해야겠지만 그런 노력이 점차 자녀와 삶을 대하는 태도로 정착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녀의 상태가 어떻든 마음의 평화를 찾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죄책감과 자책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면 그걸 보는 자녀들 역시 마음의 짐을 안게 된다. 부모가 먼저 현재의 상황을 받아 들이고 그걸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아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작은 의미와 행복을 매일의 삶에 추가한다면 물줄기가 서서히 방향을 바꾸듯이 자녀와의 관계도 변화해 갈 것이며, 그 안에서 서로의 성장이 가능하다(p. 96).
사. 부부 싸움에는 여섯 명이 참전한다: 원가족의 그림자
부부가 싸움을 할 때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여섯 명이 싸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여섯 명이란(p. 106)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사람의 부모를 뜻한다. 이 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부부 싸움의 원인이 단순히 현재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각자의 원가족 안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부모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갈등과 상처는 성인이 되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 이로 인해 현재의 배우자에게 과거의 부모와 얽힌 감정과 갈등을 투사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의 왜곡은 부부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착각을 인식하고 걷어 내는 것이다.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 자체의 특성과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현재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부부 관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성장이다(p. 107).
부부에게 외도 문제는 함께 극복해야 할 사건이다. 상처준 사람은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상처받은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성실하게 지속적으로 보여야 한다. '성실하고 지속적'이라는 게 중요하다. 상처를 준 사람은 한두 번의 사과로 사태가 일단락되기를 바라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다.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에 되살아나곤 한다. 그러면 그 사건이 방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라서 배우자를 공격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한다. 거친 감정 표현으로 부부 사이는 다시 갈등을 겪는다. 한두 번의 사과 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상처 준 사람은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를 꺼내네요. 이제 그만할 만도 한데...도대체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재방송할까요?'라고 말한다. 배우자의 진심에 감동을 받고 그것이 쌓여서 신뢰가 회복되었을 때 상처받은 사람의 재방송은 멈출 것이다. 진정성은 외도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늘 변함없는 진심 어린 태도만이 마이너스가 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다(p. 119).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타인과의 소통은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지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을 통한 소통이다. 말이 다 담지 못하는 감정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며 이것을 알아차리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공감적 대화는 갈등을 줄이고 관계의 질을 높여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준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같은 언어를 써도 서로 소통되지 않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겉돈다. 그 말이 담고 있는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공감적인 대화가 반복되면 감정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마찰이 생기고 대화가 단절 되기에 이른다. 그런 관계는 깊은 소통과 이해에 한계가 있고 친밀한 관계로 깊어지지 못해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소개한 하버드 대학의 성인 발달 연구는 친밀함으로 맺어진 좋은 관계가 좋은 인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밝혀냈다. 50대 후반의 인생을 건강하고 의미 있게 가꾸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감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다. 공감적인 대화는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관계를 더욱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50대와 60대가 감정과 공감을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이유는, 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감정적으로 성숙해지고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은 중년 이후의 삶에서(p. 247)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이를 통해 보다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p. 248).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안이 줄어 들면서 이전보다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게 된다. 10대 아이들은 자신이 20대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30대와 40대에는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 본다.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현재의 즐거움을 미루며 산다. 하지만 50 이후에는 미지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린 시절보다는 인생에 대해서 안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 생의 멋과 맛을 알게 되는 다른 이유이다. 무엇보다 50 이후에는 이전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 그런데 어릴 때보다는 죽음이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며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두렵긴 해도 한편으로는 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삶'은 한 봉지의 비스킷이다. 비스킷을 개봉해서 먹기 시작할 때는 맛이 어떤지 몇 개나 남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는다. 비스킷을 먹으면서 책을 읽거나 TV를 시청하거나 다른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맛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다 문득 비스킷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갑자기 소중함과 아쉬움을 느낀다.그제야 비스킷을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하며 아껴 먹게 된다. 즉 나이가 들고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정하지 않으며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이별이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p. 259)을 이전보다 더 잘 음미하고 싶어지고 실제로 그럴 수 있게 된다(p. 260).
노년 초월성은 노화와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와도 연관된다. 노년 초월성의 발달이 미약하면 노년기에 이르러서도 중년기의 가치관, 신념, 관심사를 계속 유지하는데, 이것은 노년기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나이가 들면서 동반되는 변화에 대해 저항하면 절망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나이 들어서 경험할 수 있는 어려운 삶의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 토른스탐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노년 초월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인구의 20% 정도만이 높은 수준의 노년 초월에 도달한다고 했다. 따라서 지금부터 초월성을 키워 나가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 초월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읽어 보면 짐작하겠지만 영적 성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이것은 영적(p. 313)성장과 노년 초월이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명상과 마음 챙김 훈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기를 쓰는 것은 간단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은 노년 초월을 촉진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독서나 철학 탐구, 인문학 공부, 높은 수준의 초월적 성향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 종교 활동을 통한 영적 성장도 노년 초월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사진 찍기 등 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아 통합과 영적 초월을 도울 수 있다. 산책이나 등산 등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이나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봉사 활동이나 재능 기부 등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다. 친구나 가족, 혹은 동료와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불안을 줄이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다. 죽음 준비(유언장 작성, 장례 계획 등)는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남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해 준다(p. 314).
어린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이가 이해 가능한 수준에 맞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감추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알리지 않거나 그 주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아이가 그 상황을 이해하고 슬픔을 표현할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죽음을 당면한 사람들뿐 아니라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열린 대화는 필요하며 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p. 315).
죽음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는 죽음을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삶의 마지막 단계로서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만족스러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노년기 삶 전체가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p.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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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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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끊임없이 자기개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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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기개발서를 읽었다. 매우 유익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독을 권한다.
당연함을 의심할 때 혁신이 시작된다
통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이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이 책이 통념에 저항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통념을 의심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새로운 기회가 열리며 남다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은 통념의 대표적 집합체다. 오랜 세월 데이터가 축적(p. 15)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검증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통념이 늘고 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을 보자. 결혼보다 비혼을 선택하는 솔로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할까? 짚신도 짝이 있다면 결혼정보회사들이 성업할 리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은 더욱 그렇다. 가짜뉴스와 딥 페이크가 날뛰는 시대인데, 얼마든지 거짓 연기를 피울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제 통념에 저항해야 할까? 사업에서는 매출이 예전 같지 않을 때 통념을 의심해봐야 한다. 대부분은 "불황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같은 불황 속에서도 잘되는 가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보는 불황은 "기존의 상품, 서비스, 유통경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변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읽지 못한 채 낡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세상의 변화를 읽고, 기존의 통념을 깨고, 그 변화에 맞춰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사업의 본질을 바꾸거나. 방법론에 혁신을 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많은 통념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변화하는 시대에 낡은 통념을 붙잡고 있는 한, 새로운 기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p. 16).
통념을 깨는 5가지 실천법
모든 변화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통념에 저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 한다.
1. 습관적으로 하는 일의 30%를 과감히 없애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불필요한 일을 정리하라. 가짜 일과 진짜 일을 구분하고,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을 재점검하라. 정리할 일을 4가지로 분류해보자. "하지 않아야 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 "나보다 남이 더 잘할 일". 이것들을 과감히 없애거나, 위임하거나, 외주를 주어라. 그리고 비로소 그 여유 공간에 새로운 도전을 채워 넣어라. 남들은 다 하는데 당신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 늘 하고 싶었지만 미뤄둔 일들을 시작하라.
2. 성공 경험에 안주하지 마라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고,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실패 위험도 커진다. 잘나가던 개인과 조직이 몰락하는 이유는 대개 잘못된 경험과 과도한 자기확신 때문이다. 해결책은 낯섦'을 찾아가는(p. 17)것이다. 비슷한 부류보다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 자신과 상관 없던 책이나 영상을 접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딱딱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로 전환하라.
3. 생각의 자유를 지켜라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는 것도 의심하라. 모든 가설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라. 대중의 의견을 무작정 따르지 말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라. 특히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을 경계하라. 확신이란 때때로 무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4. 안 했던 일은 새롭게 시작하고, 하던 일은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1818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시 출발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화물선은 적재량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뉴욕의 해운사 블랙볼라인은 이 통념을 깼다. 벤저민 마셜은 엄청난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정시 출항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사업에서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길을 과감히 나서야 한다(p. 18).
5. 당연한 것을 의심하라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함에 머무는 것보다는 당연을 의심할 때 사업의 기회를 볼 수 있다. 위기에 처했던 레고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함'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왜 레고는 움직이면 안 될까?", "왜 어른은 레고의 고객이 될 수 없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혁신의 시작이었다. 다만 기억하라. 모든 의문은 고객의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처럼 통념에 저항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비즈니스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곳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했다. 심지어 회의 자료도 남들이 다 쓰는 파워포인트 대신 워드를 고집했다. 통념을 깨는 순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p. 19).
7. 중간이 가장 위험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중간'을 선호한다. 강의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자리는 기피하고 뒷자리는 불안해하면서, 결국 중간쯤 자리를 잡는다. 이건 무리 속에 숨어 안전을 추구하는 동물적 본능이다. 하지만 이런 '중간 선호' 심리 가 직업 시장에서도 통할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과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끊임없는 원가 경쟁에 시달리다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중간을 벗어나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강(p. 34)점, 즉 '나 아니면 안 되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중간은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불안전한 자리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인의 평균 키와 몸무게에 맞춰 제품을 만들면,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다. 평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엣지'가 있는가? 아니면 그저 수많은 진열대 위의 평범한 제품 중 하나같은 존재인가? 평균 뒤에 숨거나 안주하지 말라.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전해 보이는 '평균'이 실은 가장 위험한 자리다. 차별화가 곧 생존이다(p. 35).
9.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을 먼저 찾아라
자기계발 강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일리가 있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 말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돈 버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일이란 본질적으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남의 돈을 정당하게 받아내는 과정이 즐거울 리 없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진짜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0.01%도 안 될 것이다. 그런 행운이 당신에게 올 확률은 무척 낮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대부분, 특히 젊은이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세상(p. 38)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경험도 부족한 20대에게 이런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무슨 일이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기본적인 일조차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낭만을 즐길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전략을 바꿔보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싫어하는 일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 그 정반대 지점에서 당신의 진짜 열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먼저 실력을 쌓아라. 좋아하는 일은 그다음의 문제다(p. 39).
11. 글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난 회사원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일하는 작가다. 소설을 쓸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작업한다. 오후에는 10km 달리기나 1.5km 수영을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아홉 시에 잠든다. 이 일과를 매일 반복한다. 긴 소설 쓰기는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하다. 신체적 강인함은 예술적 감수성만큼 중요하다." 그의 작품이 연이어 히트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은 없다. 그저 44년 동안 꾸준히 소설을 써왔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의 신뢰를 얻은 것뿐이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p. 42). 여전히 달리기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달린다. 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하루키의 성 공 방정식은 단순하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글과 싸우는 것.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잘못된 통념도 많다. 가령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면 글이 저절로 나올 것이라는 착각도 있다. 진실은 다르다. 글은 치열한 메모와 자료 수집의 전쟁터에서 태어난다. 밑천이 많아야 비로소 글이 나온다. 더 중요한 진실이 있다. 글은 온몸으로 쓴다는 사실이다. 영감이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매일 아침 전장에 출전하듯 책상에 앉아 몇 시간씩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하는 일이다. 작가는 지식노동자이자 육체노동자인 셈이다. 50권이 넘는 책을 쓴 나 역시 작년에만 5권을 출간했는데, 하루키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글쓰기는 지적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육체노동에 가깝다(p. 43).
18. 책 읽는 당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
유튜브, 틱톡 같은 영상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챗GPT 같은 AI가 순식간에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독서는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활동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시대에 독서가 제공하는 고유한 가치가 더욱 빛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글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고력을 기른다. 저자의 섬세한 유머 감각을 포착하고, 개성 넘치는 표현과 문장을 만난다. 또한 읽은 내용이 머릿속의 다른 지식과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예상치 못한 통찰이 솟아나는 경험은 독서만이 선사하는 특권이다. AI는 우리에게 정확하고 즉각적인 답변을 제공하지만, 그(p. 56) 과정에서 우연한 실수로 얻는 영감이나 스스로 고민하며 발견하는 재미는 주지 못한다. 이는 마치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과 직접 요리를 실험하며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현대인의 독서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기회가 생긴다. 독서를 통해 얻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 창의적 통찰력은 점점 더 희소해지는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곧 책 읽는 당신만의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독서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탕누어의 말을 인용하자면, "전문성이란 모르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능력이다. 그런 안목이 있어야 타인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서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이러한 전문가적 통찰력과 안목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디지털 시대의 홍수 속에서, 독서는 당신을 차별화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p. 57).
24. 사람은 바뀔 수 있는가?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의견은 갈린다. 변하지 않는다는 이도 있고, 변한다는 이도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처럼 견해가 나뉜다. 대부분 자기 경험에 기대어 판단하지만, 나는 '습관'을 바꾸면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일란성 쌍둥이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중 한 명은 술과 담배에 찌든 삶을 살고, 다른 한 명은 법정스님처럼 공부와 수행에 매진한다면, 그들을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겉모습만 봐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걸 보고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논어의 ‘성상근야, 습상원야’를 떠올린다(p. 68). 사람은 태어날 때는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비슷하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그 핵심은 바로 “배움, 학습"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책과 멀어진 사람과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워렌 버핏 과 찰리 멍거가 떠오른다.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은 워렌 버핏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주주총회에서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에 통찰력 넘치는 답변을 쏟아낸다.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 역시 20년 넘게 책을 소개하고 써오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지만, 공부하면 변한다. 공부하면 유연해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고지식해진다. 변화의 열쇠는 우리 손에 있다(p. 69).
28.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모르는 것
실패한 사람에게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그것이 진실일까? 정말 그 사람의 역량이 출중한 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걸까? 하지만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너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괘념치 마라. 세상이 알아준다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너를 몰라준다고 네가 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p. 78). 나도 공감한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존감이 중요한 것이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알아줄 만하니까 알아주는 것이고. 만약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직 때가 아니거나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상품 광고와도 같다. 정말 좋은 상품은 광고가 필요 없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내고, 제품은 저절 로 팔린다. 반면 결함 있는 상품은 광고가 오히려 독이 된다. 단점이 더 빨리 드러나 시장에서 외면받기 때문이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장관 후보가 되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조용히 있었다면 모를 일을, 왜 자기를 드러내 저런 수모를 자초했을까? 스스로 한계를 알았다면 애초에 거절했어야 했는데.' 결국 진정한 실력자는 세상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실력을 쌓아갈 뿐이다. 때가 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더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p. 79).
29. 실패는 권장하되, 실수는 경계하라
혁신은 실패를 먹고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기에 실패를 권장한다는 얘기다. 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패와 실수를 구분 하는 것이다. 흔히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실수에 가깝다. 디테일이 부족하거나 준비 없이 덤벼들었다가 쓴맛을 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해 실패라기보다는 실수에 해당한다. 한 번의 실수는 용납할 수 있지만, 두 번의 실수는 이미 습관이 된 것이다. 이런 실수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반면에 진정한 실패란 치밀한 준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말(p. 80)한다. 이런 실패는 오히려 혁신을 위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에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과 경험은 다음 도전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물론 아무리 가치 있는 실패라 해도 그 횟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실패가 반복되면 개인과 조직의 사기가 꺾이기 때문이다. 지인 중 한 명은 사회 초년에 크게 부도를 낸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실패가 주는 충격과 후유증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실수와 실패를 구분 하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안일한 준비와 부족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실수는 단순한 시행착오에 불과하므로, 이는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 반면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계획하에 시도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실패한 경우, 이는 오히려 혁신을 위한 값진 자산이 된다. 이러한 의미 있는 실패에서 얻은 깊이 있는 통찰은 다음 도전의 초석이 되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결국 진정한 혁신의 발판이 된다(p. 81).
13. 착각도 때로는 약이 된다
인간은 왜 착각을 할까? 대부분 착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만, 착각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는 사실을 아는가? 《착각의 쓸모》(샹커 베단텀 지음, 반니)는 착각의 숨겨진 이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실제로 신체에 변화를 일으킨다. 미국 외과 의사 브루스 모슬리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그는 관절염 환자들에게 무작위로 플라시보 수술을 했다. 2년 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나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나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호전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수술 자체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p. 114)사의 믿음직한 말 한마디가 만들어낸 자기기만이 실제 치료 효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와인 실험도 흥미롭다. 싸구려 와인에 비싼 가격표를 붙여 마시게 했더니, 실제로 비싼 와인을 마실 때처럼 뇌의 쾌락 중추가 반응했다. 이는 현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기만이 실제 신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자기기만은 불안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때문에 착각은 단순한 오류가 아닌, 생존의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 시스템의 복잡성, 불확실한 미래···이런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전진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적정 수준의 착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성과 조직의 리더들은 종종 '과도한 자신감'이나 '비현실적 낙관'이라 불릴 만한 착각을 품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런 착각들이 만드는 미세한 균형점 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는 완벽한 진실보다 유용한 착각을 선택했고, 그것이 인류를 지금까지 생존하게 만든 진화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결국 '적절한 자기기만'이야말로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가장 영리한 생존 전략인 셈이다(p. 115).
16. 비결을 알면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온갖 비결과 노하우가 넘쳐난다. 출세, 장사, 돈 버는 법, 인간관계, 건강, 행복 등 무엇이든 그에 대한 비법을 알려준다고 난리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이런 비결을 잔뜩 늘어놓은 사람들이 정말 그 분야에서 성공 한 사람들일까? 돈 버는 비결을 쓴 사람이 실제로 부자일까? 리더십에 대해 책을 쓴 사람은 진정한 리더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더 중요한 건, 이런 비결을 접한 사람들이 과연 그대로 따라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출세 비법을 읽고 그대로 따랐다고 해서 정말 출세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비결만 알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어(p. 120)떤 일이든 전제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체력, 능력, 인품 같은 기본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채 비결만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남이 만든 비결을 참고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비결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대신 기본에 충실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좌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거치며 어느 순간 자신만의 비결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런 깨달음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비결을 접한들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진정한 고수들은 남의 비결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깨달음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수될 수 없다. 마치 등산로를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해서 히말라야 정상 정복의 체험을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당신이 찾아야 할 것은 누군가의 비결이 아닌, 자신 만의 길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통찰이야말로 당신만의 비결이 된다(p. 121).
25. 과거의 성공이 독이 되는 순간
길을 걷다 "의사 전원 서울대 출신"이란 간판을 본다. 연대, 고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광고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저 병원, 내세울 게 학벌뿐이구나. 실력이나 경험, 환자 치료 결과 같은 진짜 중요한 걸 내세우지 못하니 낡은 타이틀로 포장하는구나." 명함에 무슨 학위를 잔뜩 늘어놓은 사람도 비슷하다. 왜 작은 명함을 그토록 복잡하게 만들까? 현재의 성과나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과거의 학위로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닐까? 한 명사는 서울대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먼 훗날 당신이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면, 서울대 졸업장은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내세울 게 너무 많아서다. 하지만 성장하지 못(p. 138)한다면, 서울대 졸업장이 유일한 자랑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여전히 학벌을 자랑하는가? 스카이 대학 나온 게 그렇게 뿌듯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좋은 대학 다닌 게 유일한 자랑거리라면, 그건 꽤나 초라한 성장 궤적이 아닐까? 진정한 고수는 과거의 영광에 의지하지 않는다. 학벌이라는 허상을 내세울수록 현재의 공허함만 더 도드라진다. 역설적이게도 학벌을 잊을 때, 과거의 성공을 내려놓을 때 당신의 진짜 실력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성장의 아이러니다(p. 139).
13.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p. 176)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 177).
19. 사과를 잘하는 사람의 연봉이 높은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과를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강자는 사과를 잘하는 반면, 약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과를 피하며 고집을 부린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I am sorry" 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한다. 연봉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가 연간 2만 5천 달러 이하의 저소득층보다 두 배나 더 많이 사과를 한다 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연봉 10 만 달러 이상자의 9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소득 구간이 낮아질수록 그 비율도 점차 줄어들어 2만5천 달러 이하 소득자의 경우 52%에 그쳤다. 이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p. 188) 실수에서 배우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소득자들은 보다 총명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있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오히려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지만, 패자는 노인에게조차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탈무드의 이 말은 사과와 성공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사과는 강자의 언어인 것이다. 오직 강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과할 수 있다. 사과는 과오를 끝내겠다는 의미이자, 과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과란 무엇일까? 사과는 '쏠 사'에 '과오 과'가 더해진 단어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 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사과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면에서 잘못했는지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과는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 정작 자신은 빠져 있고, ,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어"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p. 189).
21. 몸이 마음을 결정한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나와 다른 나로 사는 건 효과도 없고 고통스러울 뿐 행복하지 않다." 이는 내가 한 때 의심 없이 믿었던 통념이었다. 그러나 백영옥의 칼럼을 읽고 나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 칼럼에서는 《프레즌스》의 저자 에이미 커디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에이미 커디는 19살에 자동차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기억력 장애에 시달리며 움츠러들어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해법은 바로 "너 자신을 속여라"라는 것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움츠러든 어깨와 가슴을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라(p. 194)고 조언한다. 즉,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스스로를 속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찾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면을 먼저 그려보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칼럼을 읽는 순간, 나는 골프선수 신지애의 일화가 떠올랐다. 슬럼프에 빠져 부진을 겪던 그녀에게 코치는 단 한 마디, "챔피언처럼 당당하게 걸으라"고 조언했다. 그 후 그녀는 본래의 기량을 되찾았다. "생긴 대로 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잘못된 모습을 진짜 자기 모습으로 여겨 거기에 머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진정 되고 싶은 모습,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상상하고 마치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의 조언은 단순하다. "위를 보고 걷자."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걷는 대신,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자신만만하게 걸어보라. 그 걸음걸이 속에 당신이 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p. 195).
24. 굴러온 돌이 있어야 박힌 돌도 득을 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걸까? 아니다. 굴러온 돌은 정체된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역사를 살펴 보면, 개방적인 사회가 폐쇄적인 사회보다 더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어야만 시민권을 부여했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마케도니아 출신이란 이유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반면 로마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들은 좋은 것이면 적의 것이라도 흡수 했고, 피지배민족인 그리스의 신들마저 받아들였다. 스페인은 달랐다. 순수한 사회를 지킨다며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배격했다. 처음엔 종교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모든 학문(p. 200)과 예술 분야로 확산되었다. 공포의 종교재판소가 커질수록 스페인은 역동성을 잃었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활력은 떨어졌다. 결국 패권을 내주고 말았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두 종류의 조직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조직, 다른 하나는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도 않고 새로 들어오지도 않는 조직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 관이 후자에 속한다. 예전에는 대기업도 그랬지만, 공채제도가 사라지며 달라졌다. 이 두 조직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정체된 조직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은 고인 물을 빼고 새 물을 넣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박힌 돌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박힌 돌을 빼내고 굴러온 돌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반짝이는 굴러온 돌들이 안주하는 박힌 돌을 자극해야 한다. 그때 박힌 돌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변화하고 발전하거나, 물러나거나.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이들 중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굴러온 돌이 계속해서 박힌 돌을 빼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조직은 발전한다(p. 201).
4. 인생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온다
인사철이면 으레 승진자가 있는 만큼 퇴직자도 생기기 마련이다. 퇴직자들에게 소회를 물으면 너무 갑작스러워 당혹스럽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60을 앞둔 임원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퇴직이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몹쓸 병에 걸려도 사람들은 "하필 나한테 이런 병이 올 까?"라며 한탄한다. 물론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무슨 일이든 오늘 일어날 수 있다"Anything can happen today." 내가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다. 우리는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나에게는(p. 222) 좋은 일만, 병은 없어야 하고, 내 자식들은 모두 잘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뜻밖의 일을 맞닥뜨리면 으레 'Why me' 라고 묻는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하고 말이다. 이는 잘못된 가정이고 잘못된 질문이다. 나만 피해 갈 수 있으리라 바라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부자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병마가 비껴가는 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늘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받아 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다. 그래야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퇴직도, 질병도, 죽음도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죽음이 그렇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과, 언제든 삶이 끝날 수 있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삶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온다. 그때 우리는 "Why not me"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방법이다(p. 223).
16. 용서의 역설: 기억해야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은 종종 "다 잊고 용서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마음먹은 대로 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잊으려 할수록 기억은 더 또렷해지기 마련이다. "다 잊었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아직 잊지 못했음을 뜻한다. 진정 잊었다면 떠 올릴 일조차 없어야 한다.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의미 있는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잊힐 순 있어도 잊을 순 없는 법이다. 까맣게 잊었 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망각이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설령 잊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용서일까? 용서의 한자를 보면 "담다, 받아들이다"는 뜻의 '용'과 "마음이 같(p. 248)다"는 뜻의 '서'가 합쳐져 있다. 즉, 용서란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것이다. 단순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떠올려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인 셈이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우르술라 누버 지음, RHK)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용서하면,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지만 있어야 할 곳. 즉 과거로 추방된다. 그럼으로써 과거는 현재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 그러므로 용서하려면 오히려 기억해야 한다. 자꾸 떠올리되, 원망이나 한탄에 빠지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 봐야 한다. 상처받은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봐야 한다. 그가 그랬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비록 그 행동이 잘못되긴 했어도, 그 심정만큼은 공감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밉기보다 불쌍해 보인다. 상대가 불쌍해지는 순간 내 마음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온다. 평정심이 생긴다. 그 일을 떠올려도 더는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때, 비로소 용서에 이른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불현듯 기억나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p. 249)것이 용서의 완성이다. 잊으려 하면 오히려 용서할 수 없다. 떠오를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용서하기 위해선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동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득 스쳐도 내 감정에 흔들림이 없다. 용서는 결국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정심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참된 용서다(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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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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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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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소송 모든 절차가 오늘로 마무리됐다. 내가 담임 사임 후 어머니 집으로 이사 온 후에 한 여자가 지하방에 세 들어왔다. 어머니 말씀에 돌싱인 것 같다고 했다. 이후 3층에 사는 나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한동안 집을 비우더니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연락이 끊겼다. 오랜 기간 기다리다 결국 집을 비우기 위해 명도소송을 했고 내가 법원에, 집행관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면서 법무사에, 집행관실에, 짐 빼는 일에, 보관비에 등등 수백만 원이 들었고 나도 시간을 뺏겨야 했다. 오늘로써 소송 건 지 약 4개월 만에, 보관창고에 있던 짐을 30만 원 들여 폐기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십년 세를 받아 생활하시는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셨다. 나야 더 문외한이다. 세를 밀리기 시작했을 때 바로 조처해야 했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간 받은 월세를 다 날려버렸다. 그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던 여자와 우연히 한번 통화가 됐다. 그 여자는 자기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여자 목소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다그치기도 애매했다. 이후 전화하니 다시는 받지 않았다. 집행관실에서 명도소송 진행 중인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여자의 초본을 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민사라 경찰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상한 세입자로 인해 손해 본 것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차카게 살자는 것이다. 남에게 선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고 살고 싶다.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면 자기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말도 있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부터 차카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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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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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이제는 공해, 자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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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나 개인이나 온라인, 유튜브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설교를 찍어 영상으로 보내는 목사들이 많아졌다. 한다리 거쳐 알게 된 목사가 주일 낮이 되면 오전 예배 때 찍은 자신의 설교를 보내오고 있다. 차단해 버렸다. 도대체 목사에게 자신의 설교를 보내는 목사의 심리가 궁금하다. 카톡에 보면 심심치 않게 자신의 설교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발 자중하시라. 타인이 설교를 올려준다면 그나마 봐줄만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설교를 올리면 참 없어 보인다.
이제 설교는 홍수를 넘어 공해 수준이 되었다. 잘 하는 설교는 찾아서 듣는다. 맛집은 골짜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다. 제발 자신의 설교를 본인이 올리는 일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 자신의 설교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들어볼만한 설교가 너무나 많은데 도대체 왜 당신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가? 막상 들어봐도 별 내용이 없으니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설교에 자신감을 갖는 설교자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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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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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얼떨결의 은혜...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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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79회이신 이정훈 목사님이 37년 4개월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용신교회를 개척해 별 탈 없이 목회 여정을 보내고 그간의 사역을 돌아보는 책 ‘얼떨결의 은혜’를 출간했다. 얼떨결에 취재하러 가서 은혜로운 원로목사 추대, 위임목사 임직식을 보고 받아온 책을 몇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한 목회자의 일생, 목회 이야기를 몇 시간 만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책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다. 목사님의 좌충우돌 개척교회 목회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모든 것이 목사님 표현처럼 ‘얼떨결의 은혜’였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An Unexpected Grace다. 담임목회 15년 하다가 중단하고 ‘얼떨결에 기자’가 된 내 입장에서 봐도 모든 것이 다 얼떨결의 은혜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시중 판매용이 아니기에 읽기를 원하시면 용신교회에 문의 전화해 보시기 바란다(031-409-7336).
이정훈 목사 원로목사 추대, 이믿음 목사 담임목사 위임, 출판감사예배 관련 기사 링크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583
3. 예수님을 만남
인쇄소 다니며 견습 과정을 거쳐 기술을 배워 정판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던 무렵, 이제 군 입대할 나이가 다가오던 1974년 가을, 직장을 마치고 올 때 집 앞에서 윗집 선배를 만났는데 "정훈아, 교회 한 번 나와" 하는 전도를 받게 되었다. 선배의 만날 때마다 "정훈아, 교회 한 번 나와라" 하는 전도를 받으면서 마음 가운데 '교회 한번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975년 2월 2일 주일 아침에 윗집에 찾아가서 "오늘 교회 한 번 가보려고 한다." 고 하니 너무 좋아했다. 선배를 따라 처음으 로 교회 갔다. 첫날부터 교회가 너무 좋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날 처음 교회를 나간 날부터 저녁 예배, 수요예배, 금요 청년예배, 토요일 중고등부 예배 모든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다. 심지어 주일 학교 예배도 나갔다. 누가 새벽에도 예배가 있다고 하여 그날부터 새벽예배도 나갔다. 내게 교회 생활은 새로운 세상, 너무 좋았다. 교회가 좋으니까 교회 가는 날, 교회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전에는 직장 중심으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교회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내가 직장을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상도 많이 받고 선배 기술자들이 '저놈은 지독한 놈이야 어떻게 젊은 놈이 놀러 다니지도 않나? 할 정도였다(p. 61). 교회를 다니면서 수요일 주일에는 직장이 아닌 교회를 우선으로 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처음 교회 나온 나에게 청년회장은 신앙생활에 필요한 권면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이원세 청년회장은 당시 서울 대학을 다녔다. 50년의 세월이 지난 그는 변호사로서 사역하고 있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대뜸 반감이 들었고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은 아직 성경이 말씀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죄 짓고 경찰서, 형무소 들어가는 그런 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안에서, 동네에서 '착하다'는 말을 듣던 나는 '죄에 대해서 회개' 하라는 말에 "나는 죄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청년회장은 이상하게 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말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나는 즉시 "지난 주에 말했는데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로는 나에게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안 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깨달음을 새벽 예배 때 체험하도록 하셨다. 나는 처음 교회 나가 모든 예배를 참석하고 새벽에도 예배가 있다고 하여 즉시 새벽기도를 나갔다. 어떻게 예배드리는지도 몰랐기에 먼저 오신 성도님들을 보면서 따라서 했다. 성도님들은 교회에 오면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p. 62). 그래서 나도 교회에 오면 머리를 숙이는 줄 알고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우선 암송을 한 주기도문을 계속 암송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에 교회에 오자마자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는데 갑자기 환상으로 스크린 같은 것이 펼쳐지 면서 청년회장과 나의 대화 장면이 나오고 청년회장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 스크린에 글자가 타이프로 치듯 글자가 쓰 였다. "죄란 무엇인가" 하면서 그 가운데 글자가 크게 두드러지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라고 쓰였다. 나는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산 것이 죄구나" 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정말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듯 한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이 몰려왔다. 죄를 용서받은 죄사함의 평안이 마음에 넘쳤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을 들으면 감사의 눈물이 흘러넘쳤다. 교회 다닌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성가대도 서게 되었고 주일 학교 보조교사도 했다. 여름성경학교 때 나를 전도한 홍경산 선배가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할 전할 때 보조교사로 뒤에 앉아 은혜받으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p. 63).
9. 용신교회 개척
수원 창훈대교회에서 사무장,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무렵, 총신신대원 79회 동창 방종현 전도사가 수원 우만동 지역에서 출석한 강소를 찾고 있었는데 동창인 나에게 연락이 와서 들이 함께 지역을 돌아보며 개척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방종현 전도사가 함께 동역 개척하자는 제안에 내가 수락하였고 갑자기 교회 개척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담임목사님인 한명수 목사님에게 상의를 못한 것을 보면 목사님이 외국 출타 중이든지 교회에 계시지 않았던 것 같다. 상의 했다면 목사님은 반대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두 전도사의 동역 개척은 교회부지는 내가 아는 집사님 땅을 빌리고 내가 아는 건축하는 집사님이 교회를 건 축해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기공 예배도 드리고 '다사랑교회'라는 교회 이름도 지었다. 반지하 본당에 위에는 똑같이 설계된 두 집이 지어졌고 가운데는 공동 서재도 만들었다. 성전을 짓고 개척 예배도 드리고 은혜롭게 공동 개척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목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본래 교회 건축하고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방종현 전도사의 지인 권사님이 '개척하면 교회를 지어 주겠다'로 시작되었다(p. 90). 하지만 2400만원 든 건축비용에 못 미치는 1000만원 헌금만 해 주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200만원까지 해서 1200만원이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져 공동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개 월이지만 교인들도 양분된 상황이었다. 나를 따라온 사람들, 방 전도사를 따라온 개척 멤버들, 그래서 방종현 전도사가 맡아서 교회를 잘 정리하기로 하고 나는 떠났다. 창훈대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던 손충식 목사님이 목회하는 아주대 앞에 있는 경성교회로 옮겨 부교역자로 사역하게 되었다. 경성교회에서 청빙한 사역이 아니었기에 1년을 무보수로 사역했다. 그곳에서 강도사 인허도, 1987년 가을에는 목사안수도 받았다. 경성교회에서의 1년 사역은 비록 무보수에 어려운 여 건이었지만 청년부를 맡고 교회 여러 가지 사역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새해 1988년을 맞이하는데 손충식 목사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이 목사 개척을 하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부 교역자로 내정해 놓은 친구 사역자가 있어 나까지 부교역자로 임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전혀 경험이 없는 나는 개척교회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경성교회에서 계속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손 목사님과 함께 안산이라는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는 전도사님이 안산에 개척 교회를 하려고 지하실을 계약했는데 무엇인가 잘못되어서 계약이 중단된 상태인 건물이었다. 안산 지금의 상록수역 근처 가구거리 중간쯤 되는 건물 지하였다(p. 91). 안산이 신도시로 개발되고 도로가 정비되고 건물이 몇 개 지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직 동네가 형성되지 않았다. 손 목사님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야 전망이 좋다"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는 순간 속으로 말했다. '전망 좋으면 자기가 와서 하지 집도 몇 채 없고 동네도 없는데 무슨 전망이 좋아'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 개척교회가 뭔지? 어떻게 개척교회를 해야되는지 모르지만 안산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전세 800만원인데 수중에는 전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만원으로 계약했다. 우선 보증금 500만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에 있던 창훈대교회 사모님께 500만원을 지인을 통해 빌려 달라고 부탁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100만원으로 지하실을 꾸몄다. 지하 3분의 1을 막아서 예배실과 사택을 꾸몄다. 지인의 도움으로 강대상과 필요한 시설을 만들었다. 1988년 1월 8일, 드디어 안산으로 이사 오는데 바람이 몹시 불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 다섯 살, 이제 막 여덟 살, 여섯 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1988년 2월 24일이 개척 예배를 드렸다. 교회 명칭은 동네 지명을 따라서 지으려고 했는데 확정된 지명이 없었다. 당시 공사중이던 전철역이 '용신역'이다.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인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따서 용신역으로 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 이름을 '용신교회'로 지었다(p. 92). 막상 개통될 때는 '상록수역' 전철역이 되었다. 사람의 이름 보다 '상록수‘가 소설로 많이 알려졌기에 상록수역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도 감사한 것은 용신교회 이름은 전국에 단 하나뿐인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세워주신 용신교회, 이 용신의 이름 에는 아주 중요하고 좋은 세 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 얼굴 용자에 믿음 신으로 [믿음의 얼굴], 또 쓰일 용에 믿음 신으로 [쓰이는 믿음], 그리고 용신할 수 없을 만큼(마가복음 2장 2절) ‘많이 모이는 교회’라는 뜻으로 정리했다(p. 93).
교회가 아름답게 건축된 후 하나님은 더욱 부흥을 주셨다. 주일 낮 예배드리는 성도가 200명에 달했다. 이때 하나님 앞에 앞으로의 목회에 대한 비전을 구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보내 주신 교인들을 관리하는 관계 목회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울 것인가? 이번에도 하나님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목회가 아닌 「건강한 교회」에 대한 도전 을 주시면서 성도들을 영적 지도자로 세우는 「훈련 목회」를 시도하도록 하셨다.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양육, 훈련과정을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NCD - 자연적 교회 성장을 만나게 하셨다. 독일의 슈바르트 박사가 교회의 영적 건강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와 함께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셀 교회 시스템」이 소개되었다. 한국교회의 셀 교회의 전파자라 할 수 있는 빌백햄 목사와 셀 교회 이론을 정리하여 셀 교회 아버지라 불리는 랄프 네이버 목사의 방한으로 「셀 교회」 컨퍼런스가 여러 차례 열렸다. 교회마다 목회자들 사이에 건강한 교회와 교회 본질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p. 107).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세미나, 컨퍼런스, 소그룹 모임 등에 참석했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 「셀 교회」의 비전을 품고 교회에 비전을 선포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전통적인 교회의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에게는 훈련받는 신앙생활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 파장으로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났다. 그래도 성경적인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꿈꾸며 훈련과정이 시작되었다. 2년의 양육과정을 통해 성도들이 변화하는 것 같았다. 사명감에 불타고 뜨거운 열정들이 생기는 듯했다. 그래서 마음이 흥분되었다. 셀리더 양육과정 1기를 마치고 졸업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나 2기, 3기, 4기 기수를 거듭할수록 양자는 줄어들었다. 결론을 말하면, 교회가 기도의 동역화, 전도 집중에 실패하면 무슨 프로그램도 열매 맺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변화될 줄 알았던 셀리더들은 원위치로 돌아갔다. 셀리더가 목회자의 마인드를 갖고 셀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전처럼 친교 모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셀 교 회에 대한 명칭이나 시스템은 그대로 사용하고 전통교회의 형태로 다시 돌아갔다. 성가대를 다시 세우고, 남전도회 • 여전도회 조직도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용신교회 첫 장로님을 세우고 당회를 조직했다. 조직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 위해서였다(p. 108).
나는 교회 생활에 대한 경험도 체계적인 말씀 훈련도 영적인 체험도 없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래서 행인지 불행인지 뭔지를 모르고 그냥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그런데 하나님이 다 하셨다. 믿음대로 해 주셨다. 감사할 것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는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감사합니다](p. 115).
22. 교회사역 마무리 새로운 사역의 출발
이제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우리 용신 교회에서 [이정훈목사 원로 추대식과 이믿음목사 위임식]이 진행된다. 이로써 1988년 2월 24일 용신교회를 설립하고 목회해 온 37년 4개월의 용신교회 담임목사의 사역을 내려놓는다. 많은 목사님이 교회 사역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이 하셨다'고 모두 말한다. 나 역시 '하나님이 용신교회를 시작하셨고 여기까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뿐이다. 1987년 목사 안수 받고 어느 교회에서도 사역자로 불러주지 않고 교회를 개척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게 된 교회 개척이었다. 그때 어느 교회든 어느 목사님이든 [우리 교회에 와서 사역을 하라]고 했다면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부교역자 사역을 했을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모르겠고 열심히는 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전부니까. 그런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개척을 하게 하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교회 개척을 하도록 다른 사역지를 주지 않은 것 같다. 용신 교회 37년 사역은 무엇도 모르고 무조건 이것저것 열심히 한 것 뿐이다. 열심히 배우러 다니고 열심히 가르쳤다. 좋다고 하는 것은 가서 배웠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쳤다. 물론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지만 열심히 가르친 것은 사실이다(p. 203). 성도들이 잘 배우든 못 배우든 나는 모른다. 나는 배운 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왜냐하면 나와 같이 배우려 다니고 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다 가르친 목회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상황, 받아들이는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나와 같이 훈련받았는데 교회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목회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목사님 판단에 배운 것이라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르치고 싶은데 교인들 의 반대로 가르치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목회자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한다면,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역에 힘을 낼 수가 있겠는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함께 훈련받고 미국 비전트립을 함께 다녀와서 큰 꿈과 기대를 가지고 교회 목회에 적용해 보려고 했다가 교회에서 쫓겨나는 상황도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이 배움을 허락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고, 후회가 없다.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봤으니까. 누구도 방해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속으로, 뒤에서는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좋아서, 원해서 배우고 따라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럼에도 목회자를 믿고 따라와 주어서 감사하다. 나는 하나님이 마음에 주신 것을 거의 다 한 것 같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교회가 크게 부흥했을까? 그것은 나도 모른다(p. 204). 때론 부흥하다, 때론 한꺼번에 떠나기도 했다. 한꺼번에 35명, 90여명으로 교인 수가 늘다가 두 번째 교회를 지을 때 한꺼번에 교인 33명이 떠났다. 어떤 때는 60명이 이렇게 저렇게 떠났다. 교인이 몰려오는 것도 한꺼번에 떠나는 것도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부족함, 나의 문제점 때문에 떠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야 한다, 맞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해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그런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이다. 어떤 성도가 우리 용신교회에 왔다가 떠났다. 이사 가야 할 형편 때문에, 교인 간에 시험이 들어서, 목회자의 목회 방향이 맞지 않아서 등등 많은 이유로 우리 용신교회를 왔다가 떠났다. 지금 37년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는 생각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찬송가 가사처럼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유기는 후 물로나 혹 불로나 정결하게 하옵소서 이것을 고백하며 목회 사역을 마무리할 뿐이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p.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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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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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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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면서 캐논 카메라와 일반렌즈, 망원렌즈, 플레쉬를 구비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약 3년간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일반 카메라 만큼의 화질은 나오지 않더라도 봐줄만 하기에 카메라를 내려놨다. 둘째, 기사의 신속성을 위해서다.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 메모리카드를 꺼내 편집하고 전송하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스마트폰은 찍자 마자 편집해서 좋은 사진을 골라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량의 사진을 실어 기사를 만드는데 편리하다. 셋째, 행사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줌으로 당기면 많이 확대 된다. 굳이 앞에 나가지 않아도 앞 자리에 앉아서 찍을 수 있다. 일반 카메라는 줌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에 나가서 찍어야 한다. 결국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하다 보면 앞에 나가 사진 찍는 기자들에게 한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행사 분위기를 망치고 앞자리를 차지해 자신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 장비를 두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고 괄시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기자는 사진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내용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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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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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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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가서 순서지를 보니 수많은 순서가 있었다. 다른 협의회나 행사를 가도 순서가 어지러울만큼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세세하게 취재하는 입장에서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중부협의회 고문단에는 좋은 전통이 있다. 대상자 모두 나와서 함께 인사하고 그 중 한명이 대표자로 격려사나 축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그렇게 했다.
6월 27일 있었던 중부협 정기총회의 고문단은 총 10명으로 하귀호 목사, 박신범 목사, 문세춘 목사, 정진모 목사, 김인기 목사, 박춘근 목사, 오범열 목사, 김정설 목사, 강의창 장로, 노병선 장로이다. 이날은 오범열 목사가 대표로 “강문구 대표회장께서 많이 수고하셨다. 김종원 목사는 많은 것들을 갖추셔서 존경을 받으신다. 중부협을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라고 짧지만 필요한 격려사를 했고 이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고문단 한명씩 발언했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행사를 취재하러 가다 보면 “말잔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들어갔나”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설교나 격려사나 축사나 짧게 하자. 그것이 참석자들에게 박수 받는 방법이며 다음에라도 초청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도 어느 행사를 취재하고 있는데 순서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 시간이 초과 되어 뷔폐 음식을 준비한 업체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다. 나 또한 배가 고프다. 순서자들의 수많은 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기자가 감당해야할 직업의 애로사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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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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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만드는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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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악수를 하는데 뒷맛이 씁쓸한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악수를 하며 정작 눈은 딴 곳을 쳐다본다. 이런 경우가 제일 많았고 제일 기분이 상했다. 마지못해 악수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악수를 할 때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악수는 하면서 얼굴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면 ‘이게 뭐하자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당해보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또 악수를 건성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당한 힘으로 악수를 하는 것이 정석인데 마지못해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 또 적당한 시간 쥐고 있다가 풀어야 하는데 급히 손을 빼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이럴려면 왜 악수를 하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갔다가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기분이 상해 돌아오는 길에 악수에 대해 검색해 보니 적절한 글이 있어 실어 본다. 악수 하나가 상대방과의 관계에 좋고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제대로 악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올바른 악수 방법과 주의해야 할 점
악수는 원칙적으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악수로 격식과 사람 간의 친근한 정을 함께 담는 매우 중요한 행위로 여겨집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국제적인 인사인 악수는 가벼운 인사나 존경, 혹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화해의 뜻으로 주고받곤 합니다. 악수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으며, 악수에도 기준과 예절이 있는데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상대방에게 신뢰감과 호감을 주는 제대로 된 악수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악수란? 악수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이후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의식적인 행위로, 대개는 만날 때, 헤어질 때, 축하할 때, 합의를 끌어냈을 때 행해집니다. 악수는 선의를 보이기 위한 것이며, 서양의 인사방법으로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가야 할 악수의 유형
1. Dead Fish 악수
손을 상대방에게 맡겨놓고 정작 자기는 손에 전혀 힘을 주지 않는 형태입니다. 죽은 사람의 손을 만지는 기분이 드는 악수 형태로, 본인의 감정을 전혀 전달하지 않고 있어 도리어 기분이 나빠지는 악수 유형입니다. 무성의하게 느껴져 악수를 받는 상대방까지 힘이 빠지는 악수 방법입니다.
2. The Glove 악수
Dead Fish 악수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악수할 때 상대방의 한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꼭 쥐고 마구 흔드는 악수 유형입니다. 이 악수 방법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는 느낌을 주게 되는데요. 상대방이 같은 느낌이 아닐 때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며, 서양에서는 아예 피하고 경계하는 악수 방법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혼합형 악수
상대방의 손을 잡은 채로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를 하는 악수 유형입니다. 손을 잡는 것은 서양식이고 허리를 굽히는 것은 한국식 인사로, 귀한 손님을 만나거나 할 때 동서양 인사를 혼합한 악수 방법입니다. 몸을 살짝 숙이는 것은 호감과 존경의 표시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숙이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게 되고, 서양 사람에겐 당혹감을 줄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Bone Crush 악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세게 손을 잡는 악수 방법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힘을 주어 악수를 하는 것은 당신을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전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악수할 때 주의해야 할 점
1.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는 것은 호감의 표시일 수 있지만, 몸을 너무 많이 앞으로 숙이지 않아야 합니다.
2. 2~3초 정도 살짝 손에 힘을 주어 잡고 호의를 표하는데, 손을 잡고 과하게 흔드는 것은 경망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3.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은 손수건을 준비하고, 바지나 상의 등의 옷에 닦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 슬픈 일이나 좋지 않은 일에서는 절대로 악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조문 시 상주와 악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올바른 악수 방법
1. 올바른 악수 자세
먼저, 악수할 때는 똑바로 선 자세로 오른손을 내밀어 자연스럽게 손을 쥐는데, 손바닥이 다 닿도록 잡아야 합니다. 허리는 곧게 펴고 바르고 당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상사나 연장자면 10~15도 정도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시선은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주목하도록 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는 것이 좋습니다. 악수는 왼손잡이라 할지라도 오른손으로 악수해야 하며, 두 손이 맞잡는 것이 아닌 한 손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상대방이 나이 차이가 크게 나거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면 왼손으로 악수하는 손을 가볍게 받치는 것으로 정중함을 나타냅니다.
2. 악수 예절
악수를 청할 때는 언제나 일어서서 해야 하며, 여성이 남성에게,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먼저 청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남성은 악수할 때 장갑을 벗는 것이 예의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 때 당황하여 장갑을 벗느라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양해를 구한 후 장갑을 낀 채로 신속하게 악수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성은 실외에서 악수하는 경우 장갑을 벗을 필요가 없이 낀 채로 해도 무방합니다. 악수할 때는 손을 세게 잡고 오래 흔들거나 너무 느슨하게 잡거나 손끝만 가볍게 쥐는 것, 모두 결례입니다. 적당히 힘을 주어 잡고 두세 번 흔드는 게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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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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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튜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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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빛과소금뉴스방송’의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잘 나가는 유튜버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이렇게 구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어느 때 부턴가 신문 기사의 한계를 느끼며 동영상을 첨부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 30분에서 1시간의 설교나 강연을 다 기록할 수 없어 요약해서 정리한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많아 동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동영상을 통해 먼저 내가 유익을 받는다. 좋은 설교나 강의를 유튜브에 올리면 언제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찍다보니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뜻하지 않게 어느 분의 마지막 동영상이 된 경우가 있었다. 행사에 가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얼마 있다 그분이 베트남으로 선교 가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그나마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긴 것이 다행이었다. 또한 동영상을 보고 댓글로 어느 분과의 추억을 올리는 경우가 있어 그때는 캡쳐해서 당사자에게 보내준다. 유튜브를 통해 오래 전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요즘은 동영상이 대세이다. 나만해도 TV를 잘 안 본다. 유튜브에 올라온 뉴스를 보고, 그 외 다른 많은 동영상을 본다. 그러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유튜브에 쏟지 않기 위해 신경쓴다. 넋놓고 보면 하루 종일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전세계에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이 하루에 60년치라는 것을 듣고 아찔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그만큼 많은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러니 유튜브를 멍하니 보다가는 그것으로 인생이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적당히 보다가 다시 책을 든다. 유튜브 시청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라 생각할 틈을 별로 주지 않기에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욱 책을 읽어야 한다.
얼마전 행사장에 가서 동영상을 찍는데 설교자가 안 찍었으면 하기에 중단한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으로 많이 시달렸기에 동영상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런데 설교를 들어보니 문제 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이처럼 필요하면 동영상을 찍지 않거나 편집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방법도 동영상이다.
이제는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나 녹음기로 그 누구나 녹화, 녹음할 수 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는 말대로 좋은 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동영상을 잘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1인 3역을 하다 보니 바쁘다. 동영상 찍으랴, 순서자 다 사진 찍으랴, 설교나 축사 등 발언 받아 적으랴 바쁘다. 늘 앞자리에서 분주하다. 그리고 기사를 빨리 작성해 올리느라 바쁘다. 가능하면 동영상을 첨부해서 기사를 올리나 급하면 먼저 기사를 올리고 동영상은 나중에 첨부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기사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동영상 촬영은 계속 될 것이니 많은 관심과 구독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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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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