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두 번째 미술사-박재연 저자(글), 한겨레출판사 · 2025년


9791172133221.jpg

    

가볍게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술가들의 이면에 있는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영웅시되고 또는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언제나 이런 책이 재미있다.

 

신문사로고2.jpg

 

고흐의 명성이 사후에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 반 고흐 봉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형의 죽음 직후 테오마저 요절하자, 요한나는 고흐의 유작과 서신을 정리하며 형제의 편지를 엮은 《반 고흐 서간집》을 출간했다. 이를 통해 고흐는 단순한 인상주의 화가가 아닌, 내면의 고뇌와 예술적 열정을 지닌 비극적 천재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요한나는 고흐의 작품을 유럽 각지의 전시에 출품하며 그의 신화를 의도적으로 만들어갔고, 이러한 노력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과 맞물리며 고흐를 '잊힌 거장'에서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끌어올렸다. 고흐가 '고통받는 천재'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데에는 당시 예술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낭만주의 이후 예술가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세속과 타협하지 못하는 순수한 존재, 혹은 사회에 의해 오해받는 비극적 영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고흐는 그러한 인식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생전에 정신 질환을 앓았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귀를 자르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일화는 그의 예술적 고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강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색채와 고통은 분리되지 않은 채 수용되었고, 이는 20세기 대중문화 속에서 고흐를 '예술가-순교자'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앞서(p. 16) 말한 대로 《반 고흐 서간집》은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수많은 전시와 평론, 영화와 소설, 심지어 팝송까지 고흐를 현대인의 정서적 우상으로 만들었다. 고흐는 더 이상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삶과 예술, 고통과 창조의 상징이 되었다. 고흐의 명성은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미술 시장에서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게 된다. 198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붓꽃〉이 5,39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고, 1990년에는 일본의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 달러에 구입하며 또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에도 고흐의 작품은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상징적인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꾸준한 수요와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제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전 지구적 문화 자산이자 시장 가치가 입증된 하나의 예술 브랜드로 기능하고 있다(p. 17).

 

미술사학자 낸시 모울 매슈스Nancy Mowl Mathews 역시 "고갱은 마치 에로틱한 에덴을 발견한 양 세상을 속였지만, 실제 그는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묘사한 낙원은 허구일 뿐"이라며 신화 너머의 고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고갱은 유럽에서 부인 메트를 학대해 가정을 파탄 냈고, 타히티에서도 현지 주민 및 프랑스 식민 당국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켰다. 말년에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경찰과 성직자들에 의해 '문제 인물'로 지목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는 고갱이 편지와 저작에서 그린 '남태평양의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자화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폴 고갱의 타히티 생활은 모순으로 가득한 이중적 삶이었다. 그는 문명을 떠나 낯선 땅에서 창작의 자유를 추구하며 빈곤과 병고에 시달렸고, 실제로 고독하고 힘겨운 말년을 보냈다. 그러나 타히티는 결코 '오지'가 아니었고, 고갱 역시 완전히 현지에 동화된 예술가라기보다는 식민 사회의 이방인으로 서구와 원주민 세계를 오가는, 복합적 위치에 놓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히티의 현실을 왜곡했고, 상상 속 원시 낙원의(p. 39) 신화를 창조해냈다. '타히티의 고갱'은 결국 고된 현실과 이상화된 환상이 교차하는 인물이다. 신화의 껍질을 벗겨보면, 그가 남긴 찬란한 색채와 풍경 뒤에는 병든 몸과 외로운 정신, 그리고 식민적 시선으로 형성된 왜곡된 '낙원'의 초상이 자리하고 있다. 고갱은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그 예술이 만들어진 배경 역시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 속 타히티는 예술적 열매이자 식민적 욕망이며, 예술가를 이해하는 그간의 방식이 남긴 문제적 유산이다(p. 40).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켈란젤로가 만년에 다수의 스케치와 밑그림을 스스로 불태웠다는 일화다. 그는 제작 과정의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작품이 마치 신의 손에서 '완성된 상태' 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이는 또한 '천재'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자기 신화 전략의 일부였다. 즉, 서명뿐 아니라 '과정' 자체를 감추는 것 역시 자기 연출 방식이었던 셈이다(p. 64).

 

 

KakaoTalk_20230919_112218604.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북토크375】 미술가 이면의 흥미로운 사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