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케이틀린 도티 저자(글) · 임희근 번역, 반비 ·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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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 여자 장의사가 세계를 돌면서 장례문화를 살펴보고 쓴 책이다. 태어난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많은 국가와 문명이 다양한 장례예식을 갖고 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더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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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저스 커피통에 담길 만한 양의 유해만 남기는 전형적인 상업적 화장에 비하면 이 잿더미에 쌓인 재가 확연히 더 많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리는 이 뼈를 '분쇄기'라 불리는 은색 기계에 넣고 갈아서 "알아볼 수 없는 뼛가루가 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유가족에게 좀 더 크고 알아볼 수 있는 뼈를 돌려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로라의 친구 몇몇이 재의 일부를 갖고 싶어 했고, 남는 재가 있다면 장작 주위의 언덕이나 산속 깊은 곳에 뿌리게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걸 좋아하셨을 거예요." 제이슨이 말했다. "이제 엄마는 세상 어디에나 계셔요." 나는 어제 화장 후 뭔가 달라진 게 있느냐고 제이슨에게 물었다. "지난번 여기를 방문했을 때는 엄마가 장작불을 보여주려고 저를 데려오신 거였어요. 전 혼란스러웠죠. 내가 나중에 저기(p. 46) 저 벤치에 앉아서 우리 엄마를 혼자서 화장하겠구나 생각했어 요. 너무나 병적으로 보였어요. 사흘 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러 크레스톤에 가고 있나 생각하니 끔찍하더군요. 하지만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네가 오든 안 오든, 이게 내가 내 몸을 위해 선택 한 거란다.'" 제이슨이 어머니 시신을 밤새 지키기 위해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장할 때가 되자 그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어머니를 사랑했던 모두가 그를 기꺼이 지탱해주었다. "그게 내 맘을 움직였어요. 그게 바로 달라진 점이죠." 잿더미 위에 구부정히 몸을 굽힌 채로 맥그리거가 로라의 아들 제이슨에게 그들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는 열을 가한 다음에 뼈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작은 뼛조 각을 손으로 직접 부수면서 보여주었다. "이게 뭐죠?" 제이슨이 잿더미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끄집어 내며 물었다. 그건 로라의 시신을 장작더미 위로 가져왔을 때 로라가 차고 있던 스와치 시계의 반짝이는 앞면이었다. 장작불의 열 때문에 구부러져 무지갯빛을 띤 시계는 오전 7시 16분에 영원히 멈춰 있었다. 장작불이 로라를 집어삼킨 바로 그 순간이었다(p. 47).

 

스페인은 사후에 대한 개념을 거의 친환경적으로 구성하는 데 능하다. 우리는 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는 중에 숲을 지나쳤다. 물론 지중해와 이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로 이뤄진 숲이다. 로케스 블란케스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주위에 가족들의 재 다섯 함을 묻어, 그야말로 그 나무를 '가족 나무'로 만든다. 그들은 스페인 최초로 이런 선택권을 주는 묘지이다. 로케스 블란케스의 가족 나무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디자인 회사가 만들어 널리 인기를 얻은 생물 분해성 유골 단지 '바이오스 언'과 비슷하다. 여러분은 아마 SNS에 이 유골 단지의 광고가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이오스 언은 커다란 맥도널드 컵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는 흙과 나무씨가 들어 있고 화장한 유해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 바이오스 언에 관한 가장 인 기 있는 기사 중 하나는 "이 놀라운 유골 단지로 말미암아, 당신은 죽어서 나무 한 그루가 될 것입니다!"이다. 참 좋은 생각이고, 실제로 제공된 흙에서 나무가 자랄 수도 있지만, 섭씨 980도가 넘는 화장 과정을 마치고 남은 뼈들은 무기물인 단순 탄소가 되어버린다. 유기적인 모든 것이(DNA 포함) 타버려 미생물이 남아 있지 않은 재는 이미 식물이나 나무에 아(p. 146)무런 쓸모가 없다. 물론 영양소가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배합은 식물에 전혀 적합하지 않고, 생태적 순환에도 기여할 수 없다. 바이오스 언 회사는 유골 단지 하나에 145달러를 받는다. 바이오스 언이 가지는 상징성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상징적이라 하여 사람이 나무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p. 147).

 

폰타넬레를 묘지라 부르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실제로는 하얗고 널찍한 지하 동굴, 정확히 말해 응회암 채석장보다(p. 200) 조금 나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응회암 동굴은 17세기의 흑사병 희생자부터 1800년대 중반에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까지, 나폴리의 가난하고 이름 없는 망자를 묻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1872년에 가에타노 바르바티 신부는 폰타넬레 묘지에 쌓인 뼈들을 정리하고 순서대로 모으고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나폴리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 일을 도우러 왔다. 그들은 한쪽 벽에 두개골을, 다른 한쪽 벽에는 골반뼈를 쌓는 일을 하면서 착한 천주교도들이 으레 그렇듯, 이름 없는 망자를 위해 기도했다. 문제는 두개골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름 없는 두개골을 둘러싸고 헌신적인 숭배가 일어났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들의 '페젠텔레', 즉 '가엾은 사람들'을 찾아 폰타넬레 묘지에 오곤 했다. 그들은 몇몇 두개골들을 '골라' 깨끗이 닦고 그들을 숭배하는 사당을 세우고 봉헌물을 갖다 놓고 잘되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새 이름을 갖게 된 두개골은 주인의 꿈속에 나타나곤 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969년에는 나폴리 대주교가 망자 숭배는 '이단'이며 '미신'이라는 칙령을 내리고 이 묘지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교회에 의하면, 연옥에 갇힌 영혼들(이곳에 있는 이름 없는 망자들 같은)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지만, 이름 없는 망자들이 산 자에게 호의를 베풀 만한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산 자들은 자신의 삶이(p. 201) 달라지길 바라며 간청했다.

학자 엘리자베스 하퍼는 망자를 숭배하는 움직임이 사회적 갈등의 시기에, 특히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전쟁에서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하고 눈에 띄게 크게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 여성들이 "가톨릭교회 내에서 권력과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안드레스 베도야였다. 그는 미국에서 1만 461킬로미터나 떨어진 라파스에 살면서, 나티타가 "남성들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는 저 너머의 세계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특히 영험이 있다."고 묘사한 예술가였다.) 가톨릭교회가 2010년에 폰타넬레 묘지를 다시 연 뒤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살피기는 했지만, 망자 숭배는 사라지지 않았다. 백골의 바다 속에서 여러 가지 색채가 뿜어져 나왔다. 형광 플라스틱 묵주, 붉은 유리 양초, 갓 주조한 황금색 동전들, 기도문 카드, 플라스틱 예수상, 심지어 복권까지도 다 이 폐허에 뿌려졌던 것이다. 망자 숭배를 하는 새로운 세대는 여기서 가장 강력한 '페젠텔레'를 발견했다(p. 202).

 

내가 여행했던 모든 곳에서 나는 이런 '죽음을 위한 공간'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주변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느꼈다. 일본의 루리덴 납골당에서는 연청색과 자주 색으로 빛나는 불상 영역이 나를 지지해주었다. 멕시코의 묘지에 서는 수만 개의 깜박이는 호박색 촛불이 밝히는 쇠 울타리가 나를 떠받쳐주었다. 콜로라도주의 불타는 장작에서는 높이 치솟는 불길에도 조문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멋진 대나무 울타리 속에서 힘을 받았다. 이런 곳 하나하나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건 슬픔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 말이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절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네가 보여. 저 멀리서 날 기다리고 있구나. 너를 강하게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날 무너뜨리게 하지 않을 거야." 서양 문화에서 슬픔에 잠긴 사람은 어디서 지지와 위로를 받는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성당, 절 같은 종교적인 공간에서 위로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이들 입장에서 일생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는 넘기 힘든 장애물로부터 도전장을 받았을 때이다. 이런 곳으로 우선 병원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병원을 차갑(p. 226)고 살균된 호러 쇼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여긴다. 최근 만나본 나의 오랜 지인 역시 병원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도리어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간 내게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는데, 얼마 전에 그녀의 모친이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병환이 길어지자, 지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생기는 욕창을 막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공기주입식 매트리스에 누워서 마지막 몇 주를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던 간호사들이 내 지인에게 어머니 시신 옆에 좀 더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몇 분 후 의사 한 사람이 방으로 급히 들어왔다. 일면식도 없는 의사였는데, 그는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들어와 어머니의 진료기록부를 잠깐 읽더니, 몸을 숙이고는 공기주입식 매트리스의 플러그를 잡아 빼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은 위로 튀어올랐다가, 매트리스에서 공기가 슉 하고 빠지자 좀비처럼 이쪽저쪽으로 거칠게 움직였다. 의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유유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유가족을 위한 지지나 배려와는 거리가 먼 경험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자마자 가족들은 밖으로 내쳐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장의사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장례업체인 서비스 코퍼레이션 인터내셔널의 한 간부는 "미국의 장례업계는 정말이지 관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최근 인정했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어머니 시체를 7000달러짜리 관에 넣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이 단순 화장 쪽으로 돌아서면서, 업계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 했다(p. 227). '장례 서비스'를 판매하던 것에서, '다감각 체험실'에서의 '모임'을 판매하는 것으로 말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청 각 도구를 사용한 체험실에서는 새로 깎은 싱그러운 잔디 냄새를 포함해, 골프 코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골프 애호가였던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골프장뿐만 아니라 바다나 산, 축구 경기장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아마 가짜 '다감각' 골프 코스에서 장례를 거행하는 데 수천 달러를 지불하면, 유가족은 당장은 슬픔을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의구심이 든다. 내 어머니는 최근 70세가 되셨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연습 삼아 미라가 된 어머니의 시체를 인도네시아의 타나토라자 사람들이 하듯이 무덤에서 꺼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유해를 끌어안고 일으켜세운 뒤,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어머니의 눈을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해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제 내가 이런 식으로 과업을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례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슬픔 속에 가둬 두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젓가락으로 뼈 하나하나를 정성껏 집어 유골함에 담는 의식부터, 제단을 만들고 1년에 한 번 혼령을 부르는 의식이나 심지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깨끗이 해서 다시 세우는 일까지, 이런 활동은 유가족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이(p. 228)는 유가족이 슬퍼하는 데 도움이 되고, 슬퍼하는 것은 치유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의례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먼저 참석하라. 그러면 의례의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화장을 참관하겠다고 고집하고, 매장을 보러 가겠다고 고집하라. 설령 관에 누 운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것이 고작일지라도, 함께 참여하겠다고 하라. 어머니가 좋아하던 색깔의 립스틱을 발라드리겠다고 주장하라. 그걸 바르지 않고 무덤에 들어가는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립스틱 말이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목걸이나 반지에 넣겠다고 하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들은 다 인간적이고도 용감한 행동이다. 죽음과 상실 앞에서 사랑을 보여주는 행동이니까. 나는 안다. 내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마음이 편안할 거라는 사실을, 그것은 바로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례란 쥐 죽은 듯 고요한 야밤에 몰래 묘지에 슬쩍 들어가서 미라가 된 시체를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의례란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를, 그로 인한 나의 슬픔을 환한 대낮에 꺼내놓는 것이다. 이웃과 가족이 함께, 공동체가 곁에서 지지해주는 가운데 어머니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다. 햇빛은 모든 것을 소독해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 수치심, 슬픔을 소독할 수 있도록 햇빛 속으로 끌고 나오는 어려운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p. 229).

 

옮긴이의 말

살다가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천차만별이다. 저마다 몸담고 사는 그 지방, 그 나라의 고유문화가 있을 것이다. 각자가 속한 문화권 안에서는 자신의 장례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세계에서 미국인이 번역서를 제일 안 본다는 말도 있는데, 그만큼 자국 중심적인 사고가 강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죽음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케이틀린 도티의 행보가 각별한 것은, 죽음을 부정하는 미국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대안을 찾아 나선다는 데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하던 일을 놓고 길을 떠난 저자는 미국인으로서 예외적이고 열린 존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저자가 이토록 죽음에 천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도티의 유(p. 232)머와 섞여 지금의 미국 문화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서명 기사가 이 책을 잘 요약하는 것 같다. 젊은 여성으로서 시체를 화장하는 장의사로 여러 해 일한 경험을 1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 적나라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까지 쏟아낸 그녀는, 2권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에서는 시신을 대하는 색다른 방식을 보기 위해 각 대륙의 여러 나라를 직접 돌아보며 그 예를 열거한다. 여기서 본보기 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외 화장,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망자의 날 행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인간 부패 연구소, 스페인의 장의사, 일본의 죽음 관련 풍습, 볼리비아의 냐티타 축제이다. 종착지는 다시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고인을 사막 한복판에 흔적 없이 묻는 것이다. 인적 없는 사막 지대에 파묻혀 자취조차 남지 않는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파르시교도의 독수리 장례와 티베트의 천장을 얘기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묘지를 방문했던 일과 그때 느낀 점이 언급된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단지 텍스트를 통해 죽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나라에 찾아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장례에 참여하며 그 의례를 직접 체험했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속한 문화의 죽음 의례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죽음을 대하는 한국의 문화 역시 지난 수십 년간 많이 변화 하였다. 지금은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까운(p. 233) 과거와 비교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자기가 평소 눕던 침대에 누워 가족들 사이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집과 병원, 어디서 죽음을 맞는가, 어디서 죽음이 처리되는 가에 꼭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므로 우리가 이제 와서 없던 관습을 새삼 지어내어 인도네시아의 타나토라자 사람들처럼 할 수는 없다. 다만 생자와 망자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 수는 있다. 생자가 망자 옆에서 머물며 충분히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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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55】 세계의 장례 방식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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