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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 김미향 저자(글), 넥서스BOOKS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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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과 남편과의 원만치 못한 결혼생활로 우울증을 앓던 50대의 중년 여성이 자살했다. 이 책은 큰 딸이 엄마를 회상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참으로 먹먹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 여성으로 살면서 가정이 제대로 뭔지 모르는 남자와 만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했을까? 삶이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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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 대한 억눌린 무기

엄마의 첫 생신제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어디론가 떠났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의 꿈을 자주 꾼다. 오늘 꿈에선 자다 일어나 보니 엄마가 우리 집 주방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나는 놀랍고 기뻐 엄마의 폭신폭신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흡사 솜사탕 같았다. 달콤한데 금방 녹아버릴까 걱정이었다.

"엄마, 어디 다녀오셨어요? 다녀온 곳은 어땠어? 좋았어?" 엄마는 무언가 말하려다간 입을 다물었다. 혼자 다녀온 곳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던 나는 엄마가 끓인 찌개가 너무 맛있겠다고(p. 54) 춤을 췄다. 애호박이 들어가 달큼하고 시원해 보였다. 엄마랑 놀고 있는데 아빠가 어디선가 맥주 두 병을 가지고 왔다. 아빠를 보니 갑자기 화가 나서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잘하는 짓이다! 이런 날까지 술을 가지고 들어와야겠어?" 내가 아빠를 비꼰 게 좀 심하긴 했다. 이상한 억하심정이 꼬일 대로 꼬여 그렇게 표현된 듯했다. "애 말좀 들어요." 엄마가 말하는 순간, 아빠는 갑자기 분노 조절에 실패하고 들고 있던 맥주병으로 엄마의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쓰러진 엄마를 부여잡고 "엄마, 엄마" 외쳤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결심한 사람처럼 눈이 뒤집어져 아빠가 들고 있던 또 다른 맥주 한 병으로 뒤돌아선 아빠의 머리를 내리쳤다. 언제까지고 계속. 이 잔인한 꿈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남편을 껴안았다. 남편은 본인도 악몽을 꾸고 있던 중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남편에게 악몽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 꿈 이야(p. 55)기를 들으며 다시 잠에 빠졌다. 이번 꿈은 몹시도 잔혹했지만 이상하게 소설적인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꿈속에서라도 엄마가 집안일에서 해방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꿈의 본질 같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꿈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엄마를 볼 수 있어 참으로 기뻤다(p. 56).

 

밤을 걷고 엄마를 보다

〈밤을 걷다〉는 〈최악의 하루〉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다. 아이유에 대한 네 편의 옴니버스 단편영화를 묶은 〈페르소나>가 나온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한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지은은 남자친구의 꿈속에 등장한다. 실제의 지은은 자살했고, 남자친구는 그 이유를 모른다.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았던 남자친구는 지은을 만난 꿈속에서 어깨를 떨며 오열한다. 꿈이 깨면 모든 게 사라질 테니 남자친구는 "난 기억할 거야. 기억해야 해"라고 끊임 없이 되새긴다. 그러나 지은은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가는 데 없이 잊혀질 거야"라고 말하며 남자친구의 얼굴을 감싼다(p. 62). 사라짐, 꿈과 죽음은 그 속성이 비슷하다. 극 중 지은의 말대로 정처 없고 가는 데 없이 잊힐 뿐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이 영화를 보며 하릴없이 나의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가 아득한 것은 곧 휘발될 꿈의 기억과 그 기억의 끄트머리를 붙잡고서라도 돌아가신 엄마 곁에 머물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다. 꿈속에서 엄마와 함께 마주하는 공간은 〈밤을 걷다〉의 공간처럼 내가 가봤던 곳 같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것 같은 곳들이다. 꿈 가장자리에서 그 공간들을 서성이며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만지작거린다. 지은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 엄마는 그 흔한 유서 한 장조차 남기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지은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를 알지 못하듯 내게도 엄마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는 영원히 미지수로 남을 테다. 아스라한 꿈 저편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은 오늘도 흩어졌다 모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지은의 남자친구처럼 밤을 걸으며 밤의 장막이 걷히길••• 엄마를 기억하려고 애쓰며, 부유하는 엄마와의 추억들을 볼 것이다. 아마도 나의 평생에 걸쳐 매일을 오늘처럼(p. 63).

 

나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내가 고통에서 헤어났으리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깊은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어두움은 터널에 있어 본 이들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쉽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상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무섭다.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의 고통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p. 71).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은 밤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엄마는 늘 아팠다. 그래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워냈다. 젊은 엄마는 여러 일을 했다. 엄마가 어판장에 앉아 성게알을 보석처럼 빼낼 때마다 어린 나는 입을 벌렸다. 엄마가 성게 까는 일을 했던 곳도 그대로 있었다. 그건 사진처럼 장면으로 기억날 뿐이거나 또는 아예 실제로 보지 못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 그물에서 생선을 꺼낼 때마다 햇볕이 생선 등에 튀기는 걸 놀라듯이 바라본 것 같다. 아빠 친구들 배는 모두 신식으로 바뀌어 있어서 바닷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말고는 그저 낯설었다. 그래도 엄마 손 잡고 시장을 다녀오던 길목이나 독사진을 찍고 싶다는 동생 뒤에서 입을 크게 벌린 채 장난을 쳤던(p. 88) 골목의 풍경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거나 2학년일 무렵 엄마는 학교 옆 냉면집에서 서빙을 했다. 매번 홀로 가는 하굣길을 엄마와 함께 가려고 나는 학교가 파하면 쪼르르 냉면집을 찾아 갔다. 일하는 엄마가 신기했고 엄마 손 잡고 집 가는 길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발로 차서 집 안의 유리문이 깨졌다. 아빠 발등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나는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엄마는 아마 심하게 맞고 난 뒤였을 것이다. 엄마는 집을 떠났고 나는 울면서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혼자서도 사는 법 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엄마는 진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매일매일 전화를 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가 고아원에 나랑 동생을 맡기고 가 버리라고 막말을 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어릴 적의 몇 년은 성인 시절의 몇 년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내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뭐든지 스스로 고르게 했고 그렇게 고른 것은 아(p. 89)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꼭 사 주었다. 내 물건을 마음대로 처리한 적도 없어서 모든 결정의 처음부터 끝을 모두 내가 하게 했다. 막내삼촌은 여러 가지 부침 속에서도 내가 이렇게 잘 자란 게 신기하다고 했지만 삼촌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엄마의 온전한 지지와 양육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음을....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은 밤이다(p. 90).

 

엄마는 아닌 것에 있어서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행동으로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반에서 성(p. 98)적으로 1등이었고, 부반장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이상하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모피를 두르던 그 할머니 담임선생님이 나는 무서웠다. 선생님이 불러서 학교에 간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의뭉스럽고 교묘하게 촌지를 요구하는 걸 파악했다. 그러나 엄마는 촌지를 건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에 실험 관찰책을 가져가는 걸 깜빡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하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통지표에 늘 '영양실조'라고 적혀 있던 키만 크고 깡마른 나는 담임선생님이 말 한대로 딱 100번, 성실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 5일 동안 걷질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촌지를 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화난 엄마가 전화를 걸자 담임선생님은 나한테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킨 적이 없고, 죄책감에 시달린 내가 스스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이나 한 거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우리 애는 거짓말을 하는 애가 아니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맞섰다. 5일 뒤 학교에 간 나는 더 이상 담임선생님이 무섭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주아주 잘 사는 집 애들만을 예뻐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p. 99)에선 전 과목 백점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담임선생님들께 전화를 해주었다. 하루 정도 학교를 나가지 않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중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내가 화장을 하고 다닌 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나는 누차 선크림을 바른 거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했지만 믿어주질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지각을 한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담임선생님 말만 듣고 나를 윽박지를 법도 한데 엄마는 선생님이 잘못 안 거라고, 우리 애는 화장 따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가는 걸 엄마가 똑똑히 봤다는 거다. 갑자기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피곤하다 보니 종종 지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선생님이 이해해달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엄마는 내가 다니고 싶다는 학원만을 다니게 했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은 아빠에게 얻어맞는 일이 있어도 사 주었다(내가 책을 사는 걸 아빠가 왜 그리 싫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한테 물어보니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누구 말이 사실일까?)(p. 100).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은 엄마로 인해 풍족하게 채워졌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구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엄마 덕분이었다. 어제 꿈에 엄마가 캣우먼이 되어 나타났다. 타이트한 가죽 코스튬을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당당하고 멋졌다. "엄마!" 하고 부르자 엄마는 윙크를 하며 뒤를 돌아봤다. 역시 엄마는 영원한 나의 히어로였다(p. 101).

 

삶이라는 무서운 경기에 내던져진 엄마는 자신의 아이 또한 이 불안의 링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게 죄스러웠지만, 꼬물 꼬물한 아이의 손을 잡을 때마다 이 아이만이 엄마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걸, 그래서 아이의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걸, 아니, 자신은 이 아이의 작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면 아주 어쩌면 팽팽 도는 이 세상의 팽이를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최 여사! 밤이 어두워도 다음 날에는 늘 아름다운 해가 뜨는 거 알죠?" 라고 말해주던 아이의 희망찬 입술을 믿었기에 자신이 살면서 유일하게 잘한 일은 이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고, 자신이 살면서 저지른 가장 최악의 일도 이 아이를 세상에 내어 보인 것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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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52】 자살한 중년의 엄마에 대한 딸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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