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 다스슝 저자(글) · 오하나 번역, 마시멜로 · 2020년

대만 장례식 직원이 겪은 일을 쓴 것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죽음에 대한 책을 보다 소개되어 읽었는데 재밌었다. 그런데 이미 절판됐다. 관심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서 대출해 보시기를..

그러니 경고하건대 이 글을 보고 있는 고도 비만 오타쿠들은 체중을 감량하는 게 좋을 것이다. 비만인 채 이곳에 오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옆으로 누운 채 관에 들어간 시신도 있었다. 너무 뚱뚱해서 바로 뉘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시신의 몸집이 너무 커 관이 부서진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관을 너무 크게 짜 화장터의 화장로 안으로 집어넣지 못한 경우도 있다. 화장로 입구는 정해진 규격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터에 대해 잘 모르는 업자들이 이런 문제를 소홀히 하다가 뒤늦게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러다 시신에 지방이 너무 많아 화장로에까지 불이 붙기도 하는데, 이럴 때 가장 난감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가뜩이나 상심해 있는 가족들 아니겠는가(p. 30).
남의 차 안에서
힘든 현장을 말하자면 참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차 안 번개탄 자살 현장이다. 이런 사건 현장은 정말 힘들다. 일단 현장에 도착하면 시신이 앞좌석에 있는지 뒷좌석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뒷좌석은 그나마 수월한데 앞좌석에 있으면 무척 힘들다. 거기에 시신이 늦게 발견됐다면 차 안은 번개탄 냄새, 시신 냄새, 차량 방향제 냄새로 진동을 한다. 앞좌석의 시신은 어떻게 처리하냐고? 체구가 작다면 좌석을 뒤로 젖히고 곧장 끌어내리면 된다. 체구가 크다면 일단 좌석을 뒤로 젖혀 평평하게 만든 다음, 한 명은 발을 들고 다른 한 명은 뒷좌석으로 가서 몸을 잡고 뒤쪽으로 끌어 당겨 바로 누이고 나서야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이 설명만으로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p. 43)지만 상상해보라. 차 안에서 고약한 냄재를 쌓기는 시신을 꺼낼 때 체구가 작아서 곧장 끌어내리든 체구가 커서 뒤로 끌어당기든 시신의 얼굴과 얼마나 가깝게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구더기들이 기어 다니며 눈알을 파먹는 모습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면 아마 그 장면은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p. 44).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나는 시신 복원 과정에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운 좋게도 그 과정을 지켜본 적은 있다. 그 시신은 손자가 내려친 향로에 머리를 맞고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백수인 손자는 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런 짓을 저질렀다. 휴가 중일 때여서 내가 할머니를 직접 모시지는 못했지만 시신 복원사가 왔을 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녀의 동의하에 복원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저녁 5시가 넘어서도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안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복원사는 브이넥의 얇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그녀는 커다란 눈과 보조개, 그리고 치명적으로 귀여운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녀가 바늘을 들고 할머니 시신을 봉합하기 위해 허리(p. 46)를 숙이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목을 지나서 가슴팍의 타투에 닿던 그 장면이. 이런, 이 장면이 아닌데! 할머니는 머리의 반쪽이 없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충전재를 얼마나 넣었는지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은 채 온몸이 땀에 젖도록 한 땀 한 땀 봉합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70퍼센트쯤 복원이 됐다. 그런 다음 곱게 화장을 마치고 유가족들을 불렀을 때, 드디어 할머니의 생전 모습으로 복원됐다는 생각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유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복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앞을 지나다 안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소리를 우연찮게 들었다. '나는 심하게 훼손된 시신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작업하던 분이 뭘 보고 이렇게 놀랐을까?' 궁금해하며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그녀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퀴벌레!"(p. 47).
가장 잔인한 일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 치매에 걸린 한 할아버지를 보살핀 적이 있다. 할아버지의 아내는 매일 남편을 보러 왔다. 문자 그대로 매일을 말이다. 딸도 한 명 있었는데 그녀 역시 자주 찾아왔다. 할머니는 여성 요양보호사보다 힘이 센 내가 와서 일하는 걸 반겼다. 할아버지가 덩치가 컸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는데 문득 할머니가 말씀 하셨다. "이봐, 젊은이. 치매의 가장 잔인한 점이 뭔지 알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할머니의 말만 기다렸다. "가장 잔인한 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한평생 살 부대끼고 살던 사람이, 하루하루 나를 천천히 잊어가다가 어느 날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봐봐, 내가 그렇(p. 192)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날 봐도 사랑은커녕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남편은 나를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지. 이게 가장 잔인한 일이야." 나는 용감하지 못해서, 만약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이 할머니처럼 용기 있게 견뎌내지 못하고 분명 도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용감한 할머니도 그리고 딸도 나중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얘기를 간호사들한테 전해 들었다. 놀라진 않았다. 병간호를 오래 한 가족들에겐 흔한 일이니까(p. 193).
죽었으니 다 벗어난 걸까?
이 사건은 라오자이가 연락을 받았다. 기둥에 사람이 '달려 있다'는 경찰의 말에 라오자이는 밧줄을 자를 칼과 사다리 등을 챙겨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서 라오자이는 의사소통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경찰이 말한 건 기둥 위로 '떨어졌다'는 말이었다. 투신자살이었던 것이다. 온갖 도구를 챙겨서 간 라오자이는 조금 민망해졌다. 라오자이는 내장이 배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두 눈을 부릅뜬 시신을 어떻게 옮길지 고민했다. 다행히 현장에 도착 한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너무 많은 탓에 구조대원들은 시신을 바닥으로 내린 후 재빨리 사진을 찍은 다음 서둘러 시신을 가져왔다. 사실 나는 시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많이 알(p. 232)지 못한다. 내가 본 그 시신은 배에 난 구멍으로 내장이 쏟아져 나온 상태로, 그저 너무나 끔찍했을 뿐이다. 게다가 유가족 대기실 문 앞에는 임신한 부인이 두 아이의 손을 붙들고 망연히 서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아직 어렸는데, 내가 문을 열어줄 때 한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 여기 왜 온 거야?" 엄마는 대답 대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후 다른 가족이 하나둘 도착하고, 의사와 검사가 도착해 검시가 시작됐다. 그때 검시실 앞을 지나던 도박꾼 사부님을 만나 내가 물었다. "사부님, 이 경우처럼 6층에 살던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 가 뛰어내려 죽였으면, 그 사람이 살던 6층 집은 흉가라고 해야 되나요?" "이론적으로는 그가 6층에서부터 자살을 생각했기 때문에, 옥상이 아니라 6층에서 그 기둥 위로 떨어지는 윤회를 매일 겪고 있을 거야. 그 집을 사고 싶으면 불사를 지내는 게 좋을걸." "지금 저한테 불사 비용 뜯어가려고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죠?"(p. 233)
"세상에,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솔직히 내 법력으로 불사는 아직 무리야. 하지만 다른 경쟁이를 소개시켜줄 순 있지. 꽤 실력 좋은 분으로." "공짜로요?" "중개비는 받아야지." 나는 사부님을 한 번 흘겨보고는 다시 물었다.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 사부님은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에 머무는 건 익숙함 때문이지. 그러니 집 안의 칸막이를 다 허물고 문을 전부 열어서 이삼 일쯤 통풍을 해준 다음 리모델링을 해봐. 그럼 영혼이 돌아 와도 다른 집에 들어온 줄 알 거야!" 일리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반신반의하는 내게 사부님이 덜컥 명함 한 장을 찔러 넣어줬다. "내 작은 처남이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말이야....." 다시 유가족 이야기로 돌아와, 자살한 남자와 부인은 원래 지방 사람인데 타이베이로 상경해 어렵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집 대출금이며 아이들 양육비를 감당치 못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모든 짐을 벗어던진 것이다(p.234).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부인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집을 팔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고 한다. 대출금도 많이 남아 있다니 결국 집을 팔고도 손해를 본 셈이다. 고별식 당일, 초췌해진 부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며 관을 따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담배를 물며 라오자이에게 말했다. "죽은 저 남자는 이제 다 벗어난 걸까요?"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 라오자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이기적인 놈은 모든 문제를 가족들에게 떠넘긴 것뿐이야."(p. 235).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자살하지 마라. 자살은 남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여러 건의 자살을 목격했다. 먼저 요즘 가장 각광받는 번개탄으로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겠 다. 번개탄 자살 건수는 진심으로 너무 많다.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심한 성격이다. 이런 유형은 대개 생전 모습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살지 않고 친구도 없다. 그래서 한참 후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이미 온몸이 까맣게 부패하고 냄새도 고약한,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발견자는 대부분 집주인이거나 불쌍한 이웃이다. 그중 80 퍼센트는 집 안에서 발견되고 15퍼센트는 차 안, 나머지는(p. 248) 여관에서 발견된다.
자살한 사람은 죽으면 끝이지만 가족에게 남겨진 번거로움은 굉장히 크다. 일단 업체를 불러 청소하고 유품을 처리 하는 데 비용이 든다. 정리할 게 별로 없는 경우 약 8천 위안 부터 시작해, 현장이 엉망이고 시신이 늦게 발견돼 흔적이 깊이 남은 경우에는 요금이 증가한다. 그다음 경쟁이를 불러 자살 장소에서 송경을 해야 하는데 중부에서는 한 번에 최소 4만 위안부터 시작하고 다른 지방에서는 더 비싸다. 차 안에서 죽은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만약 죽은 지 얼마 안 됐다면 차를 청소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오래됐다면 폐차 시키는 외에 도리가 없다. 두 번째로 흔한 방법은 목을 매 죽는 것이다. 발견 장소는 집 안과 야외가 반반이다. 이들은 번개탄을 피운 사람들보다 자살 의지가 더 확고한 것 같다. 집 안에서 목을 맨 경우 발견자는 모두 똑같다. 바로 가만있다 똥 밟은 처지의 집주인이다. 그러고 보면 집주인도 참 못할 짓인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월세가 한참 밀린 세입자와 연락이 안 되거나 옆집에서 악취가 심하다는 연락을 받고 문을 열어보면 이미 온몸이 썩어가는 시신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집주인을 반긴(p. 249)다. 이보다 비참할 수 있을까.
야외를 선택한 사람들은 의외로 외진 곳보다는 누군가 지나다닐 만한 길목을 선택한다. 아무래도 쉽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깊은 산속 같은 외진 곳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 초등학교 정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또 공원 정자에서 목을 매단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목을 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혀를 길게 빼고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부 대변과 소변을 지린 상태다.
다음으로 투신자살이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투신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가장 용감한 것 같다. 지금까지 세 번의 투신자살 현장을 봤는데, 첫 번째 사망자는 6층에서 뛰어내린 후 머리가 다 깨져 뇌까지 보였다. 두 번째 사망자는 8층에서 뛰어내려 기둥에 꽂히는 바람에 내장이 다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세 번째 사망자는 훨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는 보디 백 안에 사방으로 흩어진 뇌를 주워 담은 비닐봉지도 함께 넣었다. 이 정도면 가장 흔한 자살 방법에 대한 묘사를 충분히 한(p. 250)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온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 견디기 힘든 순간을 정말로 견디지 못하면, 당신의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의사와 검사가 장례식장에 와 검시를 진행할 때, 나는 유가족들을 휴게실로 안내하는데 어떤 가족들은 매우 슬퍼한다. 언젠가 경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자마자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남겨진 네 명의 딸은 영정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화가 난 듯 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어떤 사망자는 친척들에게 4백만 위안을 빌려 흥청망청 써버린 다음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또 어떤 가족들은 어리둥절해한다. 한 번은 20년 동안 본 적 없는 동생이 목매달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유가족이 있었는데, 시신을 보여줘도 알아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허망한 눈빛으로 앉아 한없이 울기만 하는 부류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제일 절망적인 경우다. 그들은 유가족이 아니라, 유가족을 못 찾았거나 찾았지만 시신 인계를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온 집주인들이다. 내가 만난 가장 멀쩡한 시신은 어느 오타쿠였다. 그는 자(p. 251)살이 아니라 돌연사였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대답이 없자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죽은 지 3시간이 지난 후였다는 것이다. 당시 의사는 시신을 보자마자 "죽기 전에 한 발 쏘셨네" 라고 했다. 어떻게 보자마자 그런 걸 아시는지 눈으로 묻자, 의사는 사망자의 중요 부위를 가리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가자 젠장, 그곳엔 여전히 휴지조각이 붙어 있었다.....(p. 252).
에필 로그
적어도 나는 책을 한 권 써냈으니까요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날이 올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내게, 어쩌면 편집장님 말씀처럼 일종의 '제사'의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은 이야기는 전부 내가 요양보호사와 장례식 정직원으로 일하면서 직접 겪은 일이다. 만약 내 아버지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난 요양보호사가 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장례식장에서 일할 생각 역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교육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가 병에 걸리고 나자 내 인생은 그로 인해 완전히 변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한 건 모두 아버지를 위해서였으니까. 아버지는 정말이지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이를(p. 266) 가슴 깊이 새긴 나는 모르는 아저씨들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계시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나중에야 그 아저씨들이 빚쟁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로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나는 왜 어떨 땐 아버지가 집에 있다고 대답해도 되면서 또 어떨 땐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저씨들이 아버지의 친구였다가 또 갑자기 빚쟁이로 둔갑하는 것도 이상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누가 와서 자길 찾거든 집에 없다고 하라기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얼마 후 한 아저씨가 집 앞으로 찾아와서 나는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다. 하지만 그 아저씨 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와 화장실에 숨어 있던 아버지를 찾아냈다. 그날 두 사람은 크게 싸웠다. 그런 다음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어떤 서류를 들이밀고 서명을 받아냈다. 떠나기 전 그는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거짓말이나 하고. 나중에 커서 네 아빠처럼 되고 싶냐?" 집으로 들어갔더니 거실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내게 말(p. 267)했다. "망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 놈!” 나는 힘들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어째서 선생님 말씀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욕을 먹는 걸까? 어째서 아버지 말씀대로 거짓말을 했는데 역시 욕을 먹는 걸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 한 번은 중간고사를 망친 후 성적표를 감췄다가 아버지께 들킨 적이 있다. 아버지는 왜 자신을 속이려 드느냐고, 왜 감추려고 하느냐고 나를 혼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그 말, 빛쟁이들 앞에서 할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허리띠로 나를 때렸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 시절은 집 앞에 늘 빚쟁이들이 몰려와 있었다. 한 명이 가면 또 한 명이 왔다. 어머니는 그 모든 수모와 노동을 묵묵히 견뎌냈고,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고 도망쳤다가 일이 해결되면 돌아오고는 했다. 우리 집은 늘 돈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삼촌과 고모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교 학(p. 268)비도 고모가 대신 내줬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경제 사정 때문에 친구들과 자주 어울릴 수 없었다. 하루는 친구와 함께 맥도날드에 갔다. 그날은 지갑에 5백 위안이 있으니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마친 후 지갑을 열었는데, 그 5백 위안은 이미 아버지가 가져가고 없었다. 하하.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이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다 큰 남자가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하다 전 재산을 아버지에게 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니! 하하하! 너무 웃겨서 흘린 눈물인지 너무 슬퍼서 흘린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친구가 돈을 대신 내준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한 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친구에게 밥을 산다. 그 친구에게 입은 은혜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때의 굴욕도.
내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대든 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그날 아버지가 먼저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늘 일을 하다 밤늦게 오셨는데 이를 두고 아버지가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것도 화가 나는데, 외할머니까지 욕하는 모습에 나는 폭발해버렸다. 우리는 경찰이 오고 나서야 겨우 싸움을 멈췄다(p. 269). 이 일로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렇게 드디어 아버지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아버지가 있었다. 갈 데 없어진 아버지가 어머니께 같이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러 온 것이었다. 어머니에게도 화가 났다. 어머니를 그 지옥에서 빼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왜 스스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것 일까? 나는 아버지께 말했다. 우리 집에서 지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이 일로 우리는 몇 번이나 싸웠고, 아버지는 중풍에 걸렸다. 처음엔 심각하지 않았다. 몸의 왼쪽 반은 움직이지 못했지만 오른쪽 반은 문제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할 의지가 없었다. 자기가 중풍에 걸려도 결국 고생하는 건 나와 어머니일 뿐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한 번은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택시 안에서 자꾸 바지 뒤를 잡아당겼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보니 차 안이 배설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히고 기사님께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드렸다.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한탄하던 기사님은 천(p. 270)위안을 더 받고 가셨다.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배설물이 복도를 따라 똑똑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내내 크게 웃으며 내가 너희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도착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고, 나는 직원에게 대걸레를 빌려 바닥을 닦았다. 바닥을 다 닦은 후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울 일이 아니야. 얼른 웃어! 웃는 거 잘하면서 왜 지금은 못 웃는 거야?"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어머니에게 방금 택시 기사 아저씨 표정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그의 오늘 일진이 얼마나 사나울지 떠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아버지는 없는 사람 취급 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그게 가장 아쉽다. 나 역시 어릴 땐 어른이 돼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날을 꿈꿨다. 그날이 오면 이렇게 묻고 싶었다. "내 인생에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p. 271)
굳이 꼽아보자면 아버지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두 번째 중풍이 와 식물 인간이 됐을 때였다. 나는 병상 옆에 앉아 옛날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만약 아버지 치료를 포기하면, 당신은 이 불효자를 어떻게 할 셈이냐고. 또 한 번은 아버지의 발인 전날이었다. 나는 복원을 마친 아버지 옆에 앉아 말했다.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났으니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겠다고. 진심이었다. 그리워하지도 않을 것 이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상태, 그뿐 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처참하게 우셨다. 나는 내 부모에게서 진짜 사랑을 봤다. 물론 평생을 싸우며 지내느라 어머니가 다정하게 "여보"라고 부르는 건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된 후 처음 들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다정한 손길로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버지를 정성스레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좋았다. 그제야 나는 부부는 싸워도 진짜 싸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는 둘 중 한쪽이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면 비로소 보인다는 것도(p. 272).
아버지가 어머니께 의지한 만큼, 어머니 역시 그런 아버지를 후회 없이 보살피고 깊이 사랑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기 전, 그날도 나를 흠씬 두들겨 팬 후 씩씩대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아냐? 넌 나랑 닮았어. 너도 나중에 나처럼 친구도 없고 놀기만 좋아하다 도박에 빠질 거야. 너도 나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아버지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친구도 없고 사귈 생각도 없으며 놀기 좋아 하고 도박을 했으며 무엇을 끝까지 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책을 쓸 결심을 했을 때, 반드시 이 책을 완성해 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아드리고 이렇게 말하리라 다짐했다. "아버지, 당신이 틀렸어요. 나는 아버지와 조금은 달라요. 적어도 나는 책을 한 권 써냈거든요."(p. 2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