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더 기프트 - 에디트 에바 에거 저자(글) · 안진희 번역, 위즈덤하우스 ·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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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쓴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북토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두 번째 책이다. 심리치료자로서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모든 것을 선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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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심리치료 접근법은 절충적이며 직관적이다. 통찰지향 정신요법과 인지지향정신요법의 이론과 임상이 혼합되어 있다. 나는 이를 '선택 요법choice therapy'이라고 부른다. 자유는 근 본적으로 '선택choice'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난은 모두가 피할 수 없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지만, 항상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가 가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하고 이를 이용하려 애쓴다. 내담자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다. 나의 심리치료요법은 네 가지의 핵심 심리학 원칙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첫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마틴 셀리그만과 긍정심리학에서 나온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자신의 삶에 어떠한 효능도 발휘할 수 없다고 믿고, 자신이 하는 어떠한 일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믿을 때 가장 고통스럽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학습된 낙관주의 learned optimism', 즉 자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자신이 창조하는 능력, 힘, 회복탄력성 등을 동력원으로 이용할 때 잘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인지행동치료에 나오는 개념으로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생성한다는 개념이다(p. 12). 해롭거나 역기능적이거나 자기파괴적 행동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신념들을 자신의 성장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신념들로 대체해 야 한다.

세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내게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친 멘토 중 한 명인 칼 로저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긍정적이고 조건 없는 자기 존중 self-regard의 중요성에 관한 개념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오해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인정 받으려면 자신의 진짜 자아를 부정하거나 숨겨야 한다는 오해이다. 심리치료를 할 때 나는 내담자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려고 분투한다. 그리고 가면을 쓰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할당한 역할과 기대를 충족하려 애쓰는 것을 그만둘 때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도록 안내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핵심 심리학 원칙은 사랑하는 멘토이자 친구 그리고 아우슈비츠 동료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과 공유하는 개념이다. 바로 최악의 경험이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줄 수 있고, 뜻밖의 발견을 촉진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관점을(p. 13)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개념이다. 치유, 성취, 자유는 삶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특히 우리가 겪는 고난) 에서 의미를 찾고 목적을 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유는 일생에 걸쳐 훈련해야 하는 대상이다. 자유는 우리가 하루하루 다시 또다시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궁극적으로, 자유는 희망을 필요로 한다. 나는 희망을 두 가지 방식으로 규정한다. 첫 번째는, 얼마나 끔찍하든 모든 고난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다. 희망은 우리가 과거 대신 현재에 뿌리내리도록 살게 해주고 우리 마음 감옥의 문을 열어준다(p. 14).

 

그리고 나는 자유를 향한 길을 걸으려는 여러분에게 세 가지 이정표를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이따금 힘든 상황(가령 이혼, 사고, 질환 혹은 죽음)들이 현재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대면하고 다른 방법들을 시도하라고 강요할 수 있다. 때때로 내면의 고통이나 이루지 못한 소망이 매우 소리가 커지고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아서 더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준비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또한 재촉될 수도 강요될 수도 없다. 진짜로 준비가 됐을 때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다음과 같이 결심할 때다. '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했어. 이제 나는 다른 어떤 방법을 실행할 거야.' 변화는 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습관과 패턴을 중단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다면 단지 역기능적인 습관이나 신념을 버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들을 건강한 습관이나 신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선택해야 한다. 자신만의 화살을 찾아 내고 그것을 뒤따라야 한다. 치유의 여정을 시작할 때는, 무엇으(p. 19)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지뿐만 아니라 자유로이 무엇을 하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한 심사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건 새로운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 다시 말해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린 모든 선택들, 여러분이 사용하려고 애썼던 모든 방식들. 이 모두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두는 유용하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서 맨땅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했든 간에, 그 일은 여러분을 이만큼 멀리, 바로 이 순간으로 데리고 왔다. 자유의 궁극적인 열쇠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p. 20).

 

내 경험상 희생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왜 하필 나지?" 하지만 생존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고통은 보편적이다. 그렇지만 희생자 의식 victimhood은 선택적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들에 의해 상처를 입거나 압박을 받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장담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가 얼마나 친절하든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 상관 없이 우리가 언제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의 혹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소들과 유전적 요소들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는 희생자로 남기로 선택할 수도, 희생자로 남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경험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 의식의 감옥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우리가 이유를 알아낼 수 있기만 하면 고통이 완화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왜 내가 암에 걸(p. 25)렸지? 왜 내가 해고됐지? 왜 내 파트너가 바람을 피웠지? 우리는 대답을 찾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마치 그러한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는 논리적인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유를 물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책망할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찾는 일에 갇히게 된다. 왜 이 일이 내게 벌어졌지? 음, 왜 당신이 아니어야 하는가?(p. 26).

 

희생자 의식은 마음의 사후경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갇혀 있고, 고통 속에 갇혀 있고, 상실과 결핍 -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부드럽게 수용하라.' 이것이 희생자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우리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가 싸우고 저항하기를 멈출 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에너지와 상상력이 생기고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아낼 준비를 갖추게 된다. 꼼짝도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또 한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여기로부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아낼 준비를 하게 된다. 모든 행동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킨다. 많은 사람이 희생자로 머물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 상태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면허권을 주기 때문이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추궁당한다. 게다가 우리가 일으키거나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책임질 것을 추궁당한다(p. 27).

 

우리 자신을 희생자 의식으로부터 놓아주는 건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한 역할들로부터 놓아주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p. 40).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에게서 고통을 아예 없애려고 하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감정들이 잘못됐거나 무섭다고 가 르친다. 하지만 감정은 오직 감정일 뿐이다. 옳거나 그르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설득하려 애쓰거나 그들을 유쾌하게 하도록 애쓰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들의 감정을 허용하고 옆에 있으면서 "더 말해봐요"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아이들이 놀림을 받았거나 따돌림을 당해서 속상해할 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런 일은(p. 56)일어나지 않는다. 공감하고 지지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내면 생활이 마치 자기 자신의 내면생활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경험을 박탈하고 그들을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또 다른 방법에 불과하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우울depression의 반대는 표현__EXPRESSION__ 이라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킨다. 우리에게서 표출되는 것들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 안에 머무는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p. 57).

 

우리가 감정들을 회피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많이 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정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미 내린 선택이나 앞으로 내릴 선택에 대해 무엇을 드러낼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들을 회피하는 한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것을 차단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면, 장담컨대 그것에 대한 생각에서 오히려 벗 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초대하고 옆에 앉은 후 시간을 함께 보내라. 우리는 연약한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모든 현실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좋다. 더는 싸우거나 숨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p. 63).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과거에 택했던 대응 기제나 행동 패턴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포기해야만 했던 자아의 일부와 다시 연결하고 자신이 되지 못했던 완전한 진짜 모습을 되찾아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습관을 깨야만 한다. 절대 잊지 말기 바란다. 당신은 다른 누구도 결코 가지지 못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가지고 있다. 평생 동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말한다. "에디, 넌 특별한 사람이야. 넌 아름다워. 매일 더욱더 에디다워 지길 바랄게."(p. 113).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우리를 규정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말할지 선택할 수 있다. 하루 를 할애해 당신이 자신과 나누는 자기 대화에 귀 기울여보라.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당신이 강화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당신이 느끼는 감정들은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지시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러한 기준과 메시지에 이끌려 살아야 할 필요가 절대 없다. 당신은 수치심을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당신의 진짜 자아는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은 사랑과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태어났고 당신은 내면의 대본을 다시 쓸 수 있고 자신의 결백을 되찾을 수 있다. 당신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p. 141).

 

삶이 우리가 원하거나 기대하(p. 153)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경험인지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을 얻거나, 혹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원할 때 고통받는다. 모든 심리치료는 애도 작업이다. 어떤 것을 기대했는데 다른 것을 얻은 삶, 예상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것을 가져다준 삶을 직시하는 과정이다(p. 154).

 

우리에게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 슬픔을 해소하는 일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들에 대해 불필요하게 가지는 책임감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내리긴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선택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p. 158).

 

만약 우리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슬픔과 화해할 수 없다면,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뿐더러 죽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끊임없이 소환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들을 놓아주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p. 161).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해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상처를 치유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똑같이 유지하려고 애쓰는 방법으로 비탄이 일으킨 파동에 대처하려 한다. 직장, 루틴, 인간관계 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제자리에서 답보한다. 그렇지만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을 때 더는 아무것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비탄은 자신의 우선순위들을 재점검하고 다시 결정하라는 요청일 수 있다. 자신의 기쁨과 목적의식을 다시 연결하고, 자신이 바로 지금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결심하고, 삶이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라는 요청일 수 있다(p. 166).

 

어떤 것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말라. 왜 그러한가에는 너무 많은 이유가 있다. 왜 이 일이나 저 일이 벌어졌는지 혹은 벌어지지 않았는지, 왜 우리가 현재 있 는 곳에 있는지, 왜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하는지. 비탄은 무엇이 나의 소관이고, 무엇이 남의 소관인지, 무엇이 신의 소관인지 명확히 알게 해준다(p. 173). 

 

애도 작업은 힘들다. 하지만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껴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에 함몰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과 화해 할 수 있다. 과거에 잃어버린 것이 아닌 현재에 남아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순간을 선물로 여기며 살아가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선택할 수 있다(p. 175).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핵심 열쇠는 자신의 진실을 꽉 쥐고 있되 동시에 힘과 통제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p. 184).

 

내 친구의 딸이 매우 마음이 상한 채로 유치원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자신의 딸아이가 이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도록 도와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욕구를 버려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멍청하게 생겼다고 한다면 "나는 멍청하게 생기지 않았어!"라고 말하지 말라.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말라. 기싸움으로만 번질 뿐이다. 가해자가 당신에게 밧줄을 던지고 당신은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을 잡는다. 그러 고 나서 두 사람이 각자 밧줄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다가 결국 둘 다 녹초가 되고 만다. 싸우는 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싸움을 멈추는 데에는 오직 한 사람만 필요하다. 그(p. 187)러므로 절대 밧줄을 잡지 말기 바란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라. "저 사람이 더 지껄이면 지껄일수록 나는 점점 더 편안해질 거야." 또한 이 일이 자신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려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멍청하게 생겼다고' 한다면 사실 그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p. 188).

 

우리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두려움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방으로 다른 목소리들을 초대하여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런 다음 뭔가를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p. 242).

 

희망은 정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아우슈비츠에서 알게 된(p. 278) 한 젊은 여성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수용소가 해방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새로 도착하는 수용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봤고 독일인들이 커다란 군사적 손실을 입고 있다는 루머를 들었고 오직 몇 주만 지나면 우리가 해방되리라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러고 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지나갔다. 아무도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내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그녀를 계속 견디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희망이 죽자 그녀 또한 죽었다(p. 279).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나치를 용서할 수 있었느냐고 자주 묻는다. 내게는 어떤 사람의 머리에 성유를 바르고 용서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가진 죄책감을 씻어줄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게는 나 자신을 해방해줄 힘이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용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다. 더는 과거에 사로 잡힌 희생자나 죄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고통만이 담겨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용서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하는 방법이 "난 그 사람과 다 끝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효과가 없다. 그 사람을 잘라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떠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우리는 에너(p. 301)지를 자기 자신과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에 유리하게 사용하는 대신 불리하게 사용하게 된다.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피해를 줘도 좋다고 누군가에게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피해 보는 일은 전혀 괜찮지 않다. 하지만 피해는 이미 이뤄졌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해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해결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많은 것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정당성, 복수, 사과, 심지어 그저 잘못을 시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욕구 등이 그것들이다(p. 302).

 

용서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열쇠

• 나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해를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다음 문장들 중 진실처럼 느껴지는 게 있는가? "그녀가 한 짓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짓이야." "그는 아직 내게 용서를 받지 못했어." "만약 내가 용서한다면, 나는 그를 곤경에서 모면케 해주는 걸 거야." "만약 내가 용서한다면, 나는 그에게 계속 내게 상처를 줘도 괜 찮다고 허용하는 걸 거야." "나는 공정성, 혹은 사과나 사실의 인정이 있을 때에야 용서할 거야." 만약 당신이 이 문장들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대항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 자신과 당신이 누려야 할 인생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말이다. 용서는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무언가가 아니다. 용서는 당신이 자기 자신 을 해방해주는 방법이다(p. 314).

 

피할 수 없는 트라우마, 고통, 슬픔, 비참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해도 '삶은 선물이다 Life is a gift' 우리가 처벌, 실패,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 안에, 우리의 인정 욕구 안에, 수치심과 책망 안에, 우월감과 열등감 안에, 권력 욕구와 통제 욕구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둘 때, 우리는 이 선물을 파괴하게 된다. 삶이라는 선물을 축하하는 일은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선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심지어 힘겨운 부분에서도, 자신이 견뎌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말이다. 삶을 축하하라. 그게 전부다. 기쁨, 사랑, 열정을 가지고 살아 가라. 때때로 우리는 만약 우리가 상실이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간다면, 재미있게 놀고 삶을 즐긴다면,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한다면, 우리가 왠지 망자를 욕보이거나 혹은 과거를 욕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게 소리 내어 웃어도 괜찮다! 즐거워해도 괜찮다! 심지어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마음속에서 항상 삶을 축하했다. 상상의 연회를 준비하며 최고의 호밀빵에 캐러웨이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헝가리의 닭고기 요리인 퍼프리카시 치르케에 파프리카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옥신각신했다. 어느 날 밤에는 최고의 가슴 경연대회까지 열었다! (누가 우승했을까?) 나를 모든 일은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벌어지는 것이라고,(p. 317) 부당함이나 고난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고통, 곤경, 고난이 우리가 성장하고 배우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선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p. 318). 

 

【북토크】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말하는 인생론-“선택”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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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5】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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