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김만권 저자(글), 여문책 · 2018년

시민 누구에게나 일정액을 주는 기본소득, 그리고 청소년이 일정한 연령이 되면 주는 기초자산에 대한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몰랐던 것을 아는 신선함이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나 몰라라 했는데 관심 갖고 알아야 할 것 같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란 중산층이 유지하는 체제입니다. 상류층은 자신들을 규제하는 민주주의를 성가셔 하고, 하류층은 먹고살기에 바빠 민주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지요. 소득과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집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p. 32)에 세계가 '포퓰리즘'에 빠져버렸다고.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야기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죠(p. 33).
2014년에 한 어머니가 두 자녀와 함께 연탄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활 고를 비관한 자살이었죠. 그런데 이 어머니,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시 60세였던 이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았습니다. 큰딸은 병을 앓고 있었지만 치료비가 없었고, 작은딸은 알바를 하고 있었지만 신용불량자였습니다. 그 와중에 아주머니가 몸을 다쳤습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가까스로 유지해오던 생활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아 주머니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처럼 열심히 노동한다는 것과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도 그 연관성이 없을 때도 있을진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동하느냐에 소비능력이 달렸다고요?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크고 나쁜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삶을 게으른 자들로 만들고, 때로는 사회적으로 외면해도 좋을(p. 47) 비도덕적 인격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p. 48).
자동화된 세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한 내용을 돌이켜보면 이 자동화된 세계가 여러분의 직업을 빼앗아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병인이나 운전 사 같은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자동화된 세계를 직업을 빼앗아가는 약탈자로 여겨야 하는 걸까요? 스위스의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이 세계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p. 79). 자동화가 축복이 될 수 있는 궁극적인 이유는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이 이제 그런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서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컨베이어벨트 옆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탄식만 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이룬 기술의 진보를 어떻게 복지로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때다.
이들은 말합니다. "자동화된 세계가 우리를 더는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노동을 하게 해줄 것이다. 기계 옆에서 원망하는 대신 기술의 진보를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진보를 어떻게 쓰겠다는 것일까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자동화에 대한 일종의 이익배당금이나 마찬가지다. 로봇은 소득이 필요 없지만 우리는 소득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가져가고 임금이 필요 없는 로봇 대신 우리가 그 임금을 받는 것이다. 곧 로봇이 일을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보상을 모두가 나누어 받는 셈이다(p. 80).
"기본소득을 자동화가 만들어내는 이익배당금으로 보자." "일자리는 로봇에게, 임금으로 쓰일 비용은 인간에게." 이를 두고 뭔 공상과학이야?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 벌고 싶은 사람에게는 '꿈'이나 다름없는 빌 게이츠가 2017년 『쿼츠Quartz』라는 IT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봇을 사용하는 회사가 로봇세를 내라. 이 로봇세 를 사회복지에 쓰자." 로봇이 일해서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닌 이상 세금을 내야만 하고, 로봇이 대체할 직업 때문에 일자리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 세금을 써야 한다는 게 빌 게이츠의 입장인 겁니다. 자동화된 세계에 대한 빌 게이츠의 입장과 스위스 기본소득주의자들의 의견이 사실상 같은 거지요. 빌 게이츠도 자동화가 어쩌면 인간에게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p 81).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네요. '아, 이제 기원이나 역사 말고 대체 기본소득이 뭔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를 말해보라고!' 네, 이제 여러분의 요구에 본격적으로 부응 하겠습니다.
우선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부과 없이,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노동할 의사가 있는지 묻지 않고 여러분이 속한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 단위로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노동의사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당부하는데 이걸 노동하지 말라고 왜곡해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기본적으로 수혜자가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모든 사람은 시민만을 의미하는 거냐?' 이렇게 물을 수 있죠. 한데 대다수의 기본소득주의자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시민도 최소한의 거주기간, 규정된 거주조건 등을 바탕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p. 119)하고 있어요. 어떤 이들은 세금도 안 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묻기도 하죠.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외부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겁니다. 그 어떤 국가도 비시민들이라고 자기 영토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에게 세금을 안 내게 하지는 않으니까요. 자기 영토 내에서는 반드시 과세하게 됩니다(p. 120).
기본소득은 노동유인을 죽이지도, 죽일 수도 없다
자, 이제 기본소득이 뭔지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부과 없이, 다시 말해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둘째,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 다시 말해 부자들에게도 지급되며, 부자들이 받는 것이 빈자들에게도 이롭다. 셋째, 정치공동체가 일종의 배당으로 지급하는 일차적 소득(p. 136)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재분배가 아니다. 넷째, 지급하는 주체는 주로 국가지만, 반드시 국가일 필요는 없다. 다섯째, 기본소득의 재원은 다양하며, 어떤 재원을 확보하느나에 따라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 여섯째,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제 기본소득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를 둘러싼 논쟁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질문, '기본소득이 노동할 유인을 죽이는가'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명백한 답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물게 되면 일할 의욕을 잃을 것인가'라는 멍청한 질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1억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세금이 진짜 너무 빡세서 5,000만 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우리나라의 2017년 중간연봉이 세전 2,225만 원입니 다. 세전 중간연봉으로 쳐도 2,700만 원 이상 더 버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세금을 많이 낸다는 이유로 이 차액 2,700만 원을 쉽사리 포기하고 대다수 사람이 2,225만 원만큼만 일할까요? 그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그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혼자 산다고 생각하고 매달 기본소득 50만 원을 받는(p. 137)다고 가정해볼까요? 사실 50만 원으로 생활비 자체가 해결되지도 않겠죠. 당연히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일을 해서 벌어들일 소득을 이 50만 원에 더해서 150만 원이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노동할 유인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기본소득의 핵심은 '기본소득 50만 원으로 행복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에 당신의 노력을 얹어보라'는 겁니다. 여기서 기본소득의 혜택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해주고, 좀더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때로 노동을 쉬고 싶을 때는 쉬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강의의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 대다수 실험의 핵심적 질문은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노동유인을 유 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기본소득주의자들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답하고 싶어하죠. 앞에서 당장 강의하고 있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질문이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에 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본소득 자체의 목적은 노동유인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복지 국가의 복지정책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을 겁니다(p. 138). 기본소득이 기본소득다우려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노동유인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아주 부차적인 질문이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순간, 또 이 질문에 답하 는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순간, 노동이 우리 삶을 다시 지배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답은 오히려 '노동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때, 그래도 괜찮아'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p. 139).
우리나라 부의 분배 상황. 2013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 소득 상위 10%는 전체 부의 66%를, 하위 50%는 1.7%를 가지고 있는 이 현실. 그런데 이 통계를 만든 김낙년 교수님이 하나 더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0.01%(3,895명)의 평균소득(27억 3,084만 원)이 전체 국민(20세 이상 성인) 평균소득(1,639만 원)의 167배에 이른다"는 겁니다(『한겨레』, 2015년 1월 13일).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훤히 드러나죠. 이 통계가 진짜 '한번 흙수저는 평생 흙수저'라는 젊은이들의 한탄을 한눈에 뒷받침하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저립니다(p. 166).
상속은 노동이라는 전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회적 제도입니다. 솔직히 상속만큼 철저하게 개인이 타고난 운에 의지하고 있는 제도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일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어려운 가정에서, 혹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흔히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죠. '네가 조금만 더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찢어질 듯한, 그런 때가 종종 있어요. 더 놀라운 건, 아니 좀 부끄러운 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면서도, 그랬(p. 172)으면 하고 바라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는 거예요. 갑자기 이야기가 조금 슬퍼지는 것 같네요. 자, 이제 기분을 바꿔볼까요? 세상의 현실이 이런 걸 알고 '부모가 상속할 수 없다면, 국가가 상속해주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 성년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그 아이들에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종잣돈을 주자! 부모가 상속을 할 때 자식들에게 노동의 조건을 걸지 않듯이, 사회도 상속하면서 노동의 조건을 걸지 말자! 이제 조금 기분이 나아지셨나요? 부모 대신 국가가 성년에 이른 시민들에게 일정 정도의 자본을 목돈의 형태로 제공하는 제도, 바로 기초자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기초자본이 기본소득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간단하게 '난 종잣돈이 좋아요! 큰돈이 좋아요!'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p. 173).
기초자본의 목표는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p. 174)는 겁니다. 그래서 매달 소비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연령에 이른 구성원들에게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 소위 종잣돈을 지급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18세, 21세 등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성년이 되어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2,000만 원이든 3,000만 원이든 목돈을 한꺼번에 주자는 겁니다. 기초자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목돈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p. 175).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정의다
'모든 시민이 일정 연령에 이르면 일정한 자원의 지분을 나누어주자.'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 체제냐?'고 반박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시장을(p. 199)믿지 않지만, 기본소득주의자건 기초자본주의자건 아무도 시장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도 있어야 하고 투자한 기금이 굴러가기 위해 시장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인간은 반드시 노동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까?' 공산주의는 노동자가, 노동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의 자격을 가진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입니다. 기초자본을 주장하는 애커먼도, 알스톳도 자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연코 노동가치 이론을 거부한다!" 솔직히 자유주의자로서 저도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노동하는 자 만이 자격이 있다는 이 이론을 단연코 거부합니다. 그렇기에 기초자본 이론은 사회민주주의 이론도 아닙니다. 애커먼과 알스톳이 지적하듯이 '사회민주주의는 임금노동을 사회정의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시스템입니다. 그 자체로는 거부 할 것도, 비판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발상은 '임금노동만이 좋은 삶'이라는 암묵적인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금노동이, 노동윤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p. 200)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고 정의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게으름뱅이들조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심각하게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남성 중심적인 복지국가의 근본도 의심합니다. 그래서 애커먼과 알스톳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민주의는 너무 많은 인간을 사회생활의 중심에서 밀어낸다.(••). 사민주의는 수천만의 일반인을 2등 시민으로 전락시킨다. 사민주의는 유급노동을 기준으로 존엄성을 판단한다. 고용보조, 근로소득보전세제, 노동연계 복지와 같은 정책들은 빈민에게 노동을 조건으로 사회적 보상을 제공한다. (••••) 그러나 노동조건부 급여는 자유주의적 정의가 아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계약조건을 요구받지 않는다. 이 제도를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비난하고 싶은 분들은 좀 아쉬울 겁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지분은 '노동하는 삶만이 가치 있다'는 전제를 단연코 거부하는 자유주의적인 분배의 상상력이라는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p. 201).
일자리가 늘어나는 일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장기적 대안을 생각하면서 분배정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구가 줄어들 테니 괜찮다는 멍청한 소리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한편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출산장려책을 쓰면서, 미래의 일자리 대비는 인구가 줄어들 테니 괜찮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라 고려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가야 할 21세기에 상응하는, 21세기다운 분배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야말로 21세기 분배의 상상력에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p. 222).
'무엇이 문제일까?' 몇 번이고 묻고 답하며 저 나름의 결론이 섰습니다. 제게 대한민국은 '소득과 부가 사회적 인정투쟁'의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이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대학생 일 때부터 탐구해오던 주제, '소득과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로 관심을 되돌렸지요. 바로 '재산소유 민주주의'에 바탕을(p. 251)둔 '기본소득'과 '기초자본' 논쟁이 떠올랐습니다. "적절한 소득과 부의 소유가 실질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고 불의를 향해 '아니요'라고 말할 힘을 준다"는 전제에 기반을 둔 분배의 상상력입니다. 돌이켜보면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낡은 서랍에 넣어둔 반가운 편지처럼 이 발상들을 꺼내들고 다시 하나씩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혐오가 언제나 자기혐오에서 출발하고 그 혐오가 차별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면, 제가 대안으로 제시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은 '각 개인이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만한 제도'여야 했습니다(p. 2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