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이혜미 저자(글), 크레파스북 ·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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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는 없다'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가졌다. 물질이 아닌 삶의 태도를 자녀에게 물려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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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는 없다

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지만 흙수저도 아니다. 일 억만금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바로 아빠의 피 끓는 유전자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듯이 나도 유별난 점이 하나 있는데,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실행력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내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무술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손을 안 대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유통하고 제작했고,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온라인 마켓에 상품을 홍보했(p. 13)다. 그로 인해 온라인 창업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상품을 판매해 본 사이트가 워낙 많다 보니 도맡아 하는 과목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취미가 돈 벌기라 할 만큼 20대 중반부터는 일에만 매진했는데 취미로 했던 에어비앤비 운영, 스톡 사진작가, 블로그 운영 등으로 쏠쏠한 수익을 얻었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펴내어 또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열심히 살았다. 아빠는 재직 중에도 주말이면 늘 새로운 일을 찾아다녔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의 한 장면이 있다.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겨울, 졸업 시즌이었다. 아빠는 꽃시장에서 꽃을 도매로 구입해 졸업식이 열리는 어느 학교 앞에 자리를 잡고 꽃다발을 팔기 시작했다. 졸업식장 앞에는 아빠처럼 꽃을 판매 하려는 상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빠와 아빠의 친구 부부가 꽃을 판매하는 틈을 타 내가 고사리손으로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5천 원, 5천 원!"을 부르자 한 아저씨가 그 많은 상인 중에(p. 15) 나에게로 와서 꽃을 사는 것이 아닌가. "꼬마야, 꽃 한 다발 줄래?" 바밤바 하나가 단 돈 백 원에 판매하던 시절이었다. 5천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처음 쥐어본 나는 눈이 휘동그레지고 말았다. 내가 아빠를 도왔다는 기쁨과 내 손으로 무언가를 팔았다는 희열에 5천 원을 부르짖는 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엄마의 만류로 두 번째 꽃다발을 팔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친구들 서넛이 모이면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고 시장놀이를 하는 데 푹 빠졌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친구와 동업으로 일본식 꼬치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 아빠는 격주로 주말에 쉬었는데 그 쉬는 날마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쓰리잡을 뛰었다. 또 하나 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웬 스티커가 배달되어 있었다. 전봇대에 광고용으로 붙이는 네모반듯한 스티커였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아직 그 옛집의 전화번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분명 그 스티커의 잔상 때문일 것이다(p. 16) 네모난 칸에 가지런히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 1천 장이 놓여 있었다. 지금도 스티커를 사 모으는 스티커 마니아인 내가 안방 바닥에 늘어져 있던 이 스티커를 보고 여덟 살 인생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안전 고리, 보조 열쇠가 유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의 전봇대를 찾아 광고 스티커를 붙였고, 평일에 엄마가 전화로 예약을 받으면 아빠는 주말을 이용해 드릴을 들고 가 열쇠를 시공했다. 서른 살 중반의 부모님이 일하는 곁에서 아기였던 동생과 나는 매주 만나는 새 아파트의 새 놀이터를 접수하느라 마냥 신이 났다. 그 후로도 아빠는 끊임없이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고 그렇게 나와 동생은 부모님의 땀과 노동을 먹고 커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은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노래방을 오픈했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해야 했던지라 늘 피곤함에 절어 있던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얼른 커서 나도 한 몫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시절 아빠(p. 17)는 또 한 번 슈퍼마켓을 운영하여 다들 픽픽 쓰러져가던 IMF를 극복했고, 이미 키가 성인만큼 자랐던 나는 이때 슈퍼마켓 계산대를 꿰차고 앉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동네에서 슈퍼집 아가씨로 불렸다. 동네 슈퍼를 어떻게든 키워 보려고 나는 과자를 묶음으로 할인해서 팔기도 했고, 화이트데이가 아직 어른들에게 생소하던 시절, 사탕을 상자에 포장해놓고 담배를 사 가던 아저씨 고객들을 사로잡았으며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은 음료수 가격표를 프린터로 뽑아서 정리하기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슈퍼를 운영하는 일이 그리 힘든 줄 처음 알았다. 모든 동네 사람이 한 번씩 거쳐가며 한 마디씩 거드는 곳이 동네 슈퍼였던 것이다. 나는 때로는 친절하다가도 때로는 손님들과 맞짱 뜨고 싸우면서 장사를 배워갔다. 슈퍼 계산대에 앉아 거의 모든 고객들의 다양한 유형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 장사를 할 때는 평정심을 갖고 아무리 고객님이 이상 현상(!)을 보여도 꾹 참고 친절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큰 내가 장사를 안 하면 이상(p. 18)한 일이다. 이 시절 아빠는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해서 슈퍼에서 일을 하다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철인의 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며 딸 둘을 유학에 대학원까지 보내며 아르바이트 한 번 시키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연금 외에도 월세를 받으며 노후 걱정을 덜었으니 부모님의 인생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아빠의 인생을 모두 봐 온 딸이 어찌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깊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피곤하다고 축 처져 있거나 티브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는 아빠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원래 사람이란 주말에도 쉬지 않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또한 지금 마음 편 히 몸 편히 큰 걱정 없이 사는 아빠를 보며 나도 열심히 일을 해 놓은 다음은 편하게 사는 날이 올 줄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젊은 날 그리 불같이 일하던 아빠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 자꾸만 따라 하고 싶은 것 아닌가!(p. 19) 아빠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이 열심히 사는 유전자. 몸소 보여준 성실함이다. 아무리 아빠가 스트레스를 받은 날 술 한 잔 마시고 도깨비 흉내를 낸 적 있었다 해도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음을 딸은 보고 느낀다. 아빠는 긴가민가하며 이루었던 것을, 나는 아빠를 보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다. 아빠가 내 삶의 본보기요, 내 모습의 근본이라는 사실은 어 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금송아지였다. 금수저를 쥐어 주는 대신 내 몸뚱이를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만들어 주었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맞다. 성공은 운이 붙어야 한다. 번번이 쉬지 않고 아빠는 세상에 부딪혔지만 세상은 아빠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빠의 노력만 보면 준 재벌쯤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늘 아빠, 엄마가 배운 게 많이 없어서 항상 힘든 일로 돈을 버니 너희들은 많이 배워서 조금 더 세상을 편히 살라고 했다.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은 학교를 많이 다녀서(p. 20)가 아니다. 순전히 열심히 살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왜 그리 많이 하느냐고, 힘들지 않냐고, 쉬었다 하라고 말한다. 늘 말하지만 힘든 걸 꾹 참고 한 것이 아니라 힘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아빠, 엄마를 보아서, 부모님의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힘든 줄을 모르고 일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없다고 가끔 친구들과 비교하던 아빠는 여전히 나에게 물려준 게 없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 도 나야말로 금수저다(p. 21).

 

우리는 서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떤 만남도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만나는 것을 안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 어떤 모습으로 헤어지게 될까. 아마도 엉엉 울겠지. 아주 오랫동안 서러워할 테지. 아직 나는 준비되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에 그 헤어짐이 되도록 아주 먼 미래이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고민한다. 나 하나 챙기기에 바쁜 시대에 부모님 챙길(p. 286) 여유가 있을까. 과연 어떻게 효도할 수 있을까. 해답이 없는 이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남기지 못하고 결국 물음표로 글을 마무리 한다.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이 기회의 시간 동안, 나는 과연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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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2】 성실한 삶의 본을 보인 부모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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