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시무) 교역자 30명이 3월 6일부터 7일까지 경북 안동 일대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안동은 경상북도 중북부에 있는 도시로,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중심지이자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둘째 날 일정 첫 번째 방문지는 이원영 목사 생가였다. 이원영 목사(1886-1958)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로, 생가는 안동시에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신학자로, 개신교를 통해 민족의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독립운동 가담으로 인해 복역 중 기독교를 접하고 가출하여 세례를 받고 1930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했다. 제39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고 현재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생가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양반 가옥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이원영 목사의 업적을 기리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의 신앙심과 민족운동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과 유품들이 보존되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두 번째 방문지는 도산서원이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으로 시작했다. 그의 사후 1574년(선조 7년) 제자들과 유생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서당 뒤편에 사당을 추가로 세웠으며, 1575년에는 석봉 한호의 글씨로 된 현판을 사액 받았다. 도산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사칠논변' 등 퇴계 이황의 학문적 업적이 이곳에서 정리되었다. 서원의 주요 건물로는 강학 공간인 도산서당, 제향 공간인 전교당 등이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는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른다. 서원의 자연환경 또한 인상적이며, 주변의 산세와 낙동강이 어우러져 조선 선비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학문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였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도산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성리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 번째 방문지는 유교문화박물관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부속기관인으로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또 이를 토대로 국학자료의 기탁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유교' 전문박물관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개별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으로부터 기탁받아 소장하고 있는 국학자료들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엄선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인 유교문화의 폭과 깊이를 보여 주는 다양한 유물과 풍부한 볼거리를 꾸준히 발굴하여 전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산실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 나가고 있는 곳이다.



네 번째 방문지는 안동교회였다.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을 맺게 됨에 따라 1884년 9월 20일 알렌 의료 선교사,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펠셀라 두 분의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상륙하여 이 한국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을 시발점으로 부산 주재 배위량(Rev.W.M.Baird)선교사는 1893년에, 대구 주재 안의와(Rev. James E.Adams)선교사는 1902년에 안동을 순행하면서 시장 전도를 하였고, 복음서를 팔기도 해서 국곡교회와 풍산교회가 서게 되고, 1903년에 베럿(Rev.W.M.Berrett), 부해리(Rev.H.M.Bruen) 두 선교사의 순행으로 방잠(현 와룡면 나소동)에서 기독교 집회가 1906년에 개최되어 참석했던 사람들이 각기 자기 마을에 교회를 설립하게 됨에 영주 지곡에도 1907년에 교회가 세워졌다. 안동 인근에 교회가 세워지고 안동 시내에도 믿는 자들이 생겨남에 따라 1908년 안동 선교부가 설치되어 쑈텔(Rev.C.C.Sawtell)선교사가 주재 선교사로 임명되는 등 선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가운데 대구 주재 선교부가 기다리던 교인이 안동에 생겨나고 심지어 지곡까지 내왕하며 예배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의와 선교사가 내안하여 풍산교회 교인 김병우 씨를 매서(당시 복음서를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사람)로 파송하여 서문외(현 대석동 대석상화 자리)에 있던 초가 5칸을 사들여 서원을 개점하고 교인들을 모아서 예배를 인도하게 했다. 1909년 8월 둘째 주일 처음으로 예배드린 감격스러운 이날이 안동교회의 창립일이 되었다. 이후 5개의 지교회를 설립했으며, 두 분의 생존하는 원로목사를 모셨었고, 두 분은 총회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큰 내분 없이 교회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을 자긍심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방문지는 주기철 목사 수난기념관이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의성경찰서가 있었던 곳으로 좌측의 동향 건물은 경찰서의 현관을 폐쇄하는 등 중수하였으나, 목조 건물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고 있다. 정면 남향 건물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으나, 여전히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의성경찰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들이 갖은 고문과 수난을 당했던 애국 애족의 장소이다. 3•1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의성농우회를 조직하여 농촌 계용 운동으로 민족 독립의 방안을 모색한 농촌 계몽가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이곳에서 수난을 당했다. 특히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평양에서 의성으로 압송되어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의 양심을 지키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던 소양 주기철 목사와 의성 춘산면 지역 목회 중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순교한 권중하 전도사 등이 고난과 박해를 당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는 이곳을 2017년 9월 21일 제102회 총회에서 한국 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4호로 지정하였다. 지난 2023년 4월 예배 후 완공을 앞둔 가운데 올해 5월경 개관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유교문화의 중심지 안동의 병산서원, 도산서원 등 방문을 통해 유교 사상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가졌고 아울러 이원영 목사 생가, 안동교회, 주기철 목사 수난기념관 방문을 통해 유교의 땅에 뿌리 내린 기독교가 든든히 세워지고 민족을 위해 큰 역할을 감당했던 역사를 확인했다. 오정호 담임목사는 동역하는 교역자들이 이러한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 목숨 다해 사명 감당에 최선을 다할 것을 기대하며 저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또한 이 수련회에 참석한 모든 교역자는 좋은 일정과 식사를 배풀어준 담임목사께 감사하며 더 좋은 사역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일정을 마무리하고 사역의 현장인 새로남교회로 향했다. (필자도 오정호 목사의 배려로 일정에 동참하며 생애 첫 안동 지역 명소를 찾아보는 귀한 시간을 누렸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