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Home >  오피니언
-
【쓴소리】 신앙집회에서 ‘경품추첨’을 퇴출하라!
올해 열리는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도 빠지지 않고 경품추첨이 등장했다. 과연 이것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는 주제와 맞다고 생각하는가? 교단의 여러 연합회 행사를 취재가다보면 많은 경우에 경품추첨 혹은 행운권추첨을 한다. 어느새 이것이 자연스럽게 순서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문제점은 없는가? 구굴 AI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전국 목사장로기도회 때 경품추첨하는 것의 장단점은?” AI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이에 동의한다. '전국 목사장로기도회'는 한국 교단들의 영적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권위 있고 엄숙한 자리입니다. 이런 대규모 교단 행사에서 경품 추첨을 도입하는 것은 일반적인 신앙 행사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장단점을 가집니다. 장점 ▲참석 독려 및 이탈 방지: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 특성상, 마지막 순서까지 자리를 지키게 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됩니다. ▲긴장 해소 및 교제 활성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목회자와 장로들이 엄숙한 기도회 중간에 잠시나마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목회 현장 지원: 승합차나 고가의 IT 기기 등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미자립 교회나 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게 실질적인 목회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단점 ▲기도회의 영성 훼손: 가장 큰 비판 지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기도회의 본질이 경품이라는 세속적인 이벤트에 가려져, 영적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행성 및 위화감 조성: 과거 일부 기도회에서 수천만 원의 현금을 경품으로 내걸어 "어려운 개척 교회 목회자들을 실망시키는 과시성 행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도자적 품격 논란: 한국 교회를 이끄는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요행을 바라는 모습이 외부나 성도들에게 비춰질 때, 영적 지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제언 최근에는 경품 추첨을 아예 없애고 '기도에 전념하는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만약 경품을 진행한다면, 단순한 '운'에 맡기는 추첨보다는 미자립 교회 지원이나 목회 아이디어 공유에 대한 시상 등 의미 있는 명분을 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AI는 인터넷상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정리한 것이다. 결국 경품추첨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장기도회 주최 측은 기도회 참석률을 올리거나 유지하기 위해 경품추첨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기도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앞으로 교단 행사에서 “경품추첨”이라는 값싼 방법을 퇴출시키기 바란다! 행사의 수준을 높이면 끝까지 참석한다. 본질을 외면한 채 사행심에 기대면 안 된다. 우리 교단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어서야 되겠는가?
-
【북토크399】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죽을 때
20년 전 출간되어 5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은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출간되었다. 1000명 넘는 이들의 임종을 목격한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가 기록한 ‘죽기 전에 하는 후회’의 목록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사연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삶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재점검하게 한다.-교보문고. “죽을 때 후회가 없어야 할텐데” 이것을 늘 생각하며 매일을 산다. "선생님, 동생이 고맙다고 했어요." "고맙다고요?" "네, 이 천하의 악동이 고맙다고...." 나는 Y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의 험상궂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온화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고맙다고요?" "네, 고맙다더군요. 동생과 오래도록 옛날이야기를 했어요. 마지막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듣고... 선생님, 저는 정말 기쁩니다" 몇 시간 후 Y선생은 눈을 감았다. 까칠하고 괴팍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선생은 어쩌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형의 사랑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마지막 숙제를 다 마친 아이처럼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p. 48). "고마워." 후회 없는 마지막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p. 49). 요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지나친 인내와 희생이 마음의 부조화를 야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평소에는 가슴에 참을 인 자를 새기고 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런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가끔 사고를 칠 때도 있지만 덕분에 무조건 참는 일로 받는 스트레스는 없다. 내 마음을 내가 돌본다고 할까? "할 말 다 했다가 상사한테 미운털 박혀서 나중에 진급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밥줄이 달려 있는 데 바른말 하기는 쉽지 않지요."(p. 54). 분명 이렇게 투덜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는 책임감이 다소 부족한 가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면서 참고 또 참는 일은 분명 내면을 다치게 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두가 성실하다. 시간에 쫓기고 부족한 잠에 허덕이면서 해방구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낸다.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자신을 꽁꽁 옭아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좋은 사람'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반대로 '악랄한 파렴치한'은 오래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조리는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묵묵히 참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닐까?(p. 55) 바로 지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하고 싶은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괜찮다고, 이 정도면 참을 만하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 가슴을 치며 후회 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지 않길 바란다(p. 57). 하지만 모든 인간은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이 눈앞에 바짝 다가왔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의 한계, 부족함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걸음 물러서서 차분히 사물을 바라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성공과 더불어 후회 없는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귀를 '순하게' 하는 일. 그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이다(p. 64). 마지막 순간에 가슴을 후벼 파는 후회는, 이루지 못한 꿈이나 이룰 수 없었던 꿈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다. 한 우물을 오래 파다 보면 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진실인 것이다. 물론 평생 동안 꿈과 열정을 품고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그렇게 늙어갈수록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도 조금씩 줄어든다. 이런 잔인한 현실에서 꿈과 열정을 계속 간직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저 멀리 빛이 있음을 믿고 다시 두 주먹 을 불끈 쥐고 일어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좇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p. 83)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외면하고 중간에 꿈의 끈을 놓았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향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면 후회는 한결 줄어들 것이다(p. 84). 일만 하느라고 놀 줄 모르는 사람들,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p. 114) 매우 많다. 물론 마지막 순간을 위해 일부러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좀 더 풍요로운 인생을 꿈꾼다면 취미 하나 정도는 갖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삶의 기쁨을 느낀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긴 세월 동안 '놀이'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은 마무리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 모습에 '후회'는 없다(p. 115). 치료의 의미는 무엇일까? 질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되찾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술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병이 있는데, 이럴 때 치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불치병을 치료하는 목적은 병이 더는 악화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다. 한편 환자 입장에서 완치가 어려운 병에 걸렸을 때,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인생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병마의 세력 확장을 막는 데 있을까? 물론 병이 더 진행되지 못하게 막는 치료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p. 222)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환자와 의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어느 정도 선에서 마음을 접고 남은 생을 더 알차게 꾸려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쪽이 한정된 시간을 가장 보람 있게 보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테지만, 나는 단순히 목숨을 이어가는 '연명'이 삶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생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일, 목숨을 부지하는 일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 은 아닐 것이다. 장수와 건강은 인간이 꿈과 희망을 이루는 데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아닐까? 이 세상에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불치병에 걸렸을 때, 단순히 살아 있는 시간을 일 초라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시술하는 치료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동반한다. 어쩌면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치료에 빼앗길 수도 있다. 특히 말기 암에서 암세포가(p. 223)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했다면 항암제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항암 치료뿐 아니라, 말기 환자를 위협하는 치료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수액과 수혈이 환자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항암제로 다스리기 어려운 말기 암의 치료 목적은, 시간 확보와 아울러 질병에서 비롯된 통증과 항암제 부작용을 덜어주는 것이다. 완치가 어렵다면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그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치료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이는 조금만 진 지하게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 분, 일 초,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삶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있다. 그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연명에 대한 강한 집착이 오히려 생명의 시간을 앗아간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말기 치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p. 224)보하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p. 225).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 죽음을 앞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희망 없는 연명 치료를 중단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남아 있다는 진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p. 226). 나는 세상을 떠난 환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내세를 믿으면 좋은 점은, 이 세상의 이별은 일시적이라는 것,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안을 받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세의 존재는 이별의 슬픔을 치유해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이런 믿음이 필요한 사람이 꽤 많다(p. 229).
-
【북토크398】 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는?
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언어를 공부하는 걸까?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라 미국에서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미소가 삶에서 언어와 함께하는 법, 언어와 함께 성장하는 법을 들려준다. 우리는 영어를 그 자체로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반복해서 읽고 외워야 한다고 여긴다. 이른 나이에 배울수록 더 능숙하고 원어민답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김미소는 말한다. 언어 학습을 시작한 나이보다는 해당 언어로 쌓는 경험이 더 중요하며, 언어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따라서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경험하는 세계가 중요하다고.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다. 영어광풍인 우리사회가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빠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틀에 박혀 있던 내 사고가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기 시절의 큰아이를 마지막으로 봤었는데, 지금은 가족 간에 이중언어를 편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성장 과정 내내 3개월 단위로 베트남과 한국을 번갈아 가며 살기를 반복해 온 덕이었다. 물론 아직 대화라(p. 26)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맥락상 상대가 아빠나 나나 오빠일 때는 7세 또래들이 쓸 정도의 한국어로, 상대가 엄마나 할머니일 경우에는 베트남어로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종종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두 언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가족과 이야기해 보니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국제학교를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아아,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 국경 하나만 넘으면 이 친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구나. 이 친구가 갖고 있는 정체성, 언어 자원, 문화 자본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지구본에 그어진 선을 조금만 넘으면 존재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국의 틀에만 갇혀서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이주, 디아스포라, 코스모폴리타니즘 등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개념이 눈앞에 뚜벅뚜벅 살아나왔다(p. 27). 외국어는 이른 시기에 배울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한 예로 사춘기(대략 12세 이후)까지 제2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이 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의 뇌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화(lateralization)'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뇌의 가소성이 떨어지므로, 새로운 언어를 배워도 원어민처럼 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성인이 되어 제2언어 실력이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고 굳어 버리는 현상을 '화석화(fossilization; Selinker, 1972)'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인일수록 언어를 배우기 어려워지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기되었는데, 뇌의 가소성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고 (Long, 1990) 자신이 쓰는 제2언어와 원어민이 쓰는 언어 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Schmidt & Frota, 1986).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p. 33)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속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Ortega, 2019).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아이가 제1언어 또는 제2언어로 만들어나가는 세계는 대체로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다. 아이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고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므로 아직은 어른의 개념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주변의 성인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해준다. 아이들은 아직 단단히 만들어진 세계가 없는 만큼 새로운 변화에 유연할 수 있다. 반면 성인이 제2언어를 통해 만들어가는 세계는 아이의 세계만큼 친절하고 말랑말랑하지 않다. 성인이 될수록 언어를 배우는 게 힘들어지는데, 단순히 발음을 잘할 수 없거나 문법에 능숙하지 않은 게 문제는 아니다. 성인은 이미 모국어로 구축해 놓은 정 체성과 사회관계망이 단단하기 때문에 그 벽을 깨고 제2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게 큰 도전이 된다. 화석화되는 건 제2언(p. 34)어 능력이 아니라, 이미 모국어로 단단히 형성된 자신의 자아다. 모국어로 쌓아 올린 자아는 이미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다. 모국어 세계에서 이뤄놓은 성취도 많고 친척, 친구, 동료와의 관계도 탄탄하다. 그렇지만 제2언어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때로는 부당함과 무시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은 성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며, 제2언어를 통해 성인 대 성인으로 맺는 관계는 꼭 평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 외국어를 배우는 건 숨 쉬듯 편안했던 자신의 자아를 다 무너뜨리는 과정이구나. 너무 당연해서 자아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부끄러워질 기회를 일부러 더 만들고, 자존심을 굽히고, "내가 한국에서는~" 같은 생각을 전부 내려놓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이 관계에서는 수도 없이 불편한 일이 일어나고, 원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권력관계 안에 들어가야 하며, 상대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호함을 견뎌야 하고, 지나가는 여섯 살 아이에게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국어 세계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제2언어 자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다(p. 35). 자아가 말랑말랑해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이 고립될 뿐이다(p. 36). "Whats your hobby?"도 "What do you do for fun?"도 좋은 문장이다. 만약 여러 언어를 넘나드는 친구라면 Whats your 취미?" "What do you do after 퇴근?"처럼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의미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스마트폰 사진 앱을 켜서 직접 사진을(p. 84) 보여주며 이게 내 취미인데 너는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 언어는 진공 속에서 존 재하지 않으며, 원어민의 언어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p. 85). 영어 말하기라는 여정을 시작할 때는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것, 이제 막 태어나는 내 외국어 자아에게 친절해지는 것. 언어는 스파르타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내 말랑말랑한 영어 자아는 채찍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스한 양육이 필요하다(p. 229).
-
【북토크397】 의사가 밝히는 질병 통해 돈버는 병원 민낯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서 저자 김현아 교수는 의사로서, 교수로서, 의료 정책 연구자로서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고발한다. 수많은 환자가 한국 의료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은 커져간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구조를 알아내는 건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표면적인 문제 현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문제가 생겨난 구조를 추적한다. 통제된 의료수가는 수익이 되는 의료 행위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강해진다. 이 상황을 통제하고 개선해야 하는 정부도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믿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이 책은 병원 비즈니스의 민낯을 보여준다. 흥미롭게 읽었다. 이러한 책을 저술한 의사의 다른 글도 읽어볼려고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사건이다. 한 인간이 잘 살았는지는 그가 어떻게 죽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젊은 시절 영민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이들이 나이 들면서 추한 욕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내린 끝에 젊은 시절의 공덕을 모두 까먹고 가는 일을 숱하게 본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아예 지워버렸고, 인간은 이제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다 끝나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병원에 가면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굳게 믿게 되었고, 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이제 삶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피할 수 있으며 피해야만 하는 재앙이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 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이다(p. 31). 길버트 웰치Gilbert Welch 교수는 『과잉 진단』이라는 저서에서 인체에서 발견되는 이상의 정의를 자연의 복잡계 이론을(p. 36)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포 앞바다에는 몇 개의 섬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해보자. 이때 섬의 정의를 인위적으로 내리지 않는 한 "모른다"가 답이다. 축척을 늘려서 들여다보면 낮은 배율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섬들이 새롭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섬을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가? 알 수 없다. 이 논리는 복잡계의 최고봉인 인체에도 적용된다. 인체에서는 매일같이 이상 세포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검사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검사를 자주 할수록 의미 없는 이상 소견은 늘어난다. 이미 큰 논란이 된 갑상선암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광풍은 최고의 의학 학술지 『뉴 잉글랜드 의료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까지 대서특필되는 망신을 당했음에도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도 환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유 없이 갑상선에 초음파를 대지 말라는 말을 하지만 역부족이다. 다 알만한 사람들 중에도 갑상선 초음파 검사 후 이상 소견 발견→침생검→암세포 검출의 수순을 밟아 갑상선 절제술을 하는 일을 보곤 한다. 갑상선암 조기 발견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이나 후나 사망률에는 차이가 없다는, 갑상선암은 무병장수하고 사망한 사람의 부검에서 가장 흔히 보는 암이라는, 그래서 어쩌면 발견할 필요가 없는 암이라는 이성적인 생각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기 진단에 의한 수술을 담보로 죽음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공포 마케팅의 무서운 위력이다(p. 37). 연골이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나의 전문 연구 분야는 골관절염이다. 일명 퇴행성 관절염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할머니들이 무릎을 짚으며 절룩거리는 이(p. 74)미지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해마다 연구비는 타야겠기에 시류에 맞는 연구 과제들을 제출하면서 연구의 활용 방안 란에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근거를 제공하여 10조 원 규모의 바이오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허풍을 떤다. 연구비를 받으면 감사히 쓰기는 하지만 내가 하는 연구가 이 병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은 몹시 쓰 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연구(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있지만 질병의 이해를 깊게 하고 건강 불평등을 개선시키는)를 하겠다고하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다. 10여 년 전 미국 학회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는 유레카를 체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은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서 키우는 원숭이에 대한 연구 결과였는데 부자나라답게 미국 국립 보건원은 한 마리당 1억 원 정도는 들여야 데이터를 낼 수 있는 원숭이들을 대량 사육하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원숭이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시면 모든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어 자기 연구 분야에 해당하는 장기를 떼어 간다. 이렇게 해서 얻은 원숭이의 무릎 사진을 한 컷 보여주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 관절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았다. 자연 서식지에서 원숭이들의 수명이 4~5년인데 비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 먹이 걱정도 없기 때문에 그보다 두세 배 정도를 더 산다. 퇴행성 관절염(p. 75)도 그런 것이라는 깨달음이 번뜩 들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석기 시대에 약 20세였던 것이 20세기 초반 40세 정도로 늘기까지 수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100년도 안 되어 인류의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더 늘어버렸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의 무릎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거였다. 수만 년 진화의 역사를 역행해서 무릎 연골에 무슨 마술을 부려서 관절염을 고치겠다고 연구비를 신청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러고 몇번은 완전히 다른 연구 과제를 써서 냈다가 연거푸 미역국을 먹고, 신념은 멀고 먹고사는 건 당장인지라 할 수 없이 다시 "손상된 연골을 회복시켜"로 복귀해서 연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세상은 희한하게 돌아갔다. 많은 환자가 무릎에 연골 주사(연골을 보호하는 효능이 입증된 적이 없는)를 맞고 다녔고 연골을 재생하려고 몇백만 원 주고 줄기세포를 맞 았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식 자랑하기 좋아하는 분들이 "우리 아들이 치료비 냈다"라고 자랑하면서 이런 치료가 효도 상품으로 등극했고, 어르신들 사이에 무의미한 경쟁심과 좌절감이 양산되었다. 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무릎 연골이 다 없어진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보건의료 연구원의 신의 료 기술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줄기세포 연골 재생 치료에 대하여 "환자에게 돈을 받기 전 임상 시험부터 제대로 하라"라(p. 76)는 권고를 했다가, 편협하고 신기술에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비난만 받기도 했다(p. 77). 극우파 의사 대한민국 의사들은 보수 정당 지지자가 많다(개인적 견해로 우(p. 153)리나라의 보수는 극우에 가깝다),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태극기부대 지지자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언젠가 사석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굳이 말을 안 하겠다는 내게 의견을 묻기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했다가 거의 '빨갱이' 취급을 당한 이후로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식견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의료 사회주의'이다. 이 말을 지은 분은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의료만 사회주의로 운용되어야 하느냐"라는 강한 불만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의사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은 세력 중 하나가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였다. 1962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도했을 때 미국의사협회 회장인 에드워드 애니스Bdward Annis는 이렇게 말하며 반대했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사회주의이다." 그가 말한 사회주의와 우리나라 의사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의 뉘앙스가 물론 같지는 않다. 1962년이면 미국에서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냉전이 한창인 시점으로 사회주의라는 말은 공산주의와 동의어였다.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국가의 통제하에 살아가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호랑이에게 곶감보다 더 무서운 말이(p. 154)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의사들에 동조했고 대표적으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사회에 침투할 때 가장 먼저 손을 뻗치는 영역이 의료이다”라고 주장했다.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이 미국의 공적 보험인 메디케어를 도입할 당시에도 공화당에서는 사회주의의 전조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독재 정권에 의한 압제를 오래 받아온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의료에 간섭하는 것이 처음부터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당시 의료 보장이 되던 북한과 비교했을 때 남한의 체제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와 강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적은 비용으로 국민건강보험을 이룬 것은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입장의 자본주의 독재 체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부르짖는 '의료 사회주의'라는 말은 돈이 없는 국가가 필수 의료수가를 형편없이 후려쳐서 강제로 국민 개보험을 만들고, 의사들을 통제 하면서 정작 개별 의사들은 자영업자로 내몰아 병원 경영의 모든 위험을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모순에서 나온 것이다. '의료 사회주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료가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미국의 의료 제도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굳이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식코〉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미국의 공화당과는(p. 155) 달리 의사들의 편을 들어줄 마음도 별로 없다. 어떻게 해도 자기들을 지지하니까. 그런데 미국의 공화당도 더 이상 의사들의 편은 아니다. 이미 미국의 정치인들은 거대 제약 회사와 사보험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고, 그 경향은 미국 민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정치적 성향은 미국과 같이 공적 의료가 부족한 국가에서 보이는 '상인 우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들이 자영업자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 지식을 익히느라 너무 바빠서 사회라는 큰 흐름을 보지 못 하고 세상을 읽는 능력도 부족해지며,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 오히려 해가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온 면도 있다. 의사들의 행동이 공공선에 반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개개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 나라의 정책이 의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미국 의사들이 건강보험을 반대한 것은 그들이 유달리 사악한 집단이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각자 도생의 논리가 의료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세한 사회가 되면 의사들은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상인 우파 의사'의 미래도 별로 밝지는 않다. 미국은 이미 대형 병원, 사보험회사 등의 자본이 의료를 포섭한 상황이다. 미국 의사들은 날로 덩치가 커져가는 병원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며 전문성을 위협받는 현실에 대해서 고민한다. 또한 진료에 할애할 시간이 보험회사 서류 작성 때문에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해 번아웃까지 생긴다(p. 156)고 호소한다. 그런데 이건 우리나라 의사들이 오래전부터 당해 왔던 일이다(p. 157). 현대 의료는 이제 노화를 병으로 간주하고 죽음을 몰아내(p. 260)겠다고 선언하고 많은 과학자는 인간의 한계 여명인 120살을 넘겨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평균 수명이 고작 10여 년 길어지면서 야기된 어마어마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이 모든 인본적•사회적 함의를 집어 삼킨 결과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인간이 필요 없는 의료가 도래할 수 있다. 땀 한 방울을 넣으면 수십 가지 정보를 제공해주는 AI가 나타날 수도 있고 당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99퍼센트의 정확도로 알려주는 알고리즘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없는 의료의 시대에는 환자 또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듯 기술이 지배하는 의료의 시대에 인간은 그저 하나의 이상 수치로 환원되고, 그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맥락은 지워진다. 다시 인간을 소환해야 하는 문제는 비단 의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의 시간이 지나면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어긋난 일이 없는 진실을 기억하고 체화하는 것만이 인간이 소거되는 현실에 맞서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p. 261).
-
【북토크396】 글쓰는 자들의 고통
매 시절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서정 시인 문태준. 그가 접한 부드러운 자연과 고유한 사물, 생명과의 교감에서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사유를 엮었다. 문태준의 산문은 익숙한 일상에서 사유를 펼쳐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흔들리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들이 시인의 따스한 시선, 그리고 언어의 정수를 담은 문장과 만나 호흡하고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자체이다. 특히 그의 이번 산문집은 이야기의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그가 써 내려간 진실한 깨달음은 시와 어우러지며 여태 몰랐던 색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이 순수한 기록은 시인 문태준이 기다렸던 첫 문장이자 우리가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문장이리라.-교보문고. 전업 시인, 문인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문학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자로서 책을 써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시인의 일 시를 쓰기 위해 새벽에 혼자 방에 앉을 때가 더러 있다. 밤은 깊고 세상은 고요하다. 백지에 첫 생각을 펼쳐놓고 첫 생각이 그날의 우연하고 특별한 선택들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내 기억으로부터 온 것들과, 지금의 나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는 것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시를 만드는 것을 지켜본다. 어떤 경로를 통해 시가 만들어지는지 명백하게 알기는 어렵다. 시는 잘 만들어질 때도 있고, 또 어떤 이득도 없이 흐지부지 시간만 흐르다 날이 새면서 그 흰빛 속으로 아주 사라지고 마는 때도 있다(p. 23). 나는 시가 만들어지는 그 경과보다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 어떤 시적 기미를 알아채는 일에 더 마음을 사용한다. 그래서 날마다 시를 읽고, 음악을 옷처럼 두르고, 세계에 질문을 하고, 미술과 영화와 사진을 만나고, 생활의 시장에 가고, 홀로 단순한 시간에 오두막처럼 앉고, 하나의 생각이 걷는 미로를 따라간다. 시를 쓰는 일은 매번 새롭고 두려우며, 차갑게 외롭고 고통이 있다. 시의 첫말을 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첫말에 따라 시의 높이와 깊이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를 쓰는 사람이 된 지도 25년이 지났다. 스물다섯 살에 등단해서 벌써 쉰 살이 되었다. 나는 가끔 갓 등단했을 때의 나를 떠올린다. 시단의 어른들이 모인 허름한 술집 말석에 앉아 어른들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를 떠올린다. 그때 어른들은 속이 깊었고, 정이 많았고, 눈매가 선했으며, 세상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분들에게 적어도 시를 짓는 일은 한가한 일이 아니었다. 개인의 한가한 심사를 풀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시를 짓는 이유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p. 24)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보람을 얻지 못하는지,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는 무엇인지 궁리하는 것이 내 시였으므로 시는 내가 보고 듣고 살던 삶으로부터 비탄처럼 태어났다. 해 뜨면 논밭에 나가 땡볕에서 일하지만 큰 빚더미에 눌려 밥과 돈을 구하러 매일매일을 사는 사람들의 캄캄한 절망과 슬픔에 대해, 그럼에도 삶의 채탄장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단단한 의지의 근육과 희망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처럼 관심했던 곳으로 내 시가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p. 25). 얼마 전 문득, 내가 부정적인 생각에 꽤 많이 휩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곧 일어날 미래의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어둡게 전망하고, 결과를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밝은 날의 장면들도 많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암울한 날들의 장면들도 많았기 때문일 테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잡아함 41권 1,136경 《월유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부처가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에 달을 비유로 들어서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하셨다(p. 87)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음식을 얻기 위해 재가의 집에 가거든 마땅히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가라. 마치 처음 출가한 신참자처럼 수줍고 부드러우며 겸손하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가라. 또한 훌륭한 장정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높은 산을 오를 때처럼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진중하게 하라. 이 가르침을 읽으면서 나는 평소의 내 얼굴빛과 표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얼굴이 구겨진 종이처럼 너무 자주 일그러져 있거나 화냄의 불길에 휩싸여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수줍고 부드러운 얼굴은 무엇일까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그런 얼굴이란 아마도 내가 최근에 산길에서 본 노란 복수초와도 같은 얼굴이요, 또 돌담 아래서 피어나기 시작한 수선화 같은 얼굴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은 내가 맞을 미래의 시간에 더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긍정적인 내심으로부터 맑은 샘물 처럼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실로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 해 극도로 염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얼굴이 환하게 활짝 펴(p. 88)질 날이 드물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구실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도 내가 만든 것이다. 스트레스는 알고 보 면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유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면 바닷가를 산책할 때, "오늘은 바다가 잠잠하다" "물질 나갔던 해녀가 헤엄쳐 돌아온다" 같은 말처럼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감정을 덧씌우지 않은 문장을 말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에 묶이지 않으면 어두운 언어를 구사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내 얼굴빛도 화사해질 것이다(. 89). 다섯 수레의 책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나의 마음의 어둑한 고요의 공간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의 회색 황혼"이라고 가을날을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을 노래했다. 가을에는 조용한 공간이 내면에 생겨난다. 조금 쓸쓸하면서 잠잠한 시간을 살게도 된다. 이런 시간은 자신을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때이기도 하다. 또 책을 펼쳐 읽다 책갈피를 꽂아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어도 좋은 때이다. 책을 새로이 많이 구입하진 못하더라도 읽고 싶었던 한두 권의 책을 이 가을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p. 186) 좋은 때이다. 얼마 전 산문집을 내고 나서 독자들을 만나는 여러 행사를 치렀지만, 최근 한 책방으로부터 온 제안은 특별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들을 위해 책에 직접 사인해서 보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수백 명의 북클럽 회원들에게 보낼 책에 하나하나 사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방의 기획이 참신했고, 또 책을 지은 사람으로서 책방의 북클럽 회원들이 내 책을 구입해 함께 읽는다니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이 책방에서는 매달 좋은 책을 골라 북클럽 회원들에게 그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힌 '책방마님'의 편지와 함께 보내주고, 책을 다 읽은 후 서로 토론하고 독후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특정 분야를 정해놓고 책을 고르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소설, 시와 에세이, 역사,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망라한다고 했다. 다만 '생각의 경계를 넓혀주는 책, 통찰력을 품고 있는 책, 혹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고른다고 했다. 책방 주인과 북 큐레이터, 외부 자문단이 참여해 최종적으로 회원들에게 보낼 책을 선정한다고 했다. 어떤 책을 고르느냐에 북클럽의 성(p. 187)패가 달린 만큼 성심껏 한다고 했다. 이 책방의 이런 시도가 의미 있고 또 돋보이는 것은 책방이 독자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독서열'을 지퍼 이끌어간다는 데에 있다. 또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책에 대한 이해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책의 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독자는 독서의 총량을 늘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오거서'라는 말이 있다.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을 일컫는다. 장자의 친구였던 혜시는 소장한 책이 다섯 수레에 이를 만큼 다독가였다고 한다. 당대의 문학가였던 한유는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면서 시 〈부독서성남시〉를 지었다. 가을이 되어 장마 걷히고 서늘한 바람이 들녘에 불어온다 이제 등불을 차츰 가까이해서 책을 펼쳐볼 만하다 이 시에서 '등화가친'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한유(p. 188)는 이 시에서 나무가 둥글게 혹은 모나게 깎이는 것은 목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글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같아 어린 시절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능력을 나타내는 점이 달라져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따라 마치 맑은 냇물과 흙탕물 도랑의 차이만큼 사람됨이 달라진다면서 독서를 권장했다(p. 189).
-
【북토크395】 베트남전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베트남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내는 중요한 기회이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가 주도한 기억의 왜곡과 강요된 망각, 과도한 국가주의, 인간 경시 풍조, 사회정의의 부재를 드러낸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한국에서는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았고, 파월장병 또한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어쩌다 태극기를 들었을까? 특히 이 책은 사과하고 용서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윤리학적인 차원과 역사적 사례를 교차해 설명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파월장병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게 해준다.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진실의 다면성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고루 담아내는 이 책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전쟁시대의 우리 아버지들과 베트남전쟁을 현재의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잇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다.-교보문고. 베트남전의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나라가 맡았던 악역에 대해 잘 기술한 책이다. 이제 세월이 흘렀다. 베트남전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은 솔직히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에 관심이 생겨 책을 챙겨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직면해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팩트와 이에 대한 바른 해석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도덕적 책임추궁의 주체에 대해서도 되물을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흔히 비쳐지듯이 양심세력과 진실을 막는 거짓 세력 간의 한판 승부인가? 아니면 좌우 진영 간의 정치투쟁일까? 만약 그렇다면 판단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은 사안의 핵심을 놓친다. 만약 민간인학살 문제를 제기한 '양심세력'이 가해자들을 오로지 심판의 대상으로, 즉 자신과는 실질적으로 무관한 존재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피해자의 처지와 동일시하며 감상적 연민을 느낀다면, 그것은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는 것이다. 흔히 올바른 과거사 청산의 모범으로 간주되는 독일(p. 17)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기억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대다수의 독일인은 희생당한 유대인들에 공감하지, 가해한 나치 전범들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지는 않는다. 물론 방문객들이 느끼는 도덕적 분노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하지만, 은연중에 스스로를 면책시키면서 우리 세대는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마저 부추길 우려가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 동독은 나치 수괴 히틀러를 '서독인' 이라고 얼버무리지 않았던가(p. 18). 맹호 용사들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전장에 오게 된 것은 대체로 자의반 타의반이였다. 군은 처음에는 지원자를 모집 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금전적 이득을 부각하며 지원을 독려했다. 1965년 맹호와 청룡부대의 3차 파병 그리고 이듬 해 백마부대의 4차 파병 때는 부대 단위로 차출이 이루어졌다. 맹호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서는 자원병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전쟁(p. 33)터로 내몰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한 가난한 농민의 자식들이 가족을 위해 나 한 몸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전쟁에 자원했다. 당시 3년이나 요구되던 가혹하고 진절머리 나는 병역을 벗어날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젊음의 객기로 전쟁에 자원한 경우가 많았다. 복무기간이 1년으로 훨씬 짧고 한밑천 만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전장은 꽤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꼭두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온갖 일에 시달리면서 툭하면 보안대나 헌병대에 불려 가 얻어맞고 정해진 의례처럼 일명 '줄빠따'를 맞거나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기합만 받는 유격훈련을 견딜 바에야 차라리 영화 속 장면 같은 전쟁터에 나가 멋지게 싸우리라, 살아 돌아온다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리라 기대되었다(p. 34). 프랑스제국의 주구였던 바오다이 '황제'에서 미국의 하수인이던 웅오던지엠 대통령으로, 이후 유혈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의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남베트남의 지배세력은 부정과 부패, 무능으로 일관했다. 북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의 토지개혁이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지를 얻어갔던 데 반해, 북위 17도선 이남에서는 봉건적 지주들과 기득권 관료들이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따라서 베트남인들의 전반적인 민심이 남북 중 어느 쪽을 선호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베트남에서 남북간 대결은 결코 일반적으로 말하는 체제 대결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트남전쟁은 흔히 '베트콩'으로 불리던 남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북베트남의 조력을 받으며 외세 및 그 부역자들과 싸운 통일전쟁이었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남북한이 정면대결을 펼친 한국전쟁과는 달리, 북베트남은 베트남전에서 주역이 아니었다. 베트남 분단선인 17도선(p. 53) 이남의 민족해방투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이미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과 싸우면서부터 게릴라전에 길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제네바 평화협정의 불이행을 문제 삼으며 민족해방전선의 기치 아래 모였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거치는 공급선인 이른바 '호찌민 루트'를 구축하여 남북 간에 사람과 물자를 은밀히 이동시켰다. 해방전사들은 주민들 사이에 깊숙이 침투해 그들과 거의 하나가 되었다. 베트남전이 정규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은 1970년대로 접어들어 전세가 확실히 기울게 된 다음이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파월군이 마을 주민과 베트콩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베트콩과 한통속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베트콩보다 따이한 군대를 선호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미군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결속된 마을 주민과 베트콩을 떼어놓기 위해 물을 퍼내 물고기를 말려 죽이는 역공세를 취했는데, 이는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패착이었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른바 '전략촌'을 서둘러 조성하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베트콩이 머물지 못하도록 마을을 불태워버리는 무리한 전략을 구사하여 남베트남 인민의 마음에 적대감만을 키워놓았다. 사실상 군 주둔지들만 제외하면 베트남 전국이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p. 54). 설령 불편한 과거사를 얼버무리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베트남전 참전을 반공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지극히 자기모순적이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역사적 정통성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베트남전은 적어도 베트남인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었다. 약소국이 열강의 침략에 맞서 주권을 지켜내고자 참으로 질기게 싸 웠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은 동병상련해야 마땅할 나라의 자주독립을 훼방 놓은 것일까? 북한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처럼 북베트남의 위협으로부터 남베트남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남베트남은 우리가 수호해야 할 자유세계의 보루이기는 커녕 누가 보더라도 프랑스와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가 아니었던가?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해 제 국민에 의해서도 완전히 버림받은 나라임을 병사들 눈으로 스스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서 싸웠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반공 논리에 비하면 차라리 경제적 활로 개척이라는 실용적 논리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물론 그것은 참전의 이념적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파병은 악마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정당성의 결핍을 무색하게 할 만큼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국(p. 88)가나 병사 개개인 모두 형식적인 반공의 주문을 외며 각자의 목적을 위해 내달렸다. 따라서 불꽃 튀는 전투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내용이 없었다. 그토록 적대하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낯선 베트남 사람들에게 특별한 애증이 있었을 리도 없다. 오로지 '생존' 말고는 별 다른 이유가 없는 승리를 향해 불굴의 의지가 타오르면서 진정으로 원초적인 본능이 작동하게 된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무의미한 전장의 어슴푸레한 포연을 뚫고 나와 작열했던 것이다(p. 89). 베트남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확실히 선례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폭력의 사슬이 대한민국의 역사 전체를 휘감고 있다. 1948년 4월 제주와 1980년 5월 광주 사이에 빈안사와 퐁넛 • 퐁니 • 퐁룩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했던 사람들에게 폭력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폭력의 놀라운 창조력 이었다. 폭력은 한순간에 노예를 주인으로 뒤바꿀 수 있다. 약자는 두려워하고 인내하지만 강자는 주저 없이 우월함을 입증할 뿐이다. 한국인에게 폭력이란 피해자를 가해자로 역전시키는 감정의 연금술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베트남에서 한국인은 자기 자신과 싸운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은 떨치고 싶은 과거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따이한 군대의 폭력이 전략적 목표를 훌쩍 뛰어넘어 광기를 띤 것은 무언가 깊은 혐오의 발로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은 마치 깨뜨리고 싶은 거울처럼 자신을 닮은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본 듯한 이국적인 야자수와 옛 프랑스제국이 남긴 서구문명의 자취가 가득한 꿈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뒤로하고 신상 감독의 194년도 영화 〈빨(p.107)간 마후라〉에 나오는 멋진 공군 조종사들처럼 직선의 활주로를 달려 푸르른 미래로 힘차게 날아오르고 싶었으리라(p. 108). 폭력이야말로 역사를 전환시키는 힘이었다. 그것은 어엿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 의례와도 같았다. 베트남전 참전은 제국 일본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폭력의 유산을 새로운 국민적 정체성과 국제적 지분을 확보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뚜렷한 변곡점이었다. 비록 베트남전은 패전으로 종결되었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어엿한 가해자로서 폭력을 행사한 유례없는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총력 전시동원 체제인 유신체제야말로 대한민국이 원조물자나 받던 궁색한 처지에서 공세적 위치로 전환했음을 웅변한다. 냉전의 최전방 국가인 대한민국은 '부'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 시킬 수 있는 무자비한 폭력의 공화국이 되었다. 긴급조치와 통금, 새마을운동과 민방위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남성들 사이의 군사문화와 성폭력적 언사, 그리고 학교 교실 안 의 가혹한 훈육 방식에 이르기까지 고삐 풀린 폭력이 난무했다. 우리의 골수에 사무쳐 있는 폭력의 유전자를 온존시키는 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유신체제의 꺼림칙한 망령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이 땅에서 폭력의 에너지로 뜨겁게 달아오른 냉전은 본연의 냉혹한 묵시록을 완결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p. 110).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냉전 논리는 국가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시장경제체제인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라는 상투적 논리와 직결된다. 특히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p. 145)한 향수는 젊음을 바쳐 나라를 구했다는 개인적 자부심과 접목되어 일종의 순환논리를 이룬다. 결국 참전용사들의 사고는 국가유공자라는 자기정체성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린 피해자인 동시에 침략과 학살에 연루된 가해자라는 자기성찰의 여지는 거의 없으며 확고한 자기정체성에 위배되는 어떠한 것도 용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꽉 막힌 사고가 지닌 가장 큰 문제는 자기성찰의 결여가 아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타인의 죽음을 경시한다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다(p. 146). 민간인학살에 대해 책임을 추궁 받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주로 상황논리를 통해 책임을 희석시키려 한다. 게릴라 전쟁은 그야말로 잔혹했다. 아군의 월등한 군사력 앞에서 게릴라는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비열한 테러와 저격에 의존했다. 만약 당신이 게릴라와 싸우는 정규군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마을 주민을 그저 순진한(p. 208) 양민으로 믿으며 경계를 게을리해도 될까? 그들 중 일부는 양민으로 위장한 게릴라일 수 있는데다, 설령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더라도 게릴라에게 음식물과 잠자리를 제공했을 터인데 어찌 적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게릴라를 무서워하는 만큼은 이쪽도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나 정말로 순수한 양민이 피해를 당했다면,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전쟁이란 원래 비정한 것이다. 변명의 이유는 그 밖에도 차고 넘친다. 한국군은 대체로 통역관을 수행하지 않아 현지 민간인들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고 그런 만큼 병사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쉽사리 이성을 상실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하기 쉬웠 다. 만약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책임은 전쟁터에 동원된 병사 개개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따라서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인 병사는 죄가 없다...이런 식의 논리는 분명히 일부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을 누가 말하고 있는가이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면책하는 논리라면 설령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참전용사들이 여전히 국가 차원의 사과조차 반대하는 걸 보면, 베트남인들에게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혔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p. 209). 베트남전에서 대한민국 파병군이 보여준 엄청난 폭력성은 그저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전략적인 학살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수많은 학살이 20세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두루 발생했기 때문이다. 타이완과 조선에서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민중을 무참하게 학살한 메이지 일본군, 간도 지역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약탈하고 번연히 살육을 자행했던 중국인들, 중일전쟁중에 수많은 중국 민간인을 학살한 제국 일본의 군인들, 만보산 사건 후 평양에(p. 256)서 중국인을 대량학살한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군중, 국공내전에서 패배하고 타이완으로 건너가 현지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대량학살을 자행한 장제스의 국민당 세력, 그리고 독립국가 건립 이후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지에서 발생한 수많은 학살은 폭력의 역사적 의미를 묻게 만든다. 폭력은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지만 도덕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역사적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20세기의 한반도는 동아시아 여느 지역에 못지않게 폭력에 물들어 있었다. 한국인에 의해 자행된 집단적 폭력은 다른 곳들과 공통된 점도, 물론 아주 색다른 요소들도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유신 및 군사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여느 곳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파급력과 지속성을 가지고 폭력이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렸지만 그럼에도 일반 국민이나 병사들 개개인이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 도 없는 독종들이 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경우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다수의 파월용사들은 영웅도 악마도 아니었을 것 이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등 떠밀려 전장에 동원되고는 부지불식간에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악역을 배정받았을 것이다(p. 257).
-
-
【쓴소리】 신앙집회에서 ‘경품추첨’을 퇴출하라!
- 올해 열리는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도 빠지지 않고 경품추첨이 등장했다. 과연 이것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는 주제와 맞다고 생각하는가? 교단의 여러 연합회 행사를 취재가다보면 많은 경우에 경품추첨 혹은 행운권추첨을 한다. 어느새 이것이 자연스럽게 순서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문제점은 없는가? 구굴 AI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전국 목사장로기도회 때 경품추첨하는 것의 장단점은?” AI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이에 동의한다. '전국 목사장로기도회'는 한국 교단들의 영적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권위 있고 엄숙한 자리입니다. 이런 대규모 교단 행사에서 경품 추첨을 도입하는 것은 일반적인 신앙 행사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장단점을 가집니다. 장점 ▲참석 독려 및 이탈 방지: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 특성상, 마지막 순서까지 자리를 지키게 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됩니다. ▲긴장 해소 및 교제 활성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목회자와 장로들이 엄숙한 기도회 중간에 잠시나마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목회 현장 지원: 승합차나 고가의 IT 기기 등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미자립 교회나 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게 실질적인 목회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단점 ▲기도회의 영성 훼손: 가장 큰 비판 지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기도회의 본질이 경품이라는 세속적인 이벤트에 가려져, 영적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행성 및 위화감 조성: 과거 일부 기도회에서 수천만 원의 현금을 경품으로 내걸어 "어려운 개척 교회 목회자들을 실망시키는 과시성 행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도자적 품격 논란: 한국 교회를 이끄는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요행을 바라는 모습이 외부나 성도들에게 비춰질 때, 영적 지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제언 최근에는 경품 추첨을 아예 없애고 '기도에 전념하는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만약 경품을 진행한다면, 단순한 '운'에 맡기는 추첨보다는 미자립 교회 지원이나 목회 아이디어 공유에 대한 시상 등 의미 있는 명분을 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AI는 인터넷상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정리한 것이다. 결국 경품추첨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장기도회 주최 측은 기도회 참석률을 올리거나 유지하기 위해 경품추첨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기도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앞으로 교단 행사에서 “경품추첨”이라는 값싼 방법을 퇴출시키기 바란다! 행사의 수준을 높이면 끝까지 참석한다. 본질을 외면한 채 사행심에 기대면 안 된다. 우리 교단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어서야 되겠는가?
-
- 오피니언
- 칼럼
-
【쓴소리】 신앙집회에서 ‘경품추첨’을 퇴출하라!
-
-
【북토크399】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죽을 때
- 20년 전 출간되어 5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은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출간되었다. 1000명 넘는 이들의 임종을 목격한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가 기록한 ‘죽기 전에 하는 후회’의 목록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사연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삶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재점검하게 한다.-교보문고. “죽을 때 후회가 없어야 할텐데” 이것을 늘 생각하며 매일을 산다. "선생님, 동생이 고맙다고 했어요." "고맙다고요?" "네, 이 천하의 악동이 고맙다고...." 나는 Y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의 험상궂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온화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고맙다고요?" "네, 고맙다더군요. 동생과 오래도록 옛날이야기를 했어요. 마지막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듣고... 선생님, 저는 정말 기쁩니다" 몇 시간 후 Y선생은 눈을 감았다. 까칠하고 괴팍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선생은 어쩌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형의 사랑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마지막 숙제를 다 마친 아이처럼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p. 48). "고마워." 후회 없는 마지막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p. 49). 요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지나친 인내와 희생이 마음의 부조화를 야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평소에는 가슴에 참을 인 자를 새기고 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런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가끔 사고를 칠 때도 있지만 덕분에 무조건 참는 일로 받는 스트레스는 없다. 내 마음을 내가 돌본다고 할까? "할 말 다 했다가 상사한테 미운털 박혀서 나중에 진급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밥줄이 달려 있는 데 바른말 하기는 쉽지 않지요."(p. 54). 분명 이렇게 투덜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는 책임감이 다소 부족한 가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면서 참고 또 참는 일은 분명 내면을 다치게 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두가 성실하다. 시간에 쫓기고 부족한 잠에 허덕이면서 해방구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낸다.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자신을 꽁꽁 옭아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좋은 사람'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반대로 '악랄한 파렴치한'은 오래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조리는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묵묵히 참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닐까?(p. 55) 바로 지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하고 싶은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괜찮다고, 이 정도면 참을 만하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 가슴을 치며 후회 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지 않길 바란다(p. 57). 하지만 모든 인간은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이 눈앞에 바짝 다가왔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의 한계, 부족함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걸음 물러서서 차분히 사물을 바라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성공과 더불어 후회 없는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귀를 '순하게' 하는 일. 그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이다(p. 64). 마지막 순간에 가슴을 후벼 파는 후회는, 이루지 못한 꿈이나 이룰 수 없었던 꿈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다. 한 우물을 오래 파다 보면 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진실인 것이다. 물론 평생 동안 꿈과 열정을 품고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그렇게 늙어갈수록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도 조금씩 줄어든다. 이런 잔인한 현실에서 꿈과 열정을 계속 간직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저 멀리 빛이 있음을 믿고 다시 두 주먹 을 불끈 쥐고 일어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좇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p. 83)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외면하고 중간에 꿈의 끈을 놓았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향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면 후회는 한결 줄어들 것이다(p. 84). 일만 하느라고 놀 줄 모르는 사람들,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p. 114) 매우 많다. 물론 마지막 순간을 위해 일부러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좀 더 풍요로운 인생을 꿈꾼다면 취미 하나 정도는 갖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삶의 기쁨을 느낀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긴 세월 동안 '놀이'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은 마무리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 모습에 '후회'는 없다(p. 115). 치료의 의미는 무엇일까? 질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되찾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술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병이 있는데, 이럴 때 치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불치병을 치료하는 목적은 병이 더는 악화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다. 한편 환자 입장에서 완치가 어려운 병에 걸렸을 때,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인생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병마의 세력 확장을 막는 데 있을까? 물론 병이 더 진행되지 못하게 막는 치료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p. 222)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환자와 의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어느 정도 선에서 마음을 접고 남은 생을 더 알차게 꾸려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쪽이 한정된 시간을 가장 보람 있게 보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테지만, 나는 단순히 목숨을 이어가는 '연명'이 삶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생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일, 목숨을 부지하는 일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 은 아닐 것이다. 장수와 건강은 인간이 꿈과 희망을 이루는 데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아닐까? 이 세상에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불치병에 걸렸을 때, 단순히 살아 있는 시간을 일 초라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시술하는 치료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동반한다. 어쩌면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치료에 빼앗길 수도 있다. 특히 말기 암에서 암세포가(p. 223)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했다면 항암제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항암 치료뿐 아니라, 말기 환자를 위협하는 치료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수액과 수혈이 환자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항암제로 다스리기 어려운 말기 암의 치료 목적은, 시간 확보와 아울러 질병에서 비롯된 통증과 항암제 부작용을 덜어주는 것이다. 완치가 어렵다면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그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치료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이는 조금만 진 지하게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 분, 일 초,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삶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있다. 그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연명에 대한 강한 집착이 오히려 생명의 시간을 앗아간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말기 치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p. 224)보하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p. 225).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 죽음을 앞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희망 없는 연명 치료를 중단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남아 있다는 진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p. 226). 나는 세상을 떠난 환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내세를 믿으면 좋은 점은, 이 세상의 이별은 일시적이라는 것,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안을 받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세의 존재는 이별의 슬픔을 치유해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이런 믿음이 필요한 사람이 꽤 많다(p. 229).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99】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죽을 때
-
-
【북토크398】 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는?
- 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언어를 공부하는 걸까?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라 미국에서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미소가 삶에서 언어와 함께하는 법, 언어와 함께 성장하는 법을 들려준다. 우리는 영어를 그 자체로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반복해서 읽고 외워야 한다고 여긴다. 이른 나이에 배울수록 더 능숙하고 원어민답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김미소는 말한다. 언어 학습을 시작한 나이보다는 해당 언어로 쌓는 경험이 더 중요하며, 언어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따라서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경험하는 세계가 중요하다고.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다. 영어광풍인 우리사회가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빠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틀에 박혀 있던 내 사고가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기 시절의 큰아이를 마지막으로 봤었는데, 지금은 가족 간에 이중언어를 편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성장 과정 내내 3개월 단위로 베트남과 한국을 번갈아 가며 살기를 반복해 온 덕이었다. 물론 아직 대화라(p. 26)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맥락상 상대가 아빠나 나나 오빠일 때는 7세 또래들이 쓸 정도의 한국어로, 상대가 엄마나 할머니일 경우에는 베트남어로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종종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두 언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가족과 이야기해 보니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국제학교를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아아,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 국경 하나만 넘으면 이 친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구나. 이 친구가 갖고 있는 정체성, 언어 자원, 문화 자본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지구본에 그어진 선을 조금만 넘으면 존재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국의 틀에만 갇혀서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이주, 디아스포라, 코스모폴리타니즘 등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개념이 눈앞에 뚜벅뚜벅 살아나왔다(p. 27). 외국어는 이른 시기에 배울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한 예로 사춘기(대략 12세 이후)까지 제2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이 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의 뇌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화(lateralization)'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뇌의 가소성이 떨어지므로, 새로운 언어를 배워도 원어민처럼 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성인이 되어 제2언어 실력이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고 굳어 버리는 현상을 '화석화(fossilization; Selinker, 1972)'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인일수록 언어를 배우기 어려워지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기되었는데, 뇌의 가소성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고 (Long, 1990) 자신이 쓰는 제2언어와 원어민이 쓰는 언어 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Schmidt & Frota, 1986).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p. 33)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속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Ortega, 2019).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아이가 제1언어 또는 제2언어로 만들어나가는 세계는 대체로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다. 아이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고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므로 아직은 어른의 개념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주변의 성인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해준다. 아이들은 아직 단단히 만들어진 세계가 없는 만큼 새로운 변화에 유연할 수 있다. 반면 성인이 제2언어를 통해 만들어가는 세계는 아이의 세계만큼 친절하고 말랑말랑하지 않다. 성인이 될수록 언어를 배우는 게 힘들어지는데, 단순히 발음을 잘할 수 없거나 문법에 능숙하지 않은 게 문제는 아니다. 성인은 이미 모국어로 구축해 놓은 정 체성과 사회관계망이 단단하기 때문에 그 벽을 깨고 제2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게 큰 도전이 된다. 화석화되는 건 제2언(p. 34)어 능력이 아니라, 이미 모국어로 단단히 형성된 자신의 자아다. 모국어로 쌓아 올린 자아는 이미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다. 모국어 세계에서 이뤄놓은 성취도 많고 친척, 친구, 동료와의 관계도 탄탄하다. 그렇지만 제2언어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때로는 부당함과 무시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은 성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며, 제2언어를 통해 성인 대 성인으로 맺는 관계는 꼭 평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 외국어를 배우는 건 숨 쉬듯 편안했던 자신의 자아를 다 무너뜨리는 과정이구나. 너무 당연해서 자아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부끄러워질 기회를 일부러 더 만들고, 자존심을 굽히고, "내가 한국에서는~" 같은 생각을 전부 내려놓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이 관계에서는 수도 없이 불편한 일이 일어나고, 원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권력관계 안에 들어가야 하며, 상대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호함을 견뎌야 하고, 지나가는 여섯 살 아이에게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국어 세계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제2언어 자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다(p. 35). 자아가 말랑말랑해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이 고립될 뿐이다(p. 36). "Whats your hobby?"도 "What do you do for fun?"도 좋은 문장이다. 만약 여러 언어를 넘나드는 친구라면 Whats your 취미?" "What do you do after 퇴근?"처럼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의미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스마트폰 사진 앱을 켜서 직접 사진을(p. 84) 보여주며 이게 내 취미인데 너는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 언어는 진공 속에서 존 재하지 않으며, 원어민의 언어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p. 85). 영어 말하기라는 여정을 시작할 때는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것, 이제 막 태어나는 내 외국어 자아에게 친절해지는 것. 언어는 스파르타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내 말랑말랑한 영어 자아는 채찍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스한 양육이 필요하다(p. 229).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98】 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는?
-
-
【북토크397】 의사가 밝히는 질병 통해 돈버는 병원 민낯
-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서 저자 김현아 교수는 의사로서, 교수로서, 의료 정책 연구자로서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고발한다. 수많은 환자가 한국 의료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은 커져간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구조를 알아내는 건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표면적인 문제 현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문제가 생겨난 구조를 추적한다. 통제된 의료수가는 수익이 되는 의료 행위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강해진다. 이 상황을 통제하고 개선해야 하는 정부도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믿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이 책은 병원 비즈니스의 민낯을 보여준다. 흥미롭게 읽었다. 이러한 책을 저술한 의사의 다른 글도 읽어볼려고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사건이다. 한 인간이 잘 살았는지는 그가 어떻게 죽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젊은 시절 영민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이들이 나이 들면서 추한 욕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내린 끝에 젊은 시절의 공덕을 모두 까먹고 가는 일을 숱하게 본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아예 지워버렸고, 인간은 이제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다 끝나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병원에 가면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굳게 믿게 되었고, 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이제 삶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피할 수 있으며 피해야만 하는 재앙이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 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이다(p. 31). 길버트 웰치Gilbert Welch 교수는 『과잉 진단』이라는 저서에서 인체에서 발견되는 이상의 정의를 자연의 복잡계 이론을(p. 36)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포 앞바다에는 몇 개의 섬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해보자. 이때 섬의 정의를 인위적으로 내리지 않는 한 "모른다"가 답이다. 축척을 늘려서 들여다보면 낮은 배율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섬들이 새롭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섬을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가? 알 수 없다. 이 논리는 복잡계의 최고봉인 인체에도 적용된다. 인체에서는 매일같이 이상 세포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검사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검사를 자주 할수록 의미 없는 이상 소견은 늘어난다. 이미 큰 논란이 된 갑상선암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광풍은 최고의 의학 학술지 『뉴 잉글랜드 의료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까지 대서특필되는 망신을 당했음에도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도 환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유 없이 갑상선에 초음파를 대지 말라는 말을 하지만 역부족이다. 다 알만한 사람들 중에도 갑상선 초음파 검사 후 이상 소견 발견→침생검→암세포 검출의 수순을 밟아 갑상선 절제술을 하는 일을 보곤 한다. 갑상선암 조기 발견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이나 후나 사망률에는 차이가 없다는, 갑상선암은 무병장수하고 사망한 사람의 부검에서 가장 흔히 보는 암이라는, 그래서 어쩌면 발견할 필요가 없는 암이라는 이성적인 생각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기 진단에 의한 수술을 담보로 죽음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공포 마케팅의 무서운 위력이다(p. 37). 연골이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나의 전문 연구 분야는 골관절염이다. 일명 퇴행성 관절염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할머니들이 무릎을 짚으며 절룩거리는 이(p. 74)미지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해마다 연구비는 타야겠기에 시류에 맞는 연구 과제들을 제출하면서 연구의 활용 방안 란에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근거를 제공하여 10조 원 규모의 바이오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허풍을 떤다. 연구비를 받으면 감사히 쓰기는 하지만 내가 하는 연구가 이 병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은 몹시 쓰 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연구(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있지만 질병의 이해를 깊게 하고 건강 불평등을 개선시키는)를 하겠다고하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다. 10여 년 전 미국 학회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는 유레카를 체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은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서 키우는 원숭이에 대한 연구 결과였는데 부자나라답게 미국 국립 보건원은 한 마리당 1억 원 정도는 들여야 데이터를 낼 수 있는 원숭이들을 대량 사육하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원숭이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시면 모든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어 자기 연구 분야에 해당하는 장기를 떼어 간다. 이렇게 해서 얻은 원숭이의 무릎 사진을 한 컷 보여주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 관절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았다. 자연 서식지에서 원숭이들의 수명이 4~5년인데 비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 먹이 걱정도 없기 때문에 그보다 두세 배 정도를 더 산다. 퇴행성 관절염(p. 75)도 그런 것이라는 깨달음이 번뜩 들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석기 시대에 약 20세였던 것이 20세기 초반 40세 정도로 늘기까지 수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100년도 안 되어 인류의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더 늘어버렸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의 무릎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거였다. 수만 년 진화의 역사를 역행해서 무릎 연골에 무슨 마술을 부려서 관절염을 고치겠다고 연구비를 신청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러고 몇번은 완전히 다른 연구 과제를 써서 냈다가 연거푸 미역국을 먹고, 신념은 멀고 먹고사는 건 당장인지라 할 수 없이 다시 "손상된 연골을 회복시켜"로 복귀해서 연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세상은 희한하게 돌아갔다. 많은 환자가 무릎에 연골 주사(연골을 보호하는 효능이 입증된 적이 없는)를 맞고 다녔고 연골을 재생하려고 몇백만 원 주고 줄기세포를 맞 았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식 자랑하기 좋아하는 분들이 "우리 아들이 치료비 냈다"라고 자랑하면서 이런 치료가 효도 상품으로 등극했고, 어르신들 사이에 무의미한 경쟁심과 좌절감이 양산되었다. 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무릎 연골이 다 없어진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보건의료 연구원의 신의 료 기술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줄기세포 연골 재생 치료에 대하여 "환자에게 돈을 받기 전 임상 시험부터 제대로 하라"라(p. 76)는 권고를 했다가, 편협하고 신기술에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비난만 받기도 했다(p. 77). 극우파 의사 대한민국 의사들은 보수 정당 지지자가 많다(개인적 견해로 우(p. 153)리나라의 보수는 극우에 가깝다),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태극기부대 지지자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언젠가 사석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굳이 말을 안 하겠다는 내게 의견을 묻기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했다가 거의 '빨갱이' 취급을 당한 이후로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식견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의료 사회주의'이다. 이 말을 지은 분은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의료만 사회주의로 운용되어야 하느냐"라는 강한 불만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의사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은 세력 중 하나가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였다. 1962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도했을 때 미국의사협회 회장인 에드워드 애니스Bdward Annis는 이렇게 말하며 반대했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사회주의이다." 그가 말한 사회주의와 우리나라 의사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의 뉘앙스가 물론 같지는 않다. 1962년이면 미국에서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냉전이 한창인 시점으로 사회주의라는 말은 공산주의와 동의어였다.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국가의 통제하에 살아가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호랑이에게 곶감보다 더 무서운 말이(p. 154)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의사들에 동조했고 대표적으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사회에 침투할 때 가장 먼저 손을 뻗치는 영역이 의료이다”라고 주장했다.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이 미국의 공적 보험인 메디케어를 도입할 당시에도 공화당에서는 사회주의의 전조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독재 정권에 의한 압제를 오래 받아온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의료에 간섭하는 것이 처음부터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당시 의료 보장이 되던 북한과 비교했을 때 남한의 체제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와 강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적은 비용으로 국민건강보험을 이룬 것은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입장의 자본주의 독재 체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부르짖는 '의료 사회주의'라는 말은 돈이 없는 국가가 필수 의료수가를 형편없이 후려쳐서 강제로 국민 개보험을 만들고, 의사들을 통제 하면서 정작 개별 의사들은 자영업자로 내몰아 병원 경영의 모든 위험을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모순에서 나온 것이다. '의료 사회주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료가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미국의 의료 제도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굳이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식코〉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미국의 공화당과는(p. 155) 달리 의사들의 편을 들어줄 마음도 별로 없다. 어떻게 해도 자기들을 지지하니까. 그런데 미국의 공화당도 더 이상 의사들의 편은 아니다. 이미 미국의 정치인들은 거대 제약 회사와 사보험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고, 그 경향은 미국 민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정치적 성향은 미국과 같이 공적 의료가 부족한 국가에서 보이는 '상인 우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들이 자영업자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 지식을 익히느라 너무 바빠서 사회라는 큰 흐름을 보지 못 하고 세상을 읽는 능력도 부족해지며,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 오히려 해가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온 면도 있다. 의사들의 행동이 공공선에 반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개개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 나라의 정책이 의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미국 의사들이 건강보험을 반대한 것은 그들이 유달리 사악한 집단이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각자 도생의 논리가 의료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세한 사회가 되면 의사들은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상인 우파 의사'의 미래도 별로 밝지는 않다. 미국은 이미 대형 병원, 사보험회사 등의 자본이 의료를 포섭한 상황이다. 미국 의사들은 날로 덩치가 커져가는 병원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며 전문성을 위협받는 현실에 대해서 고민한다. 또한 진료에 할애할 시간이 보험회사 서류 작성 때문에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해 번아웃까지 생긴다(p. 156)고 호소한다. 그런데 이건 우리나라 의사들이 오래전부터 당해 왔던 일이다(p. 157). 현대 의료는 이제 노화를 병으로 간주하고 죽음을 몰아내(p. 260)겠다고 선언하고 많은 과학자는 인간의 한계 여명인 120살을 넘겨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평균 수명이 고작 10여 년 길어지면서 야기된 어마어마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이 모든 인본적•사회적 함의를 집어 삼킨 결과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인간이 필요 없는 의료가 도래할 수 있다. 땀 한 방울을 넣으면 수십 가지 정보를 제공해주는 AI가 나타날 수도 있고 당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99퍼센트의 정확도로 알려주는 알고리즘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없는 의료의 시대에는 환자 또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듯 기술이 지배하는 의료의 시대에 인간은 그저 하나의 이상 수치로 환원되고, 그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맥락은 지워진다. 다시 인간을 소환해야 하는 문제는 비단 의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의 시간이 지나면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어긋난 일이 없는 진실을 기억하고 체화하는 것만이 인간이 소거되는 현실에 맞서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p. 261).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97】 의사가 밝히는 질병 통해 돈버는 병원 민낯
-
-
【북토크396】 글쓰는 자들의 고통
- 매 시절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서정 시인 문태준. 그가 접한 부드러운 자연과 고유한 사물, 생명과의 교감에서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사유를 엮었다. 문태준의 산문은 익숙한 일상에서 사유를 펼쳐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흔들리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들이 시인의 따스한 시선, 그리고 언어의 정수를 담은 문장과 만나 호흡하고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자체이다. 특히 그의 이번 산문집은 이야기의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그가 써 내려간 진실한 깨달음은 시와 어우러지며 여태 몰랐던 색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이 순수한 기록은 시인 문태준이 기다렸던 첫 문장이자 우리가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문장이리라.-교보문고. 전업 시인, 문인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문학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자로서 책을 써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시인의 일 시를 쓰기 위해 새벽에 혼자 방에 앉을 때가 더러 있다. 밤은 깊고 세상은 고요하다. 백지에 첫 생각을 펼쳐놓고 첫 생각이 그날의 우연하고 특별한 선택들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내 기억으로부터 온 것들과, 지금의 나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는 것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시를 만드는 것을 지켜본다. 어떤 경로를 통해 시가 만들어지는지 명백하게 알기는 어렵다. 시는 잘 만들어질 때도 있고, 또 어떤 이득도 없이 흐지부지 시간만 흐르다 날이 새면서 그 흰빛 속으로 아주 사라지고 마는 때도 있다(p. 23). 나는 시가 만들어지는 그 경과보다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 어떤 시적 기미를 알아채는 일에 더 마음을 사용한다. 그래서 날마다 시를 읽고, 음악을 옷처럼 두르고, 세계에 질문을 하고, 미술과 영화와 사진을 만나고, 생활의 시장에 가고, 홀로 단순한 시간에 오두막처럼 앉고, 하나의 생각이 걷는 미로를 따라간다. 시를 쓰는 일은 매번 새롭고 두려우며, 차갑게 외롭고 고통이 있다. 시의 첫말을 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첫말에 따라 시의 높이와 깊이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를 쓰는 사람이 된 지도 25년이 지났다. 스물다섯 살에 등단해서 벌써 쉰 살이 되었다. 나는 가끔 갓 등단했을 때의 나를 떠올린다. 시단의 어른들이 모인 허름한 술집 말석에 앉아 어른들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를 떠올린다. 그때 어른들은 속이 깊었고, 정이 많았고, 눈매가 선했으며, 세상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분들에게 적어도 시를 짓는 일은 한가한 일이 아니었다. 개인의 한가한 심사를 풀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시를 짓는 이유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p. 24)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보람을 얻지 못하는지,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는 무엇인지 궁리하는 것이 내 시였으므로 시는 내가 보고 듣고 살던 삶으로부터 비탄처럼 태어났다. 해 뜨면 논밭에 나가 땡볕에서 일하지만 큰 빚더미에 눌려 밥과 돈을 구하러 매일매일을 사는 사람들의 캄캄한 절망과 슬픔에 대해, 그럼에도 삶의 채탄장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단단한 의지의 근육과 희망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처럼 관심했던 곳으로 내 시가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p. 25). 얼마 전 문득, 내가 부정적인 생각에 꽤 많이 휩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곧 일어날 미래의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어둡게 전망하고, 결과를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밝은 날의 장면들도 많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암울한 날들의 장면들도 많았기 때문일 테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잡아함 41권 1,136경 《월유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부처가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에 달을 비유로 들어서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하셨다(p. 87)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음식을 얻기 위해 재가의 집에 가거든 마땅히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가라. 마치 처음 출가한 신참자처럼 수줍고 부드러우며 겸손하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가라. 또한 훌륭한 장정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높은 산을 오를 때처럼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진중하게 하라. 이 가르침을 읽으면서 나는 평소의 내 얼굴빛과 표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얼굴이 구겨진 종이처럼 너무 자주 일그러져 있거나 화냄의 불길에 휩싸여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수줍고 부드러운 얼굴은 무엇일까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그런 얼굴이란 아마도 내가 최근에 산길에서 본 노란 복수초와도 같은 얼굴이요, 또 돌담 아래서 피어나기 시작한 수선화 같은 얼굴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은 내가 맞을 미래의 시간에 더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긍정적인 내심으로부터 맑은 샘물 처럼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실로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 해 극도로 염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얼굴이 환하게 활짝 펴(p. 88)질 날이 드물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구실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도 내가 만든 것이다. 스트레스는 알고 보 면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유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면 바닷가를 산책할 때, "오늘은 바다가 잠잠하다" "물질 나갔던 해녀가 헤엄쳐 돌아온다" 같은 말처럼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감정을 덧씌우지 않은 문장을 말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에 묶이지 않으면 어두운 언어를 구사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내 얼굴빛도 화사해질 것이다(. 89). 다섯 수레의 책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나의 마음의 어둑한 고요의 공간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의 회색 황혼"이라고 가을날을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을 노래했다. 가을에는 조용한 공간이 내면에 생겨난다. 조금 쓸쓸하면서 잠잠한 시간을 살게도 된다. 이런 시간은 자신을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때이기도 하다. 또 책을 펼쳐 읽다 책갈피를 꽂아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어도 좋은 때이다. 책을 새로이 많이 구입하진 못하더라도 읽고 싶었던 한두 권의 책을 이 가을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p. 186) 좋은 때이다. 얼마 전 산문집을 내고 나서 독자들을 만나는 여러 행사를 치렀지만, 최근 한 책방으로부터 온 제안은 특별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들을 위해 책에 직접 사인해서 보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수백 명의 북클럽 회원들에게 보낼 책에 하나하나 사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방의 기획이 참신했고, 또 책을 지은 사람으로서 책방의 북클럽 회원들이 내 책을 구입해 함께 읽는다니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이 책방에서는 매달 좋은 책을 골라 북클럽 회원들에게 그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힌 '책방마님'의 편지와 함께 보내주고, 책을 다 읽은 후 서로 토론하고 독후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특정 분야를 정해놓고 책을 고르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소설, 시와 에세이, 역사,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망라한다고 했다. 다만 '생각의 경계를 넓혀주는 책, 통찰력을 품고 있는 책, 혹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고른다고 했다. 책방 주인과 북 큐레이터, 외부 자문단이 참여해 최종적으로 회원들에게 보낼 책을 선정한다고 했다. 어떤 책을 고르느냐에 북클럽의 성(p. 187)패가 달린 만큼 성심껏 한다고 했다. 이 책방의 이런 시도가 의미 있고 또 돋보이는 것은 책방이 독자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독서열'을 지퍼 이끌어간다는 데에 있다. 또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책에 대한 이해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책의 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독자는 독서의 총량을 늘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오거서'라는 말이 있다.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을 일컫는다. 장자의 친구였던 혜시는 소장한 책이 다섯 수레에 이를 만큼 다독가였다고 한다. 당대의 문학가였던 한유는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면서 시 〈부독서성남시〉를 지었다. 가을이 되어 장마 걷히고 서늘한 바람이 들녘에 불어온다 이제 등불을 차츰 가까이해서 책을 펼쳐볼 만하다 이 시에서 '등화가친'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한유(p. 188)는 이 시에서 나무가 둥글게 혹은 모나게 깎이는 것은 목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글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같아 어린 시절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능력을 나타내는 점이 달라져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따라 마치 맑은 냇물과 흙탕물 도랑의 차이만큼 사람됨이 달라진다면서 독서를 권장했다(p. 189).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96】 글쓰는 자들의 고통
-
-
【북토크395】 베트남전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 베트남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내는 중요한 기회이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가 주도한 기억의 왜곡과 강요된 망각, 과도한 국가주의, 인간 경시 풍조, 사회정의의 부재를 드러낸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한국에서는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았고, 파월장병 또한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어쩌다 태극기를 들었을까? 특히 이 책은 사과하고 용서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윤리학적인 차원과 역사적 사례를 교차해 설명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파월장병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게 해준다.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진실의 다면성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고루 담아내는 이 책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전쟁시대의 우리 아버지들과 베트남전쟁을 현재의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잇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다.-교보문고. 베트남전의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나라가 맡았던 악역에 대해 잘 기술한 책이다. 이제 세월이 흘렀다. 베트남전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은 솔직히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에 관심이 생겨 책을 챙겨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직면해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팩트와 이에 대한 바른 해석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도덕적 책임추궁의 주체에 대해서도 되물을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흔히 비쳐지듯이 양심세력과 진실을 막는 거짓 세력 간의 한판 승부인가? 아니면 좌우 진영 간의 정치투쟁일까? 만약 그렇다면 판단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은 사안의 핵심을 놓친다. 만약 민간인학살 문제를 제기한 '양심세력'이 가해자들을 오로지 심판의 대상으로, 즉 자신과는 실질적으로 무관한 존재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피해자의 처지와 동일시하며 감상적 연민을 느낀다면, 그것은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는 것이다. 흔히 올바른 과거사 청산의 모범으로 간주되는 독일(p. 17)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기억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대다수의 독일인은 희생당한 유대인들에 공감하지, 가해한 나치 전범들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지는 않는다. 물론 방문객들이 느끼는 도덕적 분노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하지만, 은연중에 스스로를 면책시키면서 우리 세대는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마저 부추길 우려가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 동독은 나치 수괴 히틀러를 '서독인' 이라고 얼버무리지 않았던가(p. 18). 맹호 용사들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전장에 오게 된 것은 대체로 자의반 타의반이였다. 군은 처음에는 지원자를 모집 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금전적 이득을 부각하며 지원을 독려했다. 1965년 맹호와 청룡부대의 3차 파병 그리고 이듬 해 백마부대의 4차 파병 때는 부대 단위로 차출이 이루어졌다. 맹호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서는 자원병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전쟁(p. 33)터로 내몰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한 가난한 농민의 자식들이 가족을 위해 나 한 몸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전쟁에 자원했다. 당시 3년이나 요구되던 가혹하고 진절머리 나는 병역을 벗어날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젊음의 객기로 전쟁에 자원한 경우가 많았다. 복무기간이 1년으로 훨씬 짧고 한밑천 만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전장은 꽤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꼭두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온갖 일에 시달리면서 툭하면 보안대나 헌병대에 불려 가 얻어맞고 정해진 의례처럼 일명 '줄빠따'를 맞거나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기합만 받는 유격훈련을 견딜 바에야 차라리 영화 속 장면 같은 전쟁터에 나가 멋지게 싸우리라, 살아 돌아온다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리라 기대되었다(p. 34). 프랑스제국의 주구였던 바오다이 '황제'에서 미국의 하수인이던 웅오던지엠 대통령으로, 이후 유혈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의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남베트남의 지배세력은 부정과 부패, 무능으로 일관했다. 북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의 토지개혁이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지를 얻어갔던 데 반해, 북위 17도선 이남에서는 봉건적 지주들과 기득권 관료들이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따라서 베트남인들의 전반적인 민심이 남북 중 어느 쪽을 선호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베트남에서 남북간 대결은 결코 일반적으로 말하는 체제 대결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트남전쟁은 흔히 '베트콩'으로 불리던 남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북베트남의 조력을 받으며 외세 및 그 부역자들과 싸운 통일전쟁이었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남북한이 정면대결을 펼친 한국전쟁과는 달리, 북베트남은 베트남전에서 주역이 아니었다. 베트남 분단선인 17도선(p. 53) 이남의 민족해방투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이미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과 싸우면서부터 게릴라전에 길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제네바 평화협정의 불이행을 문제 삼으며 민족해방전선의 기치 아래 모였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거치는 공급선인 이른바 '호찌민 루트'를 구축하여 남북 간에 사람과 물자를 은밀히 이동시켰다. 해방전사들은 주민들 사이에 깊숙이 침투해 그들과 거의 하나가 되었다. 베트남전이 정규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은 1970년대로 접어들어 전세가 확실히 기울게 된 다음이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파월군이 마을 주민과 베트콩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베트콩과 한통속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베트콩보다 따이한 군대를 선호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미군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결속된 마을 주민과 베트콩을 떼어놓기 위해 물을 퍼내 물고기를 말려 죽이는 역공세를 취했는데, 이는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패착이었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른바 '전략촌'을 서둘러 조성하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베트콩이 머물지 못하도록 마을을 불태워버리는 무리한 전략을 구사하여 남베트남 인민의 마음에 적대감만을 키워놓았다. 사실상 군 주둔지들만 제외하면 베트남 전국이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p. 54). 설령 불편한 과거사를 얼버무리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베트남전 참전을 반공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지극히 자기모순적이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역사적 정통성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베트남전은 적어도 베트남인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었다. 약소국이 열강의 침략에 맞서 주권을 지켜내고자 참으로 질기게 싸 웠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은 동병상련해야 마땅할 나라의 자주독립을 훼방 놓은 것일까? 북한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처럼 북베트남의 위협으로부터 남베트남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남베트남은 우리가 수호해야 할 자유세계의 보루이기는 커녕 누가 보더라도 프랑스와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가 아니었던가?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해 제 국민에 의해서도 완전히 버림받은 나라임을 병사들 눈으로 스스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서 싸웠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반공 논리에 비하면 차라리 경제적 활로 개척이라는 실용적 논리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물론 그것은 참전의 이념적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파병은 악마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정당성의 결핍을 무색하게 할 만큼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국(p. 88)가나 병사 개개인 모두 형식적인 반공의 주문을 외며 각자의 목적을 위해 내달렸다. 따라서 불꽃 튀는 전투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내용이 없었다. 그토록 적대하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낯선 베트남 사람들에게 특별한 애증이 있었을 리도 없다. 오로지 '생존' 말고는 별 다른 이유가 없는 승리를 향해 불굴의 의지가 타오르면서 진정으로 원초적인 본능이 작동하게 된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무의미한 전장의 어슴푸레한 포연을 뚫고 나와 작열했던 것이다(p. 89). 베트남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확실히 선례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폭력의 사슬이 대한민국의 역사 전체를 휘감고 있다. 1948년 4월 제주와 1980년 5월 광주 사이에 빈안사와 퐁넛 • 퐁니 • 퐁룩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했던 사람들에게 폭력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폭력의 놀라운 창조력 이었다. 폭력은 한순간에 노예를 주인으로 뒤바꿀 수 있다. 약자는 두려워하고 인내하지만 강자는 주저 없이 우월함을 입증할 뿐이다. 한국인에게 폭력이란 피해자를 가해자로 역전시키는 감정의 연금술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베트남에서 한국인은 자기 자신과 싸운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은 떨치고 싶은 과거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따이한 군대의 폭력이 전략적 목표를 훌쩍 뛰어넘어 광기를 띤 것은 무언가 깊은 혐오의 발로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은 마치 깨뜨리고 싶은 거울처럼 자신을 닮은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본 듯한 이국적인 야자수와 옛 프랑스제국이 남긴 서구문명의 자취가 가득한 꿈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뒤로하고 신상 감독의 194년도 영화 〈빨(p.107)간 마후라〉에 나오는 멋진 공군 조종사들처럼 직선의 활주로를 달려 푸르른 미래로 힘차게 날아오르고 싶었으리라(p. 108). 폭력이야말로 역사를 전환시키는 힘이었다. 그것은 어엿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 의례와도 같았다. 베트남전 참전은 제국 일본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폭력의 유산을 새로운 국민적 정체성과 국제적 지분을 확보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뚜렷한 변곡점이었다. 비록 베트남전은 패전으로 종결되었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어엿한 가해자로서 폭력을 행사한 유례없는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총력 전시동원 체제인 유신체제야말로 대한민국이 원조물자나 받던 궁색한 처지에서 공세적 위치로 전환했음을 웅변한다. 냉전의 최전방 국가인 대한민국은 '부'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 시킬 수 있는 무자비한 폭력의 공화국이 되었다. 긴급조치와 통금, 새마을운동과 민방위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남성들 사이의 군사문화와 성폭력적 언사, 그리고 학교 교실 안 의 가혹한 훈육 방식에 이르기까지 고삐 풀린 폭력이 난무했다. 우리의 골수에 사무쳐 있는 폭력의 유전자를 온존시키는 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유신체제의 꺼림칙한 망령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이 땅에서 폭력의 에너지로 뜨겁게 달아오른 냉전은 본연의 냉혹한 묵시록을 완결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p. 110).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냉전 논리는 국가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시장경제체제인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라는 상투적 논리와 직결된다. 특히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p. 145)한 향수는 젊음을 바쳐 나라를 구했다는 개인적 자부심과 접목되어 일종의 순환논리를 이룬다. 결국 참전용사들의 사고는 국가유공자라는 자기정체성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린 피해자인 동시에 침략과 학살에 연루된 가해자라는 자기성찰의 여지는 거의 없으며 확고한 자기정체성에 위배되는 어떠한 것도 용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꽉 막힌 사고가 지닌 가장 큰 문제는 자기성찰의 결여가 아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타인의 죽음을 경시한다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다(p. 146). 민간인학살에 대해 책임을 추궁 받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주로 상황논리를 통해 책임을 희석시키려 한다. 게릴라 전쟁은 그야말로 잔혹했다. 아군의 월등한 군사력 앞에서 게릴라는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비열한 테러와 저격에 의존했다. 만약 당신이 게릴라와 싸우는 정규군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마을 주민을 그저 순진한(p. 208) 양민으로 믿으며 경계를 게을리해도 될까? 그들 중 일부는 양민으로 위장한 게릴라일 수 있는데다, 설령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더라도 게릴라에게 음식물과 잠자리를 제공했을 터인데 어찌 적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게릴라를 무서워하는 만큼은 이쪽도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나 정말로 순수한 양민이 피해를 당했다면,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전쟁이란 원래 비정한 것이다. 변명의 이유는 그 밖에도 차고 넘친다. 한국군은 대체로 통역관을 수행하지 않아 현지 민간인들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고 그런 만큼 병사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쉽사리 이성을 상실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하기 쉬웠 다. 만약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책임은 전쟁터에 동원된 병사 개개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따라서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인 병사는 죄가 없다...이런 식의 논리는 분명히 일부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을 누가 말하고 있는가이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면책하는 논리라면 설령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참전용사들이 여전히 국가 차원의 사과조차 반대하는 걸 보면, 베트남인들에게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혔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p. 209). 베트남전에서 대한민국 파병군이 보여준 엄청난 폭력성은 그저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전략적인 학살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수많은 학살이 20세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두루 발생했기 때문이다. 타이완과 조선에서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민중을 무참하게 학살한 메이지 일본군, 간도 지역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약탈하고 번연히 살육을 자행했던 중국인들, 중일전쟁중에 수많은 중국 민간인을 학살한 제국 일본의 군인들, 만보산 사건 후 평양에(p. 256)서 중국인을 대량학살한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군중, 국공내전에서 패배하고 타이완으로 건너가 현지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대량학살을 자행한 장제스의 국민당 세력, 그리고 독립국가 건립 이후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지에서 발생한 수많은 학살은 폭력의 역사적 의미를 묻게 만든다. 폭력은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지만 도덕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역사적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20세기의 한반도는 동아시아 여느 지역에 못지않게 폭력에 물들어 있었다. 한국인에 의해 자행된 집단적 폭력은 다른 곳들과 공통된 점도, 물론 아주 색다른 요소들도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유신 및 군사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여느 곳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파급력과 지속성을 가지고 폭력이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렸지만 그럼에도 일반 국민이나 병사들 개개인이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 도 없는 독종들이 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경우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다수의 파월용사들은 영웅도 악마도 아니었을 것 이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등 떠밀려 전장에 동원되고는 부지불식간에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악역을 배정받았을 것이다(p. 257).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95】 베트남전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신간】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리더와 문제해결』 출간
- 리더와 문제해결에 대한 책이 출판되어 화제다. GMS 이사장이며 진주성남교회를 담임하는 양대식 목사가 35번째 신간 『리더와 문제해결』을 발표했다. 이 책은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지혜가 담겨있다.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를 강사로 모셔 강의를 듣고 집회강사로 청하면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저자인 양대식 목사는 리더십과 관계 전공자요 실천신학자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저자의 연락 전화는 010-4944-9434 이다.
-
- 오피니언
- 책소개
-
【신간】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리더와 문제해결』 출간
-
-
【서기원 목사 선교4】 선교의 A.B.C
- 선교의 기초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면 2년은 선교사가 사역하지 않고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선교사들이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때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선교의 기초가 무너져 버린 경우가 생겼다.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이 선교사에게 찾아옴으로 인해서 발생했다. 선교지에 도착하니까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이 인사차 찾아왔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왔다.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서처럼 주일에 예배드려야 하는데 아직 예배당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을 위해서 친구인 한국 선교사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인도했다. 우리도 함께 친구 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에 출석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 교회에 참석한 이후에 그다음에는 이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목사님이 인도했는데 왜 지금은 자신들을 인도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가?”하고 질문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교회가 아니면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들이 교회에 계속해서 출석을 하게 하려고 교회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를 배운 다음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먼저 시작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갖게 되었다. 가정에서 한국에서 돌아온 성도들이 모여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본인들만 아니라 본인의 가족들도 함께 교회에 나와서 금방 우리 집에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나보다 6개월 이후에 오신 조유상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몽골인들을 서울에서 섬기셨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500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울란바타르 시내의 중앙에 큰 건물로 십자가를 높인 단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 교회가 최근에 상영된 영화인 『신의 악단』 촬영 장소인 선교교회이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이주민들을 섬기는 선교는 선교의 기초를 넘어서게 하였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기초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건축하게 했다. 물론 모든 선교사의 경우가 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을 본국에서 만나서 교회를 세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 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 이니라” 사 55:8-9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4】 선교의 A.B.C
-
-
【북토크369】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배우, 하정우
- 배우, 화가 하정우가 쓴 두 번째 책을 먼저 읽고 흥미로워 이전에 쓴 책을 찾아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일시품절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화려한 배우가 아닌 일상의 삶을 사는 생활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 스켄들 없이 배우, 감독, 화가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 인생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종 성적이 아주 좋았던 야구 선수가 자유계약선수가 되어서 억대의 계약금을 받자마자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서 그렇다고 쉽게 비난하곤 한다. 나 역시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의 원래 꿈은 돈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순간에 한 방 터뜨려주는 홈런 타자, 제로에 가까운 방어율을 자랑하는 완벽한 투수, 그런 것이 그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돈이 생기자마자 그는 꿈을 잊는다. 이제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은 채 더 높은 연봉이 새로운 꿈이 되어버린다(p. 26). 하지만 돈이나 명예는 꿈이 아니라 수단일 것이다. 꿈을 향해 걸어 갈 때 덜 고통스럽도록 도와주는 조건. 남의 시선에 현혹되어 이것을 꿈이라고 착각할 때 사람들은 추락한다. 진짜 꿈을 꾸는 법을 잊고 헤매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꿈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것(p. 27). "프로처럼 하시네요." ""아, 프로처럼요?" "네, 프로처럼 작업하고 계세요. 혹시 팔레트도 볼 수 있을까요?" 프로처럼, 그 말이 위축되어 있던 내게 커다란 자신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2010년 3월 첫 전시회를 열기에 이른다. 그냥 시작한 그림이었는데 전시회까지 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냥'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깨달았다. 왜 그토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영화에서 배우는 순수한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영화는 감독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감독의 오브제일 뿐이다. 물론 연기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다. 감독의 의도를 읽고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p. 32)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힘들지만 희열감을 준다. 그러나 내가 가진 창조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내게 연기란 넘치는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하는 일이다. 연기란 감정의 몰입이 아니라 감정의 배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곧 어느 감정에 몰두하는 것보다 그 감정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 그것은 엄격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진다(「제가 무당입니까?•••••」, 88쪽). 그러므로 연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의 덩어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어떻게든 쏟아내면 좋겠는데.... 그런 자세로 촬영에 임하면 절대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더 다스린다. 덩어리가 꿈틀거릴수록 더 냉정해지고 엄격해지고자 애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가슴이 뻐근하고 답답했다. 자는 내내 물로는 해갈되지 않는 심한 갈증이 났다. 이유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내게 무언가를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 그림으로 해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붓을 잡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리고 싶었다. 잘 그리지도 못하고 배운 적도 없는 그림이지만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가슴속의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또 개운해졌다.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어째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림으로 나는 억눌렀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이해해야 할 시나리오도, 조율해야 할 의견도 없다(p. 34). 그저 마음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오로지 내 것인 창작물이 생기는 기분 또한 짜릿하다. 거실에 완성한 그림들을 늘어놓으면 나만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편안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이 세계는 침범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그림과 연기를 두 바퀴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연기를 하고 돌아오면 팽팽해진 신경과 굳어진 이성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억눌렀던 감정과 창작욕을 그림을 통해 발산하고 나면 연기를 할 수 있는 텅 빈 상태가 만들어진다. 연기가 그림을 부르고 그림이 연기를 가능케 하는 에너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과 연기는 상호작용을 하며 내 세계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고 있다. 아버지는 바쁜데 어떻게 그림까지 그리느냐며 놀라워하신다. 하지만 이제 그리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할 만큼 그림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연기를 하지 않는 하정우를 생각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처럼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 망한다. 그 꿈을 꾸는 동안 나는 추락하지 않고, 연기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p. 35). 영화 〈황해〉를 보면 사람들에게 쫓기던 구남이 우는 장면이 있다. 1분 30초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찍은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구남이 울면 끝. 짧으면 10분, 엔지가 나서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해도 20분,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장면을 찍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하면 믿으실까. 우선 스태프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촬영지로 간다. 도착해서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는 데에만 네 시간, 분장하는 데 두 시간, 그러고는 리허설에 들어간다.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설명하면 그 동선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을 예상해보는 과정이다. 새벽부터 준비했으나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촬영이 시작된다(p. 48). 보통 두 대의 카메라가 돌아간다. 하나는 멀리서 전경을 잡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타이트하게 잡는다. 일단 신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기한다. 그리고 카메라와 조명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네 번 정도 찍는다. 이때 위치를 옮기는 데만 30~40분씩 걸린다. 배우는 감정을 유지하며 기다리다가 위치가 확정되면 다시 찍는다.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다음으로 타이트하게 찍는 작업에 들어간다. 전경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인서트라고 해서 특정 부분만 찍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양말, 발, 상처난 부위 등을 찍는 것이다. 빨리 찍으면 30분. 더 걸리면 한 시간. 지금 이것은 〈황해〉 전체가 아니라 딱 1분 30초짜리 장면을 찍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감독, 스태프, 배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영화를 찍는 일이 이렇게 고되다. 그래서 나는 배우가 결코 우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유가 아니라 연기는 진짜 '노동'이다(p. 49).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꿈을 꾸면 언젠가 그 꿈이 내 곁으로 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멀리서 삶을 바라보면 모든 삶의 과정이 마치 누군가의 시험, 또 은총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 영화를 찍으러 뉴욕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정말 내가 뉴욕에 영화를 찍으러 가게 될 줄은. 하지만 2006년 〈두번째 사랑〉을 찍으러 뉴욕에 가게 되었다. 열심히 꿈을 꾸었고 그래서 그 꿈이 내게 와준 것이다(p. 168). 촬영장에서 쓰던 합판을 잘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합판은 새로운 질감을 시도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영화 촬영중에 그런 그림이라는 현장성도 살릴 수 있어서 마음에 꼭 들었다. 나무 위로 쏟아지는 화려한 별빛들. 그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다. 곤두서 있던 신경이 가라앉았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20년 뒤, 30년 뒤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찰리 채플린 같은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코미디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영화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채플린은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 연출 그리고 음악까지(p. 215) 직접 담당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영화가 대중에 통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타고난 듯 보이는 재능과 감각 뒤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이 숨어 있겠는가. 그래서 채플린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그처럼 되지 못할까봐 초조하지는 않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꿈을 꾸는 순간에 당장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가끔 젊은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매력과 재능을 소진하고 일찍 시들어버리는 이들을 보면 아깝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젊음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매 순간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채워 나가는 과정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한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시기는 노년이 아닐까. 노인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삶에서 체득한 많은 장점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지금보다 나는 더 성장해 있을 것이고 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이다. 연기만을 해오던 그는 1971년.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 되던 해에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연출하여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여든두 살인 지금까지도 비평가와 대중을 놀라게 하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p. 217).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69】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배우, 하정우
-
-
【서기원 목사 선교3】 IMF 풍랑 속에서 선교
- IMF 풍랑 속에서 선교 1997년에 한국에 IMF의 풍랑의 파도가 덮쳤다. 갑자기 다가오는 풍랑의 파도에 국민 모두가 힘들었다. 이 파도가 교회에도 선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별히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들이 선교사 파송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선교사들에게 후원하는 후원금이 줄어들거나 후원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을 합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금 모으기 운동으로 어린아이들의 돌잔치에 마련했던 금반지를 비롯한 귀한 것들을 내어 놓으면서 국민들이 힘을 모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교회들도 일부 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미루거나 후원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교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을 중단하지 않고 우선으로 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었다. 나를 파송한 천산중앙교회도 1997년에 몽골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그 해 9월에 답사를 요청하였다. 9월에 몽골에 처음으로 방문하여 몽골의 여러 곳을 방문하고 교회에 보고하여 우리 가정을 몽골의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교회가 결정하였다. 우리 가정을 몽골에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한 그 다음 주에 IMF가 발생하였다. 그 이후 교회에서는 파송을 연기하자는 의견과 파송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그 다음해인 1998년 2월에 몽골선교사로 파송하였다. 몽골에 선교사로 나아가는 목표는 한국에서 만났던 몽골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이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었다. 당시에 한국에서 많은 몽골인들이 교회에 출석을 했지만 이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한국에서의 교회의 섬김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에 한국에 출석했던 필리핀 성도들이 필리핀에 돌아간 이후에 이들을 방문해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이후에 결심하게 되었다.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막 6:48.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3】 IMF 풍랑 속에서 선교
-
-
【북토크368】 희귀 질병에 걸린 여성 청년
- 중3때 희귀 질병에 걸린 여학생이 쓴 글을 모든 책이다. 질병이 한 사람을 어떻게 어렵게 하는가를 보여주지만 그 가운데서도 필자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사지육신 멀쩡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감사하며 이러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세 번째 자기소개 때 나는 마스크를 벗고, 나의 다른 특징들을 소개하듯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웹툰을 즐겨 본다는 것을 말하듯이, 나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오픈'했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 음악은 시끄럽지 않은 걸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이때 상황을 마주한 나의 심리는 한껏 불었던 풍선에서 바람이 '푸시시' 하고 빠지는 것과 같았다. 새 친구들은 "힘 내!"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긴 더 무슨 반응을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너의 아픔을 이해한다며 다가와도 당황스러울 것이 빤했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극적인 반응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반응에 묘한 허탈감이 들었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 잔뜩 몸을 부풀린 채 경계 태세를 취하다가, 사실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의 무해한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버린 길고양이가 된 기분. 병을 진단받고 가장 걱정했던 것이 혹시라도 사람들이 '아픈 사람' 이미지에 가려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봐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를 '환자'라는 말에 가두고 나의 온갖 무궁한 가능성을 가장 먼저 재단해버린 게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 41). 시험 점수는 우리의 지극히 일부만을 담고 비춘다. 우리는 그것으로 전체가 평가되기에는 아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커다란 미래를 꿈꾸는 존재다. 물론 등급으로 나누는 것처럼 동일하고 협소한 잣대로 평가를 마치면 편리하다. 한 아이가 걸어온 시간을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숫자만 보고 판단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오류를 범하기 쉽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다. 아이들의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다른 길은 없다고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거다. 좌절을 맛본 뒤(p. 50) 딛고 성장하는 것이 어려워지도록. 나 역시 병에 걸리고, 그간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졌다며 절망해서 다시 일어나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p. 51). 병 때문에 인생 망했다고?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수다가 으레 그렇듯 대화는 종잡을 수 없이 흘렀고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허용된 존엄사의 범위, 존엄사를 선택하는 이유 등. 주로 삶에 대한 희망이 없거나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하는 거겠지.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큰 병에 걸리면 힘들게 치료받으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헉,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크다면 큰 병을 안고(p. 86)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니까. 불과 지난해까지는 나도 '큰 병' 하면 말기암을 생각했고, '난치병' 하면 백혈병을 떠올렸다. 내가 어디 심각하게 아픈 것 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도 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본 TV 프로나 웹툰, 소설 등에서 병 하면 가장 흔하게 쓰이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세상엔 수많은 병이 있고, 큰 병을 앓는다고 반드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건 아니며, 치료제를 찾을 길 없는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고 365일 매일 24시간 동안 절망의 쓴맛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1년 전 나처럼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친구는 내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랐던 사람이 실수하는 것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실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고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병을 진단받은 직후, 왜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냐고 묻는 아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 철이었기에 특목고나 예술고를 지원하는 친구들의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아마 입원하느라 장기간 결석한 나에(p. 87)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유추했을 것이다. 간단히 알려줬다. 내가 희귀 난치병에 걸려 일원해야 했다고. 그 애 입에서 나온 맡은, "뭐? 그럼 네 인생 망했네?“였다. 아직도 그 장난스러운 어투와 올라간 입꼬리, 가벼운 태도가 뚜렷하게 기억 난다.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애의 정강이를 발로 찼고, 키가 큰 그 애가 정강이를 감싸 쥐느라 허리를 숙이자 눈 높이로 내려온 멱살을 잡고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퍼부었다. 저속하고 폭력적이게 대응함으로써 같은 사람이 된 것 아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속은 시원했다. 그 애의 행동은 무엇보다 망하지 않았고 포기할 이유도 없는 내 인생에 대한 큰 무례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 애가 병이 아니라 다른 것(예를 들어 시험을 망친 일)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더라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애가 내 병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고 말한 순간 이 말을 용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들을 때도 내가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건가? 그 정도로 심각하고 불행한 상황인가? 그렇게 느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해지는데, 멋대로(p. 88) 내 운명을,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판단해버리다니. 남의 인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무리 긍정적 방향이라도 조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모르고 말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가볍게 입에 올리는 태도는 나에겐 투쟁의 대상이다. 누구든 내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자신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소리를 했는지 알려줄 생각이다(p. 89).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특별히 여행 갔거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 있었을 때 찍힌 사진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연유로 그렇게 즐거웠는지 기억에 남았을 거다. 일상에서도 그렇게 웃긴 표정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의 사진을 보면서 또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닐까. 나는 병과 함께 살고 있다. '병에 걸렸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이 있음을 알아두고 싶은 것이다(p. 136). 민들레 씨앗 부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와 함께 민들레 씨앗 중에서도 줄기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온전한 형태가 남아 있(p. 223)는 것은 '완들레', 반만 있는 것은 '반들레', 바람에 모두 날아가 하얀 줄기만 남은 것은 '간(가버린)들레'라고 불렀다. 짙은 초록색의 잔디밭 사이사이에, 아스팔트 틈새에 싹튼 민들레는 질기게도 자란다. 노란 꽃을 점점이 피워내다가 씨앗을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번식을 위해 제 일부분을 강하게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뿌리에서 나온 두 씨앗이 만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다. 막연하게도 서로를 알아볼 거라는 생각부터 든다. 처음과 끝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두 씨앗이 만나서,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기쁘게 나눌 것 같다. 어디서 왜 출발했는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화에는 이미 유대감이 싹터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병에 그렇게 큰 자리를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이 이미 병이 있기 전과 후로 명료히 나뉘는 것 같다. 병을 앓는 일이 나에게 거대한 성장 기회가 됐다고 해도 많은 것을 잃게 했고 처음부터 알아가야 한다는 절망을 때때로 느끼게 했다. 병에 걸린 뒤 새로운 나를 다시금 설명하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다른(p. 224)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 특히 그 사람들의 연약한 부분, 차마 내보이지 못했던 아픔에 대해 병을 않기 전보다 후에 훨씬 쉬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진심으로 고민하게 됐다. 그러나 아픔의 처음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서 일상의 틈새 민들레처럼 산뜻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노란빛 전율이었다(p. 225). 4학년 때는 매일매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라는 타이틀이 탐났다. 무엇보다 칭찬을 듣고 싶었다.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 입맛에 맞는 문장으로 다시 써보고,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보고, 인물을 상상해봤다. 그러니 일기를 쓰는 것도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건 지속적으로 쓰는 거라 는 사실을 몰랐다. 박지원이 재물을 샘에 비유한 것처럼, 글도 비슷한 것 같다. 많이 쓰면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솟는다. 쓰지 않으면 고여버린다. 내 글은 그때가 가장 맑고 신선했던 것 같다. 맑은 물을 마시듯 글을 썼었다. 중학교 동안은 읽기와 쓰기를 거의 손에서 놓았었다. 아무도 내게 일기를 매일 쓰라고 하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서 새로 생긴 휴대폰 속에도 텍스트는 있었다. 종이로 된 두꺼운 책보(p. 256)다 훨씬 쉽게 읽히기도 했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죄스러웠다. 수학 문제를 풀고, 노트 필기를 외우는 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읽어왔던 책들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수행평가로 자서전 쓰기가 있었다. 굴곡 없는 삶이라서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고작 한 달 뒤에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매일매일 뭘 쓸지 생각했다. 어렵고, 생각이 막힌 것 같아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흥분되었다. 재미있었다. 행복했다. 자기 전에 무슨 말로 글의 서두를 뗄지, 할아버지와 있었던 나의 첫 기억을 무슨 단어로 쓸지 고민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가장 정확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기억은 원석이었고, 나는 끌과 망치를 가지고 원석을 어르고 달래서 세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글을 완성해서 냈을 때, 국어 선생님이 나를 교탁 앞으로 부르셨다. "너처럼 글을 잘 쓰는 애를 오랜만에 본 것 같아. 앞으로 뭘 쓸지 기대된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매일매일 글을 썼다.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썼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문장은 글(p. 257)이 되고, 마치 그러기 위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글 쓰는 일은 환희다. 아주 고통스럽고 뜨거운 환희. 그리고 비로소 나는 한 번도 글을 쓰지 않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 258).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68】 희귀 질병에 걸린 여성 청년
-
-
【단상】 소위 “스타” 목사 박영선, 김문훈의 몰락
-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몰락했다. 한때 한국교회를 들썩였던 스타 목사였다. 박영선 목사는 내가 신학교 시절이던 80년대 신학생들을 매혹했다.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잊혀졌는데 최근 뜬금없이 개척교회 40억 요구 건으로 언론에 언급되다 결국 문제 많은 아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정리됐다. 김문훈 목사는 교역자에 대한 욕설 녹음이 공개된 후 고신 교단 부총회장직과 담임목사직을 사임했다. 감추었던 그들의 실체는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한때 그래도 깊은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았었는데 망연자실하다. 목사는 타종교와 달리 쉽게 팬덤이 형성되고 스타 반열에 오른다. 불교, 천주교에서 이들처럼 명성을 떨친 이들이 있었는가? 기독교는 설교 중심이다보니 설교를 잘 하는 자는 주목을 받는다. 과거 전병욱도 그랬다. 스타 목사의 이면과 몰락을 보며 다시한번 다짐한다. “인간에게 소망을 두지 말자.” 인간이란 잘 난 것처럼 보여도 다 그렇고 그러니 너무 높이지 말고 따르지도 말자. 그랬다가 이처럼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인간은 기대할 것이 없다. 씁쓸하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소위 “스타” 목사 박영선, 김문훈의 몰락
-
-
【단상】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 ‘능력주의’라는 말은 어떤 책을 보다 알게 됐다. 뜻과 달리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굴은 능력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보상이 세습이나 배경이 아닌, 오직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공정'의 기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최근에는 그 한계에 대한 비판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1. 주요 특징 성취 중심: 부나 계급 대신 지능(IQ)과 노력의 합산으로 성공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기회의 평등: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하고 실력으로 경쟁하는 것을 정의로 여깁니다. 객관적 지표: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시험'과 같은 정량적 평가를 통해 보상을 나누는 경향이 강합니다. 2. 주요 비판과 쟁점 최근 마이클 샌델 등 석학들은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고 지적합니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과신하고, 실패한 사람은 자책하며 소외감을 느낍니다. 기회의 불평등: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격차를 만들어 결국 '엘리트 세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공정의 착각: 성공에는 운이나 사회적 환경의 도움도 크지만, 이를 무시하고 오직 실력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3. 관련 주요 서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능력주의가 어떻게 공동선을 해치고 '폭정'이 되는지 분석한 책입니다. 능력주의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현대의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방식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비신자에게는 운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나름 성공하더라도 겸손해야 한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
-
【북토크367】 역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증거한다
- 역사 가운데 인간들은 다양한 시대와 국가에서 어리석은 일들을 반복했다. 지금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던가. 지금 나름 현명하다고 자부하며 하는 일들이 이후에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는가? 인간의 어리석음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온지 20년이 되다보니 현재는 절판되었다. 미라 제조법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기에 시체를 원래대로 잘 보존하려고 했다. 미라 제조는 그런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당시의 미라 제조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천연 소금인 나트론을 사용해 시체를 건조시켰다. 나트론은 수분을 흡수하고, 시체의 지방을 녹이며, 피부의 탄력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미라를 완성하는 데는 보통 70일이 걸리는데, 그 중 40일을 시체 건조작업에 할애한다. 미라를 제조할 때 우선 뇌부터 제거한다. 미라 제조인은 끝이 구부러진 갈고리를 콧구멍에 집어넣어 뇌를 끄집어낸다.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p. 119) 미라를 살펴보면, 대부분 코뼈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구멍으로 갈고리를 넣어 두개골 속의 뇌를 휘저은 뒤 액체상태가 된 뇌를 콧구멍으로 배출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뭇진을 액체상태로 만들어 빈 두개골에 채워 넣는다. 그 다음에는 내장을 제거하기 위해 시체의 왼쪽 옆구리를 절개한다. 약 10-15센티미터쯤 절개하는데, 숙련자라면 그 절개 부위에 손을 넣어 위와 창자와 허파를 쉽게 꺼낼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은 반드시 몸 안에 남겨두어야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을 생명 그 자체로 여겼기 때문이다. 저승에 가서 오시리스 신에게 심판받을 때 진실의 저울에 그 심장을 올려놓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외에 신장, 간장, 방광, 자궁 등 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런 다음 다시 옆구리를 꿰매고 시체를 물로 닦은 뒤 나트론으로 덮어 수분을 제거한다. 시체가 건조되면 피부의 탄력을 되살리기 위해 밀기름과 밀랍, 나트론, 껌의 혼합물로 몸을 문지른다. 그리고 체내에 모래와 아마포와 톱밥 등을 채워 넣어 모양을 다듬는다. 이제는 붕대로 시체를 감을 차례다. 이때 사용되는 붕대는 나뭇진이 스며든 아마포로, 그 길이만 해도 수백 미터나 된다. 붕대를 감는 방법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데, 그것을 바탕으로 미라가 살았던 시대를 추측할 수 있다. 처음에는 대부분 수의로 미라를 감싼다. 그 다음에 손가락과 발가락을(p. 114) 하나씩 감는다. 사지까지 따로따로 감고 나면 커다란 옷으로 감싸고 폭 넓은 붕대로 고정시킨다. 붕대를 감으면서 간간히 부적을 집어넣는다. 투당카엔의 미라에서는 부적이 143장이나 발견되었다. 신분이 낮은 귀족들도 보통 40장쯤 들어 있다. 붕대를 감는 일은 2주일이나 걸리는 고된 작업이다. 붕대를 갉아먹으며 미라 안으로 들어갔던 쥐가 계속 붕대를 감는 바람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3천 년 뒤에 뼈로 발견된 적도 있다(p. 115). 채찍질하는 고행자 유럽에서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던 1349년, 독일과 플랑드르, 네덜란드, 스위스 등지에 기이한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순례단이 등장했다.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십자가가 달린 모자를 쓴 그들은 참회의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들의 몸을 가죽 끈으로 채찍질하면서 각 지역을 돌아 다녔다. 가죽 끈에는 단단한 매듭이 있었는데, 그 안에 바늘처럼 날카로 운 쇠못이 들어 있었다. 그 때문에 몸에 채찍질을 할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그들 주변에 몰려들어 끔찍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들에게 흘린 듯 옷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p. 120) 그들은 마을 광장이나 교회에 도착하면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땅 바닥에 엎드리거나, 혹은 빙 둘러앉은 뒤 한가운데에 아이의 시체를 높히고는 부활을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몸을 채찍질했다. 그들의 피가 땅바닥을 적시거나 교회 벽에 튀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느새 흥분하여 그 분위기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것은 흑사병 때문에 끝없는 공포에 휩싸인 군중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자학하면서 신의 분노를 달래려 한 집단 히스테리였다(p. 121). 성유물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세 유럽에서는 성인을 숭배하는 풍습이 크게 유행했다. 기적을 일으 킨 사람이나 위업을 달성한 사람을 성인으로 숭배하곤 했다. 그러자 성인과 관련된 물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성인의 신체 일부나 생전에 성인이 애용하던 물건을 흔히 성유물이라고 하는 데, 당시 사람들은 특히 성인의 시신을 선호했다. 그 때문에 성인들은 묘지에 안치된 뒤에도 수난을 당해야 했다. 옷을 찢어가거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머리와 팔과 다리까지 잘라가기도 했다. 시신의 일부라도 수중에 넣어 그 성인의 공덕을 물려받으려 했던 것이다. 가령 13세기에 유명했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었을 때는 제자들이 그의 몸통과 머리를 잘라 냄비에 부글부글 삶았다고 한다. 시체를(p. 122) 균등하게 나누기 위해서였다. 원래 교회나 수도원은 성유물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다. 성 O0 교회, 성 OO 수도원이라는 이름은 모두 그 성인의 유물을 소유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진짜 성유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시체를 잘게 토막낸다 해도 그 수는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성유물 붐은 점차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제 성유 물을 구하려면 그리스도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까지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 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다 언덕과 그 시신을 매장한 동굴이 발견되었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장소에 교회도 세워졌다. 그러자 성지순례 같은 여행 코스가 만들어져 유럽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관광객들은 그리스도가 갇혀 있던 감옥이나 최후의 만찬이 행해졌던 집을 돌아보고, 성지의 흙으로 만들었다는 요상한 선물을 사들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고 한다. '성유물 붐'과 '예루살렘 순례 붐'이 절정에 달했을 즈음,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대중들이 성유물을 차지하기 힘든 만큼, 성유물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기꺼이 전쟁터에 가겠다는 자들이 들끓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은 연고가 있는 십자군 병사에게 성유물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십자군을 통해 동방에서 수많은 성유물이 유입되었다. 그리(p. 123)스도의 십자가 조각이라는 등, 그리스도가 땀을 닦은 수건이라는 둥, 최후의 만찬에 사용한 테이블 조각이라는 둥,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물건들이 유럽 곳곳에서 등장했다. 사실 그리스도가 죽은 지 천 년이 넘었으니, 진짜 성유물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동방에 진짜 성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상인들은 가짜 성유물을 만들어 십자군 병사에게 비싸게 팔아넘겼다고 한다(p. 124). 사후에 신이 되는 황제 로마제국에는 죽은 황제를 신으로 받드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죽은 황제를 위해 훌륭한 신전을 세우고 제사장과 신관까지 임명했다. 황제가 죽으면 원로원은 그 황제의 업적을 먼저 체크했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국가의 신으로 제정했다. 원로원은 황제가 신으로 적당치 않다는 판정을 내리기도 하는데, 간혹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황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황제가 생전에 이룬 업적은 모두 무효가 되어 모든 서류에서 황제의 이름이 말소된다. 실제로 그렇게 이름이 삭제된 황제의 비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황제를 신격화하던 기원전 1세기에는 장례식 때 황제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인까지 등장했다. 2세기가 되자 황제의 신격화(p. 129) 의식은 한층 더 화려해졌다. 황제가 죽으면 우선 일반적인 방법으로 매장한 뒤 황제와 닮은 밀랍인형을 만들어 상아 침대에 눕힌다. 그러면 엄숙한 장례행렬이 그 밀랍인형을 운반해 가서는 거대한 화장대에 올려놓는다. 기마병과 전차병이 그 주위를 행진하다가 마지막에 횃불로 화장대에 불을 붙인다. 어느 정도 불길이 커지면 화장대에서 독수리가 튀어나와 불꽃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장례식이 끝나면 축성(consecratio)이라는 문구와 함께 화장대와 독수리가 새겨진 기념 코인이 발행되었다. 보통 사람의 화장이라면 재와 함께 유골이 남을 테지만 밀랍인형은 불에 녹아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황제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는 확실 한 증거였던 셈이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임종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아, 유감천만한 일이로다. 짐도 결국 신이 되는 건가....."(p. 130). 흡혈귀 전설의 진상 죽은 자가 환생하는 이야기라면 흡혈귀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흡혈귀의 대명사는 영화나 소설로 익숙해진 드라큘라 백작일 것이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짙은 안개로 뒤덮인 숲속. 언덕 위의 고성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서 있는 섬뜩한 사내. 낮에는 어스름한 관 속에 누워 있지만 밤이 되면 묵직한 관 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나 사냥감을 찾아다닌다. 그는 박쥐로 변신해 하늘을 날기도 하고, 안개나 먼지가 되어 문이나 창문 틈새로 스며들기도 하며, 도마 뱀붙이처럼 절벽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일단 무서운 기세로 상대를 제압한 뒤 늑대처럼 날카로운 어금니로 목을 문다. 그는 사람의 피를 흡수해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뿐만 아니라 점(p. 138)점더 젊어지기까지 한다. 흡혈귀가 크게 활동한 것은 18세기의 발간 지방이다. 트란실바니아 산맥으로 이어진 그 지방은 흡혈귀 전설의 본거지가 된 뒤로 갖가지 흡혈귀 출물사건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죽은 자가 밤마다 되살아나 피를 빨아먹 는다는 전설은 발칸 지방뿐만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그리스, 터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인도와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흡혈귀 전설이 그렇게 널리 퍼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성급한 매장' 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사상태로 매장된 사람이 다(p. 139)시 살아나 묘지에서 기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사람을 흡혈귀와 동일시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앞서 기술한 유럽의 흑사병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아직 페스트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전염을 막으려면 환자를 격리하거나 매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매장을 당한 환자가 가까스로 땅 속에서 기어나와도 사람들에게 환영받기는커녕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묘지에서 되살아난 사람은 필사적으로 관 뚜껑을 열고 나와, 수의를 걸친 섬뜩한 모습으로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볼은 홀쭉해져 있고 움푹 들어간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인다. 수염과 손톱도 길게 자라나 있다. 관 뚜껑을 열고 밖으로 기어 나오면서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어 손과 얼굴에는 핏자국이 선연하다. 그런 모습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밤길을 비틀비틀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니 길에서 우연히 '부활한 사자(死者)'를 만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환생한 흡혈귀' 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발칸 지방이나 동유럽에서는 시체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아예 목을 자르거나 화장하기도 했다.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서는 일단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죽음의 움막'에 안치시켜 정말 죽었는지 확인한 뒤에 매장했다고 한다(p. 140). 사후에 대한 집착 사후세계를 믿었던 고대인들은 죽은 자가 되살아나 자신들의 생활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매장하려 했다. 12표법(로마의 가장 오래된 성문법)에서는 도시 안에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로마의 아피아가도처럼 도로변에서 고대의 묘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탄생하면서 성인, 즉 순교자 곁에 매장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당시에 사람들은 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교자 곁에 매장되어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영혼과 육신을 잘 보존하고 싶어했던 것이다(p. 158).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스러운 12사도 교회의 입구에 매장될 수 있도록 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냈다. 이를 계기로 일반인들도 앞다투어 교회 안에 매장되려 했다. 그때부터 귀족이나 성직자나 부자들은 교회에 매장 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점차 교회 입구 쪽에 만족하지 못하고 안쪽에 매장되기를 원했다. 다급해진 교회는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교회 안에 시체가 넘치면서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하자 교회측은 주교와 수도원장과 1등급 평신도만이 교회 안에 매장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1등급에 대한 기준은 대개 교회에 기부한 액수로 좌우되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기부한 거액의 돈은 자신의 시신이 교회에 매장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소중하게 받들어지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좀더 부유한 사람은 기부금으로 교회 안에 예배당을 짓기도 했다. 성직자들은 정기적으로 그 예배당에서 기부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올렸다. 교회 안에 매장되기 어려운 사람들은 교회의 묘지에라도 매장되고 싶어했다. 그곳도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리가 정해졌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건물 동쪽에 위치한 제단의 벽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p. 160)반해 북쪽이나 구석진 곳은 악마의 영역으로 여겨져 죽은 태아나 사생아, 자살자 등이 묻혔다. 19세기에 프랑스 브르타뉴에는 자살자 전용 묘지가 있었는데, 자살자의 관은 출입구가 없는 벽 아래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살자의 가족들은 어떻게든 속죄하고 사면을 받으려고 했다. 중세의 어느 파문당한 수도승은 납으로 된 관에 안치되어 성에 맡겨졌는데, 그가 묘지에 매장될 권리를 얻기까지 무려 8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p. 161). 화장 일반적으로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매장과 화장이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로 매장을 했는데, 사후에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 영국에서는 시신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화장을 선호하고 있다. 시신이 추하게 부패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꾸었다. 먼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화장해 재로 만들면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도 2세기경까지는 귀족들 사이에서 화장이 일반적이었다. 더 나아가 매장과 화장을 혼합한 형태도 있었다. 죽은 자의 손가락을 잘라 매장하고 나머지 부분은 화장하는 식이었다(p. 164). 화장하고 남은 재는 납골단지에 넣어 콜롬바리움(고대 로마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했다. 그리스도 교도는 화장을 사교의 풍습이라며 기피했다. 그 때문에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보급되면서 매장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카를루스 대제는 789년에 화장을 행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19세기경부터 묘지의 과밀화와 위생상의 문제로 다시 화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화장을 주장한 빅토리아 여왕의 외과의사 톰프슨은 1874년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잉글랜드 화장협회를 결성했다. 그들은 정부와 지역주민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878년에 브룩우드 묘지 근처에 최초의 화장터를 짓고 화로를 설치했다. 하지만 내무장관의 허가를 받지 못해 화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런데 1883년에 웨일스의 한 성직자가 죽은 자신의 아이를 화장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를 등유 나무통에 넣고 장작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는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곧바로 방면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885년 3월에 비로소 공식적으로 화장장이 가동되었다. 처음 화장된 이는 기관지 폐렴과 천식으로 사망한 일흔한 살의 여성이었다고 한다(p. 165). 유언장 예전에는 유언도 상당히 중요한 의식이었다. 유언은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으로서 그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파문당하기도 했다. 또한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죽은 자는 교회 묘지에도 매장될 수 없었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증인과 주임사제가 담당했다. 유언장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신앙을 위한 기부와 유산 분배 였다.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현세의 재산을 천국과 연결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른바 천국으로 가는 패스포트인 셈이다. 요컨대 생전에 어떤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든 임종 때 그것을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았던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지옥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병원이나 가난한 자,(p. 169) 자선단체 등에 거액을 기부했다. 또한 교회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영혼의 평안을 위한 미사를 청하기도 했다. 유언장은 대부분 그런 내용들로 체워졌다. 그것이 14세기의 귀족들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꼼꼼히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도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언이 제대로 지켜질지, 성직자들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지 불안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동판에 자신의 이름과 지위, 생년월일, 심지어는 미사의 종류와 횟수까지 새겨넣어 교회에 맡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부와 더불어 중요했던 것은 사후의 영혼을 달래주는 미사였다. 그 중에 는 이같은 유언장도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죽음의 고통에 빠져들면 가르멜 수도회의 신부가 30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신부가 30회,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가 30회,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가 30회 미사를 치러줄 것." 하지만 18세기경부터 유언장의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미사를 위탁하는 내용은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 재산분배에 관 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계몽주의의 확산으로 종교에 무관심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머리맡에 모인 가족에게 직접 사랑과 신앙심을 전하게 되면서 유언장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p. 170). 자살 클럽 파리, 런던, 빈의 자살 클럽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파리, 런던, 빈 등지에 '자살 클럽' 이 등장했다. 자살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거나 혹은 마음을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회원들의 자살을 도와주는 클럽이다. 1831년 5월 17일자 신문에 슈워츠라는 여성이 경찰에 한 자살 클럽의 실태를 폭로한 기사가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클럽은 일요일 밤이면 멤버 전원이 건강이 좋지 않은 회원의 집에 모였다. 그리고 4시간 동안 그 사람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기도한다. 그래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자살이 결정된다. 지난 일요일에는 슈워(p. 203)츠라는 여성의 오빠 집에 멤버 전원이 모였다. 오빠가 중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그녀의 오빠는 이튿날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같은 자살사건이 스무 건쯤 일어난 뒤에야 그 클럽은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헝가리 청년의 자살 사건 1930년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 경찰이 한 자살 클럽을 적발했다. 그 클럽에서는 자살을 희망하는 회원들이 제비뽑기로 자살자를 지명했다. 밤마다 50명쯤 되는 자살 희망자가 모여 제비뽑기를 했다. 52장의 카드 속에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집어넣고, 그것을 뽑은 회원이 그날 자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클럽의 회원이었던 헝가리 청년은 한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약혼했 다. 말하자면 자살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탈퇴하겠다고 했지만 클럽에서는 조건을 달았다. 탈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카라 게임을 해서 만약 해골을 뽑으면 자살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년의 심정이 어땠을까. 어쨌든 그날이 되어 청년은 자신이 받은 카드 두 장을 천천히(p. 204) 뒤집었다. 한 장은 사랑의 성취를 나타내는 하트 에이스였고, 다른 한 장은..., , 해골이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말없이 권총을 집어들어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슬픔에 잠긴 그의 연인이 그 클럽을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p. 205). 사티 풍습 인도에는 19세기 초까지 사티라는 끔찍한 풍습이 존재했다.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도 장작불에 몸을 던져 남편을 뒤따르는 순장제도다. 1829년 영국에 의해 겨우 금지되었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그 풍습을 전해주는 비석이 인도 전역에 퍼져 있는데, 가장 오래된 비석에는 서기 510년이라고 적혀 있다. 사티 풍습은 주로 갠지스 강 유역과 편잡 지방, 남인도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산 제물로 희생되는 여성은 한 번에 한두 명이 보통이지만, 1780년에 조드푸르의 영주가 죽었을 때는 64명의 여성이, 남인도의 영주가 죽었을 때는 만 천 명의 여성이 순장했다고 한다. 그 방법도 무척 다양하다. 남편의 시신에 묶여 장작 위에 올려진 아내(p. 211)도 있고, 남편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스스로 불을 붙인 아내도 있다. 이때 아내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것을 불길하게 여겨 그곳에 모인 군중들은 그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불경을 외워댄다. 때로는 멀리 떠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스스로 장작불에 뛰어들기도 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순종적인 아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끝내 거부하는 아내도 있었다. 1796년 캘커타 근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내가 사티 풍습에 따라 장작 위에 묶여 있다가 어두운 밤이 되자 밧줄을 풀고 도망쳤다. 당황한 가족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마침내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가 사티 풍습을 따르지 않으면 일가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녀를 찾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장작 위로 돌아가든지 익사하든지 목을 매든지 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들은 다른 식구들과 함께 그녀, 즉 자신의 어머니의 손발을 묶어 장작불에 던져 버렸다. 간혹 저항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다량의 마약을 먹인 뒤 가사상태에서 불길 속에 던지기도 했다. 그런 사티 풍습이 오래도록 이어진 것은 어머니가 죽으면 자식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었(p. 212)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남편이 없는 세상에서 비참하게 사느니 그 뒤를 따르는 편이 행복하기 때문이라느니, 남편이 내세에서도 반려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1829년에 마침내 인도를 점령한 영국은 사티 풍습을 용납할 수 없는 살인행위로 규정해서 법률로 금지시켰다(p. 213). "슬픈 소식입니다. 장군님이 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운전사의 고백에 따르면, 롬멜을 태운 차는 집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동행한 사람들은 그를 남겨두고 차에서 내렸다. 몇 분 뒤에 다시 차로 돌아가보니, 독약을 마신 롬멜이 좌석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병원에서 남편의 시신을 본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마치 누군가를 멸시하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생전에는 한 번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은 암살음모자들이 고문받을 때 롬멜의 이름을 거론했던 것이다. 그들은 히틀러를 암살하고 롬멜 장군을 대통령으로 옹립할 계획이었다(p. 260). 영웅적인 군인인 데다 인간성도 고결했던 롬멜은 패배한 독일을 구원할 구세주로 여겨질 만큼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전부터 롬멜 장군의 인기를 시기하던 히틀러는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크게 격분했다. 하지만 그를 처형시키면 사람들의 반감을 살 우려가 있었으므로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공식적으로는 전쟁터에서 입은 머리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히틀러는 전 국민에게 상복을 입으라고 명했고, 롬멜 부인에게는 장군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롬멜 장군의 시신은 포차에 실려 화장터로 향했다. 그의 시신을 화장하기로 한 것은 훗날 시신이 발굴되어도 음독자살한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치스 독일이 붕괴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반 년 뒤의 일이다(p. 261).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67】 역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증거한다
-
-
【북토크366】 하정우, 멋지군!
- 우연히 알게 되어 읽은 책이다. 배우 하정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책을 보니 건전하게 배우, 화가의 길을 성실하게 가는 ‘생활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보다 젊은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끝까지 롱런 하기를 응원한다. 사람들은 인생살이에서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중에는 형편이 나아지겠지, 세월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지겠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면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 있겠지... 어릴 때는 이런 희망과 꿈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지만, 나이들수록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고 뉘우치며 포기하는 단계까지 간다(p. 25).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농담처럼 시작된 국토 대장정은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가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 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p. 26).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며 고민의 무게를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p. 32)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p. 34). 만약 누가 하루 만 보를 걸으면 무조건 만 원을 주고 1보 당 1원씩 적립해서 환전해준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공상을 해본 적이 있다. 걷기야 팔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니 그것만으로도 돈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악착같이 걸을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나이들고 아픈 다음에 병원비를 왕창 들일 생각을 하면, 지금 우리가 걷는 만 보는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늘 우리가 고단함과 귀찮음을 툭툭 털고서 내딛는 한 걸음에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나의(p. 67)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 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p. 69). 하와이에 왔으니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p. 78)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p. 79). 영화의 흥행 실패는 배우에게 뼈아픈 일이다. 어떤 이들은 내게 '하는 일마다 다 잘돼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나의 필모그래피에는 기대했던 만큼 흥행을 하지 못한 작품도 꽤 있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영화 〈군도〉도 470만 이상의 관객이 들었지만, 당초의 목표는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내가 왜 좀더 잘하지 못했을까 자책했다. 천만 영화나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두는 영화들에는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하지만, 나는 그 운 역시 관객을 끌어모으는 결정적인 한 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반대로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던 영화가 관객들의 선(p. 111)택을 받지 못했을 때, 나는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했더라도 더 시도해볼 만한 건 정녕 없었을까 복기한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p. 112). 술이나 약물에 흠뻑 중독돼 흐트러진 자세, 충동적인 일탈과 자유분방함, 무절제와 탕진하는 습관, 감정 기복, 우울증과 예민함, 그리고 그 불행과 절망을 딛고 태어나는 훌륭한 예술작품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런 쪽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평범한 직장인처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어한다. 내가 배우이자 감독이면서 동시에 그림까지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가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하정우를 상상했다가 나에게 몹시 실망(?)하는 듯한 사람들도 만(p. 117)나게 된다. "하정우씨는 의외로 바른 생활을 하는 분 같네요?"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혹은 지금 눈앞의 모습 뒤에 숨겨진 다른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에둘러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작품은 예술가가 안정적이고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서 일탈하거나 방황할 때 나오지 않나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좋은 예술과 안정적인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좋 은 작품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는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만큼 좋은 삶을 살기도 쉽지 않다. 나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역사 속 일부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예술성과 일상의 안정은 양손에 쥐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어떤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불행의 극단이나 모험과 일탈의 순간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생각과 행동이 과감해지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르게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면서(p. 118) 금기와 편견을 넘어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 이다. 예술이 지금 여기에 발붙이고 있는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일탈과 충동은 스스로를 완전히 넘어 섰다는 착각을 불러온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한두 번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대중이 열광하고 추앙하는 작품이 우연히 나와서 인기와 명예까지 얻다보면, 이제는 행복과 안정을 향한 길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상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번쩍, 하는 충동의 순간에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강도를 점점 높여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져버린다. 우리는 바로 그런 것을 예술가의 운명이라 여긴다. 하지만 착각이다. 삶을 올바로 지탱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며 고통받다가 너무도 빨리 사라져버린 뛰어난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낱 연약한 인간으로서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감당할 수는 없다(p. 119). 배우라는 직업의 특이점은 또 있다. 연예인들은 늘 대중의 시선과 평가를 받으며 살다보니 정신적 면역력이 떨어 지기 쉬운 것 같다. 자신감이 소진돼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마음이 요동치고,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그간 이뤄놓은 것들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허물어질 것 같고,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너무도 어렵게 느껴져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사실 이런 증상은 연예인들만이 아니라 과잉업무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많은 현대인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다. 흔히 '번아웃' 혹은 스트레스증후군으로 불리는 이런 상태에 빠지면 당장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단순한 육체 피로로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서 쉬려고 한다. 극단적으로 지쳤을 때, 의외로 많은 이들이 계속 먹거나 종일 자거나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는 식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p. 162)만 이러면 분명 쉬긴 쉬었는데도, 통 나아지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날이 닥쳤는데도 도망 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왜 푹 쉬었는데도 여전히 피곤할 까의아해 하면서 말이다. 물론 육체 피로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느 정도 회복된다. 격하게 움직인 부위의 근육을 잠시 쉬어주면 이내 활동 가능한 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무작정 가만히 누워 있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도 '꼼짝도 안 한 채 이불 둘러쓰고 싶은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힘든데 뭘 더 어떻게 움직여?' 의구심부터 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뇌게 되었다. "아, 힘들다....걸어야겠다." 나는 힘들수록 주저앉거나 눕기보다는 일단 일어나려 애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팔과 다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온몸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귀찮음을 탁탁 털어내본(p. 163)다. 그렇게 걷다보면 녹슬어서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에 윤기가 돈다(p. 164). 가끔 도심에서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내 몸이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순간은 짧지만, 무리 지어 가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귓속으로 쑥 파고들 때가 있다. 그렇게 맥락 없이 우연히 들은 말에 붙들리면, 나는 여러 가지 공상을 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의 독특한 억양이나 말투, 또 흔히 쓰지 않는 단어 같은 것들을 곱씹어보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 한 인상적인 말들이 잘 떠나지 않고 머리를 맴도는 것도, 이렇게 사람의 표정과 언행을 유심히 관찰하고 되새겨보는(p. 185) 나의 버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은 당장 집에 가서 귀를 씻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거친 욕설을 침 뱉듯 뇌까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를 향해 한 말이 아닌데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다. 잘 살펴보면 그들이 정말로 화가 나서 그런 욕설이나 비속어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말끝 마다 욕설을 섞어 쓰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게 그냥 말버릇이라 해도 나는 도무지 견디기가 힘들다. 극중에서 욕을 찰지게 쓰는 역할을 종종 맡다보니, 내가 일상에서도 욕과 비속어를 적절히 섞어 쓸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의외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별 뜻 없이 한 말도, 일 단 입 밖에 흘러나오면 별 뜻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는 혼잣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그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에는 다른 사람을 찌르는 힘이, 칭찬에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말을 최대한 세심하게 골라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내보내야 한다. 입버릇처럼 쓰는 욕이나 자신의 힘을 과시(p. 186)하기 위한 날선 언어를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다(p. 187).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간 쏟아부은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연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연결돼 있고, 그 덕분에 지금(p. 192)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감사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이끈다. 어쩌면 감사도 연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처럼 쓴다. 거기 당신, 늘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p. 194). 우리는 실패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타인의 평가가 내 기대에 털끝만큼도 못 미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그리고 끝내 어떤 식으로든 잘될 것이라고. 나는 아직 감독의 삶이라는 긴 도정의 초입에 서 있다. 중간 지점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넘어지거나 꽃다발을 받거나 하는 일들은 어쩌면 크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일희일비 전전긍긍하며 휘둘리기보다는 우직하게 걸어서 끝끝내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에 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 하다(p. 231). 배우의 삶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던 일상이 사라지는 경험은 의지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걷던 길, 나를 편안하게 대하고 내가 거리낌없이 대하던 모든 사람들, 내 집처럼 드나들던 가게, 아지트 그 모든 것들이 싹 바뀐다. 모든 것이 불편해지고 어색해 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그 속에서 연약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판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경험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흔히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흔히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를 둘러싼 상황은 끊임없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까? 이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배우의 삶에 슬럼프는 꽤 자주 찾아온다. 슬럼프에 익숙(p. 275) 해져야 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넘어지고 좌절하는 날들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러한 슬럼프를 많이 겪어보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러한 슬럼프들은 나를 더 휘청거리게 하고, 다시 일어서는데 더 오랜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 내가 아직 견디고 배울 힘이 남아 있을 때 찾아온 슬럼프는 실패가 아니라 나를 숙련시켜주는 선생님이다. 곧바로 현장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남들보다 빨리 거창한 성과를 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충분히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담금질의 시간은 내게 슬럼프란 녀석이 방문 했을 때, 비로소 황금의 시간으로 변할 것이다. 각자가 겪을 슬럼프의 시기와 양상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우리 모두에게 슬럼프는 언제든 찾아온다. 슬럼프란 불운한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라, 해가 나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인생의 또다른 측면일 뿐이다. 슬럼프란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에게 슬럼프는 인생길의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 주는 스승이다(p. 276).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이런 문장을 보았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그동안 이 길을 여러 번 오갔으니 아마 몇 번은 보았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밟힌 이 문장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삶에서 내가 어떤 시련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래, 내가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자기 전에 기도하고, 촬영장에 가기 전에 기도하고, 순간순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기도한다. 나에겐 기(p. 288)도란 먹고 숨쉬고 걷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혹은 아예 종교가 없더라도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가끔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면 덜컥 무서워질 때가 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어떤 힘이 이끌어 내가 여기까지 큰 탈 없이 오게 되었을까?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감사한 만큼이나 때로는 겁이 난다. 그동안 단지 운이 좋았던 것만 같아서,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싶어서...... 물론 허투루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언제나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온전히 결과에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점점 받아들이고 있다. 너무도 보잘것없는 나라는 사람. 그런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수많은 우연들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의 노력이란 지극히 일부이고 또 결정적이진 않다는 것이 나는 더이상 놀랍지 않다. 가끔은 어떤 결과가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루어낸 성과이고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나의 미약한 힘이 미치는 범위란 형편없이 좁다는 것을(p. 289).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기도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돌아보고 싶었고, 겸허해지고 싶었고, 솔직해지고 싶었다. 비단 신을 믿지는 않더라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연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 등 외부에서 오는 절대적인 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나에게 남은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과 기도뿐이라는 사실을(p. 290).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기도의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요즘 나는 기도할 때 내 소원을 열거하지 않는다. 그저 신이 내게 맡긴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두 다리의 힘만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 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p. 291)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 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내게 주어진 재능에 겸손하고, 이뤄낸 성과에 감사하자. 걸으며, 밥을 먹으며, 기도하며 나는 다짐해본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p. 292).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66】 하정우, 멋지군!
-
-
【북토크365】 어느날 암에 걸린다면....
- 40대 초반의 케리어우먼이 유방암에 걸렸다. 이후 전절제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되면서 대부분 암으로 죽는다. 언젠가 암으로 진단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 질병이든, 사고든, 죽음이든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프롤로그 삶의 길목에 선 당신에게 활짝 열려 있던 문이 철거덕 하고 닫혔다. 깜깜한 어둠 속에 나는 내던져졌다. ‘도대체 왜 내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가장 컸다. 2019년 12월,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SNS의 자기소개란에 열정과 긍정이 삶의 모토라고 적곤 했다.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고 삶을 긍정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암이라는 질병 앞에선 나 역시 한없이 약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했다. '잘 치료되지 않으면 어떡하(p. 5)지?, '전이되면 어떡하지?', '죽게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내 목덜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내가 그동안 고통이나 위기를 겪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안온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경제적 어려움, 사랑했던 연인이나 친구와의 이별, 허리 디스크와 같은 질병의 고통, 열정을 쏟았던 일의 중단 등 다양한 고통과 위기를 겪었다. 그럴 때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처럼,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 삶의 길목 어딘가에서 기쁨과 행복, 기회의 빛이 나를 비춰주었다. 그래서 대체로 나는 삶이 재밌고 흥미로웠다. 내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진주가 내 삶 속에 더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던 찰나 암이 나를 찾아왔다. 처음엔 암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암이 내 삶의 즐거움과 앎의 기쁨을 빼앗고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영영 무채색 같은 삶을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암 진단 이후에도 또 다른 기쁨과 행복과 기회의 빛이 나를 비춰주었다. 여전히 삶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암 진단을 받으면 인생이 끝장나는 줄 알았는데,(p. 6) 인생은 계속됐다. 암 투병으로 이어지는 삶도 내 인생이었고, 이 시간 또한 내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생기니 절망과 불안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어둠에서 나와보니,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은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강물 위의 반짝이는 윤슬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멍하니 강을 바라보는 시간도 늘었다. 암 진단 이전엔 지나치게 자아가 비대해 내가 세운 목표대로 삶을 만들어야 만족했다면, 암 진단 이후 나는 이 광활한 우주의 일부분이고 인생은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마음이 훨씬 넓고 깊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항암-수술-방사선치료라는 3대 표준치료를 마친 나는 암을 진단받기 전보다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더 자주 느낀다. 먹고 싸고 자는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것인지 알아버렸기에, 맛있게 먹고 화장실에 잘 가고 한밤 중에 여러 번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상태가 유지만 되어도 저절로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도 크(p. 7)다.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며 신비로운 사람의 몸과 마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그동안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소중하다. 나의 내면을 탐색하고 관계를 돌아보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다. 그렇게 암은 내게 곰국처럼 진한 삶의 즐거움과 앎의 기쁨을 선물해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을 진단받고 처음의 내 모습처럼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가만히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알아요."(p. 8). 밤 9시 반 무렵, 휴대폰 벨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여보세요. 양선아 씨죠? 저는 청주시 버스운전사인데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리셨어요. 종점에서 버스 정리하면서 발견했어요. 지갑과 안경이 들어 있는 가방 주인 맞으시죠?" 세상에! 가방이 돌아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뱉으며, 허공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후 2시 반께 버스에서 내렸으니, 가방이 온종일 버스 좌석에 놓여 있었을 텐데 아무도 가방을 가져 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또 버스 기사님이 명함을 보고(p. 48) 연락을 해준 것도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이 흘러넘쳐 나는 기사님께 한라봉 한 상자를 보내드렸다. "선배 말이 맞았어요! 가방이 돌아왔어요! 가방도 돌아 오고 상도 받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내일 항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배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항암 전날 대부분의 환우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하루 동안 급격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나는 그날 너무 피곤 해 '꿀잠'을 잤다. 버스기사님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나비효과를 발휘했는지. 그날 나는 훈훈한 마음과 함께 친절과 배려, 정직의 미덕을 배웠다(p. 49). 배가 더부룩한 상태에서 방귀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데 그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했는지 모른다. 배에서 무엇인가가 썩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났다. 온 식구가 정말 질식사할 정도의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래도 가족이라 그 고통도 웃으면서 넘겼다(p. 65).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변비 특효약'을 떠올리셨다. 바로 키위! "선아야, 예전에 엄마도 수술했을 때 변비 때문에 엄청 고생한 적 있거든, 뭘 먹어도 해결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키위 있잖아, 그 키위를 먹고 바로 시원하게 변을 봤어. 밤에 자기 전에 유산균을 먹고, 키위도 좀 먹어보자." 마트로 달려가 당장 골드키위를 샀다. 그리고 바로 키위 두 개를 흡입했다. 저녁에 유산균도 먹었다. 키위를 잔뜩 먹은 다음 날, 정확히 항암 뒤 7일째 되던 날이다. 그날도 아침 식사 뒤 키위를 먹고 있는데 신호가 왔다. 바로 화장실로 달렸다. 뿌지지지직....단단히 막혀 있던 변이 드디어 내 몸을 탈출했다. 쾌변이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행복감이 솟았다. 영유아 시기 아이들이 '배변 독립'을 할 때 이런 뿌듯함을 느끼려나. 별생각을 다 한다. 피식. 그 날 이후 내 목소리도 낯빛도 달라졌다. 죽다 살아난 것처럼 몸동작도 날렵해졌다. 하하하하 시종일관 웃고 다녔다. "이제 좀 살겠는갑네. 얼굴 보니까 살아났구만, 살아났어. 완전 다르네~"(p. 66). 남편이 하하하하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웃었다. 항암 1차 이후 일주일, 똥에 죽고 똥에 산 한 주였다.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게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하루라면 행복하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의 마지노선은 엄청 낮아졌고, 행복을 느끼는 빈도수는 늘었다. 그렇다.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p. 67). 머리카락 빠지는 문제에 며칠 동안 부대끼면서 인생이 새옹지마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살다 보면 슬프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또 웃을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도 생긴다. 그래서 너무 슬퍼할 필요도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기쁠 땐 제대로 기뻐하고 슬플 땐 제대로 슬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면 그 상실감으로 힘들 것이라고 미리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렇진 않았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아침에 세수하고 머리 감는 시간이 너무 단축돼 편리했다. 머리를 말리거나 헤어스타일 고민할 필요 없이 비니 같은 모자만 쓰면 되니 간편했다. 또 기분 따라 가발로 헤어스타일을 손쉽게 바꿀 수 있어 재밌었다. 원래 나는 모자도 좋아하는데 다양한 색깔의 모자를 써보는 기회도 가질 수(p. 77)있었다. 더운 여름엔 비니만 간편하게 쓰고 시원하게 보내고, 겨울엔 가발로 따뜻하고 다채롭게 보냈다.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이것 또한 내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제는 새롭게 움튼 머리카락을 보며 또 다른 기쁨과 재미를 느낀다. 항암제 공격으로 두피 세포들도 힘들었는지, 머리카락이 꼬불꼬불 자란다. 1년 만에 미용실을 찾아 제멋대로 자란 뒷머리와 옆머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가발과 모자를 벗어던지고 산책에 나섰다. 상쾌하고 통쾌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구었던" 나무들이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이재무, 〈가을 나무로 서서〉, 《몸에 피는 꽃》, 창비, 1996)을 예고하며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봄이 오고 있다(p. 78). 본 병원 의사와 면담 시간은 길어봐야 5분이지만 한방 병원에서는 의사 면담을 30분 넘게 한다. 의사는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비급여 항목 치료가 많아 치료비가 비싼 만큼 암 치료 전문 한방병원 의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은 높은 편이다. 담당 한의사는 상담 중 내가 눈물을 보이자 충분히 울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의사는 또 "지금은 울지만 백혈구 촉진제 맞으면 호중구 수치도 오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쁜 비니 없나 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자신의 모습을 맞이하실 거예요"라고 말해주는가 하면, 격리된 병실에서 후배가 보내준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봐요, 이렇게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힘내셔야죠"라며 격려해주었다.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의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게는 '보약'이고 '치료제'였다(p. 84). 무엇 하나 간단한 것이 없었다.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만나듯, 항암의 여정 속에서 나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수시로 만났다. 그때마다 절망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혈관이 딱딱해지는 현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책이나 의사, 환우들에게 객관적인 정보 및 각종 경험담 수집)에 집중했다. 부작용 이야기를 들으니 굳이 무리해서 케모포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의사 의견대로 일단 팔 혈관으로 항암을 계속 진행해보기로 했다(p. 115). 먹는 것이 고역인 암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먹방(먹는 방송)'이다.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 한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나도 비로소 먹방 월드에 입성했다. 집에서는 친정엄마가 도끼눈을 뜨고 내 앞에 앉아 밥숟가락을 다 뜰 때까지 지켜보고 있어 밥을 먹었다면, 병원에서는 먹방을 틀어놓고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숟가락을 들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수미네 반찬〉, 〈신상출시 펀스토랑〉(p. 137), 〈맛남의 광장〉 등 먹방은 얼마나 다채롭고 끝이 없던지. 음식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환호하고 맛을 즐기는 텔레비전 속 사람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고민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 과거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지나치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적 생각을 했고, 먹방은 상업적이라고 내 멋대로 재단했다. 그런데 암 진단 뒤 혀의 감각을 잃고 매끼 챙겨 먹는 일이 고역이 된 뒤 먹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껏 저렇게 음식을 보며 감탄하며 먹은 적 있던가? 나는 나의 입과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저렇게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본 적 있던가?' 그동안 내게 식사 시간은 감탄의 대상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면 매 끼니를 빨리 해치워야 했다. 따라서 식사 시간은 내 시간을 빼앗는 무엇이었다. 취재원과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음식보다는 취재원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여야 하므로 음식을 먹 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내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던가. 내가 먹는 것들은(p. 138) 내 세포를 만들고 몸 구석구석에 가서 내 몸과 마음이 잘 작동하도록 해주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나를 막아주는 병사 역할을 해준다. 그 고마운 음식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매끼 맛을 음미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친정엄마가 정성들여 보내준 음식들을 제대로 챙겨 먹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p. 139). 암 치료 관련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강조한다. '대사치료'의 대가 나샤 윈터스 박사는 저서 《대사치료, 암을 굶겨 죽이다》(처음북스, 2018)에서 암 치료에 있어 채소 섭취가 중요한 이유는 채소의 식물 영양소가 DNA 손상을 예방하고 결함이 있는 DNA를 복구시켜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암이라는 질병은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해 통제 불가능하게 분열하고 신체 여러 부위로 퍼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돌연변이 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DNA 손상을 예방해주는 채소를 평소 많이 챙겨 먹는다면 자연스럽게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윈터스 박사는 특히 십자화과 식물을 추천하는데, 십자화과 식물로는 브로콜리, 양배추, 콜리플라워, 콜라비, 무 등이 있다. 십자화과 식물은 우리 몸에서 잠재적인 발암물질을 제거하고 종양 억제(p. 141)" 유전자의 작용을 강화해준다고 한다(p. 142). 삶은 예측 불가능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암에 걸리고, 항암을 하고, 가슴 한쪽을 잘라낼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모든 일은 천둥 치듯 별안간 일어났고, 나는 내 인생에 갑자기 내린 이 소낙비에 내 방식대로 대처해야 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편인 나는 비교적 빨리 암에 걸린 일을 수용했고, 항암치료라는 난관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8번의 항암 끝에 왼쪽 가슴을 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 그 느닷없는 삶의 '펀치'를 맞고 나는 한동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공포나 두려움이라는 감정(p. 152)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감각을 마비시켜 비합리적인 사고를 확장시킨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지금 삶'마저 엉망으로 만든다(p. 153).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항암 8차를 하고 암의 사이즈를 줄여 부분절제를 하기를 원했던 나는 암 크기가 현격하게 줄지 않아 전절제를 해야 했다. 그 독한 항암제를 투입할 때도 씩씩하게 버텨온 나는 전절제 결정에 하늘이 무너질 듯 더 슬퍼했다.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해도 어찌(p. 190)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던가. 최종 수술 결과를 보니 애초 발견된 암 외에도 그 옆에 제자 리암(암세포가 비정상적인 증식을 일으킨 부위가 상피 내에 국한 된 경우를 말하며 상피내암으로도 불린다)까지 있었다고 하니 전절제는 내게 딱 맞는 결정이었다. 제자리암은 유관이나 소엽의 기저막을 침범하지 않아 덜 위험하다고 하지만, 제자리암이 또다시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부분절제를 선택했다가 암이 재발해 다시 수술하고 그 힘든 항암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봤던 터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유방외과 의사의 전절제 결정은 정확하고 올바른 선택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그때 경험으로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섣불리 좋다 나쁘다 판단 내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나중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도 그 일로 되레 새로운 삶의 의미를(p. 191) 찾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고통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p. 192).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365】 어느날 암에 걸린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