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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교회 • 구이중앙교회 • 유상교회,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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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역사위원회(위원장 한민수 목사)가 주관한 제48호 중인교회 • 제49호 구이중앙교회 •제50호 유상교회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감사예배가 3월 6일 오후 2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소재 중인교회 예배당( 조무영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총회역사위원회 위원장 한민수 목사의 인도로 역사위원회 회계 김흥선 장로가 기도, 역사위원회 전 서기 최찬용 목사가 히 12:1-2을 봉독, 찬양대가 찬양했다.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가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현재의 사명을’이란 제목으로 “과거 믿음의 선조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하게 경험했었다. 우리는 그 신앙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선조들의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의 헌신으로 오늘까지 교회가 있게 된 것에 감사하자. 셋째, 살아있는 기념비가 되어야 한다. 사적에 지정되어도 계속해서 역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자.”라고 설교했다.
역사위원회 총무 김종운 목사가 광고 후 전북노회장(한소망감수교회) 석명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사적지 지정 증서 전달
2부 사적지 지정식은 총회역사위원회 부위원장 김기현 장로의 사회로 역사위원회 서기 이진근 목사가 사적지소개, 정영교 부총회장이 당회장에게 지정증서를 증정했다.
축하패 전달
전북노회 증경노회장 윤희원 목사가 “역사는 사실보다 의미이다.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 교회들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 총회재정부장 이민호 장로가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하며 과거 역사를 통해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 공동체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 비판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라고 격려사, 역사사적지 협의회장 고관규 목사가 “사적지 지정 후 관리를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돕기 위해 역사사적지가 조직되었다.”라고 축사 후 축하패를 전달했다.
3부 현판 제막식은 총회역사위원회 서기 이진근 목사의 사회로 순교분과장 김성원 목사가 기도하고 사적지 내부를 관람하고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중인교회-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48호
처음은 그야말로 미미하였다. 중인리는 선교의 불모지였다. 영적으로 혼탁한 땅이었다. 그런 데, 이곳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다. 어디서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은숙(순) 씨 외 6명의 작은 자들이 작은 사랑채에 모여 주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구하는 어설픈(?)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사 크신 은혜와 긍휼하심 가운데 1907년 중인교회가 시작 되었다. 중인교회는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960년에서야 장로를 세우고, 조직교회가 되었다.
7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966년에서야 제1대 담임목사가 부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중인교회는 전투적인 교회였다. 역사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와 싸워야 했고, 지역적으로는 모악산 주변이 미륵신앙의 본산지였기에 치열하게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했다. 총회적으로는 교권 다툼과 분열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합동총회와 개혁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도의 무릎으로, 신학과 신앙으로 맞서 싸워야 했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사회적으로는 청년들의 지역 이탈, 성도들의 노령화, 지역과의 갈등 등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크신 은혜 가운데,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런 믿음의 발자취가 자랑스럽다. 이런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 싶다. 이렇게 전투적인 교회로 남아서 최후에 이기는 자(교회)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한다.
구이중앙교회-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49호
구이중앙교회는 1904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 간 ‘이래수’가 예수를 영접한 후에, 고향에 있는 동생 '이흥원'에게 서신으로 전도하였다. 서신을 통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시작으로 미국 전 선교사(한국명 전위렴)에게서 도리를 자세히 배우고 전도하므로 신도가 증가하였다. 이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회를 설립하여(1905년) 지금까지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현재 대한 예수교장로회 전북노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모여 뜨겁게 예배하고 영육간에 안식을 얻으며 세상을 향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이다.
유상교회-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50호
한국의 초대교회는 당시 많은 교회들이 그러했듯 선교사들에 의해 개척되어지고 설립되어지던 시절이었다. 전주가 속해 있는 전라도 지역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를 통해 1894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상교회는 조금 특이함이 있었는데, 1906년 당시 허허벌판과도 같은 전주군 유상리 부락에 ‘기역자(ㄱ)’ 교회가 세워지는 데 선교사에 의한 설립이 아니라, 순수 현지인들이 교회를 건축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당시 이일문 씨가 복음을 접하고 열정적인 전도를 하게 되는데, 그 신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고 함께 모여 예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인들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고, 이일문 씨는 1920년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어 유상교회(유상리교회)의 초대 담임목사가 된다. 그렇게 유상리 지역에 복음의 중심이 되어가던 유상교회에서는 드디어 첫 직분자가 나오게 되는데, 1933년에 홍원조 씨가 장로로 장립하게 된다. 이후로 전도사들이 교회를 섬기게 되었고, 1946년에는 동산부락에 동산교회를, 1965년에는 발산부락에 팔복중앙교회를 분립하게 된다. 그렇게 유상교회는 설립자를 제외하고 첫 번째 위임목사가 시무하게 되는데, 제 96회 총회를 이끌었던 증경총회장 이기창 목사이다. 이기창 목사가 1982년 현 유상교회 터에 건축을 하게 되는데, 과거 기역자(ㄱ) 교회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당시(1945년도) 타종했던 좋은 그대로 가지고 와서 새롭게 종탑을 만들고 타종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2대 위임목사 이길우 씨가 부임하여 35 년간의 성역을 마치고 은퇴하고, 이후 3대 위임목사 방관전 씨가 2017년 4월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처럼 유상교회는 120년 역사동안 초대 설립자를 빼고는 위임목사가 3대째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성도들은 목회자를 사랑하고, 목회자는 성도를 사랑하며 복음을 소중히 여기고 주님만을 사랑하기에 힘쓰는 교회로 세워져 가고 있다. 이후로도 신앙의 전통을 이어 받으며 후대에도 구원의 방주 역할을 감당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역사사적지 지정을 청원하여 제110회 총회에서 지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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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