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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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기총, 제1회 부부의날(5.21)행사 제1차 준비 기도회
    월드기독교총연합회(이사장 정진희 목사) 제1회 부부의날(5.21)행사 제1차 준비 기도회가 3월 3일 오후 3시 대한교회(윤영민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정진희 이사장이 “건강한 가정을 통해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우리가 관심갖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인사말했다. 예배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윤인숙 특임총재가 기도, 김복례 재정이사가 성시낭독, 강영준 목사(월기총 상임총재)가 엡5:31-32을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란 제목으로 “살아가면서 관계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만드셨다. 관계는 소중하고 늘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관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기에 죄로 인해 관계가 깨졌다. 십자가 복음은 관계의 회복이며 관계를 유지할려면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 건전한 가정을 통해 자녀가 태어나 국가가 든든해져야 한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부부의 날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이어 헌금 후 ‘한국교회 가정회복, 저출산 이혼율 감소, 부부세미나 결혼상담 전문가 양성, 6.3 지방선거와 민족복음화 정치안정 경제성장과 평화통일을 위하여’ 합심기도한 후 문여왕 상임이사가 광고하고 최병남 목사가 봉헌 축복 및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정진희 이사장이 세미나 비전 발표 및 월기총 부부행복 결혼상담 매니져 양성 취지에 대하여 “본 세미나의 주제는 부부행복, 결혼상담으로 대표 주제 성구는 창 2:24 이다. 월기총은 행사를 앞두고 매주 준비 기도회를 해왔기에 앞으로 매주 준비 기도회로 모일려고 한다. 세미나를 통해 교회 가정 상담 전문 리더를 양성해 부부 갈등을 예방하고자 한다. 또한 다른 기관, 군소 신학교와 연합해 학술 세미나도 진행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앞두고 6월 지방 선거가 있어 세미나 장소와 규모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하기로 하고 강영준 목사가 섬기는 석식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광고 및 기도제목 1. 좋은 장소를 제공하신 대한교회 윤영민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카페 세미나실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실로 감사합니다. 2. 은혜로운 설교를 해주심과 석찬을 대접하실 강영준 목사님과 참석하신 동역자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3. 예배 후 정진희 이사장님께서 세미나 비전 발표 및 월기총 부부행복 결혼상담 매니져 양성 취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4. 오는 5월 21일 부부의 날을 기점으로 <월기총 부부행복 결혼상담 축제 세미나> 일정과 매주간 1회 정기 준비 성회는 추후 공지 합니다. 위하여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 뉴스
    • 기관
    2026-03-03
  • 【북토크368】 희귀 질병에 걸린 여성 청년
    중3때 희귀 질병에 걸린 여학생이 쓴 글을 모든 책이다. 질병이 한 사람을 어떻게 어렵게 하는가를 보여주지만 그 가운데서도 필자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사지육신 멀쩡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감사하며 이러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세 번째 자기소개 때 나는 마스크를 벗고, 나의 다른 특징들을 소개하듯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웹툰을 즐겨 본다는 것을 말하듯이, 나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오픈'했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 음악은 시끄럽지 않은 걸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이때 상황을 마주한 나의 심리는 한껏 불었던 풍선에서 바람이 '푸시시' 하고 빠지는 것과 같았다. 새 친구들은 "힘 내!"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긴 더 무슨 반응을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너의 아픔을 이해한다며 다가와도 당황스러울 것이 빤했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극적인 반응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반응에 묘한 허탈감이 들었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 잔뜩 몸을 부풀린 채 경계 태세를 취하다가, 사실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의 무해한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버린 길고양이가 된 기분. 병을 진단받고 가장 걱정했던 것이 혹시라도 사람들이 '아픈 사람' 이미지에 가려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봐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를 '환자'라는 말에 가두고 나의 온갖 무궁한 가능성을 가장 먼저 재단해버린 게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 41). 시험 점수는 우리의 지극히 일부만을 담고 비춘다. 우리는 그것으로 전체가 평가되기에는 아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커다란 미래를 꿈꾸는 존재다. 물론 등급으로 나누는 것처럼 동일하고 협소한 잣대로 평가를 마치면 편리하다. 한 아이가 걸어온 시간을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숫자만 보고 판단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오류를 범하기 쉽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다. 아이들의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다른 길은 없다고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거다. 좌절을 맛본 뒤(p. 50) 딛고 성장하는 것이 어려워지도록. 나 역시 병에 걸리고, 그간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졌다며 절망해서 다시 일어나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p. 51). 병 때문에 인생 망했다고?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수다가 으레 그렇듯 대화는 종잡을 수 없이 흘렀고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허용된 존엄사의 범위, 존엄사를 선택하는 이유 등. 주로 삶에 대한 희망이 없거나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하는 거겠지.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큰 병에 걸리면 힘들게 치료받으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헉,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크다면 큰 병을 안고(p. 86)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니까. 불과 지난해까지는 나도 '큰 병' 하면 말기암을 생각했고, '난치병' 하면 백혈병을 떠올렸다. 내가 어디 심각하게 아픈 것 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도 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본 TV 프로나 웹툰, 소설 등에서 병 하면 가장 흔하게 쓰이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세상엔 수많은 병이 있고, 큰 병을 앓는다고 반드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건 아니며, 치료제를 찾을 길 없는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고 365일 매일 24시간 동안 절망의 쓴맛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1년 전 나처럼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친구는 내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랐던 사람이 실수하는 것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실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고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병을 진단받은 직후, 왜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냐고 묻는 아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 철이었기에 특목고나 예술고를 지원하는 친구들의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아마 입원하느라 장기간 결석한 나에(p. 87)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유추했을 것이다. 간단히 알려줬다. 내가 희귀 난치병에 걸려 일원해야 했다고. 그 애 입에서 나온 맡은, "뭐? 그럼 네 인생 망했네?“였다. 아직도 그 장난스러운 어투와 올라간 입꼬리, 가벼운 태도가 뚜렷하게 기억 난다.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애의 정강이를 발로 찼고, 키가 큰 그 애가 정강이를 감싸 쥐느라 허리를 숙이자 눈 높이로 내려온 멱살을 잡고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퍼부었다. 저속하고 폭력적이게 대응함으로써 같은 사람이 된 것 아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속은 시원했다. 그 애의 행동은 무엇보다 망하지 않았고 포기할 이유도 없는 내 인생에 대한 큰 무례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 애가 병이 아니라 다른 것(예를 들어 시험을 망친 일)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더라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애가 내 병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고 말한 순간 이 말을 용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들을 때도 내가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건가? 그 정도로 심각하고 불행한 상황인가? 그렇게 느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해지는데, 멋대로(p. 88) 내 운명을,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판단해버리다니. 남의 인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무리 긍정적 방향이라도 조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모르고 말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가볍게 입에 올리는 태도는 나에겐 투쟁의 대상이다. 누구든 내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자신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소리를 했는지 알려줄 생각이다(p. 89).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특별히 여행 갔거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 있었을 때 찍힌 사진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연유로 그렇게 즐거웠는지 기억에 남았을 거다. 일상에서도 그렇게 웃긴 표정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의 사진을 보면서 또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닐까. 나는 병과 함께 살고 있다. '병에 걸렸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이 있음을 알아두고 싶은 것이다(p. 136). 민들레 씨앗 부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와 함께 민들레 씨앗 중에서도 줄기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온전한 형태가 남아 있(p. 223)는 것은 '완들레', 반만 있는 것은 '반들레', 바람에 모두 날아가 하얀 줄기만 남은 것은 '간(가버린)들레'라고 불렀다. 짙은 초록색의 잔디밭 사이사이에, 아스팔트 틈새에 싹튼 민들레는 질기게도 자란다. 노란 꽃을 점점이 피워내다가 씨앗을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번식을 위해 제 일부분을 강하게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뿌리에서 나온 두 씨앗이 만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다. 막연하게도 서로를 알아볼 거라는 생각부터 든다. 처음과 끝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두 씨앗이 만나서,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기쁘게 나눌 것 같다. 어디서 왜 출발했는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화에는 이미 유대감이 싹터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병에 그렇게 큰 자리를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이 이미 병이 있기 전과 후로 명료히 나뉘는 것 같다. 병을 앓는 일이 나에게 거대한 성장 기회가 됐다고 해도 많은 것을 잃게 했고 처음부터 알아가야 한다는 절망을 때때로 느끼게 했다. 병에 걸린 뒤 새로운 나를 다시금 설명하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다른(p. 224)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 특히 그 사람들의 연약한 부분, 차마 내보이지 못했던 아픔에 대해 병을 않기 전보다 후에 훨씬 쉬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진심으로 고민하게 됐다. 그러나 아픔의 처음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서 일상의 틈새 민들레처럼 산뜻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노란빛 전율이었다(p. 225). 4학년 때는 매일매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라는 타이틀이 탐났다. 무엇보다 칭찬을 듣고 싶었다.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 입맛에 맞는 문장으로 다시 써보고,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보고, 인물을 상상해봤다. 그러니 일기를 쓰는 것도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건 지속적으로 쓰는 거라 는 사실을 몰랐다. 박지원이 재물을 샘에 비유한 것처럼, 글도 비슷한 것 같다. 많이 쓰면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솟는다. 쓰지 않으면 고여버린다. 내 글은 그때가 가장 맑고 신선했던 것 같다. 맑은 물을 마시듯 글을 썼었다. 중학교 동안은 읽기와 쓰기를 거의 손에서 놓았었다. 아무도 내게 일기를 매일 쓰라고 하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서 새로 생긴 휴대폰 속에도 텍스트는 있었다. 종이로 된 두꺼운 책보(p. 256)다 훨씬 쉽게 읽히기도 했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죄스러웠다. 수학 문제를 풀고, 노트 필기를 외우는 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읽어왔던 책들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수행평가로 자서전 쓰기가 있었다. 굴곡 없는 삶이라서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고작 한 달 뒤에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매일매일 뭘 쓸지 생각했다. 어렵고, 생각이 막힌 것 같아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흥분되었다. 재미있었다. 행복했다. 자기 전에 무슨 말로 글의 서두를 뗄지, 할아버지와 있었던 나의 첫 기억을 무슨 단어로 쓸지 고민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가장 정확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기억은 원석이었고, 나는 끌과 망치를 가지고 원석을 어르고 달래서 세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글을 완성해서 냈을 때, 국어 선생님이 나를 교탁 앞으로 부르셨다. "너처럼 글을 잘 쓰는 애를 오랜만에 본 것 같아. 앞으로 뭘 쓸지 기대된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매일매일 글을 썼다.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썼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문장은 글(p. 257)이 되고, 마치 그러기 위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글 쓰는 일은 환희다. 아주 고통스럽고 뜨거운 환희. 그리고 비로소 나는 한 번도 글을 쓰지 않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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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3
  • 총회 여성사역자위원회, 헌법개정 수의를 위한 서북권역설명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여성 사역자 위원회가 헌법개정 수의를 위한 서북권역 설명회를 3월 3일 오전 11시 대한교회(윤영민 목사 시무)에서 가졌다. 40여명이 참석했고 대한교회에서 음료와 중식을 제공했다. 1부 예배는 (서기) 피승민 목사의 인도로 (총무) 정판술 목사가 기도,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사사기 4:4-5를 본문으로 ‘여성 사사 드보라’란 제목으로 “사사 드보라는 여성이지만 하나님께 부름받아 귀하게 쓰임 받았다. 여성사역자에 대한 좋은 토론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후 (서북협대표회장) 정영기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세미나는 (총무) 정판술 목사의 사회로 제1강은 총신신대원 배춘섭 교수가 ‘여성 강도사 헌법개정 수의’란 제목으로 “성경은 여성의 사역에 대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고전 14장에서 ‘여성은 잠잠하라’는 것은 질서를 지키라는 것이다. 여성의 절대적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여성의 강도권은 성경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며 헌법을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여성 안수로 가는 중간 단계는 아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여성 강도권과 강도사 인허 허락을 하자는 것이다.”라고 강의했다. 제2강은 전 헌법개정위원장 이상학 목사가 ‘미래와 복음 확장을 위한 결단’이란 제목으로 “요엘서에서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했기에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교단에 남자 교역자 수급률이 낮은데 여성 사역자들은 타교단으로 가고 있다. 총회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결의했다. 개정은 특정 계층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의 효율을 위한 것이다.”라고 강의했다. 3부 질의 및 응답은 (헌법수의분과장) 조영기 목사의 사회로 헌법개정에 대한 절차 소개 및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 여성사역자위원회 위원장 : 조승호 목사 부위원장 : 김호겸 목사·김현범 장로 서기 : 피승민 목사 회계 : 김윤호 장로 총무 : 정판술 목사 헌법수의 분과장 : 조영기 목사 처우개선분과장 : 강문구 목사 사역개발분과장 : 윤태호 장로 위원 : 문병관 목사·유흥선 목사·이기영 장로·변충진 목사·한상원 장로·홍순덕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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