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19(월)
 
  • 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서랍의날씨 ·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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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이 작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명 작가이다. 이제라도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수많은 직업 중 소설가는 창작의 수고와 고통이 있을 것 같다. 이 한 사람의 고통의 결과물을 우리는 책으로 누리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책을 읽는 독자로서 모든 작가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비록 우리가 전업 소설가는 아닐지라도 메일이든 문자든 카톡이든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써야한다. 글이란 무엇인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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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른셋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편집자 시절 소설 독자들을 사로잡겠다던 목표는 이후 세 편의 부진을 거친 뒤 2021년, 다섯 번째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이루게 되었다. 1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비전을 가지고 전업에 뛰어들었고, 무명의 시간을 견뎌 소설가가 되었고, 마침내 독자들의 사랑을(p. 16) 얻었다.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로 담금질되었고 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하고,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지속되어야 하며, 납득할 만한 결말을 제공해야 한다. 대중 상업 소설을 지향하기에 문학성보다는 가독성을 추구한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 가상 세계에 독자들을 한껏 빠져들게 한 뒤,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며 자신만의 질문을 품게 하려 애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탐구하고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믿기에, 내 소설이 독자들의 삶을 살피는 계기가 되고 ‘인생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희망 하면서, 쓴다(p. 17).

 

소설 쓰기는 한 번 배우면 절대 까먹지 않는 자전거 타기와는 달랐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소설이었고 그래서 새 작품을 쓸 때마다 거기에 맞는 나만의 작법을 개발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바, 결국 작법은 스스로 만든 기술이고 그 기술을 만드는 능력은 일상의 반복된 작업 패턴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른바 ‘루틴’ 그 루틴을 발휘할 수 있는 고정 공간 ‘작업실’. 그 작업실에서 쓸 글감을 떠올리는 '산책' 그리고 집필 활동의 근육이 되는 '독서' 이 네 가지 요소가 소설 쓰기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계속 나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소설 쓰기도 결국 글쓰기였고, 나는 글쓰기 작업에 대한 탐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작가. 작가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쓰며 배우고 써서 완성한다. 그리고 그 시간, 삶을 버티며 인생을 추스르며 보낸 나의 시간이 세상에 대해 쓸거리를 만들어 줬다. 이른바 글감. 시간이 만들어준 글감을 정리하는 건 글쓰기의 몫이었고 나는 그 몫을 꾸준히 수행한 자에 불과했다. 이 책은 글을 쓴다는 것, 소설을 쓴다는 것, 당신의 삶을 작품에 반영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p. 20).

 

독서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아니 작가가 아닌 누구라도 글쓰기와 독서와의 상관관계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작가 지망생이 독서에 게으른 경우를 본다. 그럴 때 나는 이 렇게 말한다. "가수가 되고 싶은데 노래를 안 들으시는군요." 독서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글쓰기의 핵심 요소다. 독서는 그냥 작가가 밥 먹는 거라고 보면 된다. 또한 독서는 글 쓰기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배움을 지속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독서 만능주의자 같은 발언을 하는 이유는, 독서 붐이 일어나 내 책이 더 팔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독서인구가 늘어 도서관이 많아지길 바라서도 아니다. 독서가 글쓰기의 기본이고 뼈대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책 읽기 없이 글을 쓴다는 건 뭐랄까, 근육이 안 만들어진 씨름선수라고 할까? 상대를 넘길 기술도 근육에서 올라오는 근력 없이는 불가능하듯, 독서 없이는 글 쓰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p. 43). "그런데 나는 소설 말고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쓸 겁니다. 이런 경우엔 독서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낫지 않나요?"라는 질문도 받곤 한다. 답하자면, 당연히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봐야 한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 역시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 (장면)를 상상하게 만드는 텍스트(글)를 쓰는 게 대본 작업의 본질이다. 그런데 그 행위가 바로 독서가 아닌가? 글을 읽으며 장면을 상상하는 게 소설 읽기의 과정이다. 애초에 대본을 그림 콘티로 그린다거나 혹은 머릿속 상상을 특수 장치로 출력해 구현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글을 써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는 텍스트를 쓰는 사람이다. 텍스트 해석력, 텍스트 표현력. 이 모든 것이 독서에서 시작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수많은 효용 중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디테일을 정리해보았다.

 

독서는 겸손과 투지의 원동력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겸손해진다. 마치 성전에 들어선 것 처럼. 목차만 훑어봐도 경외감이 드는 책들을 마주한다. 고전. 걸작. 숨은 역작. 좋아하는 작가의 책. 어딘가 부족하지만 매력 있는 책. 한 사람이 자신의 전 생애를 짜내 기록한 이야기. 나는 그것들을 살피며 글쓰기의 겸양을 배운다. 한편으로 투지를 채운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 뒤지지 않는 책을 내기 위해 투지로 써야 하겠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이곳에 진열되는 것만으로 망신일 테니. 독하게 써 부끄럽지 않아야겠(p. 44)다는 다짐이 마구 솟아오른다.

 

독서는 자신감의 원천

한편으로 독서를 많이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아니 이런 책도 출간이 됐단 말이야?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네’라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도서관 혹은 서점에 가보시라. 한 시간 정도 이 책 저 책 들춰보다보면 자신감이 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취재

인터넷 시대에 데뷔한 나는 일정 부분 검색을 통해 취재를 한다. 검색은 편하고, 실용적이며, 절대 쉽게 알 수 없는 사실도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알려주니까. 하지만 때론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며, 어떤 내용을 취사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정보가 무분별하게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보를 깊이 파고들어 가고자 할 때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것들은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런 말을 했다.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 인터넷에는 과다한 정보와 부적절한 정보 가 널려 있기에 취사선택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결국 인터넷을 통한 취재는 ‘사려 깊은 검색’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려 깊은 검색을 통해 얻은 고급 정보를 모아놓은 것이 바로 책이다. 그러므로 책을 통해 관련 취재를 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실용적이고 또 세밀하게 정보에 파고들 수 있는 길이다(p. 45). 가령 당신이 경찰과 의사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 인터넷 검색은 기초적인 조사를 도와줄 따름이다. 직접 만나 취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경찰과 의사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그런데 경찰이 쓴 책, 의사가 쓴 책을 읽으면 의미 있는 정보와 감상을 얻을 수 있다. 대화만으로는 알 수 없는, 글로 정리된 직업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정보가 내밀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쓰려는 글의 정보를 책에서 찾기 바란다.

 

독서는 문장 강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다양한 문장과 문체를 접하며 자신이 선호하는 문장과 문체를 배울 수 있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의 글쓰기에 자연스럽게 적 용할 수 있게 된다.

 

독서는 단어 수집

독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건 기본이고, 단어를 수집하는 건 보너스다. 소설을 완성하는 게 집을 짓는 것이라면 단어는 벽돌과 인테리어 소품과 같다. 자재가 많을수록 집은 단단하고 아 름답게 지어질 것이다(p. 46).

 

독서는 공감

독서는 책을 쓴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엿보고 따라가 보는 행위다. 자연스레 공감을 하고 그로 인해 공감능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그 공감능력이 당신 이야기의 주인공을 공감 가는 인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독서는 다른 인생을 사는 것

무엇보다 소설 읽기는 다른 인물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소설가가 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해준다. 지금 내 현실이 힘들고 내가 쓰는 이야기가 안 풀려도 이미 완성된 이야기 하나를 즐길 수도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소설을 읽는다. 다른 세계에 잠시 머무르며 현실을 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흐뭇한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겠다. 2013년 여름, 4호선 지하철 맞은편 좌석에서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는 독자를 목격한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하마터면 다가가 인사하고 이 책을 어떻게 고르셨냐고 물어볼 뻔 했다. 다행히 꾹 참고 그분의 독서를 훔쳐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책을 읽는 독자를 만나기 위해 나는 소설을 쓴 게 아닐까. 독서의 효용을 하나 더 추가하겠다. 독서는 작가를 기쁘게 한다(p. 47).

 

소설의 가격

솔직해지자. 여러분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소설을 팔기 위해 서다. 팔린다는 것은 많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는 것, 이것이 소설 쓰기의 핵심이다. 그런데 가격을 모르고 이야기를 쓴다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가격이란 책의 바코드 옆에 적힌 것만이 아니라 당신이 소설을 쓰는 데 들이는 비용이기도 하다. 당신은 소설을 쓰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처음엔 가늠이 안 되겠지만 어떻게라도 시간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혹은 감사하게도 우리는 소설 쓰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당신이 공인된 작가라면 출판사로부터 선인세 혹은 계약금을 받아 시간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시간을 사서 소설을 써야 한다. 이 시간을 사는 것에 대해 당신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핵심은, 손해를 보더라도 얼마의 가격이 들었는지 알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물론 독자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가격이다(p. 67). 

 

마지막으로 묘한 해프닝 하나를 이야기하겠다. 전업작가가 된(p. 122)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나는 그동안의 작업이 모두 허탕으로 돌아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생계를 위한 잡문을 쓰며 작가가 되겠다고 나선 걸 후회하던 참이었다. 우연히 옛 출판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 2차에서 한 사람을 마주했다. 그는 출판계에서도 한참 선배인 듯했는데 (자세히 기억 하지 못하는 건 그때가 초면이었고, 이후로도 그를 본 적이 없으며, 심지어 이름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에게 나를 ‘출판사 잘 다니다 때려치고 작가 되겠다고 고생하는 친구’라고 소개 했다. 그때 그는 나를 가만히 살피곤 한마디 했다. "당신은 잘될 겁니다. 반드시 좋은 작품을 쓸 거예요." 난감했다. 이 뜬금없는 덕담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초면인 당신이 나에 대해 무얼 안다고? 당신이 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대체 무슨 근거로 나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쉽게 하지? 신기가 있나? 덕담 남발자인가? 그렇다고 따져 물을 상황도 아니기에 그도 나도 주변도 그냥 흘려 넘겼다. 술자리 잡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글쓰기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이름 모를 그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잘 될겁니다. 반드시 좋은 작품을 쓸 거예요." 그때 그 말은 어느새 내게 창작의 심해에서 버틸 수 있는 산소통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래, 다 잘될 거야. 좋은 작품을 쓸 거야. 그 사람이 그랬잖아. 그 사람이 누군지 뭐가 중요해. 근거 따위 뭐가 중요해.'(p. 123) 그러므로 부적이든 주문이든 토템이든 당신의 글쓰기를 도움 어떤 것이라도 기억하라. 수집하라. 옆에 두고 계속 음미하기 바란다(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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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현직 인기 소설가의 자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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