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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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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선거7】'내로남불’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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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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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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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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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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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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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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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선거7】'내로남불’
-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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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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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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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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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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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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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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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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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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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2】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종종 방송에서 보고 듣고 따라하던 이 말의 유래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는 김지운 감독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강사장(김영철)이 선우(이병헌)에게 던지는 대사로, 이후 패러디를 통해 널리 퍼진 유행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강사장이 선우에게 내연녀를 ‘정리’하라고 지시한 뒤, 선우가 내연녀에게 관심을 보이자 모욕감을 느꼈다는 이유로 선우를 제거하려 하며 이 대사를 말하는 맥락으로 설명됩니다. 모욕감은 타인에게 무시, 비하, 경멸 등을 당했을 때 느끼는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이다. 총회를 볼 때 모욕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총회 임원들, 각 부서, 위원회 등 인사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월권과 불법을 행할 때다. 그 자리가 뭐라고 그 짓을 하는가? 총대들에게 선택되어 “위임된” “한시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알고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부끄러움도 없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다. 그리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총회에서 어떤 자리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런 작태를 볼 때마다 이 대사가 떠오른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특히 믿고 지지했건 후보가 당선 후 엉뚱한 짓을 할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 자괴감은 자신이 기대하는 이상과 마주한 현실 사이의 괴리, 혹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져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니 총회를 위해 일할 사람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뽑아야한다. 잘못하면 그들로 인해 모욕감과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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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2】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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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1】 유권자가 똑똑해야하듯 총대들도 현명해야
- 내일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이다. 투표를 위해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정도로 선거는 중요하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날이요, 후보들이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날이다. 작년과 달리 기력이 쇠하신 어머니가 투표소에 안가시겠다고 하셔서 모시고 가 사전 투표를 마쳤다. 어머니의 한 표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게 될 것이다. 3개월 지나면 111회 총회다. 여러 출마 예정자들이 바쁘게 선거운동하고 있다.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누가 과연 총회에 유익한 인물일지 살펴보고 있다. 때가 되면 후보들에 대해 쓸 것이다. 총대들의 바른 판단을 위해서이다. 총대에게는 귀중한 투표권이 있다. 총대라면 어떤 인물이 총회를 위해 뽑혀야 하는지 알아보는 수고를 해야한다. 어떤 후보가 총회를 유익하게 할지, 바르게 할지, 사고치지 않을지 알고 바르게 투표해야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총회를 위한 총대들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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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1】 유권자가 똑똑해야하듯 총대들도 현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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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1】 목회하면서 감사했던 것들
- 목회하면서 감사했던 것들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목회자로 오랫동안 쓰임 받은 것,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한국에서 목사 안수받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990년 10월에 미국에 도착했다. 당시, 목사로서 학생 비자 받아 미국 유학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국 시카고로 가서 공부하면서 목회했다. 당시, 젊은 나이의 목사로 미국 시카고로 가자마자 두 달 후에 이민 목회 길이 열려 시카고에서 17년간 목회했다. 미국 이민 목회하면서, 공부하면서 목회하는 동안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민 목회하면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 받은 것이 기적이요, 감사 제목이다. 2007년 12월 초에 한국 진주성남교회에 부임하여, 2026년 현재까지 19년째 목회하고 있다. 인맥도 없고, 잘 모르는 진주에 와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수십 년간 목회하면서 좋은 일도 많았으나, 고난도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도와주셔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지금부터 7년 전에 중병에 걸려 죽을 위기까지 갔으나,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치유해 주셔서 건강하게 목회한다는 것이 감사 제목이다. 여러 가지 고난 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책 35권을 저술하여 출판한 것이 성령의 역사요, 기적이요, 감사한 일이다. 이민 목회와 한국목회를 하는 동안에 나를 힘들게 한 자들도 있었으나, 목회에 큰 도움을 주고 격려해 준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하다. 교회를 섬기는 성도를 가운데 재정으로 헌신, 재능, 은사로 교회 잘 섬긴 수많은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사한다. 끝까지 교회 지키며, 목사를 격려하여 주며, 기도해 준 성도를 생각하며 감사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감사 제목이다. 목회한 기간이 짧지 않다.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여기까지 인내하며 목회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감사하고 있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목회는 인간의 지식이나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는 것이 확실하다. 순간순간 성령님의 도움으로 목회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목회자로 쓰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사뿐이다. 이제 남은 목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목회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 주셔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 은퇴 후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또 다른 사역을 하고 싶다. 나의 자녀 가운데 아들이 목사가 되어 미국 뉴욕 근교에서 영어 사용하는 한국인 2세와 다문화권 회중 중심의 2세 목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되어 감사하다. 아들은 미국 시카고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하고 있다. 나의 아내가 지금까지 목회의 협력자로 내조해주어 목회하니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사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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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1】 목회하면서 감사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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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0】 GMS 이사장으로 섬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 GMS 이사장으로 섬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1.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나의 목회와 삶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나는 미국 시카고에서 이민 목회 17년을 마치고, 2007년도에 진주성남교회에 부임하여 19년째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힘든 일도 있었으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내가 총회세계선교회 GMS 이사장이 되어 선교 사역에 쓰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 제목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호주 선교사, 알렌 선교사가 1924년에 개척하여 세운 교회이다. 2026년은 교회 설립 102주년이 된다.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지방 도시의 교회로서, 전 세계에 13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섬긴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온 교우들과 함께 세계선교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GMS 이사장으로 세웠다고 생각도 해본다. 총회세계선교회 GMS를 섬기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섬겼고, 큰 보람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현재 우리 교단 총회세계선교회 GMS는 약 100여 개국에 2,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섬기고 있다. GMS는 본 교단의 자랑이요, 감사 제목이 된다. 2. GMS 이사장으로 섬기면서 강조한 것들 ① 선교의 기초는 기도이다. 기도의 중요성을 GMS 세계 파송 선교사들에게 강조했다. ②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의 중요성을 외쳤다. 관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소하다. 선교는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GMS 본부 직원들에게도 관계의 중요성과 화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들 모임에 가면, 관계 세미나와 리더와 관계에 대해 강의했다. ③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교사는 리더이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결정된다.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나누었다. 리더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 담대해야 한다.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이다. 3. GMS 이사장으로서 외치고 다닌 선교 캠페인 ① 선교는 쉽다. ② 선교하는 자는 복 받는다. ③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한다. ④ 선교하는 자는 행복하다. GMS 이사장으로 섬긴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선교를 두려워하지 말고, 선교에 도전하여 선교하는 동역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선교의 중요성을 아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남은 생애, 선교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최고의 일은 선교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라지나, 선교하는 일은 가장 가치가 있고, 영원한 것이다. 세계선교를 꿈꾸고 기도해야 하며, 교회마다 선교의 씨를 뿌려야 한다. 선교는 예수님의 최고 지상명령이다.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선교하다가 주님 앞에 서고 싶다.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해 나누는 것은 문서 선교이다. 말하고 나면 사라지나, 글을 쓰면 남는다. GMS 선교사들을 섬기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해서 판매하지 않고 나누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가지고 글을 썼다. 글 쓰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선교가 있으나, 선교에 관심 가지고 헌신해야 한다. GMS 파송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 그리고 힘든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선교하는 모습 보고 감동을 받았다.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헌신하는 건강한 교회들의 모습을 보고 감사하고 있다. 나의 남은 생애 선교하고 선교적 삶을 살고 싶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린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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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0】 GMS 이사장으로 섬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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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왜 억울한 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막는가?
-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한다. 이때 기댈 수 있는 것이 재판이다. 제3자가 객관적이며 법리적으로 당사자들의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재판이다. 한 목사가 면직 당했다. 목사로서의 소명, 사역이 모두 절단났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 상회에 자기의 억울함을 살펴봐달라고 재판을 요구했다. 그런데 상대 측은 재판을 받지 못하도록 총력전을 펼쳐 결국 재판을 받지 못하게 됐다. 그러면 면직당한 목사는 어디에다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가?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당신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판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다면 상대방이 재판 받도록 내버려 두라. 왜 결사각오로 재판을 막는가? 자신이 없는가? 구린 구석이 있는가? 때가 되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事必歸正을 믿는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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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왜 억울한 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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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9】 인사의 중요성
- 인사의 중요성(고린도전서 1:1-3) 인간관계에서 인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사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가 많습니다. 인사는 친절이요, 삶의 예의요, 매너입니다. 고린도전서 1:1-3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편지 쓸 때마다 제일 먼저 인사했습니다. 인사 잘하는 자는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칭찬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인사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자입니다. 인사는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인사하는 것은 아부가 아니고, 삶의 지혜입니다. 서로 안부 묻는 것도 인사입니다. 전화나 이메일로 인사할 수 있습니다. 인사 잘하는 자는 친화력이 넘치고, 승진하고, 성공하게 됩니다. 인사하지 못하고 무뚝뚝한 것은 어리석음이요, 무례한 태도입니다. 자녀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인사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카톡에 문자로 인사할 수도 있습니다. 인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수줍어서 인사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줍음을 이겨 내야 합니다. 인사하는 데도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이 두려워 피하고, 인사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사해야 합니다. 대접하고, 선물 주고, 섬기면서 인사해야 합니다. 선물 주는 것도 인사입니다. 웃으면서 인사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안부 물으며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하는 것은 관심이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사하면 첫인상을 좋게 만들고, 호감을 줍니다. 인사하면 분위기가 밝아지고, 신뢰 얻고,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인사하는 자는 긍정적인 자이고, 대화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인사하지 못하면 분위기가 나빠집니다. 인간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인사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의 표현입니다.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감정이 기뻐집니다. 인사는 모든 소통의 출발이고, 친구를 만드는 지혜입니다. 인사하는 것은 인격이고,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갑니다. 덕담을 나누면서 인사해야 하고, 눈을 마주 보면서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는 예절이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인사는 리더십이요, 관계입니다. 인사는 환영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만나면 평안을 빌어주라는 의미는 인사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신 것 입니다. 사업하는 자나 리더, 정치인들이 인사를 잘할 때, 성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사하는 자는 남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태도입니다. 인사 잘하는 것은 인터뷰 점수에 영향을 끼칩니다. 무뚝뚝하고, 친절이 없고, 인사성이 없는 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리더는 가르치는 자인데, 인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리더 자신이 인사하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인사 잘해서 복 받은 예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청년이 외롭게 앉아 있는 노인에게 인사 잘해서 사랑받고, 노인의 재산을 많이 받아 대학을 세운 예도 있습니다. 대가 바라지 않고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하는 것은 친절과 사랑, 섬김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먼저 인사해 주기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좋은 태도입니다. 사랑받고, 인정받는 비결은 인사하는 것입니다. 인사하는 것은 정이 있고, 다정다감한 것입니다. 인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하지 못하는 자는 관계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인사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사하는 것의 효과가 큽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 캠페인을 벌여야 합니다. 인사하는 자는 표를 얻게 되고, 인기가 있게 됩니다. 인사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진심으로 인사해야 하며, 악수하는 것도 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해야 합니다. 사람 만나기 전, 거울 앞에서 인사 연습해야 합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는 것도 좋은 태도입니다. 매일 반갑게 인사해야 하며, 인사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게 됩니다. 인사 잘하고, 친절한 식당, 호텔에 가고 싶어집니다. 상대방이 나를 모른다 해도 인사하면 손해가 없습니다. 인사는 인간관계의 첫걸음입니다. 인사는 힘이 있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인사는 대화의 시작이고, 유대감을 형성하고, 친밀감이 형성됩니다. 밝은 모습으로 평안히 인사해야 합니다. 윗사람에게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는 인생의 기본입니다. 인사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가족 간의 인사는 예절의 기초입니다. 인사는 따뜻한 정입니다. 인사는 환영해주는 것입니다. 인사하는 자는 인정받고, 좋은 리더십을 가진 자입니다. 때와 상황에 맞게 인사해야 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인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호칭을 부르면서 인사해야 합니다. 인사는 정성된 마음의 표현입니다. 인사는 닫힌 마음의 문도 열게 합니다. 인사하는 자는 삶 속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사를 잘하고 계십니까? 인사 잘하는 자가 적은 시대입니다. 적당히, 마지못해 인사하는 것은 인사의 문제점입니다. 인사하는 것은 투자입니다. 인사하면 점수를 잘 받게 됩니다. 인사하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사 못해 불이익당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피하거나 인사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인사받을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사 안 한다고 선배들에게 지적받기도 합니다. 인사하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기분을 가지게 됩니다. 인사를 잘하는 자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부탁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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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9】 인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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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8】 선교사의 귀국
- 선교사의 귀국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귀국을 한다. 귀국하는 이유는 자발적 또는 비자 발적 귀국으로 분류한다. 자발적 귀국은 선교사가 자발적으로 귀국하는 경우이다. 비자발적 귀국은 선교사가 현지에서 계속적인 사역을 원하지만 선교사가 추방을 당하 거나 여러 가지 출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귀국하는 경우이다. 선교사는 선교지에 뼈를 묻으려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선교지에 파송받거나 후원하는 분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후원을 한다. 그러나 점차 이러한 선교의 패턴에 서 많은 변화가 있다. 선교사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귀국하는 경우 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선교지에 가서 한 텀을 사역하고 안식년을 맞아 고국에서 지내게 되면서 자발적인 귀국의 상황이 되었다. 91년부터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 선교를 하고 선교 지에 파송된 경우여서 한국에서 만났던 외국인노동자들로 말미암아 빠른 시간에 교회 가 세워지고 지도자가 세워지고 건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깨 닫게 하셨다. '이제 내가 더 이상 현지에 남아서 선교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것이었 다. 그리고 안식년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에 한국에 40,000여명의 몽골인들이 거주하 고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몽골 문화와 언어를 아는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하셨다. 이때에 한국에서 몽골인 사역을 하고 있던 평신도들이 몽골선교단체 를 함께 만들자고 하는 제안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을 붙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였다. 한 텀을 하고 귀국하는 나를 향해서 선교지가 어렵고 자녀교육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귀국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교에 실패한 선교 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도하고 후원하던 분들이 기도와 후원을 중단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국내 이주민사역을 시작하게 되니 말 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닥쳐왔다. 선교의 환경이 많이 변화되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귀국하는 선교사들이 점차 증가 하고 있다. 귀국선교사들이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이해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시니 라. (잠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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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8】 선교사의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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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5】 한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의 통찰력
-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은 박웅현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 소장의 저서 『문장과 순간』 출간 후 진행된 7번의 북토크 내용을 엮은 책이다. 대부분의 북토크가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가운데, 10대에서부터 50대에 이르는 독자들은 박웅현 소장에게 신간에 관한 질문을 비롯해 현재 안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책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사춘기 아이와 소통하기가 힘들어요.” “MZ 세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번아웃이 온 것 같습니다.” “싫은 관계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회사에서 제 의견을 펴기가 어렵습니다.” “중년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와 같은 이야기에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며 진심을 담아 답해주었다. 박웅현 소장의 이야기는 때로 『문장과 순간』 『여덟 단어』와 같은 자신의 저서들과 닿아 있기도 했고 지난 경험이 녹아 있기도 했다. 그것은 저자의 이야기이면서도 독자들을 향한 하나의 제안이자 조언, 위로였으며 격려와 응원이었다. 이 모든 북토크를 주관하거나 함께한 인티N은 ‘북토크’ 현장의 이야기를 정리해 엮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인티N 북톡’ 시리즈를 기획했고 박웅현과 독자들이 나눈 이야기를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으로 엮어냈다.-교고문고. 짬짬이 박웅현 씨가 쓴 책을 찾아 읽고 있다. 한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을 통해 그의 통찰력과 안목을 배우고 싶다. 흥미롭게 읽었다. 지금, 여기 "『문장과 순간』 앞쪽에 쓰인 '몸으로 읽는다', '의식을 누르고 느낌을 올린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던 기간에 저도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랬듯이 저 역시 격리에 들어갔고 그 기간 동안 온종일 서재에 있었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클래식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오프닝 멘트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세계의 모든 책에서 말(p. 19)하는 좋은 이야기를 가장 짧게 줄인다면 이 두 단어라고 하더라고요.'지금. 여기." 순간 무릎을 쳤습니다. 격하게 동의하게 된 것이죠. 그렇지, 지금 여기를 사는 게 제일 잘 사는 방법이었지. 그동안 읽은 책들이 떠올랐어요. 대부분의 책 속에 담겨 있던 지혜가 바로 '지금. 여기' 그 네 글자였습니다. 제가 『여덟 단어』를 쓴 이후 『미움받을 용기』 『노자 인문학』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를 읽고 소위 '현타'라는 걸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 세 권의 책에서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현재에 집중하라'라는 거였어요. 『여덟 단어』에서 저도 했던 이야기였고요. 그때 '내가 뭐 하는 거지' 싶더라고요. 프란츠 카프카가 "책은 도끼다.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냐"라고 했었죠? 거기에서 나아가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데서 그치지 말고 옳은 말을 들었으면 옳은 말대로 살아야 합니다. '카르페 디엠, 아모르파티, 메멘토 모리', 모두 제가 자주 하는 이야(p. 20)기인데 '내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 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5시 40분, 원하는 시간에 정확히 울려준 나의 알람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준 나의 몸은 나의 보물입니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2009년에 출간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서문에 있는 내용이죠. 2009년에 이런 문장을 써놨으면서 그 문장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있지 않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새벽 수영을 하고 있는데 새벽 알람 소리가 전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죠. 수영장에 가서도 '왜 한 바퀴를 더 돌라고 하지?' 하며 한숨을 쉬었고요. 그러니까 매 순간이 축복이라고 알고 있으나 정말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했던 겁니다. 그 사실을 라디오 DJ의 말에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봤더니 의식이 너무 올라와 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새소리를 들으면서, 창밖의 소나무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고, 새소리를 듣고 있지 않아요. 소나무를 보고 있지 않아요. 머릿속은 어제 일을 되짚(p. 21)고 있고 일주일 뒤의 미팅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구방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다는 뜻인데 이게 수양의 첫 번째입니다. 집 나간 마음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거예요. "도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했던 선승의 답과 같습니다. 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마음을 다른 곳에 두지 말고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앞뜰의 잣나무를 보라는 뜻이었죠. 이걸 하지 못하는 건 의식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8월 10일 정오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강남대로를 지날 때였는데 문득 깨달음처럼 '의식을 누르고 느낌을 올린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내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 일, 그 순간에 주목하고 집중하려면 '느낌'을 올리고 '의식'을 내려야만 해요. 예를 들어 지금 산책을 한다고 칩시다. 지금 눈 앞의 풍경에 집중하고 싶다면 올곧게 선 겨울 나뭇가지, 구름 낀 파란 하늘, 새들의 날갯짓, 묵직한 바람 소리를 느끼면 됩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어제 회사에서 잘못한 일, 내일 정리해야 할 것들, 풀지 못한 관(p. 22)계, 이런저런 약속 같은 것들을 의식하면 눈앞의 것들이 다 떠나버려요. 그러니까 느낌을 올린다는 건, 나를 감싸는 바람, 지나가는 새소리, 향기, 모든 것을 감각하는 겁니다. 몸속으로 집어넣는 거예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요. 그처럼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려면 의식이 아니라 느낌을 올려야 하는 겁니다. 제 인생에도 어떤 한순간에 온전히 머물렀던, 감각만이 살아 있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몇 번은 있습니다. 책을 통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생각하 게 된 마흔 즈음 이후 다섯 번 정도였어요. 이제는 그런 순간을 더 늘리고 싶고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장과 순간』에 쓴 '몸으로 읽는다'라는 말은 제가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 깨달은 바를 몸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자,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습니다. '의식을 누르고 느낌을 올린다'라는 문장은 그 첫 번째 방법이 될 겁니다. 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입니다(p. 23). 책이 열리는 즐거움 "'책이 열린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 「세비야」 글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이른 아침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 밖에 앉아서 아침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어요. 하얀 비둘기 떼가 날아와 그의 머리 위에서 흩어졌는데 그 순간 카잔차키스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올랐다고 해요. 그런데 그 스피 노자의 말을 북부의 우울한 도시에서 읽었을 때는 감동스럽지 않았는데 세비야에서는 다르게 느낀 거예요. 그 글의 활자가 별안간 종이에서 떨어져 나와서,(p. 48)방금 전 머리 위로 흩어진 비둘기처럼 날아오르면서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해요. 참 좋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밑줄을 쳤어요. 카잔차키스가 한 말의 의미를 알거든요. 저는 이 느낌을 "누워 있는 글자가 벌떡 일어난다"라고 표현합니다. 책이 열리면 그 책 페이지에 가만히 놓인 글자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책들은 그전에 네다섯 번을 읽었지만 그때는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이해하고 넘겼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글자들이 벌떡 일어났어요. 50대가 되어서야 문장 속 단어의 뜻이 확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제임스 조이스가 글 속에 숨겨 놓은 장치들을 찾아낼 수 있었죠. 그 안에서 카프카를, 카뮈를 발견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제임스 조이스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내 책에 수많은 장치를 숨겨놨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내 책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숨겨 놓은 수많은 장치들이 보일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장 폴 사르트르가 알 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그(카뮈)의 문장들은(p. 49)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처음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카뮈의 소설들을 읽어보니 어느 순간 책이 열리면서 사르트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알겠더라고요. 접속사 없이 자작나무처럼 각자 서 있는 문장들이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될 때, 알게 될 때 '책이 열린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책 속의 문장은 어느 순간에 열립니다. 그런 문장들이 쭉 연결되면 책 전체가 열리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어떤 책에 열어야 할 것이 70개인데 다섯 개만 열린 것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책을 읽는 나는 책에 숨겨진 장치를 몇 개나 열어야 하는지 모르죠. 한 번에 다 열리지도 않습니다. 나보다 눈 밝은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더 많이 열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열리지 않는 걸 열릴 때까지 읽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 읽은 책 목록'을 늘리는 걸 목표로 삼기도 하는데요. 저는 다 읽은 것,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그 책과 깊이 만나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여러 권의(p. 50) 책을 읽는 것보다 책 한 권이 열리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어요(p. 51). 인생의 질문에 답할 때는 온몸으로 치열하게 "취업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후에 더 큰 불안과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도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나요?" 『책은 도끼다』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흔이 됐을 때 마흔은 저에게 불혹이 아니라 만혹이었다고요. 마흔도 만혹이었는데 30대 때는 어땠겠어요. 이미 뭔가 이룬 사람의 푸념으로 들릴까 조심스럽습니다만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말씀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매일 저녁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내와 딸이 있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서울 끝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p. 63)같았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 모르겠더군요. 내가 이대로 월급 받아서 가정을 잘 꾸려갈 수 있을까, 계속 회사에 다닐 수는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죠. 예전에도 종종 말씀드렸었지만 30대 초반의 박웅현은 회사에서 주목받는 카피라이터가 아니었으니까요. 서른 한두 살 무렵에 저는 늘 쭈뼛거렸고 자신 없었습니다. 회의에 들어가면 제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주목받지 못했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를 매일 고민했어요. 그러다 한번은 어떻게 해야 회의 때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회의에서 오가는 말들을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한 내용, 아이디어, 키워드 같은 걸 쭉 정리했죠. 그렇게 써 놓은 걸 회의가 끝난 뒤에 살펴보면 정리도 되고 공부도 됐어요. 그러다 나만 보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지난 회의 때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프린트한 다음, 다음 회의 때 테이블 위에 쭉 올려 놓았습니다. 일종의 회의록이었죠.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속기사가 아니니까 저에게 울림을 준 말들 위주로 적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저(p. 64)에게 회의록에 대한 편집권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그 회의록을 토대로 다음 회의가 진행됐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했어요. 어느 날, 한 상사가 제가 나눠준 회의록을 보고 이거 누가 쓴 거냐고 묻더군요. 문맥을 파악할 줄 안다면서 기회를 주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얻은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카피를 쓰고 광고를 만들게 된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살아남기 위해서 남의 답을 제 답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고 있으면 주변 선배들이 와서 물어요. 그 스물한 권 짜리 대하소설을 읽는다고 광고 기획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 하고요. 요즘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봐라, 잡지를 봐라, 유행어에 관심을 가져라 등의 충고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그 말에 동의 되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기에 제 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거죠. 당장 카피를 쓰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지 몰라도 저에게는 제가 읽는 책이 보약 같았습니다. 당시에 김주영의 『객주』, 도올 김용옥의 책들, 동양사상에 관련된 책들, 고전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당연히(p. 65) 주변 시선이 고울 수 없었죠. 패션 브랜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노장 철학을 왜 읽고 있냐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불안하긴 합니다. 그런데 불안하다고 트렌드를 잘 좇아가고 찾아내는 동료나 후배처럼 할 수 없었어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보다 분명히 못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감각으로 날아다니는데 제가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본질을 잡자, 그게 내 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겁니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간에 제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습니다. 자막만으로도 광고가 됐고, 가치가 녹아 있는 광고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인생에는 안팎으로 나를 찾아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밖에서 툭 치고 오는 질문일 수도 있고 내 안에서 솟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습니다. 회의록도, 제가 읽은 책도 제 안에서 찾은 저의 답이었습니다. 세상은 이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그 말에 동의가 되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잘 판단해야 합(p. 66)니다. 분명한 것은 나를 찾아오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대답해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 20대 시절에 읽었던 『말테의 수기』를 우연히 꺼내 보게 됐는데요. 맨 앞 빈 페이지에 '84. 12. 15. 밤 9시 춘천 청구서적에서'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리고 그 아래에 이런 메모를 해두었더라고요. "글쎄, 그렇다니까. 중요한 건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주관적 가치라니까." 그러고 보면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저를 찾아오는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해왔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마무리는 헝가리의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열정』(솔출판사, 2001)의 이 문장이 좋겠습니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p. 67). 가지 않은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박웅현의 회피하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 포기가 빠른 건데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연연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 때 이게 아니라 저걸 선택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대신 선택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닿지 않으면 놔버립니다. 탁 털어버리죠.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군더더기를 비워냅니다. 좌절, 미련, 분노, 후회 이런 것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해요. 지나간 것들이 뒤엉켜 있으면 새로운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으니까요. 마음에 빈 공간(p. 68)이 생기면 맞닥뜨린 질문에 온몸으로 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일종의 범퍼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에서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범퍼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삶에도 범퍼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차가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범퍼가 있다면 끝까지 닿지 않고 그만큼의 여유가 생깁니다. 치명적이지는 않아요. 삶도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범퍼가 없다면 사고 났을 때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언가를 기필코 이루겠다는 마음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경제적, 심리적, 시간적 범퍼를 마련하는데 좀 더 주안점을 뒀던 것 같습니다. 심리적 범퍼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이런 겁니다. 저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이 열 가지라면 열다섯 개를 준비합니다. 열 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50억이 날아가는데 딱 열 개만 준비 했다는 건 범퍼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실수가 실수로 그치지 않아요. 그래서 열다섯 개를 준비하고 생각하죠. '그중 일곱 가지만 얘기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p. 69)어.' 말할 내용을 열다섯 가지 정도 준비하지만 핵심적으로 일곱 개만 이야기해도 충분한 기획안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돈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여행 갔을 때 부담 없이 팁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을 갖는 게 꿈이었습니다. 더 많이 바란 것도 아니고 딱 그 정도였으면 좋겠다고요. 이게 저의 경제적 범퍼인 거죠. 경제적 범퍼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겁니다. 중요한 건 자기 목표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게 중요해요. 아예 범퍼를 확보하지 않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봅니다. 예를 들어 소위 '영끌'이라는 건 영혼까지 끌 어온다는 것인데 이건 범퍼를 계산하지 않은 겁니다. 저는 제 경제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던 때도 영혼을 끌어오지 않았어요.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완충 가능한 영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요. 또 하나의 범퍼는 시간입니다. 저는 10시 약속이면 적어도 10, 20분 전에 약속 장소에 가 있습니다. 이건 삶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해요. 대부분의 경우 그렇습니다. 제 경험 하나를 말씀드려볼게요(p. 70). 제가 뉴욕에서 유학할 때 아내와 딸과 함께 영국으로 여행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왕 영국까지 갔으니 '유로스타(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파리에 다녀오기로 했죠. 여행 끝 무렵에 파리에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미국에 돌아가는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짧은 일정이지만 당시 파리에 살고 있던 지인 가족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죠. 그때 "유로 스타가 리옹 역에 서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후에 역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야 하는 당일, 늘 그렇듯 열차 출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을 염두에 두고 리옹 역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역에 도착한 뒤에 열차를 타려고 보니 플랫폼 정보가 맞지 않아요. 이상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봤어요. 그 사람은 제 손에 들린 열차 티켓을 들여다보더니 이 열차는 리옹 역이 아니라 파리 북역에 서는 열차라는 겁니다. 큰일 난 거예요. 그 열차를 놓치면 미국행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어요. 숙박 문제도 발생하고요. 시계를 보니 시간(p. 71)이 얼마 안 남았더군요. 그래도 서둘러 가면 간당간당하게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딸아이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달려서 택시를 잡아 타고는 택시 기사에게 다급하게 소리를 쳤습니다. 몇 분 뒤 파리 북역에서 열차가 출발하니 빨리 가 달라고요. 가까스로 파리 북역에 도착해 플랫폼에 뛰어들어가니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이에요. 마음이 더 급해졌죠. 정신 없는 모양새로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서 진정하라고,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때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던 아내가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의 그 일찍 출발하는 습관이 없었으면 기차를 놓쳤을 거라고요. 저는 지금도 공항이든 기차역이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합니다. '시간이 좀 남더라도 미리 가서 커피 한잔하면서 기다리자' 하는 쪽입니다. 그래야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이게 제가 가지는 시간적 범퍼입니다. 심리적, 경제적, 시간적 범퍼는 인생에 숨 쉴 틈(p. 72)을 만들어줍니다. 돌아보면 이런 범퍼가 제 마음에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것이 제게 주어진 문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p. 73). 번아웃을 대하는 태도 "30대 직장인입니다. 번아웃이 온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국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일할 때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한 손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을 들고 있다면 다른 한 손에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해보되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 것이니 놓아야 합니다. 영혼(p. 74)을,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때로는 '번아웃'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않을 필요도 있습니다. 이 역시 조심스러운 말입니다만 저는 '번아웃'이라는 말을 머릿속에 심어 두면 그 말에 걸려 주저앉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예로 말씀드려볼게요. 얼마 전, 이제는 서른 넘은 딸 아이가 묻더라고요. 아빠는 제 나이 때 번아웃을 겪지 않았냐고요. 그때 제가 곰곰이 지난 날을 되짚어 보고 한 답이 “그때 난 번아웃이 될 여유가 없었어"였습니다. (웃음) 사실입니다. 30대의 저는 번아웃이 오면 안 됐어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아이도 너무 어렸죠. 어쩌면 번아웃이 왔는데 그렇게 그냥 지나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시사IN〉 장일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인용한 한 문장이 아주 깊게 남았어요. "답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답은 사라진다." 돌아보면 같은 맥락으로 그 당시 '지금 나는 번아웃'이라고 말하면 정말 번아웃이 올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하면, 저(p. 75)는 번아웃으로 출근할 수 없고 카피를 쓸 수도 없게 될 텐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가장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 잠시 멈춰 선다고 해서 모든 문 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멈춰 서서 그 상태를 어떻게 넘겼다고 해도 그 다음에 더 큰 파도가 닥쳐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러니 힘들고 지칠 때 제 상태를 어떤 말로 규정짓지 않고, 그때그때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슬럼프도 내가 인정하는 순간에 슬럼프가 됩니다.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튼이 이런 말을 합니다. 경기 불황에 대한 경영 전략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경기 불황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라고요. 자기 상태를 어떤 단어나 용어로 고정시키면 거기 매이게 된다는 의미로 한 말 같은데 동의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힘들어질 수 있어요. 심리적인 게 확실히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슬럼프를 겪은 사람들 중에는 슬럼프를 겪던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모르다가 다 지나고 나서 '아, 그때 내가 슬럼프였던 것 같아'라고 깨닫는 경 우가 있습니다. 그건 험난한 때에도 어떤 방식으로든(p. 76) 그 시기를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은 없지만, 때로는 '번아웃' '슬럼프'처럼 어떤 말을 자기 안에 깊이 심어두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 인생을 나에게 맞추면 거센 파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주파수를 내 안에 맞추는 작업을 먼저 하시면 좋겠습니다. • 저자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것이다"라는 이 문장이 박목월 시인의 시 「가교」의 '지나온 것은 지나온 것이요,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 것이다'에서 비롯된 생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속 인용문은 의사 양창모 작가의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한겨레출판, 2021)의 문장입니다(p. 77). 나를 먼저 챙길 것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요. 저와 잘 맞지 않는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사회생활에서 관계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학창 시절에 코로나를 겪은 세대는 소속이 더 불편한 세대가 될 겁니다. 사람이 모여 있을수록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죠. 갈수록 개인으로 파편화 될 것이고 관계에 대한 고민이 심해지겠죠. 나와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요. SNS나 가상 세계에서는 나와 안 맞는 사람들은 차단하면 되는데 현실에서는 힘든 일이니 관계는 더(p. 78)더욱 디지털 세상을 중심으로 옮겨갈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오프라인 관계가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가족, 학교, 회사, 어떤 조직 안에서 유효하겠죠. 이 관계는 불가피합니다. 그러니 만약 같은 팀에 있는 사람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든 나와 맞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그 사람과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게 낫습니다. 일 외에는 섞이지 않고 사적인 만남은 최대한 피하고요. 가능한 한 접점을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것이 낫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실제로 제 딸도 어떤 사람과 식사하고 나면 '기가 빨린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딸에게도 그런 인연은 오래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자리이타, 자신을 먼저 챙기세요. 번아웃을 겪고 있는 분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손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을 들고 있다면 다른 한 손에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닿지 않는 것은 닿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이 소진되면서까지 만(p. 79)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욕심을 내려놔야 해요.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우위에 두세요.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물리적으로 만났다고 해서 만난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진짜 만남'은 물리적인 시간에 비례하지 않아요. 같은 공간에서 20년 일한 팀장이라도 나와 세계관이 너무 다르면 그와 나는 만난 게 아닙니다. 20년을 같이 일했을 뿐입니다. 반대로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온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차 한잔을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럼 그 사람과는 만난 겁니다. 안 만나지는 사람을 상대로 자꾸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 나는 너무 불편한데 상대는 적극적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때는 나를 위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상대에게 나는 당신이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거나, 아니면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을 고쳐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 부담스러운 상대라면 차라리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는 쪽이 낫다고(p. 80)봅니다. 이 같은 관계에서도 기준은 '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두루두루 좋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겁니다. 분명 사회생활에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의견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의 세계관은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제 말이 틀릴 수 있습니다.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나와는 다른 생각'이라고 보시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다만 동의가 된다면 참고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p. 81). 울림판이 큰 사람 "광고 일을 하는 데 스펙이 중요한가요? 선생님은 어떤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뽑으시나요?" 종종 스펙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광고업은 진입장벽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치열하기도 합니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두세 번 냈다면 광고주가 더 이상 찾지 않습니다. 저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 낼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니 같이 일할 훌륭한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이때 제가 '훌륭하다'라고 보는 기준은 그 사람의 '울림판이 얼마나 큰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악을 들려줬을 때 "아, 이 곡 제목은 00 이고 작곡가는 A인데요. 영화(**)에 나왔던 곡이네(p. 82)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곡조가 너무 슬퍼서 "잠시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길을 지나가는데 다섯 사람은 다 무심히 지나갈 때 갑자기 멈춰 서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 장면 너무 멋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길가의 행상 노인을 보고 "저 할머니 주름 하나하나가 세월이네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확률적으로 자기 안의 울림판이 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울림판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마케팅도 광고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마케팅 이론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겁니다. 가령 "나를 얼마나 사랑해?"라는 물음과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이선희, <알고 싶어요> 가사)"라고 묻는 것은 다르죠. 어느 쪽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겠어요. 이 차이를 만들 수 있어야 해요. 사람들의 울림판을 건드리려면 그와 같은 울림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일하는(p. 83)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울림판을 가지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p.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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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5】 한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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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4】 책과 맺은 각자의 인연과 사연들
- 누군가 홀로 어둑어둑한 책방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그가 머뭇거리며 주인과 인사하고, 둘은 서로 가만히 마주 앉는다. 주인이 수첩을 펼치며 어떤 책을 찾고 있는지 묻는다. 손님은 서지사항을 말해주며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책인데 과연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해봐야죠, 손님. 대신 수수료는 왜 그 책을 찾으시는지, 책과 얽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겁니다.” 헌책방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는 10년 넘게 갖가지 삶의 이야기들을 수집해왔다. 손님들에게 책을 찾아주는 대신 왜 그 책을 찾는지 사연을 들려달라고 한 것이다. 의뢰인들은 때론 기묘하고 때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저자에게 찬찬히 풀어놓았다. 이 책은 그중 스물아홉 편의 사연을 가려 뽑아, 감동과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특별한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교보문고. 세상에서 이런 책은 처음 봤다. 흥미롭게 읽었다. 책과의 인연과 사연이 이렇게 있는줄 몰랐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나도 고등학교 때 읽지도 않은 키에로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교회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적이 있었다. 제목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도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미안한 《사랑과 인식의 출발》 구라다 하쿠조 지음, 김봉영 옮김 창원사, 1963년 절판된 책 찾아주는 일을 하며 돈 대신 책에 얽힌 사연을 수수료로 받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떠올렸던 한 사건이 있다. 금호동에 있는 규모가 제법 큰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이야기니까 꽤 오래전 일이다. 지금 금호동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깔끔한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20년 전 즈음만 하더라도 그곳은 야트막한 주택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들판처럼 퍼져 있는, 서울에선 보기 드문 예스러운 풍경이 남아 있는 동네였다. 내가 일하던 헌책방은 장사가 잘돼서 직원이 열 명이나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헌책을 사고파는 게 아직 활발하지 않던 때였기 때문에 방문 손님도 적지 않았다. 직원들은 온종일 땀에 젖어 천장까지 쌓인 책들과 씨름했다. 그래서 손님이 와서 뭘 물어봐도 친절하게 응대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게 좀 불만이었다. 아무리 책 다루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책방 일꾼이 책을 사러 온 사람에게(p. 15)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라면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 나라도 손님을 반갑게 맞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매일 수천 권의 책들과 싸우다 보면 웃으면서 사람 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느 날 오후,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헌책방 지하 매장으로 내려왔다. 나이는 70대 정도로 보였는데 허리가 곧고 차림새가 말끔해서 처음부터 뜻 모를 호감이 일었다. 어르신은 찾고 있는 책이 있는데 혹시 알아봐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당시 그 헌책방은 일찌감치 대부분의 책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두었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통신 판매도 겸하고 있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한데..." 어르신은 양복주머니에서 잘 접힌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말끝을 흐리는 거로 봐서 책을 찾기 위해 이미 여러 헌책방에 방문했던 것 같다. 여기에 그 책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말씀해보세요. 여기 있는 책이 대략 10만 권이 넘거든요. 전부는 아니지만, 컴퓨터에 책 제목을 입력해두었으니 검색해보겠습니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입니다. 구라다 하쿠조라는 일본 사람이 쓴 책이지요." 처음 들어보는 책 제목이다. 게다가 어르신이 찾고 있는 건 1963 년에 출판된 책이다. 혹시 모르니 기대를 하고 컴퓨터로 검색해봤지만 역시 이곳엔 없는 책이었다. 책이 없다고 하니 어르신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군. 고마워요."하며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 가팔라 어르신의 걸음이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그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여서 곧 뒤따라가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혹시 책이 들어왔을 때(p. 16)연락드리겠다고 했다. 어르신은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내가 건넨 작은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었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그때 진짜로 책을 찾아드릴 생각은 없었다. 어르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드리고 싶었기에 책을 찾게 되면 연락하겠다는 헛된 약속을 한 것이다. 정말로 그 책을 찾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책 스스로 나타나주어야 한다. 헌책방에서 일하다 보니 책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알게 됐다. 어떤 책은,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는 책이라는 걸 아는데도 몇 년 동안 만나지 못 한 채로 살아간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책인데 며칠 만에 나타난다. 그건 어떠한 자연법칙이나 심리학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책이 제 의지로 사람을 찾아 오는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어르신이 찾고 있던 책도 그렇게 나타났다. 마치 인연처럼. 나조차 거의 잊고 있었는데, 반년 정도가 지난 후 정말로 그 책이 우리 헌책방에 입고된 것이다. 그날 트럭에 실려 가게로 쏟아져 들어온 수천 권의 책들 속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책 한 권이 내 눈에 보일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서지 면을 보니 1963년 창원사에서 펴낸 초판, 바로 그 책이다!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 천만다행으로 어르신이 남긴 연락처도 아직 갖고 있었다.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책상 구석 한쪽에 밀어둔 채로 잊고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마저도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 말하고 싶다. 일을 마치면 매일 청소를 하는 게 헌책방 일과의 끝인데, 어떻게 그 작(p. 17)은 종잇조각이 여섯 달 동안이나 살아남았던 말인가? 《사랑과 인식의 출발》은 나쓰메 소세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이자 학자 구라다 하쿠조(1891 ~1943)가 사랑에 관해서 쓴 짧은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작가는 탐미주의가 유행하던 일본의 문학계에서 냉정한 이성과 실존을 강조한 '시라카바티' 동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일본의 지식인과 청년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이 책은 1921년에 초판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번역됐다.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독자가 많아 번역 판본이 여러 종 있었는데 왜 어르신은 유독 1963년 판을 찾고 계셨던 것일까? 그 사연은 책을 찾으러 오신 어르신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공부했어요. 우리 집이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친이 사업가여서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살았죠. 한국전쟁 직후였으니 당시 우리나라에는 공부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부족했어요. 아버지가 나를 일본으로 보내셨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돌아와 보니 상황은 오히 려 안 좋았어요. 군사정권이 들어섰으니까." 어르신은 《사랑과 인식의 출발》을 손에 들고 가볍게 표지를 만지면서 말했다. 책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청년은 번역 문학을 펴내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청년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책이야말로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어요. 우리 회사에서 펴내는 책들 대부분이 정부에서 금서 처분을 받았거든요.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외국 사람이 쓴 가벼운 철학 개론서나 역사책, 경제(p. 18)학책도 이상한 기준에 트집이 잡혀 서점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폐지가 되는 일이 허다했어요. 속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너무나도 큰 벽이었어요. 그때는 그랬답니다. 그 시절을 어찌 살았는지 몰라......"맞서 싸우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셨군요?" "싸우다니?" 어르신은 눈을 크게 떴다. "1960년대랍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시절이었어요. 나는 한국전쟁 때보다, 차라리 그때가 더 공포스러웠어요. 싸운다는 건 생각조차 못 해요. 머리를 비우고 바보처럼 산다면 그보다 편했던 때도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공부한 사람이 살아내기에는 너무 비참했어요. 읽고 쓰는 자유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옛 생각을 하는지 어르신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책을 내게 보여주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귀한 책이에요, 나한테는." 어르신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나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힘든 시기에 이 책을 읽고 기운을 얻으신 거로군요?" 어르신은 내 말을 듣더니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니, 아니지.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거창하게 말을 했구먼. 사실 그 정도로 대단한 책인지 나는 잘 몰라요. 집중해서 읽은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는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좀 이상하네요? 그러면 이 책을 오랫동안 찾아다닌 이유가 뭔가요? 제대로 읽은 책도 아니라고 하시면...."(p. 19). "이제부턴 좀 재밌는 이야기니까 들어보시구려." 어르신은 여전히 책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출판사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두문불출했어요. 우선은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죠. 방 안에서 뒹굴며 불효자식이 될 수는 없으니까 은행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사실 이건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었어요. 종일 의자에 앉아 주판을 튕기고 있자니 이 또한 괴로웠습니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요. 그렇게 한 1년 지냈을 거예요. 내게도 봄날 이 찾아왔지요." '봄날'이란 연애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청년이 서서히 은행 생활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 같은 지점에서 일하는 예쁜 여직원이 호감을 보인 것이다. 당연히 청년의 오해일 수도 있다. 그 여직원이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친절한 성격일 수도 있다. 청년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죽을 것같이 힘들었던 출근 시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여성분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이 없는 거예요. 지금이야 휴대전화가 있으니까 가볍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직접 얘기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연애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무리가 있었어요. 연애편지라는 걸 써봤어야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며칠 동안 종이를 얼마나 많이 버렸는지 몰라요. 시작하는 첫 문장 조차 못 쓰겠더군요. 밤에 썼다가 아침에 찢어버리고, 점심시간에 몇 자 끄적거렸다가 퇴근하고 읽어보면 너무 바보 같은 문장이라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어요 청년은 머리를 식힐 겸 일이 없는 주말 시내 서점에 나갔다가 운명처럼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첫 장을 펼치는(p. 20) 순간 책에 빠져들었다. 책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 자기가 연애편지에 쓰고 싶었던 멋진 사랑의 문장이 거기 다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마치 초보자를 위한 연애편지 참고서 같은 느낌이었어요. 누가 볼까 부끄러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책을 계산해서 집으로 뛰어왔죠. 연애편지라는 건 원래 첫 부분 시작하는 게 어렵잖아요? 나는 그 책에 있는 문장 몇 개를 첫 부분에 인용하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다음 부분은 술술 써지더라고요. 새벽까지 편지를 쓰고 잘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지요. 출근하면 기회를 보다가 슬쩍 꺼내 건네줄 생각이었어요. 결론은, 작전 성공이었어요. 그날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휴게실에 둘만 있게 됐을 때 편지를 여성분 손에 쥐여줬어요. 깜짝 놀라면서도 기쁨이 가득한 그 표정이라니!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어르신은 책을 펴더니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청년은 바로그 문장을 편지에 인용했다. 어르신은 그 부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작은 목소리로 그 문장을 읽었다. "둥그스름한 푸른 하늘은 우리들 머리 위에 덮여 있고 햇빛을 받은 흰 구름은 정처 없이 떠돈다. 영원의 시간이 발걸음을 죽이고 사뿐히 옮겨 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쓸쓸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울 것이다...." 멋진 문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 연애편지를 받아 읽은 동료 여직원도 청년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청년은 꿈을 꾸는 듯 황홀한 나날을 보냈다. 어르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는 없던 식욕이 돌고 슬픈 영화를 봐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고 한다. "그럼, 찾으셨던 책이 어르신과 그 여성분을 맺어준 셈이네요. 이(p. 21)제 이유를 알겠네요. 사랑을 이어준 책이라니요!" "젊은 시절 가장 아름다운 때였지요. 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세 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요?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 탓입니다." 사랑을 키워가던 그즈음, 청년은 서서히 은행원 생활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어 3년 만에 사표를 내고 유럽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연인에게는 편지 자주 하겠다는 약속만을 남긴 채 홀로 먼 외국으로 떠났다. 청년은 약속대로 편지를 자주 보냈다. 하지만 공부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애정이 식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서히 소식이 뜸해졌고 유학 생활 5년 차 정도부터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져버렸다. 청년은 그 후로도 10년 넘게 외국에 머물며 공부에 몰두했다. 그런 생활 중에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이어왔다. 그때의 청년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었고 하던 일에서도 은퇴하여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첫 사랑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어르신은 사람을 찾는 건 의미가 없으니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받았던 책을 찾기로 했다. 그것을 우연히 내가 발견해 찾아드린 것이다. 어르신은 그렇게 이 책에 얽힌 사연을 담담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르신은 댁이 부산이라 내 전화를 받고 부산에서부터 KTX 열차를 타고 서울까지 온 것이었다. 책 가격이 2만 원이니까 우편요금을 더해 입금해주시면 댁까지 보내드린다고 했는데도 책값보다 한참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이곳까지 온 이유도 궁금했(p. 22)다.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찾아다닌 내 젊은 시절의 고운 사랑 같은 책을 찾았는 데 어찌 우편으로 받겠소? 내가 직접 모셔가야지." 책 한 권에 얽힌 이 애틋한 사연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로부터 몇 년 후, 헌책방 주인이 된 나는 때때로 손님들에게 찾고 있는 책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슬며시 물어보곤 한다.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p. 23). 완전을 위한 불완전 《완전주의자의 꿈》 장석주 지음, 청하, 1981년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오후, 우리 두 사람은 드디어 마주 보고 앉았다. L씨를 처음 만난 후 반년 만이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L씨는 변함없이 짧은 머리에 반듯한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매고 있다. 정확히 좌우 대칭이 맞는 넥타이 매듭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벨트 끝에서 딱 떨어지는 삼각형 꼭짓점을 보고 있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긴장 상태에 있는 나와는 달리 L씨는 한없이 편안한 표정이다. 그가 나를 보더니 말없이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느 한구석에도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묘한 미소다. 6개월 전에도 나는 저 표정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는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저 미소는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역시 정확한 시간에 와주셨군요.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말했다. 그는 곧바로 "시간의 존재 이유는 지키기 위해서 니까요."라고 대답했다(p. 239).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테스트가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불쾌하긴요. 저는 오히려 즐겁습니다. 사장님께 연락을 받고 모처럼 가슴이 뛰더군요. 자, 시작하시죠." 나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 미리 준비해둔 종이를 꺼내 위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16에 3." "〈바다 풍경〉이군요." 놀랍게도 L씨는 거의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즉시 반응했다. 그는 마치 기계처럼 다음 말을 이었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지쳐빠져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가 되어 문득 뒤돌아 본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너무도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표정을 억누르면서 다음 문제를 냈다. "이번엔 6에 4입니다." "〈나는 꽃을 피우고 싶어 타는 몸〉이죠. 거기에 4라면, '나는 사소하고 우리는 사소하지 않다.'" 한없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그는 답을 말했다. 내가 입력하면 즉시 답을 내놓는, 그는 마치 기계 같았다. "지금 L님께서 말씀하신 게 정확한 답인지 혹은 틀렸는지 궁금하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슬쩍 떠봤다. 책에서 읽은 대로라면, 이런 질문은 심리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실수하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이런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p. 240). "왜죠?" "그야,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적이다. 그는 도무지 틈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 다시 종이에 쓴 걸 읽었다. "그럼, 마지막입니다. 34에 1...." 이번엔 내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그가 치고 들어왔다. "그건 〈공기〉입니다. 마침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괴로운 잠에서 깨어나 조심스럽게 톱질을 시작했다.'로 시작합니다." 이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책상 서랍에 준비해둔 책을 꺼냈다. 그는 이 책을 가질 자격이 있다. 나는 책을 씨에게 건네며 말했다. "완벽하군요.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하지만 처음 뵀을 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도 저는 '완벽'이 아닌 '완전'하다는 평가를 자신에게 주고 싶군요." L씨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책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미스터리한 손님과 얽힌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겐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L씨가 어쩌다가 완벽하게 망하게 됐느냐 하는 거다. 그 사정을 알기 위해선 시간을 뒤로 돌려 그를 처음 만났던 겨울로 가보아야 한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L씨는 특유의 노려보는 듯한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때문에 썩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책을 찾는 사연을 말해달라 하니 그는 차가운 인상을 넘어 무협 소설에나 나올 법한 살기마저 느껴지는 서늘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놨다(p. 241). "...나는 너무 취했다. 흐르는 세월, 술, 어둠에. 내 혈관들은 너무 혹사당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머뭇거림 없이 노래하듯 읊은 그 시는 장석주의 〈완전주의자의 꿈〉이라는 작품이다. 짧은 시가 아닌데 그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기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완전하게 다 외웠지요? 아니, 이 경우엔 완벽하다고 해야겠지만요. 허허." L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다란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나는 그가 정말 시를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제목만 들어봤을 뿐 실제로 그 시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완전주의자의 꿈'을 입력했다. 누군가 블로그에 시 전문을 올려놓은 게 있었다. 확인해보니 틀림없었다. L씨는 정말로 그 시를 한 글자도 틀림없이 암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말 놀랍네요. 학교 다닐 때 암기과목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던 저로선 신기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는데요?" 내가 말하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쪽 어깨를 살짝 움직이고 는 대답했다. "뭐, 별거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들려드린 것뿐만 아니라 그 시집에 나오는 모든 작품을 암기하고 있습니다. 나름 편리합니다.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닐 필요 없이 여기서 꺼내 읽으면 되니까요." 그는 유독 길고 가느다란 검지를 펴서 자기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렇다면 왜 그 책을 찾으시는 건가요? 어차피 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책이라면 말이죠. 게다가 제 생각엔, 내용을 다 외울 정도로 애(p. 242)착이 있는 책이라면 이미 가지고 계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한 10년 전에 그 책을 내다 버렸습니다. 집에 꽤 큰 서재가 있었는데 그때 다른 책들도 다 버렸죠. 작은 사업을 하나 벌이다가 시쳇말로 망했거든요.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면서 모두 처분했습니다." 그렇게 처분한 책 중에서 오직 하나, 《완전주의자의 꿈》만큼은 다시 갖고 싶다며 내게 다음과 같은 사연을 풀어놓았다. L씨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해서 어릴 때부터 자식이 실수하거나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으니까 앞서지 않으면 뒤처질 뿐이라는 얘기를 지겹게 반복했다. L씨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서 자신을 완벽주의자로 만들기 위해 단련했다.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제 아버지는 실로 완벽한 분이 었습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죠. 마치 철학자 칸트처럼 매사에 철저하고 빈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시간 관리에 있어서는 여전히 저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당신은 늘 말씀하셨죠.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사는 동안 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은 의미 있는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책으로 말하자면, 평생 다른 일 하지 않고 독서에만 집중해도 일주일 동안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양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예를 드셨습니다. 인간은 노력에 따라 무엇이든 성취할 가능성이 있지만, 시간의 벽만큼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한정된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만이 인생을 잘 사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어느덧 아버지의 말씀에 종교적인 믿음이라고 할 정도의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p. 243)도 그럴 것이,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사니까 모든 일에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완전주의자의 꿈》은 L씨가 고등학생일 때 만난 책인데, 당연히 그 솔직한 제목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샀다. 그러나 정작 시를 읽어 보니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만 가득한 책이었다. L씨 는 화가 났지만 늘 그렇듯 곧 그 시집을 정복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 내용이야 어찌 됐든 무작정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어린 완벽 주의자는 한 달 정도 시집을 닳도록 읽고 쓰면서 거기 있는 모든 작품을 암기했다. 그 사건은 L씨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시집은 마치 그에게 부적과 같았고 어디를 가든 늘 지니고 다녔다. 여전히 시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책 한 권을 완벽하게 정복했다는 승리감은 여러 해 동안 그를 도취감에 사로잡힌 상태로 살게 하기에 충분 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지요. 대학 입시, 자격증 시험, 대기업 취직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흑독하게 단련하며 노력한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회사에서 나와 제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에도 행운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이야기를 이어오던 L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신을 완벽한 사람이라 믿었고, 그런 그는 자기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L씨는 20대 나이에 이미 자기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야 할 길과 거기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목록으로 정리해두었다. 때론 다른 길이 나타나 유혹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p. 244). "인생은 돌아서 가기엔 너무 짧다." 단호한 그 한 마디는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법칙처럼 여겨졌다. 물론 인간의 삶 앞엔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어떤 길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곧장 가거나 샛길로 접어들거나 결론은 하나다.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선택한 길 하나만을 경험할 수 있다. 샛길로 갔다가 거기가 아닌 것 같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L씨는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일깨워준 아버지에게 늘 감사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인해 잘나가던 사업은 바닥으로 꺼 꾸러졌다. L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 시내에 건물까지 갖고 있던 그가 방 두 개짜리 월셋집으로 이사하기까지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괴로웠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울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며 허드렛일을 하며 사업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 돈을 다 갚지 못했습니다. 제게 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득 어릴 때 좋아했던 장석주 시집이 그리워지더군요. 친구 같은 책이에요. 그 책이 있다면 저는 또 기쁜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니 책을 꼭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꼭 책을 찾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완벽하게 망해버린 이 완벽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이 작은 시집 한 권뿐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었 다. 나는 그에게 "곧 좋은 일도 있겠지요. 힘내세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L씨는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p. 245). "그래도 저는 지금 생활에 더 만족합니다. 세상은 완벽하게보다는 가치 있게 사는 게 좋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죠.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다그치기보다 나와 타인을 사랑하면서 함께 걸어가야지요. 저는 이제 완벽주의자도 완전주의자도 아니지만, 어릴 때 전혀 알 수 없던 그 시들이 하는 말을 이젠 조금씩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저를 기분 좋게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L씨는 시집의 다른 구절을 암송했다. "친구여 우리를 매달고 있는 나무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슬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애인에게〉라는 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의 깨달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는 마치 그 시를 자기가 쓴 것처럼 감정을 깊이 실어 낭송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시를 향해 귀를 열었다. 한겨울 추위가 시와 함께 가만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반년 뒤, 드디어 우리 둘은 다시 만났다. 나는 L씨가 말한 책 초판을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고 우선은 내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정말 그는 이 시집 한 권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하긴, 미국 예일대학에서 강의한 유명한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엄청난 양의 시를 암기하고 있었다고 하니 L씨의 말이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책을 찾았으니 다시 이곳에 방문해달라는 연락을 하면서 정말로 시집을 다 외우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L씨는 내가 원한다면 책방에 들렸을 때 첫 번째 시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낭송해주겠다고 했다(p. 246). "아니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테스트하려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럽니다. 정말로 이 시집을 다 외우신 것인지. 책 한 권을 다 외웠다면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신기하게 여길 겁니다." "책을 찾아주셨으니 기꺼이 제가 그 호기심을 풀어드려야지요. 그럼, 약속하신 날 헌책방에서 뵙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건조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집에 있는 작품의 순서와 그 작품의 몇 번째 연인지를 힌트로 말하고 그는 거기에 맞춰 시의 제목과 제시한 연에 나오는 첫 번째 문장을 말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내가 "16에 3."이라고 하면 그는 열여섯 번째 시의 제3연 문장과 함께 작품 제목을 알아맞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L씨는 단 한 번의 실수나 주저함도 없이 완벽하게 이 게임을 통과했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에게 시집을 건넸고 우리는 악수로 이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아니, 아직 깔끔한 게 아니다. 내 궁금증은 하나가 더 남았다. 나는 뒤돌아서 나가는 그를 불러세웠다. "괜찮으시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려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대답에 쓸 시간이 4분 정도는 있습니다." "사업 말입니다. 완벽하게 준비하셨고 그대로 잘 진행되어서 돈도 많이 버셨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게 어떻게 한순간 망하게 된 건가요? 완벽했던 사업이었잖아요?" "그거라면 대답하는 데 30초도 안 걸리겠군요." 그는 다시 시계를(p. 247)봤다. 그러곤 아주 짧게 대답했다. "이 세상 자체가 애초에 완벽하지 않은 거예요. 저는 그 단순한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L씨는 이를 드러내고 소리내 웃었다. 그렇게 크게 웃은 것은 처음이다. 한참을 웃더니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세상이 완벽했다면, 장석주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시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제가 머리로는 이 시를 완벽하게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 책을 찾고 싶었던 겁니다. 이제부터는 마음으로 읽어보려고요." 낡은 시집을 손에 들고 책방 문을 나서는 L씨의 얼굴이 환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얼굴은 늘 저렇게 깨끗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온전한 사랑을 마음에 품은 따뜻한 표정이 부러웠다. 내게도 어느 날 그런 순간이 오겠지.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도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되는 날까지, 나는 시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 책이 가득한 이 가게를 지켜야겠다(p. 248). 담백한 삶을 위하여 《여자의 일생》 기 드 모파상 지음, 신인영 옮김. 문예출판사, 1977년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놀랍게도 모파상이 들려준 이야기는 고등학생 때 봤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바보 같은 잔느, 멍청이 잔느!"라고 하면서 화가 났는데 지금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수첩에 옮겨 적으면서 물었다. "고등학생 때 읽은 책과 내용은 똑같은데, 왜 그렇게 전혀 다른 감 정이 생긴 걸까요?" S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책은 변하지 않았지만 제가 변했으니까요. 50년이라는 인생을 살다 보니 잔느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녀의 운명도 역시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소설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일생을 판단하려면 그 사람에게도 일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꽃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걸 자주 느낀답니다. 저도 처음엔 꽃이 예쁜 건(p. 318) 활짝 피었을 때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가엾다는 마음도 자주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꽃은 싹트고 잎이 나오고 활짝 피어났다가 시들어 고개를 숙이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더는 싱싱한 젊음의 아름다움 같은 건 없겠지, 라고 생각했던 일을 깊이 반성했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한 시기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은 보다시피 그렇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가 봅니다." S씨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이 문장 때문에 화가 나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린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똑같은 책을 찾아 이번엔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 다짐했다. S씨는 꽃과 우리 인생이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피고, 지고, 열매 맺고, 향기를 전하고... 이 전부가 삶이 아니겠냐는 수수께끼 같은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책을 찾아주는 대신 그 책에 얽힌 사연을 수고비로 받는다. 하지만 가끔 귀한 삶의 깨달음을 얻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숙연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낡은 책 한 권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일생을 통해 찾은 소중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손님에게 받은 아름다운 삶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어디 있을지 모를 책 한 권을 찾아 길을 나선다(p.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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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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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4】 책과 맺은 각자의 인연과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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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3】 고전, 옛 사람을 통한 현재의 깨달음
- 2020년 출간된 『사람에 대한 예의』로 ‘날카로운 필력과 명징한 사유를 지닌 글쟁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가 권석천이 5년 만의 신작 『최선의 철학』을 선보인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시절,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으로 ‘중앙일보의 송곳’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국 사회에 통렬한 질문을 던져온 그가 이번 책에서는 ‘철학’에 천착한다. 삶의 불확실성과 두려움 앞에서 멈춰 설 때마다 저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 로마 고전과 그 속에 담긴 철학가들의 목소리였다. 저자는 인간과 삶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며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전을 바탕으로 철학가 12인의 사유를 새롭게 탐구한다. 소크라테스의 질문, 세네카의 존중, 키케로의 기세 등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가 저자의 혜안으로 되살아난다. 저자는 딱딱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법한 고대 철학을 우리 삶에 적용 가능한 지혜로 재해석한다. 그의 깊은 통찰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성찰하게 한다. 여전한 생명력이 담긴 최고(最古)의 지혜를 오늘의 삶에 불러오고 싶다면 『최선의 철학』을 펼쳐보자. ‘최선의 삶’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철학이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기술 자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교보문고. 고전은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결국 독서는 고전으로 가야 한다. 고전이 원전이기 때문이다. 부담스럽지만 나 또한 고전으로 가고자한다. 소크라테스가 「변론」에서 던진 자문자답 중 하나는 저도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요?" 그의 답변은 단호합니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성찰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데요, 저는 그의 주장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또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p. 35). "소크라테스 씨,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나요?" 제가 「변론」에서 찾아낸 답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굽히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미움받을까 걱정하지 않았고, 틀린 질문을 할까 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어느 누구의 선생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저 '묻고 대화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소크라테스의 성격이 그가 살았던 삶의 자리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 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의 아버지는 석공이고 어머니는 산파였습니다. 그 자신도 석공이었고, 기술자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합니다. 돌을 다듬는 일은 한 치도 틀리면 안 되는 일입니다. 산파 역시 산모와 아기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두 직업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러한 노동의 엄밀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만들어온 노동자들의 근면성이 소크라테스로 이어져 논리의 빈 구멍, 근거의 허술함을 그냥 놔두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아, 이 부분이 비어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어떻게든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따지고 물으면서 다녔던 것 아닐까요?(p. 36). 신념은 중요한 것을 향하고, '손잡이'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볼 것은 신념의 내용, 즉 주제입니다. 주제의 크기는 문제되지 않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작더라도(p. 57)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작은 주제가 어떻게 중요할 수 있느나고요? 작은 주제도 충분히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면 중요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읽씹(SNS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가'라는 주제는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소통 방식, 인간관계에서의 기대 수준, 개인의 자율권이란 측면에 서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소재에서 보다 큰 문제의식을 포착해내는 것은 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안티고네」에서도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사람이 죽은 뒤 땅에 묻히지 못하면 안식을 얻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안티고네」가 주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밀어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의 사랑이냐 사회 질서냐’, ‘개인의 양심이냐 정치적 리더십이나'라는 딜레마가 갖는 힘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합니다. 이것이 「안티고네」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중요한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p. 58).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슈를 제대로 다루려면 '논쟁의 손잡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논쟁의 손잡이'는 추상적일 수 있는 신념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논쟁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양심에 대한 신념'이 안티고네라는 사람 이야기로 제시되니 더 실감 나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만약 안티고네 없이 이 신념을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학술 토론이 되었을까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했던 흑인 민권 운동이 1950~60년대 미국을 뒤흔든 이슈가 될 수 있었던 데에도 '논쟁의 손잡이'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 '손잡이'가 바로 로자 파크스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백화점 제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퇴근길에 버스 앞좌석에 앉으면서 시작됩니다. 당시 앨라배마주 법에 따르면 흑인은 앞좌석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버스 운전사가 파크스에게 뒷좌석으로 옮기라고 하지만 그녀는 이 명령을 거부합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파크스를 체포했고, 킹 목사는 이 사건을 흑인 민권 운동의 결정적 계기로 만듭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관이 양성평등의 대표 기수로 떠오른 것 역시 '논쟁의 손잡이'를 효과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교수였던 긴즈버그는 공익 사건을 변호하면서 성차별 법률들을 문제 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녀가 고민 끝에 택한 '손잡이'는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양비 세금 공제 대(p. 59)상에서 제외된 한 남성의 사건이었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성차별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 주목한 긴즈버그는 이 사건을 맡아 승소로 이끕니다. 그 결과, 성별에 따른 합법적 차별이 178개에 이른다는 사실이 공론화됩니다. 신념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신념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발굴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주목합니다. 당신이 어떤 신념을 사회적 이슈로 전환시키고 싶다면 상징적 사례를 찾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가슴에 품는 신념이 삶의 서사가 된다 안티고네는 단지 옛 이야기 속 인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그 무언가를 흔들어 깨웁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신념의 본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상황 논리 때문에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불편함에 구애받지 않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죽음을 맞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죽음은 「안티고네」를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녀가 침묵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신념과 용(p. 60)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신념을 품고 산다는 것은 결코 세상과의 대립을 의미하지 않습 니다. 오히려 자신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입니다.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는 과정입니다. 내 주장과 다른 생각에도 마음을 열고 근거와 논리를 재정비할 때 문제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을 때입니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침묵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 밀려오는 이슈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갖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는 당신이 신념을 갖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은 사회 정의일 수도 있고, 공정한 시스템일 수도 있고, 환경 보호일 수도 있고, 표현의 자유일 수도 있고, 인류 평화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때 당신이 가슴에 품는 신념은 곧 당신 삶의 서사가 됩니다. 당신만의 내러티브가 됩니다(p. 61). 「메논」은 우리에게 진정한 성장이란 외부에서 무언가를 주입 받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새로운 앎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지혜를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입니다. 해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허둥대거나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분발해서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메논」의 메시지는 이데아론의 기본 전제가 됩니다. '진리를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은 '감각 세계의 불완전한 사물들을 보고도 완전한 개념(이데아)을 떠올릴 수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메논」은 이렇듯 적극적으로 해답을 찾아보려(p. 78)는 의지가 두드러집니다. 기존의 통념들을 해체하는 데 주력했던 초기 대화편들과 다른 점입니다(p. 79). 팔레르누스산(産) 포도주를 보고는 이것은 포도송이의 액즙에 불과 하다고 생각하고, 자포(紫袍)를 보고는 이것은 조개의 피에 담갔던 양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성교(性交)라는 것도 장기의 마찰과 진액의 발작적인 분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그런 생(p. 100)각은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건드려 그 사물이 참으로 어떤 것인지 보게 해준다.-86쪽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직시함으로써 고급 포도주나 화려한 의복, 심지어 성적 욕망마저도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사물이 너무 믿음직해 보이거든 옷을 벗겨서 그것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고 그것이 뻐기는 후광을 걷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당부합니다. 또한 일상에서 접한 레슬링에서 삶과 비슷한 점을 발견해내기도 합니다. 불의의 공격에 대비하며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는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116쪽(p. 101). 이 공감의 능력을 키우려면 『일리아스』의 주인공들처럼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이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며, 공통의 경험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공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섣불리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그에게 집중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호메로스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공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된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소통의 열쇠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열쇠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매일 누군가와 나누는 식사 한 끼 속에, 마주치고 부딪히는 일상의 만남 속에,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그 순간 속에 있습니다. 트로이아 성벽을 사이에 두고 적으로 만났던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같은 식탁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감탄했듯이, 우리도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과 그런 감탄의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앞에 앉은 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어떤 것에 기뻐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고 있을까? 그 특별할 것 없는 관심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원칙은 이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한 끼, 한 끼씩(p. 133). "나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사실을 알았으니 여러분이 판단하십시오."-335쪽 「수사학」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역시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설득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에 공간을 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뢰받는 사람이 되라. 논리를 탄탄히 하라. 감정에 호소하라.' 「수사학」의 이 세 가지 원칙도 마음의 공간을 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득은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뜯어고치는 게 아닙니다. 닫힌 문을 부수고 내 생각을 주입시키는 게 아닙니다. 함께 머리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평범하지만 특별한 진실을 되뇌어봅니다(p. 160). 인간의 다층적인 내면에 관심을 갖는 자세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수준을 뛰어넘습니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시야는 자기 앞가림에 급급한 차원을 벗어나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렇게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p. 204)것은 『영웅전』만이 아닙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조조, 관 우, 장비, 제갈량, 사마의를 보며 사람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택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아, 저때 저것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가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겪기 전에 간접 체험을 하고 나면 보다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늘 곁에 두는 사람의 판단이 남다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 AI에게 책 내용을 요약하라고, 책 읽는 것까지 맡기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책은 꼭 자신의 눈으로 읽으십시오. 그래야 사람을 익히고 배울 수 있습니다(p.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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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3】 고전, 옛 사람을 통한 현재의 깨달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