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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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와 그리스도인의 삼중적 생태 전환


(본 소논문은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인데 내용이 너무 시의적절해 파일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좋은 논문을 공유허락해준 윤 교수에게 감사합니다. 추후 교수들의 좋은 논문을 종종 게재할 계획입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관련된 기후변화는 기후학자나 정책결정자나 환경공학자만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가 직면한 문제이다. IPCC가 발간한 일련의 보고서들을 포함한 여러 자료는 우리 시대가 기후변화가 초래할 총체적 재앙에 직면했음을 경고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교회는 깨어진 창조세계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회복과 소망의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생태적 인식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인류세’나 ‘지속가능발전’과 같은 개념에 반영된 인간중심주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생태계와 역사 전체에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는 기독교 섭리적 확신을 표명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무관심이나 과민함 대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기독교적 확신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위기의 시대에 깨어 있는 선지자로 설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기후위기가 초래할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소외당할 기후약자에 대한 제사장적 관심과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생태적 약자를 존중하고 지탱하면서 동반자적 삶을 일구는 법을 터득하고,  자본주의적 욕망을 거스르는 기독교적 가치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기후위기  이면에  도사린  부정의와  불평등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의와 평강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현실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자연과 세계에 대한 무한한 책임의식을 지닌 중보적 왕이자 하나님이 주인이신 세상에 잠시 머물면서 다른 손님들을 환대하는 나그네 왕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다양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향해 올바르게 번성해갈 수 있도록 활동하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태적 인식 전환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환기하고 기독교적 기후담론을 활성화하고 공동체적 운동을 일으키는 거룩한 생태적 선순환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길 바란다.


Ⅰ. 들어가는 말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에서 CG로 그려진 천재지변이 뉴스 화면과 일상에 실제로 등장하는 일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그 공포의 전조와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면서 코로나 사태를 능가하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이제까지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변화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보다 모호하고 우화적인 언어 속에 있었다.  기후변화는 북극곰이나  펭귄,  산호초와  꿀벌의  생존을  위협할  뿐  사람  사는  세상과 무관한 것인 양 취급되었다.  애먼 북극곰이 지구온난화의 상징동물 역을 도맡은 것도 그런 탓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기후위기는  우화  속에서  현실로  뛰쳐나왔다.  우리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이상기후 현상들이 고대 신화 속 괴물처럼 인간의 땅을 짓밟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호주 산불(2019-2020),  미국 서부 산불(2021),  중국  남부의  호우  사태(2020),  서유럽  홍수(2021),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고위도  지방에서  관측된  이상고온현상(2021),  초거대  모래폭풍과 황사(2021)  등 기상관측 이래 최초라는 재앙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바야흐로 기후재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화적 어법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언어의 불완전함 탓일 수 있다.  지구 생태계 전체가 얽힌 기후 현상을 제대로 이해해서  짚어낼  인간의  언어가  빈곤하고  초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후현상 자체가 인간의 사고와 인식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는 계속 흔들리며 변화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와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다분히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는  ‘기후위기’(climate  emergency)라는 절박한 용어로 바뀌더니,  이내  당혹감과  절망감이 완연한 ‘기후재앙’(climate  disaster)이 되었다.  기후변화가  굶주린  북극곰이  민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영상을  TV  모니터  너머로  보던  사람들의  용어라면,  기후위기나  기후재앙은  북극곰을  덮친  비극에서  자신들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 사람들의 용어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 증후군’(The  Boiled  Frog  Syndrome)1에 걸린 것처럼  기후변화에  절박한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듯하다.  실감  나지  않는 위기에 적절한 대응이 뒤따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용어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기후변화는  환경 전문가의 난해한 보고서를 벗어나 사회,  경제,  문화,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우화적 문법에 갇혔던 담론이 마침내 현실 문법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기후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관련 있는 한,  기후위기 담론은 기후학자나 정책결정자나 환경공학자만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생태계  전체와  온  인류가  직면한  문제이기에 사회과학과 인문학과 신학과 일상의 대화가 덩달아 참여하는 담론장에 올릴 ‘모두의 화제(話題)’이다.

지금 당장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의 분석과 예측을  공부하고  위기의  시대를  살아낼  담론과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교회와 신학은 무지한 공포나 탈속적 신비주의를 조장하기보다 기독교의 신념과 가치에 걸맞은 합리적 담론과 실천적 삶을 제시해야  한다.  이  글에서  논자는  한국교회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기후위기 시대를 대처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생태적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Ⅱ. 현실이 된 기후위기

1.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변화가 중차대한 글로벌 의제로 부상한 것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간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기후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1972년에  개최된  유엔인간환경회의(‘인류 환경에 관한 유엔 제1차 회의’,  일명 ‘스톡홀름 회의’)에서 처음으로 국제 회의에서  진지하게  다뤄졌다.  1979년에  제1차  세계기후회의가  개최되고 10여  년이  지난  1988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대기변화에  관한 세계회의’는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동의 인식에  도달했다.  그  결과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설립되었다.  IPCC는  1990년부터  2013년까지 다섯  차례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고  2018년에  특별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했다.2 오늘날  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추이에  대한  분석과  예측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자료와 긴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IPCC가 1990년에 발간한 1차 보고서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급격한 증가로 지구 표면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1차  보고서의  충격으로  1992년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일명  ‘리우회의’)는  처음으로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 지구환경보존을 위한  세계협력의  기본원칙을  채택했고,  1994년에  세계  각국의 기후정책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체결에 이르게 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강제성  있는  제약이나  법적  구속력이 없었고,  대신 시행령에  해당하는  의정서를 통해 의무적인 배출량의 제약을 시도했다.  1997년에 체결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정식  명칭은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규약의  교토의정서’)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여섯 종류의 감축 대상 가스의 배출감소 목표를 지정하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기간에 전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기준 5.2%  이하로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최다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  중국,  인도는 협약에서 탈퇴함으로써 국제적 협의의 실효성을 무력화시켰다.  교토의정서 채택 이후에도 기후변화는 인간의 예측을 조롱하며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IPCC의 1차 보고서와 2차 보고서는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입증하면서도 그 심각성을 부각하는 데에는 신중했다. 그럼에도 1차 보고서의 충격으로 리우회의가 열리고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었고 2차 보고서는 교토의정서에서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유엔 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의 채택이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이에  IPCC  보고서의  기조도  변했다.  IPCC의  3차  보고서와 4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와 인간 활동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은 인위적인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에서 기인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명시하고 인간의 활동이 이런 수준으로 지속되는 한 기후변화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을 내놓았다.  IPCC의 5차 보고서(2013)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개입으로 심화한 현상이며 지구온난화의 해결도 인간의 결단과 행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거의 단정적으로 내리는 것으로 그 임무를 종결했다.  IPCC의  5차 보고서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해  2016년에 체결된  파리기후협약(Paris  Climate  Agreement)에서  채택되었다.  파리기후협약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여 2021년부터 적용될 기후변화  대응을  담았는데,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여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전 지구적 기후 합의안으로 자리 잡았다.  파리협약은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이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3


2018년 10월에 인천에서 개최된 제48차 IPCC  총회에서 승인되고 채택된  「지구온난화  1.5℃」특별보고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별보고서는 현  추세대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된다면  10년마다  0.2℃씩  증가해서  2050년까지 지구 온도가 1.5℃ 상승하고 2100년에는 4℃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설령  파리협약을  통해  국가별로  제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대로  진행된다고  할지라도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는  2.9℃∼3.4℃ 상승하게 될 것이며 이는 전 지구에 재앙으로 다가올 것으로 전망했다.4 특별보고서는 지구 평균 온도가 1.5℃ 상승하는 경우와 2℃ 상승하는 경우 지구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해서 제시하면서 2100년까지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특별보고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파리기후협약이  대변하는  이전까지의  대응  방식으로는  ‘1.5℃  제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신속하고 획기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IPCC의 특별보고서는  2100년까지  지구  온도  4℃ 증가라는 끔찍한 종말 시나리오를 넌지시 보여줌으로써 안일하고 편향된 인식으로 현 상황에 안주하고 현실을 낙관적으로 외면해온 관행에 충격을 가했다.

2021년  8월  6일에  승인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  실무그룹(과학적 기반)  보고서’는 앞서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했던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  이하  제한’이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하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전망한다.5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현재와  같이  지속된다면  1.5℃ 상승하는 시점이 특별보고서가 예상했던 것보다 10년 앞당겨진 2021∼2040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보고서에서 IPCC는 온실가스 배출경로를 예측하는 5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철저히 시행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도 이 세기의 중반에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6℃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까지 5.7℃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도 보고서는 전망한다.

IPCC의  보고서들은  한결같이  기후변화가  초래할  문제를  경고했다. 최근에 나온 두 보고서는 그런 위기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으며,  인류가 위기를 앞두고 실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질책한다.  전 세계의 전문적 지성이 총동원돼서 작성한 IPCC의 보고서 논조를 반박하거나 부정하는 신뢰할 만한 연구는,  안타깝게도 발견하기 힘들다.


2. 전례 없는 수준의 거대한 재앙

IPCC의  보고서에는  과학적  도표와  그래프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은  세상에  기후변화의  실상을  알리는  데 북극곰보다  효과적이지  않아  보인다. 기후변화를 도표와 그래프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기후라는 문제가 티모시모턴(Timothy  Morton)이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6라고  명명한 초거대 실체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행성 단위의 공간’과 ‘문명을 넘어서는 시간’ 동안 광범위하고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서 발생하기에 인간의 지성이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는 일상과 건강,  식량과 식수,  산업과 에너지,  고용과 경제,  정치와 경제 등 모든 인간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이나  체제가  제어할  수도  없다.  1784년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이  폭발하며 분출한 엄청난 화산재로 인해 유럽 지역 온도가 상승하고 각종 질병과 기근과 흉작이 발생하면서 결국 불안해진 유럽 사회에 혁명의 불길이 일어났는데,7  화산폭발과 프랑스 혁명 사이의 인과관계는 당시에 예측하거나 분석하기 불가능했다.  오늘날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간의 인지가 부조화하는 이유는 거대함뿐만 복잡함  탓도  크다.  기후와  같이  거대한 생물학적 체계는 수많은 상호작용이 파악 불가능한 구조로 얽혀있는 ‘피드백 고리’(feedback  loop)를 형성한다. 피드백 고리 안에서 개별 현상은 다른 현상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기상현상이  다른  현상을  촉진하거나  억제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대처가  되먹임을  일으켜  기후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피드백  고리  안에서 기후변화는 사회갈등,  경제 불평등 심화,  에너지 위기,  전쟁과 폭동의 위협, 난민 문제,  패권 갈등과 정치지형의 변화,  전염병 대유행,  세계 경제 체제의 변화 등 모든 문제에 작용하고,  이에 대처한 인간의 반작용은 다시 불가해한 연쇄작용을 거쳐 전 세계 기후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8

복잡다단한 피드백 고리는 기후위기 담론이 특정 전문분야가 독점하는  사안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해준다.  기후위기를  논하는  담론  테이블에는 거의 모든 문제가 놓인다.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한 글로벌 시스템의  개선,  선제  대응의  중요성,  시민사회와  개인의  자발적  협력,  외부적

충격에  대비한  사회적  공공  시스템의  필요성,  탄소제로  관련  기술의  개발,  미디어의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  기후위기 리스크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처  능력  들은  수많은  층위와  연관을  이루는  논의  중  가장 표면에  드러난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와  관련해  하이퍼오브젝트나 복잡다단한 피드백 고리 개념은 여러 기후 현상들이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순식간에 임계점(tipping  point)에 다다르고 급격한 충격을 가해서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고,  우리는 그런 과정이나 시점을 제대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비관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우리는  간헐적으로  혹은 국지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을 보면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표면적 징후만  감지할 뿐 그 이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임계점에 근접할수록 기후재앙은 부정할 수 없게끔 ‘감춰진 미래’에서 ‘드러난 현실’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뉴욕매거진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David  Wallace-Wells)는 ª2050거주불능지구4(The  Uninhabitable  Earth)에서  전례가  없는  ‘대량  학살’로 현실화할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생생한  필치로  그려준다.  월러스  웰즈는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의 연구자료와 통계를 근거로 기후재난 시대의 시나리오를 12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9

①  살인적인  폭염:  여름  최고기온이  평균  35℃  이상인  도시가  현재 354개에서 2050년까지 970개로 증가하고,  2100년까지 세계 인구 2분의 1 혹은 4분의 3이 극심한 폭염에 노출되어 온열질환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② 빈곤과 굶주림:  지구 온도가 1℃ 상승할 때마다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은 10%  감소하는데 4℃ 상승한다면 절반으로 감소한다.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대로 진행되더라도 2050년경 개발도상국 거주 국민 중 1억 5천만 명이 단백질 부족 상태에 처하는 등 세계는 식량부족 사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③  집어삼키는 바다:  파리기후협약의 1.5℃  상승  목표가  달성되더라도  해수면은  최대  1.8m까지  상승하고  홍수피해는  160∼240%  증가하게 된다.  지구 온도가 4℃ 상승하는 경우 해수면은 최대 2.4m까지 상승하고 대부분의 해안 도시가 물에 잠기면서 세계 지형이 바뀌게 될 것이다.

④ 치솟는 산불:  화염 폭풍 수준의 전례 없는 대형 산불이 지구 곳곳에서 연중 수시로 발생할 것이다.  특히 그린란드나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등 북극권 화재가 잦아질 것이다.  대형 산불은 이산화탄소 증가와 기온 상승,  산림의 메탄흡수 능력 저하,  해충 확산으로 인한 질병 확산 등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⑤ ‘날씨’가 되어버릴 재난들:  슈퍼 태풍,  대규모 폭우와 홍수,  뇌우 등  생각하지  못한  특수재난이  훨씬  자주  일어나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재난으로 일상적인 날씨처럼 닥칠 것이다.  이로 인해 재난으로부터 재건하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⑥  갈증과  가뭄:  물부족  상황이  심화하고,  담수호와  대수층(지구 지표 아래의 지하수 저장고)의 수량이 고갈될 것이다.  기후변화의 연쇄작용을 물효율성이 저하되면서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10 

⑦  사체가  쌓이는  바다: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량의  4분의  1  이상을 흡수한 바다의 해양 산성화가 심각하게 악화하고,  전 세계 해양생물 4분의  1을  지탱하는  산호초가  백화  현상으로  파괴될  것이다.  해안  도시는 악취로 뒤덮이고 해양 무산소화로 인해 해양생물 멸종과 어장 파괴가 연

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해류가 변화하면서 바다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는 징조가 현저해질 것이다.

⑧  마실  수  없는  공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어린이의 정신질환 가능성과 성인의 치매 가능성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사막화로 인해 미세먼지가 증가하면서 호흡기 질환 감염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⑨  질병의  전파:  일종의  기후  장부와  같은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미지의  박테리아  유출  가능성이  고조되고,  황열병이나  말라리아  발병지역이 이동하면서 전염병의 세계화가 진행될 것이다.

⑩  무너지는  경제:  화석연료의  힘으로  일으킨  경제성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신기루처럼  흩어질  것이다.  현  추세대로  탄소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남아시아 국민 8억 명의 생활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전 세계에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로 대공황을 넘어서는 경제

대몰락을 겪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세계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기술혁신의 영향을 현저하게 줄이거나 완전히 상쇄할 것이다.

⑪  기후분쟁:  메콩강을  둘러싼  중국과  인도차이나반도  국가  사이의 분쟁에서 보이는 것처럼 국가 간의 자원 전쟁 위협이 고조될 것이다.  가정폭력이  늘고  범죄율이  증가하는  등  개인  간의  분노와  폭력도  심화할 것이다.

⑫ 시스템의 붕괴:  기후변화는 후진적 체제 국가나 빈곤국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2050년까지 2억 명에서 최대 10억 명까지 기후난민을 발생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이 붕괴하고 부유한 나라와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독점하게  될  것이다.  사회  시스템뿐만  아니라  몸의  시스템과 정신의 시스템도 붕괴될 것이다.


IPCC  보고서의 차분한 과학적 분석에 비해 월러스 웰즈의 시나리오는 극적으로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2020년도  배출량  격차보고서’(Emission  Gap  Report  2020)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2100년  이전에  지구  온도가  3.2℃  상승하리라  예측함으로11  웰즈의  시나리오가  허황한  것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이미 세계는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시기보다 1℃ 상승한 2017년부터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50도에  육박한  북미의  폭염,  중국을 강타한 폭우,  중동지역의 가뭄,  시베리아의 이상고온현상,  호주와  미국서부,  터키와  그리스를  강타한  초대형  산불  등  기상이변이  속출하자,  전  세계  과학자  1만  3800여명이  바이오사이언스에  공동  성명문을 내고 “[기후변화가]  지구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과 관련한 임계점에 점점 가까워지거나 이미 넘어섰다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세계 각국 정부에 조속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12  기후 비상 선언처럼 읽히는 성명서에서  객관적인  중립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과학자들조차  위기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사태가 절박함을 방증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후학자들은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은 신세였다.  기후위기론은 조작된 공포나 강박적인 위기 조장이라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후학자들의  경고는  인위적인  기후재앙론에  불과하고 막연한 공포심을 자극해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있다는 반대론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라기보다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며 인류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변하는 기후조건에 적응할 수 있다는 기후회의론자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13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기후붕괴를  경고하는  카나리아의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늘어났다.

기후위기론을  불편해하던 사람들도 전 세계에서 속출하는 이상기후에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후위기에  대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급격한 기상현상이 신학적 사유의 동기로 작용하고 종교적 관습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볼프강 베링어의 문명사적 통찰에 귀기울 필요가 있다.  베링어에  따르면,  17세기  소빙하기의  유럽에서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흉작과 전염병,  폭동과 전쟁이 빈번했을 때,  독일 지역에서 죽음의 예술(아르스  모리엔디,  Ars  Moriendi)이  유행하고  불안한  사회를  통제하려는 강압적인 법률이 쏟아졌으며,  도덕적 절제를 강조하거나 세속적 삶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유대인  박해나  마녀사냥으로  희생양을  찾는  종교적 광신주의가 등장했다.14  17세기가 지나면서 종교적 사유와 체제가 이상기후가 일으킨 사회적 문제와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무력함을 노출했을  때,  서구사회에서  “사유의  세속화”와  “세계의  탈주술화”가  일어나서 사제와  신학자와 연금술사와 점성술가가 독점했던  담론  주도권이  국가관료와 과학자에게 넘어갔다.15  21세기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거대한  위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도전을 던지며 새로운 담론과 실천의 대전환을 요구할 것이다.


Ⅲ. 그리스도인의 삼중적 생태 전환

1.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며 깨어 있는 선지자

기후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무관심과 과민함의 극단 사이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과거와 달리 현재 인류가 이룩한 과학기술로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며  애써  낙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과학기술이 임박한 기후재난을 해결할 수준으

로 급격하게 발전할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200년 동안 인류의 발전을 이끈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청정에너지 기술로 대체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인류가  이룬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기후재앙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때,  개인과  공동체는  심리적인  아노미  상태를  일으킬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요동치면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가 급격히 물러가고 궁핍과 혼돈의 시대가 닥친다면,  편안함에 익숙했던 사회와 개인은 패닉상태에 빠질 것이다. 과민한 두려움 못지않게 강력한 심리적 방어기제는 정서적 무관심과 현실도피이다.  천적이 쫓아오는 위기 상황에서 땅에 머리를 묻고 꼼짝하지 않는 타조처럼,  기후위기의 현실을 외면하고 기술적 판타지나 종교적 판타지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거주가능한 지구형  행성으로  이주를  꿈꾼다거나,  생물학적  조건을  탈피하여  가상현실과 사이버  라이프로의  디지털  전환을  꿈꾸는  포스트휴머니즘이  그런  예이다.16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을 확신한 나머지 기후위기 문제에 둔감하거나 낙관적인 태도를 가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참된 기독교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주의로 도피하거나 윤리적 책임성과 사회적 신뢰에 둔감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기후재앙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과 같은 현실의 참혹함에만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후위기와 그것이 초래할 총체적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기후위기 담론에 뛰어들어 인간중심의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기후변화를  포함하여  생태계와  역사전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섭리적 관점과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선지자적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첫째,  기독교 섭리적 관점으로 기후문제를 대한다는 것은 뿌리 깊은 인간 중심적 사고로부터 하나님 중심적 사고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영호가 지적하듯,  기후변화는 인간이 일군 문명과 진보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이다.17  기후변화에 인간 활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인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인간이 개입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긴 힘들다.  어떤 이들은 기후변화가 지구와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소위 ‘인류세’(Anthropocene)18에 해당하는 현상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인간의 무분별한 발전과 자본주의적 욕망이 기후위기를 불러왔다는 자각과 반성을 넘어서,  기후 문제를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어 진다면 중독을 일으킨 독(毒)으로 해독(解毒)도 하겠다는 무모함이 될 뿐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라는  거짓  신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화로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의 불씨를 담아둔 채 기후변화를 해결하겠다는 난센스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기후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개념은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  사고뿐만  아니라 성장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지속가능발전이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  사회,  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시키지  않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성에  기초하여  경제의 성장,  사회의  안정과  통합  및  환경의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발전”을  뜻한다.19  지속가능발전의  사고  틀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자본주의적 성장이란 대의의 부수적 문제(collateral  damage)에 불과하다.  앞서 살펴본 IPCC의 보고서들은 지속가능발전이 허상이라고 지적한다.  현세대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되  미래세대가  사용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닭을 잡아먹고도  달걀을  계속  얻을  수  있는’  신기한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 룰렛 게임’이나 ‘시한폭탄 돌리기’에 빗대는 기후변화를 대처하는  데에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은  사안의  본질을  흐려놓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가 될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적  기후담론을  통해  기후위기가  인간의 문제이기 이전에 창조와 구속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과정이라는  확신을  표명해야  한다.  진화론적  인본주의  관점에서 기후는  자연적인  초거대물(natural  hyperobject)이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신적 초거대물(divine  hyperobject)이다.  인간과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구속의 역사를 뛰어넘거나 거스를 수 없다.  어떤 사건이든지,  그것이 설령 재난과 재앙일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왕 되심과 거룩하심과 언약과 사랑을 드러내실 것이다.20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책임한  무관심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선지자적 경각심’ 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교회는 위기와 혼란의 시대마다 곰팡이처럼 퍼졌던 컬트적 사고와 사이비 종말론이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시대에 기독교적 담론과 실천은 개인과 사회,  신학과 인문학,  독립과 연대,  저항과 공조의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될 테지만,  가장 근본적인 정서와  태도에  있어서  ‘두려움으로부터  섭리적  확신으로의  전환’,  ‘인간중심적 오만으로부터 선지자적 경각심으로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2.  자연과 약자를 돌아보는 제사장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해결이 어려운 까닭은 위기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로부터 기인해서 문명 자체를 포함한 생태계 전체로 퍼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생태친화적  소비,  그린뉴딜  정책,  저탄소녹색경영  등의  신자유주의적  생존전략은 자연과 노동에서 이윤을 추출하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녹색’  자본주의니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니 하는 환경친화적 명명만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없다.21   그런 탓에 기후 전문가들과 환경학자들과 과학자들은 글로벌 체계 전체가 대전환을 맞이하지 않는 한 소용돌이와 같은 기후재앙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극단적으로 제약될수록 지구의 환경이 개선되는 ‘코로나의 역설’은 기후위기 해결의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22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각계의 외침에도 지지부진했던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전 세계가 셧다운  상태에  돌입했을  때 일시적으로  극적인  진전을  보였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경제활동이 거의 정지되자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25%  이상 감소했고,  인도의 수질개선으로 멸종위기종이었던 갠지스강 돌고래가  발견되고,  관광객의  급감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베네치아의  수질이 개선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자연의 회복이 관측되었다.23  코로나의 역설은 기후위기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동시에 노출했다.  한편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인간의 무분별한 발전으로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 결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의 어두운 면이다.  다른 한편으로,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  정부와  산업과  의료와  과학이  일사불란하게 협력하여 공동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극복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은  시기상조이다.  전염병 대유행은 기후변화가 불러올 재앙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스템이  붕괴할  임계점에  이르면  보호무역주의와  자급자족경제를 강화하는 등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해지고 글로벌 협력의 유대는  쉽게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몇몇  선진국이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보여준 치졸한 행태는 자국중심주의와 국가 이기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집단본능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탈탄소사회로의 급격한 변침의 모멘텀을 조속하게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24  오히려 기후위기는  부정의와  불평으로  인한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폐부를 깊이 찌를 것이다.  재난은 보편적으로 닥치지만,  그 영향은 차별적으로 미친다.  기후재난 앞에서 가장 치명적인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1995년 미국 시카고를  덮친  폭염  사태에서  1인  가구,  노인, 빈곤층,  노숙자  등  사회에서 버림받은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실에 주목했다.25


클라이넨버그는 폭염과 같은 기상 참변이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이지만 연령,  성별, 인종,  경제력,  거주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요인과 결합하여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26로 나타난다고 통찰했다.  IPCC의 4차 보고서도 역시 기후변화의 일차적 희생자가 빈곤국가,  빈곤계층,  어린이와 여성,  일용직과  비정규직  육체노동자,  장애인과  경제적  소외  계층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사회적 약자는 곧바로 생태적 약자로 직결되는 셈이다.

기후재앙이 심화하여 수많은 기후빈민과 기후난민이 쏟아져 나올 때 사회와  국가의  대처와  별도로,  교회의  제사장적  돌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기후위기  시대에  자본주의의 내재적 한계로 인해 더 크게 고통받을 기후 약자를 돌봐야 한다. 교회는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자기성장과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보지 못하는 약자들을 찾아야 한다.  세상의 체계 안에 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  ‘중보적  위치’에  선  교회는  사회와  제도에서  소외당하는 기후 약자를 찾아서 그들의 영적,  심리적,  물질적 어려움을 돌

봐야 한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로 인해 급격하게 그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난민에 대한 기독교적 섬김과 선교의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27 기후위기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확신하면서도,  영성과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여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제사장적 삶에 힘써야 한다.

자연과 타인(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존중과 섬김의 자세로 서로 지탱하고 반영하고 치유하며 동반자적 관계성을 맺는 삶의 기술을 연마함으로써 기독교적 생태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적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삶의 양식과 결별하고 기독교의 가치에 부합하는 삶의 양식을 개발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자연과 타인과 약자에 대한 제사장적 중보 윤리는 개인,  사회,  국가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차원에서  구조적  형성과  공동체적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  개인 윤리의 차원에서 절약과 재활용을 실천하는 친환경적 생활을 습관화하도록 서로 독려하는 한편,  기후변화에 관한 진실을 공유하는 환경세미나를 열고  환경운동단체의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환경단체들끼리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28   더 나아가 환경입법을 지지하는 국민청원 등을 통해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국민적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29


3.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갈구하는 순례자 왕

기후변화는  세속주의와  자본주의,  관료주의와  산업화를  통해  세계를  재편한 현대성이 지닌 탐욕과 폭력이 전 지구적 파괴로 귀결된다는 폭로이고  징후이다.  현대성이  자연과  환경에  가장  적대적  파괴를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인간의  횡포와  무차별적  파괴를  정죄할  수  있는  악과 불의의 개념을 고려하지 않는다.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듯 분배하는 유엔기후협약에  정의와  평등과  인권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후정의네트워크가 “유엔 기후 변화협약의 원칙인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세대 간 형평성,  오염자 부담은 시장 메커니즘을 위해 훼손됐다”라고 지적하는 것 역시 ‘정의’의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인식과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는 촉구이다.30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이면이자 어쩌면 더 본질적인 측면이다.31 기후위기는 '정의의 부재'라는 세상의 민낯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불의와 불평등은 이익창출의 유일하고 정당화된 방식이다.  막대한 화석연료를 소비하며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들이다.  그들은 제삼 세계의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미래세대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해왔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경제적 비용은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자원과  이익의  분배  양상이  부담과  위험의  재분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선진국들이 챙긴 이익에 대한 비용이 개발도상국과 빈곤국가에게 청구되는 것이다.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들,  재난에 대한 완충시스템이 미비한 사회, 신에너지  친환경  정책을  수행할  기술과  자본을  갖추지  못한  저개발국,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는 약소국가들의 가난하고 소외된 국민들이 기후변화의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등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나라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아 발생한 어마어마한 환경비용이 미래의 모든 인류에게 고스란히 부과된다.32



 

‘정의의 부재’로 사람들이 통곡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식을 어떻게 드러내고 실현할 것인지 도전받는다.  하나님 나라 서사는 현실도피를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은  역사적  삶으로부터  이탈하거나  탈속적이고 신비적 이상주의로 현실을 각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희구는 세상과는 다른 시선으로 역사와 현재를 통찰하고 현실을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삶과 대안적 공동체를 일구려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로  세상  가운데  서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가치를 다양하고 풍부한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삶을 통해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통치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  기후위기는  기독교의  본질을  되물으며  그  존재  이유를  위협할 수 있다.33  하지만 기후위기는 복음의 복됨과 교회의 교회다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재앙과  같은 현실 속에서 인간의 고귀함과 품격을 지키며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사는 종말론적 삶의 비법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교회가 드러내야 하는 삶의 방식은 종말을 사는 나그네 왕의 행보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이뤄지는 창조와 구속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모든 이야기의 저자이시고 주인이시고 우리는 나그네와 객으로 머물다가 떠나간다고  믿는다.  나그네  된  우리는  다른  피조물을  동일한  손님과  객

으로  겸손과  존중으로  환대하며,  이후에  머물  이들을  유념하고  섬겨야 한다.  종말론적 나그네는 순례자 왕이기도 하다.  자연과 세계에 대한 무한한 책임의식을 지닌 중보적 왕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심부를 좀먹는 불의와 불평등을 외면하지 않는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의

를  사모하는  만큼  이  땅의  ‘정의’에  민감하고  불의로  고통받는  약자를 잊지 않는다.  정의가 없이는 다양한 생명들의 가치가 존중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번성해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기업의  전문가적 관료주의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기후위기 극복에 하나님 나라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고,  세상의  불의를  해소하는  정의와  해방의  구속을  구해야 한다.


Ⅳ. 나오는 말

기후위기는 우리 시대에 종말의 아포칼립시스처럼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예견된  위기는  도래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비관적 전망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쏟아져나오는 재난  시나리오의  극히  일부만  실현될지라도  인간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된다.  기후위기는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을 꼽아보는 자위적 외면으로  버틸  문제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현실을  인식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


인식이 전환되어야 관심을 일으키고 담론이 펼쳐지고 대안적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  전례가 없는 수준의 위기 예고 앞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언급한 세 가지 인식과 삶의 전환을 통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일굴 준비를 해야 한다.  즉,  시대의 광기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적  주권을  확신하는  선지자적  경각심을  통해서,  기후약자들을 향한 제사장적 돌봄과 동반자적 유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갈구하며 기후 부정의에 맞서는 나그네 왕의 결단을 통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그야말로  회개와  같은  수준의  생태적  전환을  꾀해야한다.34


기후재앙  혹은  기후붕괴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인간의 탐욕과 폭력으로 멍들고 무너져가는 현실을 애통해하고 거룩한 분노와 애절한 슬픔을 표출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종말론적 경고를 남발하며 두려움의 연기를 피우는 컬트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품고 깨어진 창조세계에 희년과 같은 치유와 재생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회복과 소망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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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코넬대의 비이커 실험에서,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곧바로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넣은 개구리는 체온을 조절해가면서 머물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데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여기서 착안하여 작가 올리비에 클레르크(Olivier Clerc)가 점진적으로 증폭되는 위기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거나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채 나쁜 상황을 맹목적으로 견디는 삶을 가리켜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2. 1차 보고서부터 5차 보고서까지 중요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로, 송재민, “기후변화 과학 및 국제 정책에 대한 고찰: 한계와 대안,” 신학과철학29 (2016), 229를 참고하라.

 

3.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대해 간단하고 쉬운 해설은, Greenpeace 홈페이지에 나온 “10분만에 읽는 파리기후변화협정’ A to Z”을 참고하라.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17235/blog-ce-paris-climate-agreement-a-to-z/ (2021.6.21. 접속).

 

4.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기후변화 홍보포털에서 제공하는 요약본을 참고하라.http://www.climate.go.kr/home/cc_data/2019/SR15_SPM_Korean.pdf (2021.6.21.접속). 특별보고서에 대한 간략한 해설은, 곽호철,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 나타난 기후위기와 기독교윤리적 대응,” 대학과 선교42 (2019), 174-181을 참고하라.

 

5. IPCC3개의 실무그룹 보고서 및 특별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통합하여 종합보고서를 작성한다. 1 실무그룹(WG I)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보고서이고, 2 실무그룹(WG II)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영향과 적응 및 취약성에 관한 것이고, 3 실무그룹(WG III) 보고서는 기후변화 완화에 관한 것이다. 6차 평가보고서(AR6) 1 실무그룹(WGI) 보고서는https://www.ipcc.ch/report/ar6/wg1/을 참고하라(2021.7.21. 접속).

 

6. Timothy Morton, Hyperobjects: Philosophy and Ecology after the End of the World (Minn, Ill: Univ of Minnesota Press, 2013). Morton은 하이퍼오브젝트의 예로 블랙홀, 아마존 밀림, 유전(oilfield), 인터넷과 함께 기후변화를 꼽는다.

 

7. 인류의 역사에 기후가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수행되었다. 기후와 역사의 관련성에 관한 고전적인 연구로, Hubert H. Lamb, Climate, History and the Modern World, 김종규 역, ª기후와 역사: 기후, 역사, 현대 세계4 (서울: 한울, 2004)를 참고하라. 유사한 연구로, Wolfgang Behringer, A Cultural History of Climate, 안병옥이은선 역, ª기후의 문화사4 (서울: 공감in, 2010)가 있다. 기상학자인 Lamb과 달리 역사학자인 Behringer는 기후변화가 문명의 전환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인다.

 

8. 복잡한 피드백 고리의 한 예로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를 들 수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화재는 많은 경우 농경과 목축을 위한 고의적 방화에 기인한다. 아마존 우림 지역에 단기간에 광범위한 콩 재배지를 확보하려고 저지르는 방화는 브라질 정부에 의해서 조장되거나 묵인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국제관계가 작용한다. 중국에서 쇠고기 수요가 급증 하면서 사료용 콩 수요가 증가했지만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인해 중국이 미국산 대두를 대체할 브라질산 대두의 수입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리는 극우, 친중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환경보호구역 지정 해제, 국립공원과 국영발전소의 민영화, 수력발전소 건설 등 반()환경()시장 정책을 밀고 나갔고 그 결과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는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강찬수, “미국-중국 무역전쟁이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한다,” 중앙일보(2019525). https://news.joins.com/article/23478966; BBC 코리아, “아마존 파괴 2008년 이후 최대 규모,” BBC(2020121).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5141679; 박병수, “아마존 열대우림, 한달새 축구장 58천개면적 사라졌다,” 한겨레(2021510).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994510.html 들을 참고하라.

 

9. David Wallace-Wells, 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 김재경 역, ª2050 거주불능지구4 (서울: 추수밭, 2021), 60-212.

 

10. 유럽의 정치지형까지 바꾼 시리아 내전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가뭄과 흉작으로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인이 증가한 이유도 크다. 흉작과 기근으로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하고 민심이 돌아서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진압으로 내전으로 비화하는 악순환의 기점에 기후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11. UNEP 배출격차보고서 2020의 내용은 녹색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greenacademy.re.kr/archives/8998& http://greenacademy.re.kr/archives/9027 (2021.7.2. 접속)

 

12. “World Scientists’ Warning of a Climate Emergency 2021” (BioScience, 28 July 2021). https://doi.org/10.1093/biosci/biab079

 

13.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기후위기론에 대한 반대가 거셌다.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 Hans LabohmIPCC를 비롯한 세계 기후학자들이 기후 위기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기우론자라고 비판하며 기후위기론의 자료나 통계가 허위 내지는 날조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한스 라붐 지구 온난화 환상과의 싸움세계일보 2010121일 자 기사 참고). 기후연구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도 위기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기후위기론을 불편해하는 견해에 대해서, Roy W. Spencer, Climate Confusion: How Global Warming Hysteria Leads to Bad Science, Pandering Politicians and Misguided Policies That Hurt the Poor, 이순희 역, ª기후 커넥션: 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4 (서울: 비아북, 2008)을 보라. 10년 전과 달리 최근에 기후위기론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14. Wolfgang Behringer, ª기후의 문화사4, 227.

 

15. Wolfgang Behringer, ª기후의 문화사4, 264-269. 베링어의 역사 분석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기후현상이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영향에 대한 통찰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16. 포스트휴머니즘이 전제하는 인간과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하여, 윤형철,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인간됨과 인간다움의 조건에 관한 단상: 포스트휴머니즘 인간론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답변,” 조직신학연구37 (2021), 31-46을 참고하라.

 

17. 조영호, “기후변화와 인간, 그리고 윤리”, 기독교사상719 (2018), 19.

 

18. 지질학상으로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신생대 제4기의 지질시대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인류세(anthropocene)는 현생인류의 활동이 시작된 최근의 시기가 지구의 지질과 기후에 불가역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홀로세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고안되었다. 인류세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으며 인류세의 기점으로 6천 년 전 농경시대 17세기 신대륙의 발견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인구 대폭발 등이 거론된다.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류세 워킹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 AWG)을 출범시킨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에 의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0년대 이후 인류세는 지질학의 범위를 넘어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학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개념은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발표한 브룬트란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21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환경 패러다임적 개념이 되었다.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Our Common Future (U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43을 보라. 논문의 표현은 국내에서 2018년에 제정되어 202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법(법률 제17326) 2조의 정의를 따른다.

 

20. 구약의 재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다루는 연구인, 김진수, “기근, 처형, 그리고 회복: 사무엘하 21:1-14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미지,” 성경과 신학50 (2009): 179-212를 참고하라.

 

21. David Travis,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in ª기후정의: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에 맞선 반자본주의의 대안4, 이안 앵거스 편 (서울: 이매진, 2012), 155.

 

22. “코로나의 역설...인간이 멈추자 지구가 건강해졌다”. (202043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200402/100480182/1 (2021.7.2. 접속)

 

23. “코로나19로 수질 개선...인도서 사라졌던 갠지즈강 돌고래발견” (2020424일자. 뉴스펭퀸 기사)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58 (2021.7.2. 접속); “코로나의 역설...관광객 줄자, 60년 만에 맑아진 베네치아 운하” (2020318일자 중앙일보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732593 (2021.7.2. 접속)

 

24. 고재경 외, “코로나19 위기, 기후위기 해결의 새로운 기회,” 이슈&진단412 (2020), 16-18. 이 보고서는 2008-2009년 금융위기가 고탄소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전환의 모멘텀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분석하고, 코로나19 사태를 기후위기 대비 대전환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5. Eric Klinenberg,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홍경탁 역, ª폭염사회: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4 (서울: 글항아리, 2018).

 

26.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은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가 창안한 개념이다. 모스는 법률, 관습, 의례, 신화, 제도 등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 같은 요소들이 총체성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개념을 통해 모스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나 표상이 통합된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모스의 사상을 소개하고 해설한 책으로, Bruno Karsenti, ª마르셀 모스,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4 (서울: 동문선, 2009)을 참고하라.

 

27. 장훈태는 다양한 난민 발생 요인 중 자연재해와 같은 환경적 요인을 언급하면서, 환경난민의 경우 국외 난민보다 국내 난민이 더 빈번하고 규모도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장훈태, “세계 난민 문제와 선교,” 성경과 신학77 (2016), 175.

 

28. 2021520일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교단과 교계 단체는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선포식을 열고 기후위기에 대한 공동의 협력과 비상 행동을 다짐했다. 그즈음 기독교환경운동연대도 7주간 기후위기 집중 대응을 위한 그린 엑소더스 캠페인을 추진하면서 교회와 교계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려고 노력했다.

 

29.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입안된 국내 정책과 법률에 관한 간단한 설명은, 송오식,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 성경적 원리에서 해답을 찾다,” 종교문화학보17 (2020), 91-96을 참고하라.

 

30. 기후정의네트워크,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급진적인 새로운 의제가 필요하다,”in ª기후정의: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에 맞선 반자본주의의 대안4, 이안 앵거스 편 (서울: 이매진, 2012), 253. 기후정의네트워크(Climate Justice Now Network, CJN)는 제삼 세계, 원주민, 여성 그룹, 좌파 운동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급진적인 기후운동을 지향한다. 이들은 기후협상이 자본주의가 초래한 부정의를 해소하고 소외된 약자의 권리를 세우는 방향으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31. 최근 기후변화 담론은 환경과 경제 위주에서 정의로의 전이를 보여준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도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담론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 조효제, ª탄소 사회의 종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4 (서울:21세기북스, 2020), 263-282.를 참고하라.

 

32. 2018년 스웨덴 의회당 바깥에서 결석시위를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2019년에 전 세계 2천여 개 도시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시위를 주도하면서 다음 세대의 환경운동가로 급부상했다. 20199월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툰베리는 각국 정상들 앞에서 기성세대와 선진강국의 무책임을 질타했다. 스스로 대멸종의 시대에 살아야 하는 세대라고 말한 툰베리는 젊은 세대의 분노와 절망감을 이렇게 대변했다. “지난 30년 동안 과학은 너무도 분명하게 경고했습니다. 정치적 해법을 마련해야 마땅했는데도, 당신들은 방관하기만 했으면서 어떻게 감히(How dare) 여기까지 와서 할 만큼 하고 있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까?어떻게 감히 당신들은 이 문제가 일상의 비즈니스와 같은 몇 가지 기술적 해법으로 해결될 것처럼 말합니까?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당신들의 배신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로 결정한다면, 단언컨대 우리는 당신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Greta ThunbergSpeech At The U.N. Climate Action Summit transcript 중에서 발췌인용함).

https://www.npr.org/2019/09/23/763452863/transcript-greta-thunbergs-speech-at-the-u-n-climate-action-s ummit (2021.7.23. 접속).

 

33. 이정배, “기후붕괴 시대의 종교: 생태 맹()에서 해방되는 기독교를 기대한다,” 기독교사상719 (2018), 12.

 

34. 송준인은 이것을 생태 정의로의 회심”(conversion to Eco-justice)라고 부른다. 송준인, “생태 정의로의 회심(conversion to Eco-justice),” 기독신문(202146).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541 (2021.8.2. 접속).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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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와 그리스도인의 삼중적 생태 전환|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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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Threefold Ecological Transformation of

Christians in the Age of Climate Crisis


Yoon,  Hyung  Chul


Climate change, which is related to the survival of all living things on the planet, is not a problem that only climatologists, policy makers, or environ-mental engineers are concerned with, but is a problem facing all humankind. Several sources, including a series of reports published by the IPCC, warn that our time is facing the total catastrophe of climate change.  In the era of climate crisis, the church must promote the following ecological trans-formation in order to appear as a community of restoration and hope that participates  in  God’s  work  of  healing  the  broken  creation.

First, Christians should challenge the anthropocentrism reflected in concepts such as the ‘anthropocene’ and ‘sustainable development’, and express our conviction that what happens to ecosystems and history as a whole depends on God’s  sovereignty.  Through Christian  conviction of  God’s providence instead of indifference or hypersensitivity to climate change, Christians will be  able  to  stand  as  awake  prophets  in  times  of  crisis.

Second, Christians should practice priestly interest and care for the climate vulnerable, who are apt to be marginalized due to the deepening polarization caused  by  the  climate  crisis.  Christians  must  learn  to  live  a  life  of  com-panionship while respecting and supporting the ecologically weak, and develop a communal lifestyle that conforms to Christian values, not capitalist desires.

Third, Christians should sharply point out the injustice and inequality behind the climate crisis and strive to reflect the values of the kingdom of God, such as righteousness and peace,  in reality.  We must  see ourselves as an intermediary king with an infinite responsibility for nature and the world, and     also a sojourner king who welcomes other guests while staying in the world where God is the Master. We need to be the medium of action so that  the  justice  of  the  kingdom  of  God  can  respect  the  value  of  various lives  and  prosper  properly  toward  the  glory  of  God.

Through  this  threefold  ecological  transformation,  I  hope  that  a  holy  eco-logical  virtuous  cycle  that  arouses  collective  interest,  revitalizes  Christian climate discourse,  and provokes  community  movement  takes  place in  the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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