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무례함에서 나를 지키는 법-발타자르 그라시안 저/조셉 제이콥스 편/최유경 역 | 다온북스 | 2026년

“‘무엇’보다도, ‘어떻게’가 품격을 만든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남긴 삶의 지침서인 〈The Art of Worldly Wisdom〉은, 시대와 세계를 초월해 사랑받은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에 관한 짧은 격언과 조언 300여 개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담긴 300여 개의 격언과 해설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우정, 윤리, 대화법, 신중함,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는 그의 조언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판본은 스페인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한 조셉 제이콥스의 뛰어난 번역을 바탕으로, 본문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격언과 해설만을 엄선하여 일상 속 통찰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이 책은 오늘날 AI 시대 정보 과잉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답을 준다. 실용적인 지혜는 물론, 자기관리, 인간관계, 리더십, 상황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선택의 중요성 등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서다.-예스24
흥미롭게 읽은 처세술이다. 가끔은 이런 종류의 책도 도움이 된다.

윗사람을 이기는 것은 피하라
모든 승리는 증오를 낳으며, 윗사람을 상대로 한 승리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론 치명적이다. 우월함은 항상 미움을 사며, 하물며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한층 더 그렇다. 당신이 평범한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면 신중하게 그것을 감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잘생긴 외모라도 일부러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하여 감출 수 있다. 어떤 윗사람들은 당신이 운이 좋거나 성격이 좋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 하지만 '좋은 판단력' 만큼은 누구라도, 특히 군주라면 당신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조언할 때에는 그들이 찾지 못한 것을 안내한다기보다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해야 한다. 별들이 이 기술 을 잘 알고 있다. 별들은 행복한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보여준다. 별들은 태양의 자녀이며 태양처럼 빛나지만, 결코 태양의 광채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p. 27).
지식과 선의
지식은 선의와 함께 할 때 성공을 지속시킨다. 훌륭한 지성이지만 악의와 결합한 경우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괴물을 낳았다. 사악한 의지가 결합되면 모든 탁월함은 독이 되고 거기에 지식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교묘한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파멸만을 낳는 우월함은 비참한 우월함이고 분별력 없는 지식은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p. 38).
행운을 얻는 기술
행운에도 법칙이 있다. 현명한 사람에게 행운이란 전적으로 우연만은 아니다. 주의 깊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운명의 문 앞에 당당히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더 현명한 이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영리함과 대담함을 활용하여 앞으로 밀고 나아가고, 자신의 미덕과 용기로 날개 짓하며 행운의 여신에게 다가가 그녀의 호의를 얻어낸다. 진정한 철학의 잣대로 보면 심판자는 미덕과 통찰력이다. 왜냐하면 행운이나 불운은 결국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43).
사람마다 가진 약점을 찾아라
이것은 타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이는 결단력 보다는 더 많은 노련함을 요한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의지는 각자의 동기가 있고 동기는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간은 우상 숭배자다. 어떤 이는 명성을, 어떤 이는 사리사욕을, 대부분은 쾌락을 우상으로 삼는다. 노련함이란 바로 이러한 우상들을 파악하여 그런 우상을 지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알게 되면, 당신은 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열쇠를 쥔 것과 같다. 그들의 원초적 동기를 활용하라.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의 본성 중 고귀한 부분보다는 가장 저열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잘 조직된 성향보다는 뒤죽박죽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 사람의 지배적인 열정을 추측하고, 한마디로 그것에 호소하며, 유혹으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의 자 유 의지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p. 48).
생각은 소수처럼 하고 말은 다수에 맞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다수의 생각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오히려 위험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일은 오직 소크라테스처럼 특별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상대는 모욕으로 느낀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진짜 생각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생각에 반할지라도 대중의 목소리로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을 반박하지 않으며 반박당하는 것도 피한다. 마음속에서는 판단이 서 있지만, 그걸 아무 데서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현명한 사람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며, 은밀하게 소수의 적절한 사람 앞에서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p. 65).
명예와 관련된 문제는 애초에 피하라
이는 신중한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멀리하고 항상 신중함이라는 중간 지점에 머물기 때문에, 그 신중함을 뚫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 문제가 생겨 거기서 훌륭하게 벗어나는 것보다 처음부터 그런 문제를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명예 문제는 우리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거기서 승리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의 명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명예를 위한 싸움에 쉽게 뛰어들곤 한다. 하지만 이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명예 문제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아예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싸움을 거절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p. 69).
자존심을 잃지 말라
그러나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지도 말라. 당신의 올바른 감각이 곧 당신 정직함의 진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어떤 처벌보다도 스스로에게 내리는 엄격한 판단을 더 중요한 규범으로 삼아라. 보기 흉하거나 부적절한 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권위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점을 늘 기억한다면, 세네카가 말한 '가상의 가정교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p. 72).
이를 드러낼 줄 알아라
사자가 죽은 뒤에는 토끼라도 갈기를 뽑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용기란 그런 우스운 장난이 아니다. 처음 한 번 물러서면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밀려 결국 마지막까지 내주고 만다. 초기에 단단히 버텼다면 피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생을 하게 된다.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보다 더 고귀하다. 그것은 신중함의 칼집에 꽂힌 채 언제든 뽑아 쓸 준비가 된 정신의 점이다. 높은 지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도 바로 이 도덕적 용기다. 육체적 겁쟁이보다 도덕적 겁쟁이가 훨씬 더 비천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생기가 빠지고, 결국 게으름과 무기력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현명한 자연은 벌에게 꿀의 달콤함과 침의 날카로움을 사려 깊게 결합해 놓았음을 기억하라(p. 76).
마무리를 잘하라
행운의 집에서는 기쁨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슬픔의 문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마무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구에서 받는 박수보다 품위 있는 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운이 나쁜 사람들에게 흔한 일은,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비극적인 경우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때 누구나 받는 그 박수가 아니라, 떠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전체적인 인상이다. 인생에서 '앙코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운의 여신도 대개 누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지는 않는다. 찾아 오는 손님은 따뜻하게 맞이해도, 떠나는 손님에게는 대체로 차갑기 마련이다(p. 80).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 것보다 규칙을 얼마나 성실히 지켰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최종적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보다, 결과가 좋았는지만 본다. 목적을 이루었다면 잃을 것은 없다. 결말이 좋으면, 과정이 다소 미흡했더라도 모든 것이 용서되고 빛난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결과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면, 규칙을 벗어나는 것조차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p. 87).
항상 농담만 하지 말라
지혜는 진지한 순간에서 드러나며, 가벼운 재치보다 훨씬 더 값지게 평가된다. 늘 농담할 준비만 되어 있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농담만 일삼는 사람은 거짓 말쟁이와 닮았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를 믿지 않듯, 농담만 하는 사람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늘 거짓을, 다른 쪽에서는 늘 농담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신이 언제 진지하게 판단하고 말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농담은 결국 재미마저 소진시킨다. 많은 이들이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얻지만, 그 대가로 '분별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잃는다. 농담은 잠시 머물러야 하고, 진지함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p. 97).
지위를 과시하지 말라
개인적 매력으로 두드러지는 게 아니고, 위엄으로 남을 압도하려 드는 것은 더 불쾌감을 준다. 스스로를 중요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태도는 미움을 사기 쉽다. 사람들의 질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데 말이다. 존경을 더 많이 얻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덜 얻게 된다. 존경은 타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직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가 없으면 직무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위엄은 유지해야 한다. 존경심을 강요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라. 자신의 직위가 지닌 위엄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없음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며 그 직위가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면, 우연히 얻은 지위나 배경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재능 때문에 존중받도록 하라. 실제로 왕들조차도 자신의 왕좌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질 때문에 존경받기를 원한다(p. 125).
타인의 치부를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남의 나쁜 평판에 관심 두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미 자신의 명예가 흐려졌다는 신호다. 어떤 이들은 남의 오점을 들춰내며 자신의 흠을 가리거나 씻어내려 한다. 혹은 거기서 위안을 얻지만, 그것은 바보들만이 찾는 가장 비겁한 위안일 뿐이다. 남의 험담을 파헤칠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에게 흠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덜 알려진 사람의 경우 결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잘못을 기록하는 결점 기록관이 되지 말라. 그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며, 인간적인 심장을 잃은 자만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p. 144).
어리석음은 저지름이 아니라 감추지 못함에서 드러난다
당신의 욕망은 봉인하고, 결점은 더욱 철저히 감추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현명한 이는 그것을 덮고 어리석은 이는 떠벌린다. 평판은 드러난 행위보다 오히려 감춰진 것들로 결정된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면, 최소한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위대한 인물의 실수는 일식이나 월식과 같다. 빛이 클수록, 그 그늘은 더 많은 눈에 띈다. 친구라 해도 자신의 치부를 쉽게 드러내지 말라. 가능하다면,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질 만큼 감추는 편이 낫다. 이를 돕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혜가 있다. 바로 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 145).
말할 때 주의하라
경쟁자 앞에서는 신중하게 말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는 품위 있게 말하라. 말을 덧붙일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마치 유언장을 작성하듯 말하라. 말이 적을수록 시비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줄어 든다.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말조심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래야 정말 중대한 순간이 닥쳤을 때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깊은 침묵과 비밀을 지키는 힘에는 신성에 가까운 광채가 깃들어 있다. 경박하게 입을 놀리는 자는 머지않아 추락하거나 실패하게 된다(p. 180).
동정심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불행한 이의 운명과 엮지 마라
한 사람의 불운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 사람은 대개 많은 이들의 불행을 발판 삼아 행운을 누리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들에게는 사람들의 선의를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는, 즉 쓸모없는 호의로 그들의 불운을 보상해 주려 한다. 그래서 잘나갈 때는 미움을 받던 사람도, 역경에 빠지면 순식간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도 한다. 상대의 성공을 시기하며 날을 세우던 복수심은, 그가 추락하는 순간 가련한 이를 향한 동정심으로 뒤바뀌고 만다. 그러나 운명이 카드를 섞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라. 늘 불운한 사람들의 곁을 맴도는 이들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이 날며 행복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새 그들 곁에서 함께 비참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 받는 자와 운명을 함께하는 일은 고귀한 영혼의 증거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아니다(p. 183).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친밀함을 피하라
타인에게 허물없이 대하지도 말고, 타인이 당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허락하지도 마라. 격식을 무너뜨리며 친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지닌 영향력의 우위, 곧 존중의 근거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밤하늘의 별이 광채를 유지하는 까닭은 사람들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적인 것은 언제나 예의와 거리를 요구한다. 지나친 친밀함은 필연적으로 경멸을 낳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낼수록 사람은 가진 것이 적어 보인다. 격식 없는 교류 속에서는 침묵과 절제가 가려주었을 결점들까지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밀함은 미덕이 아니다. 윗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위험해지고, 아랫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품위를 잃는다. 특히 무지한 사람과는 결코 친밀해지지 마라. 그들은 당신이 베푼 호의를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로 착각하고, 서슴없이 무례하게 굴 것이다. 지나친 친밀함은 천박함과 맞닿아 있다(p. 197).
마음의 평화가 곧 좋은 인생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면,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라.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관찰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다툼 없는 하루는 근심 없는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평온하고 즐거운 삶은 마치 두 번 사는 것과 같은 풍요로움을 선사하니, 이것이 바로 내면의 평화가 주는 진정한 열매다.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들을 가볍게 흘려보낼 줄 아는 이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다. 모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 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는 없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 쓰며 괴로워하는 것과, 정작 마음을 쏟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어리석은 태도다(p. 212).
가치를 알아보는 곳으로 옮겨 가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때로는 익숙한 터전을 떠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향은 때때로 천재들에게 계모처럼 냉대한다. 시기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움트며, 사람들은 당신이 이룬 위대한 성취보다는 당신의 미미했던 시작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먼 곳에서 온 평범한 물건조차 귀하게 대접받고, 낯선 땅에서 건너온 색유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미지의 곳에서 온 것은 본질적으로 존중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지닌 신비로움과 함께, 이미 완성된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한때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받던 인물이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존경받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외국인들은 그가 먼 곳에서 왔기에 존경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은 그가 이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존경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원 구석에 굴러다니던 평범한 나무토막이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제단 위에서 숭앙되는 그 나무 조각상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다(p. 218).
항상 갈망할 무언가를 남겨두어라
모든 것이 충족된 완벽한 행복은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육체가 호흡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열망해야만 한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흔히 환멸과 불만뿐이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태울 '미지의 영역'이 항상 남아있어야 한다. 지나친 행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을 돕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갈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남는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다. 이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소멸하는 순간, 공포는 고개를 드는 법이기 때문이다(p. 220).
쉬운 일은 신중히,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다루라
이는 쉬운 과제 앞에서 자만심이 피어나지 않도록 하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지레 겁먹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업무의 실패는 흔히 '이미 다 된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꾸준한 노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조차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크고 복잡한 일을 마주했을 때는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여 압도당하지 말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어려움을 미리 헤아리려 하면, 오히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다(p. 224).
무관심이라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하라
원하는 것을 얻는 기발한 방법 중 하나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그림자와 같아서, 쫓아가면 멀어지고 외면하면 따라오는 법이다. 또한 무시야말로 가장 정교한 형태의 복수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글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러한 방어는 언제나 논쟁의 흔적을 남기며, 상대를 벌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는 위대한 사람과 싸우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만약 뛰어난 상대가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망각보다 더 혹독한 복수는 없다. 망각은 그들을 보잘것없음이라는 먼지 속에 완전히 묻어버린다. 대담함을 가장한 사람들은 위대한 것을 무너뜨리면 그것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추문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추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된다. 설령 이긴다 할지라도 명성에는 얼룩이 남게 되고, 상대에게는 만족감만 줄 뿐이다. 이 작은 얼룩의 그림자는 명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 빛을 흐리게 만든다(p. 225).
바보들의 병에 죽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이성을 잃은 뒤에야 죽지만, 바보는 이성을 찾기도 전에 죽는다. '바보들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심신이 병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에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기에 오히려 삶을 이어간다.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여 생존하는 자들 역시 어리석은 부류이지만, 그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병드는 이도 있고, 너무 무지하기에 병드는 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어리석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끝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는 거의 없다(p. 228).
영원히 사랑하지도, 영원히 미워하지도 말라
오늘의 친구가 내일 가장 지독한 적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니,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정의 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훗날 당신을 공격할 무기가 될 만한 정보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는 우를 범하지 말라. 반대로 적들에게는 언제든 화해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그 문이 관용을 베푸는 태도로 열린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는 더 큰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오랜 복수는 때로 현재의 고통이 되어 돌아오며, 타인에게 가한 악행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기쁨은 결국 더 큰 슬픔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p. 237).
세상사의 결을 읽고 긍정적인 면을 보라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거스르거나 부정적으로만 치우쳐 해석하지 말라. 모든 일에는 매끄러운 겉면과 거친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도 잘못 잡으면 손을 다치지만, 적이 던진 창조차 자루를 잡으면 당신을 지키는 견고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많은 일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그 이면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있으며, 진정한 지혜는 바로 그 유리한 측면을 찾아내는 기술에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항상 사물의 가장 좋은 면을 바라보고, 선한 의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 누군가는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슬픔만을 찾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은 가혹한 운명이 드리울 때 당신을 보호해 줄 거대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며, 모든 시대와 상황에 적용되는 삶의 중요한 원칙이다(p. 244).
신(神)의 영역은 신에 의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는 인간의 노력이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신의 뜻에 맡겨라
이것은 위대한 거장의 법칙이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p. 271).
한 번에 너무 큰 호의를 베풀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베풀어라
상대가 되돌려줄 수 없을 만큼 과하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사함을 바닥까지 긁어내지 마라. 받은 사람이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아예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감당 못 할 만큼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한 채무자로 남기보다, 차라리 당신의 '적'이 되어 도망치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상이 자신을 만든 조각가를 늘 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듯, 은혜를 입은 사람도 은인을 항상 마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베풂이란, 비용은 적지만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어 그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p. 275).
반박하는 자에게 곧바로 맞대응하지 말라
상대의 반론이 '교활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천박함'에 서 나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상대의 반박이 늘 고집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교묘한 술책 일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라. 천박함에 응수하면 곤경에 빠질 수 있고, 교활함에 휘말리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음험한 자들을 상대할 때만큼 경계가 요구되는 순간은 없다. 상대가 당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자물쇠 따개'에 맞서는 최상의 방책은, 주의력이라는 열쇠를 아예 자물쇠에 물려두어 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p. 2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