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땀 흘리는 글-송승훈, 양수정, 유이분, 하명희 공편 | 창비교육 | 2020년
“수고했어, 오늘도” 매일 일하며 살아가는 일개미들에게 보내는 위로.
『땀 흘리는 글』은 꾸준히 노동 관련 서적을 출간해 온 ‘작은책’의 편집장을 비롯하여 현장 교사, 소설가가 한데 모여 일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을 가려 엮은 생활글 선집이다. 이 책은 N포 세상에 내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선집 『땀 흘리는 소설』의 후속 시리즈로,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야말로 ‘생생’하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기에 억지스럽지도, 과장되지도 않는다. 글쓴이들은 나는 이런 고민을 했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뿐이다. 여기 담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했던 고민과 내가 겪은 아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에 안도하게 된다.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 때로는 구체적인 말보다 깊은 공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까운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내 마음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어느새 사르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책이 당신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예스24
일생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내려놓고 산다. 그만큼 먹고 사는 일은 절박하다. 그럼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삶은 한번 뿐이니 말이다.

나는 어떻게 작사가가 되었나-김이나
나는 작사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다만 음악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공연 기획사에 이력서를 넣어 보고,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화성학 책을 보고 남은 월급으로 전자 키보드를 사서 작곡을 해 보기도 했다.(물론 다시 들어 보면 표절이라 번번이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일들은 평범한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아등바등 벌인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독립을 최대한 빨리 이뤘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내(p. 12)세울 만한 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간절하게 음악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 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그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나는 '간절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급하기만 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환경을 탓하고, 잘된 사람들에게서 다른 외부적인 이유만을 보며, 결국에는 쉽게 포기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당장 하루하루가 당신을 죄여 올 텐데, 어떻게 마냥 재능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한 우물을 팔 수 있겠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핏줄 부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저런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 취직했다. 이동 통신사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한때 여기저기서 난립했던 부류의 회사 중 하나였다. 모바일 콘텐츠라 해봐야 당시만 해도 벨 소리가 다였다. 어느 회사가 더 많은 음반 기획사와 계약하여 벨 소리를 납품하느냐가 관건일 때였다. 나는 벨 소리 차트 페이지에 올릴 추천곡을 고르고, 벨 소리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 등을 맡았다. 마치 음반 기획사에 입사한 기분이었다. 내가 음 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흥미로(p. 13)웠다. '음악 일을 하고 싶은데, 고작 벨 소리 차트나 만들고 있다니'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간절함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언저리 일인들, 음악 관련 일이면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음악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즈음에 김형석 작곡가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돌하기 짝이 없다. 그 대단한 작곡가에게 대뜸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있었다니. "팬이에요." 하고 사인이나 받고 말 법도 한데, 어려서 그랬을까. 낯짝이 굉장히 두꺼웠다. 그때는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김형석 작곡가가 ‘희망의 빛 덩어리’로 보였을 뿐,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재능이 있어야 가르칠 수 있어요. 작업실에 한번 와 봐요." 백 프로 빈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몇 번이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배울 수 있나요?"라고 묻자 웃기만 하시다가, 빨리 나를 보내려고 그냥 하신 말씀 같다. 하지만 나는 작업실 주소를 적어 갔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진짜로 찾아갔다. "피아노 칠 줄 알아요? 한번 쳐 봐요." 뚱땅뚱땅, 뻔한 코드를 쳤던 기억이 난다. 멋 부린답시고 말도 안 되는 멜로디도 넣어 가며. 다소 난감해했던 그의 표정이 기억난다(p. 14). "글쎄요••••· 기본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야 알게 된 김형석 작곡가의 특징은 한마디로 마음이 약해도 너무 약한 분이라는 거다.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게 덤비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기회를 주시더라. 거절을 잘 못하는 스타일, 그조차 나에겐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작곡가는 안 되는 모양이구나. 그럼 그렇지. 나는 그래도 감사한 마음에 '김형석 with Friends' 콘서트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러 오시라고 내 홈페이지 주소를 적어 드렸다. 사진을 구경하던 김형석 작곡가는 내가 쓴 일기 게시판을 둘러보고는, 글을 재미있게 쓰는데 작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언제든지 기회만 주세요!" 이토록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이어져 이루어졌다, 작사가로서의 내 시작은. 음악에 대한 동경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해 준 모바일 콘텐츠 회사, 김형석 작곡가의 콘서트 맨 앞줄을 예매한 일, 그 콘서트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포스팅한 일, 별것 아닌 하루들을 기록한 일, 작곡가님을 만났을 때 뻔뻔스럽게 들이댄 일. 간절한 소망은 일상 속에서 작은 우연이 되어, 훗날 큰 기회가 왔을 때 폭죽이 되어 터진다. 작사가가 되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나에게도 방법은 없었다. 화가, 소설가 등등 창작 방면의 직업에는 '방법'이 명확하게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p. 15).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 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그리고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p. 16).
인터넷으로 책을 팔고 있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손님이 이곳에 방문해서 책을 구입해야 한다. 책은 솔직한 물건이다.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라는 말은 수학 명제만큼이나 확실한 정의다. 그러니 내가 좋은 책을 알(p. 48)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헌책방에서 그 책을 팔면 된다. 그건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다른 이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내가 가진 강점은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잘 맞는지 알아내는 게 아니라 책 그 자체에 담긴 작가의 진정성과 노력을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다. 그러니까 우리 헌책방에 오면 누구든지 괜찮은 책 한두 권 정도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손님이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면 책을 보여 줄 수 없고 당연히 구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p. 49).
그러나 소중하다고 해서 꼭 그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보람이나 자부심보다는 월급을 동력으로 일했다. 많을 땐 하루에 지퍼나 단추를 몇만 개씩도 만들었지만, 전혀 성취감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만들 뿐,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는 물건, 내가 없더라도 돌아가는 공장, 내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 딱 그랬다. 주물 공장의 일은 내 삶에 안정감을 주었지만, 그 일 속에 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근속 연수가 늘어날수록 일이 너무 지겨워졌다. 환경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주물 공장의 일은 출근해서 기계 앞에 앉으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일어날 일이 없다. 쇳물의 위험성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일 하느라 대화가 힘들고, 쇳물이 튈까 봐 자리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 다. 출근해서 벽만 보고 기계처럼 단순 반복 작업을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10년간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이 한 문장으로 10년을 설명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공장에서 이십 대를 다 보내고 서른을 맞이한 게 8년 차쯤이었는데 그때 번아웃이 왔다. 출근하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언제 퇴근 시간이 오는지 벽시계를 돌아보는 것이(p. 156)었다. 그런 모습을 들켜서 한 소리 듣고도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난 지쳐 있었다. 단 1년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일을 포기할 때의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을 그만둘 순 없었다. 대단치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일이니까. 매일 똑같은 단순 반복 작업이 아무리 지겨워도, 어차피 내가 살면서 본 노동자 중에 일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나처럼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하는 듯했고, 거기에 자부심이나 보람, 적절한 보상 같은 동력을 더해서 견디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생활의 보장을 동력으로 견딜 뿐이었다. 일은 원래 견디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결론지은 까닭은, 평생 한 번도 일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일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누어질 뿐, 좋아하고 말고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서른두 살에 기적처럼 좋아하는 일이 찾아 왔다. 2016년 5월 16일.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p. 157).
어떤 사람이 잘 산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보통 돈이다. 직업을 정할 때도 연봉의 유혹은 크다. 월급 많이 주는 곳이 가장 좋은 회사다. 그런데 그런 직장이 나의 좋은 삶을 지속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원래 돈은 속삭인다. 나를 줄 테니 너의 모든 것을 달라고. 그래서 특히 젊은 나이에 첫 직장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p. 168). 돈의 쓰임이 곧 삶의 자세이다. 젊을 때부터 나를 던져 돈과 삶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돈의 흐름에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게 된다. 내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다.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가령 고액 연봉을 받는 학원 강사가 처음부터 그 일을 오래 하려고 마음먹지는 않는다. 메뚜기도 한철이니 벌 수 있을 때 한몫 챙기자며 밤낮으로 몸을 불사르는데, 큰돈을 쉽게 만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보수가 적은 일은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돈이 기준이 되면, 삶의 만족을 돈 아니면 채우기 힘들고 적은 돈으로 행복을 창안하는 일에 무능해진다. 또 그런 일터에는 비슷한 가치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이 또한 중요하다. 인생의 벚꽃 시절을 누구와 보내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행복은 결코 혼자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도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 번뿐인 인생. 잘 벌어 잘 먹고 잘 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의 세계관에 맞게 추구하면 될 일이다. 한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돈의 세례 속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인생이 많지도 않거니와 돈은 속성상 충족을 모른다. 바닷물처럼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킨다. 돈의 만족보다 삶의 만족을 이루기가 더 쉽다. 이른 나이부터 안빈낙도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찌감치 돈에 정신을 묶어 두는 것도 서글프다(p. 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