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히가시노 게이고 저자(글) · 김난주 번역, 재인 · 2023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격 추리물, 특히 베스트셀러 『가면 산장 살인 사건』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무척 반길만 한 또 하나의 ‘클로즈드 서클’, 이른바 ‘밀실 살인’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소위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시리즈’ 3부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 소설은 고립된 산장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어찌 보면 미스터리 소설의 세계에서는 패턴화된 설정일지 모르지만, 그곳에 모인 7명의 남녀가 어느 연극의 오디션에 합격한 배우라는 점, 그들이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살인극을 벌이게 된다는 점 등으로 연극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이중, 삼중의 구조 속에서 살인조차 그것이 실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단지 설정에 불과한 것인지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독자에게 스릴 넘치는 불안감을 안겨 준다.-교보문고. 두 번째로 읽은 이 작가의 책인데 손에 땀이 날 지경은 아니다. 그래도 흥미롭게 봤고, 계속해서 이 작가의 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말하지." 혼다가 꿀꺽 침을 삼켰다. "이 살인극은 연극이 아니야. 우리가 연극이라고 생각할 뿐, 죄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앞뒤가 맞아. 범인은 원래 꽃병을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어. 그런데 예상치 않게 피가 묻자 뒷마당에 버리고 대신 이 쪽지를 써서 쓰레기통에 넣은 거야. 요컨대 아쓰코도 유리에도 진짜로 살해당했다는 얘기야." "말도 안 돼!” 다도코로 요시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놀라서 녀석의 얼굴을 봤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 입술까지 하얬다. 그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가 말했다. "그 입다물어, 멋대로 지껄이지 말라고!" "응, 그러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까."(p. 181).
"내일이면 끝나. 어떻게든 내일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난 싫어. 전화할 거야." 다도코로가 다시 일어서려고 하자 혼다가 그의 어깨를 위에서 꾹 눌렀다. "오디션이 물거품이 되고 말텐데."(p. 194). 그 한마디는 효과가 있었다. 다도코로의 물이 마치 스위치를 끄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오디션……그렇구나." "그래, 바로 그거야." 아마미야가 나직이 말했다. "난들 왜 전화하고 싶지 않겠어,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데 말이야. 하지만 만약 이게 모두 선생님의 계획이라면 전화하는 순간 우리는 실격이야." "실격당하고 싶지는 않아." 나카니시 다카코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 않아." "우리 모두 마찬가지예요." 구가 가즈유키가 말했다. "그렇군...." 다도코로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p. 195).
"아마미야도 연락했더라. 다들 걱정한다고." "아마미야? 그 친구가 연락했어?" "응. 아쓰코와 유리에에게도 전해 달라고 얘기해 두었으니까 조만간 면회하러 올지도 몰라." 아마미야 교스케도 모토무라 유리에도 살아 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그들은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도중에 발이 묶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짓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복수할 요량으로 전화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리얼한 연기에 나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한편 나는 의사에게 내 몸 상태에 관해 듣게 되었다. 외상은 대단치 않지만, 하반신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중추 신경이 망가졌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 아래로는 근육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하반신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며칠을 계속해서 울었다.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일이라고는 해도, 그 경위를 생각하니 마음속에서 증오심이 끓어 올랐다. 물론 그 세 사람에 대한 증오다. 나는 엄마에게 그들의 면회를 철저히 막아 달라고 했다(p. 324).
구가 가즈유키의 독백
"그때 내 대답이 다소 늦었던 건 사실이야." 아사쿠라 마사미의 긴 고백이 끝나자 혼다 유이치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대답이 망설여져서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확인해야겠기에 그랬던 거야. 사실은 마사미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은 순간 나도 세 사람을 죽이고 싶었어. 마사미에게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 마사미가 왜 타이어에 펑크를 냈는지, 세 사람은 그 점을 먼저 되돌아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앙갚음하려 는 의도였다 해도 그 거짓말은 너무했어. 도가 지나쳤다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 "내 잘못이야."(p. 328). 가사하라 아쓰코가 아까보다 한 격렬하게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내뱉은 말 때문이야.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꼼짝 못 하게 되었을 때 곧바로 마사미의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 사고가 일어나서 두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반성할 거라고 생각했어, 모두 내 잘못이야."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모토무라 유리에도 눈물을 흘렸다. "아쓰코 탓만은 아니야. 나도 반대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경쟁이라도 하듯이 참회하려는 세 사람을 "자, 자" 하고 손을 들어 진정시키고 나서 나는 혼다에게 물었다. "그래서 살인 계획을 세웠다는 말인가요?" "계획은 제가 세웠어요."(p. 329).
"나도 잘 모르겠어. 물론 연극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화가 났지. 하지만 중단시키고 싶지는 않았어. 이 연극을 한번 구경하자는 생각이 들더라. 대체 어떤 식으로 연기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어." 그리고 그녀는 비탄에 잠긴 세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들, 연기가 꽤 그럴듯하던걸." "마사미!" 아마미야 교스케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휠체어로 달려가 아사쿠라 마사미의 발밑에 엎드렸다(p. 342). "미안해.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어떻게 든 갚게 해 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뭐든 말만 해." 가사하라 아쓰코와 모토무라 유리에도 그녀 앞에 쓰러져 흐느꼈다. "세 사람 다 연극을 그만두겠대." 혼다가 말했다. "그리고 너를 위해 뭔가 하고 싶대." "그래?" 아사쿠라 마사미가 세 사람을 내려다보며 반문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너희들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어." 세 사람이 동시에 얼굴을 들었다. "왜냐하면," 아사쿠라 마사미가 말을 계속했다. "우선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야. 이제 겨우 살인범이 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처지니까." "마사미......" 혼다 유이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사쿠 라 마사미는 자신의 어깨에 놓인 그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p. 343). "너희들, 연극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그녀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연극을 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새삼 그런 생각이 드네." 지금까지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던 아사쿠라 마사미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내 옆에 서 있던 다도코로 요시오도 훌쩍거렸다. 나카니시 다카코는 아예 엉엉 울고 있다. 이런 모질지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이런 신파극으로 그 눈 높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 게다가 탐정 역인 내 존재가 완전히 빛을 잃었는데 말이야. 내가 이 추리극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눈시울이 시큰거리잖아! 이런 일로 울다니, 바보같이. 이 정도 일로 울면 신파라고, 신파. 울지 마. 울지 말라고. 울지 말란 말이야.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나카니시 다카코가 내 옆에 서서 "여기요." 하며 흠뻑 젖은 손수건을 내밀었다(p. 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