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09(화)
 
  •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저자(글), 토스트 ·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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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에 출간되어 어느덧 10년 차 스테디셀러로 접어드는 산문 《태도에 관하여》는 20만 독자들의 견고하고 한결같은 지지에 힘입어 거의 매달 중쇄를 찍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태도에 관하여》는, 상투적인 위로나 동기부여 대신 현실적이면서도 때로는 냉철한 조언을 건네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는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한 독자는 “삶을 철학하게 만드는 솔직한 텍스트”라고 평했으며, 또 다른 독자는 “인생의 지침서”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작가가 말하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다섯 가지 태도’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고민하던 남녀 모두의 지표가 되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40세대의 ‘인생 책’으로 자리매김했다.-교보문고

 

삶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저자의 책을 더 찾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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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인생

선택을 내리는 일에 주저하는 것은 삶에는 통제 가능한 부분과 통제 불가능한 부분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때가 있다. 진실은, 재능과 능력 있는 사람이 온힘을 다 해 노력하고 거기에 운이 따라주면 그때 어쩌면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 이다. 재능이나 운을 논하기 이전에 노력부터 하기가 버거운 것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운이라는 그 불확실성마저도 우리를 불안하고 시무룩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인생을 놔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애초에 완벽한 선택, 완벽한 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충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정답 같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숱하게 실패한 선택들이 공존 했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틈을(p. 23) 보완하며 계속 스스로에게 인생 결정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다. 2005년 갑상선암이 세 번째 재발해서 수술을 받고 회사에 휴직계를 내려다가 사표를 썼다. 꼼짝달싹 못 하고 집에 누워 있는 일은 너무 힘들었고 이럴 바엔 회사에 나가 살살 일하는 게 정신적으로 편할 것 같았다. 한창 뻗어가야 할 서른 초반에 커리어를 단절하는 것도 너무 섣부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후회한 적도 있었다. 12년간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던 일중독자의 습성이 몸과 정신에 각인되어 있으니 자꾸 회사 쪽으로 안테나가 뻗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워 있을 때 팽팽 돌아가던 정신과는 달리 현실 속 내 몸은 집 밖에 나가면 아파트 단지를 겨우 일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자본도 필요 없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가 유일했다. 글쓰기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그것이 당시 상황을 움직일 수(p. 24)있는 유일한 선택지였고 나는 그 선택을 행동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어언 19년째, 지금도 '일'로서 글을 쓰고 있다. '아, 역시 글쓰기가 천직이었어. 내 인생의 기적 같은 대전환이야'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는 그것 말고는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뿐이다. 기업의 중역으로 승진한 또래 직장 여성들의 기사를 볼 때면 질투가 나면서 과거 그 시절에 글쓰기로 빠지지 않고 좀 더 쉬었다가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종종 상상했다. 하지만 '누가 뭐라하든 난 이걸로 됐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p. 25)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p. 26).

 

가장 이상화된 부모 자식 관계에 내가 겪은 환경을 비추어보고 '난 남들이 당연히 가진 걸 가지지 못했다'고 부모에게 울분을 품는데, 그렇게 치면 우리 중에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장차 우리가 부모가 되었을 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또 몇이나 될까. 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어른이 된다. 성장은 나의 부모가 나처럼 한낱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모와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가급적 빨리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 품을 벗어나는 것이(p. 77) 서로를 돕는 길이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일은 완벽한 부모 자식 관계를 투사하여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들을 탓하지 않고 성인 대 성인,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며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손에서 놔 버려야 비로소 해결되기 시작하는 문제가 있다.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며 계속 부모 이슈를 붙들고 산다면 어쩌면 내가 일부러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 아닌지 냉정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상처를 소중히 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그 상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외에 소중히 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쯤 되면 그건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p. 78).

 

결혼이 인생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면서 기분(p. 84)전환이나 새로운 도전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 해주진 않는다. 결혼은 동화책처럼 "그들은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도 아니고 결혼 전 일상처럼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다. 결혼을 해도 둘 다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애정 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결혼에도 행복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결혼을 하면 보이지 않던 여러 갈등 요소가 생기며 어두운 그림자의 부분을 끌어안을 인내심과 이해심이 중요해진다. 청혼하며 하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은 그 순간에는 진심이겠지만 배우자 포함 그 어떤 가까운 인간관계도 나의 인생을, 나의 행복을, 내가 외롭지 않음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고독은 스스로 떠안고 처리해야만 할 것 같다(p. 85).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관계 문제들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1. 정면 돌파 2. 피하기 3. 놔주기(p. 124)

첫째, '정면 돌파'는 쉽게 갈라서지 못하는 관계에 적용 된다. 서로의 장례식에 가서 복잡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될 사람들. 어쨌거나 평생 내 삶 속에 안고 가야만 하는 관계들. 가령 부부나 연인, 부모 자식 관계, 그리고 절친한 친구들. 이들에게는 애먼 기대를 가져 혼자 낙담하거나 실망하는 대신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원하는 바를 말했다. 기대에 부응해줄지는 알 수 없지만 모호한 부분은 최대한 짚고 넘어간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다른 대안인 피하기나 놔주기로 넘겨야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실패한다 해도 최선을 다해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둘째, '피하기'는 투명한 호감 외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취하는 행동이다. 상대가 자신의 자존감, 불안, 현시욕이나 도덕적 우월감, 망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에게 다가올 때, 인간관계 맺음은 그에게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첫인상이 사근사근해서 가까워지기 쉽지만 어느덧 께름칙한 느낌과 함께 그(p. 125) 만남에서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는 말없이 피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조언이 있는데, 어떤 관계는 서로를 위해 내가 먼저 피해주는 것이 노력이 된다. 그들은 어쨌거나 자기 자신에게밖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마지막으로는 '놔주기'가 있다. 인간관계는 저마다의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친밀한 관계여도 자연 소멸하거나 서먹해질 수가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자연 소멸이 될까?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그 관계에서 둘 중 누군가는 무리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분석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그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보려고 애썼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지 그 관계에서 내가 부족 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p. 126)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만 한번 관계를 자연스럽게 놓아 버린 다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피차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잠시 가만히 둬보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p. 127).

 

친분이 있는 어떤 소설가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와 충돌해서 사고가 났다. 몸이 자전거에서 튕겨져나가 붕 떠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의 몇 초간을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그러면서 119 응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골절을 걱정하기보다 '아, 이젠 교통사고에 대한 묘사는 잘할 자신이 있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그 이 야기를 들으며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쓰는 일은 건강에도 썩 좋지 않고, 평균적으 로 돈벌이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성격은 말 할 것도 없이 점점 괴팍해져가지만 다행히 한 가지 구원이 있다. 이렇게 모든 고통과 슬픔과 사건 사고에서도 무언가를 '건진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고독이 뼛속 깊이 사무칠 때,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고통의 감정은 내 안의 여러 생각과 감정을 미친 듯이 자극시(p. 138)킨다. 비관으로 무너져 내리기보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글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다. 어쩌면 병실에서 나는 그런 시간을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한 여성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걷는 흑독한 여정을 그린 영화 〈와일드〉를 보면 에밀리 디킨슨의 다음 구절이 등장한다.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If your Nerve, deny you / Go above your Nerve.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저마다 그 고통을 초월하는 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에겐 종교가, 어떤 사람에겐 가족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겐 쾌락의 탐닉이.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고통을 초월하려 한다. 사람의 몸만큼 정직한 건 없고 사람의 마음만큼 조작 가능한 것도 없는 것 같다(p. 139).

 

그래서 지금은 언뜻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일은 아름다운지. 아름다움. 이 얼마나 모호하고 관념적인 단어인가.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황과 조건이 다른 일들에 유연하게 적용 되는 질문이다. 그 일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은 내가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있는지, 애쓰는 과정이 즐거울지, 필요하고 유의미한 일인지, 균형이 잡혀 있는지, 관여된 사람들이 성의를 가지고 그 일에 임하는지 등의 정성적인 가치를 묻는다. 그 일이 가져올 것 같은 좋은 기분의 다양한 모습들의 가능성을 '아름다운가'라는 간결한 언어로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속에서 부대낌이 없다면 나는 그 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고로 일이 순조롭게 풀리도록 그 누구보다도 내가 노력을 다할 것을 안다. 그 즉각적인 감각.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속마음을 어떻게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힘은 이성을 넘어 직관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 같다(p. 153).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비록 상황에 의해 다분히 충동적으로 시작한 글쓰기와 달리기라 해도, 그것들이 하나의 확고한 루틴으로 일상에 안착하게 된 것은 내가 그것들을 어느 시점부터 내 인생에 '제대로' 들이기로 선택했기 때문인 것 같다.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결정하고 수용하겠다는 자연(p. 183)스러운 다짐이다. 무엇인가를 삶에 능동적으로 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은 내가 비관적 현실주의자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 내게 삶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차분히 가늠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했다(p. 184).

 

나는 인생에서 반드시 좋아하는 일 혹은 꿈꾸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고, 그렇더라도 충분히 인생은 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었고 시도나 노력도 해보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지금은 이 일을 한다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삶의 방식이다(p. 200)

 

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 자체로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크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가장 좋은 방법은 유산소운동을 하거나 자는 것 외에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글을 쓰다가 중간에 막히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들을 BGM 틀어놓듯 반복해서 읽곤 했다. 그러면 다시 차분해지면서 글을 이어갈 수 있 었다(p. 304).

 

소설은 법전도, 도덕 교과서도, 지침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사람들이 가진 기존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이해시키고 자유의 외연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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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93】 삶에 대한 통찰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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