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박홍규 , 박지원 저자(글), 도서출판 사이드웨이 · 2019년
지난 40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문학, 철학, 역사, 신화, 사상, 교육학, 사회학, 정치학, 음악, 미술, 무용,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성과 교양을 아우른 저술 활동을 선보였던 번역가이자 저술가, 그리고 언제나 ‘읽는 사람’이었던 박홍규의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책을 너무 사랑해서 한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았던 저자의 독서와 고독, 사회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이돌을 인문하다》와 《산책하는 마음》을 쓴 박지원 작가가 2018년 겨울부터 2019년 여름까지 경상북도 경산의 영남대학교 도서관과 박홍규의 자택을 총 열 차례 방문하며 함께 나누었던 독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서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크게 봐선 고독한 삶의 가치, 한국 사회의 병폐,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총 네 가지 주제로 파생되었고, 이 대담집은 그 이야기를 독서, 고독, 사회, 인간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재구성했다.-교보문고
남다른 인생을 산 노교수의 자유로운 대담을 흥미있게 읽었다. 나도 죽을 때까지 읽으며 살고 싶다.
Q.사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독서도 훈련이라고 한다면, 교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훈련을 잘 해오셨던 것 같습니(p. 57)다. 이런 점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을까요?
A.음, 어떻게 형성이 되었을까요? 짧게 말씀드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웃음) 무엇보다 매일매일의 습관과 취미처럼 익숙하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날씨의 비유를 들기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무슨 해답을 드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여하튼 자기 삶에서 그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의미의 자연스러운 독서, 생활과 밀착된 독서가 더욱더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p. 58).
그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해요. 저 자신에게도 그랬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든지 간에, 어떤 책이든 간에 '읽는다는 것'이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습관과 감수성이 쌓인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은지 발견해나갈 수 있겠죠. 그 모든 책이 그것을 읽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책들일 겁니다. 제게도 그랬고 말이죠(p. 79).
Q.책을 읽지 않는 정치인에 관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시죠? 교수님의 책 『독서독인』은 아예 이런 정치인들에게 화가 나서 쓴 책이라고 밝히기도 하셨고요. (웃음)
A.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참 책을 읽지 않습니다. 정치와 독서의 관계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임에도요. 한 사람의 정치인이 정치를 시작하게 되는 데 독서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큰 작용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작용해야 하고요. 히틀러든, 처칠이든, 체 게바라든, 호지명이든, 간디든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책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관을 수립한다거나 자기만의 삶의 자세를 조탁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경우엔 좌우를 막론하고 책을 읽지 않고, 책을 통해서 진지하게 자신의 정치관을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책 자체를 일종의 사치품이나 장식품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정치 행사를 출판기념회로 포장하는, 이런 되지도 않은 겉 멋에 책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참으로 썩어빠진 한국적인 정치 전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p. 89)
Q.출판계 선배가 들려주었던 말씀이 기억나네요. 예전에 어느 유력 정치인의 자서전을 편집하면서 충격을 크게 받았다고 하더군요. 문장도 엉망이고, 보좌관이나 비서가 대신 쓴 게 분명한, 영혼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던 것 때문에요. 그 정치인의 이름을 듣고 저도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웃음)
A.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노선에 끼워넣기 위해서 아주 선별적이고 단편적인 독서만을 한 느낌이랄까요? 이것은 여느 정치인의 독서 경로와 지적 배경을 훑어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책을 제대로 읽는다고 하는 것은 그런 식의 겉핥기식 독서가 절대 될 수 없어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간디나 호지명 같은 사람들은 독서라는 게 그 자체로 생활화가 되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 중엔 독서가 곧 생활이 된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들의 독서는 "나는 이렇게 독서도 한다"라는 과시이자 수식으로 기능 한다는 것 같다는 애기죠. 저는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천박하고 수준이 낮은 이유가 독서가 그 자체로 정치인 자신(p. 90)의 생활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은 탄핵이 된 어느 대통령의 서재도 화제가 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서재의 빈곤함과 체계 없음을 지적했던 정치인 또한 제가 보기엔 독서의 깊이가 전혀 탄탄하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웃음)
Q.그런 면에서 한국의 법률 교육에 대해서도 많이 비판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A.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상당한 수가 법조인 출신이죠. 법률가라고 하는 것이 정치인으로 출세하는 가장 유력한 밑바탕인 게 사실이니까요. 제가 30여 년간 법과대학에서 예비 법률가들을 가르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있어서 가장 빈곤한 게 독서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아시다시피 법률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법률 교과서, 육법 전서를 거의 달달 외우는 수준으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다양한 사고의 실험도, 공감의 경험도 법률가를 지망하는 20~30대 청년의 머릿속에는 작용하지 않게 되는 것 이고요. 그야말로 교조적인 두뇌가 형성되는 것이죠(p. 91). 이런 예비 법률가들의 기본적인 장점은 암기력과 두뇌 회 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획일적인 교육 제도 아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인간 지성의 훈련이란, 많은 독서와 예술, 경험을 통한 시행착오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어가는 걸 의미하거든요.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유연하게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스스로 함양해나가야 하고, 우린 그 과정을 바로 '인격의 성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그 인격이 바탕이 되어야 자유로운 사고와 성찰이 가능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률 교육이라고 하는 게 철두철미 폐쇄적이고 도그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법률가가 되어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기란 대단히 힘든 법입니다. 법률가의 두뇌 구조는 보통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데, 무엇 하나를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 있어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민주사회에서 수많은 환경과 경우에 처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품어낸다는 차원에선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죠(p. 92).
Q.우리 인문학 전반의 부박한 풍토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그런 면을 강하게 지적해주고 계신데요, 그렇지만 학자들은(p. 139) 학자들이더라도 일단 사람들이 너무 책을 읽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웃음) 요즘은 워낙 재밌는 것들이 많아진 세상이라서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점점 더 심해질 듯합니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박 선생, 저는 이게 꼭 어제오늘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독서의 절대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독서의 생활화랄까요. 일상화랄까요. 이런 건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평생에 걸쳐 사람들이 더 책을 읽어주길 바라며 이런저런 작업을 해왔던 건 사실이고, 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책이 한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랄까, 그런 건 대단하다고 늘 생각하긴 하지만, 제 주위를 봐도 책을 안 읽는 경향이 더 농후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죠. 최근에 어느 출판사에서 『내 삶에 스며든 헤세』라는 책을 낸다고 해서 그 원고를 청탁받았어요. 50명 정도 되는 필진 에게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듣는 책이라고 하던데, 어젯밤에 그 원고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헤세가 『데미안』을 쓸 때가 2차 세계대전의 막(p. 140)바지였습니다. 이때 독일이든 유럽이든 정말로 피폐한 절망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헤세가 이야기한 건 그야말로 자기에게 충실할 것이었잖아요. 『데미안』은 자기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하여 세상과 대결할 것을, 자신의 알을 깨고 나아갈 것을 이야기한 책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알을 깬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괴롭고 힘든 일이겠지만, 저는 그런 순간에 책이 다른 매체는 전달하기 힘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헤세를 읽고 감명을 받았듯,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좋은 책들을 읽고 감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저도 늘 책이 안 읽힌다, 책이 안 팔린다, 이렇게 불평하곤 하지만 교수님 말씀에 공감하긴 합니다. 내가 정말 가장 깊은 층위에서 전하고 싶은 말, 내가 가장 고독한 차원에서 품고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보편적인 문법으로 전할 수 있는 매체가 책이니까요. 책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되, 독서의 생활화와 일상화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져야 한다는 게 교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p. 141).
A.네. 많이 읽어야 하고, 다양하게 읽어야 합니다. 계속 말씀 드렸듯 저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교과서 숭배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을 통한 능력주의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걸 좀 배제하고 더욱 다양한 생각이 흘러넘치는 세상이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입니다. 좀 더 많은 사상과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다니고 서로 부딪치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독서라는 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봐요. 교과서 몇 권으로 명문대에 합격했다, 이것만큼 독서 문화에 위험한 생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저의 삶을 합리화시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어쨌든 다양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이 열리고, 그 열림 속에서 다양한 독서와 번역과 저술이 가능해지는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 바람직한 세상이라 생각합니다(p. 142).
Q.효의 상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배려죠. 인간적인 배려. 아까 박 선생이 유교적인 인본주의를 말씀하셨지만, 그런 인본의 바탕에는 인간관계의 배려에 차등화를 인정하는 관점이 깃들어 있을 겁니다. 내 가족과 내 부모, 내 자식에 대한 배려는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 훨씬 더 강한 배려를 바탕으로 합니다. 왜? 내 가족이고 내 부모 이니까 말이죠. 저도 그것은 인정합니다. 제가 저의 제자보다 저의 자식에(p. 177)게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강한 애착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분명히 차이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차이 역시 한계는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오랜 논쟁거리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도둑질이나 살인을 했을 때 자식이 부모를 고발할 수 있느냐고요. 묵자나 순자는 부모를 고발할 수 있다고 주장 합니다. 공자나 맹자는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요.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공자와 맹자 같은 이야기를 했죠.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저는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A.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이 소속된 사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자신의 가장 가까운 관계에 대해선 반드시 상대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고 믿으니까요. 그건 저에게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p. 178).
Q.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천착하는 일의 가치를 말씀해주고 계신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 에너지가 한 사람을 얼마나 성장하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A.제가 저보다 뒤에 따라오는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바로 이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에 휩쓸려서 무작정 시험 준비에 뛰어들지는 말아달라, 라고요. 무언가를 '죽지 못해 하는 것처럼은 하지 말라'라고요. 인생은 그렇게 길(p. 238)지 않다고요. 저 또한 제가 좋아하는 것, 제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이 정도로는 밥을 먹고 살았고, 책도 좀 썼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당신이 제일 하고픈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면 당신은 40년 뒤에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요. 제가 대학 3학년인가 4학년 때 노동법을 전공하겠다고 결단하고, 노동운동판에 뛰어다니고, 교수 자리를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음에도 노동법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다들 사람들이 저보고 그랬습니다. "너 도대체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을 왜 하냐?"라고 말이죠. 교수가 될 희망도 없고, 그 걸 해서 좋은 자리에 취직할 희망도 없는 학문을 말이죠. 저는 그냥 좋아서 했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저에게 의미가 있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서 그걸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때때로 방황도 하고 힘든 적도 많았지만, 젊은 시절에 그처럼 자기 자신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없이 소중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에게든 그럴 거예요(p. 239).
Q.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은 좋지만, 그것이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훨씬 더 큰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이해 됩니다.
A.박 선생, 제가 분명히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건 비유컨대 이런 것입니다. 아까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세계의 인간상〉을 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찍부터 그런 좋은 책들을 읽은 건 저에게 참으로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의 사상과 교양의 뿌리도 그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제가 간직하고 있는 간디와 톨스토이에 대한 존경과(p. 374)흠모는 그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향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제가 그 시절 읽은 책 중에는 제게 너무나도 악영향을 끼친 책도 많았어요. 음담패설에 엉터리 같은 책들 말이 지요. 제가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에요. 홀로 헌책방을 다니면서 그런 책들에 탐닉했던 그 오랜 시간.... 그리고 그런 시간을 기억하며 제가 믿고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적어도 중학교 1학년생에겐 D. H. 로렌스를 읽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Q.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을 읽으셨던 것이겠죠?
A.네. 저는 그때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렇게 어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그런 책을 읽는 일이 제게 남긴 악영향을 되게 되는 것이죠. 로렌스의 이 소설이 문학사적으로 걸출한 작품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건, 어린아이와 청소년에게 최소한의 독서 지도는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완전히 자유롭게 책을 읽게(p. 375)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리스 귀신 죽이기』라는 책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리스에서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읽히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죠. 거기엔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괴팍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많으니 함부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유치원에서 그 내용을 읽히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과연 아이들에게 필요한 내용, 아이들을 더 건강한 어른으로 길러내기 위한 교양이 무엇인지에 관한 어떤 진지한 성찰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거예요. 박 선생, 저는 도덕이나 윤리라는 것을 무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될 때까지는 반드시 도덕적 윤리적 훈련이 필요 하다고 생각해요(p. 3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