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강봉희 저자(글), 도서출판 사이드웨이 · 2021년
이 책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죽은 이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어느 장례지도사의 기록이다. 40대 중반, 암에 걸려 저승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저자 강봉희는 그때부터 죽음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 고인들의 장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도맡아왔다. 2020년, 모두가 감염의 공포에 질려 코로나 사망자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을 때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저자는 오늘도 외롭게 죽은 이들의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식장과 화장장과 납골당을 오가면서 그들의 한 많은 넋을 기린다.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는 오래도록 죽은 이들의 마지막을 목격했던 그가 들려주는 죽음과 장례의 의미, 삶과 인간에 관한 길고 긴 성찰의 궤적이다.-교보문고
언젠가 나도 죽어 남의 손에 의해 장례 절차를 밟을 것이다.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염습 중에서도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드리는 일을 '습'이라고 한다. 시신이 들어오면 그가 입었던 모든 것을 벗긴 뒤에 손발부터 시작해 온몸을 닦아드린다. 그리고 머리를 감겨드린다. 요즘은 시신을 닦을 때 알코올을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향나무를 잘게 쪼개어 물에 불려 만든 향 물을 사용했다. 향(p. 28)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고, 시신이 썩어 냄새나는 것을 막아준다. 옛날에 빈소에서 향불을 피웠던 것도 향이 시신 썩는 냄새를 방지해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염장이와 장례지도사는 시신의 부패와 감염을 막기 위해 생겨난 직종이다. 요즘에야 그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제나 보건이 최우선이다. 코로나 사망자의 경우 돌아가신 후 24시간 내로 화장을 하라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염습하기 전 시신이 경직되고 뒤틀려 반듯하게 눕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후경직이 심해 시신이 씻기기 힘든 자세일 때는, 시신에 체온을 전달해서 죽은 몸의 근육을 풀어 주어야 한다. 온기를 전달하지 않고 급하게 일을 할라치면 몸의 관절이 부러져버린다. 시간을 정말 오래 들여 근육에 열을 가하고 관절을 서서히 움직이면, 조금씩 굳은 근육과 관절이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때로는 염습을 하는 도중에 시신의 손발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거나 시신이 주먹을 꼭 쥘 때도 있다. 축 늘어져 있던 근육이 갑자기 뻣뻣해지거나, 시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할 때도 드물지 않다. 사람이 숨을 거둔 후에도 몸의 세포는 아직 살아서 경직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p. 29). 그럴 때면 나는 시신의 몸을 천천히 풀어준다. 시신을 닦아드리는 도중이거나, 아니면 수의를 입히는 도중이라도 그에게 따뜻한 열기를 전해드리고 "이제는 편히 가소." 말도 건네준다. 가끔 염습대 위에서 뻣뻣한 시신과 부둥켜안고 끙끙대는 스스로를 보고 웃음을 흘릴 때도 있다. 어느 정도 목욕의 단계가 끝났으면 다음은 얼굴이다. 시신이 남성일 때는 면도를 해드리는 게 중요한 일이다. 면도는 남성인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며 해드리는 가장 정 성스러운 절차다. 면도할 때 조금이라도 부주의하거나 칼이 안 좋으면 상처가 나기 쉽다. 그래서 따뜻한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적셔주고 크림을 충분히 바른 후에 면도를 시작한다. 면도 후에는 얼굴에 스킨을 발라드린다. 여성의 시신일 때는 면도 대신 더욱 신경을 써서 머리를 빗겨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린다. 보통의 장례식장에선 얼굴에 정성껏 화장을 해드리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가장 곱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화장을 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지간하면 고인이 여자일 때는 여자 장례 지도사가 염습을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 시신을 씻기려면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다 벗겨야 하는데 그건 아무리 고인(p. 30)이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가능하다면 고인이 여자일 때는 여자가, 남자일 때는 남자가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도 여성의 시신은 가급적 같이 봉사하는 이들 중에서 여성분에게 맡기려고 한다. 시신의 몸과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을 다 씻기고 정돈해 드린 후에는 귀와 코와 입 등 얼굴의 구멍과 항문을 솜으로 막는다. 인간의 몸에서 제일 먼저 상하는 건 장기이므로, 몸 안의 장기들이 부패해서 나오는 가스를 막아주어야 한다. 솜으로 다 막은 뒤에는 한지를 접어서 만든 기저귀를 채워드린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이 다 풀리는데 그중에서도 괄약근이 가장 쉽게 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후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게 놓아드린다. 팔과 다리를 염포로 반듯이 묶고, 얼굴과 눈을 감겨드리고, 입이 벌 어지지 말라고 고개를 세워 턱 끝을 머리와 묶어드린다. 이제 두 손이 가지런한 시신 위에 흰 천이 덮인다. 여기까지, 죽은 몸을 돌봐드리는 일의 기본은 다 되었다. 시신을 묶어서 입관하기 이전의 절차가 다 마무리된 것이다(p. 31).
고독사로 돌아가셔서 오랜 시간 뒤에 발견된 시신은, 그걸 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보통 더운 여름에는 부패되어 구더기가 끓고, 겨울에는 수분이 빠져나가 미라가 되어버린다. 미라가 된 시신은 수습하기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여름이다. 무엇보다도 시신이 썩는 냄새는 매우 고약하다. 동네에서 작은 동물이 죽으면 나는 냄새를 생각하면 되는데, 물론 그보다 몇 배는 더 심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썩는 냄새는 똑같다. 그렇게 여름에 시신이 훼손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마당에서 숨이 끊어져 일주일 정도만 있어도 죽은 몸엔 구더기가 슬기 시작한다. 그때는 먼저 살충제를 뿌리고 벌레를 퇴치한다. 사람 몸에 살충제를 뿌리는 일 역시 시신의 냄새만큼 고(p. 34)약하고 괴롭다. 벌레는 사람의 몸 중에서도 눈과 배에 많이 슬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면 살충제와 석회가루를 뿌린 후 팩으로 하루 이틀 봉해놓아 몸을 덮은 벌레를 죽여야 한다. 그런 뒤 시신을 새로 꺼내서 죽은 벌레들을 솔로 다 털어낸다. 다음으로는 탈지면에 알코올을 묻혀 최대한 부드럽게 몸을 닦고, 한지로 들쑥날쑥한 시신을 감아준다. 수의를 입히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신도 가끔 있다. 그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어 시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드린 뒤 수의를 잘 개어 관에 같이 넣어드리는 수밖에 없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고독사를 한 사람들은 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몸은 멀쩡한데, 안구만 뻥 뚫려 있다. 시신에서 가장 피부가 연해 먼저 상하는 곳은 눈이다. 그래서 여름엔 구더기가 슬고, 겨울엔 바짝 말라 함몰되어버린다. 생선의 눈알이 쪼그라들 듯 시신의 눈도 부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없다. 시신의 표정은 무심하고 편안한데 그 동공이 비어있는 걸 바라보면 섬뜩하긴 하다. 우리가 봐온 정상적인 얼굴이 아니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처음엔 마주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주 대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p. 35).
그리고 다시 고독사의 문제에 관하여 말하자면, 누군가가 고독하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 몇 달 지난 뒤 발견되었다고 거기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말라. 살아 있었을 때 부터 관심도 못 받고 잊혀버린 사람이 고독하게 죽었다고 사회적으로 떠들썩하게 구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것 또한 삶과 죽음을 뚝 떼어놓고 다른 선으로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가 살아 있을 때 그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그를 살릴 수 있었고, 홀로 저승으로 가지 않게 돌볼 수 있었다. 그런 의무를 내팽개친 채 고독사를 입으로 떠드는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다(p. 88).
지금이라도 수의 문화가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 알몸으로 나왔지만 갈 때는 옷 한 벌 갖춰 입고 간다는 것이 수의를 입혀드리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신 고인이 평상시에 가장 좋아하고 즐겨 입었던 옷을 입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죽고 난 뒤에 살아생전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이 과연 맞(p. 98)을까?(p. 99).
중요한 것은 장례를 지낼 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어떤 관습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건 대개 누군가의 돈벌이가 될 뿐이다. 나는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의 행복을 위하여 당신의 돈과 시간을 쓰지 않고, 당신이 리무진 같은 것으로 그런 부채감을 때우려고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관 속을 꽃밭같이 만드는 건 당신의 자유다. 그렇지만 시신 위에 당신이 준비한 국화꽃 한 송이를 얹어드려도 그 마음은 똑같다. 옛날처럼 엽전과 쌀을 입에 넣어드리는 것도(p. 110)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관에 넣어드릴 예단이라고 해서 종이로 꽃이나 뭐를 예쁘게 꾸며 채우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소박하게나마 고인이 살아 계실 때 잘하는 게 훨씬 더 귀중한 일이다. 죽은 뒤에 시신이 타는 리무진은 죽은 이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p. 111).
당신의 장례를 함께하는 장례지도사에게 "꼭 이걸 해야 됩니까?"라고 물어보아라. 자주 퀘스천 마크를 달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차근차근 답을 내보라.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빼버려라. 꼭 해야 한다고 하는 것만 하라. 그렇지만 막상 일이 급작스럽게 닥치면 이렇게 차분한 마음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연세가 많거나 병환이 있는 가족을 둔 분들에게 미리 '장례 쇼핑'을 다녀보라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가? 장례 쇼핑 이라는 말이 뭐 어때서 그런가? 쇼핑하러 다녀보면 쓸데없는 걸 뺄 수 있고, 줄여야 할 것을 줄일 수 있고, 업체의 농간(p. 135)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장례식장에 가서 견적서를 잘 뽑아보라. 주위에 있는 적당한 장례식장을 찾아서 물어보고 품목을 정리해두라. 그럼 어느 장례식장은 뭐가 얼마고, 어디서 쓸데없는 걸 부풀리고 등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알아챌 수 있다. 내가 고인을 잘 보내드리기 위하여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따져볼 수 있다. 장례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내가 이해가 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만 하면 된다. 가장 기본이 되는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어주려는 당신의 그 마음만이 소중하다.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일 뿐임을 명심하라(p. 136).
가장 낙관적이고 희망찬 분위기에서 나이가 든 우리는 젊을 때 다들 사회생활 10년 하면 아파트나 단독주택 한 채(p. 209)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새끼들은 저렇듯 어렵게 살고 있 다. 옛날처럼 사회에 나와 10년 열심히 하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핑계는 좀 그만 대고. 그렇게 마구 퍼주면 젊은 사람들 나태해진다고?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은 다 욕심이 있으므로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사람은 위를 보게 되어 있고, 위로 가 고픈 욕구가 있다. 더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뭘 하라고 하면 힘이 든다. 꼭 자기 부모가 아니더라도, 나의 등을 살짝이라도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 자기 자식이 아니어도 등받이가 되어줄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게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p. 210).
내가 바라는 나의 죽음
죽음은 다른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일 거다. 잠에서 못 깨어나면 죽음인데 뭘 그리 안타깝게 매달리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한다. 밤에 잠들듯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5년 전, 우리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다. 건강했던 형님은 어느 날 갑작스레 몸이 아파 아침에 밥을 먹고 차를 몰고 병원에 갔다. 거기 도착해 폐렴이니까 입원하라는 말을 듣고 입원을 했다. 그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하니 수면제를 놓겠다는 의료진의 말에 따라 수면제를 맞았고, 그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게 그의 죽음이었다. 그때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형님의 임종을 지킨 뒤 병원 복도에 나와 쓰러져 통곡했다. 아내가 그런 내 모습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형님은 내게 정말로 큰 존재였고, 평생을 함께한 어른이자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고 해서 우리가 잠에 못 들지는 않(p. 213)는다. 밤에 잠들면 아침에 깬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편안히 잠들 수 있다. 우린 보통 침대맡에서 배우자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기 마련이고, 다시 아침에 깨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죽지 않아서 그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죽으면 다시는 못 만날 거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을 때 그 들과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 살아 있을 때 자기 죽음을 생각해두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지만, 살아 있을 때 억지로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죽음이 다가오면 그때 받아들이면 된다. 왜 억지로 걱정을 먼저 해야 하나? 죽음의 걱정은 생의 마감이 다가왔을 때 하면 되지 않나? 한 시간이라도 더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나? 내 인생은 멋진 인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젊었을 때는 힘들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기도 했었지만, 황혼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건 없더라도 괜찮다. 자식들은 다 잘 커서 자기 몫을 해내며 잘 살고 있다(p. 214).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다. 그건 암으로 병실에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다가 나이가 들면 죽는 거지 뭐 다른 게 있을까. 살다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우리는 그저 삶과 죽음은 한 선에 맞닿아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늙고 병들고 죽는 순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TV에서 불치병을 앓던 어느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진통제를 맞은 후 자기 주위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과 파티를 하고 놀다가 자기 혼자서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 약을 먹고 편안하게 가는 장면이었다. 그런 죽음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말로 대단했다. 좋은 사람, 가족과 친구들을 다 만나서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 간 것 아닌가. 나도 그 사람처럼 가고 싶다. 살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 것보다는 내 주위의 인연들을 다 불러서 인사하고, "잘 살아라, 내가 먼저 가 있을게. 내가 거기서 자리 잡고 있을게. 내가 고참이니까 너 나중에 오면 말 잘 들어라." 이런 농담을(p. 215) 하면서 가고 싶다. "잘 있어. 내 손녀로 와주어서 고마워." 이렇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이미 자식들에게 아내와 내 연명치료를 못 하게 말 해두었다. 우리가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뭘 꽂거나 그러면서 우릴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살 확률이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그냥 보내주라고. 그런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까? 아직 그 순간이 오지 못해서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가 즐겨 입는 점퍼 하나 입고 편안하게 가는 날을 기다린다. 아니, 나는 죽음을 기다리진 않는다. 죽음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 나는 그저 오늘도 웃으면서 즐겁게 산다(p. 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