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양혜원 저자(글), 책읽는고양이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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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는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하는 작가로서 여러 책을 읽었다. 하지만 사후 발간한 전집을 다 읽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읽지 못한 나머지 책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박완서 작가는 한국전쟁 때 오빠를 잃었고, 57세 때 3개월 간격으로 남편을 폐암으로 잃고 의대에 다니던 아들을 잃었다. 이 고통을 글로 아로새기며 아픔을 삭였다. 작가의 고통은 수많은 책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주고 있다. 우리 모두 자기 삶을 책으로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유산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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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봉사하지 않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 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소설 쓰기를 이어간 것은 순전히 이기심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에게 이 일은 이기적인 일이었지만 동시에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이었다."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 전신을 던진다는 것은 이기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자기(p. 28)를 던진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도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박완서는 웬만한 사람이면 살림에 치여, 그래 내가 이 정도 실력이 있다는 거 보여주었으면 됐지, 하고 그만두었을 일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취미로 하기엔 글 쓰는 건 힘들어요. 요즘 여자들 글 쓰고 싶어들 하지요." 오한숙희와의 인터뷰에서 박완서가 한 말인데, 제법 뼈 있게 들린다. 박완서가 중년에 맞이한 변화는 취미 하나 시작한 정도의 변화가 아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에게 등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여성동아〉 신인 작가상을 받은 후 글 몇 편 써보다 그만두었다면, 헛헛함을 느끼는 누군가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희망을 가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p. 29).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인생 전반기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때이면서 사회와 문화가 자신에게 부과한 역할에 충실한 시기이지만, 인생 후반기는 주어진 규범과 사회적 인정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사는 시기라고 했다. 온전한 독립은 이때 비로소 이루어지는데,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사는 독립을 이루지 못하면 인생 후반기가 충만하지 못하다고 그는 말한다. 중년은 인생이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그러한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의 몸은 제법 공평하게 마흔 줄에 이르면 신호를 보낸다. 혹 특별한 신호를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만으로 마흔이면 국가가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 안내서를 챙겨서 보내준다. 평균 수명을 여든으로 본다면, 마흔은 인생의 딱 중간 지점이다. 작가 박완서도 딱 여든까지 살았다. 물론 누구나 그처럼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조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애 전환기에 한 번쯤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무엇인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p. 35). 그것이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에 대한 예의라면 예외일 것이고, 그 인생의 주인인 자신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p. 36).

 

트라우마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와도 같다. 원한 있는 혼령들의 이야기가 많은 동양에서는 죽은 자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귀들도 산 자를 통해서 해결을 보려 하므로 결국 트라우마는 살아남은 사람의 고통이다. 트라우마 이론에 중요한 기여를 한 캐시 카루스 (Cathy Caruth)는 트라우마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선 그것은 평생 지속되는 것으로서 반복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괴롭힌다. 또한 트라우마는 끝내 이해하지 못할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p. 89)에 반복해서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즉, 트라우마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 경험에 대한 반복적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를 사로잡는 기억이 반복해서 그것을 말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귀를 찾으며, 그 들음을 통해서 나의 트라우마는 타인의 트라우마와 연결된다(p. 90).

 

트라우마로서 박완서의 전쟁 경험은 1973년에 발표한 단편 〈부처님 근처〉에 잘 나타나 있는데, 전형적인 트라우마의 증상들이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특히, 떨칠 수 없는 그 기억이 어떻게 박완서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귀를 찾게 만드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고통이 산 자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되는지에 대해서, 그는 소설 형식을 빌려 자신이 실제로 느꼈던 것들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전쟁 세대가 아닌 내게 박완서의 전쟁 경험 이야기들이 다른 어른들의 전쟁 이야기와 다르게 와닿는 이유는 이러한 트라우마적 속성 때문이다. 박완서 자신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통해서 분단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인 고발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통일 주장도 직업이 될 만큼 분단 문제가 정치화되기만 하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 이 전쟁이 개인들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를 자신의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통해서 보여주려 했다고, 1981년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소감문에(p. 91)서 밝혔다.

박완서의 전쟁 경험의 핵심은 오빠의 죽음이다. 해방 후 잠시 좌익 운동에 가담했던 오빠가 그 경력으로 인해 전쟁 발발 직후 납북되어, 나머지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오빠를 기다렸다. 공산 치하의 서울에 살면서 오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매력을 느꼈던 박완서는 큰 저항 없이 서울대 캠퍼스에 동원되어 몇 가지 일들을 했다. 그러나 이내 동조할 수 없어 슬쩍 빠졌는데, 서울 수복 후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심하게 심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서울이 수복된 후 오빠는 어찌어찌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때 이미 오빠는 정신적으로 많이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되자 박완서의 가족은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피난을 가려고 했지만, 납북되었던 오빠가 한강을 건너는 데에 필요한 시민증을 얻지 못해서 애를 태우게 된다. 그러던 차에 친척의 도움으로 군속 신분으로 피난을 갈 수 있게 되었는데, 부대에서 하루를 보내던 중 오빠가 사고(p. 92)로 양발에 총상을 당해 결국 온 가족이 피난을 가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공산 치하의 서울에 남게 되었다. 처음 서울이 점령당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미리 피난을 독려하였기에 서울은 텅 비었고, 그 빈 도시에 그의 가족은 남았다. 박완서의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는 텅 빈 서울에 남은 그가, 자신이 심문을 당하며 버리지 취급을 당한 것과 피난도 못 가고 서울에 자기 가족만 남게 된 이 기막힌 사연을 언젠가는 글로 쓰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박완서의 이러한 결의는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다질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길이 되기도 한다. 즉, 내가 살아남아서 반드시 이것을 증언하겠다는 욕구가 생존의 이유가 되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경험을 증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완서의 문학은 복수로서의 글쓰기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는 언젠가는 이것을 글로 쓰리라는 생각이 그 상황을 견디는(p. 93)데에 도움이 되었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p. 94).

 

마지막으로 박완서가 그 아름다움에 밤을 새웠다던, 독일 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t Lohfink)의 시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를 여기에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장을 마무리하려 한다. 인간의 고유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유의 비밀에 싸인 개인적인 세계를 지닌다

이 세계 안에는 가장 좋은 순간이 존재하고 이 세계 안에는 가장 처절한 시간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숨겨진 것

한 인간이 죽을 때에는 그와 함께 그의 첫눈도 녹아 사라지고 그의 첫 입맞춤, 그의 첫 말다툼도....(p. 136)

이 모두를 그는 자신과 더불어 가지고 간다

벗들과 형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참 아버지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라져가고.... 또다시 이 세계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그들의 숨은 세계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아하 매번 나는 새롭게 그 유일회성을 외치고 싶다.(p. 137).

 

박완서는 갓 스물에 전쟁을 겪으면서 자신이 넘나들었던 사선의 기억을 딛고 일가를 꾸려 자녀와 손자녀를 보며 다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57세의 나이에 남편과 아들을 다 잃으면서 다시 한 번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 후 그는 홀로서기에 주력(p. 160) 하면서 다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신의 죽음도 준비했다. 그가 남기고 가고 싶어 한 것은 자식들이 품은 자신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었다. 그 외에는 그 어떤 자신의 소유물도 남 기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부지런히 버렸다고 한다.

이는 소노 아야코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남편을 보내고 버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말을 2년 전 만났을 때 했다. 하지만 노년의 죽음 준비와는 다르게 중년의 죽음 준비에 생산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수행해내는 과제일 것이다. 박완서는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하는 정신적 전성기는 전혀 늘어난 것 같지 않고 되레 후퇴한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을 보면서도 느끼는 바이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도 아직도 이런 유치한 감정적 반응과 생각이 올라온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제대로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물론 우리 시대가 어른보다는 같이 놀아줄 친구를 더 요구한다는 것도 어른 노릇을(p. 161)꺼리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난 만큼 성숙하게 사는 시기가 길어진 게 아니라 미숙하게 사는 시기만 늘어난 것이라면, 그것은 축복이기 힘들 것이다. 중년은 이 '한 사람의 몫' 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완성시킬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는 때이고, 그것이 중년의 죽음 준비가 가질 수 있는, 노년과는 다른 생산성이라고 생각한다(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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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64】 자신의 고통을 글로 치료한 작가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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