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씨451 - 레이 브래드버리 저자(글) · 박상준 번역, 황금가지 · 2009년

책이 없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소설이다. 대놓고 책을 없애지는 않아도 요즘은 미디어에 밀려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 등 동영상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사고 기능이 떨어진다. 문해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바로 재앙이며, 이 책과 저자가 경고하는 것이다.

"집을 통째로 태워 버릴 거야." 비티가 소리쳤다.
사나이들은 문 쪽으로 엉거주춤 몰려갔다. 그들은 여자 가까이 서 있는 몬태그를 뒤돌아보았다. "이 여자를 데려가지 않을 거야?" 몬태그가 말했다. "안 가겠다잖아." "그럼 강제로라도 데리고 나가야지!" 비티가 손을 들었다. 손아귀에는 점화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런 집은 법적으로 태워 버리도록 되어 있네. 게다가 이런 경우에 저 미치광이들은 대개 자살하려고 하지. 흔히 있는 일이야."(p. 68). 몬태그는 여자의 팔꿈치를 잡았다. "나하고 같이 나갑시다." "됐어요. 아무튼 고맙군요." 여자가 말했다. "자, 열을 세겠다. 하나, 두울." 비티가 소리쳤다. "기다려요, 서장." "계속하라고." 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세엣, 네엣." "나갑니다." 몬태그는 여자를 잡아 끌었다. 여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난 여기 그냥 있고 싶어요." "다섯, 여섯." "그만 세어도 좋을걸."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한 손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손바닥에 뭔가 가느다란 물체가 있었다. 부엌에서 주로 쓰는 성냥 한 개비였다.
사나이들은 그걸 보자마자 허겁지겁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티 서장만은 품위를 잃지 않고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한밤중의 광기와도 같은 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치러 왔던 그의 그을린 얼굴엔 조금도 동요된 기색이 없었다. 맙소사. 몬태그는 생각했다. 어째서(p. 69) 한밤중에만. 언제나 경보는 밤중에 울려 댔다. 낮에는 결코 울런 적이 없다! 불꽃은 밤에 봐야만 더 아름답기 때문일까? 더 멋지고 더 장관이기 때문일까? 비터의 그을린 얼굴에도 희미하게 광기가 서린 것 같다. 여자가 성냥개비를 들어올렸다. 그녀 주위에선 등유 냄새가 촉촉 할 정도로 피어 오르고 있다. 몬태그는 겨드랑이에 숨겨 가지고 나온 책이 심정처럼 그의 가슴을 쾅쾅 치는 것만 같았다. "나가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몬태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문 쪽으로 갔다. 그는 비티의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가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악마의 발자국처럼 그들이 지나간 길에 등유 냄새가 남았다. 발코니에 여자가 나와 있었다. 말없이 시선으로 방화수들을 압도한 채, 침묵으로 그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비티는 손가락을 튕겨 점화기의 불꽃을 켰다. 너무 늦었다. 몬태그는 숨이 막혔다. 여자는 경멸에 찬 눈초리로 손을 들고는 성냥개비를 난간에다 세차게 부볐다. 사람들은 한밤중의 거리를 마구 내달았다(p. 70).
우리는 매클런 일가가 시카고에 살 때부터 경고했지. 책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말야. 그 삼촌이란 자는 복잡한 기록을 갖고 있어. 반사회적인 인간이지. 그 소녀? 그 앤 시한폭탄이었다고. 가족들은 그 애의 잠재의식을 부추겨 왔던 게 틀림없어. 학교 기록을 보면 확실하지. 그 앤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알고 싶어했어. 정말 골치 아픈 일이지. '왜?'라고 의문을 품고 그걸 고집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야. 그 불쌍한 애는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래요. 그리고 죽었지요(p. 102).
몬태그의 머리 속이 어지럽게 빙빙 돌았다. 눈썹을, 눈을, 코를, 입술을, 볼따구니를, 어깨를, 그리고 팔을 마구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오, 입 닥쳐요!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 그만둬!' 비티의 우아한 손가락이 뻗어 와서 몬태그의 손목을 잡았다. "이런, 이거 왜 이리 맥박이 빨리 뛰나! 내가 이렇게 만들었나, 응, 몬태그? 맙소사,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맥박 소리가 요란스레 울리는구먼. 사이렌하고 종소리만 들리는 것처럼 말이야! 얘기를 계속해 줄까? 자네의 그 혼란스런 표정이 보기 좋구먼. 스와힐리어, 인도어, 영어, 나는 죄다 말할 수 있네. 저 유명한 신비의 이야기꾼, 셰익스피어도!"
몬태그의 귓속이 앵앵거렸다. "몬태그, 정신차려요! 그자는 흙탕물을 마구 휘젓고 있소!" "이런, 의기소침한 모양이군. 자네가 필사적으로 매어 달리는 책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했으니. 책이란 원래 그렇게 이율배반적일세. 자네는 책이 자네를 각성하게 해 주고 지혜를 주었다고 생각하겠지. 남들도 마찬가지로 책을 이용할 수 있는 거야. 자네는 황무지 한 가운데 길을 잃고 명사와 동사와 형용사들의 덩굴 속에 갇혀 버린 걸세. 아까 내 꿈의 마지막 장면은 이랬다네. 방화차에 탄 채로 물어 보았지. '나와 함께 갈 텐가?' 자네는 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말은 안 했지만 뿌듯한 기쁨이 감도는 침묵 속에서 방화서로 돌아왔네. 모든 골(p. 175)치 아픈 건 잊어버리고 말이야." 비티는 몬태그의 손목을 놓았다. 손은 맥없이 책상 위로 축 처졌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 _ 옮긴이)”(p. 176).
다들 조용히 웃었다. 몬태그는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레인저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책 방화수이기도 하지. 일단 읽은 책은 태워 버립니다. 발각되면 안 되니까. 축소 필름도 소용없지요. 늘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라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찾는 일은 하고 싶지 않소. 발각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니지. 늙은 머릿속에다 감춰 두는 게 제일 안전하오. 다른 사람이 보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우린 역사와 문학, 그리고 국제법 덩어리들이라오. 바이런, 톰 페인, 마키아벨리, 또 예수가 바로 여기에 있소. 그리고 시간은 없고, 전쟁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고, 도시는 저기에 있소. 수천 가지 색깔로 포장된 채. 몬태그, 뭘 생각하시오?"(p. 232).
몬태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뒤처져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깜짝 놀라 그레인저가 지나가게 옆으로 몸을 비켰다. 그러나 그레인저는 그를 쳐다보며 어서 가라고 고개만 끄덕였다. 몬태그는 앞장서서 걸었다. 강과 하늘과 녹슨 철로를 보았다. 농장이 있고, 건초가 가득 찬 헛간이 있는 곳, 밤을 틈타 도시에서 빠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철로. 나중에, 한 달이나 여섯 달, 아니 1년 이상이 될 수도 있는 나중에, 이 길을 다시 걸으리라.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 혼자서 정의를 기억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오가 될 때까지 긴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사(p. 248)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생각하고 기억할 게 많기 때문이리라. 아마 얼마 뒤 태양이 높이 솟아올라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면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외울 것이다. 자신들이 아무 탈 없이 존재해 있고, 자신들 머리 속에 든 것들은 절대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위해. 몬태그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말의 소용돌이를 느낀다. 이 여행을 좀 더 쉽게 만들려면,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날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여정이 좀 덜 힘들게 느껴지려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나니. 그래. 좌절할 때와 다시 일어날 때. 그래.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 그래. 모두 다 그렇다. (전도서 3장 1~8절 부분 인용.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 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옮긴이) 하지만 다른 뭔가가. 달리 무엇이? 무언가, 무언가…'그리고 강의 양쪽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내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 계시록 22장 2절-옮긴이) 그래, 바로 이거야, 정오를 위해 간직해 두어야 할게. 정오를 위해...우리가 도시에 도착할 때(p. 249).
이제 성서의 욥기 2장과 같은 마지막 시험이 여기 있다. 나는 한 달 전에 「리바이어던 99」라는 희곡을 어느 대학극단에 보냈다. '모비 딕' 신화에 바탕을 둔 내용으로서 멜빌에게 헌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눈먼 선장이 이끄는 로켓과 승무원들이 용감하게 거대한 흰색 혜성과 맞닥뜨려서 마침내 그 파괴자를 파괴해 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올 가을에 파리에서 오페라로 초연될 예정이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 공연으로 올리기가 곤란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여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만약 공연이 강행될 경우 학교의 평등 위원회 여성들이 공과 방망이를 들고 난입할 것이라고 하면서. 난 부부득 이를 갈면서 그럼 이제부터는 「보이즈 인 더 밴드」나 「여자들」(모두 미국의 유명한 연극이다- 옮긴이)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냐고,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중에서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 작품들은, 특히 남성들이 좋은 역할을 하는 문단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거냐고 되물었다(p. 261). 나의 희곡을 공연으로 올리고, 그 다음 주에는 「여자들」을 올리면 될 거라고 나는 답장을 썼다. 그들은 아마 내가 농담을 한다고 여겼겠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다, 우리가 그런 소수자들의 사정을 다 들어주다 보면 더 점입가경이 될 것이다. 난쟁이나 거인, 오랑우탄이나 돌고래, 핵탄두 혹은 수자원 보존주의자, 컴퓨터 옹호 주의자 혹은 네오 러다이트, 바보 혹은 현인 등등 모두가 자기들만의 미학적 잣대로 개입하려 들 것이다. 우리의 현실 세상은 그 모든 그룹들 각각이 나름의 주장을 내세우며 법을 만들기도 하고 폐기시키기도 하는 일종의 운동장이다. 하지만 내 소설은, 희곡은, 시는, 그들의 권리가 끝나고 나의 지배 명령이 시작되어 행사되는 통치령이다. 몰몬교도들이 나의 희곡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 쓰라고 하라. 아일랜드인들이 내 더블린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타이프라 이터를 줘 버려라. 교사와 편집자들이 나의 불친절한 문장들 때문에 그 허약해빠진 치아가 부서질 것 같다고 하면 곰팡내 나는 케이크나 그 구미에 맞을 멀건 차에 적셔 먹으라고 해라. 치카노(멕시코계 미국 인 - 옮긴이) 지식인들이 내 단편 '멋진 아이스크림색 양복'을 축약 하기를, 그래서 더 세련되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허리띠가 풀어지고 팬티가 흘러내릴 것이다. 탈선은 위트의 정수이기도 하다. 단테나 밀튼, 햄릿 아버지의 유령 이야기에서 철학적인 방백을 빼 버리면 남는 건 말라붙은 뼈다귀들 뿐이다. 로렌스 스턴이 말했다. 탈선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햇살이며 삶이며 독서의 생명이라고! 그것들을 죄다 없애버리면 오로지 끝없(p. 262)이 추운 겨울만이 모든 페이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작가에게 다시 돌려주자. 작가는 신랑신부처럼 반갑게 다가갈 것이고, 환호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온갖 먹을거리를 차려오고, 우리의 입맛을 잃지 않도록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 작품을 가지고 머리를 베거나 손가락을 부러뜨리거나 허파를 뚫어 버리는 식으로 나를 모욕하지 말아 달라. 나는 흔들거나 끄덕거릴 머리가 있어야 하고, 내젓거나 주먹을 쥘 손도 있어야 하며, 소리 지르거나 속삭이려면 허파도 있어야 한다. 나는 배알도 없이 내 작품들이 책도 뭣도 아닌 꼴로 책장에 가도록 고분고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네 심판들이여, 부디 외야석으로 모두 돌아가길. 링 위의 주심들도 가서 샤워를 하시길. 이건 나의 게임이다. 내가 던지고, 내가 치고, 내가 잡는다. 그리고 내가 베이스를 돈다. 해가 질 때쯤이면 내가 지던지 이기던지 할 것이다. 해가 뜨면 나는 다시 나가서 이 오래된 시도를 또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다. 당신일지라도(p. 263).
작가와의 대담
문 : 사람들이 『화씨 451』을 읽으면서 간혹 간과하는 것이,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책읽기를 싫(p. 268)어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랬지요. 책을 읽고 생각하고 되새김으로써 다시 또 책을 들게 하는 습관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요.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요.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 독서는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답 : 어떤 학술 도시(도시의 기능적 분류의 하나. 대학, 박물관, 연구소 따위가 밀집되어 있어서 학술 연구의 중심이 된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 옥스퍼드, 미국의 프린스턴 버클리, 독일의 라이프치히 • 하이델베르크 등이 이에 속한다. 옮긴이)에 내일 지진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봅시 다. 지진이 끝나고 온전하게 남은 건물이 두 채밖에 없다고 할 때, 손실된 것들을 복구하기 위해 그 건물들은 가장 먼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 건물은 병원이 되어야겠지요. 부상자들을 속히 치료해서 살려내야 할 테니까요. 다른 하나의 건물은 도서관이 될 겁니다. 다른 모든 건물들이 죄다 그 하나에 담기는 겁니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것을 뭐든지 얻게 됩니다. 문학에서부터 경제, 정치, 공학 등등 뭐든지 필요한 책을 갖고 나와서 잔디밭에 앉아 읽는 겁니다. 독서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 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p. 269).
문 : 당신의 독자들과 당신의 책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받아서 그 중 두 가지만 골라봤습니다. 먼저 교사의 질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언어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기 위해서 교사들이, 교육자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갈수록 영상이 문자를 압도해가고 있는 문화적 현실에서 글의 힘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 주려면 말입니다.
답 : (웃음) 책을 건네주세요. 그게 답입니다. SF와 판타지 같은 제 책들은 정말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 놓았어요. 제 책들은 이미지와 은유가 넘쳐나지만, 전부 다 지적인 개념들과 연관되어 있지요. 책읽기를 싫어하는 열두 살짜리 남자애한테 제 책 한 권을 줘 보세요. 그럼 그 애는 사랑에 빠져서 독서를 시작할 겁니다(p. 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