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떨결의 은혜 - 이정훈 목사

총신79회이신 이정훈 목사님이 37년 4개월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용신교회를 개척해 별 탈 없이 목회 여정을 보내고 그간의 사역을 돌아보는 책 ‘얼떨결의 은혜’를 출간했다. 얼떨결에 취재하러 가서 은혜로운 원로목사 추대, 위임목사 임직식을 보고 받아온 책을 몇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한 목회자의 일생, 목회 이야기를 몇 시간 만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책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다. 목사님의 좌충우돌 개척교회 목회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모든 것이 목사님 표현처럼 ‘얼떨결의 은혜’였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An Unexpected Grace다. 담임목회 15년 하다가 중단하고 ‘얼떨결에 기자’가 된 내 입장에서 봐도 모든 것이 다 얼떨결의 은혜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시중 판매용이 아니기에 읽기를 원하시면 용신교회에 문의 전화해 보시기 바란다(031-409-7336).
이정훈 목사 원로목사 추대, 이믿음 목사 담임목사 위임, 출판감사예배 관련 기사 링크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583

3. 예수님을 만남
인쇄소 다니며 견습 과정을 거쳐 기술을 배워 정판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던 무렵, 이제 군 입대할 나이가 다가오던 1974년 가을, 직장을 마치고 올 때 집 앞에서 윗집 선배를 만났는데 "정훈아, 교회 한 번 나와" 하는 전도를 받게 되었다. 선배의 만날 때마다 "정훈아, 교회 한 번 나와라" 하는 전도를 받으면서 마음 가운데 '교회 한번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975년 2월 2일 주일 아침에 윗집에 찾아가서 "오늘 교회 한 번 가보려고 한다." 고 하니 너무 좋아했다. 선배를 따라 처음으 로 교회 갔다. 첫날부터 교회가 너무 좋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날 처음 교회를 나간 날부터 저녁 예배, 수요예배, 금요 청년예배, 토요일 중고등부 예배 모든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다. 심지어 주일 학교 예배도 나갔다. 누가 새벽에도 예배가 있다고 하여 그날부터 새벽예배도 나갔다. 내게 교회 생활은 새로운 세상, 너무 좋았다. 교회가 좋으니까 교회 가는 날, 교회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전에는 직장 중심으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교회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내가 직장을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상도 많이 받고 선배 기술자들이 '저놈은 지독한 놈이야 어떻게 젊은 놈이 놀러 다니지도 않나? 할 정도였다(p. 61). 교회를 다니면서 수요일 주일에는 직장이 아닌 교회를 우선으로 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처음 교회 나온 나에게 청년회장은 신앙생활에 필요한 권면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이원세 청년회장은 당시 서울 대학을 다녔다. 50년의 세월이 지난 그는 변호사로서 사역하고 있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대뜸 반감이 들었고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은 아직 성경이 말씀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죄 짓고 경찰서, 형무소 들어가는 그런 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안에서, 동네에서 '착하다'는 말을 듣던 나는 '죄에 대해서 회개' 하라는 말에 "나는 죄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청년회장은 이상하게 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말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나는 즉시 "지난 주에 말했는데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로는 나에게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안 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깨달음을 새벽 예배 때 체험하도록 하셨다. 나는 처음 교회 나가 모든 예배를 참석하고 새벽에도 예배가 있다고 하여 즉시 새벽기도를 나갔다. 어떻게 예배드리는지도 몰랐기에 먼저 오신 성도님들을 보면서 따라서 했다. 성도님들은 교회에 오면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p. 62). 그래서 나도 교회에 오면 머리를 숙이는 줄 알고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우선 암송을 한 주기도문을 계속 암송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에 교회에 오자마자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는데 갑자기 환상으로 스크린 같은 것이 펼쳐지 면서 청년회장과 나의 대화 장면이 나오고 청년회장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 스크린에 글자가 타이프로 치듯 글자가 쓰 였다. "죄란 무엇인가" 하면서 그 가운데 글자가 크게 두드러지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라고 쓰였다. 나는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산 것이 죄구나" 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정말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듯 한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이 몰려왔다. 죄를 용서받은 죄사함의 평안이 마음에 넘쳤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을 들으면 감사의 눈물이 흘러넘쳤다. 교회 다닌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성가대도 서게 되었고 주일 학교 보조교사도 했다. 여름성경학교 때 나를 전도한 홍경산 선배가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할 전할 때 보조교사로 뒤에 앉아 은혜받으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p. 63).
9. 용신교회 개척
수원 창훈대교회에서 사무장,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무렵, 총신신대원 79회 동창 방종현 전도사가 수원 우만동 지역에서 출석한 강소를 찾고 있었는데 동창인 나에게 연락이 와서 들이 함께 지역을 돌아보며 개척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방종현 전도사가 함께 동역 개척하자는 제안에 내가 수락하였고 갑자기 교회 개척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담임목사님인 한명수 목사님에게 상의를 못한 것을 보면 목사님이 외국 출타 중이든지 교회에 계시지 않았던 것 같다. 상의 했다면 목사님은 반대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두 전도사의 동역 개척은 교회부지는 내가 아는 집사님 땅을 빌리고 내가 아는 건축하는 집사님이 교회를 건 축해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기공 예배도 드리고 '다사랑교회'라는 교회 이름도 지었다. 반지하 본당에 위에는 똑같이 설계된 두 집이 지어졌고 가운데는 공동 서재도 만들었다. 성전을 짓고 개척 예배도 드리고 은혜롭게 공동 개척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목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본래 교회 건축하고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방종현 전도사의 지인 권사님이 '개척하면 교회를 지어 주겠다'로 시작되었다(p. 90). 하지만 2400만원 든 건축비용에 못 미치는 1000만원 헌금만 해 주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200만원까지 해서 1200만원이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져 공동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개 월이지만 교인들도 양분된 상황이었다. 나를 따라온 사람들, 방 전도사를 따라온 개척 멤버들, 그래서 방종현 전도사가 맡아서 교회를 잘 정리하기로 하고 나는 떠났다. 창훈대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던 손충식 목사님이 목회하는 아주대 앞에 있는 경성교회로 옮겨 부교역자로 사역하게 되었다. 경성교회에서 청빙한 사역이 아니었기에 1년을 무보수로 사역했다. 그곳에서 강도사 인허도, 1987년 가을에는 목사안수도 받았다. 경성교회에서의 1년 사역은 비록 무보수에 어려운 여 건이었지만 청년부를 맡고 교회 여러 가지 사역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새해 1988년을 맞이하는데 손충식 목사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이 목사 개척을 하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부 교역자로 내정해 놓은 친구 사역자가 있어 나까지 부교역자로 임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전혀 경험이 없는 나는 개척교회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경성교회에서 계속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손 목사님과 함께 안산이라는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는 전도사님이 안산에 개척 교회를 하려고 지하실을 계약했는데 무엇인가 잘못되어서 계약이 중단된 상태인 건물이었다. 안산 지금의 상록수역 근처 가구거리 중간쯤 되는 건물 지하였다(p. 91). 안산이 신도시로 개발되고 도로가 정비되고 건물이 몇 개 지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직 동네가 형성되지 않았다. 손 목사님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야 전망이 좋다"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는 순간 속으로 말했다. '전망 좋으면 자기가 와서 하지 집도 몇 채 없고 동네도 없는데 무슨 전망이 좋아'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 개척교회가 뭔지? 어떻게 개척교회를 해야되는지 모르지만 안산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전세 800만원인데 수중에는 전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만원으로 계약했다. 우선 보증금 500만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에 있던 창훈대교회 사모님께 500만원을 지인을 통해 빌려 달라고 부탁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100만원으로 지하실을 꾸몄다. 지하 3분의 1을 막아서 예배실과 사택을 꾸몄다. 지인의 도움으로 강대상과 필요한 시설을 만들었다. 1988년 1월 8일, 드디어 안산으로 이사 오는데 바람이 몹시 불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 다섯 살, 이제 막 여덟 살, 여섯 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1988년 2월 24일이 개척 예배를 드렸다. 교회 명칭은 동네 지명을 따라서 지으려고 했는데 확정된 지명이 없었다. 당시 공사중이던 전철역이 '용신역'이다.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인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따서 용신역으로 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 이름을 '용신교회'로 지었다(p. 92). 막상 개통될 때는 '상록수역' 전철역이 되었다. 사람의 이름 보다 '상록수‘가 소설로 많이 알려졌기에 상록수역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도 감사한 것은 용신교회 이름은 전국에 단 하나뿐인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세워주신 용신교회, 이 용신의 이름 에는 아주 중요하고 좋은 세 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 얼굴 용자에 믿음 신으로 [믿음의 얼굴], 또 쓰일 용에 믿음 신으로 [쓰이는 믿음], 그리고 용신할 수 없을 만큼(마가복음 2장 2절) ‘많이 모이는 교회’라는 뜻으로 정리했다(p. 93).
교회가 아름답게 건축된 후 하나님은 더욱 부흥을 주셨다. 주일 낮 예배드리는 성도가 200명에 달했다. 이때 하나님 앞에 앞으로의 목회에 대한 비전을 구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보내 주신 교인들을 관리하는 관계 목회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울 것인가? 이번에도 하나님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목회가 아닌 「건강한 교회」에 대한 도전 을 주시면서 성도들을 영적 지도자로 세우는 「훈련 목회」를 시도하도록 하셨다.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양육, 훈련과정을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NCD - 자연적 교회 성장을 만나게 하셨다. 독일의 슈바르트 박사가 교회의 영적 건강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와 함께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셀 교회 시스템」이 소개되었다. 한국교회의 셀 교회의 전파자라 할 수 있는 빌백햄 목사와 셀 교회 이론을 정리하여 셀 교회 아버지라 불리는 랄프 네이버 목사의 방한으로 「셀 교회」 컨퍼런스가 여러 차례 열렸다. 교회마다 목회자들 사이에 건강한 교회와 교회 본질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p. 107).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세미나, 컨퍼런스, 소그룹 모임 등에 참석했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 「셀 교회」의 비전을 품고 교회에 비전을 선포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전통적인 교회의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에게는 훈련받는 신앙생활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 파장으로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났다. 그래도 성경적인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꿈꾸며 훈련과정이 시작되었다. 2년의 양육과정을 통해 성도들이 변화하는 것 같았다. 사명감에 불타고 뜨거운 열정들이 생기는 듯했다. 그래서 마음이 흥분되었다. 셀리더 양육과정 1기를 마치고 졸업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나 2기, 3기, 4기 기수를 거듭할수록 양자는 줄어들었다. 결론을 말하면, 교회가 기도의 동역화, 전도 집중에 실패하면 무슨 프로그램도 열매 맺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변화될 줄 알았던 셀리더들은 원위치로 돌아갔다. 셀리더가 목회자의 마인드를 갖고 셀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전처럼 친교 모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셀 교 회에 대한 명칭이나 시스템은 그대로 사용하고 전통교회의 형태로 다시 돌아갔다. 성가대를 다시 세우고, 남전도회 • 여전도회 조직도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용신교회 첫 장로님을 세우고 당회를 조직했다. 조직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 위해서였다(p. 108).
나는 교회 생활에 대한 경험도 체계적인 말씀 훈련도 영적인 체험도 없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래서 행인지 불행인지 뭔지를 모르고 그냥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그런데 하나님이 다 하셨다. 믿음대로 해 주셨다. 감사할 것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는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감사합니다](p. 115).
22. 교회사역 마무리 새로운 사역의 출발
이제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우리 용신 교회에서 [이정훈목사 원로 추대식과 이믿음목사 위임식]이 진행된다. 이로써 1988년 2월 24일 용신교회를 설립하고 목회해 온 37년 4개월의 용신교회 담임목사의 사역을 내려놓는다. 많은 목사님이 교회 사역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이 하셨다'고 모두 말한다. 나 역시 '하나님이 용신교회를 시작하셨고 여기까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뿐이다. 1987년 목사 안수 받고 어느 교회에서도 사역자로 불러주지 않고 교회를 개척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게 된 교회 개척이었다. 그때 어느 교회든 어느 목사님이든 [우리 교회에 와서 사역을 하라]고 했다면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부교역자 사역을 했을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모르겠고 열심히는 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전부니까. 그런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개척을 하게 하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교회 개척을 하도록 다른 사역지를 주지 않은 것 같다. 용신 교회 37년 사역은 무엇도 모르고 무조건 이것저것 열심히 한 것 뿐이다. 열심히 배우러 다니고 열심히 가르쳤다. 좋다고 하는 것은 가서 배웠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쳤다. 물론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지만 열심히 가르친 것은 사실이다(p. 203). 성도들이 잘 배우든 못 배우든 나는 모른다. 나는 배운 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왜냐하면 나와 같이 배우려 다니고 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다 가르친 목회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상황, 받아들이는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나와 같이 훈련받았는데 교회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목회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목사님 판단에 배운 것이라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르치고 싶은데 교인들 의 반대로 가르치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목회자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한다면,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역에 힘을 낼 수가 있겠는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함께 훈련받고 미국 비전트립을 함께 다녀와서 큰 꿈과 기대를 가지고 교회 목회에 적용해 보려고 했다가 교회에서 쫓겨나는 상황도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이 배움을 허락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고, 후회가 없다.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봤으니까. 누구도 방해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속으로, 뒤에서는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좋아서, 원해서 배우고 따라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럼에도 목회자를 믿고 따라와 주어서 감사하다. 나는 하나님이 마음에 주신 것을 거의 다 한 것 같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교회가 크게 부흥했을까? 그것은 나도 모른다(p. 204). 때론 부흥하다, 때론 한꺼번에 떠나기도 했다. 한꺼번에 35명, 90여명으로 교인 수가 늘다가 두 번째 교회를 지을 때 한꺼번에 교인 33명이 떠났다. 어떤 때는 60명이 이렇게 저렇게 떠났다. 교인이 몰려오는 것도 한꺼번에 떠나는 것도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부족함, 나의 문제점 때문에 떠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야 한다, 맞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해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그런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이다. 어떤 성도가 우리 용신교회에 왔다가 떠났다. 이사 가야 할 형편 때문에, 교인 간에 시험이 들어서, 목회자의 목회 방향이 맞지 않아서 등등 많은 이유로 우리 용신교회를 왔다가 떠났다. 지금 37년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는 생각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찬송가 가사처럼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유기는 후 물로나 혹 불로나 정결하게 하옵소서 이것을 고백하며 목회 사역을 마무리할 뿐이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p. 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