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0(목)
 
  •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 나카지마 아쓰시(다섯수레 ·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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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가 중국의 역사 인물을 통해 쓴 소설이다. 평이하게 읽었는데 출판사는 그를 "요절한 천재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 작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도 더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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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일일세. 여행을 떠나 여수 강가에서 묵던 날 밤이었네. 한숨 자고 나서 눈을 떴더니, 문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 소리를 좇아 밖으로 나가 보았지. 그 소리는 어둠 속으로 멀어지면서 자꾸 나를 불렀네. 나는 생각 없이 그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 했네.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어느새 길은 숲속으로 접어들었고, 나도 모르게 네 발로 달리고 있지 뭔가. 어떤 이상한 힘이 몸속에 가득 찬 느낌이 들어 바위 위로 훌쩍 뛰어올랐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과 팔꿈치에 털이 난 듯했네. 조금 밝아진 후 골짜기 물에 내 모습을 비추었더니 난 이미 호랑이로 변했더군. 처음에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네. 이것은 꿈일 거라고 생각했지. 나는 꿈속에서도 꿈을 꾼 적이 있거든.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망연자실했네. 그리고 두려웠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너무도 무서웠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 나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이유도 모른 채 주어진 현상과 상황을 받아들여 그저 살아가는 것이 우리 짐승들의 운명이라네(p. 37). 나는 곧 죽으려고 했지. 하지만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눈 앞에서 달려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안의 인간의 모습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네. 다시 내 안의 인간이 눈을 떴을 때 내 입은 토끼의 피로 얼룩지고 주변은 토끼의 털로 어지럽혀져 있었다네. 이것이 호랑이로서의 첫 경험이었지. 그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떤 짓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자네의 상상에 맡기겠네.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 동안은 반드시 인간의 마음이 돌아온다네. 그때는 예전처럼 인간의 말도 할 수 있고 복잡한 사고도 견딜 수 있지. 경서의 장과 구절도 떠올라 읊조릴 수 있다네. 인간의 마음으로 호랑이로서의 자신이 저지른 잔악한 행동을 깨닫고 자신의 운명을 돌이켜 볼 때가 가장 한심하고 두렵고 분하기도 하지. 그러나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그 몇 시간도 날이 거듭되면서 점차 줄어간다네. 이제까지는 줄곧 내가 왜 호랑이가 되었을까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왜 이전에 인간이었을까 생각하고 있질 않겠나. 참으로 무서운 일일세.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내 안에 있는 인간의 마음(p. 38)은 짐승으로서의 습관 속에 파묻혀 사라져 버릴 걸세. 옛 궁궐의 초석이 차츰 모래흙 속에 묻혀 버리듯이 말일세. 그렇게 되면 결국 나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잊고 한 마리의 호랑이로서 미쳐 돌아다니며 오늘처럼 길에서 자네를 만나도 몰라보고, 자네를 잡아먹고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갖지 못할 걸세. 인간이나 짐승이나 원래는 다른 존재였던 것 일까? 처음에는 그것을 기억하다가 점차 잊어버리고는, 아예 처음부터 자신은 지금과 같은 모습의 짐승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p. 39)

 

자공이 공자에게 기묘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죽은 사람은 아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죽은 후 지각의 유무, 혹은 영혼의 멸불멸에 대한 의문이었다. 공자의 답 또한 묘했다. "죽은 이가 지각이 있다고 하면 효자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장례를 치르려고 함이 염려스럽고, 또 죽은 이가 지각이 없다고 하면 불효 자식들이 그 부모를 버리고 장례를 치르려 하지 않음이 걱정스럽도다." 예상이 빗나간 대답이었기 때문에 자공은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물론 공자도 자공이 질문한 의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인 공자는 이 똑똑한 제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바꾸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자공은 스승의 대답이 자못 불만스러워 자로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자로는 그런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죽음 자체보다도 스승의 사생관을 알고 싶은 생각이(p. 102) 조금 일었기 때문에, 언젠가 죽음에 관해 여쭤 보았다. "아직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관해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이 공자의 대답이었다. "과연!" 하고 자로는 아주 탄복해 버렸다. 그러나 자공 은 또 한 번 골탕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p. 103).

    

5개월 후 사마천은 다시 붓을 잡았다. 기쁨도 흥분도 없는 그저 일의 완성에 대한 의지만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p. 183)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나그네같이. 천천히 원고를 써 내려갔다. 이미 태사령 직에서는 면직되었다. 그 후 무제는 조금 후회가 되었는지 그를 중서령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에게 관직의 출척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전의 논객 사마천은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웃는 일도 화내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결코 초연한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악령에 흘린 듯 침묵하는 그의 풍모 속에서 굉장한 무엇을 느꼈다. 밤에 잠자는 시간을 아껴 가며 그는 일을 계속했다. 가족에게는 그가 자살할 자유를 누리고 싶어 일을 서두르는 것으로 보였다. 처참한 노력을 1년 정도 계속한 후, 그제야 그는 삶의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후에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기쁨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무렵에도 그의 완강한 침묵은 깨어지지 않았고, 풍모 속의 굉장한 무엇에도 부드러움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원고를 계속 써 가는 중에 환관이라든가 엄노라든가 하는 문구를 써야 하는 대목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혼자 거실에 있을 때에도, 밤에 침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문득 이 굴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갑자기 인두에 데인 듯(p. 184)한 뜨거운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일어나 신음하며 사방을 서성이다가, 이윽고 이를 악물고 자신을 진정시키곤 했다(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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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평범하게 쓰는 것이 비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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