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사냥꾼의 도서관 - 앤드루 랭 , 오스틴 돕슨(글항아리 · 2023년)
1881년에 영국에서 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이 당시에도 책을 수집하거나 심지어 도둑질하는 일들이 있었다. 책은 오늘날 손쉽게 구해 읽을 수 있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필사본으로 밖에 볼 수 없어 책은 귀했고 비쌌다. 이때에도 고서의 가치를 알고 수집하는 이들이 있었다. 책의 발전상을 볼 수 있는 나름 흥미로운 책이었다.
변변치 않은 2펜스짜리 보고에서 찾아낸 평범한 책을 둘러싼 일화들도 있다. 이런 일화에서 우리는 수집가(p. 52)가 지닌 열정의 속성, 그 순수한 기쁨의 성격을 사소하게나마 읽어낼 수 있다. 수집가는 이따금 단순한 초판본이 아니라 좀더 개인적인 성격의 문학적 유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운 좋은 한 수집가는 고서 거리에서 한때 셸리가 소장하던, 속표지에 시인의 서명이 들어 있는 『오시안ossian』을 사들였다. 다른 수집가는 희귀본으로 통하는, 브뤼셀의 출판업자 포펀스가 펴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운명의 양극단에 맞서는 강건한 현자 Le Sage Resolu conte lune et lautre Fortune』를 한 권 갖고 있다. 한때 나폴레옹의 간수였던 허드슨로 경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다. 이 책은 어쩌면 그 금욕적인 격언을 통해 세인트헬 레나섬에 갇힌 수인, 양극단의 운명을 모두 겪었던 인물의 영혼을 다독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인 유물로서의 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장 자크 루소의 소유였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mitatio Christi』다. 최근 이 책의 행복한 소유주가 된 트낭 드 라투르 씨가 어떻게 이 보물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1827년 라투르 씨는 루브르강변을 걷고 있었다. 강변의 고서점에 진열된 책 중에서 라투르 씨는 낡아빠진(p. 53)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발견했다. 다른 애서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라투르 씨에게는 엘제비어판이 아닌 이상, 시장에 돌아다니는 이 작품의 판본을 일일이 조사하는 습관이 없었다. 엘제비어에서 찍어낸 그 유명한 연대 불명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가치는 상당하다. 그러나 그날 어떤 행운의 작용으로, 아마도 어떤 소크라테스적 악마의 속삭임으로 인해 라투르 씨는 낡아빠진 작은 책 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은 1751년 파리에서 출간된 판본으로 헛장에 어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라투르 씨는 '장 자크 루소'라는 글씨를 읽어냈다. 루소의 친필이 틀림없었다. 훌륭한 애서가라면 응당 그렇듯 라투르 씨도 루소의 필적을 완벽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라투르 씨는 책값으로 75상 팀을 낸 다음 퐁 데자르 다리를 건너 자신의 장정기술 자가 일하는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 루소의 필적을 복제한 글씨가 수록된 루소의 저작 한 권을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라투르 씨는 걸어가면서 책을 들춰보았고 여백에서 루소가 남긴 메모를 발견했다. 복제본과 비교한 결과 그 이름이 루소의 친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행복에 젖은 라투르 씨는 자신이 일하는 관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친구인 V 후작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p. 54)자에 정통한 후작은 루소의 서명을 알아보았지만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전에 라투르 씨는 신성한 책장 사이에서 시든 꽃잎 몇 장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꽃잎이 루소가 가장 좋아한 페리윙클의 꽃잎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의 친구였다. 젊은 시절의 루소처럼 진정한 프랑스인이었던 라투르 씨는 페리윙클 꽃잎을 보고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라투르 씨는 얼마나 흥분했던지 그날 밤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한 가지 수수께끼는 라투르 씨가 루소의 모든 저작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언급한 부분을 기억해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쨌거나 그 이후 이 낡은 책은 제본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러시아 가죽 상자 안에 고이 모셔졌다. 라투르 씨는 "이 비천한 세상에서 애서가가 누릴 수 있도록 허락받은 기쁨"이 더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고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오직 천국에서나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투르 씨는 루소의 『미발표 전집oeuvres Inedites』을 뒤적거리던 중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1763년 쓴 그 편지에서 루소는 모티에 트 라베르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권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1764년은 기억할 만한 해였다. 루소의 『고백록』(p. 55)에 따르면 이 해는 샤르메트 Ies Charmetes 마을에서 바랑 부인이 페리윙클 이야기를 한 이래 처음으로 폐리윙클 한 송이를 눈여겨본 루소가 감정의 둑을 무너뜨린 때였다. 트닝 드 라투르 씨가 발견한 것은 장 자크 루소의 고결한 눈을 감성의 눈물로 적시게 했던, 바로 그 페리윙클의 꽃잎이었던 것이다(p.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