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0(목)
 
  •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김혜남·박종석(포르체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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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살았지만 ‘내 마음 나도 몰라’다. 그러니 상대방의 마음을 어찌 다 제대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을 잘 다스려 평안하게 살고, 남의 마음도 살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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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깊은 거부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병원을 찾아가 볼 것을 권유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거나 우울하다고 하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나 의지의 문제로 돌려 버린다. 게다가 정신의학과에 대한 편견 또한 매우 심각하다. 정신과는 소위 말하는 미친 사람들만 가는 병원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행여나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누가 볼까봐 집 근처 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또한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되고 바보가 된다." “한번 정신과에 가면 그 기록은 평생 따라다닌다.” 등의 잘못된 믿음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욱 부추긴다. 제아무리 심각한 우울증이라도 그래 봤자 병일뿐이다. 증세는 심각하지만 빠른 진단과 바른 치료만 이루어진다면 결국 회복이 되며, 완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 것처럼 '마음의 독감'인 우울증도 감추거나 미루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치료를 시작하면 대부분 3개월 안에 호전된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햇빛과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세상, 그리고 이웃들의 따스한 미소를 다시 만나서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법을(p. 8)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세상을 향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울증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문다. 그동안의 극심한 고통은 개인을 황폐하게 만들고, 심리적, 사회적 합병증을 부르게 된다. 그중에서도 자살의 위험성은 특히나 심각하다. 우울증은 분명 치료될 수 있는 병이며, 그 지옥 같은 어둠의 끝은 반드시 있다. 그러니 지금은 죽을 것같이 괴로워도 이 우울증은 반드시 좋아질 것이고,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는 막연한 바람이나 위로가 아닌 의학적으로 증명된 분명한 사실이다.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밝은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희망의 끈만 놓지 않으면 그날은 반드시 온다. 다시 생생한 감정을 느끼고 나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두 발로 서서 발끝으로 다가오는 땅의 기운을 느끼고, 잠시 멈추었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니 삶의 어느 순간에 우울과 만나게 되면 당황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인사해야 한다. 그래야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다(p. 9).

 

우리가 무슨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반복되는 생각과 행동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과거는 과거로 돌려주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다. 즉 고통스럽던 기억으로 덮여 묻혀 있던 참된 자기를 찾아 그 자기에게 밝은 햇빛과 맑은 공기를 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면 세상에 대한 희망 역시 간직할 수 있다. 여기에 도달하는 첫걸음은 '긍정성'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려 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비록 세상에는 힘들고 실망스러운 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선과 행복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믿음, 그러한 믿음이 바로 긍정성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울한 사람은 비극을, 다혈질의 사람은 희극을, 침착한 사람은 무의미한 것만을 본다."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안경의 색이 어두울 때 세상은 전부 어둡고 칙칙하게 보일 것이며, 안경의 색이 분홍빛이면 세상은 분홍색으로 보일 것이다. 이 안경의 색은 바로 우리의 감정 상태나 사고방식을 나타낸다. 비록 오늘 내가 지각을 하고 업무에서 실수를 했지만 평소의 나는(p. 22)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업무 능력도 뛰어나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아름다운 분홍빛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p. 23).

 

흔히들 조울증을 기분이 좋다가 우울했다가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병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조울증은 일정 기간의 조증 시기와 일정 기간의 우울증의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며, 보통 그 기간은 각각 2주 정도 지속된다. 또한 조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분이 들뜨고 에너지가 넘치는 조증도 있지만 조울증에서 더 자주 나타나는 조증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고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는 증상이다. 짜증이 나는데 왜 조증일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조증(mania) 은 기분이 들뜨고 흥분된 상태, 비정상적으로 에너지가 과민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외부의 자극에 엄청나게 예민하고 날이 서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도한 집중력과 지나친 생각이 본래의 유쾌하고 좋았던 기분을 사라지게 하고 의심과 피로감을 불러오게 된다. 조울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 조증의 시기에도 그리 행복하거나 즐겁지 못하며 오히려 우울증 시기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격양되고 들뜬 기분을 통제하지 못하여 박 대리처럼 과도하 게 행동하게 되고, 결국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불행을 맞게 된다. 조울증 환자 중에는 박 대리보다 더 극단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조증 시기에 자신의 지갑을 노숙자에게 통째로 준 사람도(p. 28)있고, 집을 판 돈 전부를 교회에 헌금한 주부도 있다. 또 누가 봐도 가능성 없는 사업에 아무 준비도 없이 수십억 원을 투자했다가 날린 사람도 있다(p. 29). 

 

죽음에 의한 상실로 발생한 고통이 시간의 강물을 타고 흘러가서 과거라는 시간의 바다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애도과정'이라(p. 35)고 한다. 이 애도과정을 심리학자인 불비 John Bowlby는 4단계로 구분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지면서 무감각해지고 항의 를 하게 된다. 이때 대상의 죽음을 부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고 찾아다니는 단계로 안절부절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와해와 절망의 단계이다. 이제 인생의 의미를 잃은 것 같고, 사회적 관계를 끊고 고립되며, 무감각해지고 불면증과 체중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끊임없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며, 그것이 단지 기억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마지막 단계는 회복의 단계이다. 이때는 상실의 통증이 줄어들고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떠나간 그 사람이 내재화되어 가슴속에 살아있으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이러한 애도과정은 통상 6개월 정도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 만일 이 기간 동안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슬픔을 억누른다면 그 슬픔은 가슴속에서 곪게 되고, 나중에 병적인 애도반응이 나타날 위험성이 생기게 된다. 또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되는 애도반응은 병적인 상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애도과정을 겪는 기간 동안 우리는 슬픔과 그리움에 몸부림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것 같은 허무감과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 그리고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가져다주는 두려움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아프지만, 이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니 거부하지 말고 충분(p. 36)히 슬퍼하고 아파해야 한다. 애도반응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결되었던 자신의 본능적 욕동(ibido)이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우리는 언뜻언뜻 그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렇게 그를 붙잡아두려는 소망은 환각의 형태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와,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마주치면서 이제 우리의 자아는 운명을 받아들일 결정을 한다. 즉 그 사람에 대한 애착을 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만족하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아주 서서히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그 사람과의 단절이 일어난다. 고통스러운 슬픔을 거쳐 애도를 끝내면 우리의 자아는 억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된다. 그리고 철수했던 자신의 욕동은 다른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p. 37). 

 

"실컷 울고 충분히 슬퍼하세요"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애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애도과정이란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그 슬픔에서 건강하게 헤어나올 수 있게 된다. 상실의 고통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그저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아픔을 싣고 지나가도록,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냥 상투적인 말로 들렸던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이때처럼 진실임을 확인하게 되는 때도 없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는 웃지 못할 것만 같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만 같던 마음에도 어느덧 웃음이 찾아오고, 사랑이 찾아온다.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하지 못하면 그 슬픔과 아픔은 안으로 곪아서 나중에 병이 된다. 종기가 났을 때 아프고 열이 나더라도 종기를 째고 그 안의 고름을 짜내야 한다. 그래야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새살이 돋아나 상처가 완전히 아물 수 있다. 그저 종기를 덮은 채 그 위에 아무리 약을 발라봤자, 살 속 깊숙이 있는 병균은 점점 더 깊이 살을 파고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나중엔 병균이 전신에 퍼져 온몸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 어머니나 아버지와 이별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p. 42)은 훗날 주요 우울증이 발병할 위험성이 높다. 이는 아직 죽음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할 수 없는 시기에 마주친 죽음이나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결과, 그 상처가 아이들의 인격구조에 커다란 상흔을 남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무지는 아이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아이들의 애도과정을 방해한다.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는 일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영화 〈보통 사람들〉의 콘래드도 치료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그리고 여자친구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을 제대로 쏟아놓을 수 있게 된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혼자 슬퍼하기보다는 그를 상실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슬픔을 공유하는 것도 건강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인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을 서로의 가슴속에 담아 두게 되고,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과의 유대감은 상실을 메꾸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어쩌면 이 과정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하면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만남과 이별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면서,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타인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p. 43).

 

공황장애란 심한 불안 발작과 이에 동반되는 신체 증상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불안장애의 한 종류로 10여 년 전부터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이를 호소하면서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고, 현재는 널리 알려진 질환이 되었다. 공황장애는 100명 중 3~4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질환인데,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3배나 더 많이 나타난다. 특히 20대 중후반에 증세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혼이나 별거 중에 이를 경험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공황장애는 그 증세만으로도 건강한 생활에 위협이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병이 불안을 계속해서 키우는 습관이 있어서 다른 종류의 불안장애나 우울증을 불러올 위험이 무척 크다는 것이다(p. 53).

 

안심하세요, 당신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공황장애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인지의 개선이다.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 정신을 잃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왜곡된 개념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괜찮다." 라는 말을 반복해서 해주고, 실제로도 별일 없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p. 58).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설령 어릴 적 행복하지 못했던 불행한 기억이 있더라도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누구의 잘못이라 탓만 할 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이란 여러 가지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곳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일들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도 느낄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p. 72)

 

관심병을 앓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말이나 뒷담화, 비난에도 상당히 예민하며 연극적인 성향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최근에 와서는 남들의 눈치를 상대적으로 덜 보면서도 자신의 연극성 성향을 마음껏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 등장했는데,(p. 100)바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다. 자신의 계정에 본인의 글이나 사진을 울리는 것만으로 그토록 원하는 관심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고, 그 피드백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사진과 글을 올릴지 순전히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관종들에게 이보다 좋은 놀이터는 없다(p. 101).

 

"당신의 불안보다 더 가까이에서 내가 당신을 지켜주고 있어요"

불안장애의 치료 중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것을 실제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불안해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정도만 하는 게 보통이며, 심지어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좀 걱정이 지나친 거 같은데?"라며 오히려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불안하고 싶어서 불안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불안해하지 마."(p. 150)라는 말은 정말 그 사람의 불안을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 서 나오는 말로,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괜찮아질 거야."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미 공황장애, 강박증, 외상 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일 년이 지나도 오 년이나 십 년이 지나도 괜찮지 않아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마."나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위로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 된다. 공감이 빠진 어설픈 위로나 조언을 할 바엔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훨씬 낫다.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을 지켜봐 주고 손 잡아 주고 안아 주기만 해도 80점 이상의 좋은 치료가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면서 30분이고 몇 시간이고 그 사람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얘기를 들어주면서 말없이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주거나 가볍게 어깨를 감싸 준다면 더 효과가 크다. 이는 '지금 너는 안전해'라는 신체적 메시지를 전해 주기 때문이다.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뇌는 노르에피네프린과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인해 인지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즉 말로 아무리 괜찮다고 해주어도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가벼운 포옹이나 신체적인 접촉은 그 사람을 안정시키는 데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물론 그 사람과 굉장히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이어야 하며 스킨십을 행할 때도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의 흥분이나 신체 증상이 어느 정도 가라앉(p. 151)았다고 생각되면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접근을 시작할 수 있다. 이를 흔히 인지 치료라고 하는데, 왜곡된 사고 과정을 교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불안장애에서 느끼는 불안은 사실 실제보다 그것을 과장되게 받아들이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겪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인지 치료를 통해 이러한 과장과 왜곡, 일반화등의 생각이 지나치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오류를 고쳐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미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거미가 실제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독을 가진 거미는 도시에는 거의 살지 않는다'는 정보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교통사고 이후 두려움으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사람에겐 교통사고는 불운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결과가 아니라, 본인이나 상대방의 운전미숙, 휴대폰 벨소리나 음악에 주의력을 빼앗겨 일어났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안전에 대해 꼼꼼히 주의하고 사고의 위험에 대해 늘 체크한다면 사실상 큰 교통사고가 다시 일어날 확률은 무척 낮으니 말이다. 또한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대상과 상황에 조금씩 점진적으로 노출되게 함으로써 두려움을 줄여 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고소 공포증 환자에게 처음엔 2층까지만 올라가게 하고 다음 날은 3층, 그 다음엔 5층까지 올라가 보는 식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적응하도록 예행연습을 시켜주는 것이다. 마치 과외수업을 하듯이 진도에 맞추어 천천히 불안과 마주하도록 도와주면 어느샌가 그 사람은 꽤 높은 건물에 올라서도 예전만큼 심장이 떨리거나 무섭지 않게 된다(p. 152).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이다. 아무리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근원적 이고 본질적인 불안감에서 혼자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때문에 내가 불안장애를 겪는다면 병원 치료와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내 옆의 소중한 누군가가 불안장애를 겪는다면 그냥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옆에 있어 주면 된다. 당신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들보다 내가 더 가까이에서 당신을 지켜 주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p. 153).

 

"기왕 해야 한다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내세요"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으로 살면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p. 180)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왔지만 정작 그 무엇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잘 해내고 못 해내고를 떠나 어차피 나의 역할이고 나의 삶의 일부였는데, 기왕이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낼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스럽다. 아이를 기르는 기쁨을 즐기지 못하고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될까 봐 아이를 닦달하고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살아 왔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즐기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서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만 힘들다고 불평만 하면서 살아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이 영유아기를 지나 는 동안만큼은 그들과 마음껏 놀아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일 로 돌아왔을 때 최소한 직장에서만큼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나의 일과 능력을 즐기고 싶다. 나는 이러한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을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혼란과 죄책감을 호소하는 워킹맘들에게 그대로 전하곤 한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엄마의 관심이 절실한 시기는 한정돼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할 때에 내 일을 찾아가도 늦지 않다. 물론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바꿀 만큼의 큰 무게는 아니다(p. 181).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화병은 대부분 힘든 과정이 다 끝난 후에 생긴다.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술과 여자 문제로 평생을 속 썩이던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와 같이 힘들었던 일들이 다 지나가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좀 편해진다 싶으면 몸이 이상해지고 화병이 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억압이 풀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힘들 때는 자신을 억압하면서 참고만 지내왔다. 억압하고 참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p. 211)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돌볼 여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제가 끝나거나 사라지고 억압이 느슨해지자 그동안 쌓였던 우울과 분노가 '이제 나도 좀 숨을 쉬어야겠다.'며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p. 212).

 

적절하게 표현하고 참으며 당신의 감정을 돌보라

화병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 화가 쌓이지 않도록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화를 내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방출되는 화는 오히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적절하게 표현하고 적절하게 참을 줄 아는 능력을 기르며, 자신의 감정을 아끼고 돌볼 줄 알아야 한다. 화병은 가족구조 내에서 많이 발생하므로 가족들 사이에 평소 대화를 자주 해서 서로의 감정이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힘든 일을 분담하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준다면 화나는 일이 있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대부분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자식을 중심으로 하루를 보내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게 된다. 즉 자식을 가장 중요 한 위치에 두게 된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다 성장하고 독립해갈 때쯤이면 내 옆에 있던 배우자의 존재가 커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남는다. 즉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였음을 새삼 깨 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야 비로소 가족들에게도 충분한(p. 214)사랑과 평안을 나누어줄 수 있다. 그러니 취미나 능력을 키우는 등 자신을 계발하고 돌보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차분히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봉사활동이나 종교활동 등을 통해 내 가족 너머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삶의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다(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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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참 어려운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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