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 장폴 뒤부아(창비 · 2020년)
나는 드라마를 안 본지 오래됐다. 그래서 그런가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실용서를 좋아하기 때문인가보다. 그래도 가끔은 읽을려고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살면서 겪은 인생의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 제목 그대로이다. 짧은 한 평생 살고 싶은대로 살다가 가야지...
창폴 뒤부아(Jean-Paul Dubois). 1950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 는 프랑스의 국민작가이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 여행기를 펴냈다. 장편소설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1996년 프랑스 텔레비전상 수상작 『케네디와 나」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프랑스적인 삶」으로 프랑스 4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 앵테랄리에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며 제100회 페미나상을 받았다. 이후 2012년 「스나이더 사건」으로 알렉상드르비알라트상을 수상하고, 2019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로 공쿠르상을 거머쥔다. 그밖의 장편소설로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1999),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2006), 「남자 대 남자」(2007), 『이성적인 화해(2008), 「상속」(2016)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내용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낸다는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책 속지.
1975년, 내가 스무살이 된 해에 한 세계, 우리의 세계, 한센 가의 세계, 북구 사람과 남구 사람이 만든 그 세계는 끝(p. 82)났다. 그들은 부부로 결합하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뛰어넘고 각자 크나큰 희생을 치렀다. 외국어를 배웠고, 말도 안 되는 차를 샀고, 한 사람은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은 눈을 뜬 채 각자 자기식으로 키스를 했고, 누구를 위한 건지 왜 그러는 건지도 모른 채 애를 낳았고, 신의 뜻을 설교하고 악마의 뜻을 영화로 전했으며, 피차 약속한 대로 매일같이 문 앞에 쌓이는 모래를 쓸어내면서 뼈에 사무치도록 참고 견뎠으나, 그 끝은 헤어지고 떨어지고 갈라지고 나뉘고 부서지는 것이었다(p. 83).
세즈윅은 중앙에, 한가운데에, 자기 공국의 중심에 있었다. 집정관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고 어깨에는 추잡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세즈윅도 아주 작아 보였다. 내 아버지의 말마따나 "쥐뿔만큼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마치 내가 자석들이 가리키 는 북극이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세상의 축이 옮겨간 것 처럼. 나는 잠시 그 완벽한 침묵을 듣고 나서 물속 깊이 내려갔다. 할 수 있는 만큼 오래오래 숨을 쉬지 않고 잠수를 했다. 다들 잠시 헛것을 보았나, 생각하게끔. 허깨비가 수영장 물의 소금기에 녹아서 적당한 배출구로 나가버렸다고 믿고 싶어지게끔. 나는 폐가 터질 것 같은 순간까지 참았다가 큰고래처럼 불쑥 물 밖으로 튀어올랐고, 숨을 들이 마시고는 다시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물을 느껴보려고 면도도 말끔히 하고 왔다. 물은 나를 스치는 등 마는 둥 했다. 물은 질감이 달라지긴 했지만 제 할 일을 했다. 불순을 걸러내고 나의 정신을 씻어 주었다. 세번, 네번, 나는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가 튀어나오기를 반복했다. 그 장면에서 퇴장하면서, 나는 어떻게든(p. 294) 열을 맞추고 보조 역할을 잘해보려고 애쓰는 딱한 배우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가장자리로 다가가 테두리 돌을 짚고, 나갈 듯 말듯 어정쩡하게, 엎드린 총잡이 자세로 샘 나게, 세즈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동물의 사체를 살펴보듯이. 그 소리 없는 관찰치료가 그에게는 수백년 같았겠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의 무너진 교만과 생살이 벗겨진 어깨를 오롯이 음미할 시간을 나에게 선사했다. 나는 심장이 다시 평온하게 뛰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계단을 한칸씩 올라 물 밖으로 나왔다. 풀밭에서 행복한 귀를 하고 신나서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나의 개 누크를 보았다. 선베드에 누우니 바로 옆에서 키어런이 입을 열었다.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마린랜드에서 범고래 쇼를 보는 것 같았네요." 잠시 후, 세즈윅이 제 자리를 뜨더니 우리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크게 빙 돌아 나갔다. 리드는 그가 모양새 빠지게 물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을 했다. “그거 알아요. 폴? 올해 연말에는 내가 저 사람에게 맞서 입주자 대표 후보로 나갈 겁니다.”(p. 295).
옮긴이의 말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우리는 모두 '목구멍 깊숙이' 넘어가 어떤 배, 어떤 창자 안에서 소화될 것이고 결국 그 밖으로 밀려나 죽음이라는 공동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이 풍진 세상에서 이 인생은 행복, 저 인생은 불행이라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살기 위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시대의 잣대로 바라본 성공과 실패는 인간으로서의 존엄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폴의 인생은 상실과 멜랑콜리의 극치다. 그러나 모두가 새로운 세상의 룰에 적응할 수는 없다. 팬데믹과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하루에도 몇번씩 들리는 2020년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래도 누군가는 ‘배운 재주가 그것밖에 없어서’, 혹은 적성과 성정에서 우러나는 애착 때문에 자신의 존엄(p. 307)을 걸고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러는 아주 오래전에 떠나온 자신의 뿌리, 가령 조상들의 하늘이나 거인들이 사는 구대륙의 ‘땅끝’으로 돌아가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 소회를 몇자 덧붙이자면, 실존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과 시대를 바라보는 사회학적 시선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공들여 작업했지만 번역하는 내내 부족함을 느꼈다. 번역을 마친 지 얼마 안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큰 상실을 경험했고, 그후 나로서는 이 작품을 다른 식으로 읽어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p. 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