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괴이 - 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비채 · 2024년)
2011년 5월 1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둔덕산 폐 채석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이 사건 자체가 워낙 특이하고 충격적인 데다 세계적으로도 유사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니 외신들도 이 사건을 보도했다. 사람 혼자서 십자가형으로 자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근거를 토대로 타살이라는 의혹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부검•유전자·필적 등 모든 것을 조사했음에도 타살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나무위키. 이 괴이한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6명의 작가가 글을 썼다.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상상력이 풍부한 인생이고 싶다. 결국 독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배가 끝났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져 사람들이 놀라서 다가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스릴 넘쳤다. 오랜만에 커피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탕자 취급을 받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유나를 데리고 간 것은 주님의 뜻이고 이럴수록 우리는 그분의 품 안에서 고귀한 뜻을 헤아려 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 동석자에 대한 처벌을 이야기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나를 폭발 직전에 이르게 했다. 무의미하게 오가는 위로와 하나님의 말 속에서 분노는 출구를 못 찾고 몸부림쳤고 결국에는 터질 게 터졌다. 그들 앞에서 하나님에게 맺힌 서운하고 야속한 감정을 터뜨리자 다들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봤다. 만만하게 봤던 인간이 감히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이 놀라 웠으리라. 그걸로 카페를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p. 94)저 책상 서랍에 들어 있던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사탄에 씌어서가 아닌 온전하고 확고한 나 자신의 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본인을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자가 자신을 오랜 시간 섬긴 이의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보다 역겨운 일이 어디 있을까. 그날 나는 예수의 이름 뒤에 입에 담기도 혐오스러운 욕설들을 붙이며 하루를 보냈다. 인류의 구세주 행세를 하는 그자를 구름 위에서 땅바닥으로 내리꽂을 방도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대강의 그림은 머릿속에서 가지를 뻗어 나갔다. 하잘것없는 인간이 예수를 본떠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그를 둘러싼 군중이 절을 하며 숭배하는 장면은 머릿속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예수의 재림이라며 흥분할 신자들은 물론,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그 광경은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p.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