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도끼다 – 박웅현(인티N · 2023년, 개정판)
책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도끼와 같다. 도끼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아찔하지 않은가? 제대로 도끼날을 맞으면 큰 나무도 쪼개진다. 나도 책을 읽으며 수많은 도끼날의 난타를 당했다. 크고 작은 도끼질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오늘도 내 머리를 쪼갤 도끼를 찾아 독서의 여정을 떠난다.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 해 몇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그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p. 34).
책이나 그림, 음악 등의 인문적인 요소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줍니다. 김훈을 읽기 전에는 산 세월이 훨씬 긴데 산수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산수유가 하나하나 보입니다. 이창동의 영화 〈시〉에서 사과를 가지고 얘기하는 장면처럼 산수유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면서 발견하는 눈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빛 자체가 흐릿한 산수유는 그냥 지나치면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정말 빛이 그림자 속에 모여 들끓는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봄에는 산수유를 꼭 한번 들여다보고 빛이 들끓는 모습을 발견해보세요. 그리고 동백, 진달래, 개나리 같은 꽃들과 비교하면서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p. 75).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이렇게 생길 듯 말 듯 하면서 느닷없이 없어져버린다는 겁니다. 이 다음 구절은 정말 아름다워서 줄 친 데 위에 또 줄을 쳐놨는데,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이 구절을 읽고 어떻게 산수유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그전에는 산수유를 보고도 뭐 저렇게 특징 없는 꽃이 다 있어 했는데 이제는 나무가 꾸는 아련한 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p.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