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7(월)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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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벼운 에세이를 자주 읽고 있다. 책 읽다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에세이는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고 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일상을 통한 삶의 경험, 지혜를 배울 수 있어 재밌다. 그만큼 에세이는 자기를 노출하는 글이다. 곽선희 목사는 설교자는 에세이를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일상의 언어로 설교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있다. 편식하지 말고, 두루두루 섭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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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서 위로를

편집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물었다. 교정지에 손 많이 대고 참견이나 꼬투리 잡는 멘트 넣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지 않다고, 많이 고칠수록 고맙다고 했다. 신초샤(일본 출판사)는 워낙 꼼꼼해 교정지가 새까맣게 돼서 오는데 정말 고맙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교정지도 그렇게 새까맣게 온다고 하니 교정지가 빨갛게 와도 좌절하지 마세요, 동료 여러분(p. 55).

 

발 끼우고 문 닫기

유태인은 싸우고 돌아서서 "너랑 다시 안 볼 거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문을 '쾅!' 닫는 게 아니라, 한쪽 발을 살짝 끼우고 닫는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탈무드에서 읽은 이 이야기가 살아오며 자주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너랑 다시 안 봐!"라고 선언하고 싶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참았다. 마지막 말만은 입이 찢어져도 하지 말자. 지금 심정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여지는 남겨 두자.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화난 것도 잊고 서운한 것도 잊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안녕" 하고 인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단, 남녀 관계만은 예외다. 남녀 관계에서 발 끼우고 문 닫는 것은 비굴함과 찌질함과 질척거림의 삼단콤보일 뿐이다. 문짝이 부서지게 닫아도 된다)

얼마 전에도 둘이나 있었다.

야, 나한테 연락하지 마.

너랑 다시 아는 척 안 해.

그렇게 시원하게 말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그러나 이번에도 탈무드의 교훈을 떠올리며 마지막 말은 참았다. 그랬더니 며칠 뒤, 한 사람은 사과를 하고, 한 사람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대했다. 며칠 푸르르 끓었던 화가 풀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무 자르듯 자르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뭐, 둘 다 별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나쁜 기억으로 관계를 마무리 짓는 것은 찜찜하다. 열린 관계로 헤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찌 보면 치사한 방법이기도 하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차단해 놓고 겉으로는 문을 닫지 않은 척하는 것은. 그러나 사람은 또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법. 게다가 온라인은 지하철 2호선처럼 돌고 도는 세상이라 외나무 다리 원수처럼 마주치기 십상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pp. 83-85).

 

관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흔히 관계가 파괴된 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관계가 나빠진 것이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자신이 없다.

학교 다닐 때는 화장실 같이 갈 친구, 도시락 같이 먹을 친구, 그런 친구 관계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점점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는 데 불편이 없다. 그래서 귀차니스트인 나는 쉬이 관계를 끊는다. 이러다 세상과도 관계를 끊을 기세다(pp. 166-167).

 

맺힌 한마디를 날릴 때는

1. 거래처에는 일이 끊길 각오를

2. 지인한테는 인연 끊을 각오를

3. 형제한테는 다음 명절까지 안 볼 각오를

4. 자식한테는 며칠 냉전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맺힌 한 마디를 날린다고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p.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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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남의 소소한 일상을 통한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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