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넋두리 - 불만이나 불평을 혼잣말처럼 하소연 하는 것
최근 기독신문 사설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별 희한한 소리와 반응을 겪었다. 나는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문장 표현의 모호함 그리고 오류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런데 “감히 찌라시 언론이 기독신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 남에 대한 인신공격이다. 왜 남의 언론을 공격하느냐? 이런 글 쓰게 한 배후가 누구냐? 누가 너에게 어드바이스 해달라고 했느냐, 네가 뭔데 앞으로 기독신문 기사를 자세히 읽겠다”라는 것이냐 등등의 말을 들었다. 방금 어느 한 책을 읽다가 이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이런 데서 위로를
편집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물었다. 교정지에 손 많이 대고 참견이나 꼬투리 잡는 멘트 넣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지 않다고, 많이 고칠수록 고맙다고 했다. 신초샤(일본 출판사)는 워낙 꼼꼼해 교정지가 새까맣게 돼서 오는데 정말 고맙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교정지도 그렇게 새까맣게 온다고 하니 교정지가 빨갛게 와도 좌절하지 마세요, 동료 여러분(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pp. 55).
교단 소식지인 기독신문 글에 오류가 있어 애정으로 지적한 것인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 참으로 노답이다. 만약 내가 다른 언론사 글이라면 이렇게 여러 번 읽고 오류를 지적하는 피드백을 썼을까?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언론사의 글은 잘 읽지도 않지만, 우연히 봤는데 오타가 있으면 그냥 내버려둔다. 반면 친근한 언론사같은 경우 오타를 알려준다. 오타 하나가 그 기사와 신문사의 격을 얼마나 떨어트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간혹 내 기사를 읽고 오타를 지적해 주면 너무나 감사하다. 그만큼 내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기사는 내용은 말할 것 없이 오타와의 전쟁이다.
부목사 때 주보 제작을 맡으면 오타와의 전쟁이었다. 오타가 나서 욕을 먹기도 하고, 주보 전체에 종이를 붙여가며 수정하기도 하고, 하필이면 까다로운 장로 이름이 잘 못 나가 소동이 나기도 하는 등의 일을 겪다 보니 책을 읽으면 오타가 자주 눈에 띈다.
내 기사도 여러 번 교정하는데, 나중에 읽다 보면 또 오타가 있는 것을 볼 때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나마 인터넷 신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지면 신문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사람인지라 오타는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매사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걸 지적했다고 이런 말들이 들리니 이제 기독신문에서 오타와 非文을 발견하면 타산지석으로 삼고 끝내야겠다. 나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