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국가의 탄생 – 이춘재
검찰정부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은 2023년 1월에 나온 책으로 검찰공화국의 탄생 배경을 밝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취해 윤석열을 키워줬고 이후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결국 정권을 검찰에 넘겨주게 됐다고 말한다. 결국 현 정권은 전 정권이 만든 업보다. 기가 막힌다. 촛불항쟁으로 죽을 쒀서 개에게 준 꼴이 된 것이다. 한 개인의 그릇된 판단이 얼마나 역사를 망가뜨리고 퇴보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 것이기에 사람이 무섭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문 정권이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등 과거 정권에서 해내지 못한 제도적 개혁을 어느 정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무엇보다 '대통령 윤석열'이 그 증거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끝에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그가, 검찰개혁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건 문재인 정권의 재창출을 막은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검찰개혁이 성공했다면 지금 대통령 집무실의 주인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검찰개혁의 최종 목적지는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그 믿음의 전제는 검찰이 정치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검찰권을 공명정대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국민이 검찰을 불신한다면 공수처를 도입하든,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불행히도 '검찰총장 윤석열'에서 '대통령 윤석열'로의 이행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가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수사가 공정할 것 이라고 기대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이 윤석열은 '윤석열 사람'이라 불리는 측근들을 법무부와 검찰 고위직에 임명해 ‘검찰직할 체제’를 갖췄다. 검찰에 관한 원칙을 정리한 유럽연합의 〈로마 헌장> 제6조에 따르면 “검사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며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검찰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에 실패한 것은 뼈 아프다. 2016년 겨울, 박근혜 정권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많이 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가 검찰개혁이었다. 검찰은 박근혜 정권이 벌인 국정농단의 예고편 격인 '정윤회 사건'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권력의 치부를 알아서 덮었다. ‘김학의 성접대 의혹’ 등 비위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무디기만 했다. 반면 검찰이 겨냥한 표적은 그 주변까지 탈탈 터는 별건 수사를 통해 굴복시켰고, 이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시민들은 이렇듯 권력 눈치 보기와 조직 이기주의에 찌든 검찰을 촛불정부가 확 바꿔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처럼 "꿈같은 희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개혁의 당위성은 검찰 스스로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출발한 문재인 정권은 정작 검찰개혁 과정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정권 초기부터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검찰의 권력 과잉을 못 본 체하다가 '조국 사태'라는 암초와 부딪히고 나서야 부랴부랴 개혁에 나선 것이다. 이는 정권에 '내로남불' 이미지를 씌웠을 뿐만 아니라, 개혁에 대한 검찰 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정당한 저항'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이 치명적 실책은 문재인 정권에는 (제도 개혁에 상당한 성과를 보였음에도) 끝내 검찰개혁에 실패한 또 하나의 정권이라는 꼬리표를, 한국 사회에는 '검찰정권'의 탄생이라는 불행을 안겼다(pp. 9-11).
검찰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권에서 정치검찰과 ‘법 기술자’가 득세한다. 따라서 검찰을 개혁하려면 이 은밀한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한다. 국정과제에 검찰을 동원하는 짓은 이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검찰을 정치의 '주전장(主戰場)'으로 끌어들일수록 검찰의 힘은 커지고 개혁은 그만큼 떨어진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적폐 청산에 '윤석열 사단'을 동원하는 순간부터 실패가 예정된 것이다. 윤 사단이 적폐 수사에 동원한 수사 방식 -'유죄추정'과 피의사실 공표, 무분별한 압수수색 등-이야말로 검찰의 대표적 적폐이자 개혁대상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은 정적을 제거해주는 ‘칼맛’에 취해 윤 사단에 힘을 몰아주었다. 이에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거듭난 윤석열 검찰은 정치검찰에 만족하지 않고 정국을 직접 주도하는 '검찰정치'로 나아갔다.
검찰개혁의 실패는 '검찰국가'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했다. 최고 사정기관인 검찰을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권력기관의 핵심 포스트에서 대통령의 뜻을 일사불란하게 집행할 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눈으로 확인하듯 '정치의 실종'이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는 시민사회-여야 정당-정부가 대등하게 소통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의사전달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상명하달'의 정치다. 검찰 조사실에서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처럼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다. '검찰 DNA'에 기반한 정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시대적 흐름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5년여 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밝혔던 대가가 검찰국가일 수는 없다.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되짚어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pp. 16-17).
'검사 대통령'을 꿈꾸다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사주 방상훈과 《중앙일 보》 사주 홍석현을 사적으로 만났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언론사 사주를 만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점찰총장도 언론사 편집국장이나나 보도국장을 만나는 경우가 있을 뿐 오너를 마주한 일은 없다. 사적인 인연이 있더라도 피하기 마련이다. 검찰권 행사와 관련해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검찰과 언론의 유착은 수사의 신뢰 와 공정성을 해친다. 특히 《조선일보》 사주 일가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여러 사건이 걸려 있었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기간인 2017년 5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 5건의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 돼 있었다.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권고한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방상훈 사장의 아들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와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에 대한 수사, 2018년 3월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4개 단체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보도 무마를 위한 불법거래 의혹을 수시해달라며 《TV조선》 간부를 고발한 사건, 2019년 2월 민생경제연구소 등이 방정오를 횡령•배임 의혹으로 고발한 건, 2019년3월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 관련 기사 거래 의혹 고발 건, 2019년 6월 전 국인론노동조합 등이 방상훈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 등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조선일보》 사주 일가는 피의자가 될 터였다. 검사가 수사 대상자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검사윤리강령' 위반에 해당한다. 윤석열은 2020년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추궁하자, "(만남의) 상대방도 있는데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버텼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두 보수언론 사주와의 만남은 윤석열이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었다. 검찰총장이 목표라면 굳이 언론사 사주까지 만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언론사는 윤석열의 인사권을 가진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윤석열을 밀수록 문 정권에서 그가 검찰의 수장에 오를 가능성은 떨어질 게 뻔했다. 따라서 그런 행보는 윤석 열이 검찰총장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은 2018년 11월 윤석열을 만나고 난 뒤 언론사 간부들에게 "(윤석열은) 검찰총장 이상을 꿈꾸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구속하고, 국정원에 이어 사법부까지 초토화시킨 역대 최강의 서울중앙지검장이 품을 만한 '검찰총장 이상의 꿈'은 대권밖에 없었다(pp. 52-53).
문재인 정권은 적폐 수사에서 성과를 낸 윤석열 사단의 힘을 더욱 키워줬다. 법무부는 2018년 2월 윤석열의 요청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을 기존 3차장에서 4차장 체제로 재편했다. 적폐 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확대한 것이다. 윤석열 휘하의 서울중앙지검은 기존 27개 부서에서 30개로 늘어났고, 평검사 수도 206명에서 211명으로 증원돼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안타깝게도 검찰의 힘만 커진 게 아니었다. 문 정권이 타산지석으로 삼았던 노무현 정권의 검찰개혁 실패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도 덩달아 커졌다(p. 115).
검찰국가의 살풍경
검찰정권의 출범은 정치가 실종된 ‘검찰 통치’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정권과 검찰을 공생 관계로 만들고 있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 요직에 검찰 출신을 기용해 강성과 일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검찰 DNA’를 이식하는 것이다. 이들은 생존 위기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의 절규에 ‘법대로!’ 만 되뇌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은 민주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는 사실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의 상황은 검찰정권의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검찰정권은 세상의 이치를 사법적 잣대로만 판단하는 검사의 시각으로 국가적 참사를 대했다. 참사 다음날 각 지방자치단체에 '참사' 대신 “이태원 사고”로, ‘피해자’가 아닌 "사망자"로 쓰라는 내용의 공문을 서둘러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일선 공무원들에게는 국가 애도 기간 동안 ‘근조 또는 '추모' 글씨가 없는 검은 리본을 달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요컨대 국정조사나 민 형사소송에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될 만한 용어를 아예 사용하지 말도록 한 것이다
이런 기조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구성된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특별팀의 총괄을, 참사의 1차 책임자인 주무장관(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맡기는 기행으로 이어졌다. 참다못한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지만 검찰정권은 꿈쩍도 않는다.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정적을 제거하는 데 검찰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정권과 일심동체가 된 듯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조차 맞추지 않는다. 과거 검찰 수뇌부가 정권의 눈치를 볼 때도 검찰은 정치적 사건에서 집권 여당과 야당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늉은 했다. 그러나 한동훈-이원석 체제의 검찰은 겉치레는 체질에 안 맞는다는 듯 대놓고 전 정권 인사와 야당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주도했던 박은정 전 법무부 감찰담당관(광주지점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는 ‘보복수사’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해당 징계는 법원(41신 재판)이 그 합법성과 정당성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심지어 정직 2개월의 징계가 윤석열의 비위에 견줘 너무 가볍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사단은 박 검사의 70대 노부모가 사는 친정집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강력범 다루듯 수사하고 있다.
새 정권 출범 직후 내각에는 문제적 인물이 수두룩했지만, 대통령의 입에서는 “전 정권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2022년 7월 5일 도어스테핑 발언)라는 말이 버젓이 나왔다. 이처럼 전 정권 뺨치는 '내로남불'에 자신도 민망한 듯 윤석열과 그 정권 인사들도 더는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 않는다. 검찰정권은 검찰개혁의 실패가 낳은 부산물이다. 정치 경험과 국정에 대한 비전, 국가 경영에 관한 철학이 전혀 없는 검찰 내 사조직 집단이 개혁의 대오가 흐트러진 틈을 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의 달콤한 유혹과 단절하지 못한 '입진보'(입으로만 떠드는 진보주의)였다(pp. 209-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