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슬픔, 바오 닌
이 책은 베트남전에 대한 것이다. 전쟁에 휘말린 17세 두 청춘남녀 끼엔과 프엉의 인생이 얼마나 잔혹하게 망가지는지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종종 북한과 전쟁을 불사하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고통을 당하고 싶은가? 전쟁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한국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전쟁은 영화가 아니다.
내게 전쟁은 인생에서 접한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은 내게 결코 바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날이 더욱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끈질긴 고통 중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나와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났던 이들이 본래는 서로를 존중하고 애정을 나누고 친구로 사귈 수 있는 존재들이건만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베트남, 한국, 미국의 수 십만 젊은이들이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이 서로를 죽이면서 흐르는 핏물로 강물을 만들었습니다. 어찌 이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내 생각에 그 광기 어린 살육 행위의 원인은 서로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이해가 없고 공감이 없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젊은이들이 정치권력에 속아서 서로를 적개시하고 살육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1992년이 되어서 베트남과 한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 이후로 두 나라의 협력 관계는 나날이 강력하고 견고하게 발전했습니다(p. 6. 작가의 머릿말).
그랬다. 그는 끔찍하게 변했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얼굴은 못생겼고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눈빛이 야만적이었다. 말린 가죽처럼 쭈글쭈글한 피부는 건조하고 햇볕에 그을렸으며 땀구멍이 컸고 총상을 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입은 꽉 다물고 있었다. 뺨에는 광대뼈 가까이 총알이 스쳐 지나간 상처로 골이 패어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전장 길에서 만났다. 어깨에는 기관총을 메고, 등에는 배낭을 지고 붉은 먼지와 진흙 속을 함께 걸었다. 맨땅을 걸었다. 베트남 미국 전쟁에서 나는 그와 같았고, 평범한 병사들과 같았다. 같은 운명으로 수많은 우여곡절, 승리와 패배, 행복과 고통, 잃은 것과 남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들 개개인은 전쟁에 의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멸되었다. 개개인이 마음속에서 개별적인 전쟁을 시작한 날부터 공통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따로 하게 되었다. 사람 에 대해, 전쟁 시절에 대해 가슴 깊은 곳의 인식이 지극히 달랐으며, 당연히 전후의 운명이 제각각 달랐다. 우리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전쟁에 쫓고 쫓기는 심각한 과정 속에서, 서로 완전히 같아 보이는 환경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처지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슬픔, 전쟁의 거대한 슬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행복보다 고귀한, 고상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슬픔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 날 수 있었고, 만성적인 살육의 광경, 무기를 손에 쥔 괴로운 광경, 캄캄한 머릿속, 폭력과 폭행의 정신적 후유증에 매몰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마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죄악이 가득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길이다. 왜냐하면 평화로운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이 작가가 작품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나에 비해서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전쟁의 슬픔이 더욱 심각했다. 슬픔은 오늘의 삶을 위해 조금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삶의 세월은 계속 뒷걸음질만 쳤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 희망 없는 정신세계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이고 폐쇄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가 영원히 과거를 향해 돌아가는 길은 사뭇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영혼은 지난날에 대한 망각 없이, 영원히 봄날 같은 감정 속에 살아갈 것이다(p. 32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