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4(금)
 
  •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 최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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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책을 쓸 때 힘들어 하면서도 계속하는 것은 글쓰기의 마력때문인 것 같다. 마치 마라토너가 달릴 때 고통스러우면서도 희열이 있기에 계속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하고, 쓸 소재가 있어야 하고, 잘 써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좋은 책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글쓰기와 마감이 이토록 고통스러운데도 작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은 왜일까. 모종의 피학 취미 때문일까. 작가 김초엽은 2020년 〈한겨레21>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감이 닥쳐왔을 때 발휘되는 창의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실제로 똥줄이 타도록 마감에 쫓겼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이 떠 오르며 글이 술술 풀렸다는 작가들의 경험담을 종종 듣게 된다. 마감은 창작의 촉매요, 뮤즈로 구실하기도 하는 것이다.

2022년 4월 이웃 나라 일본에 문을 연 '원고 집필 카페'는 바로 마감이 강제하는 창의력에 기댄 공간이다. 이 카페는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는 이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데, 입장할 때 접수처에 그날 써야 할 원고 양과 마감 시각을 적어내야 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카페 직원이 한 시간마다 찾아와서 원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손님이 사전에 선택한 강도에 따라 마감을 독려하거나 다그치거나 한다. 카페 이용 요금은 시간당 300엔 (최초 삼십 분은 150엔)인데, 사전에 신고한 대로 원고를 끝내지 못하면 영업이 종료될 때까지 카페에서 나갈 수 없다.

일본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집 《작가 소설》에 실린 「글 쓰는 기계」라는 단편을 보자. 출판사 편집장이 신진 소설가를 출판사 지하의 수상쩍은 방으로 안내하는데, '글 쓰는 기계'라는 이름이 붙은 그 방에서 작가는 모든 편의를 제공받으며 오로지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서 작가는 책상을 떠나지 못하도록 수갑이 채워진 채 안락한 의자에 앉혀지며, 글이 진행되지 않으면 작가가 앉은 의자가 조금씩 뒤로 밀려나 결국에는 깜깜한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거꾸로, 글을 부지런히 쓰면 의자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쓰지 않으면 죽고, 써야만 살 수 있는 극한의 조건이다.

이런 장치가 현실에 있을 리는, 당연히, 만무하다. 그렇지만 비슷한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김승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해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중편 〈서울의 달빛0장>은 잡지 《문학사상》을 발행하던 평론가 이어령이 김승옥을 강제로 호텔에 투숙시키고 편집자들이 옆방에 머무르며 감시하며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 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부작을 완성하느라 두문불출하며 글쓰기에만 일로매진한 이십 년 세월을 '글 감옥'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다 쓰고 나면 언제나 녹초가 된다. 쓰는 일만큼은 이제 당 분간은 거절하자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 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 뭔가 쓰고 싶다. 그리하여 또 앞의 순서를 되풀이한다. 이래서는 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을 성싶다." <작가의 마감〉에 실린 아쿠타가와의 고백이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학질을 떼는 심정으로 마감을 했음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의 시간이 다시 그리워져서는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마감이란 마약과도 같은 것이 아닐지. 아쿠타가와는 비록 '천벌'이 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보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아채지 못할쏘냐. 그래서, 그 덕분에, 글쓰기는, 문학은 끊이지 않고 쭉 이어진다는 해피엔딩인 셈인가(pp. 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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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글 감옥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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