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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총회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나아가자”
    제110회기 제1차 총회정책협의회가 11월 12일 오후 2시 서대문교회에서 모였다. 장봉생 총회장이 “각 부서의 계획을 규합해 일정 조정, 협업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전체의 몫을 키우고자 한다. 총회 전체가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각 파트가 협업하고 같이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한 부서가 독주하고 인정 받을려고 하지 않고 정책을 전략적으로 조정해 주기 바란다. 이후 기독신문에 발표해 큰 그림을 보여줄려고 한다. 내년 신년회, 봄 등에 다시 정책협의회로 모여 점검하고 함께 맞추어 나가고자 한다. 함께 모여 정책을 말하고 논의해 나아가고자 한다.”라고 정책총회를 위한 비전을 설명했다. 예배는 서기 김용대 목사의 인도로 부총회장 홍석환 장로가 기도, 회록서기 안창현 목사가 마 26:46을 봉독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셨다. 총회장으로서 들뜨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께 총회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설교 후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장봉생 총회장이 상설위원장, 특별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하고 장소를 옮겨 분과별 토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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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25-11-12
  • “창간 60년 된 기독신문은 계속 이대로 가면 된다”
    이사장 장재덕 목사가 “창간 60주년을 맞이해 감사하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겸손하게 헌신하겠다.”라고 환영사, 사장 태준호 장로가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꿈과 희망을 주는 언론이 되고, 정책 총회를 이루는데 앞장 서며 종합 미디어로 발전시키겠다.”라고 인사말했다. 예배는 총무 정신길 목사의 인도로 부이사장 김경환 장로가 기도, 부이사장 남서호 목사가 고전 15:58을 봉독, 백석대 교수 박주옥 목사가 특송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란 제목으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자.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자. 주 안에서의 수고는 헛되지 않다.”라고 설교했다. 총무국장 임종길 목사가 광고 후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주필 장창수 목사가 약사보고했다. 축사 부총회장 홍석환 장로가 “기독신문이 지난 60년 동안 많은 수고를 하셨다. 신속, 공정한 정보를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더 큰 발전 기원한다.”라고, 총회 서기 김용대 목사가 “기독신문은 교단의 보물이다.”라고,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가 “문선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기독신문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총신대 총장 박성규 목사가 “개혁신학을 지키는 사명을 감당해 왔다. 앞으로도 이 사명 감당하기 바란다.”라고, 총회 총무 박용규 목사가 “복음의 진리를 담아내 전하는 사명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사명 감당하기 바란다.”라고 축사, 직전 이사장 김정설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을 감당하며 교회 소식을 잘 전달해 왔다. 등불의 사명 감당하기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공로패 전달 이사장 장재덕 목사가 장봉생 목사, 오정현 목사, 조현삼 목사, 최남수 목사, 류병택 목사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기독신문CTV사모합창단 창단식 및 음악회 시간에 임명장 수여 후 음악회를 갖고 회계 임성원 장로의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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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2
  • 제56회 서울서북지역장로회 정기총회, 이희근 장로 회장 선출
    제56회 서울서북지역장로회 정기총회가 11월 11일 오후 1시 왕십리교회에서 개회해 이희근 장로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차진기 장로가 총무로 지명됐다. 명예회장 이해중 장로가 “한 해를 무릎으로 섬겼다. 이런 가운데 선배 증경회장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실무들이 많은 수고를 해주셨다. 그래서 행복한 한 해였다. ‘본질에 충실한 장로회가 되자’는 표어를 목표로 열심히 했으나 아쉬움이 있다. 전장연 회장이 되어서도 이 표어대로 수고할려고 한다. 장로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다음 회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라고 이임사했다. 신임회장 이희근 장로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장이 됐다.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사했다. 격려사 증경회장 강자현 장로가 “한 회기 수고하셨다. 일치 단결하고 충성하며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기도하자”라고, 증경회장 정영수 장로가 “많이 수고하셨고, 많이 수고하시기 바란다.”라고, 전장연 회장 홍석환 장로가 “회장과 모든 임원들이 수고 많이 하셨다. 새 회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라고, 서울한동노회 증경회장 오인환 목사가 “주님과 함께 삼겹줄을 이루기 바란다” 라고 격려사했다. 축사 환영사 서울지역노회협의회 대표회장 진용훈 목사가 “축하드린다”라고, 서북지역노회협희회 대표회장 정영기 목사가 “장로라는 직분은 귀한 것이다. 서울서북은 많은 일을 해오고 있다. 더 큰일 하실 것을 기대한다”라고, 장로신문 사장 정채혁 장로가 “그동안 수고하셨고, 새 회기도 잘 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CTS 사장 최현탁 장로가 “서울서북장로회가 선도하는 역할을 잘 하시기 바란다.”라고, 전남연 회장 조형국 장로가 “큰 중추적인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란다.”라고, 전국주일학교연합회 회장 김충길 장로가 “장로님들 가정의 자녀들이 신앙을 잘 계승하기를 기원드린다.”라고, 전국원로 은퇴장로 연합회 회장 권영근 장로가 “더욱 발전하는 장로회 연합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장연 명예회장 오광춘 장로가 “늘 감사하며 충성하자”라고, 서울서북지역남전도회연합회 회장조성탄 장로가 “서로 잘 협력해 나가기를 바란다”라고, 전국주교수도권협의회 회장 최순식 장로가 “주일학교의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축사 후 서울한동노회장로회 회장 이석용 장로가 환영사했다. 이어 시상식을 한 후 총회 업무를 처리했다. 앞서, 개회예배는 회장 이해중 장로의 인도로 수석부회장 이희근 장로가 기도, 회록서기 이강진 장로가 딤전 2:8을 봉독, 장로찬양단 코랄카리스가 찬양,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자’란 제목으로 설교, 김윤호 장로가 헌금기도, 김승미 권사가 특송 후 서울한동노회장 김상기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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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1
  • 한남노회, 총신신대원 섬김의 날로 학생들 격려
    한남노회(노회장 안해선 목사)가 11월 11일 노회의 날로 총신신대원을 방문해 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전체 원우들에게 간식(빵, 우유)을 제공하고, 한남노회 소속 원우들에게 소정의 장학금과 도서비 지원, 글로벌 원우들에게 happy box를 전달했다. 예배는 증경노회장 안기성 목사의 인도로 서기 최재연 목사가 기도, Caleb Jules Iyonsenga원우가 특송, 부서기 김동천 목사가 행 13:1-3을 봉독했다. 노회장 안해선 목사가 ‘함께 이루어 가는 교회’란 제목으로 “안디옥교회는 작고 약한 교회였으나 최초로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예수로 함께 이루어가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이 교회 구성원들은 하나 되기 어려웠으나 신앙으로 연합했다. 이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졌다. 원우들도 주님 안에서 비빔밥처럼 서로 잘 비벼지기를 바란다. 둘째, 성령에 민감한 교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관계를 맺었다. 원우들에게도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어 서로 성령 안에서 관계 맺기를 바란다.”라고 설교 후 증경노회장 이두형 목사가 “한남노회는 전국 노회 중 가장 평온하고 좋은 노회”라고 소개하고,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예배에 참석한 원우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글로벌 원우들에게 happy box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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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회
    2025-11-11
  • 요한선교단, 2025년 11월 성경통독·구국기도회로 모여
    성경 통독과 암송을 통해 건강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요한선교단의 성경통독과 구국기도회가 11월 8일 강동구 양재대로에 소재한 서울빛샘교회(이영형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예배, 성경 통독과 암송에 집중하며 은혜 받는 시간을 가졌다. 김동진 목사가 “성경 통독은 누구에게나 은혜가 되는 시간이다. 말씀을 통해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전하기 바란다.”라고 인사말했다. 시작 예배는 김동진 목사의 인도로 구재길 장로가 기도, 인도자가 스 67:14-15을 봉독, 이명숙 목사 부부가 찬양했다. 천귀철 목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생기는 일’이란 제목으로 “불순종함으로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반면 범죄한 남유다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순차적으로 징계하셨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아 망했지만 하나님은 70년 후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셨다. 시드기야는 자식들이 죽는 것을 보고 눈이 뽑혀지는 고통을 당하게 됐다. 이후 때가 되자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 공사를 하다 중단되었는데 다시 순종해 공사를 완공하게 됐다. 늘 순종하며 살아 은혜와 복을 받는 우리가 되자.”라고 설교했다. 김명주 목사가 구국기도 후 이영형 목사의 축도로 시작예배를 마쳤다. 성경 암송 이어 순서대로 성경을 연속해서 읽고 암송하는 은혜의 시간을 갖고 교회에서 대접하는 애찬을 나눈 후 계속해서 오후까지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예배는 김동진 목사의 인도로 김명주 목사가 기도, 인도자가 시103:20-22을 봉독, 임현영 목사가 ‘여호와를 송축하라’란 제목으로 설교 후 정진희 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성경 통독 · 암송 시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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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중서울노회남전도회연합회 주관, 제5회 찬양제 개최
    중서울남전도회연합회(회장 최동균 장로)가 주관한 제5회 찬양제가 9개 교회가 참여해 옥수중앙교회(호용한 목사)에서 11월 8일 오후 1시 40분 열렸다. 회장 최동균 장로가 “사랑하는 중서울노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찬양대와 모든 참석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또 서로의 은혜를 나누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오늘 이 무대를 통해 울려 퍼질 모든 찬양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우리 모두의 심령에 새로운 힘과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귀한 자리를 준비해 주신 모든 관계자분들과,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참여해 주신 모든 찬양대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우리 노회가 더욱 하나 되어, 주님 나라 확장에 힘쓰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땅끝까지 울려 퍼져,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길 바라며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의 가정과 교회 위에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개회사했다. 1부 예배는 최동균 장로의 인도로 부총무 박동기 집사가 표어제창, 제4부회장 전창완 장로가 기도, 옥수중앙교회 주영진 장로가 시 150:1-2를 봉독했다. 호용한 목사가 ‘여호와를 찬양하라’란 제목으로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찬양을 잘 드리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설교 후 부회계 윤성욱 집사가 헌금기도했다. 물심양면으로 협조한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에게 감사패 전달, 총무 장성규 집사가 광고, 6부회장 정인성 집사가 찬양제 안내 후 노회장 최문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 격려사 6부회장 정인성 집사가 내외빈 소개 후 미금중앙교회 김양천 목사가 “찬양은 하나님께 올리는 최고의 신앙 고백이다. 찬양제를 통해 남전도회가 더욱 활성화되기 바란다.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명예회장 배원식 장로가 “단합하며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란다. 시상하실 때 쓰라고 상품권을 회장에게 전달하겠다.”라고 축사, 서울서북지역 남전도회연합회장 조성탄 장로가 “연합회에 앞장서는 중서울노회가 되기를 바란다. 다른 노회에도 이런 찬양제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명예위원장 김성수 장로가 “코로나 후 오랜만의 찬양제이다. 찬양제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제3부 찬양제는 증경회장 이주학 장로가 기도 후 이채원 집사 · 박준희 집사가 사회했다. 곽희성 배우-‘은혜, 가장 귀한 삶’ 프롤로그 연주, 1. 신용산교회-‘그런 나라 되게 하소서’, 2. 산정현교회-‘성도들이 행진할 때’, 3. 후암교회-‘오 신실하신 주’, 특별찬양 김관현 집사(옥수중앙)-‘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4. 청평장로교회-‘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5. 돌다리교회-‘썸바디, 주님의 택함이었소’, 6. 방주교회-‘주 예수 나의 산 소망’, 특별찬양 임은주 권사(돌다리)-‘시편23편’, 7. 금곡교회-‘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8. 미금중앙교회-‘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9. 동대문중앙교회-‘보리라’ 찬양 후 최동균 회장의 기도로 은혜로운 찬양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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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대한민국부흥사선정 감사예배....부흥사 메달 수여식
    한국기독교140주년기념 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민국부흥사 선정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부흥사선정 감사예배’가 11월 7일 오전 11시 국민일보CCMM빌딩 12층 컨벤션 홀에서 있었다. 민족복음화운동본부 대표총재 이태희 목사가 “과거는 한국 기독교의 부흥 시대였다. 이때 부흥사들의 수고가 있었다. 그런데 부흥사들이 한국교회를 망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교회를 살리는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환영사했다. 국부협 대표총재 고충진 목사가 “현재 우리나라가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침체한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를 회복시키는 일에 부흥사들이 앞장서기 바란다. 앞으로 2027성회 등 연합해서 큰 일을 이루어가기 바란다.”라고 인사말했다. 1부 예배는 국부협 대표회장 신일수 목사의 인도로 국부협 대표고문 이영훈 목사가 “한국교회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오늘 행사가 부흥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라고 영상축하 메시지, 대한민국사랑운동본부 대표회장 박종철 목사가 기도, 문선협 재무 서희자 목사가 갈 5:16을 봉독, 한국찬양사역연구회가 특송했다. 세복협 대표총재 / 국부협 상임고문 피종진 목사가 ‘성령을 좇아 행하라’란 제목으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기에 늘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굉장히 쉽다. 출애굽시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주셨다. 부족해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성령 하나님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끝까지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자”라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월드미션협의회 대표회장 신학철 목사가 헌금기도 후 ①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국부총 대표회장 최길학 목사 ②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사)노숙자연합회 회장 최성원 목사 ③ 세계선교의 활성화를 위하여-민복 부총재 함덕기 목사 ④ 국토 및 독도 수호를 위하여-민복 대표회장 김유민 목사 ⑤ 북핵 미사일,인권을 위하여-국부협 대표본부장 장요한 목사 ⑥ 대한민국 부흥사들의 사명감당을 위하여-기선협 여대표회장 강윤정 목사 ⑦ 동성혼,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하여-경기총 상임회장 이진형 목사가 특별기도했다. 격려사 제2부 환영 및 축하의 시간은 노선협 대표회장 오영대 목사의 사회로 한기총 증경대표회장 이용규 목사가 “성령충만한 불덩어리가 되어 회개를 일으키는 말씀을 전하시기 바란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힘있게 일으키기 바란다.”라고, 한기총 증경대표회장 엄신형 목사가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받아 성령의 사람이 된다.”라고, 기성증경 총회장 원팔연 목사가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역사하셨다. 우리 모두는 다 사명자다.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축사 글로벌리폼드총회신학 학장 정평락 목사가 “선교사들의 복음을 받아 믿음을 세운 선배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라고, 기하성 부총회장 손문수 목사가 “과거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언약의 자리에 서야한다. 주님 명령에 순종하면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전하고 가르쳐 주님의 제자 만드는 우리가 되기 바란다.”라고, 前 건신대 총장 임열수 목사가 “빌립은 성령께 순종했다. 부흥사도 100% 순종해야한다. 끝나면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 영맥은 부흥사이다.”라고, 사)경기총 명예대표총회장 신용호 목사가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다.”라고, 오산리기도원 부원장 양승호 목사가 “대한민국 부흥사에 선정되신 분들께 축하드린다.”라고 축사했다. 국부협 총괄사무총장 김도열 목사가 광고 후 국부협 상임고문 나겸일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부흥사 메달 수여식을 갖고 국부협 대표본부장 이종일 목사의 오찬기도 후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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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7
  • 한국교회법학회, ‘교회재산의 사유화방지와 공공성 확보’ 학술세미나
    (사)한국교회법학회가 제36회 학술세미나를 ‘교회재산의 사유화방지와 공공성 확보’란 주제로 11월 6일 오후 2시 사랑의교회 북4층 국제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축하 공연 1부 개회예배는 황영복 목사(학회 상임이사, 미스바교회)의 인도로 이정익 목사(신촌교회원로, 학회 대표회장)가 히 11:1-2을 본문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지만 믿어주기를 기대하신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 믿음의 세계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를 물질의 세계로 바꿀려는 시도를 한다. 성도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중세 시대에 물질, 형식, 제도화 되다가 믿음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종교개혁이었다. 한국교회도 영성을 잃어가는데 이제라도 영적인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설교 후 축하공연 했다. 송기영 목사(법무법인 로고스, 학회이사)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재산권 문제에 대해 매우 유익한 학술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개회사했다. 정영환 교수(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법인 TLBS 대표변호사)가 “한국교회법학회가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을 해오고 있음에 감사하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중요하다.”라고 축사했다. 2부 기조발제는 송준영 목사(성석교회)의 사회로 서헌제 교수(중앙대 명예교수, 학회장)가 ‘교회재산은 누구의 소유인가’란 제목으로 “기독교는 불교, 천주교와 달리 교인들에게 재산권 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총유 개념에 의문이 있기에 재산권 분쟁에 대해 해답을 줄 수는 없다. 교단이 공동 관리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사법이 교회의 재산분쟁을 다루기에는 법이 미비하다. 그래서 교회의 정관이 중요하다. 교회 재산 처분에 대해 법원이나 교단이 관여하지 못한다. 헌금으로 교회를 세웠다해서 교인들에게 법적 권리를 주어야 하는가? 교단에게 증여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단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법원이 명의신탁으로 해석하지 않게 된다.”라고 발제했다. 3부 제1주제는 김상용 교수(연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가 ‘교회재산의 소유형태로서의 총유제도’란 제목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 재산이 관리 되어야 한다. 교회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서 처리하는 것에서 갈등이 생긴다. 세속법은 이기주의에 기초해 있으나 교회는 공동체를 중시한다. 교회 자치 법규가 사회법 보다 하위에 있다. 법적으로 세밀하지 않고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총유에는 지분이 없다. 교회는 명의신탁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교회 분열은 법인 청산 절차를 밟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속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라고 발표했다. 제2주제는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법신학연구소장)가 ‘교회재산 귀속에 관한 미국 판례 이론’이란 제목으로 “교단에서 표준 정관을 준비해 교회가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와 교단이 연계해야 한다. 교회 재산은 사명의 통로이며 사회적 책임의 기반이다. 미국은 법신학이 발전했다. 공공재로서의 교회재산-정관에 ‘교회 재산은 공공신탁재산’임을 명시해야 한다. 교인 자격에 일정 참여·헌신기간 요건 도입, 재산 처분 시 이중결의제 및 숙려기간 확보, 교단·정관 등에 정합성이 필요하다. 교회 재산 귀속 문제는 신앙의 순수성과 법의 공공성이 만나는 경계지점에서 해결된다.”라고 발표했다. 제3주제는 백현기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교회법센터장)가 ‘지교회의 부동산을 총회유지재단 명의로 등기한 경우의 법률관계’란 제목으로 “지교회 재산에 관한 교단 헌법의 규정은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 다수설 및 판례의 입장이다. 교회 재산은 교인들의 총유-교인들의 헌금으로 마련된 교회 재산-이기에 총유교인들의 의사에 따라 처분 관리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제4주제는 김영근 회계사(한국교회세무재정연합 대표)가 ‘부동산 명의신탁과 세금’이란 제목으로 “사법부는 ‘유지재단은 처분권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토론 이어 한우근 장로(성결교유지재단 이사)가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들이 교회 땅이 넓을 때 요양원을 만드는 등 편법을 하는 경우가 많고, 요즘 교회의 재산권 분쟁이 많이 늘고 있다. 교단 헌법을 강화해 교회를 재산으로 보고 처분하지 못하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문용호 변호사(기독교화해중재원 원장)가 “교회 문제를 저희 기관이 도울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설충환 교수(백석대)가 “오늘 유익한 세미나를 들었다. 교단과 기독교화해중재원이 교회 문제를 도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라고 토론 후 김정부 목사(찬송하는교회)의 폐회기도로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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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6
  • 월기총, 제12차 정기총회(12.9) 2차 준비기도회로 모여
    월드기독교총연합회(이사장 정진희 목사, 이하 월기총)가 12월 9일에 있는 제12차 정기총회를 위한 2차 준비기도회를 11월 5일 오후 2시 광명시에 소재한 삼천리교회에서 가졌다. 이사장 정진희 목사가 “오늘 오신 것을 환영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월기총이 만들어져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이름처럼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기 바란다”라고 환영사했다. 예배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김복례 목사가 기도하고 기도시를 낭송, 박선규 목사가 창 41:38-45을 봉독 후 이어 특송했다. 삼천리교회 홍광표 담임목사가 ‘한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부족하더라도 겸손해서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를 사용하신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사역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명철한 한 사람을 쓰신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 보상받을 생각하지 말고 쓰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은 지혜로운 한 사람을 쓰신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라고 설교했다. 축사 최병남 목사가 “오늘 장소를 제공한 삼천리교회가 더 크게 쓰임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올해 총회는 더 뜻깊은 총회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로 뭉쳐 발전하는 월기총이 되기를 바란다 ”라고, 강상수 목사가 “환대해 주신 삼천리교회에 감사드린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월기총이 내년을 준비하는 총회가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이어 나라와 민족복음화, 국가 안정, 경제 성장과 평화 통일을 위하여 다함께 기도 후 홍광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합심기도 1. 샬롬! 12월9일 오후3시 서울신학교에서 열리는 월드기독교총연합회 12차 정기총회 준비위원회 구성과 책자 만들기 및 광고 수주를 위하여 2. 월기총결혼상담센터 설립을 위하여---신혜순 목사 3. 월기총에 속한 모든 기관단체와 교회의 부흥성장을 위하여 광고 및 기도제목 1. 좋은 장소를 제공하시고 은혜로운 설교를 해주심과 오찬을 제공하신 삼천리교회 홍광표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 월기총 정기총회를 위한 제 3차 준비기도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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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5
  • 김용대 목사의 행복한 고민? 총회의 난감함? 교회는?
    김용대 목사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최근 광신대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임됐다. 그런데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직을 내려놔야 한다. 영광대교회 담임목사직과 110회 총회 서기직이다. 겸직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대 목사가 속한 노회나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직 사임을 만류하고 있다. 노회에서나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 세 가지를 겸직하면 안 되겠느냐는 황당한 제안도 들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혹시 김 목사가 총장으로 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총회 임원회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서기를 새로 선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서기가 서기직을 대행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김 목사는 110회 총회에서 서만종 목사의 서기 후보 탈락, 현장 선거를 통한 서기 선출을 통해 쉽게(?) 서기직을 맡았는데 결국 중도 사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교회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경험과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이미 이 상황이 공개된 상황에서 주저앉아버리면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딴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이미 마음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담임목사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손상을 입었다. 역사와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직, 총회 서기직, 광신대학 총장직. 이 중에서 김용대 목사는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빠른 결단이 그나마 파장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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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25-11-05

오피니언 검색결과

  • 【북토크】 우연히 생긴 일에 대한 한 사람의 집념 이야기
    미국 하버드대학에 법의학을 설립하기 위해 애썼던 한 여인의 삶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4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한 사람의 집념과 이후의 소멸 등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가 반드시 진실을 드러내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뉴욕에서 검시관 수련을 받으면서였다. 현장에서 얻은 정보는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손에 쥐고 있던 총이나 그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증언이 자살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검실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사망자의 맨살에 화약으로 인한 화상 흔적이나 점무늬가 없었기에 총이 최소 75센티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발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망자는 살해되었고, 현장은 자살처럼 보이도록 연출된 것이었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여성은 자는 도중 평화롭게 죽음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이튿날 부검실에서 보니, 벌거벗은 채 해부된 시신의 목 부분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피부 아래 진한 멍이 발견되었다. 이에 더해, 사망자의 흰자위에서 나타난 점상 출혈은 목 졸림에 의한 살인이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나는 현장에서 본 것이 부검실에서 본 것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깨달았다(p. 14). 매그래스가 말했다. "나는 새롭고 현대적인 최초의 실험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창립자인 나의 책과 노트, 교육용으로 사용할 랜턴 슬라이드 파일 전체, 영상 필름이 갖추어진 도서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사, 법률가, 치과 의사, 보험 종사자, 코로너, 검시관, 장의사, 경찰에게 법의 의학적 측면을 강연해줄 유능한 강사진도 필요합니다." 프랜시스는 매그래스의 말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받아썼다. 매그래스는 말을 마치더니 생각에 잠겨 파이프를 뻐끔거렸다. "그냥 꿈입니다. 몇 년 동안 생각해왔지만, 이런 일이 이루어질 방법은 없습니다." 필립스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의 인생 경로를 바꾸어놓은 말을 했다. 매그래스는 악의 없이, 별다른 의도 없이 한마디를 던졌지만 이 사소한 발언이 프랜시스에게는 기대에 없었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울림을 주었다. "나는 늘 인체의 장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주장해왔어요. 의대나 의사 협회 벽을 장식하면 대단히 효과적일 거예요.” 매그래스가 말했다. 인간 장기의 아름다움이라니? 프랜시스는 나중에 "나는 즉시 그 생 각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적었다. 프랜시스의 머리가 윙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꼭 머릿속 스위치가 켜진 것만 같았다. 매그래스가 즉석에서 꺼내놓은 그 생각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자체의 생명력을 얻었다. 매그래스의 말(p. 166)로 프랜시스는 매그래스가 옳다는 것을, 인간의 장기가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오랜 세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벽난로나 문 위에 걸어놓을 수 있는, '뼈와 분비샘과 장기가 뒤섞여 엉킨 모양'을 나타낸 패널화한 세트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프랜시스는 매그래스에게 말했다. "직접 한번 보고 싶네요. 여기서 나가면, 인간 장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으면 해요."(p. 167). 전국 검시관 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검시관으로 활동하는 법의병리학자는 400~500명이다. 인구 전체를 넉넉히 관리하려면 그 두 세 배에 달하는 검시관이 필요하지만, 의대에서는 법의학자를 다수 배출하지 않고 있다. 매년 의대를 졸업하는 1만 8000명의 젊은 의사 중 약 3퍼센트에 해당하는 550명만이 병리학을 전공한다. 3년의 전공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 병리학자들 대부분이 병원이나 임상 연구실에서 일한다. 1년의 전공의 과정을 더 거쳐 법의병리학자가 되는 사람은 10퍼센트 미만이다. 검시관은 보통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민간 영역에서 임상병리학자에게 제시하는 것보다 대체로 낮은 봉급을 받는다. 소득이 더 적을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거기다가 추가적인 훈련까지 받도록 후보생을 끌어들이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p. 362). 모든 시작에는 평생을 바칠 만큼 열렬한 누군가의 헌신이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태두 문국진 교수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에게서 그 공통점을 본다. 이 책 《아주 작은 죽음들》은 독립적이고 현명한 한 여성 법의학자의 삶을 다룬다. 독학으로 법의학을 공부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명민함으로 법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이를 보고 있자니, 한 사람이 흘린 땀과 나아가려는 힘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 시켰는지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기를 바란다. 유성호, 법의학자(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책 뒷 표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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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1
  • 【북토크】 단절 사회에서 다시 연결하는 삶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단절과 고립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을 경험한 저자가 어떻게하면 그것을 벗어나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낄낄거리며 웃는 A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렇게 쿨하고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니. A는 어떤 계기로 이렇게나 달라진 걸까요? "너 진짜 달라졌다." "음, 아니. 달라졌다기보다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이게 너야?" "응,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럼 나랑 만나던 때의 너는?" "음.... 그것도 나긴 하지. 그리고 그때는 그 모습만이 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동굴에 들어가는 때가 오잖아. 그럴 땐 누구나 무기력하고 어둡고 그게 내 성격인 것만 같지. 왠지 평생 그렇게 살 것만 같고. 근데 '그럴 것 같은 거'랑 '진짜 그런 거'랑은 다른 거 알지? 그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내 본성도 아니더라고. 그때의 '상태'였던 것뿐이지."(p. 57). 가스라이팅이 진짜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의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안 하던 짓을 하게 만드는 것도 무섭지만, 진짜 무서운 건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는 거예요. '너도 이상하니까 그런 걸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니야?'라고 쉽사리 생각해버리는 거죠(p. 152). 부탁받지 않은 조언은 폭력이다 적극적 경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질문'이라면, 가장 자제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바로 '조언'인데요. 특히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조언이에요. "제가 부탁한 적 없는데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조언은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고립 당사자인 인아 씨가 제게 이 말을 했을 때, 저는 지나간 수많은 상담 사례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탁한 적도 없는 '조언' 속에서 살아왔을까요. '다 너 잘되라는 호의'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 지금 내 상황에서 실행할 여력이 없는 조언이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내 의지 부족이 되 고, 내 생각과 다른 조언이라서 거부하면 '똥고집'이 되어버리는 상황(p. 262). 이상하지 않나요? 특히 동아시아 유교 문화에서 이런 '호의를 가장한 폭력'은 더 빈번히 발견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어쩌면 통제 욕구와도 맞닿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애정의 척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 Drana Baummod는 부모와 자녀 관계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애정과 통제는 분명히 다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각각의 정도에 따라 부모의 양육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는데요. 바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낮은 '무시적 양육 형태', 애정은 높지만 통제는 낮은 '허용적 양육 형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높은 '권위 있는 양육 형태', 애정은 낮지만 통제는 높은 '독재적 양육 형태'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형태는 바로 마지막 '독재적 양육 형태'예요. 이름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한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위계가 분명하고, 자녀에게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하지만 그 이유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녀의 심리적 반응이나 요청에는 둔감한 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존중감이 낮은 건 물론 강한 죄책감을 형성시킨다고 하지요. 부모의 기대와 요구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알지는(p. 263) 못하기에 의무감 또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애쓰게 되고,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환경의 영향일까요? 사회적 고립에 대해서 OECD 국가 간의 비교를 한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통계청에서 2019년 발행한 〈사회적 고립의 현황과 결과〉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시사점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사회적 고립을 겪는 사람에게 설문을 해 봤어요. 독일, 미국, 일본에서 '나는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 비율은 5~12퍼센트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20퍼센트를 훌쩍 넘깁니다.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네 배까지 차이 나는 거예요. 사회적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 많은 사례자들이 이렇게 말하지요.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응원이나 지지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도리어 실망감을 표현하거나 '원 치 않는 조언'을 건네는 것이 두려워서라고요. 하지만 조언을 건네온 당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지라 생각해서 행동해온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이 책을 중반 이상 읽어온 우리에겐 이제 '조언'이라는(p. 264) 선택지 외에도 '질문', '적극적 경청', '곁에 있어 주기' 같은 많은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조언이 문득 목까지 차올랐을 때, 잠깐만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 고,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무엇일지요(p.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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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1
  • 【북토크】 남성과 다른 여성의 삶
    이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남성으로서 여성의 삶과 생각에 대한 글을 가끔 읽는다. 여성이기에 당하는 어려움도 있고, 부당함도 있다. 그럼에도 묵묵히 자기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응원한다. Q 부당한 공격, 혹은 다수의 공격을 받았을 때 누구나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이겨내고 돌파하는 비법이 있을까요. A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 저는 남이 헛소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웃음) '좀 헛소리인데?' 싶으면 내가 왜 이렇게 공격을 받는지 고민하지 않아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건 내 손해니까요(p. 26). Q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은 '랩실' 이라고 불리는 실험실에 소속되어 연구를 하죠. 주로 남성 동료들과 함께하는데, 최근엔 페미니즘에 대해 격렬한 저항이 일기도 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A 랩이라는 공간 자체가 폐쇄적이고 위계적이에요. 교수도 대부분 남성이고 연차별로 위계 질서가 짜여요. 예전에는 여성 연구자에게 '여자라서'라는 딱지를 붙여서 알게 모르게 배제했어(p. 82)요. 지금은 그에 더해 '페미(페미니스트)냐"라고 묻는다는 거예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공계 여학생들에게는 더 숨 막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Q 진로와 생계가 달린 일인데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잖아요. A 차별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똑똑한 이공계 여성이 흔히 취하는 선택 중 하나가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라고 마음먹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걸로 많이 돌파해 왔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동료를 찾아 뭉치는 것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목소리가 덩어리지면 권력이 생겨요.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는 개인을 고립시켜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될 문제로 만들어 버리고요(p. 83). Q 한동안 소식을 거의 못 듣다가 2021년 8월에 김 코치의 기사를 마주치게 됐어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 확정 판결이 났죠. A 2018년 6월에 민사소송 고소장을 접수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형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2018년 8월)이 나기 전이었고요. 민사 접수 때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주위에서 많이 말렸어요. 이 어려운 싸움을 또 해야 되나 싶었어요. Q 그렇기에 많은 소송이 합의로 끝나죠. A 합의라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내가 피해자인데 왜 합의를 해야 되지? 난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합의라고 하면 형식적인 용서를 표면에 깔고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조차 표현하기 싫었어요. 나를 성폭행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피해자들을 그렇게 합의로 자꾸 내모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니 민사 판결(p. 101)이 없다는 게 컸어요. Q 하! 선례가 없어서였군요. A 어떤 배상도 충분할 순 없겠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은 '이 정도의 손해배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는 판례가 없어요. 왜 없느냐? 다 합의로 끝나기 때문이에요. 민사소송 또한 이기기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과 비용, 인내하고 감당해야 되는 것 등을 따졌을 때 합의를 하는 것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 되는 게 현실이죠. Q 원치 않는 합의가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니... A 그러면 '도대체 이건 왜 안 바뀌는 거지?'를 차근 차근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소송을 아무도 안 해서 판례가 없기 때문이에요. 다들 주위에서 힘들다고 소송을 만류해서 판결문이 없으니까요. '이것도 또 내가 해야 되나. 이 힘든 싸움을 또 해야 되나' 엄청 고민했어요. 게다가 민사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갔을 때 제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천 만 원이 넘는 거예요. 손해배상을 받아도 부족한 판에(p. 102). Q 그럼에도 고민 끝에 소송에 돌입한 거네요. A 판례가 있으면 다른 피해자들이 같은 일을 겪을 때 소송 기간이 줄어들 거잖아요.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모든 걸 손해 보고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내가 하는 게 맞다는 각오를 하고서 시작하게 됐던 거죠. Q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군요. A 형사소송을 할 때 누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걸 꼭 네가 해야 돼?" 그때 제가 한 생각은요. 예전에 다른 누군가가 했으면 나도 안 해도 됐을 일이란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아서 결국 제가 하게 됐죠. 그러면 내가 하지 않으면요? 또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겠죠. 내가 나서지도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 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없잖아요. Q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A 사건만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손발에 힘이 다 빠져요. 일상생활을 잘 하다가도 사건과 관련한 연락을 받으면 몸에서 막 반응을 하는 거예(p. 103)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소송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는데, 형사소송부터 지금까지 저를 도와준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도 어렵고 힘든 삶 을 살면서 나를 도와줬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힘들다고 그만두면 그 사람들의 노력이나 고생이 다 소용없이 끝나는 건가 싶더라고요. 내가 하는 결정은 나 혼자, 나만 고려해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론은 보자. 그래야 다른 누군가가 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라고 결정을 내렸죠(p. 104). Q 마지막으로 성폭력 피해자 혹은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들을 향해 한마디 해 주세요. A 지금 용기를 낼까 말까 망설이거나, 희망을 가지(p. 110)고 싶은데 차마 두려워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내 행복과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용기와 희망을 내는 것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p. 111). Q 환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칸트는 "이방인이 타지 사람의 땅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 라는 세계시민적 태도를 '환대'라고 했대요.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것, 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일까요? A 코넬리우스 플랜팅가라는 미국의 신학자는 '환대'를 "타인에게 우리 안에 머물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공간에서 그 사람이 꽃 피우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꽃 피우게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잠재되어 있던 정체성이 드러나고 발현되면서, 더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거라고 봐요. 우리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p. 189). Q 그런 대표님도 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촘촘한 차별을 당한 적이 있나요? A 호주에서 일할 때 제가 담당한 브랜드의 포장이 잘못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료 중 누군가가 "한승희 쟤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서 덤터기를 썼어요. 물론 나중에 제 잘못이 아닌 것이 밝혀졌지만요.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동료 간 네트워크가 많았다면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승희 잘못인지 한번 가려 보자'고 하지 않았을까요. 억울한 것도 차별이라면 차별이죠(p. 238). 셀프 프로모션은 본인의 몫이에요 Q 직장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많이 봐요. 그런데도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A 공부하는 걸로 예를 들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열심히'만으로는 안 되죠.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이 잘 나와야 되잖아요. Q 공감되는 비유예요. A 일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헛된 일을 하고 있느냐를 먼저 봐야 되고요. 내가 잘한 것을 성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해요. 보통은 '이거 얘기해서 뭐 하나' '결과 나오면 윗사람이 다 알아주겠지' 하는(p. 242)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람 수가 적은 조직이라면 일 잘하고 성과 나오는 사람이 눈에 확 띄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큰 조직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요. 내가 한 일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했느냐를 알리는 것은 본인의 몫이에요. Q 하지만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걸요. 다들 부담스러워하죠. '자기만 일하나, 다들 똑같이 일하는데 왜 저래?' '너무 튄다' '이기적이다' 이렇게 보는 시선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셀프 프로모션은 '나! 나! 나! 이거 한승희가 했어'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에요. '내가 한 일이 이런 결과를 냈고,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라는 것을 조리 있게 어필하는 일이에요. 개인적 측면에서는 내가 한 일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팀원도 제대로 인정을 받도록 돕는 일이죠. 그리고 좋은 성과가 난 일이 다른 부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Q 셀프 프로모션이 나를 알리는 이기적 수단이 아니라 회사의 경험을 축적하는 '공적인 프로세스'라는 거군요. A 셀프 프로모션은 중요한 리더십 스킬 중 하나예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팀과 조직이 공정한 평가를 받게 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중요한 게 '청중'이에요. 알릴 콘텐츠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때 중요한 게 네트워킹이에요. Q 쌓아 온 네트워크가 여기서 위력을 발휘하네요. A "내가 하면 네트워크, 남이 하면 사내 정치"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어떤 사람이 네트워킹 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 너무 정치적이야'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거죠. 현실에서 네트워크는 흔히 나쁘고 부정적인 모습이에요. 남을 험담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내 이익을 찾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좋은 정치도 분명 존재합니다. 회사에서 나 혼자, 내 부서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최대한 다른 부서와 협업하고 도움을 받아야죠. 다른 부서도 바빠 죽겠는데 "내거 빨리 껴서 많이 해 주세요"라며 도움을 받으려면 네트워킹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일을 하기 위한 자원을 끌어오는 것 역시 정치인 거죠(p. 244). 일과 커리어, 직장은 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Q '커리어 만렙' 으로서 여성들이 경력 개발을 할 때 꼭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조언하자면요? A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역량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요.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이요. 하드 스킬은 업무와 관련한 기능적 역량을 의미하는데요. 이건 어떤 업무를 맡은 지 1년만 되면 어느 정도 체득해요. 인력을 관리하고 조직을 구성하고 네트(p. 250)워킹을 하고 셀프 프로모션을 하는 것은 모두 소프트 스킬에 포함돼요. 그런데 소프트 스킬은 계발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려요. 교과서에 나온 대로 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어떤 조직을 가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더욱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Q '커리어' 라는 분야를 커리어로 둔 삶은 어떤 걸까요. 한 대표님께 커리어와 일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엔 회사에서 일하고 성장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욕심이 났어요. 커리어가 내 모든 것이었죠. 그런데 10년 차쯤 됐을까. 일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사건이 있었어요. 제 친구가 난소암에 걸렸어요. 친구는 평소 일로 인한 스트레스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어린 나이에 깨달았죠. 일, 일, 일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요. 그 이후로 저는 일, 커리어, 직장은 내게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 일이 더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또 미국에서 일할 때 구조조정을 정말 많이 봤는데요. 한눈팔지 않고 20~25년 동안 회사만 바라보던 사람이 박스를 싸서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본 거예요. 회사에 모든 걸 바치면 인생이 같이(p. 251)무너져요. 나 자신이 아니라 어느 회사의 누구로 존재한 것이니까요. 일 잘하는 것 중요하고, 성과 내는 것도 중요한데요. 목숨 걸지 않아야 자신감이 나옵니다. 본 모습을 잃지 마세요. Q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분투하는 여성들 혹은 지금 커리어를 막 시작하는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 해 주세요. A 제 멘토가 해 준 말인데요. "희생자가 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라는 거예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피해자의 상황에 놓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상황을 바꾸기 위한 첫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에요. '나는 피해자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악순환 속에서 에너지가 계속 떨어져요. 악순환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지금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지 적극적으로 찾으세요.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Q 힘을 주어 '일 잘하는 법'에 대해 말하던 한승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 순간이 있었다. 커리어를 업으로 둔 이에게 '일'은 어떤 의미냐고 물은 질문에서였다. 명쾌한 커리어 해법을 말하던 그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목숨 걸지 말아라."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어디서든 통용된다.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관계든, 스스로 욕망하는 그 무엇이라면(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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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0
  • 【북토크】 대다수는 앞으로 더 가난해 질 것이다...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가난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일부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 구도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로 없는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세상이 됐다. 사회 구조로 인한 가난을 자신의 능력 부재 탓으로 돌리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회는 결국 불행해 진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이제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세계 경제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어요. 197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거예요. 신자유주의는 경제 영역에서 국가 간 장벽의 높이를 낮추어 자본이 활동한 수 있는 '시장'이란 무대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는 발상을 담고 있어요. 아담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시장은 크면 클수록 좋다.' 라고 말했어요. 교환할 수 있는 대상과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시장이 힘을 발휘한다는 거죠. 아담 스미스가 상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인 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시장', 바로 '지구적 시장 global market' 을 건설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가 요구하고 실행한 이런 발상을 우리는 '경제적 지구화'라고 표현해요. 이 지구화를 '세계화' 혹은 원래 용어 그대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on' 이라 부르기도 하죠.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 두 가지를 잠시 짚어 볼게요. 첫째, '지구화'와 '경제적 지구화'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구화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세(p. 87)제가 연결되고 상호 의존하는 현상이에요.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있죠. 각 영역이 온전히 독자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같은 원칙 아래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경제적 지구화는 이 지구화라는 현상의 한 영역 일 뿐이죠, 다만 경제 영역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지구화와 경제적 지구화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는 우리의 것을 밖으로 널리 알린다는 의미로 쓰이는데요, 이건 지구화와 사실상 전혀 다른 의미예요. 예를 들어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한류는 우리의 것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세계화의 일부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한류와 자신이 연결되는 현상'으로서 문화적 지구화 현상인 거예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지구화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경제 영역에서 모든 개인과 국가가 서로 의존하며 연결되는 지구화를 요구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경제적 지구화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죠.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부당한 요구를 담은 정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던 유럽의 좌파들은 '더 왼쪽' 노선을 주 장하며 맞섰지만 영국을 필두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죠. 점점 막강해진 자본은 자신들이 국적을 초월해 점점 더 강해질수록 국가도 같이 강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제 개인들도 국가의 보호라는 우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복지국가가 확장되며 국가가 져야 하는 재정적(p. 88) 부담이 늘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죠. 그리고 자본은 개인들을 향해서도, 국가에게 사회보장을 요구하는 대신 시장에서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하라고, 그러면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될 거라고 설득했죠. 뒤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게 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현상이 벌어져요. 그러니 유럽의 좌파들이 주장했던, '더 왼쪽' 노선 전략이 먹힐 수가 없었던 거죠. 이렇게 영국 총리 대처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앞장서 초석을 놓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 불리며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어요. 이런 흐름 앞에 좌파들조차 '제3의 길', '신노동당, '신 중도노선' 등 중도 개혁 노선을 내걸었죠(p. 89). 이렇게 시작해 볼까요? 앞에서 공유 플랫폼은 노동자들을 부업으로 일하는 독립 사업자로 여긴다고 했어요. 새로운 플랫폼 자본에게 부업과 '독립 사업자'는 마법의 단어예요. 이를 통해 '4대 보험'으로 상징되는, 기업이 고용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보호의 의무에서 간편하게 벗어날 수 있거든요. 플랫폼 분야의 종사자들은 일터에서 노동자로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독립 사업자' 즉, 사장님이에요. 반면 자신들은 중간에서 단순히 수수료(최대 20~30%)만 챙기는, 노동을 중개하는 업체에 불과하다는 게 이 공유 플랫폼 업체들의 주장이죠. 그런데, ‘유휴자산’, '부업', '독립 사업자'라는 이 마법의 단어들은 단지 노동자들을 보호하던 전통적인 사회보장 혜택을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플랫폼에서 일하는 이들이 마땅히 누려(p. 121)야 할 '노동자'라는 지위를 '사업자'라는 말 뒤에 교묘히 숨겨서, 이들이 노동조합 등을 만들어 행사할 수 있는 '노동 3권'까지 박탈해 버려요. 각자 모두 사장님들인데 무슨 노동 3권의 보호가 필 요하냐는 거죠. 이처럼 공유 경제가 채택한 용어들은 종사자들이 노동자로서 연대의 감성과 행동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해 버리죠. 공유 경제의 플랫폼에서 실제로 공유되고 있는 건 '건당', '분당', '시간당'처럼 짧은 시간만 사용할 노동력이 필요한 이들과 '별점의 감시 아래 경쟁하며 상시 대기하고 있는 노동력'이라는, 수요와 공급의 만남뿐이에요. 간단히 말해 보호가 필요한 곳에선 독립 사업자로, 작업이 필요한 곳에선 노동자로 남게 되는 거죠. 켄 로치 Ken Loach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는 이런 상황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p. 122). 그럼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우리 나라의 소득 불평등을 볼까요?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과 관련(p. 135)해서는 연구마다 다른 결과들을 내놓고 있어요. 어떤 연구는 불평등이 감소했다, 어떤 연구는 심해지고 있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이런 엇갈린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소득 분배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인지 살펴보도록 하죠. 2019년 국세청은 '2017 귀속연도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천분위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어요. 천분위 단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0.1%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였죠. 이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금융•임대 소득 등을 합친 통합소득 기준으로 상위 0.1%에 속하 는 2만 2,000여 명이 하위 27%에 속하는 629만 5,000명의 소득을 모두 합친 것만큼 버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들의 소득을 중간 계층과 비교하면, 상위 0.1%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4억 7,400만 원이었던 반면 중위 소득은 2,301만 원으로, 상위 0.1%가 중위 소득의 64배를 벌었어요. 소득이 가장 적은 계층이 아니라, 소득 수준에서 딱 가운데 즉, 50%에 해당하는 이보다 64배를 더 벌었다는 거예요. 어떤가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만한 수치 인가요? 이런 소득 불평등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해요. 소득 불평등이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소득에서 쓰고 남는 돈이 있어야 투자를 해서 자산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어요? 쉽(p. 136)게 말해 저축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는 거죠. 1년에 15억 원 가까이 버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10억 원 정도는 투자할 여유가 있을 거예요. 근데 앞서 본 중위 소득, 한 해에 2,301만 원 정도 버는 걸로는 평생 투자라는 결 할 수 없겠죠. 소득은 크게 '일해서 버는 소득'과 '투자해서 버는 소득' 즉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으로 나뉘는데 이 중 자본 소득이 커지면 자산 불평등이 심화돼요. 노동 소득이 일정 규모의 자산을 만들어 내면, 이 자산이 각종 투자의 형태로 불로소득을 만들어 내니까 부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물론 노동 소득 대신 유산을 물려 받아 일정 규모의 자산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죠.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자본 소득이 자식에게 세습되는 현상이 당대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말하죠. 제2 기계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불평등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어요.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울트라리치'들 우리나라에서 연봉을 제일 많이 받는 월급쟁이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권오현 회장이에요. '초격차',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기술의 차이를 벌린다는 개념으로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죠. 2017년 그가 받은 연봉은 243억 8,100만 원이었다는군요. 월급으로 계산하면 20(p. 137)억 3,175만 원, 하루에 6,680만 원을 번 셈이에요. 상상이 잘 가지 않네요. 연봉만으로 이런 돈을 벌었다는 게 말이죠. 2014년에서 2016년까지 상장 기업 동기 임원의 보수를 분석해 보니 여기서도 권오현 회장이 1등이었다고 하는데, 5년간 연평균 124억 9,100만 원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지구상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어요. 243억 원쯤이야 소위 껌 값에 불과한 사람들이죠. 우리 돈으로 치면 '조' 단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른바 '슈퍼리치super rich'라 불리는 이들이에요.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부자들을 '리치rich'라고 불렀어요. '백만장자'라고도 하는데 요즘 환율로 우리 돈 12억 원 정도가 그 기준이었죠. 그 뒤를 이어 '천만장자'들이 나타났고요. 근데 21세기에 들어서며 이 천만장자도 대적할 수 없는 사람들, 이른바 '억만장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이들을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죠. 그렇게 탄생한 단어가 바로 슈퍼리치예요. 지금은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문서 프로그램들은 이를 '없는 용어', '잘못된 용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경제지라면 모두 슈퍼리치 섹션을 따로 두고 이들과 관련된 보도를 하고 있어요. 근데 슈퍼리치라(p.138)고 하면 이 말만으로는 감이 잘 안 오죠?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슈퍼맨'을 떠올려 보는 거예요. 인간man 앞에 슈퍼super라는 접두어를 붙여 보세요. 영화에서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존재죠. 원래 이 지구에는 없던, 그런 존재예요. 음속보다 빨리 하늘을 날아다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내죠. 짝사랑하는 여인 '로이스'를 구하기 위해 지구의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어요. 슈퍼리치들이 바로 그런 존재예요. 이전에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트럼프 역시 이 슈퍼리치 중 한 명이죠. 그럼 이들이 얼마나 부자냐고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예요. 2019년에 이혼을 하며 그는 자신이 가진 아마존 지분의 25%를 전 부인에게 넘겼어요. 이 액수가 얼마쯤 될까요? 대략 37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0조 6,000억 원 정도예요. 이게 얼마나 큰 규모냐고요? 뭐랑 비교해 볼까요? 이해하기 쉽게 서울 시 예산과 비교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2019년 서울시가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예산 규모는 39조 5,282억 원이었어요. 예산 안보다 더 많이 책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1년 동안 최대 이(p. 139)정도 쓰겠다는 거죠. 1,00만 명이 사는 도시의 한 해 예산이 40조 원이 채 안 되는데, 한 명의 슈퍼리치가 이혼하며 위자료로 넘긴 돈이 이보다 더 큰 거예요. 근데 이 돈이 베이조스가 가진 자산의 25%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결국 계산해 보면 베이조스는 16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슈퍼리치라는 존재, 이제 조금 감이 오나요? 그래서일까요, 최근에는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또 생겼어요. '울트라리치 ultrarich' 이 정도면 이들은 이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느낌이 드네요(p. 140). 디지털 기술이 이렇게 독점적 경향을 띠는 건 정보가 만드는 네트워크 효과 즉,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큰 효용을 가지기 때문이에요.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가 될 거에요. 네이버는 201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전체 검색량의 75.2%를 차지하고 있어요. 사실상 독점 체제나 다름없죠. 2018년 기준으로 카카오톡은 한국 메신저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 분야는 전형적인 '승자독식' 시장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모아 주는 정보는 '독점'을 만들어 내고 소비자의 기호를 더 잘 파악 할 수 있도록 해 계속해서 독점을 유지해 나가죠. 이런 까닭에 디지털 업계에서는 후발 주자들이 앞서가는 업체를 따라잡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런 경향을 고려하면, 또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기존의 강자들이 선두 자리를 한동안 굳건하게 지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죠(p. 143). 국가는 부유해졌는데 정부는 왜 가난해진 것일까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공 부문의 부가 민간 부문으로 대거 이전되는 현상 때문이에요. 다른 말로는 '민영화'라 부르죠. 많은 국가에서 전기, 교통, 의료, 교육 등과 같은 대규모 산업이 민간 부문으로 넘어간 거예요. 이런 국가 기간산업을 민간이 차지하며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낸 거죠. 2000년대 들어 민영화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종의 트렌드였어요(p. 145).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철도, 의료, 공항, 수도 분야의 민영화가 추진된 적도 있지만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죠. 정말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산업들이 민영화되었어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KT로, 한국중공업이 두산중공업으로,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대한송유관공사와 고속도로관리공단도 같은 이름으로 민영화되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민영화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늘어난 건 민영화된 기업들이 그 효율성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사례 하나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 모두 KT라는 통신 기업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KT는 2002년에 민영화한 이후 2014년까지 9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당기순이익을 냈어요. 그런데 그 이익을 어떻게 낸 줄 아세요? 세 차례에 걸친 사상 최대의 인적 구조 조정을 통해서였어요. 직원들을 잘랐다는 거죠. 그리곤 이렇게 벌어들인 돈(수익의 평균 50%)을 주로 외국인들이 주축인 주주들에게 배당했어요. 실제 금액을 보면 총(p. 146)배당금 4조 9,000억 원 중 외국인 주주가 가져간 돈은 2조 9,000 억 원에 달해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자리를 줄여 챙긴 이익을 외국인들이 가져간 거예요. 이 기간 동안 KT 이사회의 의장은 모두 3차례에 걸쳐 미국인, 미국 국적의 한국계가 맡았어요. KT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민영화를 통해 기업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윤이 지배하는 결과만 남는 거죠. 이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해요.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 서는 '민영화=실패'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해요. 민영화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방식 이란게, 지속적인 투자는 기피하면서 이용 요금만 올리는 식이에요.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장은 공공이 운영할 때보다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고용 인원을 줄이는 것과 시설 투자를 최소화하는 거예요. 근데 생각해 보세요. 직원 수가 줄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겠어요? 국가가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공항이나 철도 같은 기간산업을 운영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만 서비스의 질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일 철도가 민영화된다면, 기업은 이(p. 147)윤이 되는 노선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노선은 당연히 없애 버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결국 소외된 지역에 사는 이들은 더욱더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겠죠. 여기서 '왜 민영화된 기업이 시설 투자를 소홀히 하죠?'라고 물을 수도 있겠네요. 그건 단기적 이익을 노리는 민간 주주를 때문이에요. 순이익이 발생할 때마다 민간 주주들에게 배당을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래를 위한 시설 투자의 몫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요. 민간 주주들은 한 기업의 장기적 미래보다는 단기적으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수익에 집중하죠. 만약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서 이익을 다 취했다고 생각하면 자금을 빼서 다른 곳에 투자하면 그만이니까요. 특히 이런 민간 주주들이 앞서 KT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외 투자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호주에 사는 민간 투자자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한국의 기간 시설이 제공하는 서비스 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니 시설 투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p. 148). 그렇다면 포퓰리즘이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권력을 빼앗아 갔다. 그 권력을 다시 찾아 돌려주겠다.'는 거예요. 이 시대의 좌파 포퓰리즘은 이 원칙 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 왔어요. 이들은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연대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죠.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집단을 설정해요. 여기엔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여성 등이 포함되죠.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국 내 다수인 '우리, 평범한 사람들' 대신 이 '제3의 집단'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주장해요. 이들이 '평범한 우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은 부당 하다는 여론을 조장해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거예요(p. 161). 쉽게 말해 사회의 최약층인 '더 배제된 자'를 이용해 평범한 이들로 구성된 '덜 배제된 자'들을 결집하는 방식이죠.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바로 이런 우파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에 기댄 대표적 사례예요(p. 162). 능력주의, 2020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 중 하나예요. 영어로는 '메리토크라시 meritcracy'라 부르는데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만든 용어죠. 라틴어의 meritum에서 온 meri(훌륭함)라는 말과, 그리스어의 kratia에서 유래한 cracy(통치) 라는 말을 조합해 만든 단어로, 글자 그대로 옮기면 '훌륭함이 통치하는 정치체제' 정도로 옮길 수 있겠네요. 1958년에 발간된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y』에서 이 표현이 처음 쓰였죠. 영에 따르면, 능력을 중시하는 발상은 신분 사회였던 산업혁명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p. 264) 신분을 넘어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려는 노력은 항상 있었죠. 세종 때 장영실 같은 인물이 바로 이 능력주의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왜 민주주의 시대에서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걸까요? 신분 말고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능력주의의 부상』에서 영이 도전적으로 던지고 있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민주적 사회에서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을 가르는 심연이 더욱 넓어지는 데도 왜 사회는 이토록 안정을 유지하는가?' 영의 대답은 명쾌해요. 지금의 이 불평등은 '능력에 따라 계층이 갈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유된 가치 아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회가 안정을 유지 한다는 거예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실패는 온전히 개인의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 여겨지죠. 그래서 개인의 실패를 두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요. 사회를 탓하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은, 오히려 '능력 없는 자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침묵하게 되죠. 죽음을 택할 만큼 가난해도 사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착한 빈민들' 이야기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런 상황 앞에 영은 다시 질문을 던져요.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누군가의 능력이(p. 265) 모자란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하더라도, 왜 그것이 재화와 권력을 적게 할당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가?' 영의 문제 제기는 일리가 있어요. 역사를 돌이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엘리트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획득한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평범한 이들을 주권자로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플라톤 시대부터 엘리트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체제였어요. 그런데 왜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조차, 능력에 따라 자원과 권력을 할당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영은 이렇게 답해요. '능력주의란 평등을 받아들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불평등이란 모순을 비켜 가기 위해 작동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 회에서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정당하다. 혹은 제한되지 않는다.' 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마땅한 자격을,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겐 저항 없이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여기에 더해, 영은 이런 능력주의가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 내고, 새롭게 등장한 계층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들어 결국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죠.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깜짝 놀라게 돼요. '아니 능력주의가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능력주의를 불평등의 해결책처럼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불평등을 만(p. 266)들어 내고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요. 여기에 이르면 이런 의심도 들 것 같아요. '이런 주장은 마이클 영만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럼 또 다른 예를 볼까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 비츠Daniel Makovits 역시 『능력주의의 함정 The Meriocracy Trap』 (2019)에서, 당대의 불평등은 능력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해요. 그 또한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 라는 마이클 영의 주장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마코비츠는 1950~60년대 서구 사회에서 능력주의 혁명이 일어난 시기에 주목하며, 이때 일어난 가장 큰 변화 하나를 지적해요. 바로 엘리트 계급이 자식에게 신분과 재산 대신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죠.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준다는 거예요. 우리가 엘리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오랜 기간 교육을 받으며 능력을 갖춰 나가요. 일례로, 마코비츠는 미국을 건설할 당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를 35세로 규정했음을 상기시키죠. 그런데 요즘엔 35세에도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그는 지적해요. 자신이 예일대에서 경험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건데, 저도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똑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넘어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죠. 앞으로 엘리트가 되려면 박사 학위가 적어도 2개 정도는 필요하다는 농담이 현실이 되고 있어요. 당장 우리나라 만 봐도 3~4세에 조기교육을 시작하고 한글도 모르는 5~6살 아이들에게 영어로 글 쓰는 법을 가르치죠. 엘리트 부모들은 아이(p. 267)들의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걸 주저하지 않아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자녀에게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주려 하죠. 크리스티아 프릴랜드Chrystia Freeland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s』(2013), 번역하자면 '부로 지배하는 자들'이라는 책에서, 소수의 엘리트 부모들뿐만 아니라 중산층 부모들까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자녀들의 교육에 쏟아붓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왜 그럴까요? "대도시에서 상위 0.1%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중산층 부모들이 엘리트 교육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계의 모든 대도시에서 유치원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향한 적자생존 투쟁이 시작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죠. 많은 연구, 통계 자료들도 교육이 주도하는 승자독식 체제에서는 18세에 해당하는 인구의 1%만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1% 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어요. 부모들이 이런 현실을 체감하며 살고 있기에 교육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자녀들에게 돈을 쏟아붓는다는 거예요. 결국 이런 현실 속에서 '능력'이란 것 또한 엘리트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세습되며 계층 이동을 가로막 게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능력주의가 퍼져 나갈 때 민주주의 사회는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돼요(p. 268). 첫째, 중산층이 무너진다. 둘째, 혐오와 차별이 퍼지며 구성원들 간의 연대가 가로막힌다. 우선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문제부터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이미 디지털 기술 시대가 양극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저와 함께 살펴보았어요. 소수가 부와 소득, 명예를 독점하는 양극화 시대에 능력주의가 최상의 가치가 된다면, 소수의 능력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부와 소득, 명예가 몰리게 되는 건 자명한 이치겠죠. 이건 결국 소득 수준이 20~80%에 속하는 중산층에게 부와 소득, 명예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아요. 앞에서 보았지만 우리나라의 하위 50%가 전체 부의 1.7%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50~80%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중산층일 수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민주주의의 기반은 중산층이잖아요. 상위계층에게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에서 최대한 성과를 얻고자 하는 자신들을 제약하려 드는 귀찮은 것일 수 있고, 하위계층은 먹고 살기 바빠 자유와 평등 같은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상대적으로 적죠. 이런 상황에서 능력주의가 중산층이 받아야 할 혜택을 줄이고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는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된다면 당연히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도 위험해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더 큰 문제는 노력주의로 변신한 능력주의가 사회의 다수를 능력도 없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자들로 만들어,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전락시킨다는 점이에요. 마이(p. 269)클 영은 능력주의가 '지능(I.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등식 아래, '개인이 지닌 능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성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이라고 말해요. 언뜻 공정해 보이는 이 공식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어요. '지능'이란 게 타고난 운에 좌우되는 유전적 요소와 관련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공정'을 말하며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이유는 '금수저' 나 '부모 찬스'같은 것들이 '출생'이라는 운에 좌우되기 때문이잖아요. 그렇다면 절반이 유전이라는 운에 좌우되는 능력주의는 이미 공정하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능력주의에 대한 주장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지능이라는 '유전적 요소'는 은연중에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노력'만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능력주의가 노력주의로 변신할 때,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죠. 결국 능력주의는 사회적 다수를 능력 없는 자들로 만들어 무기력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게으른 자들로 취급하며 도덕적 수치심까지 안기는 거예요. 이를 두고 마이클 영은 이렇게 말해요. "능력을 결정적 요소로 보는 만연한 인식 때문에 아무 능력도 없는 다수가 무기력한 나락에 빠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학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사회에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돌리게 되며, 결국 무기력해지면서(p. 270) 더더욱 확실하게 절망에 빠진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무기력과 자기혐오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공정하다고 말하는 능력주의의 실체인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있어요. 바우만은 자기혐오를 두고 이렇게 말해요. '누구도 자신에 대한 분노를 끝까지 자기 안에 담아 둘 수는 없다. 그 분노는 바깥으로 분출되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을 절망에 빠뜨린 바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기혐오가 타자혐오로 이어진다는 거죠. 더 최악인 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능력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연대 대신 능력 없는 자는 차별 받아도 괜찮다는 비뚤어진 의식을 키우고, 평범한 다수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그들이 수치심과 혐오를 느끼게 만들고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2001년, 토니 블레어가 '영국을 능력주의 사회로 만들자.'고 역설했을 때 『가디언』에 실린 마이클 영의 반응은 의미심장했어요. "비판의 의미로 만든 이 용어가 찬사의 말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영이 애초에 이 용어를 만들었던 의도가,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능력주의가 알고 보면 불평등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블레어는 몰랐거나 무시했던 거죠.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면, 불평등의 문제를, 공정성의 문제를 능력주의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모(p. 271)순이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때 열리는 게 아닐까요?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시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서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더욱 고립될 거예요. 디지털 장비들 을 사용할 돈이 없거나 그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이 순간에도 기업은 위기를 핑계 삼아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며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사회적 안전망 없이 노동 현장에 내몰린 이들은 더욱더 소외되겠죠. 이런 환경이 지속되고 능력주의가 더 심하게 기승을 부린다면, 우리의 연대는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어요. 질병이 우리가 행동 할 수 없게 발목을 묶는다면 해결책은 제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세우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그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우리는 이미 첫 경험을 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하려 하죠. 손 내미는 자와, 그 손길이 필요한 자는 한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아요. 제2 기계 시대가 그어 놓은 모호한 노동의 경계 위에서 각자도생의 윤리로 분열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코로나19라는 한 번(p. 272)도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위기 앞에, 국가가 동등하게 내미는 보호의 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위기의 시대엔 배제되는 자들이 더 늘어 날 수밖에 없어요. 비상구를 찾아 나가는 길에 어떤 이유로든 뒤에 남겨진 자들은 더 이상 동료 시민들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되죠. 우리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불신으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동료 시민으로서 갖는 사회적 신뢰가 새롭게 재구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보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경계의 불확실성을 마주하며 대다수가 불안에 떠는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요? 이 일을 과연 능력주의가 해 낼 수 있을까요? 평범한 우리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길은, 첫 번째도 연대, 두 번째도 연대, 세 번째도 연대가 아닐까요? 그런 연대가 가능하게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고, 그 제도가 다시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선순환. 비록 지금은 우리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할지라도,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첫걸음은 바로 서로의 손을 맞잡는 '연대'일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들, 아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능력이란 덕목을 요구하는 대신, 보호라는 제도의 우산을 씌워 주세요.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퍼붓고 있는 이 시대의 위기들을 함께 견뎌 냈으면 해요. 어쩌면 우(p. 273)리의 어깨마저 비에 젖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차별 대신, 혐오 대신, 각자의 가슴속에 서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맞닿은 마음의 온기가 여러분을 지켜 줄 거라 믿어요. 이런 맘으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을 씁니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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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북토크】 한국은 강고한 계급사회이다
    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말한다. 소위 말하는 상류층 - 단지 돈이 많은 계층이다 - 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세습한다. 이는 주로 교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이뤄진다. 그럴수록 하류층 - 단지 돈이 적은 계층이다 - 은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어렵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개천이 복개공사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다수의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한다. 어찌할거나? 10퍼센트만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 20대 가운데 노동시장의 '내부자'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번듯한 또는 '괜찮은 decent' 일자리를 초임 기준 월 300만 원 이상을 주는 일자리라고 한다면, 2017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 7만 2,000명만이 내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p. 38)는 동일 연령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의 11.4 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전체 취업자(자영업자 포함) 가운데 1차 노동시장의 종사자라고 추정되는 비율인 16.5퍼센트보다 턱없이 낮은 수치다. 지금의 20대들은 이 전보다 훨씬 더 중산층이 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p. 39). 결국 지금의 20대는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이전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 경쟁 과정에서 성별, 계층별, 학력별, 거주 지역별로 누가 더 '기회'를 많이 잃는지 그리고 누가 '선방'하는 지에서 그들의 운명은 갈린다. 중산층 또는 중상위층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 '명문대' 졸업장을 요구하는 고급 사무직 또는 전문 기술직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 90년대생의 세계에서 부모 세대가 대졸 사무직으로 중산층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녀 세대인 그들이 명문대 졸업장을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지방 국립대를 졸업해서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거나 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p. 86) 전자 산업 대기업 생산직으로 서울의 대졸 화이트칼라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얻는 삶의 기회는 오늘날 20대에게는 거의 존재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p. 87). 여러 차례 언론 기사로 알려졌다시피 사교육 산업은 80년대 학번 운동권들의 호구지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의 대치동을 만들었다. 시작은 1992년 서울 시내 중고교 재학 생의 학원 수강 허용과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였다. 「신동아」 2018년 10월호의 '사교육 철옹성 대치동' 기사는 수능이 "기존의 암기식 학력고사와 달리 학생의 사고력, 논리력, 비판 능력 등을 평가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학 시절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토론과 세미나를 반복한 운동권 출신에게 최적화된 입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서술한다. 대치동이 한국 교육산업의 실리콘밸리 같은 입지를 확고히 한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에 이루어진 '쉬운 수능'과 '논술 강화'였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그나마 변별력 있는 논술 비중을 늘리면서 전직 운동권 출신들이 대학교 재학 당시 '세미나(사회과학 서적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의식화하는 학습 과정)' 하듯 학생들을 가르치는 논술학원이 급격히 세를 불려나갔다. 대학의 수시 전형 확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치동 논술(p. 128) 학원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장민성 씨의 유레카논술학원처럼 프랜차이즈를 내며 기업화를 시도한 곳이 생겨나던 것도 이 시점이다. 손주은, 이범, 故 조진만 씨 등이 2000년에 세운 메가스터디는 스타 강사와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확산에 힘입어 2000년대 초중반 급성장한다(p. 129).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 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 투자 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p. 144). 정상가족 형성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독립적 20대'라는 개념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특히 중산층에게 '가족주의'는 정상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다. 자신의 정상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가족(주로 부모)이 제공하는 자원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오늘날의 20대는 "가족을 만들 수도, 가족을 떠날 수도 없는" 개인이다. 그들은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현재의 가족과 미래의 가족 모두를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족을 만들려고 시도하든 그 시도를 단념하든 언제건 현재의 가족에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이는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을 전제로 하는 현재 20대 담론의 주된 접근방식 과 달리, 재생산을 위한 보급기지 또는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의 제공처로서 그들에게 가족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중산층에서는 동류혼(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행위)이 많아 졌는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p. 154).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 증가가 주로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모듈화의 영향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완성차 부문의 고용은 외환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부품 부문의 고용 확대에 의해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또 현대차가 2000년대 중반 해외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부품 부문 고용 확대의 원인이다. 국내 생산설비를 늘린 것은 1996년 현대차 아산공장 건설과 2013년 기아차 광주 공장 증설이 마지막이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완성차용 부품 가운데 다수가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귀족 노조'라고 비난받기까지 하는 완성차 조립공장 정규직 일자리가 2000년 이후 뚝 끊긴 건 노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듈화는 품질 개선과 생산 효율 개선을 위해 현대차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었다. 또 해외 공장 증설도 현대차의 해외 진출과 현대차의 주력 시장이 한국에서 먼 미국이나 유럽이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50~60년대생이 주력이었던 현대차 생산직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가 자동차 공장의 탈숙련화와(p. 210) 그에 반대급부처럼 이루어진 블루칼라 기능공 역할 축소- 화이트칼라 엔지니어 역할 강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블루칼라에서 '번듯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길이 끊기게 된 것이다(p. 211).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 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 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가장 분명하게 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 equality of opportunity 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에서 나오는 관련 보고서에서 으레 등장하는 표현이라 식상해 보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주장이 가능해 보인다. 가령 기회의 평등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유아기에서부터 공공 보육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p. 291)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이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이루어짐을 보일 수 있으며, 교육 과정이나 교육 재정 구조 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 social minimum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 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심상정 의원실이 지난 2018년 9월에 공개한 2016년 근로소득 1000분위(0.1 퍼센트 단위)별 급여와 결정세액(실제로 납부한 근로소득세액)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급여는 연 7,200만 원이었는데 연말정산 등을 감안한 실효세율은 5.76퍼센트에 불과했다. 실효세율이 10퍼센트를 넘기 위해서는 연 1억 500만 원 이상을 벌어 상위 3.2퍼센트 내에 진입해야 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연1억 4,700만 원을 버는데, 그중 15.6퍼센트를 세금으로 냈다. 결과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상위 1~10퍼센트를 대상으로 걷을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p. 292)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p.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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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2-05
  • 【북토크】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세상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과연 그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이 차별의 근거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주의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능력주의의 한 평가 방식이 시험이다.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정당한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기존의 생각을 흔드는 관점이라 좋았다. 허구적인 능력주의의 논리 능력주의를 이루고 있는 논리들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 개인에게 속하는 고유한 능력(지능/재능과 노력 또는 성취)이 존재 한다. • 능력은 시험과 같은 적절한 절차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p. 19)있다. • 현대 사회는 (학교교육 등을 통해) 동등한 출발선, 즉 성장과 능력 발휘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 • 각자의 능력은 오직 개인의 책임이다. • 사회의 불평등과 차등은 (대부분)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것, 즉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이러한 명제들은 능력주의에서는 명백한 진실이거나 상식인 것 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결코 생각만큼 자명하지 않으며, 현실과 매우 어긋나는 허구적인 명제인 경우도 많다. 능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부터가 그러하다. 먼저, 게임 캐릭터의 설정 수치마냥 개인에게 고유한 능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 유전적 요소나 소위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더라도, 유전자의 요소가 발현되는 것이나 어떠한 능력이 발달하는 것은 성장 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경제•문화적 배경에 크게 좌우된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같은 사람이 컨디션에 따라, 누구와 같이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성과를 보이는 사례들을 접하지 않던가. 또한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능력'인지 자체가 사회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도, 능력은 본질적으로 사회 제도(p. 20)와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념이다. 능력은 환경적 ·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 그러므로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나 절차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준비된 평가 도구들은 어떤 상황에서의 한정된 영역의 능력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한 결과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측정 결과가 촘촘하고 '변별력' 있을수록 더 그렇다. 우리는 인지 능력을 평가하는 지필 시험 성적과 실제 작업 성과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는 사례를 자주 겪지 않던가. 평가의 방식이나 기준 자체에 내재된 차별, 편향이 유불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 표준화된 성과 평가에 의해 급여를 정한 경우에도, 여성과 소수 인종은 편견 때문에 백인 남성보다 인상 폭이 더 낮게 정해졌다는 사례도 있다. 우리 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고 능력의 차이도 불평 등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는 믿음은 어떨까? 한국 사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교육비의 격차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는 물론,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주거 환경이 어떤지 등에 따라 배움의 기회부터 건강까지 격차가 생긴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더 높은 성취를 목표(p. 21)로 노력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격차와 불평등은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맥이나 상속 등의 요소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는 과연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일까?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보상과 높은 지위를 가지는 것은 정당한가? 비록 우리가 이런 원리에 아주 익숙하긴 하나, 이는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흔히 나오는 것은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이 보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노력의 과정이 아닌 시험의 결과물을 기준으로 차별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의 실상과는 다를뿐더러 앞뒤가 바뀐 논리이기도 하다. 개인이 어떤 노력을 했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교육을 예로 들면 만일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했다면, 그 보상이란 성장하고 변화한 자기 자신 자체이다. 노력하니까 보상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입증하면 더 많이 보상한다는 시스템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에 맞춰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 등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따르고 역량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보상을 약속 한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우대하는 방식은 더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 직위와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가령 중국에서 시작된 과거 제도는 인재를 선발 하여 통치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능력주의의 정당성은 바(p. 22)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나온다. 기업의 경우라면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고 승진시킴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보상함으로써 노력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논리 역시, 다수의 사람들이 경쟁하고 노력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능력주의는 공정성과 개인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평가하고 선발하는 측, 국가나 기업 등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 전체에,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로 바람직한지를 얼마든지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p. 23). 능력의 측정 또는 입증 과정, 시험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단'을 요구 한다. 앞서 말했듯이 능력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개인의 전적으로 고유한 능력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차등적 보상을 약속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능이나 잠재적 능력, 최소한 특정 시점의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지능 검사 등의 평가 도구와 함께 발달해 왔다. 능력주의의 신뢰성은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평가 시스템 -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요한 방식으로는 시험, 특히 인지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지필 시험 -에 의지한다. 개인이 홀로 시험지 앞에 앉아서 답을 적어 내고 채점을 받는 과정은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개인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믿음을 주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시험은 "교육할 의무는 묻지 않고 응시자 개인(p. 26)이 학습한 결과만 따지"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묻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한다. 이 때문에 능력주의를 강화하려고 할수록 시험이라는 방식도 강조되기 쉽다. 시험은 한국 사회의 불투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점수화되는 시험, 특히 지필 고사를 거치지 않은 채용은 그 자체로 특혜나 비리가 있었으리라는 의혹을 받곤 한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논거 중 하나는 기간제 교사들 중 일부가 인맥에 의해 채용되었으리라는 의심이었다. 일부 학교에서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과장이나 시험 부정 의혹 사건은 '대입 수능 비중 확대'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의심과 불신 때문에 비리나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한 방법인 시험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확실하며, '흙수저'인 개인도 노력 하여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각종 통계나 연구가 이를 부정하고 시험 역시 가정 환경이나 배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지적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쨌건 승리하고 성공하는 개인이 존재하고 자신이 그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실패는 자기 책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에는 학교는 물론 노동 영역에서도 '공정한 시험'에 의한 평가와 선발이 가장 정당한 방법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시(p. 27)험의 기회가 평등을, 성적에 따른 보상이 권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사고방식을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존엄과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너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하라. 되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으로' 이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시험을 준비하느라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 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력' 그 과정에서의 고생과 인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개개인에게 노력과 인내를 강조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공정한 능력주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보상 심리와 인지 부조화적 태도가 곧잘 발견된다. 자신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했으니 마땅히 그러한 고통에 충분한 의미가 있어야 하며, 누군가가 그런 노력과 고생 없이 결실을 얻(으려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것 이다. 그러나 이처럼 노력과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하는 경우 역시도 능력주의 논리의 자장 아래 있음은 분명하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경력은 물론,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고 일한 고통과 인내 또한 합당한 대가로 인정받지 못 한다. 오직 시험이라는 능력을 입증하는 과정에 연결된 노력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을 천시하고 지능•학력을 숭배하던 관습 그리고 뿌리 깊은 '자기계발'의 논리와도 연관되어 있을 터이다(p. 28). 교육 문제의 해결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더불어 가야 한다. 불공정에 항의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제국대학 입학 시험의 불공정성에 항의 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고, 1961년 쿠데타 직후에도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집권 초에도 입학 비리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문제는 불공정에 분노하는 걸 넘어 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킴블리 노블은 한 가정의 소득이 아이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며 저소득층 가정에 소득을 더 보장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였다. 경제적 불평등은 삶의 모든 영역에 불평등을 낳는다. 가난 속에서도 능력을 한껏 펼치는 일은 전교 꼴찌가 어느 날 갑자기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직장 규모와 학벌, 성별, 지역 등 유무형의 암묵적인 기준으로 층층이 차별화된 임금 제도를 교정해서, 전체 사회에서 노동자의 몫을 높이며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여, 혹시 직장을 갖지 않았더라도 인간으로서 죄악은 아니게 해야 한다. 직장을 갖지 않았어도 인간이 할 일은 차고 넘친다. 독립운동가들이 어디 직장을 제대로 가진 적 있었던가. 인간 사회의 변화는 사실상 직장 밖에서 더 많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려면 우선 단기적으로는 복지의 기반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복지 정책은 개인별 복(p. 61)지보다 소속 직장별 복지에 가까워서 열악한 직장일수록 복지조차 매우 빈곤하다.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라고 그들의 휴식과 임신·육아마저 헐값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모든 시민들이 공적 활동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누구나 희망한다면 몇 년쯤 공공 기관에 근무하거나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러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삶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의 공공성도 높일 수 있다. 세금 내고 4~5년에 한 번씩 하는 선거로 끝나는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 공적 활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한평생 동안 얼마 동안은 있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공적 시민이 되고, 공적 시민으로서 기본금과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해 본다. 당장 실현 될 리는 없으나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이런 상상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듀이와 파커 파머가 강조했듯이 학교교육은 더욱 중요한 공적 사회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시민교육을 강화하여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비판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고 직접 시민으로서 적절한 제도적 제안 과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교육 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p. 62). 결론적으로 아시아의 시험 문화는 빠른 산업화 전략에 따른 엘리트의 양성, 민주주의에 대한 희생 속에서, 근대화가 전근대적 신분의 해체가 아니라 '나도 노력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평등'으로 변형되면서 강력해졌다. 따라서 아시아의 시험 문화는 교육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치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시험 문화는 사회 상황이 왜곡되면서 형성된 지위 상승의 평등주의이고, 사회 진화론적 관점에서 개인적 적응과 지위 상승 전략을 추구하는 연대 없는 평등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나라(p. 78)에서 진행된 불균등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교육을 통한 지위 경쟁의 행위 주체는 개인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 획득을 둘러싼 격렬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가족 수준의 자원 결속과 지원, 동원 체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이 구조화된 한국 등의 나라에서는 특별히 '헬리콥터 맘'과 같은 현상으로 대표되는 온 가족이 동원되는 입시 문화가 나타난다. 문제는 이처럼 가족이 동원되는 평가 집착적 시험 문화가 사회적으로 보다 좋은 삶을 위한 연대를 해치고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lism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시아의 시험 문화를 특징짓는 가족 교육열이며, 지위 상승을 향한 열병이 국가 차원의 종교 의식처럼 치러지는 이유이다. 요컨대, 신분제적인 직업 위계와 불평등, 능력주의적 교육과 시험이 시험 문화를 초래하는데, 이러한 시험 문화는 오히려 개인의 능력이 아닌 가족의 배경과 자원이 동원되는 양상을 띠게 되며 능력주의의 발현을 저해한다(p. 79). 학벌없는사회 운동은 학벌이 전근대적이고 봉건주의적인 문벌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학벌과 패거리 문화를 사회적 합리화와 합리적 개인주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연고주(p. 107)의, 정실주의, 파벌주의에 대한 대응 논리로 개인주의, 합리주의, 능력주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동문'으로서의 '학연'이 다 '학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IMF 사태 이후의 한국 사회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든 공동체적 관계와 사적 친분과 연결을 통한 사회 안전망이 다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개인주의가 새로운 사회 윤리로 구축되고 있던 시기였다. 가족, 친구, 이웃 관계가 다 무너지고, 개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능력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그런 시대가 왔음에도 학벌없는사회는 '학벌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하곤 했다. 우리가 꿈꾼 것은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건강한 시민사회'였고, 학벌이 아니라 능력으로 대접받는 것이 공평하다 생각했다. 이런 화법은 결과적으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에 의해 패퇴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의해 무너졌어야 했다. 능력주의는 민주교육•평등교육의 이념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능력주의가 학벌주의의 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점은 우리의 한계였고 오류였다. 당시에도 '스펙'이라고 불리는 사회 현상은 문제가 되고 있었고, 성적 경쟁이 스펙 경쟁으로 변질된 것을 비판했지만, 그것이 총체적인 사회 통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위력을 발휘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2016년 해산까지 학벌없는사회의 경험은 민주화 이후 한국(p. 108)사회의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재편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투쟁과 패배, 한계와 오류의 경험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p. 109). 현재의 계급 위치를 지키려면 결국 지금과 같은 불평등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가 희망이 되지만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에겐 급격한 변화는 불안의 요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장 질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 위에서 일정한 기득권과 지분을 갖고 있는 '범민주 시민'이라 불리는 계급이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가장 강력히 갈망하는 것이며, 그 임무를 수행할 정권을 중심으로 가족주의적으로 결속하여 체제 변화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 덕분이라고 믿으며, 이 믿음을 다른 계급들에게 주입시킨다. 이 믿음은 기득권을 세습한 보수 기득권층보다 자력(?)으로 취득한 자유주의 진보 기득권층에서 더 강하다. 능력주의는 고소득 전문직의 '강남 좌파'나 능력 있는 '민주 시민'들이 추종하는 자기 신앙이 된다. 이들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 등에는 민감성을 보이지만 능력 차별과 계급 차별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회피한다. 능력주의 신화가 계급 차별을 가려 주기 때(p. 112)문이다. 능력주의는 상층부의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은 완화한다. 하지만 계급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진다. 지배자들이 평등을 깨트리고 서열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데 서열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평등은 인민을 다수로서 단결하게 한다. 서열화는 피지배 계급 서로가 서로를 착 취하도록 만든다. 자기 위의 사람은 복종하고 동경하며, 자기 아래의 사람에 대해서는 군림하고 무시한다. 위계는 지배자로부터 받은 차별과 멸시를 힘을 합쳐 되갚는 대신 아래로 향하도록 만든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너보다는 낫다는 것이 사회적 심리의 기저를 이룰 때 지배자들은 손쉽게 전체를 다스릴 수 있다. 지배자에게 두려운 것은 사다리를 오르려는 상승의 욕망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평평해지려는 사람들이다. 저들보다 못하지만 이들보다는 낫다는 것은 중간 계급의 심리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중간 계급에 대해 '상류층에 대해서는 도덕적 우월감과 문화적 열등감을 가치고 하층 계급에 대해서는 도덕적 열등감과 문화적 우월감을 갖는 집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간 계급에게 이 쌍방의 열등감으로부터의 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지적 우월감'이다. 지식 자본은 그 누구보다 중간 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p. 113). '경쟁력'이라는 시장 논리로 대학을 도태시키고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성'의 논리로 대학을 모두의 것으로 탈환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식과 금융의 결탁을 끊어 내고 학벌의 자본화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벌의 가치를 무가치화하고 반대로 학벌주의/능력주의가 무가치화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와 능력에 대한 가치, 양자의 교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와 재협약이 필요 하다. 학벌이 개인의 자산이 아니게 하려면 대학교육 공공화가 필수적이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는 대학 공공화를 위한 필수 정책이다. 교육에서 수혜자 비용 부담 원칙은 교육을 투자로 보는 관점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막대한 등록금과 교육비를 개인이 부담 하는 제도하에서는 개인들에게 공공의 책무를 다하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당신들을 교육시키는 데 드는 돈은 국민이 부담했다. 그러(p. 126)니 국민을 위해 일하라'라는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에 요구 되는 비용과 노력의 값이 커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진입 장벽도 그 만큼 높아진다. 비싼 교육 비용은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 기회를 차단하고 계급 간 불평등을 초래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이것은 원한다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다. 독일은 전국적 위헌 소송으로 대학 등록금을 무상화했다. 반값 등록금이나 학자금 대출, 소득 분위에 따른 차등적 국가 장학금 제도가 아니라, 대학 무상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는 빈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넘어서는 계급 간의 정치 협약이다(p. 127). 2020년 '인국공 사태'도 서울교통공사 사례와 유사한데, 하나 차이가 있다면 주로 정규직을 목표 삼은 취업 준비생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도 서울교통공사 사태 당시 반발했던 정규직들의 주장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깜냥도 안 되는 비정규직이 감히 우리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보안 요원은 공사 공채 시험을 통해 선발 하는 직원과 직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며 기존 정규직의 몫을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취준생들은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무엇이 그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그 멘탈리티를 투명하게 드러낸 글이 있다(p. 139). 연대숲 #68384번째 외침: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디에서 인재를 찾는가? - 취업과 엘리트주의의 담론에 대한 견해 이번 인국공 사태와 소위 '지방 인재'의 취업 할당 법안 발의 이후로, 대한민국은 노동의 가치, 경쟁의 가치 등을 놓고 의견 대립을 보이는 듯싶다. 그러나 그 대립의 과정에서 어이없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긴 제보를 적어 보려 한다. 그 어이없는 담론이란, 기업이 '학벌과 무관한' 실무 능력을 중시해 개인의 고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러나 개인의 실무 능력 및 자질과 학벌이 정말 무관한가? 바로 그 학벌을 얻어 내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했으며, 그 이상으로 특출나게 '뛰어나야' 했다. 누가 인재인가? 필자의 주변에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1년을 꼬박, 자는 시간만 빼고 20시간가량을 서서 살았던 누나가 있다. 지방에서 3수를 해 입학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누구보다 유식한 형도 있다. 가장 힘든 전공 과목과 복수 전공까지 챙기면서도 취미로 작가 수준의 유화를 그리던 누나도 있다. 이들의 노력에 대해 보상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의 역량을 보자. 집중력, 끈기, 저변 넓은 배경지식, 다재다능함. 정말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과 학벌이 무관한가? 필자의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뛰어난 우리의 역량을 발굴하고 증명했기에 소위 학벌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입을 위해 경쟁하던 전체 인구의(p. 140) 상위 5% 안에 우리가 있었던 것은, 그저 머리 좀 좋아서가 아니다. 총체적인 역량의 우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가 스스로를 엘리트라 칭하는 것에 거리낄 이유가 뭐 있을까. 우리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우리와 함께 경쟁했던 이 사회의 그 누구도, 태연히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현 정부는 어디에서 지방 인재를 찾는가. 어디에서 여성 인재를 찾는가. 지방에서 3수 해서 기어코 꿈에 한 발짝 다가간 그 형이 진짜 지방 인재다. 사람 몸에 저 정도 재능이 다 들어가나 싶은 그 누나가 진짜 여성 인재다. 현 정부의 고질적인 병폐인 포퓰리즘과 대중주의는 무슨 듣도 보도 못한 대학, 시민단체 등에서 소위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모순을 야기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학우들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제쳐 놓고 인재를 논할 수 없다. 이는 오만한 말이지만 동시에 사실이다. 아직 직무에서 역량을 발휘해 보지도 못한 일개 취업 준비생이 지닌 자의식치고는 지나치게 비대하다. 그 자의식은 오직 대학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저 글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실무 능력과 자질과 학벌이 정말 무관한가?"라고 물은 다음 어떤 논증도 없이 '나는 특출(p. 141) 나게 뛰어나다'라는 선언으로 비약하는 부분이다. 근거처럼 제시한 게 "집중력, 끈기, 저변 넓은 배경지식, 다재다능함" 인데, 정작 글쓴 이는 이것이 왜 학벌 좋은 사람만의 자질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행적 모순' 또는 '화용론적 모순'이라 부른다. 화자의 주장과 행동이 상충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저 횡설수설하는 주장은 글쓴이가 사실관계나 추상적 개념을 분석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 본인이 원하는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p. 142). 시험은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 주는 것이 아니고, 게다가 한 번의 시험이 지속적인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도 못한다. 코레일에서 매표 업무를 하는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역무원의 차별은 지속된다. 설령 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더 나은 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은 정당한가. 게다가 근속이 길어질수록 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입직 통로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평생에 걸쳐 격차가 벌어지는 이 현실은 과연 정당한가. 이러한 격차의 확대를 설명할 정당한 근거는 과연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능력주의는 답을 할 수 없다. 능력주의의 근거가 되는 시험 자체의 공정성에도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노동자들은 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 한다. 흔히 말하는 '수저론'은 젊은 노동자들이 능력주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점차로 공개 채용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사회가 더 불안정해질수록 안정적인 노동 조건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안정적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과 그런 조건이 되지 않는(p. 174) 사람들 간의 경쟁이 과연 공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험'을 매개로 한 능력주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에서의 능력주의는 단지 '시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직무급제'라는 형태로 이어진다. 그 사람이 어떤 직무에서 일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해 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능력주의 요소가 있다. 병원을 예로 들면 의사와 간호사, 의료 인력과 비의료 인력 사이에 격차가 있고 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승진과 승급, 임금 체계를 달리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직무급제는 여기에 더해 직무에 따라 고용 형태를 세분화하고 위계를 만든다. 어떤 직무는 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그보다 하위 위계의 직무는 면접을 통해 무기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등 시험과 직무와 고용 형태를 연계 하면 그러한 능력주의 구조는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노동 조건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런 경우를 차별이라고 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 문제가 되지만, 직무에 따른 차별은 잘 문제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여성이 주로 하는 직종인 돌봄 노동은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잘 인정받지 못한다. 이때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가 받는 차별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낮은 일을 하니까 받는 대우로 간주된다. 즉 차별이 합리화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차별이 마치 '차이'인 것처(p. 175)럼 인식되고, 차별의 책임도 개인에게 전가된다. '네가 능력을 키워서 더 좋은 자리에 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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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2-05
  • 【단상】 세월 앞에 모든 것은 무상하다...총신 입학 40년
    총신대학에 입학한 것이 1985년이니 이제 입학한지 40년이 되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학교에 자주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행사가 있어 학교에 왔다가 정문 건너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보았다. 과거 학창 시절 그곳은 식당이었다. 주로 학교급식을 먹었으나 가끔 밖에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을 일이 있었다. 비빔밥이나 라면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 40년 세월 후 그곳의 식당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건물은 비어있다. 만감이 교차한다. 세월 앞에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무상하다. 나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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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5-12-01
  • 【북토크】 다른 직업의 사람을 통한 통찰
    나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최근에 본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 정도이다. 드라마를 안 본지 오래됐다.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봐야한다는 것도 싫고, 별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기획 피디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잘 만든 작품 하나는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미가 부여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과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 한순간에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작품도 많다. 노력을 덜 해서라기보다는 부족해서다. 닿지 못해서이고, 노련하지 못해서다. 경력자와의 작업이라고 해서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완전한 제작 환경에 있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 들끼리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모두가 잘 될 거라고 확신한 것들이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기도 하고, 유치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내팽개쳤던 것들이 때론 생명(p. 6)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정답을 찾는 데 능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p. 7). 대본 개발 6부작이나 8부작 미니시리즈의 경우, 전체 대본을 완성한 뒤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보다 긴 장편 시리즈일 경우, 절반 정도의 대본을 기반으로 제작을 시작하되, 현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드라마는 대본 그대로 찍어내는 고정된 조각이 아니라, 배우의 컨디션, 날씨, 계절, 장소, 예산, 시간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 위에 떠 있는 유기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지막 화 대본까지 완성했더라도 촬영 현장에서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부분적으로 수정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촬영된 장면들은 편집된 결과물 안에서 감정선이 끊기고 어긋나 보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드라마(p. 37)는 줄거리보다 감정의 연결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한 장면의 대사와 리액션을 고치면, 앞선 장면의 감정 설정도 따라 바뀌어야 하고, 뒤따르는 행동과 선택도 새롭게 정렬해야 한다. 이 연쇄적인 조정은 결국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는 창작자만이 해낼 수 있다. 그러니 대본이 아무리 잘 쓰였다고 해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쉽게 균열을 일으킨다.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감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기획 단계에서 프로듀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이다. 작가가 캐릭터의 변화를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작품의 중심을 함께 잡고, 연출과도 긴밀하게 호흡하며, 드라마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 이 작업 없이 뛰어난 몇몇 장면만으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탄생하기는 어렵다.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 대본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행 서사에서 극적 상황이 주어지면, 이야기의 속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액션과 리액션이 반복되며, 이야기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p. 38)전개되고.." 드라마는 결국 창작자가 캐릭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동력에 의해 창작자가 이끌려가는 어떤 경험이라고 느껴졌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드라마란, '결말'이 아닌 '경로'로 기억되는 이야기다. 시청자는 마지막 장면보다도,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어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곡선을 따라왔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렇기에 대본 개발은, 기획이 세운 뼈대에 감정의 혈류를 돌게 하고, 인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 인물이 현실처럼 숨 쉬고, 움직이고,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순간까지, 작가와 연출, 그리고 프로듀서가 함께 호흡해야 한다(p. 39). 결국, 관찰과 기록은 '양'을 만드는 습관이다. 많은 것을 보고, 남기고, 돌아봐야 비로소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나는 '양이 질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데, 단순히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 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 대중이 반응하는 정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들에 대한 누적된 감각이 쌓여야 비로소 판단 기준이 생긴다는 말이다. 예전엔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편협한 확신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도 전혀 다르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원작이 엉성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그 작품 안에서 감정의 동선을 읽어내고, 구조를 잡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획은 어느새 가능성 있는 설계가 된다(p. 58). 나는 "영감이 올 때만 쓴다"는 말로 책임을 미루는 작가와는 함께하기 어렵다. 책상 앞에 고집스레 앉아 인물의 감정을 묻고 듣고 다시 답하려 애쓰는, 그런 집요한 시간이 쌓일 때만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작가, 그리고 함께 점검하는 프로듀서. 그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이야기가 완성된다(p.111). 원작을 기반으로 작업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균형 감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한 번 더 상상해 보고, 동의할 수 없는 지점에서도 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 그렇게 생각을 보태고 변주하다 보면, 결국은 하(p. 128)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며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협업의 묘미이고, 원작 기반 제작이 단순한 번안 작업이 아닌 '새로운 창작'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p. 129). 나는 어떤 프로젝트든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고, 무엇보다 '마음'을 들인다. 그리고 나는 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몰입하지 않으면 해낼 자신이 없어 더 집중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배움과 깨달음이야말로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합리적인 워라밸을 추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한 만큼 요구하고 돌려받는 프로듀서들을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는 걸까?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도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과정이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좋은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 면 그 모든 노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노력한다. 내가 함께한 작가와 이야기, 함께한 시간과 관계가 모두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도록(p. 161). 결국 좋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어디서 바라봤느냐'에 달렸다. 이미 다뤄진 이야기라도, 그 인물의 다른 면에서, 다른 자리에서,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시 살아나는 감정이 있다.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던 주변 인물에게, 진부한 관계 속 숨겨진 결핍에서, 클리셰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정에서 말이다. 그런 새로운 시선을 찾기 위해 나는 꾸준히 관찰하고, 읽고, 질문한다. 삶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감정의 결을 들여다본다. 그런 감정들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나보다 훨씬 깊은 통찰을 가진 창작자(p. 172)들과 함께 고민한다. 가볍지 않게, 무겁지도 않게, 단단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로 오늘의 우리를 말하고 싶다(p. 173). 세계의 책장 앞에서 기획자라는 직업의 특권 중 하나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원고를 먼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추천 리스트를 먼저 받아보고, 이 책이 영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사람들이 어떤 감정에 반응할지, 어떤 세계를 궁금해할지, 그 미세한 흐름을 먼저 포착해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들어야 할 이야기'로 꿰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출판-기획 협업은 더 긴밀하고 이르게 진행된다. 한번은 출판 에이전시 대표님의 초대로 영국의 주요 출판(p. 180)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출판 시장 중 하나인 그 곳에서 한 권의 소설이나 논픽션이 어떻게 유럽과 북미의 제작사, 할리우드 에이전시의 책상 위를 오가며 주목받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매일 밤 수백 권의 출판 리스트를 검토하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미팅을 소화하며, 단 한 권의 가능성을 발굴하려 애쓰는 에이전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분야만 다를 뿐,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내가 매일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성 트렌드를 짚어내는, 열정적인 여성 에이전트들과 함께한 경험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원작을 고르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붙잡아 기획자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내가 찾고 있던 감정의 결이 어떤 원작 속 리듬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눈앞에서 전구가 켜지는 듯한 경험이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 아직 값이 매겨지지 않은 감정, 아직 시작되지 않은 서사를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p. 181)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의 기획과 시선으로 새롭게 구현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획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자 보람이 아닐까? 세상은 넓고, 아직 기획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끝없이 흩어 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은, 결국 기획자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에 비례 한다(p. 182). 오래 기억될 첫 실패 칸 영화제는 영화인의 축제다. 드라마를 만드는 나는 늘 그 풍경의 바깥에 있었다. 개인 배지를 받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야 하는 이곳에서, 내 목적은 '칸 마켓'에 참가한 전 세계 제작자들과의 미팅을 통해 하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칸에 도착하자마자 오전과 오후는 마켓 미팅으로, 저녁엔 미국 회사와의 줌 미팅으로 가득 찼다. 현지에서 만난 스위스 음악가, 프랑스 다큐 감독, 파리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 연출가 등 다양한 파트너 후보들과의 약속도 출장 전부터 계획 되어 있었다. 잠과 싸우고, 언어와 싸우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의 '가능성'으로 설득하는 싸움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실수 없이 응대해야 한다는 부담감. 칸(p. 187)에서의 5일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꽉 찬 일정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시차에 적응됐지만, 그 여유도 잠시였다.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숙소에 짐을 풀고, 새벽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출발을 그려보았던 그날, 호텔 베드버그에게 물린 자국이 목과 팔, 다리에 퍼지기 시작했다. 상처는 붓고, 간지러움은 심해졌다. 전염성이 있을지 모르니 함께하기로 했던 프랑스 에이전시에 미팅 연기를 요청했고, 나는 옷을 세탁하고, 트렁크를 소독하고, 숙소를 살균하는 데 하루를 보냈다. 몸은 지쳐 있었고, 머릿속은 계약서 문제로 복잡했다. 원작 계약은 마무리됐지만, 공동제작을 위한 부속 합의서 작성은 에이전시의 일정 문제로 미뤄진 상태였다. 칸 영화제가 끝난 뒤에야 조건 조율이 다시 시작됐다. 에이전시는 원작이 웹툰 형식이라 매력적이지만 정리하기 어렵다며, 내가 미리 작성해 두었던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파일들을 요청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공유한 시놉시스의 한 문장을 계기로, 에이전트는 세계관을 새로 정리 하고 주인공 설정까지 각색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고는(p. 188) 자신이 실질적인 '창작 기여'를 했으니 크레딧을 표기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제작사와 연결된 한 감독이 흥미를 보이자, 에이전시는 "내가 정리한 시놉시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앞으로 모든 해외 커뮤니케이션과 자료 정리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다. 처음에는 '첫 시도이니 경험 삼아 겪어보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점점 에이전시의 요구는 단순한 협력 범위를 넘어섰다. 사실 우리는 이제 막 부속 합의서를 통해 '함께 해보자'는 첫걸음을 내디딘 단계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자료에서 영감을 얻어 일부 비틀어 만든 시놉시스를 근거로 크레딧을 주장하는 일은 제작자나 창작자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상대가 무엇을 만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신뢰가 생긴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는 언뜻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선택과 집중은 타인에게도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경력은 단(p. 189)순한 이력이 아니라 신뢰의 근거다. 그 에이전트가 실력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잦은 조건 변경과 말 바꾸기를 보며,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에이전시와의 부속합의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속상했다. 함께 잘해보자는 순수한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나의 아쉬움을 전하자, 에이전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정리한 새로운 시놉시스로 다른 영화를 만들면 돼"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함께 할 '일'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사람은 좋을 수 있지만,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p. 190). 늘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요즘 의식적으로 시도해 보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빈둥거리기다.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기'는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래도록 머릿속을 가득 채워온 창작의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의 틈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쫓기지 않고, 감정을 비워내는 연습. 생각의 끈을 끊어내고, 흘러가도록 두는 훈련. 그렇게 텅 빈 자리에야 비로소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획이란 일이 결코 경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력은 때때로 기회가 되지만, 그 기회가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매번 새로 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멈추어서 사람을 보고 말하고 듣는다. 그 틈으로 일부러 차단하고 무시해 왔던 생활의 작은 갈등들이 다시 스며든다. 섬세하지 못했던 관계와 일들에 다시금 천천히 눈이 간다. 그동안 '생각'이 나를 얼마나 가로막고 있었(p. 202)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가족이 느끼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감정이 밀려들 때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을 달래주는 음악을 든고,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영화를 본다. 설령 모든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내 편으로 두려고 한다. '빈둥거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오랜 창작자의 체력이니까. 빈둥거리며 생각과 마음을 비워낸 내가, 또 다른 문화적 흐름과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생각만은 부디 늘 새롭고 싱싱하기를. 그 기운을 안으로 들이고, 다시 창작의 근육을 움직이길 바란다(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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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1-29
  • 【북토크】 다른 사람의 인생 서사는 교훈을 준다
    저자가 장애인을 위한 재단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한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기에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자주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부자나 신문에 자주 나오는 대기업 대표를 어쩌다 만날 때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푸르메재단이 세워진 직후 초대이사장에 취임한 김성수 주교님을 모시고 큰 자동차회사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매년 많은 사람이 사고와 질병으로 중도장애인이 되지만, 재활병원이라곤 신촌 세브란스재활병원과 서울재활병원만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푸르메재단은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생각하는 재활병원 건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고요.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BMW는 인근 재활병원과 협약을 맺어, 공장에서 일하다 재해를 입은 직원들뿐 아니라 교통사고로 다친 시민들의 재활치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하고 있었습니다. BMW처럼 그 회사도 재활병원 건립에 동참해주십사 요청하기 위해 주교님과 함께 방문한 것이었지요. 굴지의 자동차회사가 재활병원 건립에 함께해준다면 화제도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리라 기대했습니다. 자동차회(p. 36)사 부회장은 '무엇이든 도와드리겠다'는 태도로 반갑게 주교님을 맞이했습니다.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평생 장애인과 살아온 주교님은 "장애인 환자의 재활을 돕는 병원 건립을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죠. 하지만 면담 끝에 돌아온 답변은 "한번 검토해보겠다"라는 형식적인 말뿐이었습니다.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대기업의 구조상 부회장 입장에서는 선뜻 확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빈손으로 나오니 화가 났습니다. "매년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 빈손으로 돌려보내려면 왜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제게 주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앵벌이예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위한 공익적 앵벌이지요." 어리둥절해하는 저에게 주교님은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절대로 부자가 앞장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겨우 살 만하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이 베푸는 법이에요. 한 번 거절당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열 번 전화해야 한 번 만날 수 있고, 열 번 만나야 겨우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잘 설명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에요." 주교님은 그렇게 저를 위로하셨습니다(p. 37). 2023년 3월, 그녀는 모교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물세 살 때 장애를 갖게 됐고 2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마흔여섯 살에 드디어 모교 교수가 된 것이지요. 그녀는 몹시 행복해했습니다. 이화여대 연구실에 초대를 받은 저는 첫 학기 소감을 물었습니다. 모교라서 느끼는 안정감이나 후배들을 만날 때의 기쁨 같은 얘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삶에 관한 철학적인 깨달음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23년 전 그날의 사건 이후, 늘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가 낸 사고의 피해자(p. 67)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더이상 사고의 피해자로 살아가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랜 시간 동안 사고가 있었던 그 자리와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이라고 비관해왔습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하고 원망하며 남은 삶을 마감할지 아니면 새롭게 만날 것들에 감사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헤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이제 잘 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답을 듣자 이지선 교수가 큰 깨달음을 얻은 스승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면 출구가 보이는 터널"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사는 게 맛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서 행복합니다(p. 68). 김소월과 정호승,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들 "누구에게나 소설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다"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뵈었을 때 선생님에게 혹시 올 해 소설을 쓸 계획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소설이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7년 동안 소설 쓰기에 몰두해봤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인(p. 74) 40대를 허비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학 장르는 다양하죠. 저에게는 소설이 맞지 않고 그보다 시적 기질이 있음을 깨닫게 됐어 요. 소설에 대한 아쉬움은 산문집이나 우화소설 집필로 대신하고 있습니다."(p. 75). 진정성의 힘 강 변호사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학연과 지연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이로 인한 병폐로 한국 사회가 망할 것(p. 94)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진적인 기부문화가 확대되려면 전근대적인 상조문화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결국 자식과 핏줄에 대한 애착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명문 경기중,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학교와 동문 이야기가 나오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토가 우리나라를 망쳤다"고 성토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변호사님은 부모상과 딸 결혼식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부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님도 부친상을 당하고 해외출장 일정을 모두 소화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는데 그야말로 부창부수라는 생각이 듭니다(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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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 【북토크】 힘들 때는 멈춰야 할 때다!
    “오프 먼트OFF-MENT란? 오프 먼트란 멈춤을 뜻하는 오프(OFF)와 순간을 의미하는 모먼트(MOMENT)를 합친 말로, 이 책에서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서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성취를 얻는 전략적 휴식법을 통칭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재충전하고 돌아볼 수 있다. 일중독자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멈춰야 비로소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다. 인생에는 이런 역설이 있다. 저는 해도 해도 안 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내려놓음을 슬쩍 권하는데요. 제가 말하고 싶은 내려놓음은 다른 의미, 즉 2번째 의미일 때가 많습니다. 목표를 내려놓는 게 아니고요, 앞서 제 3수 때 이야기처럼 목표는 그대로 둔 채 지금 내 과도한 긴장 상태를 살짝 내려놓으라는 거죠. 힘 빼기에 가까운 내려놓음이랄까요? 너무 간(p. 64)절해서 '그것만' 보던 시선을 살짝 돌리거나 힘을 빼면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는 묘안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예를 든 수험생의 경우는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하던 걸 오히려 10시간 미만으로 공부하는 식으로 하향 조정을 하는 걸 수도 있어요. 제 친구 경훈이의 경우는 그 팍팍한 삶의 방식 자체를 내려놓고 다시 설계하자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녀석, 간이침대에서 웅크려 자고 매일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생활에 필요한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했잖아요. 그런데 투자가 잘 안 될 때마다 점점 더 근무 시간을 늘렸거든요. 이거 아니라는 거죠.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갈망을 살짝 내려놓으면 태도와 방식도 자연히 느슨해지는데요. 역설적으로 태도와 방식이 느슨해졌을 때, 오히려 낮췄던 목표를 초과 달성해서 맨 처음 세웠던 목표가 어라? 달성되어 버리는 경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p. 65). 저는 이번 책의 전작인 《마이크로 리추얼》과 《리커넥트》를 쓸 때, 230여 명의 사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번아웃이나 고(p. 82)립감에 빠졌는지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번아웃에 빠지거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껴 스스로 모든 관계를 끊어 낸 사례자 중에는 나태하게 살거나 되는 대로 인생을 산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대부분이 노력하고, 애쓰고, 타인에 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과했을 뿐입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지금 이 모양이 됐을까요?" 이런 말을 하면서 울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하는 그들을 보며 1가지 경향성을 발견했습니다. 1번, 2번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몸이나 마음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올 때 '잠깐 멈춰서 왜 이런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대신, 더 많이 에너지를 쏟아붓는 방식을 서슴 없이 선택했다는 겁니다. 애쓰는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지는 과정 애쓴다 → 힘들다 → 힘듦을 무시한 채 계속 애쓴다 → 체력이 바닥난다(p. 83) → 정신적으로도 소진된다 → 예전보다 결과물이 좋지 않다 → 그러자 더 애쓴다 → 몸은 더 병이 든다 → 결과물은 더 나빠진다 → 결국 목표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런 그들과 상담하면서 저는 딱 1가지 변화에만 집중했습니다. 바로 최초에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무시하고 곧바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춰 '찰나 의 점검'을 해보는 것이었죠. 애쓰다가 힘을 뺐을 때 잘되는 과정 애쓴다 → 힘들다 → 어? 이게 이렇게까지 애쓸 일인가?' 또는 '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고 있지?' 점검한다 → 살짝 내려놓는다 → 힘이 빠지며 이완된다 → 지속 가능한 정도로 에너지를 넣는다 → 이 상태로 꾸준히 오래 한다 → 목표에 가까워진다 애를 쓰든 힘을 빼든 두 사례 모두 출발점은 똑같이 '애쓴다'였죠. 그런데 처음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즉 최초의 과부하 단계에서 더 애쓰는 단계로 가는 게 아니라 '어? 나 지(p. 84)금 왜 이러지?', '이거 이렇게까지 애쓸 일인가?', '이 에너지 투입이 1년, 2년, 3년 지속 가능한가?' 하고 아주 잠깐만 멈춰 점검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목표가 애쓰는 게 필요한지, 힘 빼기가 필요한지 판단한 뒤, 만약 힘 빼기가 필요하다고 느낀 내담자에게는 힘을 좀 빼고 내려놓을 수 있는 '이완의 생활 습관'들을 하나씩 알려줬습니다. 지속 가능한 만큼의 에너지를, 오래 쓸 수 있도록 말이죠. 그것이 역설적으로 목표에 더 가깝게, 더 빨리 다가가도록 도와주더라고요. 그런데 이 방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형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집과 강박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은 사람들이죠. "이렇게 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다른 방법은 없어!" 이런 극단적 사고에 갇힌 상태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바로 '나의 판단력에 대한 과도한 신뢰'입니다(p. 85). 이뤄내고 싶어요? 그럼 쉬어야 해요(p. 297) 더 잘하고 싶다고요? 쉬어야 한다고요. 사람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요? 그럼 쉬는 게 전략이에요 저는 이 책에서 바로 이 말까지도 포함하고 싶었던 거예요. 물론 내가 이완하고 나를 내려놓는 건 이런 기능적 측면만이 아니라 제가 앞서 말했던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처럼 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고 내가 나를 데리고 잘 살아가며 충만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나라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관대해지고, 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지고, 느낄 수 있는 삶의 감각들도 조금 더 다양해지면서 '아, 사는 거 참 괜찮은 거네' 그런 마음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잘 사는 삶이란, 이런 거 아닐까요? '아, 인생은 좀 살 만하네'라고 느끼는 순간이 문득문득 더 많아지는 것, '야, 오늘 너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더 많아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책무 일지도 모릅니다(p. 298). 지금까지 일 스케줄을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 열심히 하는 성실한 페르소나로 살아왔다면 이제 쉼 스케줄도 미루지 않는 성실한 자기로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단 몇 분 내려놓고 모든 것으로부터 오프 한다고 해서 천재지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쉬어도 되고, 멍 때려도 되어요.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그러니 내려놓아 보세요. 오히려 잠깐씩 내려놓고 멈추고 일에서 멀어져 나를 재충전시키고 나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똑똑해집니다. 조금 더 창의적으로 됩니다. 그렇게 내일 조금 더 인지 능력이 개선된 내가 닥친 문제를 풀도록 하는 게 오늘 밤새고 울며불며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p. 299). 010.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저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책을 쓰면서 제 앞에 독자 한 분 한 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쓴답니다. 눈을 마주칠 순 없지만(p. 324), 눈을 마주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써요. 그래서 진심으로, 두 손 꼭 맞잡고,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담아서 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애써왔고, 앞으로는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만 더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애써온 노력이 토양이 되고, 앞으로 조금 내려놓고 살아가는 태도가 햇빛과 수분이 되어, 당신의 꽃은 분명히 당신의 계절에 피어날 거예요. 위로도 힐링도, 립서비스도 아닌 세상의 이치를 말한 거예요. 봄꽃도, 여름꽃도, 가을꽃도, 겨울꽃도 있잖아요. 겨울에 필 꽃인데 애쓰고 발 동동거리며 더 많은 물을 붓고, 더 강한 햇볕을 쬔다고 여름에 필까요? 아니죠. 오 히려 뿌리가 썩거나 피지 못하고 말라 죽을 뿐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가을꽃이나 겨울꽃일 수 있잖아요. 당신의 계절은 분명히 찾아오니까. 딱 오늘 하루치의 물을 주고, 햇볕을 주자고요. 그렇게만 한다면 절대로, 절대로 당신은 땅속에서 사라지듯 피지 못하고 주저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성공을 바라든, 가정을 꾸리길 소망하든, 행복한 인간관계를 원하든 조금만 내려놓고, 대신 멈추지만 말고 걸어가면 분명 당신이 만나고픈 그 삶의 장면은 꼭 찾아올 거예요. 반드시(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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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문화 검색결과

  • 【포토에세이】 철도길
    철길이 길게 놓여 있다. 비록 끝이 보이지는 않으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철길이 없으면 어떤 철도도 달리지 못하기에 같은 철길을 다양한 이동 수단들이 사용한다. 무궁화, 새마을 그리고 ktx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요금도, 소요 시간도 다르다. 이 철도길은 오늘 어떤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인가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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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3
  • 【포토에세이】 부추도 꽃이다
    옥상 텃밭 한 구석에 어머니께서 동네 친구분에게 얻어오신 부추가 심겨 있다. 어느 날 장독대 대형 화분에 몇 포기 옮겨 심었다. 이전에는 꽃을 심었었다. 가끔 자라난 부추를 잘라 먹었다. 그러다 그것도 시들해져서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흐느적거리는 풀같았던 줄기가 꼿꼿이 세워지고 키가 자라 끝 쪽에 뭔가 맺히더니 작은 꽃을 피웠다. 참 요물이다. 잘라 먹을 때는 풀같았는데 그냥 내버려두니 계절을 따라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운 하나의 꽃이 되더니 신기해 유심히 보는 사이 벌도 날아와 꽃을 어루만지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추꽃은 처음 봤다. 늘 집이나 식당에서 음식 부재료로 먹던 풀 같은 것이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신기하다. 도심 옥상에서 부추꽃을 보니 서울 촌놈이 행복하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통해 수정한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사람도 꽃이다! 화려한 장미, 매혹적인 목련도 꽃이지만 부추도 꽃이다. 우리 모두 각자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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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7
  • 【포토에세이】 안빈낙독은 안빈낙도
    안빈낙도(安貧樂道)란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이란 말이다. 내겐 안빈낙독(安貧樂讀)이 있다.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한다”는 뜻이다. 교단 기자는 담임목사 때보다는 가난하다. 담임목사로서 보장되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도 없다. 차량 유지비도, 통신비도 모두 교회가 부담했었다. 담임 부임 때 구입했던 트라제XG를 가져와 아주 가끔 사용하고 주로 세워둔다. 기자로 취재현장을 다닐 때 대중교통이 편하고, 취재비 받아서는 차를 운영할 수 없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은 있으나 늘 책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취재가방에 언제나 책을 갖고 다닌다. 집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운전하는 것이 불편한다. 운전하느라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잠시 취재 갔다가 다음 취재까지 짬이 생겨 굳이 한 장소를 찾아 왔다. 종로쪽에 있는 저렴하고 넓직한 카페이다. 종로 쪽에 올 때 시간이 비면 와서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내게 독서 취미가 있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다행히 지금도 독서가 좋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책을 읽으면 취재 현장까지 가는 것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시간이 비어도 좋다. 책 읽고 있으면 되니까. 모두 안빈낙독의 삶을 사시기를. 엉뚱한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책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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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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