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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폐회예배, 정영교 목사 설교
    셋째날 5월 13일 폐회예배는 부회록서기 이도형 목사(도개중앙)의 인도로 이두형 목사(서인천제일)가 기도, 이철우 목사(새빛)가 눅 5:15-16을 봉독했다.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양문)가 ‘당신의 영혼이 숨 쉴 자리를 만드십시오’란 제목으로 “교회가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우리는 작은 예수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내가, 교회가, 총회가 일어나야 한다. 함성이 아니라 기도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교단이 달라진다. 기도를 통해 교단이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도는 리더십을 위한 엔진이다. 기도를 통해 영혼의 쉼을 누려야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을 때 쉴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바쁘신 가운데서도 기도하셨듯이 기도를 통해 영적인 호흡과 위로를 누리기 바란다. ”라고 설교했다. 증경총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가 축도 후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광고하고, 2박 3일간의 은혜롭고 뜨거웠던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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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
  •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집회, 박노섭 목사 설교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셋째날 5월 13일 오전집회 3은 박순석 목사(예수열방)의 인도로 양호영 장로(하늘소망)가 기도, 강희섭 목사(추부중앙)가 에 4:13-17을 봉독했다. 박노섭 목사(삼광)가 ‘이때, 우리가 잠잠하여 있다면’이란 제목으로 “교회 미래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한국교회가 무너진다고 진단했다. 분쟁과 다음세대에 대한 대안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어려운 때에 첫째, 우리는 교회만 성장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둘째, 다음세대를 위하여 일어서야 한다. 셋째, 교회가 다음세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 ”라고 설교 후 이경조 목사(시온)의 축도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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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
  •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집회, 설동욱 목사 설교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셋째날 5월 13일 오전집회 2는 배정환 목사(광주미문)의 인도로 정종식 장로(구로중앙)가 기도, 김종수 목사(섬기는)가 딤후 4:6-8을 봉독했다. 설동욱 목사(예정)가 ‘목회 회상’이란 제목으로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목회이다. 목양일념해야 한다. 잠 27:23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소 떼에 마음을 두라. 목회는 이벤트가 아니라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요 10:11). 삯을 바라고 일하면 삯군이 된다. 반면 우리는 삯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면 후회로 남는다. 계속해 배우며 목회를 해야 한다. 목회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둘째, 목사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바울처럼 후회없는 사역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라고 설교 후 노갑춘 목사(광주예손)의 축도로 마쳤다. 간절한 찬양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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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
  •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집회, 정명호 목사 설교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셋째날 5월 13일 오전집회 1은 최성은 목사(새벽을여는)의 인도로 신덕수 장로(대구대동)가 기도, 성경선 목사(밀알)가 대하 20:31~37을 봉독했다. 정명호 목사(혜성)가 ‘깨진 항아리 인생은 되지 맙시다’란 제목으로 “그러나가 붙지 않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여호사밧의 첫 번째 반복적인 실수는 ‘인관관계’문제였다. 그는 아합, 아하시야와의 관계를 통해 실패했다. 그가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귀와 영광을 주셨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하다 실패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악인과 동행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두 번째 실수는 ‘열정 상실’의 문제였다. 그는 처음 열심을 끝까지 갖지 못해 국가를 신앙으로 개혁하는 일을 완성하지 못했다. 관성을 깨뜨릴만큼 간절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세 번째 실수는 ‘관점’의 문제였다. 산당에 대한 태도는 역대기 저자가 왕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그럼에도 여호사밧은 이 기준을 무시했다. 관점을 잘 못 가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흘려보내지 않고 잘 유지하며 살기를 바란다. ”라고 설교 후 한수환 목사(서영)의 축도로 마쳤다.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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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
  • 제63회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저녁집회, 장창수 목사 설교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둘째날 5월 12일 저녁집회는 부서기 유병희 목사(예우림)의 인도로 이해중 장로(대남)가 기도, 임용택 목사(동명)가 빌 1:20-21을 봉독, 서울노회 장로합창단이 찬양했다. 장창수 목사(대명)가 ‘간절한 기대와 소망(아포카라도기안)’ 이란 제목으로 “아포카라도기안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 있다. 바울은 무엇을 향해 달려갔는가? 첫째,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원했다. 이것은 현재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에 성실해야 한다. 또한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이 사는 것이다. 교회의 위기는 세속화이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척(fake)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또한 작은 일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성화를 위해 단순성 훈련, 홀로 있기 훈련, 복종 훈련을 해야한다. 둘째,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을 높여야 한다. 양심의 가책, 죄악된 본성,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기대하며 나를 죽이고 주님을 존귀하게 해야 한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감사로 자족하며 기쁨으로 지내는 것(빌립보서 전체).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환경, 사람, 염려, 비교로 인해 기쁨을 잃어 버린다. 기쁨은 선택이며 훈련이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담대하고 기쁘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윤영민 목사(대한)가 합심기도 인도, 이민호 장로(왜관)가 헌금기도, CTV 사모합창단이 특송 후 증경총회장 전계헌 목사(익산동산)가 축도하고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광고했다.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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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2
  •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강의, 총신대 유해석 교수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둘째날 5월 12일 오후 강의 3은 정신길 목사(교하대광)의 사회로 조형국 장로(광주대성)가 기도했다.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유해석 교수가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의 내륙 선교관’이란 제목으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는 복음에 대한 깊은 열정과 확고한 선교 소명을 가지고 조선 땅을 향해 나아갔으며, 결국 1866년 대동강변에서 생애를 마감함으로써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억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는 그의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이며, 이를 복음 전파의 출발점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적 이념적 변화 속에서 토마스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특히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의 연관성은 그를 침략의 동조자로 해석하려는 시각을 낳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은 제한된 사료와 초기 연구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토마스의 생애와 선교관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그의 전체 생애 가운데 극히 짧은 기간에 해당하며, 이를 중심으로 토마스의 선교사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사료적 검토를 통해 확인되는 사실은 그가 조선을 침략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졌다는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개척 선교지로 향한 선교사로서의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토마스의 조선 선교는 19세기 개신교 선교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내륙 선교 운동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의 조선 방문과 마지막 항해는 고립된 개인의 충동적 행동이 아니라, 당시 세계 선교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선교적 결단이자 내륙 선교 정신의 실천적 표현이었다. 토마스는 단순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땅을 향해 나아간 선교사였으며, 내륙 선교의 정신을 조선 땅에서 구현하려 했던 선구적 인물이었다. 그의 순교는 실패한 시도가 아니라 복음이 조선에 전해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한국 개신교의 형성과 성장에 중요한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남겼다. 따라서 토마스는 순교자라는 신앙적 정체성과 더불어 19세기 세계 선교의 흐름 속에서 대륙 선교를 실천한 선교사로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재평가는 토마스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그의 생애와 죽음이 지닌 한국 교회사적 의미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라고 강의 후 진두석 목사(초원)의 축도로 마쳤다.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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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2
  •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강의, 법학박사 박세용 장로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사회하는 설안선 목사 둘째날 5월 12일 오후 강의 2는 설안선 목사(새백성)의 사회로 최병도 장로(세계로)가 기도했다. 박세용 장로(독천)가 ‘성경적인 자녀 공부 성공법’이란 제목으로 “성경적인 자녀 공부 성공법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1)성경 말씀을 심어주는 것 2)욕심을 내려놓는 것 3)인내해야 한다. 자녀 교육 문제로 근심, 걱정, 염려, 고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모는 4)정성함양에 힘써야 하고 5)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라고 강의 후 간절히 기도하고 최찬용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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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2
  •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강의, 인천제2 노원석 목사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둘째날 5월 12일 오후 강의 1은 홍성현 목사(판암장로)의 사회로 김준기 장로(용기)가 기도했다. 인천제2교회 노원석 목사가 ‘마음을 얻는 영성, 공감의 힘’이란 제목으로 “공감을 잘 할려면 경청해야 한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청해야 한다. 이때 판단을 멈추고 끝까지 들어야 한다. 상대의 핵심 감정을 읽어주고, ‘그렇구나, 그렇군요’라고 호응해 주는 것이 좋다.”라고 강의 후 간절히 합심기도하고, 박상규 목사(강림)의 축도로 마쳤다. 간절한 합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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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2
  • 제63회 전국 목사•장로기도회 저녁집회, 송태근 목사 설교
    ㅇㅇ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첫째날 저녁집회는 회록서기 안창현 목사(서광)의 인도로 회계 남석필 장로(맑은샘광천)가 기도, 김경환 장로(일광)가 삼상 1:15을 봉독, 용인제일교회 찬양대가 찬양했다. 송태근 목사(삼일)가 ‘하나님과 심정을 통하라’란 제목으로 “한나는 하나님께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했다. 레위인 엘가나에게는 한나라는 부인과 브닌나라는 세컨드가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사사시대는 혼탁했다. 성직자도 백성도 타락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당시 결혼해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여겼다. 한나는 이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한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종으로 드리겠다고 한 것이다. 즉 한나는 기도하면서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종으로 드리겠다고 한 것이다. 눈물로 통곡하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임병선 목사(용인제일)가 합심기도 인도 후 부회계 안수연 장로(양의문)가 헌금기도, 헤세드 장로합창단이 특송 후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성현)가 축도 후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광고했다.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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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1
  • 제63회 전국 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소강석 목사 설교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란 주제로 5월 11일부터 13일 일정으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개회예배는 서기 김용대 목사의 인도로 장봉생 총회장이 개회선언 후 부총회장 홍석환 장로가 기도, 김한욱 목사(새안양교회)가 골 1:27-29을 봉독, 새에덴교회 찬양대가 찬양했다. 증경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와 최선이 만나게 하라’는 제목으로 “젊은 때 은혜받고 개척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이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셔서 지금의 새에덴교회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 교단도 어려운 때 기도하며 여기까지 왔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최선을 다해 주신 사명을 감당했다. 기독교는 어려울 때 광장이 아닌 광야로 가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 하자.”라고 설교했다. 정규재 목사(강일교회)가 합심기도 인도 후 직전총회장 김종혁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광고했다. 간절히 기도하는 참석자들 기도회에 참석한 111회 총회 입후보 예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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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1

오피니언 검색결과

  • 【서기원 목사 선교6】 선교사의 낙심
    선교사의 낙심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때로는 마음이 낙심될 때가 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하고 선교지에 간 선교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마음이 낙심이 되면 삶의 여러 부분이 힘들어진다. 몽골에 선교사로 가서 빠른 시간에 성도들이 모이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에서 만나던 성도들이 모여들고 가족들까지 함께 교회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다. 교회에 출석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한 동기는 한국에서 자신들을 돌보아 준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차 나온 성도들이 많이 있었다. 교회에 출석하던 성도들이 점점 나오지 않고 지도자로 양육하는 두 사람만 나오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낙심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오는 성도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선교를 하다가 이들을 본국에서도 잘 정착시키려는 사명을 가지고 선교사로 온 나에게는 사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하다가 몽골에 선교사로 왔을 때 몽골의 선교사들 중에서도 일부 선교사들은 외국인 노동자선교를 한국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몽골까지 와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선교사들도 있었다. 외국인노동자 선교의 초기이기에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때라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지도자로 양육하고 있는 강볼트와 에르뜨네 두 사람만 남았다. 그 중에 한명도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흔들렸다. 당시에 아직 신학교에 가지 않은 상태인데 교회의 일에만 충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부인의 반대에 부딪혀서 택시운전을 하려고 신학교 가려던 것을 접고 일터로 나갔다. 낙심된 마음에 점점 사명을 잃고 힘을 잃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한국에서 방문한 선교팀이 위로해 주어서 힘이 되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몽골에 가족들과 함께 와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선교의 좋은 열매입니다.’ 라는 격려의 말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못하니이다 하고” 왕상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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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3
  • 【양대식 목사 칼럼16】 서운한 감정을 이기는 비결
    서운한 감정을 이기는 비결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웃고 울고 서운함은 인간의 감정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어서 내가 조금 못 해주면 서운함을 가지게 됩니다. 사소한 것 가지고 서운해합니다. 조금만 방심하고 무관심하면 서운해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서운함을 이겨 내야 합니다. 자족해야 서운함을 이겨냅니다. 빌립보서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 하기를 배웠노니 인간은 욕심이 있고 이기적이기에 서운해합니다. 너무 잘해주다가 조금 잘 못 해주면 서운해하기에 잘해주는 것도 조절해야 하고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 자주 잘해주고 싶은 마음도 조절해야 합니다. 대접하고 선물 주는 것도 약간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조절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거절당할 때 서운함을 느끼기에 거절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왜 거절하는지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예와 아니오를 잘 설명해야 합니다. 기대가 클수록 서운한 감정이 커집니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하고 기대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주고 나누고 선을 행하는 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주고 나면 잊어버려야 합니다. 서운함을 이기려면 지금 내게 잘못해도 지난날 내게 잘해 준 것만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불만족과 내 중심 욕심이 있으면 계속 서운해합니다. 서운한 감정을 다루지 못하면 스트레스이고 불행입니다. 인간은 내게 잘해주기도 하고 못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서운함을 이겨냅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가 어렵고 무엇인가에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잘못하고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나를 돕지 않으면 신기하게 다른 방법으로 까마귀의 역사로 나의 힘이 되고 공급자가 되어 주는 것도 경험합니다. 인생의 삶에 필요한 것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공급하심을 믿을 때 인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다스리게 됩니다. 서운함을 가지고 사는 것은 인간의 죄성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서운함을 느낍니다. 마음이 좁은 자가 서운함을 많이 가집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넓습니다. 욕심 때문에 서운함을 느끼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전화나 연락이 끊어지거나 잘 안되면 서운함을 느낍니다. 전화나 연락을 꾸준히 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는 잘되는 것보다 깨지기가 쉽습니다. 관심받지 못할 때 서운합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전화도 자주 하거나 못하면 서운함을 느낍니다. 인간관계는 주고받는 관계인데 나만 계속 주고 상대방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입니다. 은혜 떨어지고 믿음 식어지면 사소한 것 가지고 서운해합니다.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서운한 감정은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가까운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상대방이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서운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서운함을 견뎌내고 이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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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2
  • 【북토크391】 늘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이 책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죽은 이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어느 장례지도사의 기록이다. 40대 중반, 암에 걸려 저승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저자 강봉희는 그때부터 죽음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 고인들의 장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도맡아왔다. 2020년, 모두가 감염의 공포에 질려 코로나 사망자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을 때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저자는 오늘도 외롭게 죽은 이들의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식장과 화장장과 납골당을 오가면서 그들의 한 많은 넋을 기린다.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는 오래도록 죽은 이들의 마지막을 목격했던 그가 들려주는 죽음과 장례의 의미, 삶과 인간에 관한 길고 긴 성찰의 궤적이다.-교보문고 언젠가 나도 죽어 남의 손에 의해 장례 절차를 밟을 것이다.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염습 중에서도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드리는 일을 '습'이라고 한다. 시신이 들어오면 그가 입었던 모든 것을 벗긴 뒤에 손발부터 시작해 온몸을 닦아드린다. 그리고 머리를 감겨드린다. 요즘은 시신을 닦을 때 알코올을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향나무를 잘게 쪼개어 물에 불려 만든 향 물을 사용했다. 향(p. 28)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고, 시신이 썩어 냄새나는 것을 막아준다. 옛날에 빈소에서 향불을 피웠던 것도 향이 시신 썩는 냄새를 방지해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염장이와 장례지도사는 시신의 부패와 감염을 막기 위해 생겨난 직종이다. 요즘에야 그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제나 보건이 최우선이다. 코로나 사망자의 경우 돌아가신 후 24시간 내로 화장을 하라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염습하기 전 시신이 경직되고 뒤틀려 반듯하게 눕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후경직이 심해 시신이 씻기기 힘든 자세일 때는, 시신에 체온을 전달해서 죽은 몸의 근육을 풀어 주어야 한다. 온기를 전달하지 않고 급하게 일을 할라치면 몸의 관절이 부러져버린다. 시간을 정말 오래 들여 근육에 열을 가하고 관절을 서서히 움직이면, 조금씩 굳은 근육과 관절이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때로는 염습을 하는 도중에 시신의 손발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거나 시신이 주먹을 꼭 쥘 때도 있다. 축 늘어져 있던 근육이 갑자기 뻣뻣해지거나, 시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할 때도 드물지 않다. 사람이 숨을 거둔 후에도 몸의 세포는 아직 살아서 경직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p. 29). 그럴 때면 나는 시신의 몸을 천천히 풀어준다. 시신을 닦아드리는 도중이거나, 아니면 수의를 입히는 도중이라도 그에게 따뜻한 열기를 전해드리고 "이제는 편히 가소." 말도 건네준다. 가끔 염습대 위에서 뻣뻣한 시신과 부둥켜안고 끙끙대는 스스로를 보고 웃음을 흘릴 때도 있다. 어느 정도 목욕의 단계가 끝났으면 다음은 얼굴이다. 시신이 남성일 때는 면도를 해드리는 게 중요한 일이다. 면도는 남성인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며 해드리는 가장 정 성스러운 절차다. 면도할 때 조금이라도 부주의하거나 칼이 안 좋으면 상처가 나기 쉽다. 그래서 따뜻한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적셔주고 크림을 충분히 바른 후에 면도를 시작한다. 면도 후에는 얼굴에 스킨을 발라드린다. 여성의 시신일 때는 면도 대신 더욱 신경을 써서 머리를 빗겨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린다. 보통의 장례식장에선 얼굴에 정성껏 화장을 해드리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가장 곱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화장을 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지간하면 고인이 여자일 때는 여자 장례 지도사가 염습을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 시신을 씻기려면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다 벗겨야 하는데 그건 아무리 고인(p. 30)이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가능하다면 고인이 여자일 때는 여자가, 남자일 때는 남자가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도 여성의 시신은 가급적 같이 봉사하는 이들 중에서 여성분에게 맡기려고 한다. 시신의 몸과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을 다 씻기고 정돈해 드린 후에는 귀와 코와 입 등 얼굴의 구멍과 항문을 솜으로 막는다. 인간의 몸에서 제일 먼저 상하는 건 장기이므로, 몸 안의 장기들이 부패해서 나오는 가스를 막아주어야 한다. 솜으로 다 막은 뒤에는 한지를 접어서 만든 기저귀를 채워드린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이 다 풀리는데 그중에서도 괄약근이 가장 쉽게 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후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게 놓아드린다. 팔과 다리를 염포로 반듯이 묶고, 얼굴과 눈을 감겨드리고, 입이 벌 어지지 말라고 고개를 세워 턱 끝을 머리와 묶어드린다. 이제 두 손이 가지런한 시신 위에 흰 천이 덮인다. 여기까지, 죽은 몸을 돌봐드리는 일의 기본은 다 되었다. 시신을 묶어서 입관하기 이전의 절차가 다 마무리된 것이다(p. 31). 고독사로 돌아가셔서 오랜 시간 뒤에 발견된 시신은, 그걸 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보통 더운 여름에는 부패되어 구더기가 끓고, 겨울에는 수분이 빠져나가 미라가 되어버린다. 미라가 된 시신은 수습하기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여름이다. 무엇보다도 시신이 썩는 냄새는 매우 고약하다. 동네에서 작은 동물이 죽으면 나는 냄새를 생각하면 되는데, 물론 그보다 몇 배는 더 심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썩는 냄새는 똑같다. 그렇게 여름에 시신이 훼손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마당에서 숨이 끊어져 일주일 정도만 있어도 죽은 몸엔 구더기가 슬기 시작한다. 그때는 먼저 살충제를 뿌리고 벌레를 퇴치한다. 사람 몸에 살충제를 뿌리는 일 역시 시신의 냄새만큼 고(p. 34)약하고 괴롭다. 벌레는 사람의 몸 중에서도 눈과 배에 많이 슬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면 살충제와 석회가루를 뿌린 후 팩으로 하루 이틀 봉해놓아 몸을 덮은 벌레를 죽여야 한다. 그런 뒤 시신을 새로 꺼내서 죽은 벌레들을 솔로 다 털어낸다. 다음으로는 탈지면에 알코올을 묻혀 최대한 부드럽게 몸을 닦고, 한지로 들쑥날쑥한 시신을 감아준다. 수의를 입히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신도 가끔 있다. 그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어 시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드린 뒤 수의를 잘 개어 관에 같이 넣어드리는 수밖에 없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고독사를 한 사람들은 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몸은 멀쩡한데, 안구만 뻥 뚫려 있다. 시신에서 가장 피부가 연해 먼저 상하는 곳은 눈이다. 그래서 여름엔 구더기가 슬고, 겨울엔 바짝 말라 함몰되어버린다. 생선의 눈알이 쪼그라들 듯 시신의 눈도 부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없다. 시신의 표정은 무심하고 편안한데 그 동공이 비어있는 걸 바라보면 섬뜩하긴 하다. 우리가 봐온 정상적인 얼굴이 아니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처음엔 마주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주 대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p. 35). 그리고 다시 고독사의 문제에 관하여 말하자면, 누군가가 고독하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 몇 달 지난 뒤 발견되었다고 거기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말라. 살아 있었을 때 부터 관심도 못 받고 잊혀버린 사람이 고독하게 죽었다고 사회적으로 떠들썩하게 구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것 또한 삶과 죽음을 뚝 떼어놓고 다른 선으로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가 살아 있을 때 그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죽기 전에 그를 살릴 수 있었고, 홀로 저승으로 가지 않게 돌볼 수 있었다. 그런 의무를 내팽개친 채 고독사를 입으로 떠드는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다(p. 88). 지금이라도 수의 문화가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 알몸으로 나왔지만 갈 때는 옷 한 벌 갖춰 입고 간다는 것이 수의를 입혀드리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신 고인이 평상시에 가장 좋아하고 즐겨 입었던 옷을 입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죽고 난 뒤에 살아생전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이 과연 맞(p. 98)을까?(p. 99). 중요한 것은 장례를 지낼 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어떤 관습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건 대개 누군가의 돈벌이가 될 뿐이다. 나는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의 행복을 위하여 당신의 돈과 시간을 쓰지 않고, 당신이 리무진 같은 것으로 그런 부채감을 때우려고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관 속을 꽃밭같이 만드는 건 당신의 자유다. 그렇지만 시신 위에 당신이 준비한 국화꽃 한 송이를 얹어드려도 그 마음은 똑같다. 옛날처럼 엽전과 쌀을 입에 넣어드리는 것도(p. 110)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관에 넣어드릴 예단이라고 해서 종이로 꽃이나 뭐를 예쁘게 꾸며 채우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소박하게나마 고인이 살아 계실 때 잘하는 게 훨씬 더 귀중한 일이다. 죽은 뒤에 시신이 타는 리무진은 죽은 이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p. 111). 당신의 장례를 함께하는 장례지도사에게 "꼭 이걸 해야 됩니까?"라고 물어보아라. 자주 퀘스천 마크를 달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차근차근 답을 내보라.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빼버려라. 꼭 해야 한다고 하는 것만 하라. 그렇지만 막상 일이 급작스럽게 닥치면 이렇게 차분한 마음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연세가 많거나 병환이 있는 가족을 둔 분들에게 미리 '장례 쇼핑'을 다녀보라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가? 장례 쇼핑 이라는 말이 뭐 어때서 그런가? 쇼핑하러 다녀보면 쓸데없는 걸 뺄 수 있고, 줄여야 할 것을 줄일 수 있고, 업체의 농간(p. 135)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장례식장에 가서 견적서를 잘 뽑아보라. 주위에 있는 적당한 장례식장을 찾아서 물어보고 품목을 정리해두라. 그럼 어느 장례식장은 뭐가 얼마고, 어디서 쓸데없는 걸 부풀리고 등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알아챌 수 있다. 내가 고인을 잘 보내드리기 위하여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따져볼 수 있다. 장례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내가 이해가 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만 하면 된다. 가장 기본이 되는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어주려는 당신의 그 마음만이 소중하다.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일 뿐임을 명심하라(p. 136). 가장 낙관적이고 희망찬 분위기에서 나이가 든 우리는 젊을 때 다들 사회생활 10년 하면 아파트나 단독주택 한 채(p. 209)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새끼들은 저렇듯 어렵게 살고 있 다. 옛날처럼 사회에 나와 10년 열심히 하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핑계는 좀 그만 대고. 그렇게 마구 퍼주면 젊은 사람들 나태해진다고?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은 다 욕심이 있으므로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사람은 위를 보게 되어 있고, 위로 가 고픈 욕구가 있다. 더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뭘 하라고 하면 힘이 든다. 꼭 자기 부모가 아니더라도, 나의 등을 살짝이라도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 자기 자식이 아니어도 등받이가 되어줄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게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p. 210). 내가 바라는 나의 죽음 죽음은 다른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일 거다. 잠에서 못 깨어나면 죽음인데 뭘 그리 안타깝게 매달리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한다. 밤에 잠들듯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5년 전, 우리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다. 건강했던 형님은 어느 날 갑작스레 몸이 아파 아침에 밥을 먹고 차를 몰고 병원에 갔다. 거기 도착해 폐렴이니까 입원하라는 말을 듣고 입원을 했다. 그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하니 수면제를 놓겠다는 의료진의 말에 따라 수면제를 맞았고, 그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게 그의 죽음이었다. 그때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형님의 임종을 지킨 뒤 병원 복도에 나와 쓰러져 통곡했다. 아내가 그런 내 모습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형님은 내게 정말로 큰 존재였고, 평생을 함께한 어른이자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고 해서 우리가 잠에 못 들지는 않(p. 213)는다. 밤에 잠들면 아침에 깬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편안히 잠들 수 있다. 우린 보통 침대맡에서 배우자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기 마련이고, 다시 아침에 깨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죽지 않아서 그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죽으면 다시는 못 만날 거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을 때 그 들과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 살아 있을 때 자기 죽음을 생각해두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지만, 살아 있을 때 억지로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죽음이 다가오면 그때 받아들이면 된다. 왜 억지로 걱정을 먼저 해야 하나? 죽음의 걱정은 생의 마감이 다가왔을 때 하면 되지 않나? 한 시간이라도 더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나? 내 인생은 멋진 인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젊었을 때는 힘들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기도 했었지만, 황혼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건 없더라도 괜찮다. 자식들은 다 잘 커서 자기 몫을 해내며 잘 살고 있다(p. 214).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다. 그건 암으로 병실에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다가 나이가 들면 죽는 거지 뭐 다른 게 있을까. 살다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우리는 그저 삶과 죽음은 한 선에 맞닿아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늙고 병들고 죽는 순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TV에서 불치병을 앓던 어느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진통제를 맞은 후 자기 주위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과 파티를 하고 놀다가 자기 혼자서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 약을 먹고 편안하게 가는 장면이었다. 그런 죽음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말로 대단했다. 좋은 사람, 가족과 친구들을 다 만나서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 간 것 아닌가. 나도 그 사람처럼 가고 싶다. 살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 것보다는 내 주위의 인연들을 다 불러서 인사하고, "잘 살아라, 내가 먼저 가 있을게. 내가 거기서 자리 잡고 있을게. 내가 고참이니까 너 나중에 오면 말 잘 들어라." 이런 농담을(p. 215) 하면서 가고 싶다. "잘 있어. 내 손녀로 와주어서 고마워." 이렇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이미 자식들에게 아내와 내 연명치료를 못 하게 말 해두었다. 우리가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뭘 꽂거나 그러면서 우릴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살 확률이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그냥 보내주라고. 그런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까? 아직 그 순간이 오지 못해서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가 즐겨 입는 점퍼 하나 입고 편안하게 가는 날을 기다린다. 아니, 나는 죽음을 기다리진 않는다. 죽음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 나는 그저 오늘도 웃으면서 즐겁게 산다(p. 216).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4-30
  • 【북토크390】 재미있는 크로키의 세계
    『최호철의 걷는 그림』은 크로키북을 정리한 책이다. 그동안 출판사, 직장, 학교, 출퇴근 길, 그림 동료들 등 저자가 다닌 길들을 따라 그린 그림을 담았다. 우연히 눈에 띄거나 내다본 풍경, 마주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교보문고. 최호철의 그림은 재미있고 기발하다. 흥미롭게 읽었다. 추천의 말 삶과 사연을 그려내기 위한 소스코드 최호철의 걷는 그림을 위한 추천의 말-김낙호 한 작가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스케치 모음집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물론 스케치 자체가 지니는 미적 감각이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고, 그 작가의 열혈 팬이라서 그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하여 구경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라면, 완성작이 만들어지기까지 아이디어가 축적되고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조립되는지 설계하고 가다듬는 과정의 이면을 보는 것이다. 스케치북이란, 작가의 작품들을 우리 눈앞의 그것으로 만들어주는 소스코드, 그것도 개발과정의 빌드를 분석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치북을 엿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흥미로운 작가들이 있다. 장인 정신이 뛰어난 유려한 완성도의 그림을 자랑하는 작가에 관한 스케치북 정도만 되더라도, 아마 작법서로서의 기능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경험은 층층으로 의미가 담겨있고 서사적 연출의 묘미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만드는 작가의 스케치북이다. 어떤 식으로 세상을 포착하며,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정리해 넣는가, 넣고 싶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려내고 시점과 연출을 만들어 내는가. 그런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런 측면에서 불 때 누군가가 필자에게 오늘날 한국에서 스케치북을 엿보고 싶게 만드는 만화 작가를 꼽아보라면,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최호철'이라는 이름을 내밀 것이다. 큰 스케일의 민속풍경화든 작은 생활그림이든 서사만화든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의 형식을 결합한 것이든, 최호철의 작품들은 늘 독특한 일관성이 있다. 첫째, 삶을 담아내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특정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공간묘사로 전달해줄 수 있는 민속적 디테일이 살아있다. 일례로 '태일이' 같은 작품에서 70년대 평화시장의 공간을 부감으로 설명하며 묘사하는 방식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둘째, 사연을 담아내는 데생을 구사한다. 그가 그려내는 사람들은 그 몸짓, 표정, 공간 속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 모든 것 속에 단순히 현재의 단상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르게 된 사연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을지로순환선'에 그려진 여러 승객들은 각각 그들의 피곤하고 찌든,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할만한 삶의 사연들을 절로 상상하게 한다. 셋째, 흐름을 담아내는 그림 연출이 있다. 시야의 왜곡, 부감과 조감, 소실점의 운용으로 만드는 공간의 이야기성이 탁월하다. '악!법이라고' 릴레이 만화의 일환이었던 4대강 훼손 반대 만화, 또는 촛불시위를 묘사한 만화 등이 그런 장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다. 이런 특성들은, 결코 단순한 천재성으로 일필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인간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단순히 그림실력이 아니라 더 나은 표현을 위해 계속 정진하고, 중간 과정에서 계속 생각하며 수많은 설계와 정비를 거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을 존경하는 것은, 그 근간에 있는 소스코드를 궁금해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보물섬과도 같다. 간혹 작가의 개인 공간이나 기사에서 언뜻 조금씩 노출되었던 중간과 정들의 감칠맛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묶여 나온 스케치북이다. 이것을 읽는다고 누구나 제2의 최호철이 될 리는 없겠지만, 이 정도의 노하우가 공개된다는 것만으로도 좀 더 다음 세대의 좋은 작가들, 혹은 좋은 독자들이 꽤 늘어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만화 평론가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4-29
  • 【북토크389】 성인의 시각으로 읽는 흥미로운 동화의 세계3
    전3권으로 되어있는 책인데 흥미있게 읽었다.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책에 대한 설명은 앞의 1, 2권에서 다뤘으니 참고하시면 된다. 머리말 동화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을 찾아서 지난 6년 동안 반드시 또 한 권의 '그림 동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열심히 구상을 해왔다. 앞서 출간한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 동화』 1, 2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줄곧 깃들어 있었는데 그 염원을 마침내 달성할 수 있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전작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 동화』 1, 2에 이어 이 책에서도 여러 학자들의 분석과 그림 동화 초판이나 그림 형제가 동화집을 쓰기 위해 사용한 초고 등을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 대담하고 독창적(p. 11)인 '키류 미사오 판 그림 동화'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동화를 두 편 정도 선택해서 '작가'로서의 나의 안목과 감성, 그리고 표현 방법을 바탕으로 동화가 정말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진실을 파헤쳐 나름대로 표현해보았다. 한편, 잔혹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아비규환이 난무하고 선혈이 남자한 장면.... 그것은 확실히 잔혹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잔혹한 것일까. '잔혹하다'고 할 때, 거기에는 사람을 살해하고 피가 흐르는 잔학함만 존재하는 것일까? 보다 큰 '잔혹함'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인간이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운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피를 흘리고, 반드시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서 고통과 슬픔을 체험한다. 때로는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간직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의미의 '잔혹함'을 그려보고 싶었다(p. 12). 빨간 구두 그날 저녁, 혹독한 연습을 끝낸 카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청년과 만나고 헤어진 공원에 이르러 있었다. 항상,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 공원으로 발길이 향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카렌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박 관념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하지? 또 이곳에 와버렸어.' 카렌은 즉시 발길을 돌리려 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어. 이제 그런 과거와는 이별해야 돼. 나의 새로운 첫걸음이 시작 되니까...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카렌이 발길을 돌리려 하자 구두가 제멋대로 앞으로 곧장 나아간 것이다. 옆으로 돌아서려 해도 구두는 앞으로 곧장 나아가려만 한다(p. 132). '내 발이, 발이..' 발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빨간 구두가 자신을 마음대로 끌고 간다. 빨간 구두는 공포에 질린 카렌을 공원으로 끌고 가 안쪽의 숲으로 안내했다. 그동안에도 카렌은 필사적으로 구두를 벗으려 했지만 그것은 발에 달라붙은 듯 벗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신고 있는 양말을 찢었지만 그래도 역시 구두는 발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카렌은 구두가 움직이는 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숲을 통과하고 밭을 가로질러 언덕을 넘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만 추었다. 한밤중, 카렌은 춤을 추면서 텅 빈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카렌은 완전히 지쳐서 이끼가 자란 오래된 무덤에 걸터앉으려 했지만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 입구 쪽으로 춤을 추며 다가가자 그 곳에는 하얀 옷을 걸친 천사가 서 있었다. 날개는 어깨에서 땅바닥까지 이르렀고 엄격한 표정으로 손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칼을 쥐고 있다. "너는 빨간 구두를 신고 평생 그렇게 춤을 추어야 한다!"(p. 133). 천사가 소리쳤다. "너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까지! 너의 피부가 해골처럼 추하게 말라버릴 때까지! 너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너처럼 오만하고 허영에 들뜬 소녀가 살고 있는 집이 있으면 그 문을 두드려라. 그런 소녀들이 너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도록! 자, 춤을 추어라! 마음껏 평생 쉬지 말고 춤을 추어라!" "아, 천사님! 살려주세요!" 카렌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이제 와서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너의 오만함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너의 냉혹한 마음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평생 춤을 추면서 잘 생각해보아라!" 그러자 빨간 구두는 카렌을 이끌고 나무 문을 빠져 나가 밭으로 향했다가 다시 거리로 나갔다. 빨간 구두는 앞에 가시덤불이 있든 돌멩이가 있든 상관하지 않 고 카렌을 끌고 갔다. 카렌의 팔과 다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구두는 그런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춤을 추는 카렌의 눈앞에 여러 가지 환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p. 134). 조금 더 깊이 읽기 안데르센과 「빨간 구두」 그림 동화가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난 1835년, 안데르센 동화집이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그림 동화』가 민담을 수집한 것인 데에 비하여 안데르센 동화집은 그 대부분이 작가가 직접 창작한 것이다. 사실, 같은 시대에 동화 작가로서 살았던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은 1844년에 처음으로 만났다. 안데르센이 베를린에 살고 있는 그림 형제를 방문한 것이다. 안데르센은 당시에 이미 동화 작가로서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야코프 그림은 안데르센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뒤늦게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은 야코프 그림은 이번에는 자기가 코펜하겐에 사는 안데르센을 방문하여 "이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 이후, 그들 형제와 안데르센은 매우 친해졌고 자주 교류를 가졌다(p. 141). 사람의 목을 베는 망나니 천사의 저주를 받은 카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을 넘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계속 춤을 추다가 가시덤불에 긁혀 피투성이가 된 채 사람의 목을 베는 일로 먹고 사는 망나니의 집에 도착한다. 카렌이 망나니에게, 빨간 구두가 신겨져 있는 자신의 발목을 잘라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 대해 모리 세이지는, 스스로는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차단해달라고 부탁하는 의미라고 해석 한다. 카렌은 발목이 잘려나가고 그 대신 나무로 만든 발과 목발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욕망의 근원을 차단한 카렌은 마음을 고쳐먹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회로 가지만 교회 입구까지 갔을 때, 자신의 몸에서 잘려나간 빨간 구두가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발길을 돌린다(p. 150). 모리 세이지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통해 카렌이 이성을 잃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고 한층 더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빨간 구두와 그렇게 간단히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는 것. 아무리 자신의 몸에서 잘려나갔다고 해도 발과 빨간 구두는 여전히 그녀의 분신으로 존재하며 그런 욕망에서 아직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p. 151). 왜 삭제되었는가 요시하라 다카시, 요시하라 모토코는 공저 『그림 동화 '초판'을 읽는다』에서 그림 동화의 다른 잔(p. 217)혹한 이야기는 끝까지 남았는데 왜 「돼지 죽이기 놀이」만이 삭제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정했다. "옛날이야기에는 막스 루티(Max Luthi)가 '추상적 양식' 이라고 부른 문체가 사용되어 있기 때문에 잔혹한 이야기도 구체성이 부족해서 현실적으로 독자들에게 진짜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손발을 잘라내는 장면에서도 독자들은 피가 떨어지거나 상처에 통증이 느껴지는 식의 사실적인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여 이 이야기는 그림 형제의 다른 이야기와 비교할 때 추상성이 매우 낮고 현실성이 짙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느끼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두 사람은, 이 동화가 삭제된 이유는 그 문체와 구조에 있으며 옛날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옛날 옛적 어느 장소에...' 로 시작하는 식으로 시간과 장소를 특정 짓지 않는 데에 비하여 「돼지 죽이기 놀이」에서는 첫머리에서 마을의 이름을 거론 한다는 점이나 돼지 역할을 맡은 아이를 공포 상황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순서에 맞게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 일반적인 옛날이야기가 해피엔드로 끝나는 데에 비하여 이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p. 218). 성냥팔이 소녀 잠시 후, 거리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여들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소녀가 쓰러져 있어. 죽은 것 같은데." "이 추위에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있으니 당연하지. 틀림없이 얼어 죽었을 거야." "불쌍해라. 이곳에서 성냥을 팔던 소녀야"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장사를 시키다니, 대체 이 아이 부모는 뭘 하는 사람들일까?" "사회에 문제가 있어. 지금도 전 세계에 수천, 수만 명의 성냥팔이 소녀들이 있어. 앞으로도 이 현실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때, 소녀의 손이 텅 빈 성냥갑을 힘껏 움켜쥐고 있(p. 253)는 것을 한 사람이 발견했다. "불쌍하게도 성냥으로 몸을 녹이려 했나 본데" "그건 그렇고, 입가의 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는 뭐야?" "죽어가면서 무엇인가 행복한 꿈이라도 꾼 걸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이라도 꾼 것이겠지. 늘 배가 고팠을 테니까..." 사람들은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또 얼마나 신비한 빛에 휩싸여 동생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p. 254). 살인의 성 "아, 발가벗겨서 이 얼음 수조에 넣어줄까? 아니면 바이스로 두 발을 조여줄까? 그것도 아니면 이 벽에 산 채로 매장시켜줄까?" "여, 여보, 제발, 제발 용서해주세요..."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에 젖은 이다는 무릎을 꿇고 백작의 가운에 얼굴을 비비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비정한 백작의 마음에 그녀의 눈물은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나는 몇 번이나 말했어. 호기심이 몸을 망친다고 이 방만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당신을 죽일 생각은 하지(p. 319) 않았을 거야. 사체를 연기하는 것 정도로 용서해줄 생각이었어. 하지만 당신은 결국..." 백작은 그렇게 말하고 갑자기 벽에 붙어 있는 벨을 눌렀다. 그러자 체격이 건장한 병사가 즉시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이 여자에게 그걸 실시해라"(p.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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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9
  • 【북토크388】 성인의 시각으로 읽는 흥미로운 동화의 세계2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제2권. 이 책은 〈그림 동화〉 초판의 잔혹하고 거친 표현 방법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심층 심리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라푼첼,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의 음악대,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등 그림 형제가 동화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정말로 전하려 했던 것 또는 전하고 싶었던 것을 대담하게 재구성했다.-교보문고. 키류 미사오가 쓴 책들은 B급의 감성을 주는 흥미로운 책들이었다. 찾아 읽고 있는데 세월이 흘러 여러 책들이 절판되었다. 이 책도 절판됐다. 이 책에서는 그런 학자들의 분석과 『그림 동화』 초판, 그림 형제가 동화집을 쓰기 위해 준비했던 초고 등을 참고하면서 우리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독창적으로 '새로운 그림 동화'를 꾸며보았다. 이런 작업으로 인해 내용이 원작에서 벗어나는 점도(p. 12) 있을지 모르지만, 실은 그 원작이 정말로 전하려 했던 의미에 더욱 다가간다는, 모순된 결과를 만나는 흥미로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동화』의 간결한 문장 사이에서 우리는 '작가' 로서의 눈으로 인생과 사랑에 관한 보다 깊은 통찰력을 읽어내는 한편, 우리의 감성과 표현 방법으로 동화가 정말로 의미하는 내용(문장 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을 이끌어내고 파헤쳐서 우리들 나름대로 재미있게 표현해볼 생각이다(p. 13). 라푼첼 목욕을 끝낸 뒤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들판을 뛰어다니는 라푼첼을 바라보면서 고텔 아주머니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더없이 순진하고, 더없이 관능적이며, 더없이 청순하고, 더없이 음란스러운 완성품에 감격하면서••••••. 이 완성품을 이용해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적인 쾌락에 젖게 한 다음 미련 없이 죽여버리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p. 28). 순진한 불행, 때묻지 않은 불행•••••. 그렇다. 라푼첼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아주머니는 이런 말도 했다. "너는 한 남자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어. 그렇게 되기에는 너라는 존재가 너무 커. 앞으로도 남자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고 최고의 불행을 선사하는 거야. 남자들도 사실은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남자들이 바라는 건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적지근한 인생보다는 진정한 쾌락과 진정한 불행을 맛볼 수 있는 인생이야." 이렇게 해서 남자들을 유혹하여 살해하는 라푼첼의 방탕스런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남자들이 가면을 벗 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행위, 그리고 그런 남자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서 라푼첼은 자기 자신을 정화시켜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순결함을 확인 하는 것인지도...(p. 56). 마녀의 정체 『그림 동화』를 비롯한 서유럽의 동화에는 '마녀'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중세에 마녀재판이 있었을 때 마녀라고 해서 고발된 여자들 중에는, 마을과 같은 집단 속에서 주위 사람들과 다른 모습이나 행동을 보여 '이상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다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인상을 주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여자를 마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특수한 기능을 가진 여자나 못생긴 여자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름다운 여자도 동성의 질투에 의해 남자를 유혹하는 마녀라는 소문에 휩싸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당시는 자기들과는 다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마녀로 취급하는 시대였다. 즉 사람들의 편견이 마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p. 61). 헨젤과 그레텔 "하지만 우리 부부라도 살아남으려면 아이들을 희생 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계모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당신, 내가 시집 올 때 뭐라고 말했어요?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아이들도 착하니까 말을 잘 들을 거라고, 그러니까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기는커녕 둘이서 힘을 합쳐 반항만 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내가 굶어죽어야 하다니,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p. 70)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러니까 선택해요. 나예요, 아니면 아이들이에요? 당신은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나는 젊기 때문에 아이가 딸려 있지 않은 남자에게 얼마든지 시집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당신이 끈질기게 쫓아다녀서 그 열성을 보고 당신에게 시집 오게 된 거라구요." 아버지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로 네 식구 모두 굶어죽게 될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군.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에요.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구요."(p. 71).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와 계모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죄 많은 계모를 용서해주렴. 우리 집에는 더 이상(p. 110) 먹을 것이 없었단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는 살아야 하겠기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희들을 버렸단다." 계모가 말했다. 두 사람 다 매우 야위어 있었다. 계모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에 버린 후, 나무 뿌리와 풀을 먹으며 간신히 목숨을 유지해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설명해주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에게 쌓인 감정이 많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불쌍하다는 마음이 앞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p. 111). 뱀이 선물한 세 장의 나뭇잎 사실 공주는 결혼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결혼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왕비인 어머니가 그랬다. 어머니는 아름다운 미모를 갖추었으면서도 이렇게 작은 나라로 시집 와서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이웃 나라의 궁전에서 거행되는 파티에 초대받을 때 마다 변변한 보석이 없어서 잔뜩 위축되었고, 결혼 전에는 왕이 인자하고 위엄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다른 여자들을 집적거리는 바람둥이였다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왕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에는 꽤 아름다 운 미인이라고 생각했던 왕비가 결혼한 순간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렸고, 결혼 전에는 여자다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이후에는 자기 앞에서 입을 벌린 채 하품을 하고 방귀를 뀌는 등 눈에 거슬리는 천한 행동을 한다고 투덜거렸다. 두 사람의 불평을 들으면서 공주는 결혼 따위에 꿈이나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왕과 왕비는 공주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p. 124). "결혼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는 거야." 공주는 지혜를 짜낸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p. 125). 인어공주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게는 그 보답으로 뭘 줄 거지?' 마녀가 말했다. "뭘 드리면 되겠어요?" 인어공주가 창백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자, 그 왕자를 줘." "왕자님을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아, 물론 왕자가 너를 배신했을 경우의 이야기야. 왕자가 너를 배신할 경우, 즉시 왕자의 목숨을 거두겠다." "왕자님이 저를 배신한다고요?" 인어공주는 조용히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이건 네 능력에 달린 문제야. 왕자가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면 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왕(p.210)자도 행복하게 살겠지. 하지만 왕자가 너를 배신할 경우에는 왕자는 즉시 죽어야 돼.” "알았어요." 인어공주가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는 약속대로 할게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예요."(p. 211). 조금 더 깊이 읽기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만남 이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동화 중 하나다. 안데르센 동화집은 그림 형제보다 20여 년 늦은 1835년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림 동화』가 민화를 수집한 것이라면, 안데르센 동화집은 대부분 그가 지어낸 창작이다. 동화 작가로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은 1844년에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때에는 안데르센이 그림 형제를 찾아갔다. 당시에 이미 안데르센은 동화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그림 형제는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안데르센 동화를 읽은 그림 형제가 안데르센을 찾아갔고, 그 이후로 그들은 자주 만나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청순과 헌신의 여성상 안데르센의 동화 안에 그려진 여성상은 그의 친어머니에(p. 243) 대한 반감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고 연구가들은 말한다. 그의 동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인어공주처 럼 청순함과 헌신적인 사랑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안데르센의 어머니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결혼 전에 남편 될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으며, 안데르센의 친아버지조차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녀는 말년에 결국 알코올에 중독되어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이런 어머니에 대한 반발이 청순하고 헌신적인 여성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안데르센은 몇 명의 여성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모리 쇼지는 『안데르센 동화의 심층』에서 그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상대 여성에게 이상적인 이미지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지어낸 동화 안의 여성상을 현실에서의 이상 적인 여성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p. 244). 벌거벗은 임금님 이 나라의 임금님은 화려한 옷을 좋아했다. 다른 나라의 임금님은 사냥을 즐기거나 명화를 수집하거나 영토를 넓히거나 파티를 즐겼지만 이 나라의 임금님은 의상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을 투자했다. 화려한 의상과 유행에는 매우 민감하여 대담한 패션도 서슴지 않고 입고 다닐 정도로 멋내는 것을 좋아했다. 언젠가 두 명의 사기꾼이 이 나라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베틀로 옷을 짜는 기술자라고 소개하고서, 자기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옷은 색깔이나 무늬만 아름다울 뿐 아니라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거나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거 재미있군" 소문을 들은 임금님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 옷을 입으면 어떤 대신이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지, 어떤 관리가 바보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바보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겠어. 신하를 고용할 때에도 꽤 편리하겠고. 그래, 즉(p. 260)시 그 직공들을 불러오도록 해라." 임금님은 즉시 두 명의 사기꾼을 궁전으로 불러들여 많은 돈을 주고 옷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크게 기뻐한 두 사람은 작업실에 두 대의 베틀을 놓고 열심히 옷을 만드는 척했다. 하지만 베틀 위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임금님에게 가장 비싼 명주실을 구입할 돈을 요구했고, 그 돈을 받자마자 모두 유흥비로 탕진했다. 그리고 베틀 앞에 앉아 밤늦게 까지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을까?" 임금님은 빨리 그 옷을 입어보고 싶어 초조했다.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나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직공들의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지만, 자기는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p. 261). 행복한 왕자 다음날 아침 일찍, 시장이 시의원들과 함께 언덕 위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들이 행복한 왕자 옆을 지날 때, 누군가가 동상을 올려다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어라, 행복한 왕자가 왜 이렇게 초라해졌지." "정말 그렇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행은 동상으로 다가갔다. "칼자루에 박혀 있던 루비가 사라졌어. 눈도 없고 몸에 붙어 있던 금박도 사라져버렸어.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보석과 금박이 사라지니까 행복한 왕자가 거지 왕자로 변해버렸어." 시장의 말에 시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또 뭐야?" 시장은 왕자의 발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석과 금박이 사라진 왕자의 동상과 영양실조에(p. 319)걸려 죽은 제비의 시체라···••• 정말 묘한 조화야" 시장은 즉시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추한 동상을 계속 세워둘 수는 없어." 며칠 후 왕자의 동상을 용광로에 녹인 뒤, 그 자리에 무엇을 세워야 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 시장은 회의를 소집했다. "당연히 다른 동상을 세워야 하는데...." 시장이 말했다. "내 동상을 세우기로 합시다." "아닙니다. 내 동상을 세워야 합니다." "말도 안 돼. 내 동상을 세워야 합니다. 지난번에 철교를 건설할 때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출자했는지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요?" "이 마을이 잘살게 된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내 사업이 번성해서 세계 각지와의 교역이 가능해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시장을 비롯한 시의원들은 각자 자기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그때 주물공장에서는 공장장이 이렇게 중얼거리고(p. 320)있었다. "납으로 만들어진 심장이 용광로에 넣어도 녹지 않아. 어쩔 수 없군. 버리는 수밖에." 그는 직원을 시켜 제비의 시체가 뒹굴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 납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심장을 버리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천국에서 하나님이 천사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 두 가지를 가져 와라." 명령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는 왕자의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들고 하나님에게 돌아갔다. "그래, 정말 잘 선택했다."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사를 칭찬해주었다. "이 제비는 천국의 마당에서 영원히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해주고, 행복한 왕자는 황금의 거리에서 영원히 나를 찬양할 수 있도록 해주어라."(p. 321). 조금 더 깊이 읽기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 작가 이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가 쓴 두 권의 동화집 중 하나인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는, 그의 동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명작이다. 이 동화집에는 또한 「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제멋대로인 남자」 「충실한 친구」 「멋진 로켓」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1854년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저명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작가로서 자유분방한 인생을 보낸 멋쟁이 신사였던 그는 한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어울려 놀면서 동화를 읽어주는 상냥한 아버지였다. 줄 베르느의 모험 이야기, 스티븐슨의 『보물섬』, 키플링의 『정글 북』 등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한편, 직접 지은 동화도 자주 읽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p. 322).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4-29
  • 【북토크387】 성인의 시각으로 읽는 흥미로운 동화의 세계1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림동화 신드롬'의 진원지.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읽혀져 온 그림동화. 그러나 세기말을 맞아 일본에서는 원래 그림동화가 갖고 있던 공포와 잔혹성 등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붐을 조성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키류 마사오는 13편의 동화를 통해 금단의 세계에 철저하게 감춰져 있던 그림동화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그림형제들의 초판 원고와 학자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상상력을 덧붙여 전혀 새로운 그림동화를 복원시켜 놓았다. 사랑을 둘러싼 백설공주와 친 어머니와의 질투,남자를 향한 복수심의 희생양 라푼첸 등 새롭게 공개되는 진정한 그림동화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잔혹성 개방성이 등이 삭제된 오늘날의 [그림동화]문제의 베스트셀러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그림동화의 '진실'을 밝혀 그림동화의 원형을 복원해 놓고 있다. [그림동화]는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형제가 1812년 출판한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집이]이 시초다. 중산계급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예날 이야기를 그림형제가 기록한 것으로 그림형제의 창작은 아니다. 결국 그림형제는 임신이나 근친상간 등 성적인 부분과 잔혹성 등을 철저히 삭제해 오늘날의 [그림동화]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은이 키류 미사오는 두 여성작가의 펜네임. 한사람은 파리대학의 소르본느대학에, 한사람은 리용대학에 유학했는데 프랑스문학과 역사를 전공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공동집필을 시작해 르네상스기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역사 속의 인물을 다룬 작품을 비롯하여 역사를 통하여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차례로 발표, 호평을 얻었다.-교보문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하는 흥미를 갖고 읽었는데, 절판됐고 성인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여, 『그림 동화』 초판의 잔혹하고 거친 표현 방법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심층 심리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철저하게 파헤쳐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생생한 『그림 동화』를 나름대로 엮어보았다. 시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12세기에서 18세기 정도의 전근대 사회로 설정하고, 무대는 유럽의 어느 왕국으로 설정해보았다. 우리는 그림 형제가 동화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정말로 전하려 했던 것 또는 전하고 싶었던 것을 대담하게 재구성했다. "뭐야, 이게 이런 뜻이었나?" "그래, 여기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구나!" 이런 식으로 독자들이 『그림 동화』의 뜻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족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그림 동화』의 잔혹하고 뜻 깊은 세계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란다. 키류 미사오(p. 14). 백설공주 백설공주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무런 탈 없이 잘 자랐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왕비를 닮은 미모를 갖추었다. 왕비는 그런 공주가 자랑거리였다. 사람들이 공주의 아름다움을 칭찬할 때마다 자기가 칭찬받는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공주를 바라보는 왕의 눈이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처럼 이상하게 느껴졌다. 공주의 드레스 위로 드러난 새하얀 피부를 바라볼 때, 스커트 아래의 맨발을 바라볼 때, 왕의 눈에 욕망의 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일찍이 근친상간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특이(p. 25)한 행위가 아니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도 동생과 결혼했고, 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 프란체스코 첸치도 미모의 딸을 방에 가두어두고 강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왕비는 우연히 공주의 침실로 들어가는 왕의 모습을 발견했고, 열쇠구멍을 통해 그들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왕은 거의 매일 밤 공주의 침실을 드나들었다. 당연히 왕비의 방에는 발걸음이 끊어졌다. 예전처럼 다시 고독에 빠진 왕비는 딸에 대한 연민과 질투 사이에서 고민했다. 사랑하는 딸의 육체가 남편의 짐승 같은 욕망에 더럽혀진다는 연민과 남편의 애무에 신음 소리를 내뱉는 여자가 딸이 아닌 자기이기를 바라는 질투...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를 아는 여자......'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까지 사랑스럽기만 했던 딸이 갑자기 불결한 동물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백옥처럼 아름다웠던 매끄러운 피부가 갑자기 손도 대기 싫은 더러운 것으로 느껴졌다. "복장이 그게 뭐니? 몸을 훤히 드러내고" 언제부터인가 왕비는 공주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p. 26)늘어놓기 시작했다. "몸가짐을 조심해야지. 너는 이 나라의 공주야" 몸매를 강조하는 드레스를 입거나 부드러운 비단양말을 신고 기뻐하는 공주를 바라보면서 왕비는 인상을 찡그리며 꾸짖었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어머니에게 순종만 했던 공주가 갑자기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엄마는 보는 눈이 없어요. 엄마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시녀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구요. 지금 파리에서 어떤 옷이 유행하고 있는지 아세요? 왕족이나 귀부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까지도 이런 스타일로 거리를 돌아다닌다구요." 도톰한 입술을 움직이며 깜찍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공주의 얼굴이 전에는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얄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공주는 빠르게 변해갔다. 공주의 몸에서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낸 여자들 특유의 불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공주의 몸이 남자의 애무에 익숙해짐에 따라 점차 사랑의 기술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왕비는 분명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p. 27). 언제부터인가 공주는 번갈아가며 난쟁이들의 잠자리 상대도 하게 되었다. 보통 소녀라면 당연히 싫어할 메마른 피부와 짙은 노인 냄새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백설공주는 특별히 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날도 공주는 난쟁이와 잠자리를 함께했는데, 그의 껄끄러운 수염이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던 것이다. 첫날밤은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 겉옷이 벗겨지고 속옷이 벗겨질 때도, 거친 아버지의 손에 가슴과 하복부를 내맡겼을 때도 백설공주는 말없이 떨고만 있었다. "싫어요, 아빠. 그만 해요." 보통 때라면 이렇게 말했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두렵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p. 43). 관을 성까지 갖고 온 왕자는 일반적인 상식의 궤도를 벗어난 행동을 보였다. 왕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관 옆에만 붙어 있었다. 외출할 때에는 시종들이 관을 짊어지고 왕자의 뒤를 따랐다. 그것도 불가능할 때에는 아무도 관에 손을 대지 못 하도록 방에 자물쇠를 걸고 외출했다. 그러나 외출을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도 관 옆에서 했다. 사실 왕자는 병적인 시체 애호가였다. 그는 살아 있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었다(p. 59). 왕비의 그 애절한 모습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기분이 우울해진 왕자는 공주에게 용서해주자고 말했지만, 공주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왕비를 고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즉시 쇠구두가 숯불 위에 올려졌다. 잠시 후 집행관이 두 개의 부젓가락으로 쇠구두를 집어들고 왕비 앞으로 다가갔다. 왕비가 울면서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왕비의 발에는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구두가 강제로 신겨졌다. 쇠구두는 중세 유럽에서 마녀를 고문할 때 자주 사용하던 도구였다. 죄수에게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구두를 신기고 해머로 그 구두를 찌그러트리는 지옥 같은 처참한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특히 16세기 말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이 기구를 이용해서 마녀사냥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왕비는 마치 춤(p. 66)을 추듯 정신없이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친 듯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백설공주는 테이블 위에 진열된 음식을 먹으며 불에 달구어진 쇠구두를 신고 정신없이 뛰는 어머니를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p. 67). 유럽 각국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내려온 「백설공주」류의 이야기 중에는, 백설공주가 아버지인 왕의 유혹에 넘어갔다거나 왕이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칭찬했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금이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암시하는 아름다운 딸과 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감추어져 있다. 어머니로서의 왕비는 그런 부녀 관계를 걱정하고 딸의 몸을 지켜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딸을 떼어놓기 위해 딸을 숲 속으로 쫓아낼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모리 요시노부는 『메르헨의 심층』에서 이런 의문을 제시했다. "왕비는 정말로 백설공주를 살해하려 했던 것일까?" 즉 백설공주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서 격리되었다는 원한 때문에 "계모에게 버림받고 하마터면 해당할 뻔했다"라고 호소했고, 그 말을 들은 난쟁이들이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겠(p. 70)느냐라는 것이다. 또한 왕비가 난쟁이들의 집으로 백설공주를 찾아간 것은 그녀를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녀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하기 위해서였고 딸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백설공주는 왕비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어머니가 가슴끈을 너무 강하게 조였다면서 소동을 피우고 머리카락을 빗기다가 피부에 약간의 상처를 낸 것 때문에 기절하는 식으로 허풍을 떤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까지 제시했다. 한편, 왕비가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는 내용은 초판과 그 이후의 판에 모두 등장한다. 『그림 동화』에는 나쁜 역할을 맡은 사람이 마지막에 잔혹한 형벌에 처해지는 내용이 많은데, 이런 형벌은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로서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시체 애호가인 왕자 처음에 기록된 1808년의 메모를 보면 공주가 들어 있는 유리관을 발견한 사람은 왕자가 아닌 왕자의 아버지, 즉 국왕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왕자로 바뀌었고, 그것에 의해 왕자는 시체 애호가라는 특성을 띠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미녀의 시체에게 한눈에 반해서 자기의 성으(p. 71)로 유리관을 운반하게 한 왕자의 행동에 대하여 모리 요시노부는 '궤도를 이탈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말 한 번 나누어본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의 시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식사조차도 그 옆에서 했다는 왕자의 행동은 뭔가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한편, 왕자가 가는 곳마다 늘 관을 짊어지고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난 시종이 백설공주를 일으켜세워 등을 때리자 독이 발라져 있는 사과 조각이 튀어나와 공주가 살아난다는 원전은 그 이후에 몇 번이나 고쳐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p. 72). 신데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에서 왕자와 신데렐라의 결혼식이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계모와 언니들은 너무 분해서 견딜 수 없었지만 아무리 땅을 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신데렐라에게 좀더 잘해주었어야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신데렐라의 비위를 맞추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야 했다. 세 사람은 후회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하지만 체면 따위는 전혀 모르는 세 여자는 신데렐라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신데렐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바보이니까 어쩌면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뭔가 선물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간 순간 세 마리의 새가 날아와 그들을 향해 덤벼들더니 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먹이를 주던 새들이었다. 세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새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눈알을 파내버렸다. 결국 세(p. 118) 사람은 평생 맹인으로 살게 되었다(p. 119).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왕은 우선 나라 안의 모든 베틀과 북을 남김없이 불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북은 누에고치나 마에서 실을 뽑는 베틀에 딸린 도구로, 그 길이가 20~30센티미터인 가늘고 긴 막대이 다. 양 끝이 가늘고, 한가운데에 실을 감는 뭉치인 꾸리라는 것이 들어 있으며, 위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입구에는 꾸리가 솟아나오지 못하도록 눌러놓는 역할을 하는 대나무로 만든 북바늘이 걸쳐져 있다. 이것으로 씨실을 풀어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꾸리가 물레에서 뽑아낸 실을 감는다. 일찍이 유럽의 여자들은 철이 들 무렵이 되면 베틀을 이용해서 실을 뽑는 일을 배웠다. 남자는 사냥을 나가거나 가축을 돌보는 한편 전쟁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그럴 경우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실을 뽑아 옷을 만드는 것이 여자들의 하루 일과였다. 중세 당시, 철들 무렵의 여자들은 긴 겨울밤이면 공동으로 베를 짜는 방에 모여 열심히 실을 뽑았다. 여자들이 모여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모습은 남자들에게(p. 212) 뭔가 비밀스런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젊은 남자들은 뭔가 구실을 만들어 베 짜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가씨들에게 수작을 걸었다. 밤이 이슥해져서 나이 든 여자들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면 청년들과 아가씨들의 억제되어 있던 성욕이 밀실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서서히 해방되었다. 즉 베를 짜는 방은 음란한 만남의 장소였다. 이런 습관 때문에 '북'은 뭔가 성적인 내용과 연결되었고, 그 모양 때문에 '남근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그것에 찔리는 행위는 처녀 상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왕비는 고민했다. '내가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갓 태어난 공주는 그 죄의 씨앗이 아닐까? 공주도 언젠가 나와 같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부디 공주만큼은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공주만큼은 자기처럼 음란한 죄를 짓지 않기를, 그리고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 전까지는 순결한 처녀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왕은 전국에 베틀과 북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결국 베 짜는 방에서의 추잡한 행위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p. 213). 조금 더 깊이 읽기 그림의 잔혹한 이야기 『그림 동화』에는 이처럼 잔혹한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전처의 자식을 죽여 수프를 만들어서 시치미를 떼고 식탁에 올려놓는 계모나, 아무리 그 사실을 모른다 해도 '맛있다'는 표현을 하며 그 수프를 먹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밖에 「아이들이 살인놀이를 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원전에 수록되어 있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는 이렇다. 아이들이 각각 정육점 주인, 요리사, 보조 요리사, 돼지의 역할을 맡고, 정육점 주인 역을 맡은 아이가 돼지 역을 맡은 아이의 목을 칼로 찔러 그 피를 보조 요리사 역을 맡은 아이 에게 받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돼지를 죽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아이가 정육점 주인 역을 맡고 동생에게는 돼지 역을 맡겨 동생의 목을 칼로 찌른다. 깜짝 놀라 달려온 어머니가 그 칼을 빼앗아 큰 아이의 심장을 찌른 다음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p. 277). 일을 마치고 돌아와 참상을 본 아버지는 슬픔에 잠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초판 이후에 삭제되었다. 그러나 상당한 손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장면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도적의 사위」라는 이야기에서는 도적 일당이 납치한 아가씨의 옷을 벗겨 테이블에 올려놓고 몸을 잘게 토막내어 소금을 뿌린다. 당시에 『그림 동화』에 문제가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던 비평가들도 잔혹한 장면에 대해서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그림이 살던 시대에는 이런 잔혹성이 허용되었던 것이다(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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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9
  • 【북토크386】 들을만한 한 노교수의 통찰
    사회생물학자로서 책과 강연, 칼럼 등을 통해 환경·생태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현안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화두를 끊임없이 제시해 온 최재천 교수가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즉,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불안한 이들에게 최재천 교수가 전하는 ‘희망 수업’인 것이다. 《최재천의 희망 수업》은 총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을 관찰하는 것이 주특기라는 최재천 교수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회를 오랜 세월 관찰하면서 얻은 통찰과 끊임없이 방황하며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고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통섭, 공부, 독서, 글쓰기, 소통, 진로, 생태적 삶 등 다양한 삶의 주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교보문고. 내가 좋아하는 최재천 교수가 쓴 책이라 기대하며 읽었다. 평이하나 유익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어볼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저는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consilience(통섭)를 ‘jumping together(함께 솟구친다)’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분야 간 소통을 이끌어내어 함께 승화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에서 홀로 통섭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빈치가 아니라면 우리는 함께 통섭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공부를 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에게 배우며 통섭을 이뤄 내야 합니다. 그 방법론으로 저는 숙론을 제안합니다. 깊이 생각하며 얘기해 봅시다. 이제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에 K만 붙이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함께 모여 앉아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며 합의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부러(p. 12)울 게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주제들은 숙론의 화제로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숙론하는 모둠들이 이 땅 곳곳에서 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그곳에서는 가지 않은 미래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의 살롱들처럼(p. 13). 직업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아실 텐데 예전에는 전화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처음 전화가 보급되었을 때는 전화를 건다고 바로 상대방이 받는 게 아니었어요. 전화국에서 전화 교환원들이 회선을 뽑아 상대방 쪽에 꽂아주어야 연결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에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직업이 사라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현실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할 일이 없어지면 일을 만드는 게 우리 인간이거든요(p. 27). 영어 단어 중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단어가 있습니다. 인텔리전스(intelligence)와 인텔렉트(intellect). 우리말로 인텔리전스는 지능, 인텔렉트는 지성이라고 번역하면 어떨까 합니다. 지능은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뇌의 과정입니다.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정의 될 수 있지요. 하지만 지성은 보다 깊은 통찰과 판단 능(p. 35)력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황에 상관없이 정답을 찾아내지만, 지성인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죠. 뻔히 알면서 일부러 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길 방법을 다 보고 있으면서도 '쟤한테는 져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져주는 겁니다. 인간은 이렇듯 머리로 계산해 낸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능뿐 아니라 지성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 이지요. 자기 이득만 챙기는 게 아니라 모자라 보일 정도로 다 른 사람을 배려하고 헌신하는 분들에게 우리는 참 좋은 분이라 하고 존경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분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누군가 나서서 돕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의 아주 특징적인 행동입니다. 혼자 사는 동물은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함 께 사는 동물에게는 평판, 즉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나마 조심조심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AI를 인공지능이라고 번역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p. 36)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공지성'이 되면 그때는 저도 걱정을 시작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p. 37). 저는 우리 한국인이 '통섭'을 세계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빔밥은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음식이지만 외국인들은 보고서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많은 채소를 한 번에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이 서양 에는 없습니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인데 넣고 슥슥 비비면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이 납니다. 서양인들은 큰 접시에 음식이 이것저것 담겨 있는 상태로 먹지만, 우리는 식탁 위에 밥, 국, 반찬 등 여러 음식을 두고 먹습니다. 그래서 먹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뇌를 씁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고민에 빠집니다. 다음에는 뭘 먹어야 맛이 조화로울까 하면서요. 섞는 것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p. 57). 그렇다면 세계를 상대로 쌓아야 하는 스펙은 무엇일까요? 기초학문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만 잘 닦아놓으면 언제든 새로운 전문 분야에(p. 59) 뛰어들어 공부할 준비가 갖춰지는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학생들은 앞으로 대여섯 번, 많게는 열 번까지 직업을 바꾸게 될 거라고 합니 다. 조만간 정년퇴직 제도도 없어질 것입니다. 몇 년 후 면 일하는 사람보다 퇴직하고 집에 있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는 한 나라의 경제가 유지될 수 없겠지요. 정년이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고, 여러분은 아마 평생 일하게 될 것입니다. 30세에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100세까지 70년 동안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처음 들어간 대기업에서 70년간 굳세게 버틸 수 있을까요? 임원이 되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50대 초반에 쫓겨납니다. 그러면 다음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라고는 대학에서 한 경영학 공부가 전부입니다. 경영학만큼 변화가 빠른 학문도 없습니다. 대학 때 배운 경영 이론은 이미 구닥다리가 되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것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수학의 기초를 확실히 다진 사람만이 일고여덟 번의 직업을 운 좋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능력을 뭐라고 하지요?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p. 60)능력, 한자어로 수학 능력, 준말로 수능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이 수학 능력 시험이지요?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요?(p. 61). 어디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노벨화학상 수상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객석에 앉아 있는데 그분이 강연하러 나오시다 말고 그랜드 피아노를 가리키면서 옮겨달라고 손짓을 하는 겁니다. 강연자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랜드 피아노를 무대 구석으로 밀어놓았 는데, 그걸 쳐볼 수 있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올라가서 피아노를 무대 가운데로 옮겼습니다. 당연히 준비된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분이 피아노 앞에 앉아서 3분 정도 연주하는데, 얼마나 연주 실력이 뛰어난지 모두 깜짝 놀랐어요. 전문 콘서트 피아니스트 같았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감(p. 69)동에 젖어 있는데, 그분이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더니 수줍게 하시는 말씀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실력이 안 돼서 할수 없이 화학을 했어요" 할 수 없이 화학을 해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러니 그날 강의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다가왔겠어요. 강의가 다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는데, 어떤 학생이 손을 들더니 뻔히 예상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화학과 학생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수님처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판에 박힌 듯한 질문에 대한 그분의 답변이 너무 뜻밖 이었습니다. “화학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내 연구실의 조교가 될거다. 그렇지만 나처럼 피아노도 좀 치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말인즉슨 화학만 죽어라 하면 상상력의 폭이 별로 넓지 않고 테크닉만 가지고 있어서 상상력과 창의력 있는 어떤 교수님의 조교로 그분의 연구를 열심히 뒷(p. 70)바라지하는 성실한 화학자가 될지언정 노벨상은 못 받을 거고, 허구한 날 잡생각 많이 하고 여러 가지를 해보는 그런 사람이라야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딴짓하며 이렇게 살아야지' 했는데, 그렇게 살아온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게 지금 제 인생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p. 71). 이혜정 교수의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보면, 서울대생의 인터뷰 내용이 나옵니다. 4.3 만점에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의 비결을 물었더니, 학생들은 한결같이 "교수님의 이야기를 토씨까지 그대로 답으로 내놓았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창의적인 인재인가?'라는 질문에는 모두가 자신을 '성실한 인재'라고 말했답니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지는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년 후, 30년 후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교육을 완벽하게 뜯어고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p. 90).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책 읽는 게 취미라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 없겠지요. 우여 곡절 끝에 책 한 권을 뗐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안 남는 경우도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기왕에 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읽고 세 권째 읽을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새로운 분야의 두툼한 책을 끼고 몇 번 씨름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잘 모르는 또 다른 분야의 책을 붙들어도 읽힙니다. 이건 제가 경험한 사람으로서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전에 읽었던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를 공략하는 데에도 전에 했던 독서가 묘하게 힘이 됩니다(p. 117). 직업을 대여섯 번, 많게는 일고여덟 번 바꿔야 하는 요즘 세대에게 독서만큼 스마트한 전략은 없습니다. 독서를 통해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 분야와 관련된 직업이 내 눈앞에 닥쳤을 때 겁이 덜 납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겨 덤비게 될 겁니다(p. 122).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는 취미로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획해서 책과 씨름하는 게 독서입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느니 나가 노는 게 낫습니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빡세게 읽어야 4차(p. 127) 산업혁명 시대에, 또 백세 시대에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한 가지만 알아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다음 장에서는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런데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저는 책은 안 읽는데 글은 잘 써요" 저는 그 말 믿지 않습니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죠. 코끼리 똥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엄청난 양에 놀랍니 다. 원체 많이 먹으니까 똥도 많이 싸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잘 쓰고 많이 씁니다. 많이 읽은 사람의 글이 훨씬 풍성하고 질적으로도 우수 합니다(p. 128).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 작가로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했던 강연 제목이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한다'였습니다. 과학자뿐이 아닙니다. 제가 살아보니, 이 세상 모든 일은 글쓰기로 판가름이 나더라고요. 이건 어떤 직업도 예외 가 없습니다. 저처럼 대학교수나 어떤 분야의 연구자가 된다면 끊임 없이 논문을 써야 합니다. 논문을 쓴다는 게 곧 글쓰기잖아요. 언뜻 생각하면 데이터만 좋으면, 기가 막힌 발견만 하면 논문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p. 131). 앞으로 21세기에는 글재주만 가지고 기교를 부린 글 보다는 과학자나 경제학자 등 실제로 전공 공부를 한 사람들이 쓴 글에 더 많이 호응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20세기는 감성적인 코드가 통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식 경쟁의 시대이기 때문에 글 안에 지식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작가를 꿈 꾼다고 해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161). 방황은 젊음의 특권 저는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앞서 보았듯 누구보다 저 자신이 굉장히 많은 방황을 한 젊은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막상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하니 '인간은 왜 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밤이 오는 것이 싫을 정도였습니다. 할 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내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고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저에게 '연필깎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공부하라고 하면 연필 깎고 방 청소부터 했거든요. 청소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결국 공부는 한 자 도 안 하고 잠드는 날이 더 많았지요. 그랬던 제가 공부(p. 234)가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15년을 그렇게 달리니까 상대적으로 늦게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웬만큼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충분히 방황하기 바랍니다. 하지만 여기서 '방황'은 방탕과 다릅니다. 그러니 절대 방탕은 하지 말고 방황하십시오. '아름다운 방황' 말입니다. 저처럼 봉두완 씨도 찾아가고, 여러 선생님을 찾아가 보십시오. 저는 심지어 사회운동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회운동 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시인을 찾아가 "제가 시인이 되면 강릉에 돌아가 개울물에 들어갔다가 시나 몇 줄 쓰고 그러면서 평생 살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도 했습니다. 한때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볼까 했던 적도 있고, 조각가가 되고 싶어 좋아하는 작가들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요. 외교관이 되고 싶어 주한 외국인 대사를 종일 따라다닌 적도 있고, 종교에 귀의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평생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막 두드려 보았습니다. 그것은 방탕이 아니라 방황이었습니다. 여 러분도 마음껏 방황하십시오.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p. 235)한 매 순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단 한 순간도 이것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악착같이 찾는 아름다운 방황을 하기 바랍니다. 그러한 방황의 끝에서 드디어 꿈의 끈을 잡으면 그것을 꽉 쥐고 앞만 보고 달리면 됩니다. 과학 하면 돈 못 번 다던데, 고급 차 못 탄다던데 하는 사람은 고급 차 타는 학문을 하면 됩니다. 돈이 어디로 굴러가나 하는 것을 공부해서 돈 벌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돈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돈을 좇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별로 부자는 아닙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이 의과대학에 지원했던 친구들을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좀 늦게 갔는데, 마침 의사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를 부르기에 그쪽으로 가서 앉았는데, 그날 저녁 내내 화제가 모두 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쳤냐? 너네랑 바꾸게? 툭하면 한밤중에도 뛰어나가고, 거의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하고,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쓸 시간이 없어서 부인하고 아이들이 신나(p. 236)게 쓴다면서?" 돈 쓸 줄을 몰라서 기껏해야 학생들 점심 사주고 책 사 보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번 돈은 제가 쓰고 삽니다. 돈을 벌려고 단 1분도 노력해 본 적 없지만, 한 번도 굶은 적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저절 로 돈이 들어왔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매일 같이 하면서 굶어 죽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에 과감하게 뛰어드십시오. 뛰어들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능력에 따라서 빨리 이루는 사람이 있고, 저처럼 좀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 걸려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늘 행복합니다(p. 237).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한테 주어진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다 보면, 거기서 다른 것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걸로 연결돼서 언젠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 아버지가 집에 가져다 두신 《동아백과사전》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지요? 지난 삶을 돌아보니 학자로서의 삶이, 독서인으로서 글과 함께한 제 삶이 백과사전으로 시작해서 백과사전으로 끝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p. 256). 왜 기우제가 반드시 성공하는 줄 아십니까? 비가 올 때까지 하니까 언젠가는 성공하는 겁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도 여러 번 큰 실패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덤비니까 끝내 성공한 겁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무지무지 열심히 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사실 통섭형 인재라는 것도 별것 아닌지 모릅니다. 다양한 분야를 열심히 해보는 사람이 통섭형 인재니까요. 주어진 길 하나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통섭형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카소처럼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이 고요(p. 260). 동물을 관찰하는 게 저의 일인데요.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회를 오랜 세월 관찰해 오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무지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먹고삽니다. 그러니 경제적인 것 때문에 지레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 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그 분야가 별로 잘나가는 분야가 아니라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하고 그럭저럭 살 겁니다. 하지만 돈을 좀 더 벌어보겠다고 하고 싶지 않은(p. 262)일 하면서 인생을 날리는 것보다는 적당히 먹고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요? 어느 줄에 설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p. 263). 동물은 상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번식을 시작합니다. 출생률 올린답시고 애 낳으면 얼마 주겠다, 아이 셋 낳으면 군 면제해 주겠다고 막 쑤셔대는 게 답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출생률에다 코를 박고 전략을 세우다 보면 될 일도 안 돼요. 저출생은 무척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웬만한 문제들은 여기 다 결부되어 있어요.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일을 차근차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리 결혼 하고 싶은 그런 사회가 되면 애 낳으라고 하지 않아도 저 절로 좋아질 것입니다(p. 274).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을 다 뒤져보면 손을 잡지 않고 살아남은 동식물은 없습니다. 꽃과 벌, 개미와 진딧물, 과일과 먼 곳에 가서 그 씨를 배설해 주는 동물처럼 살아(p. 322)남은 모든 생물들은 짝이 있습니다. 손을 잡고 있습니다. 자연계의 가장 위대한 성공이 손잡은 것인데, 왜 우리는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며 무조건 남을 어떻게든 해치고 갈아엎어야 내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자연계에서는 인간을 비롯하여 많은 동식물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삽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사는 생물종을 합치면 모두 5천 종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먹고 사는 놈들이 1천 종 정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기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6천 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동식물들이 우리와 공생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차별적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공생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닐까요?(p. 323). 우리는 평소에 서로 손잡고 일합니다. 열심히 돕고 같이 삽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마음속으로는 내가 과장이 되고 싶은 거죠. 내가 가장 성공하고 싶은 거죠. 끝까지 돕기보다는 도울 만큼 도우면서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그러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인생 또한 경쟁과 협력을 어떻게 잘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혼자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겁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 지나치게 경쟁만 강조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개인은 잠시 성공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국가는 경쟁력을 잃게 될 겁니다. 특히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가 성적을 제일 잘 받아야 하고 내가 제일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건 맞는 얘기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이 함께 성공해야 결국은 나도 성공한다는 것을 생각하(p. 328)면서, 서로 손을 잡고 가는 방법을 이제부터라도 터득하면 좋겠습니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백인 교사가 인디언 보호구역의 학교에 부임했습니다. "오늘은 시험 보는 날이다"라고 했더니 인디언 아이들이 전부 같이 모여 앉더라는 거예요. "야, 이 녀석들아. 시험 보는 날이야. 다 떨어져 앉아? 그랬더니 아이들이 전부 "어, 아닌데요?"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시험인데 서로 보고 쓰는 놈이 어딨어. 다 떨어져 앉아"라고 하자 인디언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는 함께 풀라고 배웠는데요?"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사회에 나오면 혼자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함께 일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대학 과정까지 무조건 혼자 성적을 받게끔 가르쳐야 하는 겁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상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벌써 십몇 년 동안 시험을 보지 않고 항상 함께 일해서 같이(p. 329) 점수를 잘 받게 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코아피티션, 경쟁적 협력에 맞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함께 꾸려나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p. 330). 문명의 전환이 아닌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할 때 세계적인 석학들은 지금 인류 문명이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우리 인간이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생태적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20여 년 전부터 학계에 이런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인간의 학명이 현명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데 이걸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로 바꾸자고 말입니다. 호모 심비우스는 제가 하버드대 고전학과 캐슬린 콜먼(Kathleen M. Coleman) 교수의 도움으 로 만든 인간의 새로운 학명입니다. 과거 호모라는 속에는 하빌리스, 에렉투스 등 많은 종이 있었지만 모두 멸종하고 단 한 종만 남았습니다. 자연계에서 한 속에 한 종만 남은 경우는 거의 없습(p. 371)니다. 한마디로 인간처럼 배타적인 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다 밀어내고 혼자 살아남아서 호모 사피엔스, 현명한 인간이라고 자화자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자연계에서 두뇌가 제일 뛰어난 동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별로 현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 현명한 인간이라면 삶의 터전인 환경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렸을까요? 미세먼지가 많은 나쁜 공기를 마시고, 수돗물을 못 믿어서 애써 돈 내고 생수를 따로 사 먹잖아요. 주변을 다 망가뜨려 놓고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떠드는 동물이 대체 뭐가 현명하다는 겁니까? 이번 세기가 지나기 전에 우리 인간은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끼리도, 같은 종 내에서도, 다른 종과도 공생하는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계에서 우리를 죽일 만한 것들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적은 바로 인간입니다. 이 흐름을 깨려면 자연이 공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p. 372)야 합니다. 저는 요즘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자주 합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우리 각자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불편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 심각한 지구의 환경 위기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제가 최근에 손녀를 얻었는데, 그 손녀를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고 "미안하다, 잘 있어라" 하고서 저는 떠날 것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도 우리는 끝까지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면 됩니다. 저는 제법 여러 가지를 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늘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왕복 7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13년 째 걷고 있습니다. 칠십 평생 지금 가장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제 가방에는 언제나 접는 장바구니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가게에서 비닐봉투를 안 받으(p. 373)려고 노력합니다. 나 혼자서 이런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제인 구달 박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데, 단 하루도 어느 한 사람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는 날이 없습니다. 내가 하고, 여러분이 하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이게 다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물론 기성세대가 저지른 죄의 그림자가 이미 너무 길게 드리워져 있어서, 지금 우리 모두가 대오각성 한다 해도 수십 년은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 라는 옛사람들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p.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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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9
  • 【양대식 목사 칼럼15】 강한 사람을 다루는 비밀
    강한 사람을 다루는 비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지혜가 리더십입니다.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다루려면 내가 더 강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강해야 한다는 의미는 사나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외유내강입니다. 약하면 쓰러지고 실패합니다. 실패하면 비참합니다. 마귀의 역사가 강한데, 기도 많이 하고 능력 받아 마귀보다 더 강해야 마귀를 이기게 됩니다. 강하고 억세다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두려워 떨면 상대가 영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담대히 해야 할 말을 하고,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세게 말하면 나는 더 세게 말해야 합니다. 사람은 강자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목소리가 센 자가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면서 때로는 강합니다. 하나님의 강함 앞에 사탄은 굴복하게 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의 연단, 훈련, 고난을 통해 강해집니다. 겸손해야 하나, 때로는 강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온유하면서 때로는 강했습니다. 십자가에 끝까지 못 박히신 예수님은 약함이 아니고 강함이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어 쫓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한 것은 예수님의 강함입니다. 믿음은 약함이 아니고 강함입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고백은 에스더의 강한 여성의 리더십입니다. 마음과 의지가 강해야 합니다. 누가 무슨 심한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고 더 강하게 대처하는 것이 강함입니다. 나라도 약한 나라, 가난하고 후진국이 강한 나라, 선진국에게 절하고 구걸하게 됩니다. 대인관계도 때로는 강해야 합니다. 강해야 부탁도 할 수 있습니다. 면역력이 강해야 병을 예방하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소심하고, 두렵고, 마음이 약하면 무너지고 실패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강함이 문제를 예방하고, 문 제를 해결합니다. 마음이 강해야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 담대히 말하고, 지적하고, 충고하고, 요구할 것도 요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강함이요, 담대함입니다. 두려움이 크고, 비겁한 자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강해야 도전하게 됩니다. 인간은 대단해 보여도, 누구도 두려움이 있고, 고민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병들고 죽게 되는 약한 인간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강해야 합니다. 강의나 세미나, 설교할 때도 사람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한 자는 강해지고 담대해집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은 죄를 지적하며 회개하라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강한 자가 순교도 했습니다. 강함이 영성입니다. 강해야 분위기를 잡게 됩니다. 약함과 강함의 균형이 있어야 하나, 위기 때는 강해야 합니다. 사탄은 두려움을 주나, 성령님은 강하고 담대함을 줍니다. 성경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디에서 강하고 고집이 센 자가 있는데, 강한 자가 있을 때 내가 더 강해야 승리합니다. 더욱 강함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강함이 없고 약하면 우습게 여깁니다. 사탄의 유혹과 공격 앞에서 더 강해야 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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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2
  • 【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던지는 책 이야기. 종이책과 전자책, 도서관과 사서, 학교 교육, 출판계, 독립서점 등 책을 둘러싼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이야깃거리를 총망라한다.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한 선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화두가 된다-교보문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책과 도서관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열린 창을 내어주기에 늘 가까이 해야 한다.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 도서관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지요. 거기서는 숙연하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1초를 아까워하며 배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됩니다. 도서관의 교육적 의의는 그것이 전 부일 겁니다. 만약 도서관 서가가 '자신이 이미 읽은 책과 앞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채워져 있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자신이 세상 대부분의 일을 대충은 안다고 굳게 믿는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답답하고 정체 되고 바람이 안 통하는 곳일지,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짐작할 겁니다. 도서관에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베스트셀러만 비치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버려라. 그렇게 하면 도서관 방문자 수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지성과 인연이 없는 인간입니다(p. 31). 잠시 있다 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왠지 빨리 나오고 싶어지는 집이 있는데요. 저의 경우는 책이 없는 집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집이 깨끗해도 오래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거죠. 책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란 '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난 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창입니다. 그래서 책이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죠. 제 친구 집에 가면 대체로 그런데, 화장실에 책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화장실에 책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 습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책이 몇 권쯤 놓여 있는 것만으로 어딘가 널찍한 곳으로 나가는 느낌이(p. 59)듭니다. 넓은 곳에서 배설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므로 화장실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는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찾습니다. 집 책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앗, 앗...." 하면서 "음·····. 이것도 아니고 저 것도 아니고" 하며 책을 고릅니다. "오, 이거다!" 하고 정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돌진합니다. 책이 없으면 화장실이 좁게 느껴집니다. 책을 펼치면 왠지 해방감을 느끼고요. 책이 가진 외부 세계로의 개방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p. 60). 도서관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마도 무한이라는 개념일 겁니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유한성'을 자각하죠. 이 이상 교육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얼마큼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가, 세상을 모르는 채로 일생을 마치는가.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들 이 거대한 앎의 저장소 가운데 끄트머리 한구석밖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죠. 다만 끄트머리 한구석 이라고 해도 '내가 이 무한한 장소의 일부만큼은 닿을 수 있고 잘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무한한 장소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적'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p. 64)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삶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내 앎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관한 '유한성의 자각'이 지적 상태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이렇게 '무한한 앎을 향해 열린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고요. 저는 도서관에게서 제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거죠(p. 65). 책이란 외부로 통하는 문입니다. 책은 독자를 '지금이 아닌 시대'와 '여기가 아닌 장소'로 데려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닫힌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그 바람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책 주위로 모여듭니다. 이것이 21세기 코뮌 부활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p. 135).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이만큼이나 앎이 부족하다는 사(p. 153)실에 놀라게 됩니다. 이 놀라움이 도서관에 다니는 보람 이죠. 고대의 철인이 가르쳐 주듯이 모든 배움은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오로지 거기서밖에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큼 모르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배움으로 향합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에 관한 목록을 빼곡히 만드는 것이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 결국 배움과는 인연이 없습니다(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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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1

문화 검색결과

  • 【포토에세이】 철도길
    철길이 길게 놓여 있다. 비록 끝이 보이지는 않으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철길이 없으면 어떤 철도도 달리지 못하기에 같은 철길을 다양한 이동 수단들이 사용한다. 무궁화, 새마을 그리고 ktx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요금도, 소요 시간도 다르다. 이 철도길은 오늘 어떤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인가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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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3
  • 【포토에세이】 부추도 꽃이다
    옥상 텃밭 한 구석에 어머니께서 동네 친구분에게 얻어오신 부추가 심겨 있다. 어느 날 장독대 대형 화분에 몇 포기 옮겨 심었다. 이전에는 꽃을 심었었다. 가끔 자라난 부추를 잘라 먹었다. 그러다 그것도 시들해져서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흐느적거리는 풀같았던 줄기가 꼿꼿이 세워지고 키가 자라 끝 쪽에 뭔가 맺히더니 작은 꽃을 피웠다. 참 요물이다. 잘라 먹을 때는 풀같았는데 그냥 내버려두니 계절을 따라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운 하나의 꽃이 되더니 신기해 유심히 보는 사이 벌도 날아와 꽃을 어루만지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추꽃은 처음 봤다. 늘 집이나 식당에서 음식 부재료로 먹던 풀 같은 것이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신기하다. 도심 옥상에서 부추꽃을 보니 서울 촌놈이 행복하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통해 수정한다. 그렇게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사람도 꽃이다! 화려한 장미, 매혹적인 목련도 꽃이지만 부추도 꽃이다. 우리 모두 각자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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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7
  • 【포토에세이】 안빈낙독은 안빈낙도
    안빈낙도(安貧樂道)란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이란 말이다. 내겐 안빈낙독(安貧樂讀)이 있다.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한다”는 뜻이다. 교단 기자는 담임목사 때보다는 가난하다. 담임목사로서 보장되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도 없다. 차량 유지비도, 통신비도 모두 교회가 부담했었다. 담임 부임 때 구입했던 트라제XG를 가져와 아주 가끔 사용하고 주로 세워둔다. 기자로 취재현장을 다닐 때 대중교통이 편하고, 취재비 받아서는 차를 운영할 수 없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은 있으나 늘 책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취재가방에 언제나 책을 갖고 다닌다. 집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운전하는 것이 불편한다. 운전하느라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잠시 취재 갔다가 다음 취재까지 짬이 생겨 굳이 한 장소를 찾아 왔다. 종로쪽에 있는 저렴하고 넓직한 카페이다. 종로 쪽에 올 때 시간이 비면 와서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내게 독서 취미가 있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다행히 지금도 독서가 좋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책을 읽으면 취재 현장까지 가는 것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시간이 비어도 좋다. 책 읽고 있으면 되니까. 모두 안빈낙독의 삶을 사시기를. 엉뚱한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책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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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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