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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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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6-09
  • 【총회선거7】'내로남불’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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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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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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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8
  • 【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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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7
  • 【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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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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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362】 외국의 젊은 장의사가 생각하는 죽음
    미국의 젊은 장의사가 쓴 책이다. 미국은 장례식 때 시신을 단장해 조문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빼고 그 속에 방부제를 넣어야 한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장례법이다. 저자는 수많은 장례를 치루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후 세계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어둡고 부정적으로 그려버린다. 만약 죽음과 망자를 보고, 만지고, 잡을 능력이 있었다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p. 18). 몇 년 전에 우리 아버지는 낡은 86년형 포드 F-150의 범퍼에 "목사님이 장례식에서 거짓말하지 않게 살자!"는 스티커를 붙이셨다. 이 스티커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4,000건의 장례식을 치렀지만, 목사님이 고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신 고인이 천국에 있다는 추도 연설은 수없이 들었다. 목사님은 관대하고, 친절하고, 애정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환상적인 설교를 만들어내곤 했다. 언젠가 신을 비롯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증오했던 어느 고인에 대해서 이렇게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고인은 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밖을 좋아했어요. 밖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께서 바깥세상을 창조했으니까요. 이제 고인은 가장 넓은 바깥세상인 천국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차 범퍼에 붙여 놓았던 스티커에서처럼 목사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들은 진심으로 고인이 신의 손길을 받기를 바란다(p. 38). 죽음은 우리의 생활을 잠깐 멈추게 만든다. 그렇다고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에게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여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크로노스를 잊고 카이로스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나는 홀로 차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드디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 순간을 맞았다. 할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보고 그리울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가끔은 삶을 잠깐 멈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으로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받아들이게 된 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애도하는 안식의 시간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p. 60). 쉽게 잊히고 무시되며, 매우 단출한 논리이다. 죽음을 많이 접할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망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죽음을 더 쉽게 수용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죽음과 아주 가까웠다. 현대에는 죽음과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해서 초월하기가 어렵다(p. 95). 사실 염은 단순히 체액을 바꾸는 작업이다. 즉 고인의 몸에서 피를 완전히 뺀 다음에 방부 처리가 된 용액으로 다시(p. 152) 채우는 것이다. 손가락을 자신의 목 오른쪽에 가만히 가져다 대보자. 심장 박동에 맞추어 경동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 동맥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목을 절개하고, 경동맥을 찾을 때까지 근육과 조직 사이를 훑는다(하지만 다른 동맥을 사용하는 장의사들도 있다). 경동맥 옆에는 경정맥이 있다. 염을 할 때는 이 두 가지 혈관을 모두 들어 올려서 분리해 묶고, 각 혈관에 작은 구멍을 뚫는다. 이 과정을 굳이 비유하자면 큰 볼 속에 스파게티 면을 담고 위에 토마토소스를 뿌려서 끈끈해진 면발 바닥 어딘가에 있는 펜네 스파게티면 하나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방부 처리를 위한 염 작업에 사용되는 기계는 매우 실용적이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Dr. Who)〉에 나오는 달렉(Dalck) 로봇처럼 생긴 이 기계의 이름은 포티 보이(Porti Boy)인데, 다른 재주라거나 스타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위쪽은 용액을 담는 용기로 되어 있고, 밑쪽엔 버튼이 달려 있다. 버튼을 돌리면 염을 위한 혼합액이 경동맥과 연결되어 있는 고무 튜브를 통해서 삽입된다. 포티 보이의 압력이 용액을 혈관으로 밀어 넣으면 경정맥으로 피가 빠져나온다. 도자기로 만든 염을 위한 테이블에 진홍색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진해졌다가 연해지기를 반복하면서 피가 넘실(p. 153)대는 모습은 맑은 가을날에 해가 지는 일몰을 저속으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염 작업이 부담스럽지만, 훌륭하게 마무리된 염 작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기도 한다(p. 154). 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있고, 불임으로 고통받았다. 또 예레미야에 대한 줄리아의 사랑과 용기도 보았다. 그래서 이 아이의 생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매 순간, 아이와의 레슬링 한판, 함께 읽는 책 한 권,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 아이가 내게 하는 질문,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심지어 어려운 시간에도 감사하며, 못된 행동에도 감사한다(아이만 못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못되게 행동할 때가 있다). 아이가 성질을 부릴 때, 투정이 도가 지나칠 때도 감사한다. 삶이 얼마나 짧은지를 알고 있어서 나는 늘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은 피곤할 때, 퉁명스러워질 때, 인내심이 부족해질 때도 도움이 된다. 나는 절대 좋은 부모는 아니다. 하지만 죽음 가까이에 있고, 죽음을 알고 있어서 더 나은 부모가 된다. 아마도 삶의 고통과 상실을 알지 못(p. 246)했다면, 지금처럼 감사하고, 지금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지금처럼 현실에 충실하고, 지금처럼 예레미야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나는 죽음이 가진 선함의 덕을 본 사람이다(p. 247). 어느 장의사의 열 가지 고백 우리 집은 대대로 죽음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지만, 10년 넘게 나는 가업을 잇지 않으려고 했다. 매일 나는 슬픔과 고통, 눈물, 콧물, 그리고 그보다 덜 매력적인 체액 주변에서 살고 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가야 하고, 장례식이나 묘지를 가장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날을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고, 맨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선택한 건 아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결국 이 일을 갖게 된 데 감사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의미가 장의사라는 직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나 죽음의 의미 앞에서는 마음을 연다고 믿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삶의(p. 249) 한계를 슬퍼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는 오히려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며, 자신에게 더 진실하고, 우리 주변에 더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준다. 이 이례적인 일을 하면 할수록 죽음이 가진 의미 열 가지를 배우고 믿게 되었다. 이 책의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이 열 가지 의미를 되새기며, 죽음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이 공포가 아닌 경건함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죽음이 전혀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유산이며, 각종 뉴스를 통해 일반화된 인식이다. 사람들이 의료 기관과 전문적인 장의 시설에서 죽은 고인과 그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숨기면서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죽음을 건강하게 이해하게 될 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 죽음은 길들일 수 없다.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열 수도 있고, 마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죽음으로 마음을(p. 250) 연 사람들은 온정·이해·용서, 그 외의 여러 가지를 위한 여지를 찾는다. 마음을 열도록 노력해보자. ▲ 죽음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로 치부할 수도 없다. 죽음이 만드는 특별한 공간은 시간을 멈추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잠깐의 휴식기를 만들어준다. 죽음의 안식일을 갖게 하고, 삶을 반추하고, 생각하고, 돌아보게 한다. ▲ 천국이나 사후 세계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이곳에서의 가치나 죽음의 가치를 축소하고, 무시하게 된다. 이곳 지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이곳의 장점과 죽음이 가진 장점도 찾게 된다. 죽음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고, 감사하게 만든다. ▲ 죽음은 목소리가 없다. 죽음의 침묵을 받아들이면, 죽음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침묵을 받아들이자. 침묵을 채워야 할 필요는 없다 ▲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p. 251)도록 만든다. 긍정적인 인식은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준다. 배우고, 성장하고, 극복하면서, 타인과 나 자신에게 인내심을 갖도록 하자. ▲ 가끔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경험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한다. 죽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는 에덴동산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공동체에 의지하고, 그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죽음은 거대한 우주와 같아서,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 간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모일 기회를 제공한다. 죽음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타인에 대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 ▲ 능동적으로 고인을 기억하다 보면 슬픔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또 삶 속에 사랑했던 고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열심히 기억하자. 고인이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p. 252) 것을 기억하자. ▲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죽음을 수용하고, 죽음을 더 가까이하고, 죽음을 제대로 바라볼 때,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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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북토크361】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
    출판사에서 아마도 책 판매를 위해 “도망친” “철없는”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쓴 것 같다. 이들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워 해외살이를 하러 간 것이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결혼했는데 무슨 철이 없는가? 오히려 모험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3개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기록한 책을 흥미롭게 봤다. 자기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으니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통장에 여유가 조금 생기니 마음의 여유도 조금 더 생겼다. 결혼 후 바로 여행을 못 간다고 징징대며 세상 탓을 했었는데, 2년 동안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보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현실감각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만약 그때 재테크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더라면, 비상 대책이 되어줄 그 무엇도 준비해놓지 않고 그대로 자동차 세계여행을 갔더라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돈이 문제가 되어 결국 6개월도 못 버티고 돌아 왔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아일랜드도 호주도,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가보지 못한 채 한국에 취업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코로나바이러스로 숨죽였던 2년이라는 기간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의 세계 모험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해준 기회가 되었다(p. 31).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부모님과의 갈등이 한창일 때 나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었다. '가진 것을 놓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그 두려움 보단 우리에게 들어올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새로운 공기,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상을 보며 우리의 세계를 알록달록한 경험으로 겹겹이 쌓아가자.' 당연한 말이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우리는 우리가(p. 80)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리스크가 높은 삶을 선택했고,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처음에도 그랬 고,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이럴 것이다. 해외에서는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불안, 남들처럼 살지 않고 방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불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시간이 지나니 점차 익숙해졌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자유에 대한 책임'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을 감당하는 마음이 더욱 단단해지길.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든 무사히 넘기기를 바랄 뿐이다(p. 81). "비자 나왔어! 이제 우리 돌아갈 수 있어!" 한국에 돌아온 지 2주 반 만에 말레이시아 비자가 나온 것이다. 진행상태가 30%에서 꿈쩍도 안 하기에, 크리스마스와 연말까지 한국에서 보낼 각오를 했었는데, 갑자기 80%까지 훌쩍 뛰다니. 나머지 20%는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뒤 해결해야 하는 거라 우리는 80%의 비자를 가지고, 다시 페낭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호화로웠던 제주에서의 7박 8일을 끝내고, 우리는 겨우 다시 페낭으로,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p. 195). 무비자로 들어와 다시 한국에 다녀와야 했던 비용 100만 원, 우린 그것을 '멍청비용 100만 원'이라고 부른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페낭에서 호찌민으로, 호찌민에서 한국 부모님 댁으로 또 제주도로 갈 때의 우리는 그 심정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외국인이 해외에 살 때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비자이다. 우리는 이미 아일랜드에서 비자의 무서움을 겪어봤지만, 호주에서 너무 쉽게 비자를 얻어서인지, 가까운 나라이니 쉽게 줄 것이라고 생각한 오만함 때문인지 아무튼 말레이시아 비자를 얕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한국으로 쫓겨나서야 다시금 깨달은 비자의 중요성.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우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신중하게, 두 번 세 번 고민해서 결정하시길 바란다(p. 196). 영어는 결국 자신감이다. 그리고 기세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소용이 없다. 외국인 앞에서 말을 못 하고 끝날 것이다.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다 알아듣는다. 그들은 우리가 원어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너 잘하고 있어! 그래그래 계속 해 봐!' 하며 응원하는 눈빛을 받기도 한다. 외국인이 더듬더듬 한국어를 할 때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자. 영어는 무작정 외국에 간다고 해서 느는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영어로 대화를 하는 자신감'을 배울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만 가지고 와도 8할은 성공이다. '내 영어는 완벽하지 않아'라고 생각해도 일단 말을 뱉어 보자. 그게 시작이 된다. 기억하자. 영어는 무조건 자신감!(p.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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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2-27
  • 【북토크360】 경험하지 못할 죽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모두가 죽어야 하는데 경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처럼 죽음은 미지의 세계이다. 단지 현상을 보고 추론해볼 뿐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을 넘는 전이의 사건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죽어가는 사람의 말은 언제나 상징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죽음의 비밀에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큼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접근이 이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개별적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개별적인 동시에, 최후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서는 고유의 접근 방법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띠기에 그렇다(p. 38). 원초적 불안과 대상에 대한 경험은 근원적이고 존재를 뒤흔드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이 불안과 경험은 대부분 의식이 있는 현존재가 한계에 다다를 때 순수하게 일어나는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경련, 불안, 가려움, 메스꺼움, 오한, 알레르기 반응, 경직으로 말이다. 우리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안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가?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나는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인간은 깊은 내면에서 누미노제의 불안을 느낀다. 드레버만은 신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언급하며, 이 불안에서 인간의 중요한 위기를 관찰한다. 이 위기는 다른 여러 위기들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불안과 함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p. 91)다. 내가 거리에 나가 아무나 붙잡고 무엇을 두려워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테러와 전쟁,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전염병과 고통, 마약 중독, 깡패와 폭력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기차를 놓칠까 봐 불안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혹은 '신 에 대한 두려움'은 모호하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예를 든 것처럼 사람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불안한 사건의 배경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니까 불안한 일들 뒤에 있는, 그 안에 내재된 원초적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육체적인 일차적 실존성에 위협을 느낀다. 나를 두렵게 하는 대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원초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것, 압도적인 것, 탈출구가 없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불안의 대상이다(p. 92). 임종 준비란 죽어가는 사람의 내적 요구를 들어주고 그 이후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과 인지 감각의 변화에 대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자극받았던 이전 상태로 복귀시켜서도 안 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제공했던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계속 머(p. 211)무르라고 말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세를 떠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우리는 그들 내면에서 충돌하는 모순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과도한 의료 조치로 억지로 목숨을 부지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자아 안에 내재된, 곧 있을 결말을 미리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솔직한 대면을 통해 우리는 고통완화 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조심스레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임종 환자들 가운데 가끔 우리의 보호를 받으면서 한 번 더 '기운을 차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요양원이나 그와 비슷한 시설로 보내라는 의료보험공단의 압박이 있음을 조심히 일러주어야 한다. 이를 전해들은 환자의 의료기에 갑자기 심상치 않은 반응이 나타난다. 잠시 실망과 우울 상태에 접어들었다가 죽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와 직면한다. 그러고는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 안에 있던 원초적인 욕구'가 떠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초적인 욕구가 떠나기 전에 숨을 거두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임종 준비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인도하는 도움의 손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제적인 한계가 종(p. 212)종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p. 213).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인지 전환이 우리에게 보여준 중요한 결과들 중 하나이다. 고통 완화 의사, 간호사, 간병인, 상담사 등의 의료 종사자들과 가족은 임종 환자들이 어느 순간에 그리고 언제든지 내적으로 다른 공간에 가 있다는 것을 귀담아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현세도 내세도 아닌 중립적이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곳에, 자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통과 실신에서 벗어난 다른 공간에 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 다. 죽음은 고통으로 삶을 채울 수도 있고 삶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으며 삶 전체의 의미를 다시 규정할 수도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거나 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인 간은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인생에 관해, 죽음을 앞둔 현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죽음은 한마디로 강렬하고 극단적인 경험이다. 흔히들 자아의 관점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산이다. 여기서 내가 자아 기능과 감각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죽음을 설명했다면 나 역(p. 218)시 죽음을 왜곡했을 것이다. 가령 임종 환자를 병문안하러 온 한 방문객이 그의 고통이 안타까워 그 고통을 대신 젊어 진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방문객은 극심한 고통에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면서, 숨쉬기도 힘겨워하면서 그를 대신해 '고생할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에 시달리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로 접어드는 시점에서는 고통을 감지하는 감각은 상실된다. 종종 나는 이를 수면, 혼수상태 또는 마취와 비교해본다. 임종 환자들의 고통은 지속적이거나 우발적이지 않고 오히려 삶과의 이별 과정이나 변화를 향한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의식을 갖고서 자기 몰락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러는지, 결과적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죽음을 수용하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고통, 불안과는 무관하게 죽음의 상태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괜찮아" "....좋아”라고 말한다(p. 219). 죽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 시공간을 넘어 - 좇고 있는 것은 궁극적, 신적인 완성임을 예감 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의 마지막 비전과 반응을 살펴보면 나는 '최후의 것'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에 대한 일정한 앎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시간, 시간성과 현재, 현재성의 차원이 바뀔 것이다: 많은 것들이 동시성과 무시간성(영원)이라는 현존재 양식을 예고할 것이다. • 공간, 공간성의 차원이 변할 것이다: 많은 것들이 공간적인 무경계를 암시할 것이다. • 신체, 구체화, 경계 그리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느낌이 바뀔 것이다: 많은 것들이 경계 없는 존재와 관계된 존재를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존재를 나는 존재자, 즉 실체와 에너지로서 이해되는 존재자라고 생각한다. • 중력에 대한 느낌이 변할 것이다: 신체적인 무게감은 와해되는 것처럼 보인다(p. 241). • 강렬함, 감성도 변할 것이다: 많은 것이 강도를 높인다는 걸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감각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다고 감각적인 것이 배제되거나 무시되지는 않는다. •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평가도, 방식도 사라질 것이다: 많은 것들이 새로운 공존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여러 부분으로 쪼개지고 분열되었던 것들이 전체로 통합되는 것을 지시한다. • 의식: 무의식과 더불어 자아와 연결된 의식에서부터 새로운 양식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새로운 양식을 '보게 될 것이다.' • 기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떠밀림에서 완성으로, 찾기와 기다림에서 발견으로, 대결에서 평온과 목표로, 불안에서 신뢰로 말이다. • 공동체: 죽어가는 사람들의 많은 표상들과 유대교, 기독교, 타 종교들에 산재한 텍스트는 분열이 집회, 공동(p. 242)체, 축제라는 새로운 질적인 특성으로 전환될 거라는 점을 암시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증언과 이들의 마지막 변화가 내세에 대한 암시인지, 아니면 단지 임사체험을 표현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단지 해석만 있을 뿐이다(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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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북토크359】 세상은 요지경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들이다. 재미로 한 번 읽을 만한데 현재 이 책은 품절되었다. 죄를 없애기 위해 죄를 저지르다 고대 그리스에는 인신공양 제도가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남녀 두 명의 부랑자를 1년간 나랏돈으로 먹여 살렸다. 곡식을 수확하기 전 축제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들을 무화과 나뭇가지 로 때리며 마을 구석구석으로 끌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역할은 마을 사람들의 모든 죄와 더러움을 떠안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그들에게는 마을 변두리로 끌려가 절벽 위에서 떨어뜨리 거나 화형을 당하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죽으면 사람들은 그 유골을 바다에 버렸다. 제물의 몸이 무로 돌아감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의 죄도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의 식민지 마살리아(오늘날의 마르세유_-옮긴이)에서도 마을에 역병이 돌 때마다 신에게 사람을 바치는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제물이 되는 사람은 나랏돈으로 부양한 부랑자들이었다. 사람들은 제물에게 화관을 씌우고 축제 의상을 입혀서 마을 여기저기(p. 32)로 끌고 다닌다. 길에서 제물을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부어 자기에게 닥칠 위험과 재앙을 모조리 떠넘긴다. 그렇게 마을을 다 돈 후에는 제물을 인정사정없이 절벽 위에서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사람들의 죄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지지 않았을까?(p. 33). 사람 가죽 벗기기 사람 가죽 벗기기, 즉 '생피박리형'은 살아 있는 죄수의 피부를 벗기는 형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죽을 벗기면 그의 온몸은 피가 뿜어 나오는 상처로 뒤덮인 것과 같다. 햇볕에 고스란히 드러난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겉으로 드러난 혈관은 연신 바들바들 떨린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는가?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자기 직무를 태만히 한 판사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 가죽으로 후임자의 의자를 만들었다. 캄비세스Cambyses 왕이 지배하던 시대, 어느 신임 판사는 법정에서 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기도 했다. 아버지인 시삼네스 Sisamnes 판사가 불공정한 판결을 내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졌기 때문이다(p. 34). 그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인간의 피부를 가늘게, 둥글게, 넓적하게 등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벗겨냈다. 때로는 머리에서 몸 쪽을 향해 5~10센터 미터 폭의 가느다란 띠 모양으로 가죽을 벗기기도 했는데, 훗날 순교자 성 바르톨로메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옮긴이) 도 이 방법으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졌다고 한다(p. 35). 끔찍한 화형 이야기 유럽에 마녀 사냥의 광풍이 일었을 때 자주 사용된 처형법이 바로 화형이었다. 사실 화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잔 다르크처럼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에 처해졌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사형집행인에 의해 목이 졸려 목숨이 끊어진 다음에 화형에 처해졌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을 당하는 것은 죽고 나서 화형을 당하는 것과 당연히 고통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의 경우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문드러져도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일반적으로 목숨이 끊어지기까지 30분 이상 미칠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에 처해졌을까? 그것은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거나 일단 인정했다 나중에 말을 뒤집는 경우였다. 화형을 하는 도중에 사형수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면 얼굴(p. 53)에 물을 뿌려 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아니면 불에 물을 뿌려 불기운을 약하게 하고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불을 지피는 잔혹한 방법도 취해졌다. 그것은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들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화형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사형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작이나 지푸라기를 높이 쌓아서 불태우는 방법이다. 이것은 사형수가 빠른 시간에 질식사하기 때문에 비교적 온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장작을 쌓은 후 사형수를 기둥 높이 묶어 화형에 처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것은 아래부터 시작해서 불길이 천천히 위쪽으로 솟구치는 만큼, 사형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p. 55). 마녀 사냥이 성행했던 진짜 이유 일단 마녀로 지목되면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화형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체포와 심문 그리고 고문에 드는 비용, 감옥에서의 식사비, 몸을 묶는 밧줄비, 화형에 필요한 장작비, 재판관과 관리와 사형집행인의 수당 일체를 본인이 지불해야 했다. 때문에 정부의 관리는 마녀로 지목된 여성을 체포함과 동시에 그녀의 집을 수색해서 모든 것을 압수했다. 동산과 부동산을 몰수함은 물론이고, 그녀가 남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 상대를 찾아내 원금을 회수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형당한 마녀를 대신해서 정부의 관리가 빛을 받으러 다닌 것이다. 사실 당시 마녀 사냥이 횡행한 원인 중 하나는 이런 재산몰수 때문이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마녀의 재산몰수를 금지했던 1630년에서 1631 년까지 마녀 적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그 증거다(p. 80). 반베르크에서만 해도 1629년까지는 매년 100명 정도의 마녀가 처형 되었는데 1631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p. 81).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 20세기의 천재 시인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달리 장미를 좋아했는데, 그가 만년에 살았다는 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성의 정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차가운 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수도승처럼 혼자 살며 시를 지었던 릴케.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정원까지 배웅하다 나무 뒤에 피어 있는 장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장미 가시에 손가락(p. 159)이 찔리는 바람에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그해 12월 29일에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실제 사인이 백혈병임에도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릴케라는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함께 생전에 그가 기이할 정도로 장미를 좋아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p. 160). 허니문의 기원 '허니문'은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떠나는 신혼여행을 이르는 다른 표현이다. 허니문은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원래는 한 달 동안 매일 밤 '봉밀주'를 마시는 관습이었다. 여기에서 허니문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허니문에는 재미있는 기원이 있다. 오랜 옛날 결혼이라는 것은 남자가 힘으로 여자의 부모로부터 여자를 훔쳐내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그때 여자를 되찾으려 쫓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한동안 두 사람이 숨어 지내던 관습이 오늘날 두 사람만의 허니문으로 변한 것이다(p. 182). 명작동화의 작가는 로리콘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책을 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동료이자 고전학자인 리델의 딸 앨리스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쓴 작품이었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어린 소녀에게 집착했다. 그에게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는데 항상 어린 소녀의 사진만 찍었다. 지금도 그가 찍은 수많은 소녀들의 사진이 남아 있는 데, 그 안에서 고민에 빠진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는 소녀, 어른스럽게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 등 기묘한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찬 소녀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p. 239). 루이스 캐럴은 전차에서 만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아무도 몰래 연애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어쨌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진정 '로리콘'이었다. 심한 경우 소녀유괴나 소녀감금에까지 이르게 되는 롤리타 콤플렉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현실이 아닌 동화 속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정복했다(p. 241). 우발적 연애를 즐긴 사르트르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첫 번째 철학교수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자 약혼자의 부모는 재빨리 그와의 결혼을 파기해버렸다. 그 후 그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듬해인 1929년에 치른 두 번째 시험에서 놀랍게 도 1등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그때 2등으로 합격한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를 만나게 되는데, 후에 그녀는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된다. 이윽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되었다. 하루는 사르트르가 이렇게 말했다. "연애에는 필연적 연애와 우발적 연애가 있다. 양쪽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면서 보부아르에게 '2년 계약 결혼'을 제안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이성과 우발적 연애를 즐겨도 좋지만 서로에게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p. 256) 것이 조건이었다. 순진했던 보부아르는 이 제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계약 결혼 후 우발적 연애를 즐긴 사람은 사르트르뿐이었다. 대신 보부아르는 항상 질투에 몸을 떨어야 했다.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새 애인을 만들어서 보부아르를 고뇌에 빠트렸으며, 40세가 넘어서도 그의 우발적 연애는 끝나지 않았다. 여배우, 유명인의 아내, 제자 등등... 그는 여자들을 교묘하게 '관리'했다. 연애가 끝난 후에도 헤어지지 않고 '보관'하면서 그녀들에게 아낌없이 '재투자'한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힘과 재능, 지식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상대가 여배우라면 희곡을 써주고, 타이피스트라면 자기 소설의 타이핑을 맡겼다. 덕분에 연인 관계가 끊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자들은 그를 '좋은 친구'로 여겼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조차 사르트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사강이 무려 20페이지에 이르는 정열적인 러브레터를 사르트르에게 보내 보부아르를 질투에 불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p. 258). 치열한 음식물 전쟁 파푸아뉴기니의 카라우나 족은 무기가 아니라 음식을 이용해서 적과 싸운다. 어느 쪽이 상대에게 더 많은 음식을 보낼 수 있는지 경쟁하는 것이다. 카라우나 족 남자들은 상대로부터 모욕을 당한 경우 -가령 아내를 빼앗겼다든지-그 즉시 복수에 착수한다. 상대가 갚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보내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평소에 밭에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수확해 보관한다. 물론 태풍이나 기근 등의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부족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때 무기로 삼기 위해서다. 카라우나 족의 유력자가 다른 부족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때, 그는 일단 부하에게 감자를 주어 동이 트기 전에 적의 진영으로 보낸다(p. 294). 그것을 받아든 적은 도전에 응한다는 표시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와 사자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우리가 이것을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우리에게 돼지가 없는 줄 아느냐? 우리가 농사짓는 방법을 모를 줄 아느냐? 어디 두고 보자. 누가 더 맛있는 감자를 가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이렇게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감자를 보낸 후 카라우나 족은 부족의 창고를 전부 뒤지고 밭을 파내어 찾아낸 음식을 한곳에 모은다. 다음 날 적의 사자에게 내줄 감자와 고구마, 바나나, 돼지 등의 음식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적의 사자가 모아둔 음식을 모두 가져간다. 이제는 적들이 음식을 모을 차례다. 하루가 지나 아침이 되면 이번에는 카라우나 족의 사자가 적의 마을에 가서 적이 모아놓은 음식을 가져 온다. 결정적인 순간이다. 만일 적에게서 가져온 음식이 자신들이 보낸 음식 보다 많은 경우, 다시 그보다 많은 음식을 끌어 모아야 한다. 이렇게 전쟁은 계속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기든 지든 산더미만 한 음식이 남게 되니까 양쪽 모두 큰 손해는 아니다...' 하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얄팍한 우리 문명인들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이 느끼는 패배에 대한 수치나 승리에 대한 기쁨은 물질로 채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일 테니까(p. 295). 에펠탑보다 인기 있었던 관광코스는? 19세기 에펠탑 관광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이 바로 단두대 처형 관광이었다. 영국 여행사 토머스 쿡에서는 단두대 처형을 구경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대형마차 7대를 준비하는 등 관광객 모집에 열을 올렸다. 당시 단두대 처형은 대개 아침 일찍 이루어졌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전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마차 7대에 마련된 40석의 자리는 언제나 모두 팔려나갔다. 또한 처형장이 보이는 창문과 테라스, 나무 위에는 꼭두새벽부터 나온 구경꾼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처형장이 잘 보이는 방은 늘 엄청난 가격으로 몇 달 전에 예약이 끝나 있었다. 처형 당일 단두대 주위에는 피에로나 장사꾼 그리고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기분으로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천박한 농담을 주고받았다(p. 314). 처형될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던 죄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이 세상에 인간보다 더 잔인한 동물은 없으리라(p. 315). 하늘나라로 메시지를 전해드립니다 1982년 4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회사의 광고가 실렸다. 저세상에 있는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 전달자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그 환자에게 전할 내용을 알려주면 그가 메시지를 머릿속에 넣고 저세상으로 가져간다. 요금은 보통편은 100단어에 60달러, 특급편은 50단어에 100달러였고, 과격한 내용이나 지옥으로 가는 메시지는 받지 않았다. 메시지 중에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나 마릴린 먼로, 존 레논에게 보내는 것도 있었다(p.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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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북토크358】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제 역할을 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사실을 표현할 때가 있다. 이를 법의학으로 해석할 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을 때 보이는 것 최근에 이르러서야 의사와 과학자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들이 털어놓은 '죽음의 이미지 체험'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특이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임사체험 Near Death Experience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임사체험자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몇 가지 공통된 현 상이 있다. 그 하나로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이탈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는데, 이를 '체외이탈 Out of Body Experience' 이라고 한다. 체외이탈 현상과 더불어 빛이 온몸을 감싸기도 하며, 넓은 꽃밭을 거닐기도 하고, 죽은 가족들과 상봉하기도 한다(p. 17). 체외이탈 연구는 19세기 말 스위스의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이 시작했다. 그는 알프스를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사경을 헤매던 중 체외이탈을 경험했다. 그 후 하임은 비슷한 경험을 한 등산가와 군인 등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미국에서는 체외이탈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 2세는 당시 사망 판정을 받은 후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수집해 《사후의 세계》(1975)라는 책을 펴냈다. 그 후 죽음학의 대가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체외이탈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후 생》(1991)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렇게 보고된 사례가 지금까지 수십만 건에 달한다. 그들의 체험이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체험담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혼의 체외이탈 →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터널 체험 → 빛과의 만남 → 저승 도착 → 지나온 생에 대한 반성적 회고 → 장벽과의 만남 → 육체로의 회귀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촉감은 있지만 아픈 것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까지 보고된 체외이탈이나 임사체험 경험에 대해서는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의 실제적인 체험이건 아니면 단지 뇌에서 느낀(p. 18) 환각이나 환상이건 간에 그것을 보고 느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가 없다. 따라서 체외이탈과 임사체험처럼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체험되는 현상을 묶어 '임사현상 Near Death Phenomena' 으로 표현하기로 한다(p. 19). 한편 임사 체험자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고백이 있다. "저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워 이승과 비교할 수도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세상을 보고 난 후에는 이승에서의 삶이 싫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예는 자살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체외이탈을 체험한 뒤 아주 캄캄한 곳에 있었으며, 아무도 자신을 돌보지 않아 강한 고립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가운데 빛의 존재를 만난 이는 한 명도 없었다(p. 21). 이 글을 쓰면서 죽음의 이미지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두렵고 무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 임사현상 체험자들의 진술에(p. 22) 의하면 일단 죽음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 고통 없이 편안하며,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는 점에 주목 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p. 23). 정신분석 전문가들은 도스토옙스키가 그의 작품에서 표현한 뇌전증과 살인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심리에 대한 여러 가설을 세웠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는 간질과 살인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뇌전증 발작과 환희, 격분상태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것은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실제로 측두엽 뇌전증 환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측두엽 뇌전증이란 무엇일까? 뇌전증의 일종인 측두엽 뇌전증은 의식의 상실이나 경련을 동반하지 않는다. 환자는 발작이 일어나면 청각, 시각, 후각 및 촉각에 이상을 느끼며 잠시 동안 망연자실 상태가 되거나 입을 씰룩거리며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발작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특색 있는 증상을 보이는 게슈빈트증후군Geschwind syndrome 이라는 증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종교나 도덕성에 과잉으로 집착하며, 성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글을 쓰려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하이퍼그라피Hypergraphia라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p. 37). 고대 그리스의 신상들과 조각 작품은 모두 나체이다. 나체에는 평등사상인 '너나 나나 벗으면 똑같다'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는 것으로, 거짓의 옷을 벗어버린 인간의 진실함이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행동에 거짓이 없음을 의미한다. 클림트는 나체화를 그리는 확고한 신념에 의한 독창성과 예술적 특이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들리는 잡음을 무시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 빈대학의 학부 회화를 둘러싼 잡음, 특히 나체의 여인에 대한 시비로 이 그림들을 새로 교정 하라는 제의는 단호하고 보기 좋게 거절 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받았던 제작비(p. 69)는 전액 환불하고, '학부 회화' 최종판은 자신이 소유하였다. 만일 대학당국이 예술가는 장인과는 달리 어떤 구속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입장에서 영원한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참작하였다면, 작품에 대한 시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클림트는 여성성의 무한한 힘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나체의 진실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으로 그림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고고했던 대학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된 사건이었다(p. 70). 채플린 친자확인 사건 한평생 웃음을 전하며 살아온 20세기 최고의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 1889~1977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습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우스꽝스런 몸짓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미소에서 우리는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채플린은 남을 웃기고 돌아서서 혼자 울던 사람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영화인 채플린의 사생활은 수많은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특히나 여자관계가 복잡했는데, 어린 여자들과의 스캔들로 '병아리 잡는 매Chicken Hawk'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채플린이 배우 지망생 조안 배리Joan Barry 1920~1996를 알게 된 것은 1941년이었다. 그는 배리의 미모와 재능을 알아보고 연극학교에 입학 시켰으며, 그녀를 배우로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동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채플린은 1942년 이상행동을 일삼으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보이는 배리와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후 배리가 임신을 해 1943년 10월에 출산을 했다는 점이다. 배리는 갓 태어난 아기가 채플린의 아이라고 말했고, 채플린은 이를 부인해 결국 소송으로 번지게 되었다. 수태일수와 배란일수를 계산한 결과, 배리는 1942년 12월 23일에서 24일 사이에 임신했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보고가 나왔다. 따라서 문제(p. 133)는 임신 가능한 날짜인 12월 23일을 전후해 3일이라는 기간 동안 두사람이 동침한 사실이 있는가의 여부로 집중되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이 사실에 대해 채플린은 없다고 했고, 배리는 있다고 주장했다. 배리의 진술에 의하면 1942년 2월까지 채플린과 동거한 것이 사실이며, 두 사람이 헤어진 후 채플린과 연락이 두절되었다. 채플린은 더 이상 배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리는 채플린에게 집착했다. 급기야 1942년 12월 23일 밤 권총을 숨기고 채플린을 찾아갔는데, 그가 만나주지 않자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자고 있던 채플린은 깜짝 놀랐고, 총을 들고 있는 배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날 밤 두 사람은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상은 배 리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채플린은 이를 적극 부인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친자확인 혈형검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채플린은 0형이었고, 배리는 A형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B형이었다. 0형의 아버지와 A형의 어머니 사이에서는 B형의 아이가 출생할 수 없다. 결국 ABO식 혈형검사로 채플린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검증은 재판의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배심원들은 배리의 손을 들어주었고, 재판을 담당한 킨케트 판사는 채플린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양육비로 주급 75달러와 변호사료 5,000달러 지급을 명하였다(1945년 5월 2일의 판결)(p. 134). 이렇게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비논리적 판결을 내린 이면에는 배리의 법정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 배리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채플린을 살해할 생각으로 권총까지 준비해 찾아갔다. 하지만 놀라고 당황한 채플린이 거짓으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결과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고 배심원들에게 눈물로 호소한 것이다. 배리는 또한 재판 결과에 따라 아이와 함께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쳤다. 그녀의 연기에 사로잡힌 배심원들은 그녀를 동정하여 채플린 패소라는 판결 을 내렸다. 이렇듯 배심원제 재판은 법 이외의 여러 요소에 의해 좌지우지될 우려가 다분히 있다. 지금도 이러한 판례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최첨단 기술의 특허 침해를 놓고 미국의 배심원제 재판과 한국 법원의 판결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는 것도 이러한 사례로 볼 수 있다(p. 135). 두 화가의 다르게 표현된 그림으로 제롬이 그린 밧세바는 '요부'에 해당되며, 팡탱 라투르가 그린 밧세바는 '숙명의 여인'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만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밧세바가 왜 하필 그날 저녁에 목욕을 했느냐는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여인들은 달거리가 끝나면 몸이 부정하게 되었다고 하여 정결례(레 12:2)로 몸을 씻어야 했다. 사실 밧세바는 월경을 막 마친 후였고, 율법대로 부정함을 씻기 위해 정결례로서 목욕을 한 것이었다.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하거나, 왕을 유혹하기 위한 목욕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기록을 보더라도 밧세바를 요부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p. 143). 한편, 단 한 번의 육체적 관계로 임신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한 논란은 강간 사건에서 자주 등장한다. 동물들의 배란 양식은 여러 형태인데, 야생 토끼나 낙타는 수컷이 있어야만, 즉 수컷이 교미 동작을 취해야만 배란이 되고 평소에는 배란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처럼 공포를 느껴야 배란이 되는 동물도 있다. 그래서 수 원숭이는 교미 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암컷이 안고 있는 새끼를 뺏어서 던지고 때리기까지 한다. 새끼 원승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암컷은 공포를 느끼게 되면서 배란이 이루어지고, 발정이 되며, 교미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공포 배란 현상이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강간이나 간음같이 공포나 불안감이 조성되는 분위기에서 배란이 되는 여성이 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이 되었다는 예는 강간이 나 간음 사건에서 드문 현상은 아니다(p. 152). 앞에서 월경이 막 끝나고 정결례를 하는 밧세바에 대한 기록을 예로 들어 그녀는 요부가 아니며,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술수를 부린 것도 아니라고 얘기하였다. 이번에는 밧세바의 임신에 대해 여러 정황을 기반으로 추측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밧세바가 다윗 왕과의 육체적 관계에서 무언가 공포나 불안을 느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공포 배란으로 임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를 요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p. 154). 수많은 걸작을 남긴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 1840~1917은 작품 만큼이나 여성 편력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은 젊고 유망한 여류 조각가의 사랑을 헌신짝 버리듯 버림으로써 정신이상이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조각가 지망생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은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파리의 에콕 데 보자르라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당시 최고의 예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장은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당시 최고의 조각가였던 로명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때 카미유의(p. 173)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고, 로댕은 마흔두 살이었다. 처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로댕은 그녀에게 작품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 했다. 로댕의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카미유는 거리낌 없이 옷을 벗고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였다. 로댕의 많은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인 것은 역시 카미유이었다. 로댕 역시 그녀의 실력을 신뢰하여서 작품의 섬세한 마무리 단계를 그녀에게 맡기곤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빛나는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고, 이렇게 작품의 작업을 함께해 나가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법적으로 혼인관계는 아니었지만, 로댕은 로즈 뵈레Rose Beuret라는 여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 로즈 역시 열여덟 살 때 로댕의 모델이 되었는데, 그 후 1년 뒤에 로댕의 아이를 낳게 된다. 로댕이 로즈를 모델로 택했던 것은 농촌 출신이었던 그녀의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 때문이었는데, 바로 로댕이 원했던 모델이었다. 또 그녀는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래서 로댕은 그녀를 말할 때 "로즈는 동물적이야"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그녀와 일생을 같 이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물적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로댕은 자신의 화실에 불러들인 모델을 작업만 마치고 그대로 보낸 적이 없었다. 모델들은 한결같이 그의 뜨거운 입김을 쏘이고 나서야 화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여성 편력은 매우 심해 관계를 맺은 여인은 알려진 것만도 수십 명이었다. 하지만 로즈는 그의 난잡한 여자관(p. 174)계에 대해 단 한마디 불평도 없었다. 어떨 때는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 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로댕은 일생을 그녀와 함께하였고, 죽기 16일 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로댕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포즈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취할 수 없다는 구실로 모델들의 몸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이에 에밀 졸라는 "그는 모델들의 아름다운 나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들을 눈으로 애무하고, 때로는 손으로 애무하면서 키스하고 어루만졌으며,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녀들을 그렸다. 그는 그것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하였다. 즉 그는 낮에는 그녀들을 그렸고, 밤에는 그녀들을 품에 안았다. 그의 여자 누드 작품의 중심축은 그와 모델들 간의 섹스였던 것이다." 로댕이 카미유를 유혹할 때도 이러했다. 카미유는 로댕과 동거중인 로즈를 신경 쓰며 이야기하면 로댕은 "너하고 정식으로 결혼할 거야" 라는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로댕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다른 모델들과의 난잡한 관계를 이어갔다. 로댕은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는 구실로 수많은 여인을 농락했고, 카미유도 로댕에게는 그런 여자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1890년 결국 카미유는 그에게 결별을 선언하였다(p. 175). 뱀의 독이 사람 몸에 들어오면 어떤 변화와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을(p. 214)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죽음에 뱀독을 이용했다는 것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나토 의과대학의 비오 그란 마레 박사는 독사설이나 핀에 의한 독액 설을 부정하였다. 또 여왕의 명에 의해 방문을 꼭 잠갔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클레오파트라는 탄이 연소될 때 발생되는 유독가스의 효능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토니우스의 장례를 구실로 탄과 이를 태울 도구를 쉽게 방에 들여올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사망 상황을 묘사한 글에서 여왕은 침대 위에, 한 몸종은 발밑에 그리고 또 다른 몸종(p. 215)은 방문을 향해 쓰러져 죽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일산화탄소 중독을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의 장면은 프랑스의 화가 릭싱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1874)이라는 작품에 마레 박사의 설명이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과 마레 박사의 의견은 법의학적으로도 수긍이 간다. 여러 명의 사람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 그대로 누워 있는 사람도 있지만, 무의식중에 살기 위해 문 쪽을 향해 기어가다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사망자가 여러 방향의 체위를 취하고 죽는 것이 집단으로 연탄가스에 중독사했을 때 보이는 특이한 현상인데, 이러한 특징적인 상황이 화가 릭싱의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와 두 몸종의 동시 죽음을 보았을 때 일산화탄소를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존 시 여왕은 향료를 매일같이 사용하여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향기가 풍기는 향의 애호가로, 평생을 향기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최후에 이르러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 무취의 일산화탄소를 맡으며 그 속으로 사라졌다(p. 217). 차이콥스키의 죽음에 대한 의문 차이콥스키의 사인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가 콜레라로 사망하였다고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즉 차이콥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의 초연을 지휘하고 나서 9일째 되는 날인 1893년 11월 6일에 사망하였다. 사인이 된 콜레라에 감염된 것은 11월 1일로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그대로 마신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1세기 동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자살설이 제기되었다. 자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이콥스키가 정성을 다하여 작곡했다고 자랑하는 〈비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그리 시원(p. 221)치 않은 것에 참담함을 느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인에 대해 일종의 강요된 자살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차이콥스키 박물관의 기록 보관소에 근무하던 알렉산드라 오르로와라는 여직원의 증언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녀는 1940년 차이콥스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한 통의 편지를 발견 하였다. 주치의가 차이콥스키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그 내용이 매우 세밀하였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의심되는 점은 콜레라는 전염병인데 기록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격리되지도 않았고 면회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오르로와 여사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이에 대해 알아봤는 데, 차이콥스키는 그 당시 권세가였던 스텐보크 훼르모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 공작은 황제에게 차이콥스키를 처벌해줄 것을 요청했고, 황제는 당시 검찰 부총장이던 니콜라이 보리소비치 야코비에게 그의 처벌을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동성애는 신에 대한 모독이며, 최대의 파렴치범으로 여겨져 극형에 처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냈다. 야코비 부총장은 차이콥스키와는 법률학교 동기생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모스크바에 있던 동기생(대법관, 판사, 변호사 등)들이 모여 상의한 끝에 불명예스러운 사형이나 시베리아 유형보다는 명예재판을 열어 그가 수용한다면 비밀리에 사약을 내리기로 한다. 차이콥스키는 이러한 제안에 응했고, 순순히 사약을 받았다(p. 222). 그런데 차이콥스키가 입원 당시의 차트를 보면 콜레라의 중요한 증상 중 하나인 쌀뜨물 같은 설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을 통해 필자는 오르로와 여사의 수기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 조문객들이 줄을 지었는데, 조문객들은 그의 손이나 이마에 입맞춤하였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이를 보면 그의 사망이 콜레라가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예재판 후에 사약설이 맞는데 과연 독극물 중에서 복용 하면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는 증상을 보이는 독물이 있는지이다. 법의학적 기록에는 극량에 달하는 비소를 복용하는 경우 콜레라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부가 차이콥스키의 사인을 발표하기에 앞서 상당한 검토와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콜레라로 발표해도 될 만한 증거를 구비한 후 사약을 내린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p. 223). 우리나라에도 유디트와 같이 적장을 술로 유인해 살해한 의녀로는 주논개가 있다. 논개에 대 한 기록은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에 전해지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있다.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은 논개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여식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읜 채 어머니와 함께 숙부에게 의탁하게 된다. 숙부는 이웃 마을의 김동헌이라는 사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아버린다. 이를 알게 된 논개 모녀는 외가로 피신했지만, 잡혀 관아에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감 최경회에 의해 무죄 방면된다.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고마운 처사에 감동한 논개는 자원해서 최 현감의 시중을 들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다. 이에 최 현감이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다. 최 연감은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공로로 1593년에는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었고, 진주성에서(p. 253)의 전투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공세에 밀려 불리해졌고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함으로써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그리고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고 만다. 논개는 원수를 갚기 위해 적장을 살해할 것을 결심하고 기회만 엿보던 중 왜군이 진주성 함락을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연다는 소문에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논개는 적의 선봉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지목하여 술을 권하고 교태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동료 기생들에게 반지와 가락지를 달라고 하여 열 손가락에 모두 끼고는 촉석루 아래로 내려가 물위에 솟아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춤을 추며 게야무라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바위로 건너가 논개를 끌어안았다. 논개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적장의 몸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고 있던 왜병들은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속으로 들어간 게야무라와 논개는 영영 떠오르지 못하고, 세차게 흐르는 남강의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고 말았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불렀으며, 1956년에는 '논개사당'을 건립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을 열고 있다. 두 사람의 의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굳은 결심으로 적장을 유(p. 254)인하여 살해하였다. 그러나 여인으로써 과연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아무리 술에 만취되었다 할지라도 적장의 목이 그렇게 쉽게 날아갈 수 있을까? 틴토레토와 젠틸레스키의 그림처럼 유디트 혼자서가 아니라 하녀가 도왔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논개의 경우를 보면 가녀린 여인의 팔로 적장의 몸을 꽉 껴안았다고 해도, 과연 힘이 센 남자가 뿌리칠 수 없을까? 이를 예측한 논개는 동료 기생들의 가락지와 반지를 받아 열 손가락에 모두 끼었다. 일단 손깎지를 끼면 자물쇠처럼 물리게 하여 풀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법의학적인 조언을 하면 사람이 죽을 때 극도로 긴장하고, 어떤 근육에 힘을 강하게 주고 죽으면 그 근육에 죽음과 동시에 강직이 일어난다. 이것을 즉시성 시강이라고 한다. 논개의 경우에도 즉시성 시강이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센 남자라 할지라도 꼼짝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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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양대식 목사 칼럼10】 성품과 문제
    성품과 문제 사람마다 성품이 다릅니다. 어떤 성품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타고난 성품과 기질이 다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품이 나쁘고 과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온유와 양선은 좋은 성품입니다. 성품이 부드러우면 관계가 잘 되고 갈등이 적어집니다. 성품은 타고나면서 다듬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성품이 다듬어지게 됩니다. 성품의 변화가 최고의 기적입니다. 성령 받고 은혜받아야 성품이 변화됩니다. 모세는 성품과 기질이 고집스럽고 강했는데 40년 광야 연단 받은 후 성품이 온유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는 문제를 만들지 않고 해결합니다.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 착한 성품으로 격려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성품이 선해야 관계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성품이 악하고, 강하고, 교만한 자는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성품이 악하고, 과격하고, 급하면 함부로 말하고 폭언하게 되어 공동체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한 번 쏟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절제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언어는 성품과 인격의 열매입니다. 폭언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문제가 생기고 후회하게 됩니다. 성품이 온유한 자는 인내하고 누구와도 다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부딪치면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깨지며 후회하게 됩니다. 성품이 삶의 능력입니다. 성품이 좋은 자는 문제를 만들지 않고 덮어주고 해결합니다. 성품은 인격입니다. 사람이 되고 사역해야 합니다. 성품이 사납고 악하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리더의 성품이 중요합니다. 성품이 선해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인데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삭은 온유한 성품으로 다투지 않고 양보함으로 존경받게 됐습니다. 외유내강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됐습니다. 나쁜 기질과 성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성품이 최고의 성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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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서기원 목사 선교1】 88 올림픽과 외국인 노동자 선교
    88 올림픽과 외국인 노동자 선교 1988년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함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국민의 응원의 함성과 성공적 개최는 국민의 사기를 높여 주었고 세계도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Korean dream을 꿈꾸며 몰려 오기 시작했다. 당시의 한국의 경제 상황은 좋은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부족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경제적인 부를 얻고자 하는 세계인들의 수요가 맞물려서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다수의 외국인들 중에 중국동포들이 많았다. 당시 서울역 근처는 한약을 판매하기 위해서 모여든 중국인들이 가득 메웠다. 그 이후 중국인들만 아니라 동남아의 여러 나라, 남미 등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에게 많은 사회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돕기 시작했다. 이 때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회를 찾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교회가 돌보기 시작했다. 의료진료, 한글공부, 상담, 이미용 봉사 등 다양한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관광 비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일하는 불법자의 신분이었다. 그래서 일부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불법자들을 보호하면서 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도와야 한다는 여러 교회들이 있었고 헌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레위기 19:33-34 “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이 말씀에 의지해서 많은 교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본인도 선교사로 헌신하고 훈련을 받는 중에 부목사로 부천의 천산중앙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이 때에 교회 근처의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일에 교회를 찾아옴으로서 이들과 만나게 되어서 외국인노동자 선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동포가 약을 팔기 위해서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필리핀 노동자들. 그 후에는 몽골인 노동자들, 남미의 페루인 노동자들이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천산중앙교회는 이들을 가족처럼 환영하고 모든 성도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교회의 중강당을 외국인 노동자의 예배공간으로 만들었다. 언어권별로 칸을 막아서 몽골어 권, 영어권. 스페인어 권으로 구분하고 동시 통역사들을 세우고 11시 예배에 한국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식사 후에는 언어권별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며 성도들이 한 가족처럼 대하니까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 사랑이 넘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다. “ 일어나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행 10:20
    • 오피니언
    • 기고
    2026-02-24
  • 【북토크357】 글을 쓰자...그것도 늘 글을 쓰자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나는 좋은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좋은 글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글쓰는 몸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쓰자! 프롤로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글쓰기 이 책을 기획하면서 처음 떠올린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습니다. 보통 '무적'은 '매우 강해 겨를 만한 적수가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더 이상 대적할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쓰죠.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만나는 적마다 다 무찌르니까요. 요즘 말로 '원톱'이 되는 글쓰기랄까요. 저는 다른 뜻으로 새겨보았습니다. 한자를 가만히 쳐다보면 다르게 읽힙니다. '적이 없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 있던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 어떤가요? 당신에게도 적이 있을 겁니다('척진 사람' 정도로 합시다). 말을 섞는 게 고통스럽고 마주치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죠. 되도록 한자리에 앉지 않으려 합니다. 살면서 그런 사람이 점점 늘면 힘듭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이 독자를 적으로 생각합니다. 설득하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요. 어리석으면 가르치려 들고, 강하면 논파해서 기어코 이겨먹으려 하죠. 글로(p. 4) 상대를 제압하고 내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공존하고 싶다는 메시지입니다. 적도 친구로 만들고 싶기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말을 눌러 천천히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입니다.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을 할 때도 종국에는 '그러니 제발 나와 함께하자'고 하는 겁니다. 현실의 모순과 갈등에 눈감자는 말이 아닙니다. 친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죠.. 성취하기 불가능하지만 추구해야 할 자세입니다. 무적이란 말엔 무적(無籍)이란 한자어도 있습니다. 소속이 없다, 달리 말하면 '고향이 없다' '근거가 없다'입니다. 글 쓰기는 한 편의 글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고체로 굳어버리지 않고 움직임 속에서 생각의 흐름을 잠시 움켜쥐었다가 이내 놓아주는 거죠. 글을 하나 썼다면 잠깐 안도했다가 이내 그 글에서 떠나야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글쓰기. 고향이 없으니 계속 떠나는 거죠. 쓰고, 떠나고, 다시 쓰고, 다시 떠나고. 같은 글 감으로 글을 써도 쓸 때마다 달라집니다.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자리에 눌러앉지 않고, 표표히 떠 나야 합니다. 무적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 '쓰는 몸'을 만들어(p. 5)야 합니다. 반복은 자신의 몸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무심히 흘려보냈던 세계의 질서와 타인의 흔적을 찾아내고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어 낼 수 있는 감각을 갖춘 몸을 만들어 줍니다. 그 몸은 자신을 '쓰는 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꾸준히 앉아 있어야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 위해 막막함 속을 헤엄치면서 끝내 문장 하나를 써냅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새롭게 해석한 문장을 바느질하듯이 한 땀씩 이어갑니다. 무적의 글쓰기는 자신을 '쓰는 몸'으로 탈바꿈하여 삶을 이어가 보려는 사람의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쓰는 몸으로 살기' 로 바꾸었습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쓰는 몸은 끊임없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닌, 몸으로 쓰는 글 쓰기를 추구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살이 보이고 좌충우돌하는 삶이 녹아 있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p. 6).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글쓰기는 내 얘기가 독자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입니다.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 주세요.' 글은 독자와 공명하고 싶을 때 하는 작업입니다. 독자(p. 16)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거나 멱살을 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 공명의 성격이나 진폭에 따라 공감을 얻기도 하고 마음에 격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결정적인 각성의 계기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건 오롯이 독자의 몫입니다. 글쓴이는 오직 겸손한 자세로 독자와 공명하려고 시도할 뿐입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곡진하게, 간절하게 말해야 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얘기만 퍼붓는 사람은 거북합니다. 끝까지 듣기도 어렵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의 상태를 살피면서 써야 합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글을 보고 글쓴이가 궁금하지는 않잖아요. 촘촘한 논리나 멋진 표현이 아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지죠. 살아오면서 한 가지 일만 했다면 어떻게 그리 뚝심 있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버텨왔는지, 여러 우여곡 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리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지켜왔는지, 뭘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그 방황의 냄새와 깊이가 궁금합니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을 쓴 사람이 보고 싶더군요.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은 그 글이 나에게 와(p. 17) 닿았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겠고요(p. 18). 힘을 빼면 생기는 일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몸에 힘을 빼야 합니다. 젠체하며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은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글에도 그런 게 다 담깁니다. 그런 글은 내용이나 표현이 하나같이 진부하고 자기주(p. 18)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운동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힘 빼'라는 말입니다.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손과 허리에 힘을 빼고 바람을 가르듯이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축구공을 정확하게 멀리 차려면 발목에 힘을 빼야 합니다. 농구에서도 손목에 힘을 빼야 슛이 부드럽게 잘 들어갑니다. 힘을 바짝 줘야 할 것 같은 역도나 유도에서도 힘을 빼라고 합니다. 힘을 빼야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 입니다. 힘을 뺀 글이 좋습니다. 힘을 빼려면 글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느끼려고 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를 의식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내 글이 상대방에게 가닿으려면 상대방의 기운을 느껴야 합니다. 물론 상상입니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요? 글쎄요, 저도 어렵습니다. 눈앞에는 공책이나 모니터밖에 없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의 기운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래야 합니다. 글쓰기는 두 사람의 작업입니다. '둘의 경험'이랄까요. 작가와 독자의 대화.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쓰는 겁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p. 19)구 내뿜는 게 아니라,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 독자에게 내 얘기를 간절하게 풀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독자는 나의 건너편 자리에 앉아 얘기를 듣습니다. 이런저런 말도 하고요.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 얘긴 좀 긴걸 그건 말이 좀 안 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군!" 어떤 글쓰기 책에서는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내 안에 있는 독자를 불러내어 이것저것 검토를 맡기라고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처음부터 독자가 곁에 있는 게 좋더군요. 상대의 등에 비수를 꽂으려고 몰래 '칼을 갈았다'는 느낌을 주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런 글쓰기가 아닙니다. 상대를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존댓말로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그 독자였고요(p. 20). 1945년 연합군은 전쟁 포로와 유대인을 가둬둔 독일의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를 해방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들에게 어떤 구호품을 보내겠습니까? 먹고 입을 게 절실했을 테니, 빵이나 담요를 보냈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구호품이 도착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엄청난 양의 립스틱이었습니다. 어느 영국군 장교는 이 기이한 장면을 보고 일기장에 '천재적인 발상'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굶주림에 몸을 못 가누면서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수감자들은 더 이상 팔에 문신을 새긴 숫자에 불과하지 않고 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본 거죠. 립스틱이(p. 34) 이들에게 다시 인간성을 되돌려줬다는 겁니다. 인간다움은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나 봅니다. 이 예상 밖의 사건은 우리가 글을 쓸 때 가져야 할 핵심 목표인 '반전'에 대해 알려줍니다. 우리가 아는 도덕이나 상식은 허위입니다. 반발심이 생기더라도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일단 거기서 출발하는 게 좋습니다. 진실은 도덕이나 상식과 거리가 멀고, 가끔은 도덕과 상식을 배신하기조차 합니다(배고픈 자에게 립스틱이라니!)(p. 35). 반전의 크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글은 반전을 노려야 합니다. 반전이 없는 글은? 쓰지 않는 게 낫습니다. 반전은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뒤집는 게 아닙니다. 반전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통념을 뒤집고 관습을 혁파합니다. 기존의 가치와 관점을 뒤바꾸는 겁니다. 확신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미루는 겁니다. 움직일 수 없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p. 38). 강약이 뒤바뀐 말을 위해 반전을 모색하려면 진리(참/거짓)보다는 개연성에 기대는 게 좋습니다. 개연성에 기대는 것은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너그럽게 허용 하는 자세입니다. 예측 가능함을 어길 때 반전이 만들어집니다. 맞는 말, 똑 떨어지는 말, 진리를 담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 힘의 강약이 뒤바뀐 말을 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발견, 도덕을 거역하는 글이 좋은 글 입니다. '나쁜 시만이 가슴에 남는다'고 한 김수영의 말처럼 '나쁜 글'만이 가슴에 남습니다. 나쁜 글을 쓰려면 글감에 들러붙 어 있는 도덕과 상식이라는 나태한 먼지를 털어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의 허를 찌르지?' 반전, 글쓰기의 핵심입니다(p. 41). 글 쓰는 목적을 '순수하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랑과 연민, 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하는 걸 글 쓰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내 진실에 다가가기.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기.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써서 내가 다른 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쓰는 것입니다(p. 58). 나만의 문체를 찾는 법 이렇듯 번역은 수많은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죽었다'라는 문장만이 'My mother died'라는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과 글 사이에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지 '말아야'합니다. 도리어 틈을 더 많이 벌려야 합니다. 특히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일상의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경험과 직접 연결된 말, 머릿속에 가장 빠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이게 글쓰기의 독입니다. 경험과 연결된 언어는 생활언어에 속합니다. 절경을 보고 '와, 멋지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열 받네', 벽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아, 아파라', 피곤할 때 '아, 졸려' 이런 것들이죠. 그게 경험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현실적 감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생각과 글은 일대일 관계가 아닙니다. 경험과 글도 일대일 관계가 아닙니다. 'I don't know myself'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라고 쓰고 만족해(p. 107) 하는 게 아니라, 멈칫하고 이를 어떤 '문장'으로 '번역'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나만의 문체를 고민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나는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그립다' '내 속엔 수많은 타인이 앉아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따위의 문장을 떠올려야자 기만의 문체가 마련됩니다. 글을 여러 번 썼는데도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려운 것은 매 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썼기 때문 아닐까요. 멈춰서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번역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해 '낯선 언어'로 바꾸려는 자세로 쓰지 않으면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체에 대한 감각은 말에 대한 감각입니다. 말을 외국어처럼 쓰려고 해야 합니다. 술술 나오는 걸 과신하지 말고, 머뭇거리거나 더듬거리며 어렵게 나오는 말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 미처 나오지 않은 말을 갈망해야 합니다. 다행히(!) 생각에 비해 글은 느립니다.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쓸 수 있죠(p. 108). 간결한 마음이 명확한 문장을 만든다 이런 자세로 문장을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문장이 짧아집니다. 묘하게도 문장은 짧을수록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간결하게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결하게 쓰려는 마음을 갖추면, 길어도 생각이 명확히 담기는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헤어hair가 있어야 헤어스타일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데 머리모양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옷장에 옷이 몇 벌 걸려 있어야 상황에 맞게 멋을 부릴 수 있죠. 어느 정도 글이 쌓여야 자기 문체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문체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기 위해서는 '자기 글'이라는 옷을 여러벌 쌓아놓아야 합니다(p. 111). 저는 학생들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방식을 변형한 '15분 글쓰기'라는 걸 합니다(자유 글쓰기 free writing 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많이들 합니다). 온라인카페에 학생 이름을 하나씩 넣은 게시판을 만듭니다. 학생들은 아무 때나 들어와서 들어온 시간을 먼저 적고 글을 씁니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쓰되, 멈추지 말고 고치지 않고 쓰기. 어떤 학기에는 '글 쓰는 몸'을 만들어주겠다며 '100일 15분 글쓰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학생이 쓴 글의 내용, 형식, 분량 등 어떤 것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읽어보지도 않을 테니 마음껏 쓰되, 15분 동안 글 한 편을 끝까지 쓰라고 합니다(p. 154).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생각 15분 글쓰기는 도움이 될까요?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15분 글쓰기는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 가진 오해와 편견을 뛰어넘게 해줍니다.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생각'입니다. 정확 히는 '쓰지 않고 하는 생각'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늘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글감 찾기→ 마구 쓰기→ 고쳐 쓰기. '마구 쓰기'의 핵심은 '끝까지 쓰기'입니다.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어떻게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글쓰기'와 '생각하기'를 의식적으로 구분합니다. 앞뒤를 나누어 따로따로 작업합니다. 글을 쓰려고 어떤 글감을 택하겠죠. 그런데 그 글감으로 뭘 써야 할지 '정확히' 모릅니다. 뿌옇습니다. 처음에는 글감이 '뿌옇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글감으로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택했지만, 아직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뿌연 글감을 선명하게 만드는 건 '생각'이 아니라 마구 써내려간 '글'입니다. 그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생각에서 새로움이 나오는 게 아니라 쓴 글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늘 그랬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쓰고 나서야, 정확하게는 '쓰면서' 글감에 대해 할 말이 선명해집니다(p. 155). 생각을 먼저 한다고 글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이 튀어나오고,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이어지지 않는다고 요? 조금 기다려 보세요. 그래도 안 나온다고요?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고요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글이 스스로 글을 밀고 간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이 장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를 어떻게든 끝까지 씁니다. 그러곤 출력해서 큰 소리로 읽습니다. 읽으면서 두 가지를 살핍니다. 첫째, 내 글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흐르고 있는 가? 둘째, 읽으면서 '다른'(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걸 바탕으로 고칩니다. 하나의 결론을 향하지 않는 것들은 잘라냅니다. 무려 절반 가량이 잘려나갔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덧댑니다. 빨리 쓴 초고가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때로 쓰면서 선명해진다 글이 할 일과 생각이 할 일을 분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보기 바랍니다.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먼저입니다. 글이야말로 여러분의 삶에 형태를 부여합니다. 생각을 정 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뿌옇게 뒤(p. 156)엉킨 생각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글이 할 일에 여러분의 생각이 간섭하지 않도록 하세요. 생각은 진부합니다. 그러니 글쓰기 실력을 높이려면 무조건 초고를 빨리 써야 합니다. 저는 뼈에 사무쳐야 글을 쓰는 '형편없는 말'이지만, 글은 저에게 그래도 버티며 자유와 사랑의 길을 가라고 가르쳐줬습니다(p. 157).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말자 물론 수정을 거듭해 완성된 마지막 글이 앞의 글보다 나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맞춤법은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나아지긴 합니다), 다음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기대 속에서 성큼 발을 내디딘 겁니다. 새로운 글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 그 모험을 즐기는 겁니다. 한차례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와, 내 속에 이런 면이 있구나. 다 버릴 수 있어' 버리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가고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꽃은 사랑해도 지고, 잡초는 싫어해도 핀다는 삶의 이 치를 글쓰기에서 배웁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여러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합니다. 내 속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내 삶의 우여곡절도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에 다시 놀라기 위해(p. 167). 글의 정서가 느껴지도록 저는 글의 주제보다는 글의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따뜻한가 차가운가, 긍정적인가 비관적인가, 기쁜가 슬픈가, 경쾌한가 무거운가, 격정적인가 차분한가, 화려한가 담백한가 하는 느낌 말입니다. 그런 정서를 갖게 하려면, 독자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뭔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식당에 가득 앉은 손님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 하나를 찾아 그 사람만 그리듯이 글도 그래야 합니다. 독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려면 주제와 직접 관련 있는 캐릭터를 장면 속에 등장시켜야 합니다. 저처럼 평면적인 얼굴은 그림의 대상으로 포착되기 어렵습니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p. 184). 군중 속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과 사건이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1명(또는 2명)이듯이, 글에서도 하나의 캐릭터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조연입니다. 조연은 주인공이 주제를 향해 달려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주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건 과감히 지우거나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글감을 여러 개 떠올렸다고 그것들이 모두 같은 무게를 차지하면 안 됩니다. 나를 사로잡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p. 185). 좋은 묘사는 대상을, 세계를, 현재를, 감정을 충실히 감각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만끽하고 나면 친절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지지 않아서 잘 못하는 겁니다. 마음에 새겨진 걸 풀어내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대상을 만끽해야 합니다. 어제보다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실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됩니다(p. 197). 은유, 말의 세계를 짓는 망치 우리가 문학 하는 사람들에게 넘겨버린 게 바로 '은유를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걸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문학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온 은유를 우리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알려줘야 합니다. '언어가 세계를 건설한다'는 말이 가장 잘 적용 되는 곳이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은유는 낡은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세웁니다. 은유 없는 글쓰기는 맨주먹으로 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은유는 새로운 말의 세계를 건설하는 망치입니다(이것도 은유네요)(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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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4
  • 【북토크356】 글쓰기를 통한 상처의 치유
    사람은 왜 글을 쓰고, 말을 하는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자가치료 하려는 본능이다. 다른 글보다 자신을 많이 노출하는 타인의 글을 읽고 공감하면서 우리도 치유를 경험한다. 이것이 에세이를 쓰고 읽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정신의학과를 찾은 것은 사건이 일어나고 10여 년이 지나서였다. 처음 내원한 이유는 신체형장애 somatoform disorder 때문이었다. 내과적 이상이 없는데도 나는 수년째 다양한 신체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을 찾기 직전에는 간헐적이고 갑작스러운 복부통증, 식사가 어려울 정도의 소화불량, 혀가 불타는 듯한 구강작열감증후군, 수면중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하지불안증후군, 그 밖에도 불면증과 공황발작을 겪고 있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내과 의사들의 권유에 따라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1년이 지난 뒤 내가 받은 추정 진단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e stress disorder, PTSD와 2형양극성장애bipolar II disorder였다. 정신의학과에 다니게 된 표면적 이유는 신체형장애였지만 실은 내밀한 동기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와도 같았다. 나를 이해하기, 그리하여 나를 벗어나기. 치료가 그저 의사에게 의존하거나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벗어난다는 것은 힘(p. 21)을 지니는 일이었다. 힘은 단순한 능력이나 역량이 아니며,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소유한 자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여성이, 특히 외상기억을 가진 여성이 힘을 얻으려면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은 안온한 세계를 스스로 부수어야 한다. 타자가 파괴한 자신을 복구하고, 식민화된 몸과 정신으로부터 탈주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헐벗은 땅에 헐벗은 벽을 세워 올리는" 일인지 모른다. 나에게 그 길을 알려준 여성의 이름은 안나 오다. 나는 이 이름을 장마르탱 샤르코, 피에르 자네, 요제프 브로이어, 지크문트 프로이트처럼 현대 심리치료의 근간을 만든 위대한 아버지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그는 브로이어의 이름 없는 환자로 팔다리의 마비, 시각장애, 청각• 언어 장애, 환각, 의식상실 등 스트레스로 인한 다양한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를 겪고 있었다(p. 22). 내 나이 열세 살, 남자 동급생들은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쳐 속옷을 보곤 한다. 여자아이들이 모두 바지를 입자 이번에는 하의를 끌어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허리가 딱 맞는 청바지를 입고 주변을 경계하며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하지만 체육 수업이 시작되기 전, 방심한 채 운동장에 서 있다가 장*혁과 김*현에게 속수무책으로 그 짓을 당하고 만다. 헐렁한 고무줄로 만든 체육복은 벗겨지기 쉬운 옷이라 주의가 필요한데도, 다른 여자아이들은 수치 스러운 일을 당할까봐 무리를 지어 있었는데도, 나만 외따로 서서 딴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달려온 장*혁과 김*현이 내 체육복 바지의 허리춤을 움켜쥔 뒤 끌어내린다. 이때 장*혁의 손이 팬티를 함께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햇볕이 쨍쨍한 운동장에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서 있게 된다. 허벅지에 걸쳐진 바지를 황급히 추켜올리지만 몇몇 아이가 나의 그곳을 봤을 것 같다. 체육시간이 끝나(p. 113)고 여자아이들이 교사에게 이 일을 알린다. 교사가 나에게 말한다. "*혁이와 *현이가 너를 좋아하나보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또다른 '놀이'가 유행한다.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가 도망가는 것이다. 두세 번 그런 일을 당한 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긴다. 나와 함께 하교하는 *미는 2년 전이던 열한 살 때 월경을 시작했고 가슴이 여자 어른처럼 불룩하다. *미가 나에게 자신의 아래쪽이 털로 수북하다고 말한 다음부터 나는 그 아이가 낯설게 느껴진다. 어느 하굣길,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돌진한다. 한 아이가 *미의 가슴을 만지는 동시에 다른 아이가 *미의 사타구니를 움켜쥔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미를 일으켜세우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 낀다. 남자아이들이 돌아와 나에게도 같은 짓을 할 까봐 겁이 난다. 더는 *미와 함께 다니고 싶지 않다. 열다섯 살, 우리는 발육 상태와 무관하게 브래지어를 착용하라고 강요받는다. 이 규칙을 열렬히 수호하는 사람은 젊은 남자인 과학 교사다. 그는 지휘봉을 들고 교정을 돌아다니다가 아무 학생이나 불러(p. 114) 세워 지휘봉 끝을 학생의 등에 대고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훑는다. 지휘봉에 브래지어끈이 걸리면 그냥 지나가지만 걸리지 않으면 한참 동안 꾸짖는다. 가끔 그는 여학생의 팔 안쪽에 손을 넣어 겨드랑이와 가까운 부위를 꼬집듯이 주무른다. 아이들 사이에서 는 그 부위의 살이 가장 연하다는 말이 나돈다. 열일곱 살, 밤늦게 학원이 끝나고 버스를 탄다. 귀가하는 학생과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버스는 만원이다. 나는 뒷문 근처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교복 치마 뒤쪽이 스르르 올라가는 느낌에 화들짝 놀란다. 사람들이 많아서 옷이 쓸려 올라갔겠거니 생각하며 치마를 끌어내린다. 잠시 후 다시 치마가 올라 간다. 뜨끈하고 축축한 손바닥이 내 허벅지 안쪽을 더듬거린다.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뒤를 힐끔거리다가 웬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그 남자는 재빨리 뒷문으로 내린다. 열여덟 살, 이른 등굣길에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한적한 골목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른다. 학교에 하나뿐인 공중전화는 늘 아이들로 북새통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젊은 남자가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술냄새가 끼친다. 그는 수화기 너머의 여자에(p. 115)게 애원하다가 고함을 지르고, 징징거리다가 화를 낸다. 그러다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나를 향해 소리친다. "씨발년아, 꺼져!" 열아홉 살, 친구와 식당에 갔다가 가게 바깥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간다. 변기에 앉으려고 옷을 내리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 칸막이 위를 올려다본다. 거기, 남자의 얼굴이 있다. 눈만 내놓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화장실을 뛰쳐나온다. 식당으로 달려가 방금 있었던 일을 주인에게 말하고 그와 함께 다시 화장실에 간다. 옆 칸의 변기는 뚜껑이 닫혀 있고 그 위에는 신발자국이 찍혀 있다. 주인이 근처를 둘러보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식당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들어와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간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그를 알아본다. 하지만 끝내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나의 청소년기, 이차성징이 나타난 뒤부터 성인 여성이 되기 전까지 대략 6~7년 동안 벌어(p. 116)진 일의 '목록'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목록이고, 세부적인 사항을 묘파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목록이며, 내가 느낀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목록이다. 또한 성인 여성이 된 이후에 벌어질 사건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해서 본격적인 폭력의 예고편처럼 느껴지는 목록이다. 어릴 때부터 겪은 일상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은 나에게 자기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불쾌한 일이 생기면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를 오해하게 만들었는가? 나를 헤프게 여길 여지를 주었는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 그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는가? 이 질문은 나의 목소리이자 타인의 목소리였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의구심 섞인 다그침이 돌아올 것 같았다. '확실해? 네 잘못은 없어? 상황을 부풀려서 말하는 건 아니야?' 나는 증언하기도 전에 상상 속 목소리에게 추궁당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정말 상상 속에만 존재할까?) 왜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왜 오랫동안 그 일들에 관해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p. 117)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일인 줄 알았기 때문에.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일에 관해 목록을 만든 것은 로라 베이츠의 『목록』을 읽고 나서였다. 베이츠는 서문에서 자신을 향한 농담, 장난, 놀이, 평가, 혐오, 차별, 희롱, 추행의 역사를 열 페이지 가까이 열거한 뒤 말한다. 이 일은 모두 연관되어 있다고(p. 118). 장례식장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이것이다. 피피는 몇 개의 뼛조각이 되어 소각로를 나왔고, 직원은 그것을 수습해 구석의 탁자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믹서기가 놓여 있었다. 말릴 틈도 없이 그는 뼛조각을 믹서기에 넣고 전원을 눌렀다. '눈을 의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으로 정확히 이해했다. 피피가 믹서기 안에서 갈리고 있었다. 지금도 내가 본 장면을 의심한다. 정말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까? 그날의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산소방, 빨리 가세요, 분홍색 수의, 고급형 유골함, 믹서기. 그날 이후에도 종종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이를테면 피피의 옷과 장난감을 깨끗이 빨아 상자에 넣으며 나는 생각했다.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깨달았다. '피피가 돌아오면, 필요할 테니까' 소각로에 불이 켜지던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그 아이를 산 채로 불태웠어.' 이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비논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문(p. 140)장은 피피가 소각로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미지로 이어지고, 이미지는 다시 문장을 강화한다. '내가 그 아이를 산 채로 불태웠어.' 반면 사람들은 나에게 현실을 상기시키려 안달이 난 듯했다. 그때마다 화가 났다. 피피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교회에 나간 날,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영혼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죽으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부여하고 천국을 허락한 존재는 인간뿐입니다." 목사님은 내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피피가 천국에 가기를 매일 기도했던 나는 분노했다. 그리운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이면, 천국이 무슨 소용이지?(p. 141). '솔직한 글'이라는 말에는 때로 환상이 덧씌워 있다. 독자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타인의 벌거벗은 자아와 마주한다고 느낄 수 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에세이는 '나의 아픔을 솔직하게 재현하는 장르'라기보다 '솔직하고 싶은 욕망과 솔직할 수 없는 한계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글쓰기'에 가깝다. 때로 글을 쓰는 이는 에세이라는 영토에서 자기 고통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위치에 놓인다. 전자가 머뭇거리는 글쓰기라면, 후자는 정 치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이 요청되는 복잡한 자리다. 고통의 재현은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특정한 해석에 의한 구성이다. 아픔은 그 자체로 중립적 경험이 아니며,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주체(누가 말하는가?)와 해석되는 대상(누구의 고통 인가?) 사이에 권력 구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 같은 맥락을 고려하면 에세이는 '솔직함'을 명목으로 자신(그리고 연루된 타인)에 대해 모든 것을 발설하는 장르가 아니라, '정직함'을 윤리의 기준으(p. 214)로 삼는 장르여야 하는지 모른다. 솔직함이 말해지지 않아야 할 것까지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에 자주 굴복한다면, 정직함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남길지 스스로를 집요하게 추궁한 끝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이는 나의 고백에 연루된 타인의 비밀을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이나, 누군가의 '기억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이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무엇일 때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것, 유보한 채 기다리는 것도 정직함의 한 방식일 것이다. 고통에 관한 증언이 폭력이나 분출이 되지 않도록 '말함'과 '말하지 않음'의 경계에서 타인을 상상하는 일, 에세이의 균형은 솔직함이 아니라 그 상상력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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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4
  • 【북토크355】 세계의 장례 방식은 다양하다
    이것은 미국 여자 장의사가 세계를 돌면서 장례문화를 살펴보고 쓴 책이다. 태어난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많은 국가와 문명이 다양한 장례예식을 갖고 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더 바뀔 것이다. 폴저스 커피통에 담길 만한 양의 유해만 남기는 전형적인 상업적 화장에 비하면 이 잿더미에 쌓인 재가 확연히 더 많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리는 이 뼈를 '분쇄기'라 불리는 은색 기계에 넣고 갈아서 "알아볼 수 없는 뼛가루가 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유가족에게 좀 더 크고 알아볼 수 있는 뼈를 돌려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로라의 친구 몇몇이 재의 일부를 갖고 싶어 했고, 남는 재가 있다면 장작 주위의 언덕이나 산속 깊은 곳에 뿌리게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걸 좋아하셨을 거예요." 제이슨이 말했다. "이제 엄마는 세상 어디에나 계셔요." 나는 어제 화장 후 뭔가 달라진 게 있느냐고 제이슨에게 물었다. "지난번 여기를 방문했을 때는 엄마가 장작불을 보여주려고 저를 데려오신 거였어요. 전 혼란스러웠죠. 내가 나중에 저기(p. 46) 저 벤치에 앉아서 우리 엄마를 혼자서 화장하겠구나 생각했어 요. 너무나 병적으로 보였어요. 사흘 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러 크레스톤에 가고 있나 생각하니 끔찍하더군요. 하지만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네가 오든 안 오든, 이게 내가 내 몸을 위해 선택 한 거란다.'" 제이슨이 어머니 시신을 밤새 지키기 위해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장할 때가 되자 그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어머니를 사랑했던 모두가 그를 기꺼이 지탱해주었다. "그게 내 맘을 움직였어요. 그게 바로 달라진 점이죠." 잿더미 위에 구부정히 몸을 굽힌 채로 맥그리거가 로라의 아들 제이슨에게 그들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는 열을 가한 다음에 뼈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작은 뼛조 각을 손으로 직접 부수면서 보여주었다. "이게 뭐죠?" 제이슨이 잿더미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끄집어 내며 물었다. 그건 로라의 시신을 장작더미 위로 가져왔을 때 로라가 차고 있던 스와치 시계의 반짝이는 앞면이었다. 장작불의 열 때문에 구부러져 무지갯빛을 띤 시계는 오전 7시 16분에 영원히 멈춰 있었다. 장작불이 로라를 집어삼킨 바로 그 순간이었다(p. 47). 스페인은 사후에 대한 개념을 거의 친환경적으로 구성하는 데 능하다. 우리는 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는 중에 숲을 지나쳤다. 물론 지중해와 이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로 이뤄진 숲이다. 로케스 블란케스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주위에 가족들의 재 다섯 함을 묻어, 그야말로 그 나무를 '가족 나무'로 만든다. 그들은 스페인 최초로 이런 선택권을 주는 묘지이다. 로케스 블란케스의 가족 나무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디자인 회사가 만들어 널리 인기를 얻은 생물 분해성 유골 단지 '바이오스 언'과 비슷하다. 여러분은 아마 SNS에 이 유골 단지의 광고가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이오스 언은 커다란 맥도널드 컵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는 흙과 나무씨가 들어 있고 화장한 유해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 바이오스 언에 관한 가장 인 기 있는 기사 중 하나는 "이 놀라운 유골 단지로 말미암아, 당신은 죽어서 나무 한 그루가 될 것입니다!"이다. 참 좋은 생각이고, 실제로 제공된 흙에서 나무가 자랄 수도 있지만, 섭씨 980도가 넘는 화장 과정을 마치고 남은 뼈들은 무기물인 단순 탄소가 되어버린다. 유기적인 모든 것이(DNA 포함) 타버려 미생물이 남아 있지 않은 재는 이미 식물이나 나무에 아(p. 146)무런 쓸모가 없다. 물론 영양소가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배합은 식물에 전혀 적합하지 않고, 생태적 순환에도 기여할 수 없다. 바이오스 언 회사는 유골 단지 하나에 145달러를 받는다. 바이오스 언이 가지는 상징성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상징적이라 하여 사람이 나무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p. 147). 폰타넬레를 묘지라 부르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실제로는 하얗고 널찍한 지하 동굴, 정확히 말해 응회암 채석장보다(p. 200) 조금 나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응회암 동굴은 17세기의 흑사병 희생자부터 1800년대 중반에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까지, 나폴리의 가난하고 이름 없는 망자를 묻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1872년에 가에타노 바르바티 신부는 폰타넬레 묘지에 쌓인 뼈들을 정리하고 순서대로 모으고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나폴리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 일을 도우러 왔다. 그들은 한쪽 벽에 두개골을, 다른 한쪽 벽에는 골반뼈를 쌓는 일을 하면서 착한 천주교도들이 으레 그렇듯, 이름 없는 망자를 위해 기도했다. 문제는 두개골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름 없는 두개골을 둘러싸고 헌신적인 숭배가 일어났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들의 '페젠텔레', 즉 '가엾은 사람들'을 찾아 폰타넬레 묘지에 오곤 했다. 그들은 몇몇 두개골들을 '골라' 깨끗이 닦고 그들을 숭배하는 사당을 세우고 봉헌물을 갖다 놓고 잘되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새 이름을 갖게 된 두개골은 주인의 꿈속에 나타나곤 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969년에는 나폴리 대주교가 망자 숭배는 '이단'이며 '미신'이라는 칙령을 내리고 이 묘지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교회에 의하면, 연옥에 갇힌 영혼들(이곳에 있는 이름 없는 망자들 같은)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지만, 이름 없는 망자들이 산 자에게 호의를 베풀 만한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산 자들은 자신의 삶이(p. 201) 달라지길 바라며 간청했다. 학자 엘리자베스 하퍼는 망자를 숭배하는 움직임이 사회적 갈등의 시기에, 특히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전쟁에서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하고 눈에 띄게 크게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 여성들이 "가톨릭교회 내에서 권력과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안드레스 베도야였다. 그는 미국에서 1만 461킬로미터나 떨어진 라파스에 살면서, 나티타가 "남성들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는 저 너머의 세계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특히 영험이 있다."고 묘사한 예술가였다.) 가톨릭교회가 2010년에 폰타넬레 묘지를 다시 연 뒤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살피기는 했지만, 망자 숭배는 사라지지 않았다. 백골의 바다 속에서 여러 가지 색채가 뿜어져 나왔다. 형광 플라스틱 묵주, 붉은 유리 양초, 갓 주조한 황금색 동전들, 기도문 카드, 플라스틱 예수상, 심지어 복권까지도 다 이 폐허에 뿌려졌던 것이다. 망자 숭배를 하는 새로운 세대는 여기서 가장 강력한 '페젠텔레'를 발견했다(p. 202). 내가 여행했던 모든 곳에서 나는 이런 '죽음을 위한 공간'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주변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느꼈다. 일본의 루리덴 납골당에서는 연청색과 자주 색으로 빛나는 불상 영역이 나를 지지해주었다. 멕시코의 묘지에 서는 수만 개의 깜박이는 호박색 촛불이 밝히는 쇠 울타리가 나를 떠받쳐주었다. 콜로라도주의 불타는 장작에서는 높이 치솟는 불길에도 조문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멋진 대나무 울타리 속에서 힘을 받았다. 이런 곳 하나하나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건 슬픔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 말이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절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네가 보여. 저 멀리서 날 기다리고 있구나. 너를 강하게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날 무너뜨리게 하지 않을 거야." 서양 문화에서 슬픔에 잠긴 사람은 어디서 지지와 위로를 받는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성당, 절 같은 종교적인 공간에서 위로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이들 입장에서 일생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는 넘기 힘든 장애물로부터 도전장을 받았을 때이다. 이런 곳으로 우선 병원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병원을 차갑(p. 226)고 살균된 호러 쇼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여긴다. 최근 만나본 나의 오랜 지인 역시 병원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도리어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간 내게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는데, 얼마 전에 그녀의 모친이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병환이 길어지자, 지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생기는 욕창을 막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공기주입식 매트리스에 누워서 마지막 몇 주를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던 간호사들이 내 지인에게 어머니 시신 옆에 좀 더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몇 분 후 의사 한 사람이 방으로 급히 들어왔다. 일면식도 없는 의사였는데, 그는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들어와 어머니의 진료기록부를 잠깐 읽더니, 몸을 숙이고는 공기주입식 매트리스의 플러그를 잡아 빼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은 위로 튀어올랐다가, 매트리스에서 공기가 슉 하고 빠지자 좀비처럼 이쪽저쪽으로 거칠게 움직였다. 의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유유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유가족을 위한 지지나 배려와는 거리가 먼 경험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자마자 가족들은 밖으로 내쳐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장의사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장례업체인 서비스 코퍼레이션 인터내셔널의 한 간부는 "미국의 장례업계는 정말이지 관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최근 인정했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어머니 시체를 7000달러짜리 관에 넣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이 단순 화장 쪽으로 돌아서면서, 업계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 했다(p. 227). '장례 서비스'를 판매하던 것에서, '다감각 체험실'에서의 '모임'을 판매하는 것으로 말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청 각 도구를 사용한 체험실에서는 새로 깎은 싱그러운 잔디 냄새를 포함해, 골프 코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골프 애호가였던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골프장뿐만 아니라 바다나 산, 축구 경기장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아마 가짜 '다감각' 골프 코스에서 장례를 거행하는 데 수천 달러를 지불하면, 유가족은 당장은 슬픔을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의구심이 든다. 내 어머니는 최근 70세가 되셨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연습 삼아 미라가 된 어머니의 시체를 인도네시아의 타나토라자 사람들이 하듯이 무덤에서 꺼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유해를 끌어안고 일으켜세운 뒤,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어머니의 눈을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해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제 내가 이런 식으로 과업을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례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슬픔 속에 가둬 두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젓가락으로 뼈 하나하나를 정성껏 집어 유골함에 담는 의식부터, 제단을 만들고 1년에 한 번 혼령을 부르는 의식이나 심지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깨끗이 해서 다시 세우는 일까지, 이런 활동은 유가족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이(p. 228)는 유가족이 슬퍼하는 데 도움이 되고, 슬퍼하는 것은 치유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의례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먼저 참석하라. 그러면 의례의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화장을 참관하겠다고 고집하고, 매장을 보러 가겠다고 고집하라. 설령 관에 누 운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것이 고작일지라도, 함께 참여하겠다고 하라. 어머니가 좋아하던 색깔의 립스틱을 발라드리겠다고 주장하라. 그걸 바르지 않고 무덤에 들어가는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립스틱 말이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목걸이나 반지에 넣겠다고 하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들은 다 인간적이고도 용감한 행동이다. 죽음과 상실 앞에서 사랑을 보여주는 행동이니까. 나는 안다. 내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마음이 편안할 거라는 사실을, 그것은 바로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례란 쥐 죽은 듯 고요한 야밤에 몰래 묘지에 슬쩍 들어가서 미라가 된 시체를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의례란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를, 그로 인한 나의 슬픔을 환한 대낮에 꺼내놓는 것이다. 이웃과 가족이 함께, 공동체가 곁에서 지지해주는 가운데 어머니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다. 햇빛은 모든 것을 소독해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 수치심, 슬픔을 소독할 수 있도록 햇빛 속으로 끌고 나오는 어려운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p. 229). 옮긴이의 말 살다가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천차만별이다. 저마다 몸담고 사는 그 지방, 그 나라의 고유문화가 있을 것이다. 각자가 속한 문화권 안에서는 자신의 장례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세계에서 미국인이 번역서를 제일 안 본다는 말도 있는데, 그만큼 자국 중심적인 사고가 강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죽음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케이틀린 도티의 행보가 각별한 것은, 죽음을 부정하는 미국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대안을 찾아 나선다는 데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하던 일을 놓고 길을 떠난 저자는 미국인으로서 예외적이고 열린 존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저자가 이토록 죽음에 천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도티의 유(p. 232)머와 섞여 지금의 미국 문화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서명 기사가 이 책을 잘 요약하는 것 같다. 젊은 여성으로서 시체를 화장하는 장의사로 여러 해 일한 경험을 1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 적나라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까지 쏟아낸 그녀는, 2권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에서는 시신을 대하는 색다른 방식을 보기 위해 각 대륙의 여러 나라를 직접 돌아보며 그 예를 열거한다. 여기서 본보기 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외 화장,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망자의 날 행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인간 부패 연구소, 스페인의 장의사, 일본의 죽음 관련 풍습, 볼리비아의 냐티타 축제이다. 종착지는 다시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고인을 사막 한복판에 흔적 없이 묻는 것이다. 인적 없는 사막 지대에 파묻혀 자취조차 남지 않는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파르시교도의 독수리 장례와 티베트의 천장을 얘기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묘지를 방문했던 일과 그때 느낀 점이 언급된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단지 텍스트를 통해 죽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나라에 찾아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장례에 참여하며 그 의례를 직접 체험했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속한 문화의 죽음 의례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죽음을 대하는 한국의 문화 역시 지난 수십 년간 많이 변화 하였다. 지금은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까운(p. 233) 과거와 비교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자기가 평소 눕던 침대에 누워 가족들 사이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집과 병원, 어디서 죽음을 맞는가, 어디서 죽음이 처리되는 가에 꼭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므로 우리가 이제 와서 없던 관습을 새삼 지어내어 인도네시아의 타나토라자 사람들처럼 할 수는 없다. 다만 생자와 망자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 수는 있다. 생자가 망자 옆에서 머물며 충분히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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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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