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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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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6-09
  • 【총회선거7】'내로남불’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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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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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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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8
  • 【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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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7
  • 【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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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 - 죽음학(생사학) - 가을이다. 어제부터 내리는 비에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 이 비가 내린 후에 가을의 정취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산마다 단풍이 여름의 초록을 벗고 붉게 타오르겠지. 이 가을에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일을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한다. 바로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제목으로 병원에서의 15년의 사역 경험과 목회상담학 논문을 중심으로 “죽음학(생사학)”에 대한 글들을 써 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논문의 내용이 중심을 이루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문을 그대로 옮겨올 생각은 없다. 페북의 성격에 맞게 논문의 내용 중에 꼭 필요한 것들과 병원 사역 중에 만난 실제적 이야기, 그리고 죽음학(생사학)과 관련하여 읽었던 여러 책들을 소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유는 독서 모임 ‘세함’에서 <위그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현재 나의 삶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서 급변하는 우리의 삶의 자리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정립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바쁘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그래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잘 살지도 못하고, 더더욱 잘 죽을 수도 없는 비참하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현실의 노예들이 된 것은 아닐까? 위그노들, 개혁자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 삶의 자리를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들의 삶은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도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라 할 것이다. 선교사로서 중국 실크로드 지역에 살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우연히 병원 사역에 몸담은 지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200여 정도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주면서 얻게 된 확신은 잘 죽는 문제는 결국 잘 사는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믿음 안에서 잘 죽고 잘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영생의 확신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깊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매순간은 동시에 죽음이 공존하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실존의 본래성을 목회자들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할 것이다. 아울러 목회자들이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서 사역을 할 때에 교회와 성도들도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며, 영원과 부활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 도전적깨달음을 통해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하던 중에 박사 학위 논문으로 목회자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연구한 것이다. 곧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죽음, 그 중에서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일반목회자, 선교사, 병원 원목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불안, 삶의 만족도 및 신앙성숙도 비교를 중심으로 설문하여 비교 분석하는 것을 토대로 한 내용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가장 먼저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며, 성도들이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고, 아울러 한국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연구함으로 한국 교회 안에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정립함으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부터 성경적 죽음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경적 죽음관 위에 형성된 인식의 기초 위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명을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을 정립하여 이 시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 첫째, 목회자들의 죽음의 인식에 대한 문제를 주요 주제로 다루기 때문에 죽음에 관한 많은 이론 중에서 목회자들이 꼭 알아야 할 죽음에 관한 제 이론을 중심으로 이론적 연구를 하였다. 목회자들이 꼭 알아야할 죽음의 인식에 필요한 이론으로는 죽음의 정의, 죽음에 대한 태도, 죽음에 대한 타 종교의 이론, 죽음에 대한 각 학문 분야의 관점 등이 있다. 둘째, 목회자들이 교회와 성도를 바르게 목양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기초가 분명하고 튼튼해야 한다. 특히 인간의 죽음은 기독교의 영생과 부활의 신앙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성경적 인간론·기독론·종말론을 통해 성경적 기초에 대해서 연구했다. 아울러 죽음은 결국 생명의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셋째, 한국교회 목회자들(일반목회자, 선교사, 원목)의 죽음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설문을 통해서 알아보았다. 곧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가진 죽음에 대한 인식 정도는 어떠하며, 목회자들 상호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앞으로 한국의 신학교와 교회가 죽음과 죽음 교육에 대해서 가져야 가치관과 목회상담적 자세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넷째, 한 사람의 죽음과 종말론적 신앙과 삶을 위해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목회자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하여 죽음과 목회자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곧 한 사람의 죽음에 있어서 목회상담자이며 삶의 상담자로서 목회자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결론적 대안으로 연구한 것이다. 다섯째,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연구한 결론을 내리면서 후속 연구를 위한 과제로서 앞으로 한국교회가 죽음준비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에 대해서 제언하면서 병원 원목들의 사역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 오피니언
    • 기고
    2022-10-09
  •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4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 4, 원목사역을 통한 임상적 경험 병원 사역 중에 가장 가슴 아프고, 목회자로서 힘든 일은 동료 목회자들이 과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말기 암에 걸려서 입원하는 것이다. 목회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40대, 혹은 30대나 50대에 말기 암으로 인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면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아울러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평생을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죽음 앞에서 전혀 준비 되지 못한 모습으로 오직 병이 낫기만을 원한다거나 죽음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전했던 복음을 부정할 때이다(그러나 일반적으로 긍정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가끔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15년 동안 병원에서 경험한 여러 사건들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해 준비되지 못하고,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임종을 맞이한 목회자들, 입술로 전한 말씀과 삶이 괴리된 안타까운 모습의 목회자들,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오직 죽어서 가는 천국만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나의 가슴 속에 아픔과 믿음과 사역에 대한 숙제로 남아 있다. ① 목사 A씨: 목사인 A씨는 말기 암으로 인해 임종을 맞으면서 마지막 유언을 “하나님은 안 계시니까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남겼던 죽음에 대한 극단적 부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말기 암으로 인한 마음과 육체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실망감,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면서 그런 극단적 부정의 상태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과 부활의 복음의 믿고 그 복음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목회자가 자신의 뜻하지 않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모습은 같은 목회자로서 우리가 입으로 전하는 복음의 능력이 무엇이며, 과연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죽음을 넘어 영원을 바라보는 참 믿음이 있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② 선교사 B씨: 선교사로 해외에서 사역을 했던 B씨는 젊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말기 암으로 인해 우리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또 다른 형태로 죽음을 거부한 경우인데, 날마다 친분이 있는 여러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쉬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했다. 물론 원목인 나에게도 하루에 두세 번씩 꼭 자기를 찾아와 기도해 주고 예배 인도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예배와 말씀 그리고 기도는 오직 병이 나을 것이며 다시 회복시켜 더 큰 선교(본인의 표현)를 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에게 묻는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목사님, 하나님이 나는 미워하시는지 아무 말씀도 안 하시지만 목사님에게는 말씀하실 것 같은데, 오늘은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다고 말씀 안 하셨나요?” 그분은 임종하는 날까지 죽음을 철저히 배제한 채 그렇게 사는 것만 소망하다가 아무런 죽음에 대한 준비도 없이 임종을 맞이했다. ③ 선교사 C씨: 선교사이며 미혼이었던 50대의 C는 하나님 앞에 섭섭함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자기 앞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말 것이며, 예배를 비롯한 기도조차 하지 못하게 막았다. 독신으로 살면서 평생을 하나님과 복음만을 위해 살았는데 이렇게 모진 질병에 걸리도록 한 하나님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한 권면과 믿음의 형제들의 방문에 대해서 입을 꼭 다물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질병과 함께 점점 마음이 닫히면서 급기야 모든 면회와 방문마저 거절함으로 인해 임종의 순간까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병원 사역을 통해 직접 경험한 많은 사례 중에서 대표적으로 목회자(선교사)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이다. 병원에서 사역을 하면서 목회자들이라고 해서 꼭 모두가 부활과 영생에 대한 신앙이 분명하며,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히려 현대의 과학과 의술을 맹신하면서 성경의 주님은 오직 질병을 치유하고 죽은 자도 살리는 주님, 곧 나에게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분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죽음의 문제는 어떤 사람이든지 직접적으로 겪어볼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최재락은 “죽음은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인 사건이지만, 한 개인이 경험하는 죽음의 특성과 상황이라는 측면에서는 특수한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진홍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고 이야기 한다. 즉 실존적으로 볼 때에 삶과 죽음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죽음이 다가오면 두려움 속에서 부정적이며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최재락은 “인간의 존엄성은 자기 자신의 삶의 특수성과 죽음의 특수성을 실현시킬 때 가능하다. 곧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주체로써 적극적인 자세로 죽음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특징은 죽음을 터부시하고 두려워하는 현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총체적 죽음의 위기 속에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김균진은 “인간의 세계는 생태학적 위기의 차원을 넘어 총체적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더 잘살기 위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경제 발전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그리고 물질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해 짐에 비례하여 죽음의 위험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곧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죽음을 우리 인간의 삶에서 점점 몰아내고 배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목회자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 연구가 필요한 것이며, 아울러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요소로 설명할 때에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① 죽음 앞에 선 인간이 누구나 존중 받으며,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의료적이며 사회적인 결정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부활과 영생에 관한 소망과 기대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데 있다. ②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성경적 깨달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죽음의 건전한 철학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될 것이며, 아울러 삶의 만족도도 매우 높아질 것이다. ③ 목회자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서 분명한 성경적 관점과 신앙을 갖고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④ 목회자들로 하여금 목회를 하는 중에 임종에 임박한 성도에게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목회상담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늘 차지하고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는 영적인 돌봄의 사역을 해야 한다. 아울러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족 간에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고 새로운 천국 소망을 갖도록 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죽음을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사용하셔서 가장 중요한 축복의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신앙이 바로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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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10-08
  • 【화제의책】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추태화 지음 | CKoBooks | 2012년 04월 16일 출간 책소개 나치 시대의 기독교를 연구한 책 『권력과 신앙』. 나치는 기독교를 정치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교회는 나치의 사이비 기독교 정책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민족 신앙의 토착화는 기독교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독일 기독교인들은 어떤 이유로 또 다른 독일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국가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개정판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추태화 박사는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독일 문예학, 기독교문학, 철학, 사회학(M.A.)을, 그리고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일 문예학과 신학을 공부했다(Dr.phil.). 현재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그동안 뮌헨에 있는 <현대역사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역사와 문화 분야를 연구하였다. 문학과 문화 비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맑고 풍요로워지기를 꿈꾸는 기독교 문화운동가이다. 탄탄한 이론과 현장성을 갖춘 저자는 여러 기독교 미디어에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기독문화 칼럼을 연재하여 왔고, 또한 기독교문화 분야의 동지들과 함께 <세계기독교문화연구원>을 통해 기독교문화 확산에 헌신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장에서 문화를 읽다』, 『기독교 영성에 비추어 문학 새롭게 읽기』, 『영화, 그 의미에 길을 묻다』,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상상력의 유혹』, 『대중문화 시대와 기독교 문화학』, 『21세기 기독교 인문학의 전망』, 『101가지 이야기 신학』, 『문화의 미로에서 길을 찾다』, 『태초에 문화가 있었느니라』, 『국가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등이 있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기독교 문예학, 문학과 신학 통합연구, 기독교 문화학과 문화비평, 문화연구 방법론, 독일 나치시대 등이다. 목차 제1부 I. 서언: 교회의 미스테리 / 16 II. 나치 민족 공동체와 독일 기독교 1. 히틀러와 기독교 / 22 2. 나치의 기독교 정책 방향 / 28 3. 고백교회와 교회 투쟁의 태동 / 33 4. 바르멘 신학선언 / 41 제2부 III. 민족 신앙 토착화와 독일적 신앙 1. 민족 신앙 토착화 / 48 1.1 나치의 신앙: 민족과 신화 1.2 “독일신앙운동”(DGB) 1.2.1 현상 1.2.2 하우어(J.W.Hauer)의 주장 2. 독일신앙운동(DGB)의 기독교 비판 / 56 3. 국가교회(Nationalkirche)의 이상 / 59 3.1 베르크만(E.Bergmann)의 주장 3.2 이단에서 신흥 종교로 IV. 민족주의와 기독교 1. 1933년도 이전 국가프로테스탄트 / 71 2. 제국기독교인(Deutsche Christen) / 74 2.1 루터의 영향과 튀링겐 2.2 호쎈펠더(J.Hossenfelder)의 주장 2.3 비네케(F.Wieneke)의 주장 2.4 “실용적 기독교”(Positives Christentum) 3. 기독교-독일신앙운동(Christlich-deutsche GB) / 94 3.1 현상 3.2 신학의 우경(右傾)화 3.2.1 고가르텐(F.Gogarten) 3.2.2 알트하우스(P.Althaus) 3.2.3 키텔(G.Kittel) 3.2.4 히르쉬(E.Hirsch) 제3부 V. 나치의 기독교 탄압 1. 기독교 탄압 조직 / 108 2. 기독교 정책기관 / 116 2.1 나치 정부 내 교계부 2.2 나치당 내 교계 담당부서 2.3 아이제나흐 연구소 2.4 나치신학자 그룬트만(W.Grundmann) 3. 제국기독교의 교단 장악 / 135 3.1 뮐러(L.Mueller) 주교의 선임 3.2 뮐러의 실용적 기독교론 3.3 제국기독교 정책 VI. 기독교 박해 4. 탄압의 구체적 사례 / 146 4.1 교계 지도부 위협 4.2 친나치 교수 및 학생단체 설립 4.3 신학 교육기관 축소 및 폐쇄 4.4 예배당 무단출입 및 사용 4.5 교회 헌금 규제 4.6 충성 헌장 강요 4.7 기독 청소년 강제동원 제4부 VII. 신학의 나치화 1. 성경론 / 159 1.1 구약 폐기론 1.2 신약의 게르만적 수용 2. 신론과 민족 신화 / 167 3. 기독론과 히틀러 우상화 / 169 4. 인간론의 대결_성경과 나치즘 사이에서 / 173 VIII. 신앙의 정치화 1. 하나님 나라에서 민족 집단주의로 / 176 2. 체제 복종으로서의 신앙 / 179 3. 성령론과 나치 세계관 운동 / 181 4. 종말론과 운명적 결단 / 182 IX. 기독교 문화의 왜곡화 1. 민족에 봉사하는 윤리 / 187 2. 교회 절기의 정치적 오용 / 190 3. 신앙 인물 편집 / 193 3.1 바울 사도 3.2 마이스터 에카르트(Eckart) 3.3 루터(M.Luther) 제5부 X. 개신교의 양심과 저항 1. 프로테스탄트 저항과 순교 1: 교계 / 201 1.1 니묄러(M.Niemoeller) 1.2 디벨리우스(O.Dibelius) 1.3 쉬나이더(P.Schneider) 2. 프로테스탄트 저항과 순교 2: 신학계 / 236 2.1 바르트(K.Barth) 2.2 틸리히(P.Tillich) 2.3 본회퍼(D.Bonhoeffer) 2.4 틸리케(H.Thielicke) 2.5 골비처(H.Gollwitzer) 3. 그 외 신앙지도자들 / 264 XI. 가톨릭의 양심과 저항 1. 바티칸의 대응 / 269 1.1 바티칸과 나치 2. 사제들: 저항과 순교 / 283 2.1 마이어(R.Mayer) 2.2 콜베(M.Kolbe) 2.3 델프(A.Delp) 2.4 메츠거(M.Metzger) 3. 교계 / 310 3.1 교계 지도자들 3.2 신앙인들 제6부 XII. 전후의 교회 재건 1. 연합군의 대 교회 정책 / 321 2. 교계의 탈나치화 운동 / 326 3.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 / 334 4. 다름슈타트 고백 / 339 5. 독일복음주의교회 교단(EKD) 결성 / 345 XIII. 맺는 말 / 348 참고문헌 / 352 부록 / 362 * 나치시대 교회사 책 속으로 - 나치 시대 풍경 “나치 시대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탄압한 시대였다. 나치로 가장한 기독교와 나치에 부역한 기독교인들이 나치를 반대하고 저항한 기독교인들을 탄압한 시대였다. 나치에 부역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이었고, 나치에 저항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이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나치당원이 된 기독교인들, 제국기독교인들이 고백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을 핍박한 것이다. 나치의 등장으로 독일 교계는 크게 억압과 저항이라는 구도로 나뉘었다. 교회 또한 분리되었다.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교권을 누리려는 교계와 불의에 항거하며 핍박을 감내하는 교계로 나뉘었다. 성경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교인들을 잘못된 나치 교리에서 보호해야할 사명감으로 <고백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나치에 의해 분리되었다. 과연 누가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는가. 결과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이 과연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런 역사가 어떻게 존재했었는지, 그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나치 시대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성 “만약 독일의 종교개혁 사상, 복음주의 신앙이 그 능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신앙의 회의와 신학적 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나아가 나치주의자들이 주동하였던 민족신화적 종교운동을 충분히 설득하고 회심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 기독교에 대한 히틀러의 속셈 “우리는 신앙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을 우리 고유의 운동에 유익하게 활용해야 하기에 (교회를 이용해야) 한다... 부활절은 더 이상 부활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개혁을 의미한다. 성탄절은 구세주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영웅적 모습과 자유의 정신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고백이 우리 국가에서 독일 혈통의 종족이 윤리와 도덕의 감정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한다. 정당은 신앙고백이 어느 특정한 신앙고백에 묶여있지 않는 한 실용적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한다. 정당은 우리 안과 밖에 존재하는 유대적이고 물질적인 정신과 싸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개인의 유용성보다는 공공의 유익성이 앞선다.” - 나치성향의 실용적 기독교론 “우리는 실용적 기독교의 토대 위에 서있다. 우리는 긍정적이며 인종에 맞는 그리스도-신앙을 고백한다. 그것은 독일적 루터-정신과 영웅적 경건성에 꼭 들어맞는다.” “... 우리는 인종, 민족, 국가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맡겨진 삶의 질서를 보았다. 이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인종의 혼합은 거부되어야 한다. 독일 해외 선교는 오래전부터 그 경험을 통하여 독일 민족에게 강조하고 있다. “독일 인종을 순수히 지켜라!”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인종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종을 심화하고 성화한다.” - 나치에 저항한 신앙고백: 고백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증거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이며, 우리가 들어야하며, 우리가 삶과 죽음에서 신뢰하며 순종해야할 그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잘못된 교리를 거부한다. 마치 교회가 하나님의 바로 이 말씀 외에도, 그 유사한 경우에도 말씀 선포의 근원이 되거나,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다른 어떤 사건이나 능력, 형상이나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처럼 인정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출판사 서평 교회와 성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 격동의 시기 1930년대, 한국은 일제 식민지 탄압에 신음하는 가운데 기독교는 애국, 구국, 민족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는 나치 정권, 기독교를 왜곡, 파괴하여 권력을 굳히려는 치밀하고 교활한 꼼수를 펼친다. 이에 온 몸과 마음으로 저항, 순교하기까지 믿음과 교회를 지킨 독일 신앙인들이 일어난다. 나치 정권 아래서 오판(誤判)으로 그늘진 독일 교회 ! 악마적 히틀러 통치 아래서 정권과 악수하여 야합, 왜곡, 어용에 춤추다 결국 조국을 전쟁으로 내몰고, 분단의 비극(1945)을 막지 못했다. 오판이 자초한 심판과 비극의 결과,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과 교회를 지킨 신앙인들이 있었기에 독일 기독교의 전통은 면면히 계승되어 통일(1990)이라는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입는다. 이 책을 만든 이유| 저자는 현대 교회가 처한 ‘위기 상황’이 어떠한 경로에서 기인했는지 고뇌한다. 그의 관심은 1930년대 독일로 향한다. 당시 한국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는 가운데 기독교는 애국, 애족, 구국 등 민족주의 운동에 헌신하며 백성들을 감싸안았다. 독일은 어땠을까? 독일도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있었다. 극우파 나치주의가 득세를 하면서 히틀러를 권력의 최상부에 앉히려고 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에 오르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독일 기독교계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에서는 친화정책이요 다른 한쪽에서는 탄압정책을 썼다. 일부 선지자적 시야를 갖고 있던 목회자, 성도들은 나치주의가 반기독교적인 것을 간파하여 저항 전선을 펴나갔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 기독교인들은 나치주의가 교회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고, 국민을 위한 정권이라고 여기게 되어 옹호, 야합하기에 이른다. 나치와 나치 성향의 제국기독교인들은 “실용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국가에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오판(誤判)이었다. 이 오판을 기반으로 히틀러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탄압정책을 펼쳤고, 결국 교회는 그의 무력 앞에 굴복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교인들이 저항하다 핍박받고 순교에까지 이르는 역사가 펼쳐지게 된다. 이 모습은 현대 교회가 어떻게 오판으로 인해 본질을 상실했으며, 반면 고백교회를 통해 증거된 신앙 고백에서 교회와 성도의 본질이 어떠해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1930년대 역사적 실증 자료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려 했으며, 우리 시대의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교훈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책속으로 추가 - 저항운동을 이끈 니묄러 목사 “교회는 교회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의회적 제도와 싸워야 하며, 과거와 현재에 등장한 교회정당과 관계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선거가 공시되었기 때문에 우리 복음주의 교인들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고백교회를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간섭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교회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증언된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게 다시 고백해야 하는 사실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지금 제국기독교인의 지도자들이 매일 주장하고 있듯이 교회는 교회 안의 잘못된 교리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새롭고 젊은 교회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정치적이거나 교회정치적인 행동이 발붙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로부터 나오는 속죄와 믿음과 형제적 사랑의 능력이 언제나 살아있는 새로운 교회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 능력이 관료주의에게 짓밟히지 않으며 대중운동에 시달리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원합니다. 우리는 새롭고 자유로운 교회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 교회는 모든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단지 교회가 완전한 자유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만 교회는 독일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 디벨리우스 목사 “사람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기독교는 교회를 세우게 되어있다. 그런데 아리안족의 게르만화된 기독교는 ‘민족’을 세웠을 뿐이다. 신앙을 위한 투쟁에서 기독교는 민족에 뿌리를 두는 한 교회로 살아있는 기독교 앞에서 붕괴할 수 밖에 없다..” - 전후 독일 신앙인들의 공적 속죄(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 “..... 우리는 이 모임을 통하여 우리 민족이 고난의 크나큰 공동체 안에 있을 뿐 아니라, 실수의 연대성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우리는 말해야합니다. 우리를 인하여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끝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이 자신들의 교회에서 종종 고백하는 것처럼 오늘은 전 교회의 이름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하에서 국가사회주의라는 폭력체제 속에서 그 가공할 얼굴을 내민 정신에 대항하여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더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으며, 더 신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으며, 더 기쁘게 믿음생활하지 못했으며,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고발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새로운 시작이 그 발을 내디뎌야합니다. 거룩한 성경 말씀에 기초하고, 교회의 오직 한 주님을 진정한 믿음을 다해 바라보며 나갈 때에 그동안 신앙과 관계없던 영향들을 정화하고 질서를 잡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교회에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시며, 우리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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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2-10-07
  • 자나깨나 말 조심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48초 만난 후 한 비속어 발언이 방송에서 공개됐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이 15시간 지나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만, 이제는 대통령도 자신이 뭔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보도한 방송국을 조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자신을 비속어로 부른다고 말한적이 있다. 즉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파문은 평소 그의 언어습관으로 결국 터질게 터진 것이다. 교계 기자로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목사, 장로들을취재한다. 아직은 말실수를 한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 다행이다. 요즘은 기자들이 취재지에서 녹음을 하거나 녹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말실수는 '빼박'이 된다. 지도자나 교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매사 조심해야하니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공인이고 알려진 인물이라 기자들이 취재해주니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한다. 그래도 총회나 행사장을 취재하며 모든 총대들의 말과 행실 수준이 높은 것을 보았다. 참으로 다행이다. 앞으로도 품격있는 언행으로 교단의 품격이 잘 유지 되기를 바래본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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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28
  • 주다산교회 집사님, 감사합니다!
    107회 총회가 열린 지난 9월 21일 수요일 저녁 7시 총회 장소인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 시무)에서 권순웅·배광식 목사 이취임 감사예배 후 『샬롬부흥 한국교회』 창작 뮤지컬 취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늦었다. 함께 차로 이동하기로 한 팀은 미리 가버렸다. 숙소까지는 1.8키로미터라 걸어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고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총회 행사에 봉사하는 한 여집사가 선뜻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신다고했다. 덕분에 본 기자와 기독신문 사진 기자는 편히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이름모를 여집사는 차를 운전하면서 권순웅 담임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에 대해 쉬지 않고 말했다. 새가족이 등록하면 권 목사님이 심방을 하고, 또 금요일에 해외를 다녀오시더라도 공항에서 교회로 바로 와 금요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시는 등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이시라는 것이었다. 본인도 등록한지 많이 되지는 않았지만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숙소에 가깝게 데려다 주고 가셨다. 성함을 여쭤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초면인 기자에게 차량 봉사를 해주시고, 권순웅 담임목사와 주다산교회를 자랑하는 것을 보고 권 총회장이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총회장이든 어떤 임원이나 부장이든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양지이며 교인들이다. 주님은 “내 양을 치라”고 목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목회를 잘 하고, 교인들에게 존경 받고 인정 받는 목사가 총회를 섬기고 봉사해야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자랑하는 교인을 갖는 것이 목회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이름모를 집사님께 받은 사랑과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애정과 자랑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이렇게 글을 써본다. 행사 후 본당 출입구 맞은 편 정문 쪽에서 봉사하셨던 이름모를 집사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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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24
  • 【기자의생각】부끄럽지 않은 총회 지도자를 원한다
    치열했던 제107회 총회 부총회장 선거가 곧 있게 된다. 그리고 두 후보 중에 한 명이 당선된다. 조용했던 선거전이 격렬해진 계기는 전남제일노회가 오정호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무리하게 고발한 일이었다. 같은 사안을 쪼개기하고 또 허위 사실과 반인륜적인 것까지 포함해 22가지로 고발했다. 반작용으로 결국 이것을 시작으로 한기승 목사의 허물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오정호 목사는 총신대에 3억원을 기부한 도너월 행사 참석에 대해서만 사과했다. 결국 나머지는 다 무혐의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기승 목사는 어떤가? 학력 위조, 교회간 거리 위반, 광주중앙교회 역사 찬탈, 뇌물공여 미수(부목사가 결국 2억을 챙김), (도우미 나온) 노래방 두 차례 출입 등 한 목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한 목사는 이에 대해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고 변명과 자기 주장만했다. 그래서 언론은 계속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혹시 한 목사가 부총회장이 된다해도 이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면죄부가 주어질 리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더 크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게 될 것이다. 지금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을 생각하면 성 추문이 있었던 르윈스키가 연상되지 않던가? 인터넷 시대에 이 모든 정보는 다 노출이 되어 있으니 조금만 검색해 보면 다 나오게 되있지 않은가? 결국 한 목사의 부끄러운 일은 우리의 부끄러움, 교단의 부끄러움이 된다. 그리고 한 목사와 유사한 일을 해도 이제 핑계 거리가 생긴다. 간음한 목사들이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서도 용서 받은 사건에 의지하고, 자식을 세습하는 목사가 구약의 제사장도 세습했다고 성경을 인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건희 여사의 석사, 박사 학위 표절 문제가 심각하다. 숙명여대 석사논문은 표절률이 최소 48.1%이고, 국민대학 박사학위 논문 표절률은 43%이다. 그런데도 국민대는 표절이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다 알지 않는가? 살아있는 권력을 감히 누가 심판하겠는가? 그러니 박사학위를 원하는 사람은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빨리 국민대에 가서 표절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면된다. 이미 선례가 있는데 누가 문제 삼을 수 있겠는가?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교단에도 생긴다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결론은 부끄럽지 않은 총회 지도자를 선택해야한다는 것이다. 총대들의 상식을 믿는다.
    • 오피니언
    • 논단
    2022-09-18
  • 【기자의생각】 요셉을 생각한다
    지난 9월 13일 위원장 김진하 목사의 예수사랑교회에서 총회준비위원회 3차 전체회의가 개최됐다. 7월 4일 총회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두달반에 걸친 모든 활동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다. 이날 기자는 여러차례 큰 감동을 받았다. 곧 총회장이 될 권순웅 목사는 "총회를 바르게 하지 않는 그 사람이 바로 총피아다"라며 "개혁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총회를 바르게 섬기는 것이 개혁이다"면서 "모든 판단은 유권자인 총대들이 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하고 "개혁은 잘못된 것을 거절하는 것"이며 "겉과 속이 똑같은 토마토처럼 앞뒤가 똑같은 총회장이 되겠다"고 했다. 바르게 총회를 이끌어 가겠다는 출사표와 같은 발언이었기에 큰 울림이 있었다. 또한 총준위 위원장 김진하 목사는 "총준위의 일은 권순웅 목사가 총회장이 되는 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는 날까지라고 생각한다"면서 "권 목사와 끝까지 함께 하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제 곧 총회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질 권순웅 목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말인가. 이처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발언은 큰 울림을 줬다. 이날 설교를 맡은 배만석 목사는 창세기 39장을 본문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죄를 멀리한다. 요셉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부했으며 멀리했다. 인간을 의식하는 것은 인본주의이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신본주의이다. 요셉은 유혹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죄를 피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었다"며 "정결하게 살아 쓰임 받는 우리 모두와 총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목사로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요셉에 대해서 설교했는가? 요셉은 신전의식(코람데오), '하나님이 바로 여기 계시다'는 신앙으로 성적인 유혹을 물리쳤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보디발의 아내를 피해 그 자리를 피했다. 죄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하는 것이라고 얼마나 많이 설교했는가? 이 설교를 들으면서 과거 일로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기승 목사를 떠올렸다. 한기승 목사는 10여년전 노래방 사건의 당사자 중 한명이었다. 한기승 목사는 자신이 간 노래방은 ‘건전’ 노래방이었으며 자신은 그곳에서 가곡만 불렀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노래방에 도우미 여성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로서 요셉에 대해 많이 설교했을 한기승 목사는 어떻게 처신했어야했는가? 요셉처럼 즉시 그 자리에서 나왔어야했다. 그러면 노래방에 간 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건전' 노래방으로 알고 갔는데 도우미가 나오는 '불건전' 노래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곳으로 데려간 다른 목사를 책망했어야했다. 바울도 외식하는 베드로를 면전에서 책망하지 않았던가?(갈2:11-14) 그런데 노래방에 간 것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군목 선배 정필도 목사님의 일화이다. 정필도 목사님이 군목으로 있을 때 교육이 있어 모여 있었는데 계급이 높은 군목이 와서 교육 중에 음담패설을 했다. 이때 계급이 한참 낮은 정필도 목사가 벌떡 일어나 "목사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설교하는 그 입으로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음담패설을 할 수 있습니까?"하고 지적했고 교육은 그것으로 끝났다고했다. 목사는 갈곳 안갈곳을 가려야하고, 할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별해야한다. 어느 목사가 어떤 의도로 '건전하지 않은' 노래방으로 한기승 목사를 데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한기승 목사는 '3대째 신앙 가정으로 평소 극장과 다방에도 안간다'고 했는데 어찌 그런 숭악한 곳으로 데리고 갔단 말인가?(그런데 왜 두번이나 갔을까!)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과 그로 인한 도덕을 뛰어넘는 신앙윤리가 아닐까? 더욱이 총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려면 보다 더 경건한 삶의 열매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10년전 일을 왜 다시 끄집어 내느냐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이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당사자 중 한명인 한기승 목사가 그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는 모두가 잊어버렸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합동교단을 대표할 부총회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리하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르윈스키와 스캔들을 벌였던 클린턴 미국 대통령처럼 '추문'은 평생 따라 다닐 것이다. 배만석 목사는 "요셉은 유혹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죄를 피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었다"고 설교했다. 한기승 목사가 10년전 노래방에서 요셉처럼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이것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쓰신다!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요셉에 대해 수없이 설교했을 목사 총대와, 요셉에 대해 수없이 설교를 들었을 장로 총대들이 과연 제대로 요셉을 이해했는지를 볼 수 있는 현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앞으로도 요셉에 대해 설교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더 이상 설교해서는 안되는 것이 판가름날 곳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교단은 요셉에 대해 제대로 설교할 수 있을까?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의 개혁신학 정신은 잠자는가? 죽었는가? 오! 루터여, 칼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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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기자의생각】천문학적 금전살포 괴소문
    며칠전부터 모 후보가 총회 임원 당선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살포할 것이라는 괴소문이 돌고 있다. 마침내 또다시 총회의 고질병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돈을 준 후보도, 돈 받고 표를 판 총대도 다 해총회 범법자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총회를 살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돈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한다. 과거 이승만 정권 때 돈을 써 국회의원에 당선될려고 하는 자에 대한 말이 있었다.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고, 낙선되면 집안이 망한다. 마찬가지로 돈을 쓴 임원 후보가 당선되면 총회가 망하고, 낙선되면 자신이 망할 것이다. 어찌됐든 둘 중 하나 망하는 길이니 망하는 길을 피해야한다. 금전살포가 벌어진다면 꼭 제보를 부탁드린다. 잘못을 드러내고 부패를 막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 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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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0
  • 【기자의생각】 총회 임원 명예 vs 교회
    9월 7일 서울서북지역 임원후보 정견발표를 끝으로 3번에 걸친 정견발표가 끝났다. 3번을 참석해 취재하다보니 후보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동일한 내용으로 정견발표를 했다. 그런데 오늘 목사부총회장 후보 한기승 목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 첨부했다. 모 신문에서 자신이 총회 임원 선거 자금을 위해 교회를 팔았다고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해 했다. 어느 신문이 그렇게 기사를 썼는지는 모른다. 본 기자는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써 본적이 없다. 설마 목사가 총회 임원선거를 위해 교회를 팔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한기승 목사의 억울해 하는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자신이 현재 교회 건물 없이 광신대학교 건물을 빌려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는 생각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듯이 한기승 목사와 광주중앙교회는 현재 자체 건물이 없다. 교회 건축을 위한 땅은 마련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규모에 맞는 건물을 지을려면 상당한 건축 자금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한기승 목사는 부총회장이 되기 위해 10년간 준비해 왔다니 그동안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본인 입으로 영남지역 장로 모임을 후원해 왔고 언론사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으니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혹시 부총회장이 되고, 총회장에 되면 교회 짓는 일은 언제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대교단의 부총회장과 총회장은 임기 동안 어쩔수 없이 목회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남교회 당회는 오정호 목사가 부총회장이 되어 총회장이 되면 총회 일에 전념하도록 임기 1년간 안식년을 드리기로 결의해 놨다. 이렇게 결의할 수 있을 정도의 교회 여건은 부러운 일이다. 부총회장 뿐 아니라 기타 모든 임원들과 부장, 부원들은 교회에 해가 되지 않는 형편에서 총회를 섬겨야한다. 목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총회가 아니라 목양지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허울좋은 총회 임원의 명예를 따르다가 목회를 망치고 교회를 등한히 하는 임원들과 각 부 부장, 위원들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래본다. 본인이 15년간 담임했던 동암교회는 64회 총회장이었던 한석지 목사가 원로 목사였다. 지나놓고 보니 한 목사님이 교단정치를 한 것은 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목사들이 교단 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자신의 헛된 욕망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전도서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자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전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그리고 잠언은 목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잠 27: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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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부총회장 선거, 예측할 수 없는 초박빙의 대결
    107회 총회가 얼마 안남았다. 이번 총회의 최대 관심사는 9월 19일 개회 첫날 있을 부총회장 선거이다. 그런데 기호 1번 오정호 목사와 기호 2번 한기승 목사의 대결이 심상치 않다. 선거 초반에는 한기승 목사가 유리하다는 말이 떠돌았다. 한기승 목사가 오랫동안 부총회장 선거를 위해 준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월 5일 있었던 총회임원 후보 영남지역 정견 발표에서 한기승 목사는 그동안 자신이 영남지역 장로들의 모임에 꾸준히 후원했음을 스스로 밝혔다. 아울러 이날 정견 발표가 모두 끝난 후 한 기자를 주차장에서 만나 자신이 모 인터넷 신문사에 30-50만원씩 매달 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기승 목사가 여러 언론 기관을 정기적으로 수십만원씩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이다. 이 정도로 한기승 목사는 수년간 부총회장이 되기 위한 표 다지기 작업을 했기에 초반에 승기를 잡았었다. 그러나 총회를 얼마 앞둔 현재 판세가 변했다. 금번 부총회장 선거가 박빙의 표대결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 이동이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먼저 한기승 목사측이 무리하게 오정호 목사를 불법선거운동으로 고발한 역풍 때문으로 보인다. 초반에 우세했던 한기승 목사 측은 확실히 상대방을 초기 제압하기 위해 후보 등록을 하자 마자 임시노회를 열어 오정호 목사를 불법선거운동으로 고발했다. 이로인해 오정호 목사는 심의분과에 소환되어 해명해야했고 오랜기간 입후보자 신분으로 머물러야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후보등록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9월 5일 영남지역 정견 발표 때 첫 마디로 “죽다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의분과나 선관위는 오정호 목사를 후보 아웃 시킬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다 결국 오정호 목사가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후보 통과됐다. 그러면 오정호 목사에 대한 고발과 이후의 선관위의 일련의 행위가 과연 한기승 목사에게 득이 됐을까? 결과를 보면 안다. 득이 아니라 독이 됐다. 한기승 목사는 초반에 오정호 목사를 불법선거운동으로 아웃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위반사항을 끌어 모았다. 그러다보니 모 신문사 사모의 장례식장에 조문간 것까지 불법선거운동이라고하는 폐륜적인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모 단체에 5천만원 후원했다는 허위사실유포도 서슴치 않았다. 결국 무리한 고발로 인해 확고했던 지지층마저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더더욱이 선관위 마지막 전체 회의 날인 9월 1일 한기승 목사가 전체 총대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는데 이 또한 패착(敗着)이었다. 장문의 문자를 통해 다시한번 한기승 목사는 오정호 목사가 불법선거운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오정호 목사의 자신에 대한 고발 건에 대해서 자신은 무죄하다고 했다. 물론 선관위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많은 총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학력위조”, “교회간 거리 문제”, “허위사실 유포” 등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한기승 목사는 있지도 않은 성골, 진골을 언급하며 총신 출신과 그 외의 학교 출신을 갈라치기를 시도 했다. 이또한 있지도 않은 것을 주장함으로 갈등을 유발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든 전략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기승 목사는 오정호 목사 발목잡기에 전력투구하다가 결국 오정호 목사에 대한 동정자와 지지자만 늘어나게 해줬고 자신에 대해서는 실망과 반감(反感), 이탈자만 만들었다. 결국 부총회장 선거는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대결이 됐다. 표 이동이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한기승 목사 자체의 문제점 때문으로 보인다. 한기승 목사가 오정호 목사를 고발한 것들은 선거기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것들이다. 반면 한기승 목사에 대한 고발은 한기승 목사 자신에 대한 문제들이다. 학력위조, 교회 거리간 문제, 광주중앙교회 역사 문제 등등. 이것들은 혹시라도 한기승 목사가 선거에서 이겨도 문제가 될 만한 중대한 것들이다. 반면 오정호 목사에게는 후보 자신에 대한 문제가 없다. 결국 이러한 후보간 차이점들이 총대들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게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잘 나가던 기업이 오너 자신의 리스크로 인해 낭패를 당했던 적이 많았다. 우리 총회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제 남은 기간 두 부총회장 후보는 선거 승리를 위해 정당하게 페어 플레이해서 총대들의 마음을 얻어야한다. 과거처럼 돈봉투로 표를 구걸하는 구태는 없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급하다보면 제일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자하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사자와 받은자 그리고 총회의 공멸(共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박빙의 선거에서 과연 누가 이겨 앞으로 안정적으로 총회를 이끌어 가게될지는 총대들의 현명한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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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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