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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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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선거7】'내로남불’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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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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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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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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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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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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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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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선거7】'내로남불’
-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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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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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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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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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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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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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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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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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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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4】 아픔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질병 경험(특히 암)에 대해 쓴 개인적인 에세이다. 사회학 교수로 젊고 건강했던 저자는 39세에 심장마비를 겪고, 그 다음 해에는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가 수술과 화학요법을 통해 회복한다. 이런 경험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질병 경험에 대한 ‘서술’을 넘어 질병 경험에 대한 ‘사유’로, 저자 자신이 질병을 경험하면서 배운 것들을 짚어가며 인간의 삶에서 질병의 의미를 묻고 재의미화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질병은 우리의 유한한 이 땅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된다. 병이 가져오는 위험 중 가장 명백한 위험은 경계를 넘어가 죽는 것이다. 이 위험이 제일 중요하며, 또 언젠가는 이 위협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만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다른 위험이 있는데, 바로 질병에 집착하게 되는 위험이다. 질병을 자신과 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이들과 마주하지 않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핑계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은 계속 매달리고 있을 만한 무엇이 아니다. (할 수 있다면) 그저 회복 하면 된다. 그리고 회복의 가치는 새로 얻게 될 삶이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많이 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회복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내 경우에 심장마비 이후의 회복이란 아팠던 경험 전체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반면 암은 이런 식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아직도 진찰을 받을 때마다, 보험 서류를 작(p. 8)성할 때마다 암에는 차도가 있을 뿐이지 '완치'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환의 생리학보다 더 중요 한 것은 암 경험이 미친 영향이다. 암을 앓고 난 후에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고통을 보았고, 특히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은 갖기 어려울 수도 있는 어떤 관점에서 고통을 보았다. 삶이라는 게임을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계속할 수는 없었다. 예전의 나를 회복하기보다는 앞으로 될 수 있는 다른 나를 발견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다(p. 9). 의원, 병원, 전화통화 등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간에 의학의 진찰과 치료는 오직 질환만이 논의 대상이라고 모든 사람이 믿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서 질환은 측정될 수 있는 것이고 기계론에 기반을 둔다. 의사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 언제나 내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의식하며, 그래서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더욱 입을 다문다. 질환에 관련된 질문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가 느끼는 것들이 바로 질병이다. 내 삶에 관해 묻고 싶은 질문이 있지만 허용되지 않고 말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는 생각해서도 안 된(p. 29)다. 내가 느끼는 것과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내 목소리를 삼킨다. 의사들은 보통 예의 바르게 질문에 대답해주지만, 질문을 하려면 답변이 어떤 용어로 돼 있을지 예상해야 하며 결국은 질환 용어를 사용해서 질문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도움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질병을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의료진 또한 지켜봐주는 것이다. 답을 받기보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은 과중한 스트레스와 업무에 시달릴 때가 많고, 그리하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전문가다운' 활동의 경계 밖으로 너무도 자주 밀려나곤 한다(p. 30). 몸 이외에 잃은 것들도 있다. 캐시와 나는 최악의 일이 벌어진다면 친구와 친척들이 우리를 염려하고 함께 있어주길 바랐다. 이후 최악의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더는 예상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곁을 지켜줬고 어떤 이들은 사라졌다. 질병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고, 그래서 지금 우리 부부는 내 질병을 외면한 이들과 다시 관계를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이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상실의 일부다. 캐시와 내가 삶에 걸었던 순진한 기대도 사라졌다. 일을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성취하고, 아이들을 낳아 자라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우리 부부가 함께 늙 어가리라는 기대가 평범해 보이던 때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 무엇이 기대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인지, 캐시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삶에 거는 순진한 기대를 잃었다는 것이 질병을 겪으며 얻은 수확으로 보일 날이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실로 느껴진다. 미래와 과거의 상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의 상실(p. 66), 평범한 기대의 상실은 캐시와 내가 함께 겪은 것이든 나 혼자 만의 것이든 모두 애도되어야 했다. 아픈 사람이 무엇을 상실하느냐는 각자의 삶과 질병에 따라 다르다. 아픈 사람이 애도하기로 택한 것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상실했다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상실은 실재하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운이 좋았기에 아내와 함께 애도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상실 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은 상실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p. 67). 질환은 신이 보낸 메시지가 아니고, 질병은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이 아니다. 이런 관념은 질병을 둘러싼 신화 중 에서도 위험하다. 그러나 한편 신화는 기회를 보여주기도 한다. 기회는, 질병은 그저 생길 뿐이지만 삶을 의미 깊게 만드는 방향으로 우리가 질병 경험을 엮어낼 수 있음을 깨닫는 데 있다. 믿음을 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의지를 가질 때 바라는 대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믿음과 의지 둘 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질병을 몸의 뜻에 맡기는 동시에 의학의 도움을 구하는 일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깊은 믿음은 가장 적극적이다. 우리는 싸우지 않을 때 가장 잘 싸운다(p. 144).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p. 190)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p. 191).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일상적인 것을 소중히 하며 사는 기회도 준다. 여기서 나는 다시 '덤으로 얻은 삶'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삶을 덤으로 받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건강이나 질병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공포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건강만을 원하는 욕망 또한 넘어설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질병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질병이 가져오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덤으로 얻은 삶이란 강물 위에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 내가 질병을 겪으며 배운 교훈 중 반절이 있다. 하늘은 파랗고, 강물은 반짝인다(p. 222). 이 시는 내가 배운 것의 반절일 뿐이다. 햇빛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혼자만의 것이다. 삶이 주는 기쁨을 이루는 나머지 반절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기쁠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함께 있는 것이다. 이 반쪽들이 합쳐져 온전한 하나가 된다. 타인의 아픔을 인정하고 우리가 삶에서 겪는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나만의 것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아는 나만의 것은 하늘은 파랗고 강물은 반짝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내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나는 밖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뻗어 나가는 세계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암 초기, 통증이 심했던 어느 날 밤에 본 풍경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다. 서리 낀 창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보는 자신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인 나 자신을 보았다. 창에 비친 자신이자 세계를 보며 내 몸의 통증 밖에 존재할 수 있었고, 나아가 창문이 세계의 일부인 것처럼 내 통증도 세계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창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통증도 이 세계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창을 보며 배운 교훈을 수 세기 전에 쓰인 중국의 경전인 『도덕경』은 이렇게 표현한다(p. 223). 세계를 네 자신처럼 여겨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믿음을 가져라 세계를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소중히 할 수 있으리라 강물 위에 빛나는 햇빛을 소중히 할 수 있을 때, 그래서 그 빛이 거기 계속 비칠 것을 상상하고 믿을 수 있을 때, 나는 이 세계 너머에 속하는 평화를 느끼며 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 있을 미소를 상상할 수 있을 때, 여기 있어서 행복하다. 하지만 반드시 여기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쁨은 집착하지 않는 데 있다(p.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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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4】 아픔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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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1】 인내와 인간관계
- 인내와 인간관계 인간관계의 깨어짐은 아픔과 상처입니다. 인내하지 못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관계가 깨집니다. 인내는 관계의 열쇠입니다. 히브리서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인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이고, 성령의 열매입니다. 인내가 부족하고, 조급하여 실수하게 되고,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인내가 부족해서 관계가 깨졌다면 회개하고, 인내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인간관계를 멀리 내다보고 행동해야 합니다. 관계는 아슬아슬하고, 순간 깨지게 됩니다. 나쁜 행동 하나 때문에 수십 년의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관계를 위해 투자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어야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좋은 관계는 행복과 성공의 열쇠입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리고,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십니다. 사탄에 의해 관계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내와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인간에 대해 기대를 버리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해 기대한 만큼 실망하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과 본질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관계 맺어야 합니다. 인간과의 오랫동안의 관계에는 인내가 필수입니다. 인간에 대해 참아주는 견딤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의 성공이 삶의 성공입니다. 관계를 위해 좋은 씨를 뿌리고, 투자해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깨질 때,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가?' 고치고 해결해야 합니다. 관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소합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서로의 문제입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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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1】 인내와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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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3】 각자에게 있는 삶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 이 책은 저자가 2002년에 쓴 장편소설이다. 지금부터 24년 전이다. 긴 세월의 간극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웠다. 석고 작업을 하는 주인공이 만난 두 여자를 통해 삶의 틀, 아픔의 틀을 깨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가들의 역량은 역시 대단하다. 한강 작가의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나, 앞으로 여기 안 와요." 그것은 조금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이번에는 좀더 결의가 들어간 말씨라는 점만 달랐다. "이제부터 다이어트할 거예요. 휴학하구, 다음 학기에 놀랄 만한 모습으로 그 사람 앞에 나타날 거예요. 그 사람 눈빛두 그때쯤은 달라져 있겠죠." L의 얼굴은 진지했고, 차라리 결연했다. 그녀가 그토록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이 아이에게 이런 결단력이, 강(p. 121)한 의지가 있었나. "아저씨가 그랬죠. 내가 예쁘다구. 살이 찐 다음부터, 난 한 번도 내가 예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해봤어요. 그런데 아저씨한테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까 행복했어요. 믿어지지 않을 만큼요. 나도 모르게 자신감두 생겼구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내 욕심이 지나친 건 아니겠죠. 그 사람 말예요. 그 사람이 나한테 예쁘다구 말해 주면, 그날 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구나." 짐짓 실연당한 사내의 쓸쓸한 얼굴을 지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스물한 살이었다. 커다란 몸에 가냘픈 마음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의 사랑이란 건 뭘까. 자신을 향해 혐오의 눈길을 쏘아 보냈던 남자애, 그 소년의 껍데기를 사랑하는가. 잠시 후 그녀의 거대한 몸이 떠나가자, 작업실은 예전보다 넓고 헐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을 뿐, 더 이상 배웅하지 않았다. 그녀가 얼른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짧은 헤어짐의 절차조차 그녀에게는 지루하고 갑갑했던 것이다. 다음날 새벽 3시쯤 나는 목이 말라 잠에서 깨었다. 불을 켜고 찬 물 한 잔을 마신 뒤. 나는 뜻 없이 작업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농담 삼아 말했던 대로, 고개를 웅크리고 L의 틀집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잡았던 포즈대로 다리를 뻗고 앉았다. 틀집은 안락 하였다. 누군가 틀집의 앞면을 끌어다 붙여주기만 하면 관(棺)은 완성될 것이다. 어쩐지 편안한 마음이 되어, 나는 그녀의 등이 닿(p. 122)았던 실팍한 곡선 위로 몸을 기댔다. 잠을 청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감은 눈 위로 겹쳐진 것은 L의 눈이었다. 언제나 젖어 있는 것 같던 그녀의 말간 두 눈이 어룽어룽 내 이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 뒤 조심스럽게 틀집 밖으로 나오고 나자 나는 이상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누구든, 자신의 관 속에 미리 들어가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낡은 일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나는 눈을 감고 묵묵히 아침을 기다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의 공간에 버티고 있었던 L의 육중한 양감이 떠나갔음을,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애썼다. 염려했던 환멸은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3년이 지난 뒤 그녀를 우연히, 그렇듯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결코 짐작하지 못한 채였다(p. 123). 나는 문득 그녀의 왼손이 자신의 허리 뒤로 숨겨져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손을 뻗어 그녀의 왼손을 잡자 그녀는 소스라쳤다. 저항하는 그녀의 손을 끌어다 내 무릎 위에 놓았다. 그 왼주먹은 몇(p. 312) 시간 전에 석고를 바르려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내 인생을 관통해온 그 쓸쓸한 미식거림을, 시큼한 침이 고여오는 혀뿌리 아래로 눌렀다.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p. 313). 작가의 말 새벽녘에 꾸었던 꿈, 낯선 사람이 던지고 간 말 한마디, 무심코 펼쳐든 신문에서 발견한 글귀, 불쑥 튀어나온 먼 기억의 한 조각들 까지 모두 계시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내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사랑하는 순간들이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 이지만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부딪쳐오는 숱한 의문들, 짧고 강렬한 각성, 깊숙이 찌르는 느낌 속에서 나는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이 소설은 3년 전에 초를 잡아놓고 서랍 속에 넣어뒀다가, 지난 해 2월에 꺼내 쓰기 시작했다. 소설과 함께 열두 달을 순회하는 동안 나에게 시간은 다른 속력으로 흘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몸에 머물렀던 소설은 가장 먼저 내 존재를 변화시킨다. 눈과 귀를 바꾸고,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바꾸고, 아직 걸어보지 못했던 곳으로 내 영혼을 말없이 옮겨다 놓는다. 직접 이름을 밝히기보다는 마음으로 인사드려야 할,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한다. 책을 만드느라 애써주신 문(p. 328)학과지성사의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나는 감사한다. 2002년 1월 韓江 (p.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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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3】 각자에게 있는 삶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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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2】 인간이 죽지 않고 계속 복제된다면?
- 이 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17’의 원작 소설이다. 나는 재미있게 봤는데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가 재밌었기에 원작 소설을 보고 싶어 읽게 됐다.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봉 감독이 책의 주요 모티브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창작한 것이다. 이 책에 있듯이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복제 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소설과 영화다운 상상이고 그 안에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내재되어 있다. 흥미로웠다. 사실 내가 미드가르드에서 겪고 있던 그 문제는 미드가르드를 떠날 때도 불거졌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엔지니어도 아니었다. 예술이나 오락, 글쓰기에도 재능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이전 시대에 태어났다면 별 볼 일 없는 학문이나 연구하고 있었을 사람이었다. 이름 모를 도서관에서 찾은 별 의미도 없는 책을 뒤적이며 아무도 읽지 않을 연구 논문을 썼을 것이다. 그보다 이전에 태어났다면 공장이나 광산, 군대에 일생을 바쳤을 것이다. 하지만 미드가르드에는 별 볼 일 없는 학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웬이 아주 친절하게 지적했듯 역사를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큘러를 한 번 깜박이면, 또는 태블릿을 몇 번만 두드리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수고를 들이는 사람도 없기는 했다(p. 43). 당연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광산, 군대에 가는 사람도 없었다. 내게 주어지는 생활비는 먹고 살기에 충분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내가 발코니 밖으로 몸을 던진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이런 이유로 예나 지금이나 무료한 청춘들이 으레 그래 왔듯, 나 역시 틈만 나면 사고 칠 궁리를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p. 44). 나는 맛없는 아침 식사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나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좀 힘들어. 그리고 네가 죽을 때마다 매번 더 힘들어져. 지난밤에는 정말 괴로웠어. 식 스가 죽었을 때보다도, 파이브한테 일이 생겼을 때보다도 더 힘들었어. 종료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나는 네가 마음을 바꾸길 바라면서 계속 통신 가능한 거리에서 비행하고 있었어. 결국 포기하고 돔 격납고로 돌아온 다음에도 조종석에 앉아서 한 시간을 어린아이처럼 울었어. 하지만 지금 네가 여기에 있고, 네 이야기처럼 내가 만약 어젯밤에 너를 구했다면 지금의 너는 여기 없을 거야....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 불멸이란 참 이해하기가 어려워, 그렇지?"(p. 83). 유니언에 속한 세계 수백 개 중에서 인류와 토착 생명체가 공생하는 장소는 딱 하나뿐이다. 이 행성은 은하계 나선형 팔의 거의 끝에 있는 M형 항성을 홀로 공전하는 작은 왜성으로 가장 가까운 개척지와 20광년 떨어져 있다. 인류가 가장 먼 곳 까지 나가 개척지 건설에 성공한 사례였다. 정착민들은 자신들의 행성을 롱샷이라 불렀다. 이 개척지의 성공 뒤에는 사연이 숨어 있다. 애초에 롱샷 행성에는 나무에 서식하는 두족류가 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가지에서 가지로 이동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숲 지붕 색에 맞춰 색을 바꾸기 때문에 적외선 카메(p. 371)라 없이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이들은 행성에 하나뿐인 대륙의 중앙 고원에 모여 살았다. 처음 개척민들이 착륙했을 때 이들은 과학 기술이나 문화 면에서 미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실제로 활용하는 능력은 농업이 발달하기 이전의 인류보다 크게 앞서지 못한 상태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다. 내가 본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원래 인간이 무기와 거주지, 플리터와 우주선을 발전시키게 된 이유가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너무 서툴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롱샷의 토착 생물들은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데 서툴지 않았다. 그들은 총 없이도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다. 개척민들이 착륙했을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륙거점은 해안에 있었고 해안은 그들이 서식하는 산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개척민들도 토착 생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들이 낯을 가리고 일부 지역에서만 사는 데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착륙 후 20년이 흐르도록 그들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이들의 만남이 왜 다른 거점과는 달랐는지까지 역사책에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세워 볼 수 있다.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개척민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 시간이 열쇠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p.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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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2】 인간이 죽지 않고 계속 복제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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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1】 조력 사망에 대하여
- 이 책은 미국의 조력 사망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주는 별로 없다.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는데 아직도 죽음의 방법에 대한 논의는 멀기만하다. 과연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평생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어요. 항상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더 좋은 영화를 보려고 애썼죠. 늘 스스로 발전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게 완전히 무의미해진 거예요.” 켄이 멈칫하더니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래를 뱉어내고 숨을 골랐다.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이곳의 늙다리들은 한참 전에 사라졌겠죠." 그는 다른 아파트와 연결된 복도를 고개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들 엄청난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목숨에 매달려요. 정말 그렇게 매달릴 만한 가치는 없는데."(p. 25). 의료 조력 사망은 정신이 온전한 성인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받은 치사 약물을 섭취해 합법적으로 생을 마감할 경로이다. 미국에서 진행성 치매 같은 중증 인지장애 환자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어도 조력 사망법을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조력 사망법은 환자가 스스로 치사 약물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의사가 치사 약물을 투여해 환자의 생명을 끝내는 안락사는 절대 금지다(p. 38). 조력 사망을 원하는 환자 중 상당수는 다른 모든 걱정, 심지어 물리적 통증에 관한 걱정보다 더 극심한 실존의 고통에 시달린다. 자신이 누구이고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벌어진 상처만큼 아프고 쓰라릴 수 있다. 죽어가는 환자가 더 살아야 할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할 때, 앞으로 비참한 날들만 남았을 때는 죽음 자체보다 살아간다는 것이 더 벅차게 느껴질 수 있다(p. 91). 조력 사망 자격 심사를 통과한 환자 중 일부는 결국 치사 약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약을 섭취하기 전에 사망하거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약을 섭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다. 마음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오리건주 존엄사법이 통과된 후 23년 동안 2,895명이 법에 따라 처방전을 받았고 그중 1,905명이 치사 약물로 사망했다. 조력 사망을 신청한 환자 중 3분의 1이 끝까지 약을 섭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p. 236). 조처럼 질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면 큰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조력 사망법을 이용하는 모든 환자가 안도감을 느끼려고 무조건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병세가 악화할 경우 대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환자들도 있다. 은퇴한 종양 전문의로 엔드 오브 라이프 초이스 오리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마크 래릭은 처방전을 받는 것이 미래의 돌연한 악화 가능성에 따른 보험이나 보증처럼 작용한다고 확신 한다. 그가 약을 처방해준 많은 환자가 실제로 복용하고 싶어질 경우를 대비해 약을 받아갔으나 끝내 복용하지 않았다(p. 246).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한 죽음이라 해도 유족에게는 죽음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조력 사망은 가정에서의 호스피스 임종보다 더 명확한 측면이 있다. 캘리포니아 북부 의 호스피스 기관 베이헬스Bayhealth는 3년에 걸쳐 의료 조력 사망과 전통 호스피스 임종에 따른 애도 경험을 비교 연구했다. 연구 결과 조력 사망 환자의 유족은 호스피스 임종에 입회한 유족보다 미련이 덜 남았고, 임종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컸다고 답했다. 조력 사망 환자의 유족이 착잡함과 비탄을 호소한 사례는 두 가지뿐이었다. 마지막까지 환자의 결정에 반대한 유족과, 치사 약물을 복용할 계획이었으나 그러기(p. 279) 전에 사망한 환자의 유족이었다. 후자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죽음을 맞게 해주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느껴 회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p. 280). 환자가 죽기까지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가족은 난감한 화해의 과업을 회피하곤 한다. 심지어 호스피스 임종의 경우에도 환자가 언제쯤 사망할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p. 281) 조력 사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부정할 수 없다. 임종을 앞두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날을 알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얻는다. 많은 유족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돕는 과정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 게 사실이긴 해도, 사회적으로는 사별 이후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데 대한 사회적 낙인 탓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기도 한다. 고인이 조력 사망을 실행하도록 허락했다는 이유로 친척, 친구, 동료에게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유족이 많다. 사별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허용 하지 않는 경우를 숨겨진 애도, 즉 '박탈당한 애도'라고 부른다. 이는 다른 죽음에 비해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자살, 약물 과다 복용, 유산 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족은 고통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누른다. 유족이 타인에게 받는 비난은 매우 미묘할 수 있다. 그런 비난은 사람들의 무심한 언행, 움칫하는 몸짓, 어떤 단어의 억양 등 말해지지 않는 것들의 침묵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p. 282). 삶의 마지막을 다소나마 통제하길 원하는 환자의 선택지를 개선하는 데 어떤 과제가 남아 있을까? 최우선 과제는 50개 주 모두에서 조력 사망법이 통과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미국인의 80퍼센트가 합법적으로 조력 사망을 시도할 수 없는 주에 살고 있다. 이들이 삶의 마지막에 심각한 고통을 피하려면 은밀하고 위험할 수 있는 자력 구제에 의존해 죽음을 앞당 기거나, 음식물 섭취를 자발적으로 중단하거나, 아니면 스위스까지 가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아픈 사람들과 조만간 아플 사람들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 중요한 과제는 조력 사망을 음지에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력 사망을 '자살'로 칭하기를 그만두고 의료 행위로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조력 사망은 그 자체로 고유한 도덕적 • 법적 범주를 이루므로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그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또(p. 302) 다른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임종 돌봄을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필수 과목으로 포함하고, 조력 사망 신청에 관심 있는 임상의에게 대응 방법을 교육하며, 조력 사망에 반대하는 의료인을 위한 보편적 위탁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임종 환자 돌봄 인력 양성과 관리에 크게 기여할 호스피스나 완화 의료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미 일부 진전이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조력 사망 환자의 자문 의사 역할을 맡는 의사들이 나타났고, 캘리포니아와 오리건과 워싱턴의 일부 호스피스는 조력 사망을 원하는 환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명시했다. 버클리에서 임종 과학을 개척하는 데 기여한 의사 로니 샤벨슨은 결국에는 호스피스에서 조력 사망을 삶의 마지막 선택지 중 하나이자 치료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p. 303).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끈질기게 부정한다는 점이다. 죽음을 적으로 여기면 죽음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죽음을 회피하려 할 경우 그 불가피성을 직면하기가 지독하게 고통스러워진다. 죽음을 향한 침묵과 회피를 깨뜨리려면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과의 관계를 탐구할 공간과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일찍부터 삶의 마지막을 두고 대화를 시작하면 죽음에 관한 사회적 지식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삶의 무상함을 깊이 인식하고 애도 상담부터 호스피스 치료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p. 306). '웰다잉' 욕구는 의료와 장례 영역에서 삶의 마지막에 관한 통제권을 찾으려는 사회적 움직임의 일환이다. 관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가 이런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장, 가정에서의 임종 돌봄, 수분해당, 시신 퇴비화, 수목장 등의 선택지를 조사한다. 자신의 추모사와 부고장을 작성하고, 생전에 작별 인사를 나누며, 자기 장례식 배경음악 목록을 만들거나 관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한다. 죽음에 관한 논의를 정상화하려는 '죽음 긍정death-positive' 운동 (최근 급성장 중이다)에서 영감을 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좋은 죽음good death'이 현대인의 또 다른 의무('생산적 삶과 성공적 죽음')로 둔갑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웰다잉이 여력 있고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되어서도 안 된다. 성급한 우리 문화는 모든 종류의 인간적 고통에 간편하고 기계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기 쉽다. 조력 사망은 어디까지나 중증 환자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인간적이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여서는 안 된다(p. 307). 이 책은 단기간의 관찰 결과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 치사 약물 조합이 일부 바뀌었고 부분적이나마 법안 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의 조력 사망 경험은 전반적 으로 변한 것이 없다. 조력 사망 자격은 여전히 획득하기 어렵다. 병세가 지나치게 악화했거나 반대로 처방전을 받을 만큼 심각하지 않은 환자들은 여전히 법조문에 구속받는다. 그리고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에 겪는 고통을 덜어주려 헌신해온 의사들은 의심과 비난에 시달린다.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나아져야 마땅하다. 세계적 팬데믹의 여파와 씨름하면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관념이 개인에게 더 밀접하게 다가오는 중대한 전환점에 이르렀다. 바로 지금이 만사를 다르게 처리하고 더욱 온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어떻게 떠날지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p.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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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1】 조력 사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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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0】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책이든 심리치료의 도구는 다양하다. 이 책은 정신과의사의 관점으로 영화를 분석한 것이다. 흥미롭게 봤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마음의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그것이 좋은 영화를 봐야할 이유이다. 극단적인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섣불리 고통의 현실을 직면하라고 요구하는 원칙론적인 접근보다 먼저 그들이 한숨을 돌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안정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것은 피해자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필요한 자극이 되기 쉽습니다. 트라우마의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부적응적인 행동까지도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안정감과 연결감(p. 28)을 느낄 수가 있어야 비로소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p. 29).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스트레스와는 아주 다릅니다. 트라우마는 기본적으로 1) 미리 예측할 수 없고, 2) 미리 대비할 수도 없으며, 3) 또한 도망가거나 회피할 수도 없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위협에 대항을 해볼 수도 없고 도망을 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기본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 불가능할 때 우리는 강렬한 두려움, 공포, 무력감, 불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데 피할 수도 없고 대처할 수도 없이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압도적인 상황의 경험'이 바로 트라우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뇌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한다고 이러한 변화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트라우마는 우리 인간의 뇌의 신경회로를 압도적으로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피부의 상처가 저절로 아물듯이, 마음의 상처도 저절로 치유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라우마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치유가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상처의 깊이와 무게에 따라 치유(p. 46)의 방법과 시간에 큰 차이를 보이겠지만 어쨌든 불가항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의 치료는 큰 진전을 보이는 것입니다(p. 47).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은 감정을 마비시컴으로써 자신들의 삶을 한없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만듭니다. 자극이 될지 모를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제한하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합니다. 극단적으로 수동적이 되는 것이지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삶에서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동적이고 무미건조한 삶의 지루한 반복이 결코 그들의 삶을 만족스럽게,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는 답답한 자신의 삶에 대한 염증도 느 끼게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수동성에 대한 혐오감도 점차 더해질 테니까요. 무미건조한 삶은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트라우 마의 영향력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의 기회, 삶의 새로운 즐거움 • 기쁨• 성취감의 기회를 제한시키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들이야말로 트라우마의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감정의 마비' 라는 방어기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일시적인 안 정감은 줄 수 있지만 그만큼 트라우마의 영향력을 더 길게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 인 셈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 여성부 실태 조사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고율은 고작 2.3%라고 합니다. 여전히 성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나 아동들은 자신들이 받은 트라우마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p. 140) 이러한 피해자들이 결국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한참 전에 벌어진 일을 잊고 이제 현재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내면에는 가해자에 의해 황폐 해져버린 삶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스러운 변화와 상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요. 아무리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기 이전의 상태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고, 잃어버린 다리가 다시 생겨날 수도 없고, 보이지 않게 된 눈이 다시 보이게 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원하지 않은 변화와 상실을 겪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충분히 표현되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속에서나 상상 속에서라도 가해자들에게 화를 표현하고 그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야 피해자들의 마음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로 인한 상실과 분노가 더 이상 그들(p. 151)의 삶의 중심에 있지 않게 될 때 피해자들은 비로소 트라우마 이전의 자신과 트라우마 이후의 자신을 통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어? 이제부터의 삶이 중요하잖아" 라는 말보다는 "그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볼까?" 하는 말이야말로 이런 피해자들에게 먼저 필요한 위로의 말일 것입니다(p. 152).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고의 전환 "나는 하느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항을 미친 경영자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일 겁니다. 잘 알려진 대로 마쓰시타는 파나소닉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 시타전기산업의 창업자입니다. 일본의 전자 산업하면 우리들은 소니를 떠올리지요. 소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일본 내에서의 평판이나 인기는 마쓰시타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한번 고용하면 평생 같이 가는 가족적인 일본식 기업 문화는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중퇴자였지만 그는 콤플렉스를 동기 부여로 바꿔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가난 덕(p. 236)분에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배우지 못한 덕분에 평생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고의 전환' 이었습니다. 즉 매사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임한 결과 인생의 장애물을 인생 도약의 뜀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쓰시타는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지요. 긍정적 사고와 희망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인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도 긍정적 사고와 희망 이상의 치유책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p. 237).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이자 고통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겪은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고 슬퍼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피하려 하듯이 상실감도 회피하고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조반니처럼 "내가 그때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자책감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어쩌면 상실감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책을 하는 것이 덜 괴롭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늦추기만 할 뿐이지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상실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해야 합니다. 이것을 적응적인 애도 반응adaptive grieving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도 반응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쯤 끝나야 한다는 원칙도 없습니다. 얼마든지 슬퍼하고 원망하고 애통해해도 됩니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아픔이 인생의 중심에서 멀어져가면 됩니다. 이렇게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p. 271). 험난한 이 세상,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커다란 풍랑에 휩싸이지 않고 별 기복 없이 순탄하게 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뜻하지 않게 큰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한순간에 누군가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고, 협박당할 수 도 있고,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바로 옆에 있는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두 명 중 한 명은 일생에서 트라우마에 해당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정면으로 트라우마와 맞부딪치게 되었을 때 그 충격과 후유증의 흔적이 얼마나 깊게 남을 것이냐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 중 하나가 가장 가까운 사람, 즉 가족 • 친구 • 연인 • 배우자의 태도입(p. 277)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함께 아파해주는 공감은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가장 커다란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해와 지지, 공감을 받지 못할 경우 트라우마의 상처는 오히려 점점 더 깊어지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라는 절대적 존재로부터의 공감의 결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제 2의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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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0】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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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5】 와서 도우라
- 선교사가 선교해야 하는 나라를 정할 때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 내가 몽골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천산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7년간 섬겼다. 필리핀, 페루, 몽골인 들을 섬겼다. 그런데 1997년에 10월에 몽골에 선교지 탐방을 가게 되었다. 선교지 탐방을 가기 전날에 사건이 발생했다. 교회에 출석하던 몽골인 노동자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회 근처에 있는 작은 의원에 입원했다. 그 사람은 몽골에서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장교출신인데 한국에 돈 벌기 위해서 노동자로 와서 일을 했고 그 부인은 몽골의 영어 선생님 출신인데 부부가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큰 일이 났다고 부인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달려 가 보니 정말 입에서 피를 토하고 누워 있었다. 작은 의원이라 의사도 당황하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가서 보니 그냥 두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에게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의사가 “이 사람을 움직이다가 사망하면 책임을 질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책임지겠다”라고 말하고 택시를 불러대학병원으로 환자를 업고 달려갔다. 대학병원에 도착 하니 의사들이 회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급히 의사들이 응급실로 모여들고 진찰을 하니 위에서 구멍이 나 출혈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급히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그 때에 나는 그 사람이 마취하는 것부터 수술을 하는 자리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수술을 잘 마쳐서 생명을 살리게 되었다. 그 다음날 몽골에 갔다. 공항에 도착을 하니 세단 승용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안이 고위급 집안이기에 자기의 아들을 고쳐준 고마운 분이 왔다고 고급 승용차로 픽업을 하고 내가 몽골에 있는 동안 선교 답사해야 하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같이 다니던 가족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마치고 복음을 전했다. 몽골에 선교 답사를 가야 하는 전날에 생명이 위독한 몽골인을 구하는 자리에 있게 하시고 몽골에 가서 그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몽골로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손길을 확실하게 보았다. “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행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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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5】 와서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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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리더와 문제해결』 출간
- 리더와 문제해결에 대한 책이 출판되어 화제다. GMS 이사장이며 진주성남교회를 담임하는 양대식 목사가 35번째 신간 『리더와 문제해결』을 발표했다. 이 책은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지혜가 담겨있다.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를 강사로 모셔 강의를 듣고 집회강사로 청하면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저자인 양대식 목사는 리더십과 관계 전공자요 실천신학자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저자의 연락 전화는 010-4944-9434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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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리더와 문제해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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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4】 선교의 A.B.C
- 선교의 기초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면 2년은 선교사가 사역하지 않고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선교사들이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때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선교의 기초가 무너져 버린 경우가 생겼다.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이 선교사에게 찾아옴으로 인해서 발생했다. 선교지에 도착하니까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이 인사차 찾아왔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왔다.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서처럼 주일에 예배드려야 하는데 아직 예배당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을 위해서 친구인 한국 선교사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인도했다. 우리도 함께 친구 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에 출석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 교회에 참석한 이후에 그다음에는 이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목사님이 인도했는데 왜 지금은 자신들을 인도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가?”하고 질문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교회가 아니면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들이 교회에 계속해서 출석을 하게 하려고 교회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를 배운 다음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먼저 시작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갖게 되었다. 가정에서 한국에서 돌아온 성도들이 모여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본인들만 아니라 본인의 가족들도 함께 교회에 나와서 금방 우리 집에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나보다 6개월 이후에 오신 조유상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몽골인들을 서울에서 섬기셨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500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울란바타르 시내의 중앙에 큰 건물로 십자가를 높인 단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 교회가 최근에 상영된 영화인 『신의 악단』 촬영 장소인 선교교회이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이주민들을 섬기는 선교는 선교의 기초를 넘어서게 하였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기초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건축하게 했다. 물론 모든 선교사의 경우가 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을 본국에서 만나서 교회를 세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 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 이니라” 사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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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4】 선교의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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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69】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배우, 하정우
- 배우, 화가 하정우가 쓴 두 번째 책을 먼저 읽고 흥미로워 이전에 쓴 책을 찾아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일시품절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화려한 배우가 아닌 일상의 삶을 사는 생활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 스켄들 없이 배우, 감독, 화가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 인생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종 성적이 아주 좋았던 야구 선수가 자유계약선수가 되어서 억대의 계약금을 받자마자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서 그렇다고 쉽게 비난하곤 한다. 나 역시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의 원래 꿈은 돈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순간에 한 방 터뜨려주는 홈런 타자, 제로에 가까운 방어율을 자랑하는 완벽한 투수, 그런 것이 그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돈이 생기자마자 그는 꿈을 잊는다. 이제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은 채 더 높은 연봉이 새로운 꿈이 되어버린다(p. 26). 하지만 돈이나 명예는 꿈이 아니라 수단일 것이다. 꿈을 향해 걸어 갈 때 덜 고통스럽도록 도와주는 조건. 남의 시선에 현혹되어 이것을 꿈이라고 착각할 때 사람들은 추락한다. 진짜 꿈을 꾸는 법을 잊고 헤매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꿈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것(p. 27). "프로처럼 하시네요." ""아, 프로처럼요?" "네, 프로처럼 작업하고 계세요. 혹시 팔레트도 볼 수 있을까요?" 프로처럼, 그 말이 위축되어 있던 내게 커다란 자신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2010년 3월 첫 전시회를 열기에 이른다. 그냥 시작한 그림이었는데 전시회까지 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냥'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깨달았다. 왜 그토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영화에서 배우는 순수한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영화는 감독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감독의 오브제일 뿐이다. 물론 연기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다. 감독의 의도를 읽고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p. 32)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힘들지만 희열감을 준다. 그러나 내가 가진 창조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내게 연기란 넘치는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하는 일이다. 연기란 감정의 몰입이 아니라 감정의 배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곧 어느 감정에 몰두하는 것보다 그 감정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 그것은 엄격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진다(「제가 무당입니까?•••••」, 88쪽). 그러므로 연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의 덩어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어떻게든 쏟아내면 좋겠는데.... 그런 자세로 촬영에 임하면 절대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더 다스린다. 덩어리가 꿈틀거릴수록 더 냉정해지고 엄격해지고자 애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가슴이 뻐근하고 답답했다. 자는 내내 물로는 해갈되지 않는 심한 갈증이 났다. 이유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내게 무언가를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 그림으로 해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붓을 잡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리고 싶었다. 잘 그리지도 못하고 배운 적도 없는 그림이지만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가슴속의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또 개운해졌다.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어째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림으로 나는 억눌렀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이해해야 할 시나리오도, 조율해야 할 의견도 없다(p. 34). 그저 마음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오로지 내 것인 창작물이 생기는 기분 또한 짜릿하다. 거실에 완성한 그림들을 늘어놓으면 나만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편안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이 세계는 침범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그림과 연기를 두 바퀴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연기를 하고 돌아오면 팽팽해진 신경과 굳어진 이성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억눌렀던 감정과 창작욕을 그림을 통해 발산하고 나면 연기를 할 수 있는 텅 빈 상태가 만들어진다. 연기가 그림을 부르고 그림이 연기를 가능케 하는 에너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과 연기는 상호작용을 하며 내 세계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고 있다. 아버지는 바쁜데 어떻게 그림까지 그리느냐며 놀라워하신다. 하지만 이제 그리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할 만큼 그림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연기를 하지 않는 하정우를 생각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처럼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 망한다. 그 꿈을 꾸는 동안 나는 추락하지 않고, 연기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p. 35). 영화 〈황해〉를 보면 사람들에게 쫓기던 구남이 우는 장면이 있다. 1분 30초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찍은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구남이 울면 끝. 짧으면 10분, 엔지가 나서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해도 20분,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장면을 찍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하면 믿으실까. 우선 스태프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촬영지로 간다. 도착해서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는 데에만 네 시간, 분장하는 데 두 시간, 그러고는 리허설에 들어간다.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설명하면 그 동선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을 예상해보는 과정이다. 새벽부터 준비했으나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촬영이 시작된다(p. 48). 보통 두 대의 카메라가 돌아간다. 하나는 멀리서 전경을 잡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타이트하게 잡는다. 일단 신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기한다. 그리고 카메라와 조명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네 번 정도 찍는다. 이때 위치를 옮기는 데만 30~40분씩 걸린다. 배우는 감정을 유지하며 기다리다가 위치가 확정되면 다시 찍는다.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다음으로 타이트하게 찍는 작업에 들어간다. 전경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위치 바꾸고 찍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인서트라고 해서 특정 부분만 찍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양말, 발, 상처난 부위 등을 찍는 것이다. 빨리 찍으면 30분. 더 걸리면 한 시간. 지금 이것은 〈황해〉 전체가 아니라 딱 1분 30초짜리 장면을 찍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감독, 스태프, 배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영화를 찍는 일이 이렇게 고되다. 그래서 나는 배우가 결코 우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유가 아니라 연기는 진짜 '노동'이다(p. 49).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꿈을 꾸면 언젠가 그 꿈이 내 곁으로 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멀리서 삶을 바라보면 모든 삶의 과정이 마치 누군가의 시험, 또 은총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 영화를 찍으러 뉴욕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정말 내가 뉴욕에 영화를 찍으러 가게 될 줄은. 하지만 2006년 〈두번째 사랑〉을 찍으러 뉴욕에 가게 되었다. 열심히 꿈을 꾸었고 그래서 그 꿈이 내게 와준 것이다(p. 168). 촬영장에서 쓰던 합판을 잘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합판은 새로운 질감을 시도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영화 촬영중에 그런 그림이라는 현장성도 살릴 수 있어서 마음에 꼭 들었다. 나무 위로 쏟아지는 화려한 별빛들. 그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다. 곤두서 있던 신경이 가라앉았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20년 뒤, 30년 뒤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찰리 채플린 같은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코미디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영화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채플린은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 연출 그리고 음악까지(p. 215) 직접 담당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영화가 대중에 통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타고난 듯 보이는 재능과 감각 뒤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이 숨어 있겠는가. 그래서 채플린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그처럼 되지 못할까봐 초조하지는 않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꿈을 꾸는 순간에 당장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가끔 젊은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매력과 재능을 소진하고 일찍 시들어버리는 이들을 보면 아깝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젊음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매 순간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채워 나가는 과정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한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시기는 노년이 아닐까. 노인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삶에서 체득한 많은 장점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지금보다 나는 더 성장해 있을 것이고 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이다. 연기만을 해오던 그는 1971년.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 되던 해에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연출하여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여든두 살인 지금까지도 비평가와 대중을 놀라게 하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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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69】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배우, 하정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