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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410】 헌책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작은 책방을 알뜰살뜰 꾸려 온 경험 많은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책방 일을 쉽지 않다. 수익도 많이 나지 않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일해야 할 때도 많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책방을 잘 꾸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장 혼자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책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책방으로 쓸 공간을 임대할 때는 어떤 조건들을 따져 봐야 하는지, 서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이벤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고, 홍보는 며칠 전부터 해야 하는지 등, 초보 책방지기라면 누구든 궁금해할 질문들을 거의 모두 다뤘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형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의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해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묻히고 잊히는 책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공간,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왔을 때 얼른 내어줄 수 있는 눈 밝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읽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나에게 뭔가를 자신 있게 권해줄 책방지기가 있는 공간이 작은 책방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보문고. 요즘 흥미롭게 읽는 저자의 책 중 하나다. 헌책방을 하며 헌 책을 소재로 책을 쓰는 작가를 겸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작은 책방을 알리기 위해서는 돈과 인력보다는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애초에 작은 책방과 돈 냄새 나는 홍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책방의 홍보 전략은 찾아온 손님이 스스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리게끔 유도하는 게 이상적이다. 홍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성 공 확률도 높다. 전단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이를테면 책방에 포토존을 만드는 건 어떨까? 주의할 것은 벽에 천사 날개 그림을 그려 놓고 '너의 꿈을 펼(p. 68)처봐"라든지 ‘Fly High!’ 같은 문구를 써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보니 멋진 포토존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랗게 'Photo Zone'이라고 써 놓기도 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를 당부한다. 예쁘게 꾸몄다면 거긴 누가 봐도 포토존이니까. 책방의 특정한 곳을 특별히 예쁘게 해 놓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릴 것이다. 책방 이름까지 태그한다면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지정한 것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반대로 책방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궁금증을 커지게 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인데(앞에서 말했던 시모키타자와의 '다윈 룸'이 그렇다), 역시 그 방법은 약간 위험하다. 적극적인 홍보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자.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하는 것보다는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지나치게 자유로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 분위기를 해치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양해를 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장이 대화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SNS에 긍정적인 포스팅을 올릴 확률도 높다(p. 69). 골치 아픈 단골손님 ‘ㅅ’ 씨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일수록 좀 더 예의를 차리면 좋겠습니다. 예의랄 것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책방에 자주 들러 친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참기 힘듭니다. 이를 테면 'ㅅ' 씨는 가끔 와서 책을 사는 손님인데 어느 날부터는 책을 전혀 사지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 자신의(p. 123) 경제 사정으로는 책방에 와서 책을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진열된 책을 일일이 사진 찍습니다. 촬영해 둔 책을 참고해서 온라인으로 살 거랍니다. 그것까지는 참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펼쳐 놓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책은 본문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없답니다. 결국 그렇게 촬영한다며 무리하게 펼쳤던 책은 책등이 갈라져서 팔 수도 없게 됐어요. 하긴 어떤 손님은 자기는 책방에 자주 오니까 책을 빌려 줄 수 없냐고 합디다. 잠깐 참고만 할 거라 사긴 아깝고 하루 정도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좀 곤란하다고 했더니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자주 오는 사람인데 못 믿느냐고, 그러는 거 아니라며 불퉁하게 말합니다. 속으로 외쳤어요.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제발 자주 오지 마세요! 자주 오면 뭣합니까. 책도 거의 안 사잖아요. 여긴 책방이지 당신 친구네 집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집에 가서 송금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오시면 구입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겠다고 하니 화를 냅니다. 그 역시 책방에 자주 오는데 왜 사람을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책방에도 자주 오겠지만(실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정도지만) 아마 이 동네 대형마트에는 더 자주 갈 겁니다. 그런데 마트 계산(p. 124)대에서도 그런 요구를 할까요? 정말 놀라운 일은 가끔 책방에 처음 온 분도 이렇게 집에 가서 책값을 이체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실제로 이런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는데요, 결국 그 손님은 책값을 보내지 않았고 그 후로 책방에 다시 오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 다음 Y 씨는 한숨을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p. 125). 더 큰 문제는 책을 읽는 행위조차 비난당할 때가 종종(p. 151) 있다는 사실이다. 설마 그럴까 싶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은 우리의 친구이며 평생토록 가까이 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지극히 범위가 좁다. 학습(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 돈 잘 버는 법이나 남보다 앞서가는 방법 등 궁극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긴다는 목적에 맞는 책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강연하러 갈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 오기 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책을 안 읽는다며 혼잣말처럼 한 2~3분 정도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게 못마땅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심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사람이 한가롭게 소설 따위나 보고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훈계는 꽤 오래 이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며 돈을 많이 벌어 둬야 할 젊은이가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젊었을 때 항상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갔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책을 읽는 건 꿈도 안 꿨다고 했(p. 152)다. 나는 이 일화를 학생 대상의 강연 때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젊을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 꽉 막힌 사람이 되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p. 153). 자기가 원하는 책만 골라서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p. 155)는 것만 골라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잃기에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다른 책을 만나고 그러다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게 잃어버린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 혼돈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을. 인간을 발전시킨 수많은 발견은 대부분 누군가가 샛길로 빠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책'만' 읽고 거기서 익힌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았던 자신의 발자국만 겨우 보게 될 뿐이다. 그러니 작은 책방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한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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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6-09
  • 【총회선거7】'내로남불’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은 정당화하고, 타인의 행동은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풍자 표현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교권”을 가지게 되면 내로남불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권력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독이 있다. 마지 반지의 제왕이 나오는 절대 반지와 같이.... 내로남불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파는 일이다.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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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6】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는 2005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의 핵심 의미와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의미: 전도사(배우 김병옥)가 금자에게 회개와 구원을 권하며 설교를 늘어놓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속죄하려는 금자가 차갑고 단호하게 내뱉는 대사로서, “남의 일이나 신념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탄생 비화: 박찬욱 감독이 무명 시절 오지랖 넓게 충고하던 지인에게 욱해서 던졌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는 금자의 서늘한 내면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대사이다. 총회 임원이나 어떤 자리를 맡으면 가르칠려고 하고, 지적질할려고 한다. 그때 “그런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총회의 각 자리에 앉은 목사, 장로들이여!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릴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기 바란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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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9
  • 【총회단상5】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제목의 정확한 워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경거망동한 안철수를 주저앉힌 청와대의 말이다. 과거 안철수 의원이 '윤안 연대'나 '윤핵관' 같은 표현으로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실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불이익(정치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실제로 이 경고 직후 안 후보는 캠프 전열을 재정비하고 메시지 수위를 낮춰야 했다. 111회 총회에 여러 후보들이 나섰고, 이들은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8월 예비 후보 등록을 하면 그때 언급해야할 후보들이 여럿있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자기를 살피지 않고 나선 예비 후보들을 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라리 후보로 나서지 않았으면 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이상 그들의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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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8
  • 【총회단상4】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깜”이란 것은 어떤 일의 자격이나 수준을 말한다. "그 사람은 대통령 깜이 안 된다"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기준, 자질, 역할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총회 일을 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한숨 유발자들이 있다.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용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재주도 용하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총회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발 111회 총회 때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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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6-07
  • 【북토크409】 자이니치로서 겪은 삶에서 나온 글
    『사랑할 것』은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의 저자 강상중이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으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냉철한 지식인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게 담담히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나에서부터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는 글 총 100개의 글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꿈과 사랑, 청춘의 고민거리, 강상중이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소설가 이츠키 히로유키 선생과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이에 자신과 사회, 국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고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며 현대인에게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교보문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더 찾아 읽고자 한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꿈에 그리던 소녀의 얼굴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의 구마모토 시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승낙하기는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소녀가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기서는 K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위대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본 각지를 전전했다는 그 소녀는 편안한 표준어로 전학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과 복장이 모두 세련되어 계속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눈부신 히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선머슴 같았던 나는 K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데츠오의 집에 놀러가고 싶어. 집이 어디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반응했고 조금 심한 말을 던져서 그녀의 호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6학년으로 올라가서 반이 바뀌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p. 56)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내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멍해졌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방송 스태프가 나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K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읽어 보니 미야자키현의 어느 도시에서 19 세의 단기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다음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K와 같았습니다. 언뜻 생각이 미쳐서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쇼와 45년(1970년)이었습니다. K는 이미 40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순간 말문이 막혀 종이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잔혹함이 따라다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갑자기 잘려 나가기도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의미조차 찾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사실 의미를 찾을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새삼 그 문제에 직면해 있습(p. 57)니다. 내가 K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는 쾌활함과 명랑함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났던 순수한 나날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새롭게 추가된 절단면처럼 ‘그때부터’의 슬픈 사실에 나는 다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p. 58). 어머니의 마음을 간병한 것 최근 및 년 동안 영성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면에 지식도, 관심도 전혀 없지만 샤머니즘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당을 지역이나 자택으로 불러서 가족이나 주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당은 동북지방의 이타코, 오키나와의 유타와 매우 유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도 무당을 불러 굿을 했습니다. 그 ‘주모자’인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닭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고 ‘그날’ 이 오면 치마저고리를 입은 키가 큰 무당인 시모노세키 ‘아줌마'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일단 굿이 시작되면 크고 날카로운 징과 큰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당이 '신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면 어머니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3일에 걸쳐 계속되는 기원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것이었고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식을 벗어난 그 광경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 좀 이상해.”(p. 90).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왜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암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하는 습관을 위해 많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질적인 성격이 되었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한 번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은 어머니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전쟁 중 병 때문에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집의 장남 하루오의 일입니다. 내가 철이 든 이후에 슬픈 기억에 사로잡히면 "아이고, 아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굿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하루오의 '그 다음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안도한 모양입니다. 비탄에 잠긴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인 의견이나 진지한 격려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루오의 죽음뿐 아니라 이국땅에서 자이니치 1 세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연상의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겠지요. 추측컨대 어머니는 아마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p. 91). 원래 사람의 유대가 밀접한 지역사회나 교회와 같은 장소에는 개개인의 '마음의 간병'이라는 사회적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대체물이 바로 굿이었던 셈입니다. '영성'을 통해 마음을 간병하려는 사람들의 고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p. 92). 어떻게 되겠지 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자신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인생의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 내가 구마모토에 있었을 때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틀림없이 그때 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택지도 증가한 것이지요. 내가 어릴 때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보다 오히려 '불행'에 집중했습니다. 즉 빈곤이라든지 빈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제가 '고민'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풍요로워졌고 자유가 늘어났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는 불안이 동반됩니다. 그 불안은 사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위험과 불안. 생각해 보면 이 불안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p. 103).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로 좋아하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갈 때나 결혼을 할 때 '장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왠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무모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자란 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 입니다. 내 부모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을, 좀 나쁘게 말하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성경의 말을 빌리면 '내일은 내일에 가서 고민하는' 생활을 지내 왔습니다. 불안은 있지만 리스크와 이익을 고려해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모의 등에서 내가 체득한 철학은 '어떻게 되겠지 철학'입니다. 그런 언어화할 수 없는 철학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을 생각하고 뻔뻔함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뿌리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뻔뻔함입니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p. 104).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입니다. 결국 '고민하는 힘' 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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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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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354】 죽음의 단계에서 생겨나는 신체 변화
    80 후반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입장에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언젠가 부모님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래서 틈틈이 임종에 대한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있다. 볼수록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99세까지 잘 사시다가 고통없이 가시기를 바랄 뿐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는데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병원에서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다? 의료진이 가까이 있으면 안심이 될 테지요. 그래서 임종기를 병원에서 보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걱정이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병원이라면 덜 고통받지 않을까?" 병원은 병을 낫게 해줍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간호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임종기 간호는 달라야 합니다. 임종기가 되어 신체 기능이 현저히 약해지면 통상적인 치료여도 환자는 고통(p. 13)을 크게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여명이 별로 길지 않다고 예측될 때 놓는 링거 주사'가 있습니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혈관 내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단백질(알부민) 수치가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링거로 수분을 보급해도 혈관 내에 수분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자의 발이 붓거나 가래 분비가 늘어서 고통만 받게 됩니다(p. 14). 암의 경우 추정되는 여명과 그 증상 ① 짧은 주 단위 여명(여명 1~3주 이내) • 동통 이외에 고통 증상 악화가 판단된다. 전신 권태감이 특히 강해진다. 이들 고통 증상은 스테로이드 투여로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다. • ADL(일상생활능력: 식사, 배설, 바른 자세, 이동, 입욕 등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동작) 장애가 눈에 띈다. 화장실에 가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낸다. • 성대가 야위어 생기는 사성(쉰 목소리)이나 이관 조절 기능 저하에 의한 귀의 이화감, 이음 의 청취, 체력 저하에 따른 시력 저하(흐려짐, 침침해짐 등의 표현을 함) 등이 출현한다. •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소재식 장애(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출현한다. 섬망이나 혼란을 겪는 환자도 있다. • 최저한으로 움직인다면 아직 못다 한 일을 할 수 있는 한계선이다(p. 25). 외출 및 외박이 어떻게든 가능하며 자택 이동, 병원 교체, 일시 퇴원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아슬아슬한 시기이다. ② 일 단위 여명(여명 여러 날 이내) • 고통 증상이 가장 강하다. 특히 전신 권태감이 강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고통을 호소하지만 그 부위가 뚜렷하지 않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 아프다고 표현하는 일이 많다. 이러한 고통 증상은 스테로이드 투여로도 완화되지 않는다. • 여명 24시간 전쯤 되면 고통이 최대로 커져서 진정요법을 (최저한 이며 간헐적이더라도) 고려하게 된다. 몸을 조급하게 움직이거나 다리가 무겁게 느껴져서 간병인에게 대신 움직여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ADL 장애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침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 화장실에 가려고 무리하게 시도하다 힘들어하기도 한다. • 미간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괴로운 표정을 자주 보인다. • 수면 상태, 몸도 가누기 힘든 고통, 전신 권태감 등의 상태를 오가며 괴로워한다. • 의사소통이 곤란하다. 섬망과 혼란이 나타나는 빈도가 잦아진다. • 상태가 급변하므로 임종을 지키고 싶은 가족은 되도록 옆에 머무르는 편이 좋다(p. 26). ③ 시간 단위 여명(여명 1일 이내, 몇 시간 정도로 소위 말하는 '시간 문제') • 의식 상태가 저하되어 고통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다. • 뒤척임(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등 몸을 움직이는 것)이 없어진다. • 괴로운 표정이 풀리고 미간에서 주름이 사라진다. • 무의식 발성(강하게 숨쉴 때 아아 등 간헐적 발성이 동반되는 것)이 생긴다. 괴로워서 내는 소리가 아니므로 그 사실을 가족에게 전달해 둘 필요가 있다. • 죽음 전 천명(미, 후두부의 골골대는 소리)이 들린다. 무의식 발성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저하된 환자는 괴롭지 않다. • 요골동맥(손목)이나 상완동맥(팔꿈치 안쪽)을 만져도 박동을 느낄 수 없다. • 소변 유출이 멈추거나 상당히 저하된다. • 임종을 지키고 싶은 가족은 되도록 옆에 머무르는 편이 좋다. • 호흡은 얕고 빠르다. 하악호흡(턱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쉬는 호흡-옮긴이)이 되고 1분당 호흡 횟수가 두서너 번 정도로 적어지면 여명은 분 단위이다(p. 27). 마지막 시기에는 입으로 뭔가를 먹거나 마시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시기 중후반여명 주-일 단위)에 발생하는 탈수 상태는 뇌 내 마약이라고 할 수 있는 B엔도르핀과 케톤체를 증가시켜 환자에게 진정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약 20~30% 암환자에게 '진정요법'(꾸벅꾸벅 졸게하여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행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요법을 행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의식이 저하되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가장 괴로운 시기는 역시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24시간 전후입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죽기 전날입니다. 살면서 임종자가 사망하기 몇 시간 전부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일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몇 시간 이내에 사망하게 될 사람의 상태를 상상하기는 더욱이 어려울 것입니다. 여명이 시간 단위가 되면 환자의 표정은 평온해집니다. 그런데 호흡이 빠르거나 가래가 끼는 등의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쭉 병간호를 해왔다면 환자가 죽기 직전에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가 약간만 변화를 보여도 금방 괴로워 보인다고 판단해버립니다. 고통의 판단 기준 두 가지 명확하게 고통의 증거라고 볼 수 있는 증상 두 가지를 알려드리겠습(p. 44)니다. 바로 '괴로운 표정'과 '많은 뒤척임'입니다. 특히 암환자의 임종기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여명 24시간 전후 부터(또는 여러 날 전부터) 몸을 가누기 힘든 괴로움을 표현합니다. '몸을 가누기 힘든 괴로움'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옆에서 관찰해보고 가늠하건데 서지도 않지도 못하는 상태인 듯합니다. 어떻게 괴로운지 물어보았을 때 "표현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몸이 무거우신가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무겁다"고 답했습니다. 즉 '전신이 서지도 않지도 못할 정도로 무겁고 그야 말로 몸을 가누기 힘든 괴로움'이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러한 시기에 '괴로운 표정과 많은 뒤척임'이 보입니다. 우선 '괴로운 표정'이란 말 그대로 괴로운 얼굴입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특징입니다. 내내 미간에 주름 짓는 정도부터 신체를 움직일 때 잠깐 인상을 쓰는 정도까지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 쪽이 더 괴롭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뒤척임은 신체를 움직이는 증상입니다. 몸을 가눌 수 없기 때문에 신체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잡으려고 뒤척입니다. 이 또한 계속 움직이는 환자부터 가끔 움직이는 환자까지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 쪽이 더 강한 고통에 시달린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괴로운 표정과 많은 뒤척임은 주로 함께 나타나지만 한쪽만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런 증상이 존재한다면 고통이 있으며 의식이 완전히 저하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히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p. 45). 암 환자의 여명이 여러 날 이내라고 판단되고 상시 괴로운 표정이나 많은 뒤척임이 관찰된다면, 진정요법이라는 처치로 고통을 줄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요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다만 진정요법이 수명을 단축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증상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다리가 무겁다며 빈번하게 발의 위치를 바꾸거나 간병인에게 다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면 다리가 납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같은 이유로 다리에 덮인 모포를 걷어차거나 양발 위에 이불을 덮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편해지려고 다리의 위치를 바꾸는 행동도 '많은 뒤척임'에 해당합니다. 다리가 극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증상이 계속 이어져서 뚜렷하게 괴로움이 드러난다면 진정요법을 처방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겁고 나른함이 다리에 한정되어 나타난다면 족욕을 하거나 가볍게 마사지를 하며 살짝 문질러주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몸을 가누기 힘든 증상 중 하나로 '전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 고통은 여명 여러 날 이상일 때 느끼는 고통과 달리 어디가 아픈지 확실히 전달하지 못합니다. 대답할 수 있더라도 "어디인지 모르겠어." "아무튼 온몸이 아파'"라고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어디가 아프신지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봐도 짚어 내지 못하고 "아프다, 아파"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에는 그전까지 효과가 있던 의료용 마약 등 통상적인 진정제가 전혀 듣지 않습니다. "투여하던 의료용 마약을 늘렸지만 좋아(p. 46)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들리는 게 막연한 전신 고통의 특징입니다. 대부분 전신과 함께 몸이 무겁다고 느낍니다. 전신 고통이 강하다면 진정 요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몸이 무거워서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발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임종기 환자에게는 섬망 상태, 즉 의식이 변화하고 정상적으로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증상도 자주 일어납니다(치매 악화는 아님). 임종기의 섬망은 대부분 개선되지 않으며 몸을 가누기 힘든 괴로움처럼 자주 몸을 뒤척입니다. 섬망 상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진정요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막연한 전신 고통'이나 '섬망 상태'에도 '괴로운 표정'이나 '많은 뒤척임'을 동반합니다. 정리하자면 마지막 시기에 '몸을 가누기 힘든 괴로움'은 무거운 몸, 진통제가 듣지 않는 고통, 섬망 등이 원인이며, 공통적으로 '괴로운 얼굴'과 '많은 뒤척임'을 표현합니다. 이런 증상이 강하게 나타나면 진정요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요법 외에도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말하자면 '마지막 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대를 넘기면 자연스럽게 평온한 얼굴이 되고 잠든 듯한 상태로 바뀌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의사, 간호사, 간병인, 가족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길어도 며칠입니다. 일주일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뭅니다. 그 시간 동안 각각 자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p. 47). 하악호흡 자체는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모습에는 개(p. 52)인차가 있습니다. 1000여 건 넘게 죽음을 지켜본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 하학호흡이 된 후 10분 이내에 마지막 호흡을 맞이했습니다. 제일 긴 환자로는 간경변증을 앓던 환자로 2시간 가까이 하악호흡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일이며 대부분 수분 정도입니다. 괴로운 얼굴과 뒤척임이 나타나는 시기는 지나갔고 의식도 저하되어 있어서, 이런 호흡이나 상태 때문에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호흡 정지가 일어나면 대략 수분 이내에 심정지가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때 동공산대와 빛 반사 소실(대광반사 소실)이 있으므로, 호흡 정지가 일어난 환자의 심정지를 확인하면 사람이 진단상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의 세 가지 징후인 심정지, 호흡 정지, 동공반응 정지(동공산대•대광반사 소실)가 갖춰지기 때문입니다(p. 53). 저는 임종기 환자의 상황이 졸음이 쏟아져서 비몽사몽인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잠이 들었을 때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임종기 환자와 마지막 말을 전할 때는 떨어진 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보다 귓가에서 천천히 차 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난폭하게 의식을 깨우기보다 의식에 살며시 닿을 듯이 말하는 자세가 최선입니다. 안타깝지만 의료인조차도 '마지막까지 듣고 있을 가능성‘에 무심합 니다. 방에 의료인만 남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위험하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혈압이 떨어졌네" 등의 말을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의식이 없는 듯이 보이는 환자 옆에서 사망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필요한 내용이 있다 면 병실을 벗어난 후에 전하세요. 환자의 반응이 없으면 가족들은 "이제 듣지 못하는구나.", "내 말 들려요?" 하며 슬퍼합니다. 이때 의사나 간호사는 환자의 청력이 살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환자 옆에(p. 57)서 유산 분배, 장례 준비 등 환자 본인이 듣지 않는 편이 좋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언뜻 보기에 반응이 없는 것 같지만 어쩔 때 보면 마치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거나 수긍하는 듯한 숨소리를 냅니다. 기분 탓이든 실제로 그렇든, 여명이 수 시간 단위인 임종기 환자를 대할 때는 목소리가 전해진다고 전제하세요. 그리고 가족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환자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세요. 환자의 청각은 남아 있을 테니까요(p. 58). 괴로운 얼굴이나 뒤척임이 수반되지 않는 무의식 발성 쪽이, 괴로운 얼굴이나 뒤척임을 수반하여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무의식 발성보다 훨씬 많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무의식 발성은 임종기 환자보다 가족이나 지켜보는 사람 쪽이 괴로워하는 증상입니다. 물론 진정요법을 쓰면 잦아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괴로워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세요(p. 62). 임종기의 '마중 체험' 여명 수일 단위가 되면 환자가 주변 사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 시기에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경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 등이 일어납니다. 본인도 암투병을 했던 고 오카베 켄은 소속한 그룹에서 마중 체험(임종기 환자가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나 풍경에 대해 말하는 증상)을 연구했습니다. 여명 수일 단위가 되면 환자는 마중 체험처럼 본래 보일 리가 없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 현상 때문에 돌보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환자가 감각을 잃어가는 순서는 갓난아이가 능력을 획득하는 순서(p. 65)와 대칭형입니다. 갓난아이는 청각이 시각보다 먼저 발달하는데 마지막 시기의 환자도 청각이 시각보다 오래 유지됩니다. 또한 유아는 태어나서 반년 정도까지 엉뚱한 방향을 보고 미소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마치 뭔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임종기 환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마중 체험에서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은 불쾌한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친이나 그리운 풍경이 보여서 죽은 다음 느낄 고독을 다독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력 자체는 떨어졌지만 여명 수일 단위가 되면 이런저런 '마음 따뜻한 물건'이 보이면서 안정을 찾습니다. 결코 공포영화처럼 불길한 존재나 사신이 보이는 것은 아닌 듯하니 안심하세요. 환자가 마중 체험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부정하지 말고, "보이는군요"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세요. 그게 가장 좋은 대응입니다. 또한 어느 정도 시야가 흐려져서 그러한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환자가 잘 볼 수 있도록 환자 가까이에 다가가세요. 사람을 착각하는 현상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니 되도록 충격을 받지 말고, 강하게 정정하지 마세요. 예컨대 부인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들어도 "아니, 남편인 000야."라고 차분하게 말하세요. 그래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대로 중립적인(아버지인 척하지 말고, 부정도 정정도 하지 않고 평소대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종기 환자는 애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서 착각할 때도 많다는 점을 알아두세요. 물론 잘 보이지(p. 66)않아 흐릿한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이므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가까이 두는 등의 배려가 필요합니다(p. 67). 제 경험상 주로 임종기에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는 의식이 저하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환자는 괴롭지 않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괴로워 보인다고 인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판단 기준을 참고하여 의식이 있고 괴로운 듯하다면 가래를 제거하고, 의식이 저하되어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면(고통이나 태동이 눈에 띄지 않으면) 가래 제거를 삼가세요. 의식 여부로 괴로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호흡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명 수일 단위에 빠른 호흡을 할 때도 대부분 의식이 저하되어 있어 괴롭지 않습니다. 잠들었거나 의식이 저하되어 있을 때는 무호흡과 빠른 호흡을 반복하더라도 거의 괴로움을 호소하지 않습니다. 여명 수 분 단위에 출현하는 하악호흡도 의식이 저하된 상태라 괴롭지 않은 증상입니다(p. 88). 떠나보내는 장소는 따뜻하고 포근하게 하라 사망자를 떠나보내는 공간은 가능한 한 평온하고 따뜻한 곳이 좋습니다. 환자가 안심하고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장소를 제공하고 싶겠지요. 안타깝게도 일반 병원이나 대형 병원은 개인실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평온한 공간을 제공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시설이 좋고 의료진이 훌륭하여 충분한 자질을 갖춘 공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히 훌륭하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호스피스나 완화치료 병동은 평온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암으로 입원하여 마지막 시기를 보내려고 생각하는 장소로는 적절한 선택지입니다. 다만 저는 역시 집, 오래 생활해온 노인센터, 간호시설 등이 생활공간에 가장 가까우며 마지막 장소라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익히 봐온 친한 사람이 있고, 친숙한 물건이 있으며, 익숙한 소리가 들리고, 낯은 공기가 흘러옵니다. 이는 다른 곳과 비교가 안 되는 장점입니다. 집에서 사망한 한 환자의 방에서는 그가 사랑한 클래식 음악이 조용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둘러싸인 채, 그 이상은 없다고 할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숨을 거뒀습니다. 이처럼 집이라면 음악을 켜둘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만족스러운 표정에서 죽음이 인생의 완결임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큰 병원 병실에서는 느끼기 힘든 흡족한 임종이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p. 158). 사망 징후가 확인됐다고 죽음인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란 무엇보다도 가장 의미가 풍요롭습니다. 죽음이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간호한 사람이나 유족 등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사는 힘을 선사합니다(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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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2-23
  • 【북토크353】 생일 때 죽음을 생각하자
    어렸을 때 〈오싱〉이란 책에 대해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 저자가 노년에 연명 치료 없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저자는 2차대전을 겪으며 이미 죽음에 대해 숱하게 경험했기에 노년에 이르러 죽음에 대해 담담할 수 있었다. 나도 죽음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이 생각한다. 잘 죽기를 바라면서. 현재 이 책은 품절됐고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다. 추천의 글, 하나 존엄한 죽음을 위한 한 걸음 죽음은 우리 주변을 늘 맴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고,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할 뿐이다. 이는 청춘과 노년을 막론하고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안락사로 죽여주세요!"라고 용감하게 외치는 하시다 스가코를 만날 수 있다. 하시다는 나이 든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오싱〉이라는 일본 드라마의 각본가다. 일본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가 왜 죽음이라는 두렵기만 한 낱말을 넘어 안락사라는, 어찌 보면 사회적 금기를 공공연히 입에 올리고 법제화(p. 5)를 외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아마도 현대 과학과 함께 발달한 의료의 발전으로 이전 세대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죽음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현대 의학은 중환자의료(intensive care 또는 critical care)라는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예전 같으면 사망했을 치명적인 상황에 빠진 환자를 많이 살려냈다. 또 한편 중환자 의료에도 소생하지 못하고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즉 회색지대(gray zone)에 놓인 환자들이 많아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2007년에 회색지대에 놓인 환자들에 대한 규범적 가이드라인인 '종말기 의료의 결정 과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 발표했으며, 2015년에 이를 '인생의 최종 단계에서의 의료 결정 과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 개정했다. 하시다는 이에 대해 존엄성에 신경을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투로 평가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환자 의료 중지에 관한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아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었고(p. 6) 일본보다 10년 이상 늦은 2018년 2월경에야 '호스피스 •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매우 길고 복잡한 이름의 법이 시행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안락사, 존엄사, 소극적 • 적극적 안락사 등의 용어에 대한 하시다의 의견은 일본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쟁조차 시도된 바 없다. 따라서 책을 읽기 전 이들 용어에 대해서 한 번쯤 고심해봐야 한다. 자칫 인터넷 정보에 의지해 용어를 정의한다면 혼란과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 의학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의 '안락사'는 자발적 안락사, (의사) 조력사망, 연명의료 결정, 이 세 가지로 나뉜다. 안락사(euthanasia)란 사실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어이다. 안락사(安樂死)의 한자어를 해석하자면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란 뜻이다. 또 그리스어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를 해석하자면, '에우(eu)'는 '좋은' 또는 '편안한'이라는 뜻이며 '타나시아(thanasia)'는 죽음이란 뜻이니 안락사란 적절한 번역이다. 그러나 안락사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왠지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2차대전 때 독일(p. 7) 나치가 유대인, 집시 및 장애인을 대량 학살했기 때문일 것 이다. 또한 이 책에서도 기술한 안락사가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될 거라는 우려도 한몫한다. 다만 이 책에서도 서술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안락사(volunatary active euthanasia)를 허용한다. 한편 존엄사(detah with dignity)라는 용어는 보다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2009년 2월 16일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날 이후일 것이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하여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등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였고 사후에 장기를 기증하였다. 언론은 이를 존엄사라는 용어로 서술하였으나 당시 가톨릭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존엄사로 표현하는 데 극력 반대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겸손하게 순응하였습니다"라는 말은 가톨릭교리 문답서(p. 8)에 있는 내용이다. 이는 미국의 오리건주에서 1997년 실시한, 자발적 ·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에 나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의미의 존엄사'와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존엄사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는 인권 측면의 의미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자살'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고 스스로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고 싶어 하는 지은이의 소망 은 결국 존엄사의 부정적 의미인 자살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자기 결정권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은이는 구체적으로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 PAS)과 앞서 언급한 적극적 안락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의사 조력 자살이란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및 미국의 오리건주, 워싱턴주, 버몬트주 등이 허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회생 불가능한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와 다른 점은, 스스로 죽음을 결행하는 게 아니라(p. 9) 자신이 방법을 선택한 후 의사 등이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의사 조력 자살과 적극적 안락 사는 진보적 국가에서도 첨예한 논쟁거리이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 초 조력사망 법안을 네 차례나 상정하였으나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으며, 2010년대에도 82퍼센트의 찬성(여론조사)을 얻어서 조력사망 법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되었다. 미국에서도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메릴랜드주의 상원에서 결의한 조력사망 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될 정도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민 70퍼센트가 존엄사를 찬성(「아사히신문」 조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90퍼센트 정도가 존엄사를 찬성(2008년 국립암센터 조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 스스로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필요성이 있음을 차분히 설득하고 있다. 지은이 하시다는 그동안 일본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의료 시스템을 꼬집으며 왜 안락사 또는 조력 자살이 필요한지 서술하고 있다. 특히 복수의 의사와 간호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변호사로 구성된 팀이 적극적(p. 10) 안락사를 판단하게 하자는 제안은 하시다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숙고해왔음을 방증한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의 과정은 보통 사람들과 격리되어 의료진의 몫이 된 지 오래이다. 환자가 가족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던 시절에는 의사가 가족과 마지막을 함께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이 강조되면서 죽음의 과정,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관련한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환자가 최신 의학 장비에 둘러싸여 사망하게 되면서 고인의 의지 및 마지막으로 남기려 한 바가 무엇인지를 알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한편 의사로서 '살리기만 하는' 의료에서 '선택지를 부여하는' 의료라는 하시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도 최근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와 관련해 소통과 윤리적 대응을 배우고 있으나 보다 적극적인 선택(p. 11)지를 부여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와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무 살 생일에 죽음에 관해 생각하자'라는 제안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주변을 보면 모두 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누구나, 언제든 죽음을 맞닥뜨릴 수 있다. 스무 살 생일에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우는 방법이며, 동시에 우리가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p. 12) 추천의 글, 둘 삶은 선물, 죽음은 선택 "삶에 더는 미련이 없다. 이제는 기꺼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노인이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선뜻 그렇게 하시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힘껏 말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왠지 죽음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느낌이 든다. 생판 남이라도 이럴진대, 지인이거나 가족이라면 제발 그런 생각일랑 멈추라며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노인이 나라면 어떨까.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어린 시절부터 스무 살까지의 청춘을 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보냈다. 군수 공장 배전반의(p. 13) 나사를 조이고, 또래 자살 특공대원에게 기차표를 건네며 '인간은 왜 태어난 걸까'를 수없이 되뇌던 시절을 거쳐 전쟁이 끝난 후 영화사 '쇼치쿠'의 첫 여성 각본가로 입문해 훗날 일본의 국민 드라마 작가가 된다. 그녀의 대표작인 NHK 아침 드라마 〈오싱〉에서, 오싱의 장남은 전쟁터에서 죽고 남편 또한 전쟁의 부채감에 시달리다 자결한다. 하시다는 평범한 인물들도 어떤 이유와 상황에서든 전쟁에 협력했기에 이에 대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전쟁의 책임은 지도자뿐 아니라, 소녀였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일본인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 역시 철저히 부정당했을지언정, 그녀는 타인의 존엄을 잊지 않고 반성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하시다가 나이 여든이 되고부터 유언장을 쓰기 시작하고, 여든아홉이 되면서 본격적인 종활(죽음을 준비 하는 활동)에 들어갔다. 각본 쓰는 일에서 은퇴하고, 지금까지 집필해온 원고와 소장한 비디오테이프, 주고받은 편지 모두 정리하고 책도 기증했다. 모아온 핸드백들도 팔아버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았던 일기 쓰기 역시 그만둔다. 옛(p. 14) 문서들을 꺼내 줄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고, 버릴 때는 파쇄기까지 구입해 끝장을 낸다. 그렇게 정리를 시작하고 완성 하는 데 무려 2년이 걸렸다. 자못 처량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체력이 충분할 때 시작하라고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도리어 꼿꼿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이제 텔레비전 출연을 사양하고, 주변의 장례식과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하시다가 2016년, 「분게이 슌주」에 '나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라는 글을 싣자마자 수많은 독자의 동의가 뒤따르며 전국적으로 안락사 논쟁이 일었다. 그녀는 그제야 정색하며 "나는 누구에게도 이런 생각을 요구받은 적이 없으며, 주변 사람이나 사회 역시 절대 이런 입장을 강요해선 안 된다"라고 말한다. 안락사는 고려장이 아니다. 인공 호흡기에 의존할지라도 끝까지 숨을 붙여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뜻을 존중한다. 다만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의 입장도 있고 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종활에 들어간 그녀에겐 법안 통과를 위해 앞장설 여력도 없다. 다만 자신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응급차를 부르지 말아달라, 혹시나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 위에 관을 삽(p. 15)입하지 말아달라, 불필요한 연명 조치 대신 가능하다면 잠 들듯이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등의 부탁을 할 뿐이다. 유언장에는 자신이 죽더라도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적었다. 장례식과 주도회는커녕, 혹시 각본을 쓴 드라마가 재방송되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조차 싫다는 마음은, 나로서는 아직 가늠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말리는 것은 오히려 내 마음 편하자는 행동이 아닌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사람들이며 물건들을 붙잡고, 아픈 몸을 이끌고 치료를 다녀야만 하는가. 세상에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달라며 끝없이 외치는 삶이 진정 존엄한 것인가. 자존심이 센 그녀는 이미 30여 년 전 죽은 남편 곁이 아닌 곳에, 자신이 묻힐 자리도 따로 마련해두었다. 우리는 언젠가 이별이 온다는 사실을 줄곧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때가 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하면서도. 하지만 가족도, 친척도 없는 그녀에겐 그런 상상조차 사치일 뿐이다. 이러다 치매라도 걸린다면, 연고도 없는 누군가에게 병수발을 부탁해야 한다. 스스로 끝을 낼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다(p. 16). 책에는 이런 그녀가 매년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혈당이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복용하며 매일 200그램의 고기를 챙겨 먹는다는 사실이 쓰여 있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수영을 즐기고, 일주일에 사흘 트레이닝으로 근력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일면 모순된 노력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생에 미련이 없는 사람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삶의 존업성을 지키기란 이렇게 힘이 든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 끝을 늘리는 것이 해답이 아니다. 이미 심각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매년 노인 대상 의료 서비스가 폭증하고 복지 분야 재화와 일손 부족이 심화되며 연금 고갈의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인류의 장수가 과연 축복이냐고 묻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 허용 국가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등 몇 곳에 불과 하며, 미국의 나머지 주와 유럽,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적 존엄사만을 허용한다. 일본의 경우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지만 존엄사를 허용하며, 한국에서도 일명 웰다잉법, '연명의료결정법'이 올해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여러 절(p. 17)차를 거치긴 하지만, 임종기 환자가 연명 의료 중단을 원할 경우 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길이 열렸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존엄사와 적극적 안락사의 간격 역시 크다. 적극적 안락사 허용이 장애인과 난치병 환자 등에게 삶을 포기할 것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남아 있다. 죽음을 고민하는 이들 가운데, 하시다와 같이 사회적 • 경제적으로 삶의 결정권을 온전히 소유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서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했지만, 죽음이 병자 또는 나이 든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은 알고 있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어떤 모습이든 간에 이를 연장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인가. 작가는 결국 자신에게 안락사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의 법제화를 기다리기 전에 스위스로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선택의 때가 오면 실행할 수 있을지, 역시나 죽음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안락사가 합법적 자살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에, 그녀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스스로 안락사 약을 받은 사람의 40퍼센트가 결국은 약을 복(p. 18)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살고,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 책임 질 수 있도록, 부디 배려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노인이 여기 있다. 그녀를 도와야 할까 여전히 주저하게 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삶은 자기 자신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죽음 또한, 그 삶의 일부다. 김소영 당인리책발전소 대표(p. 19). 전쟁의 기억 내 생사관의 밑바탕에는 전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생각했더랬다. 일본은 강해, 특별하고 위대한 나라야, 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생각하건대, 지금의 북한 주민들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세뇌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1925년 5월 10일에 당시 한국의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성에서 '조선물산'이라는 토산품(p. 31) 가게를 운영하셨다. 스가코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경성에 있던 조선 신궁에 가서 받아 오신 것이다. 그렇게 경성에서 살다가 교육은 역시 일본에서 받는 편이 좋겠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둘이서 귀국해 오사카의 사카이에서 살았고, 1943년에 오사카 부립 사카이 고등 여학교를 나와 도쿄의 일본여자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학생도 전쟁에 동원되어, 나는 수업을 받는 대신 전투기의 배전반을 조립하는 군수 공장에서 배전반의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볶은 콩과 볶은 쌀을 챙겨 들고 방공 두건에 작업용 바지 차림으로 공장에 출근했다. 배는 항상 고팠지만, 일이 끝나면 '오늘 하루도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했구나' 하는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참으로 장한 군국 소녀라 스스로를 여겼던 것이다(p. 32). 아아, 어머니, 차라리 잘 돌아가셨어요 그때 나는 '아아, 어머니, 차라리 잘 돌아가셨어요'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심경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살아 있다 한들 나을 것이 없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 따위는 가질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매일 같이 공습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이대로는 어차피 조만간 죽을 것이다, 나 또한 틀림없이 죽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어머니, 일찍 돌아가셔서, 일찍 편해지셔서 다행이에요'라는 심정이었다. 더는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오사카 교외에 사는 큰어(p. 37)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연락이 안 되었던 이유는 연기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잠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구호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이내 큰어머니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뭐야, 살아 계셨어?'라며 실망했다. 이른바 생사관이 지금하고는 전혀 달랐다. 어제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이 오늘 죽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죽는 것이 당연하고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기적 같은 시대였다. 당시의 일본인이 전부 그러진 않았지만, 나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전쟁의 승패보다도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젊은 여자들은 모두 같은 기분이었을지 모른다. 미군이 상륙하면 치욕을 당하기 전에 기필코 죽는다, 그 동안 훈련한 대로 죽창을 휘두른 다음 자신의 목을 찌르든 목을 매든 어떻게 해서라도 죽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절대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단노우라에서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던 헤이케 가문의 여성들처럼. 그것이 일본인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p. 38) 청춘이 없던 청춘 시절 사실 그때 해군 경리부에서 어떤 서류를 태워버렸는지 나도 모른다. 해군 경리부에는 민간 은행이나 대기업의 경리부에서 일하다 군인이 된 사람이 많아서 군대 분위기가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멋진 사람들로 가득했고, 개중에는 이사생으로 일하던 여학생과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세대의 수많은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아 돌아온 남자들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결혼 했다. 우리는 외면받은 세대였다. 남자 한 명당 여자 한 트(p. 42)럭이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다. 일본여자대학교 동창 중 절 반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무서운 이야기다. 전쟁은 내가 여학교 4학년일 때 시작되어 여대 3학년일 때 끝났다. 그렇다 보니 내 삶에 청춘은 없었다. 열대여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기억은 전혀 없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먹고살기 급급해서 연애 같은 것 을 할 여유가 없었다. 돈 많은 남자 있으면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한창일 때는 어떤 역경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세대 사람들이 대체로 건강한 이유는 어쩌면 소박한 식생활을 한 덕인지도 모른다. 우리 어렸을 때는 햄버거나 콜라는 꿈도 못 꾸고 채소와 감자, 고구마 따위만 먹으며 자랐던 것이다. 행복의 의미도 달랐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배불리 먹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죽어라 일해서 빵 하나를 샀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지금 호화로운 3만 엔짜리 코스 요리를 먹을 때보다 더 컸다. 기차도 지금은 쾌적한 신칸센을 탈 수 있지(p. 43)만 당시에는 차창으로 연기가 꾸역꾸역 들어오는 콩나물시루 같은 3등석을 이용했다. 그래도 감사했고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p. 44). 인절미가 가르쳐준 삶의 고마움 이윽고 우리는 야마가타의 아테라자와에 도착했다. 10월 말 야마가타 분지는 눈 닿는 곳 어디나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폐허가 된 도쿄와 달리 벼들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세상에, 저게 다 쌀이야!' 하며 감동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다. 하지만 풍요로운 정경은 여전했다. 두보의 시 한 구절처럼 "나라가 망했어도 산천은 변함이 없구나"였다. 나는 야마가타의 경치를 보고 비로소 '이 나라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어쩌면 나도 계속 살아(p. 47)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큰어머니는 목재상의 헛간을 빌려서 살고 계셨다. 목재상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차와 인절미를 내주셨다. 대체 몇 년 만에 제대로 달인 차를 맛보는지, 또 이렇게 고물을 듬뿍 묻힌 인절미를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입안에 집어넣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야마가타 사투리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꾸짖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여기도 물자가 부족할 텐데,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먹었어' 하고 반성하고 있는데, 얼마 후 콩가루에 깨, 호두, 풋콩을 으깬 것을 비롯해 일곱 종류나 되는 인절미가 나왔다. 아까 아주머니께서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직 나올 게 많은데 벌써 그렇게 많이 먹으면 어떡하니?" 야마가타는 내게 구원의 땅이었다. 매일 곁에 바싹 다가온 죽음을 느끼며 내일은 기필코 나라와 함께 죽겠노라 각오한 만큼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내게 삶과 희망, 미래를 꿈꾸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전쟁이 불행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이후의 생명, 이후의 인생은 선(p. 48)물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받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 수 는 없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힘들어도 고생으로 느낀 적이 없다.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된다. 돈이 없어도 전혀 괴롭지 않다. 전쟁 중에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줄곧 이런 마음가짐으로 '새로 받은 생명', '새로 받은 인생'을 살아왔다.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욕심 내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p. 50). 제발 장례식은 사절! 젊었을 때부터 나는 죽었을 때 장례식을 열지 않기를 바랐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기도 싫어하지만 장례식에 가기도 싫어한다. 일본여자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장례식은 번거롭고 낡은 계급 제도의 상징으로 치부했다. 화족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호화로웠다. 가족 말고는 두세 명만이 찾은 쓸쓸한 장례식에도 가봤다. 그러는 가운데 '장례식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왜 이런 차별의 상징 같은 행위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세상을 뜬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데 다들 무엇(p. 69)을 위해 모이는 걸까? '이 장례식에 가면 아무개와 아무개 를 만날 수 있으니 가볼까?' 하고 이해타산을 따져 많은 사람이 모인 장례식도 가봤다. 유명인이 죽으면 커다란 장례식장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열리거나 일류 호텔에서 고별식이나 추도회가 열려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그중에 정말 고인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자식이나 친척이 많으면 장례식은 그들을 위한 행사이다.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유족들은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내게는 육친이 없다. 개중에는 생전 장례식에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지인들과 떠들썩하게 이별을 고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하기야 열 사람 다 다른 법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나는 장례식도 회상 모임도 원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사교의 빌미로 이용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내 장례식을 치른다 해도 어차피 의리상 찾는 사람밖에 없을 터이니 굳이 발걸음을 하게 만들기가 미안하다. 의리 때문이라면 굳이 안 와도 된다. 그냥 화장해서 무덤에 넣어주면 그걸로 족하다. 내 무덤은 이미 아버지의 고향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p. 70)에 만들어놓았다. 28년 전에 죽은 남편의 무덤은 시즈오카에 있으니 또 한 번 이별하는 셈이다. 마마보이였던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고 했는데 이 묘소에는 남편의 부모님과 아주버님 부부도 함께 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아주버님은 내게 "미안하지만 제수씨는 우리 묘에 들어올 수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고 기뻐하면서 이유 따위 묻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시어머니 문제로 꽤나 고생했기 때문에 죽어서도 함께 사는 것은 이쪽도 사양이다(p. 71). 〈오싱〉의 경우 어디를 가든 안 보는 사람이 없었고 나를 떠받드는 사람까지 있었다. 소설은 안 읽는 할머니들도 〈오싱〉을 즐겨 보신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아, 각본가가 되기를 잘했어. 지금까지 살아온 의미가 있었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 좋은 글을 더 많이 쓰겠노라고 맹세했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동안은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건강하게 살아야만 모두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는 각본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건강에도 신경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각본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끝났다. 필요 없는 인생이 된 것이다. 당연히 '슬슬 죽을 생각을 해야겠구나'라는 심정이 들었다(p. 86).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일을 할 때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프로듀서나 감독이 수정을 요구하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괜히 반항했다가는 잘려서 생계에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게 싫어서 각본가를 그만두고 결혼이라는 평생직장을 구했던 것이다. 결혼한 뒤로는 남편의 월급이 있는 이상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으면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 도,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썼더니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p. 108). 스무 살 생일에 죽음에 관해 생각하자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엔딩 노트'를 나도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정해진 항목에 적어 넣기만 하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처음에는 참 편리한 물건이라고 감탄했는데, 잘 들여다보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알리고 무엇을 남기는지 적게 돼 있다. 친척이나 친구의 연락처와 메시지도 적어야 했다. 나처럼 친척이 없는 외톨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적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물건이 아니라 보통 공책에 필요한 항목을 최소한도로 메모하고 있다(p. 223). 나는 아흔 살을 목전에 두고 이걸 시작했지만, 좀 더 일찍 시작하면 더 좋다. 젊었을 때부터 '안락사가 좋다'라든가 '숨만 쉬고 있다면 의식이 없더라도 계속 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고 매년 글로 남기면 좋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떤 재난에 휘말릴지 알 수 없다. 그럴 때 바로 죽는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생일에 적어놓았던 의사 표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고, 안락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뇌경색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산책을 하다가 난폭 운전을 하던 자동차에 치여 반신불수가 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생일이 올 때마다 지나온 삶의 의미와 기쁨을 곱씹으면서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습관이란 말인가. 이것이 싫은 사람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죽으면 된다. 성인이 되었을 때를 계기로 삼아 자신이 어떻게 죽고 싶은지, 장기 기증을 할지 말(p. 224)지 등을 정리해두면 좋을 것이다. 애초에 죽음을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조가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말이다. 죽음과 마주하는 의사가 나오지 않고, 죽음에 관한 법률과 의료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데 역시 이런 풍조 탓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면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p.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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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3
  • 【북토크352】 자살한 중년의 엄마에 대한 딸의 회상
    성장과정과 남편과의 원만치 못한 결혼생활로 우울증을 앓던 50대의 중년 여성이 자살했다. 이 책은 큰 딸이 엄마를 회상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참으로 먹먹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 여성으로 살면서 가정이 제대로 뭔지 모르는 남자와 만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했을까? 삶이 참 힘들다. 아빠에 대한 억눌린 무기 엄마의 첫 생신제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어디론가 떠났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의 꿈을 자주 꾼다. 오늘 꿈에선 자다 일어나 보니 엄마가 우리 집 주방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나는 놀랍고 기뻐 엄마의 폭신폭신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흡사 솜사탕 같았다. 달콤한데 금방 녹아버릴까 걱정이었다. "엄마, 어디 다녀오셨어요? 다녀온 곳은 어땠어? 좋았어?" 엄마는 무언가 말하려다간 입을 다물었다. 혼자 다녀온 곳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던 나는 엄마가 끓인 찌개가 너무 맛있겠다고(p. 54) 춤을 췄다. 애호박이 들어가 달큼하고 시원해 보였다. 엄마랑 놀고 있는데 아빠가 어디선가 맥주 두 병을 가지고 왔다. 아빠를 보니 갑자기 화가 나서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잘하는 짓이다! 이런 날까지 술을 가지고 들어와야겠어?" 내가 아빠를 비꼰 게 좀 심하긴 했다. 이상한 억하심정이 꼬일 대로 꼬여 그렇게 표현된 듯했다. "애 말좀 들어요." 엄마가 말하는 순간, 아빠는 갑자기 분노 조절에 실패하고 들고 있던 맥주병으로 엄마의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쓰러진 엄마를 부여잡고 "엄마, 엄마" 외쳤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결심한 사람처럼 눈이 뒤집어져 아빠가 들고 있던 또 다른 맥주 한 병으로 뒤돌아선 아빠의 머리를 내리쳤다. 언제까지고 계속. 이 잔인한 꿈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남편을 껴안았다. 남편은 본인도 악몽을 꾸고 있던 중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남편에게 악몽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 꿈 이야(p. 55)기를 들으며 다시 잠에 빠졌다. 이번 꿈은 몹시도 잔혹했지만 이상하게 소설적인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꿈속에서라도 엄마가 집안일에서 해방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꿈의 본질 같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꿈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엄마를 볼 수 있어 참으로 기뻤다(p. 56). 밤을 걷고 엄마를 보다 〈밤을 걷다〉는 〈최악의 하루〉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다. 아이유에 대한 네 편의 옴니버스 단편영화를 묶은 〈페르소나>가 나온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한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지은은 남자친구의 꿈속에 등장한다. 실제의 지은은 자살했고, 남자친구는 그 이유를 모른다.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았던 남자친구는 지은을 만난 꿈속에서 어깨를 떨며 오열한다. 꿈이 깨면 모든 게 사라질 테니 남자친구는 "난 기억할 거야. 기억해야 해"라고 끊임 없이 되새긴다. 그러나 지은은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가는 데 없이 잊혀질 거야"라고 말하며 남자친구의 얼굴을 감싼다(p. 62). 사라짐, 꿈과 죽음은 그 속성이 비슷하다. 극 중 지은의 말대로 정처 없고 가는 데 없이 잊힐 뿐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이 영화를 보며 하릴없이 나의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가 아득한 것은 곧 휘발될 꿈의 기억과 그 기억의 끄트머리를 붙잡고서라도 돌아가신 엄마 곁에 머물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다. 꿈속에서 엄마와 함께 마주하는 공간은 〈밤을 걷다〉의 공간처럼 내가 가봤던 곳 같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것 같은 곳들이다. 꿈 가장자리에서 그 공간들을 서성이며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만지작거린다. 지은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 엄마는 그 흔한 유서 한 장조차 남기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지은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를 알지 못하듯 내게도 엄마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는 영원히 미지수로 남을 테다. 아스라한 꿈 저편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은 오늘도 흩어졌다 모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지은의 남자친구처럼 밤을 걸으며 밤의 장막이 걷히길••• 엄마를 기억하려고 애쓰며, 부유하는 엄마와의 추억들을 볼 것이다. 아마도 나의 평생에 걸쳐 매일을 오늘처럼(p. 63). 나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내가 고통에서 헤어났으리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깊은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어두움은 터널에 있어 본 이들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쉽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상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무섭다.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의 고통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p. 71).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은 밤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엄마는 늘 아팠다. 그래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워냈다. 젊은 엄마는 여러 일을 했다. 엄마가 어판장에 앉아 성게알을 보석처럼 빼낼 때마다 어린 나는 입을 벌렸다. 엄마가 성게 까는 일을 했던 곳도 그대로 있었다. 그건 사진처럼 장면으로 기억날 뿐이거나 또는 아예 실제로 보지 못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 그물에서 생선을 꺼낼 때마다 햇볕이 생선 등에 튀기는 걸 놀라듯이 바라본 것 같다. 아빠 친구들 배는 모두 신식으로 바뀌어 있어서 바닷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말고는 그저 낯설었다. 그래도 엄마 손 잡고 시장을 다녀오던 길목이나 독사진을 찍고 싶다는 동생 뒤에서 입을 크게 벌린 채 장난을 쳤던(p. 88) 골목의 풍경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거나 2학년일 무렵 엄마는 학교 옆 냉면집에서 서빙을 했다. 매번 홀로 가는 하굣길을 엄마와 함께 가려고 나는 학교가 파하면 쪼르르 냉면집을 찾아 갔다. 일하는 엄마가 신기했고 엄마 손 잡고 집 가는 길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발로 차서 집 안의 유리문이 깨졌다. 아빠 발등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나는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엄마는 아마 심하게 맞고 난 뒤였을 것이다. 엄마는 집을 떠났고 나는 울면서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혼자서도 사는 법 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엄마는 진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매일매일 전화를 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가 고아원에 나랑 동생을 맡기고 가 버리라고 막말을 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어릴 적의 몇 년은 성인 시절의 몇 년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내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뭐든지 스스로 고르게 했고 그렇게 고른 것은 아(p. 89)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꼭 사 주었다. 내 물건을 마음대로 처리한 적도 없어서 모든 결정의 처음부터 끝을 모두 내가 하게 했다. 막내삼촌은 여러 가지 부침 속에서도 내가 이렇게 잘 자란 게 신기하다고 했지만 삼촌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엄마의 온전한 지지와 양육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음을....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은 밤이다(p. 90). 엄마는 아닌 것에 있어서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행동으로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반에서 성(p. 98)적으로 1등이었고, 부반장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이상하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모피를 두르던 그 할머니 담임선생님이 나는 무서웠다. 선생님이 불러서 학교에 간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의뭉스럽고 교묘하게 촌지를 요구하는 걸 파악했다. 그러나 엄마는 촌지를 건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에 실험 관찰책을 가져가는 걸 깜빡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하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통지표에 늘 '영양실조'라고 적혀 있던 키만 크고 깡마른 나는 담임선생님이 말 한대로 딱 100번, 성실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 5일 동안 걷질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촌지를 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화난 엄마가 전화를 걸자 담임선생님은 나한테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킨 적이 없고, 죄책감에 시달린 내가 스스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이나 한 거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우리 애는 거짓말을 하는 애가 아니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맞섰다. 5일 뒤 학교에 간 나는 더 이상 담임선생님이 무섭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주아주 잘 사는 집 애들만을 예뻐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p. 99)에선 전 과목 백점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담임선생님들께 전화를 해주었다. 하루 정도 학교를 나가지 않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중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내가 화장을 하고 다닌 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나는 누차 선크림을 바른 거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했지만 믿어주질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지각을 한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담임선생님 말만 듣고 나를 윽박지를 법도 한데 엄마는 선생님이 잘못 안 거라고, 우리 애는 화장 따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가는 걸 엄마가 똑똑히 봤다는 거다. 갑자기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피곤하다 보니 종종 지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선생님이 이해해달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엄마는 내가 다니고 싶다는 학원만을 다니게 했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은 아빠에게 얻어맞는 일이 있어도 사 주었다(내가 책을 사는 걸 아빠가 왜 그리 싫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한테 물어보니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누구 말이 사실일까?)(p. 100).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은 엄마로 인해 풍족하게 채워졌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구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엄마 덕분이었다. 어제 꿈에 엄마가 캣우먼이 되어 나타났다. 타이트한 가죽 코스튬을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당당하고 멋졌다. "엄마!" 하고 부르자 엄마는 윙크를 하며 뒤를 돌아봤다. 역시 엄마는 영원한 나의 히어로였다(p. 101). 삶이라는 무서운 경기에 내던져진 엄마는 자신의 아이 또한 이 불안의 링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게 죄스러웠지만, 꼬물 꼬물한 아이의 손을 잡을 때마다 이 아이만이 엄마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걸, 그래서 아이의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걸, 아니, 자신은 이 아이의 작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면 아주 어쩌면 팽팽 도는 이 세상의 팽이를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최 여사! 밤이 어두워도 다음 날에는 늘 아름다운 해가 뜨는 거 알죠?" 라고 말해주던 아이의 희망찬 입술을 믿었기에 자신이 살면서 유일하게 잘한 일은 이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고, 자신이 살면서 저지른 가장 최악의 일도 이 아이를 세상에 내어 보인 것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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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2
  • 【북토크351】 시신 부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 책은 한국 부검의 선구자인 문국진 교수가 부검에 관련된 문제를 언급한 책이다. 지금이야 부검이 많이 진행되고 받아들여지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은 서서히 변화한다. 그러는 가운데 억울한 피해자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 품절됐다. 유럽의 관법에 의한 검시 당시 유럽에 있어서의 검시는 관법에 의해 이루어 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범죄로 사망한 사건의 경우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용의자를 살해된 시체의 옆에 데리고 가 손을 대게 하면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범인이 옆에만(p. 25) 와도 출혈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것을 범행의 증거로 하는 검시가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독일(1660)에서는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면 엄지손가락을 잘라 보관 했다. 후일 용의자가 체포되면 그것이 10일이나 15일이 경과되었다 할지라도 용의자가 있는 방에 절단된 엄지손가락을 넣어 놓고 출혈의 유무를 관찰했다. 만일 출혈이 야기되면 그 용의자는 진범이므로 순순히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해서라도 범행을 자백 받았다고 한다. 관법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의 상태로 약 50년이 지속됐다. 결국 진범이라면 자신이 가해한 피해 시체를 보거나 접촉하는 순간 얼굴의 표정이나 몸의 거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관찰해 변화가 심하면 진범이라는 단서로 이용(1726) 했다고 한다(p. 26). 사인구명에 대한 인식과 문제점 아직도 두벌주검이 문제인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 중에 '두벌주검'이라는 용어가 있다. 한글사전에서는 '해부한 송장을 일컬음'이라고 하였는데 시신에 칼을 대어 부검하면 두 번 죽는 것이라고 믿는 데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의 뇌리에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도 억울 한데 왜 한 번 더 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런 연유로 유족들은 부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완강히 거부해왔다. 우리나라의 부검률이 외국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것도 이러한 인식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환자가 생존 시에 앓고 있 던 병에 대한 진단이 과연 정확하였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 등은 사후의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부검결과에 의한 의료행위의 비판과 반성, 이에 따르는 시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학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p. 53) 경우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남의 나라의 통계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법 부검의 경우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검을 거부하기 일쑤다. 법의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사회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으로 끝끝내 부검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법의학의 앞날은 뻔하다. 내가 법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고민에 빠졌던 것도 바로 이 두벌주검의 문제이다. 그래서 법의학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음은 고질적인 두벌주검의 인식과 시체를 무서워하다 야기된 사건의 뒷이야기이다 사례 1 : 부검하면 정말로 두 번 죽는가 서양 특히 미국 사회에서는 부검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나는 한때 뉴욕대학에서 연구를 하며 법의부검의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경험한 일이다. 하루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장거리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 즉 자신은 그곳에서 내과를 개업한 의사인데 아버지가 뉴욕에서 살다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생존 시에 위암과 같은 증상을 보였으므로 아버지를 부검 해 정말 위암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자신과 자식들은 이에 대비해야겠으니 그 결과를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화번호와 아버지의 뉴욕 주소를 알려 주었다(p. 54). 우리 식으로만 생각하자면 정말 고약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식이 당장 달려오지도 않고 게다가 아버지의 시체를 째서 위암 여부를 가려 만일 위암이었다면 자신과 자식들은 유전적인 것을 고려해 이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미국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전화를 받은 나는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한국에서 겪었던 너무나 대조적인 사건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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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2-22
  • 【북토크350】 독서는 재밌다
    전직 판사 문유석 작가의 독서에 대한 책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그는 독서가 쾌락이었다고 했다. 동감이다. 공부할 때는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지만 나만해도 이제는 재미로 읽는다. 재미있는 게 많은데 굳이 재미 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 고역일 것이다. 내게 독서가 재미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쯤 되니 독서를 주제로 책을 쓰기 시작한 나 자신이 무모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도대체 『책은 도끼다』 같은 책은 어떻게 쓰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해 폭포수 쏟아지듯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당최 그 정(p. 83)도로 섬세한 감성이라고는 타고나지 못한 시큰둥한 나 자신을 잠시 원망해보았지만, 뭐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마찬가지로 독서도 이런 독서도 있고 저런 독서도 있는 거다. 카프카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는 거냐며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고 일갈했지만, 수사법은 수사법일 뿐, 책은 도끼일 수도 있고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고 잠을 재워주는 수면제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책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용법이 있기 마련이다. 심심풀이 땅콩 얘기를 하고 보니 내가 청소년기에 길고 긴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어릴수록, 젊을수록 하루도 길고 일 년도 길고 남아 있는 살아갈 나날은 끝도 없어 보였다. 시간은 언제나 무한정 남아도는 백사장의 모래알 같은 것이었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발견하면 "우와, 한동안 재미있겠다!" 하며 신이 났고, 게다가 그 소설이 열 권 스무 권 밑도 끝도 없이 길기까지 하면 두고두고 퍼먹을 꿀단지라도 발견한 기분이였던 것 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져버렸다. 대하소설은커녕 조금만(p. 84) 두꺼운 책 앞에서도 멈칫거린다. 사실 읽자면 지금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텐데 지레 겁을 먹게 되어버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하루도 짧고 일 년도 휙휙 지나가고 남아 있는 나날이 벌써 손에 잡히는 것만 같다. 내일이 없는 사람마냥 여가가 생겨도 그저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먼저 이리저리 찾다가 오 히려 아무 재미도 없이 흘려보내고 말 때가 많다. 열 권 스무 권짜리 책을 잔뜩 쌓아놓고 마루를 뒹굴거리며 매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던, 해가 영원히 지지 않을 것만 같던 8월 여름방학의 나날들이 그립다(p. 85). 편식 독서법 책 수다도 많이 떨고 여기저기 독후감도 올리고 하다보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의 답은 '대충 읽는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 위주로 읽는다'다. 편식 독서법이랄까. 엄마가 억지로 먹으라는 토란국은 국물만 몇 수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소시지야채볶음은 소시지만 쏙쏙 골라 먹는데, 운좋게 킹 크랩을 먹게 되면 마지막 다릿살 하나까지 꼼꼼히 발라먹기 마련이다. 모든 음식을 똑같이 정성스럽게 먹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부분만 먹고는 다음 음식으로 넘어간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부위는 천차만별. 난 내(p. 167) 취향의 책을 골라서, 그 책 중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은 휙휙 넘기며 읽는다. 어떨 때에는 한 책에서 단 한 장면, 단 한 구절만 맛있을 수도 있고, 기적같이 한 문장 한 문장 전부를 꼭꼭 씹어 먹으며 맛있어할 수도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랑은 왜』 『청춘의 문장들』이 쫀쫀하게 모두 맛있는 책들이다. 다만 내 취향의 '편식 독서'라도 많이 하다보면 점점 그와 연관된 다른 메뉴들도 찾게 되는 것 같다. 음식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같은 이치로 읽어봐도 선뜻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읽어서 이해되지 않는 책도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뜻이 스스로 통한다고 믿었다는데,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랬던 것 은 아닐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나오는 시대다. 꼭 그 책이 아니어도 비슷한 내용을 더 쉽게 설명하는 다른 책들이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책을 백 번 천 번 읽고 있는 사이에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세상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 원전 읽기'를 강조하는 이야기들에 회의적이다. 지금의 세계를 이루는 사상적 기틀인 『국부론』, 『자유론』, 『법의 정신』, 『통치론』 같은 명저들도 결국 그 책들이 쓰(p. 168)인 시대의 과제를 그 시대의 언어와 감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명저라도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고 그 시대에만 의미 있었던 부분도 많다. 우리가 취할 것은 그중에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진 몇몇 부분들인데, 그런 부분들은 실상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졸아서 그렇지 이미 다 배운 '상식'인 것이다. 그보다는 더 깊이 있게 알고 싶다면 현대의 연구자들이 고전의 핵심들을 알기 쉽게 현대의 언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해설서들도 얼마든지 많다. 유시민 작가가 자신을 '지식 소매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좋은 표현인 것 같다. 왜 소비자들이 직접 도매상, 심지어 공장까지 가서 자기한테 맞지도 않는 물건을 떼와야 하나? 내 아이 밥상에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올리기 위해 직접 도축장에서 고기를 해체해야 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원전 목록이 아니라 그중 필요한 것들을 알기 쉽게, 하지만 왜곡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설명해주는 지식 소매상들의 목록이다. 소매상일수록 사기꾼도 많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하고, 시장의 자정 능력도 필요하긴 하다. 그렇다고 소매상은 미덥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직접 원산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건 무리한 이야기다(p. 169). 외국어 학습법에도 이런 이론이 있다. C.I.와 M.I.가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C.I.는 Comprehensible Input, 즉 자기 수준에서 슥 읽어서 70~80퍼센트 쉽게 이해되는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 나머지 모르는 20~30퍼센트는 뇌 속에서 유추가 가능하므로 학습이 되는데, 절반만 이해되는 걸 읽으면 정보 부족으로 나머지 유추가 불가능하여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도 같은 원리 아닐까. 문돌이인 내가 갑자기 유체역학 책을 읽으면 아무런 '인풋'이 되지 않는다. M.I.란 Meaningful Interaction, 즉 유의미한 상호작용이다. 언어란 암기 등 단순 인풋만으로는 내 것이 되지 않고 그 걸 써먹어야 내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과도 연관 있을 것 같다. 책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몇 가지를 글로 적어보거나 남과 수다를 떨어보는 거다. 나는 페이스북에 독서노트 삼아 짤막한 독후감을 끄적끄적 올리곤 해왔는데 결국 그 책에서 내가 내 것으로 흡수한 것은 달랑 그게 전부인 것이다. 그거면 내겐 충분하기도 하고. 다시 요약하자면, 남들이 무슨 대단하고 있어 보이는 어려운 책을 읽든 신경쓸 필요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는 게 엄청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어렵다. → 고민 말고 바로(p. 170)『피케티 쉽게 읽기』, 그것도 안 되면 『초딩도 읽는 피케티』 또는 『만화 피케티』를 읽는다. 능력도 안 되는데 『21세기 자본』 원전을 꾸역꾸역 읽은 사람은 노동만 했을 뿐 아무것도 기억 못하지만 『만화 피케티』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그중 몇 대목만큼은 기억하고 써먹을 수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유명하다고 해서 집었는데 뭔 소리인지 모르겠고 공감이 안 된다. 자괴감 느낄 필요 없이 좀더 재미있고 수월해 보이는 딴 책을 집어 읽어본다. 한 50페이지까지만. → 그래도 진도가 안 나간다. → 표지가 만화 같은 『미스 함무라비』를 집어든다. 이건 초딩도 읽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름 재밌네. → 유의미한 상호작용으로 기억에 남기기 위해 완독 후 독후감을 인스타에 올린다. 뭐 이런 얘기....(p. 171). 티브이, 인터넷과 책의 차이 독서에 관한 책을 쓰다보니 자괴감이 든다. 솔직히 어린 시절과 달리 책이 최우선순위가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유 시간이 생길 때 뭘 제일 먼저 집어 드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관찰해보면 1번이 스마트폰, 2번이 티브이. 책은 3번이다. 예열이 필요 없는 순서,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순서다. 티브이로 영화 하나 보려고 해도 백 분 정도 몰입해야 한다. 그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는지, 그 정도로 재미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예능 프로 다시보기를 틀게 된다. 이건 처음이든 중간이든 아무데나 틀어서 보다가 재미없(p. 172)으면 바로 다른 것으로 넘기면 그만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자막이 어디서 웃어야 할지를 대치동 강사처럼 딱딱 짚어주기 때문에 웃기 위해 귀를 기울일 필요조차 없다. 그보다 더 간단한 것이 스마트폰 집어들기다. 아무 생각 없이 엄지를 휙휙 움직이다보면 타임 워프라도 일어난 듯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버린다. 문제는 자괴감이다. 포털 기사 댓글이나 소셜미디어에서의 끝도 없는 그악스러운 말싸움을 보다보면 인류에 대한 마지막 애정도 식어버린다. 그걸 굳이 읽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만 남는다.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나인데도 요즘 나의 이런 모습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이 나이를 먹고도 말이다. 고민하는 이유는 비생산적이어서가 아니라, 결국은 즐겁지조차 않아서다. 티브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얼마 동안은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콘텐츠는 언제나 부족하고, 눈은 피로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중독자처럼 끊임없이 다른 걸로 다른 걸로 넘기고 넘기고 넘기게 된다. 무한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인 것이다. 내가 무슨 권독사도 아니고 책이 다른 미디어에 비해 우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쓰레기 같은 내용의 책(p. 173)도 얼마든지 있고, 티브이나 인터넷으로도 훌륭한 콘텐츠를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래도 몇 가지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선 책은 단편적인 영상이나 인터넷 게시물보다 가볍게 시작하기 어려운 대신, 별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단지 습관적으로, 중독적으로 계속 보게 되지는 않는다. 종이책은 두께와 무게라는 물리적 실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무한정 넋 놓고 보게 되지는 않는다. 무한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피로감도 필요한 것이다. 더 중요한 장점은 보다가 딴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티브이는 기본적으로 몰입해서 보는 매체다. 콘텐츠가 좋으면 좋을수록 더욱 몰입하게 된다. 나의 속도에 맞춰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의 속도에 내가 맞춰 수용해야 한다. 인터넷은 그렇지는 않지만 실시간으로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게시글과 댓글들의 속도가 수용자를 수동적으로 만들기 쉽다. '웹서핑web surfing' 이라는 표현 그대로 링크를 타고 여기저기를 아무 생각 없이 둥둥 떠다니며 표류할 때가 많다. 이와 달리 책은 수용하는 속도를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자극받는다. 내 경우, 좋은 책을 읽(p. 174)을 때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읽다 멈추기를 반복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귀퉁이를 접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바로 이 멈추었던 순간들이 독서 경험의 핵심이다. 수동적으로 내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 것이 된다. 단지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3D를 넘어 4D까지 제공하는 영상매체는 오감을 압도하는 정보를 쏟아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다. 여백이 없는 것이다. 책은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여백을 보충하게 만든다.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만든다. 트란 안 홍 감독이 영상화한 〈상실의 시대〉를 보며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원작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내 머릿속 이미지들이 훨씬 아름답고 풍성했던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이 특징인 뉴미디어 시대에 멈추어 생각하게 만드는 독서의 특징은 큰 의미를 갖는다.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일단 유보하고, 의심하고,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는 지성적 사고의 훈련은 독서에서 출발하는 것이 여전히 정도라(p. 175)고 본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며 흥분하는 이들이 있는데, 자극적인 기사 몇 줄만 읽고 바로 화르르 불타올라 십자군전쟁에라도 나선 기사가 된 양 개인 신상을 털고 '집단 다구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래가 두려워질 뿐이다. 하긴 십자군전쟁도 대중의 열정을 악용한 사기에 가까웠으니 인간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남용하는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치 시대의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과연 집단 지성이 발동했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지성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야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직접민주주의란 공포일 뿐이다. 이야기가 좀 거창해졌지만, 여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충일감에도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루종일 티브이를 본 날,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 날, 하루종일 책을 읽은 날의 느낌은 다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하루의 시작인 출근길에 단 십 분이라도 책을 읽으려 하고, 내 주변 어디든 책을 흩어놓기도 한다. 집에도, 사무실에(p. 176)도. 노력하지 않아도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다. 티브이나 인터넷의 무수한 선택지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수시로 서점에 들러 다양한 책을 구입해놓는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책꽂이에 꽂지 않고 보기에 너저분할 정도로 표지가 쉽게 눈에 띄게 눕혀놓는다. 서점에서도 서가에 꽂힌 책과 평대에 누워 있는 책의 생명력은 천양지차다. 책은 고이 모셔놓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그 좋아하던 책을 읽기 위해 이런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의 라이벌들은 막강하다. 책 중독자였던 어린 시절 정도까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책씨, 분발해주길 바라(p. 177). 그럴 만큼 책을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굳이 쓸 리 없다. 그 재미 중 첫번째는 의외성이다. 글 이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또는 엉덩이로 쓰는 것 같다.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무엇을 옮겨(p. 180)적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아이디어 조금만 있는 상태에서, 때로는 그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자판을 두들기다보면 스스로도 생각 못했던 표현이나 명제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가끔 정말 뿌듯한 똥이 나오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 스스로는 대견하게 느껴지는 구절이 튀어나올 때면 등골 이 짜릿하다. 그 맛에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두번째는 내 글에 반응하는 타인들을 발견하는 신기함이다. 나는 철저히 내가 좋아하는 글만 쓴다. 쓰기 싫은 글은 쓰지 않는다. 내 삶의 태도는 어릴 적부터 '재수없음'으로 요약 할 수 있다. 내가 왜?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난 그렇게 절박하지 않아. 구차하게 그렇게까지? 아님 말구. 너 아니어도 많아. 그래서 욕도 많이 먹어봤지만, 그게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암시이기도 했다. 스스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게 차단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것을 욕심내려면 타고난 그릇이 엄청나게 크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바꾸어 세상에 맞춰야 한다. 언제나 나 자신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덕에 내 그릇은 내가 잘 안다. 외부에서 요구되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숨어버리는 체질이다. 죄송한데요, 제가 거리에 좀 민감해서요.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쓰면 보다 많은 이들의(p. 181)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내 셀링 포인트를 살려서 어떤 책을 쓰면 더 구매 욕구를 자극할지 출판기획자의 마인드로 생각해보면 여러 선택지가 나오지만, 우선 내가 쓰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쓰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을 잘 알면서도 그저 내 취향대로 쓴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굳이 사랑받고 싶지 않다. 무서운 사람도 많고 싫은 사람도 많거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편해서 좋은데, 그들로부터도 사랑까지는 부담스러우니 호감 정도 받으면 충분하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님들아, 번식해라. 세번째는 스스로 책을 쓰다보면 책의 저자들이 어떻게 책을 쓰는지 그 신비의 베일 뒤에 가려진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짐작 되는 것들은 생긴다. 무엇보다, 글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속단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자학 취미가 있지 않고서야 숨기고 싶은 자기 위선과 추악한 치부 위주로 글을 쓸 사람은 없(p. 182)다. 어차피 글쓰기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인스타에 셀카 올리기, 수컷 공작새의 꼬리 펼치기와 다를 바 없을 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기 장점을 어필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자원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인정욕구와 결부되지 않은 표현 욕구란 없다. 다른 점이라면 그걸 어느 정도로 노골적으로 하느냐, 세련되게 감추며 하느냐가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기가 지금 잘난 척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는 있느냐, 그것조차 모를 정도로 바보냐 정도일 것이다. 다시 한번 겸손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고 싶기에 『판사유감』 때부터 언제나 일종의 경고문처럼 나는 원래 이기적이고 찌질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에 불과하고, 책에 나오는 글은 그런 나조차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느끼게 되는 기특한 생각들에 불과함을 밝히고 있다. 글이란 쓰는 이의 내면을 스쳐가는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공감을 받을 만한 조각들의 모음이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그것도 쓴 사람 본인이 열심히 고르고 고른. 그게 싫고 인간들의 비열함과 어리석음, 그악스러움을 보는 게 좋다면 굳이 돈 들여서 책을 살 필요가 있나? 인터넷에만 접속해도 공짜로 무수한(p. 183)샘플을 구할 수 있는데. 그건 공기와도 같이 이미 세상에 가득차 있다. 글재주 좀 있는 자들이 거짓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걸 읽으라는 얘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구차한 자기 포장들도 있지만 아, 이건 진짜구나, 싶은 이야기들도 있다. 신기하게도 어떤 거창하고 화려한 이야기보다 그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시시하고 소박한 이야기더라도 말이다. 글이란 뛰어난 문장만으로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글은 결국 삶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문장 하나하나가 비슷하게 뛰어나더라도 어떤 글은 공허하고,어떤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다고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삶은 글보다 훨씬 크다. 열심히 살든 되는대로 살든 인간은 어떻게든 각자 살아야 한다. 되는 대로 살 때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 그저 솔직히 자기 얘기를 계속 쓰는 것 정도가 글쓰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그중 어떤 얘기는 좋은 글이 될 것이고 어떤 얘기는 시시한 글이 될 것이다. 그건 쓰는 이가 의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이야기를 우연히 만났을 때 그걸 더 잘 전달할 가능성이 높아질(p. 184) 뿐이다. 물론 그건 대단한 차이를 낳지만 그렇다고 돌멩이를 금덩어리로 바꾸는 연금술은 아닌 것이다(p. 185).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책을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해왔다. 직접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어릴 적부터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이방인들 사이에 던져진 고립된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타인들이 성 큼 내게 다가오면 불쑥 겁부터 난다. 그것이 나의 한계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책이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끈이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고통, 욕망을 배워왔다. 판사가 된 이후의 삶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법정에서 재현되는 것은(p. 189) 실제 삶이 아니다. 재판 기록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삶이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읽고 바라보며 살아온 것 이다. 간접경험은 당연히 직접경험만큼의 깊이는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해본 적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들의 삶을 읽기라도 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공감이 기존의 세계를 부숴버릴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순간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읽었던 순간, 1980년 광주에서 이른바 국가가 시민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 다. 나는 그때까지 '지금, 여기'가 아닌 먼 곳들에 대한 이야기만 읽어왔었다. 먼 옛날에 이미 시민혁명이 이루어졌고,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말이다. 교과서에서도 그게 인류 역사라고 배웠다. 그래서 난 그게 '상식'인 줄 알았다. 그 모든 믿음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난 그래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한다. 교과서에 몇 줄 추가된 설명만으로는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p. 190) 무서운 피물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대학에 들어 간 후 접하게 된 대부분의 책들은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 세상이란 원래 그런 곳이 아니라는 책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그런 세상을 바꾸어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책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믿음을 가질 수 없었지만(애초에 '믿음'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다), 그렇다고 현실에 냉엄하게 존재하는 부조리와 타인들의 고통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대학가의 사회과학서점에 틀어박혀 교과서와 다른 실제 세계에 대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내게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사당동 더하기 25』나 『힐빌리의 노래』처럼 빈곤이 가정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책들, 『인구 쇼크』 같이 지구 곳곳에서 인구 집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알려 주는 책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같이 저성장시대에 절망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책들을 읽는다. 세상은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하게 분화되어가기 때문에(p. 191) 읽어도 읽어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렵다. 이런 독서를 '쾌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는 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의무감만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은 나를 '눈 먼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준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 받은 대로, 조직논리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의 실체였다. 흑인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면 병균에 감염된다고 진심으로 믿은 미국 남부의 숙녀들, 유대인을 가스실에 보내는 일이 맡은 바 행정절차일 뿐 이라고 믿은 독일 공무원들, 미국 한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호남 사람들은 다 뭐가 어떻고 저떻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킬킬대며 지껄이는 사람들, 여자의 '노'는 '예스'니까 남자가 좀 터프하게 밀어붙여야 된다고 믿는 남자들.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p. 192)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이경규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무지는 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소음과 위협, 공포에 둘러싸여서 사는 것은 불행하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면 의외로 타협하고 수용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도 평화를 준다. 동시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오는 지금은 더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귀를 닫아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에 나 빼고는 다 정신 나간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정치, 젠더, 환경, 교육... 거의 모든 이슈마다 양쪽 극단에서 가장 큰 소리들이 쏟아져나온다.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이들이다. 중간에 있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공격적이고, 유연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고, 시끄럽지? 하지만 그 소음 속에는 귀기울여 들어야 할 진짜(p. 193) 신호들이 있다. 그건 대부분 '힘들어 죽겠어...' '아파....' '억울해...'라는 비명이다. 성폭력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온건하고 예의바르게 성차별과 혐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알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젊은이가 어떻게 최저임금 인상이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걱정할 수 있을까.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노인이 어떻게 안보에 대해 지나칠 만큼 예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성난 눈으로 부모를 노려보는 아이가 진짜 하고 싶어하는 말을, 감기는 고통스럽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신호다. 열이 펄펄 끓는 것도 우리 몸이 열심히 병과 싸우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통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은 실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다. 국론 분열이 사회를 살리기도 한다. 중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줄다리기는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니라 중간에 맨 손수건이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중간자들은 성실한 독자여야 한다. 들어야 할 진짜 목소리를 듣고, 작은 한걸(p. 194)음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디뎌야 한다.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 것은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p. 195). 셰익스피어가 흉악범을 교화시킬 수 있을까? 여기, 독방에 갇힌 무기수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찮게 한 영문학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 강의를 듣게 된다. 이후 십 년간 이어진 수업의 결과, 무기수는 삶의 구원을 얻는다. 실로 놀라운 이 얘긴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라는 책의 줄거리다.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25세이던 1983년, 시카고 소재 카운티 단기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자원봉사 삼아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봉사는 2010년까지 약 삼십 년간 여러 교도소로 이어졌다. 저자는 2003년 가장 위험한 죄수를 장기간 격리수용하는(p. 196) ‘감옥 안 감옥’ 슈퍼맥스supermacx서 독방에 갇힌 적수들에게 강의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십대에 살인죄를 저질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는 무기수 래리 뉴턴을 만난다. 이후 십 년간 그에게 셰익스피어를 가르친다. 이 책은 법관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묘한 저항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너무 그럴듯한' 얘기 아닌가!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면 흉악범도 교화될 거야. 어쩌면 이 역시 지식인의 선입견에 불과할 수 있다. 왜 하필 셰익스피어지? 영문학에서 그가 갖는 위상 때문에 막연히 선택된 것 아닐까? 더구나 무기수라면 비단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뭐가 됐든 '외부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한 줄기 통로'인 교수의 관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교수 역시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라도 '죄수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쪽으로 애써보려 할 것이다. 실제로 사형수와 지식인 간 미묘한 관계 형성 과정을 다룬 문학도 있다. 미국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실제 사형선고를 받은 살인범을 장기간 인터뷰해 쓴 걸작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필립 시모어 호프먼 주연의 〈카포티〉로 영화화되기도 했다(p. 197). 의심 많은 성격을 탓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문체에서 벽을 만났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인데 역시 난 너무 선하고 건전하며 훌륭한 글엔 금방 지친다. 독실한 종교인이나 진실한 상담 전문가, 열정에 불타는 사회운동가의 좋은 글을 접하면 박수는 치면서도 재밌게 읽진 못한다. 내 취향은 살짝 삐딱하고(이때 포인트는 '살짝'이다, '열심히' 삐딱하면 지루하다) 느긋하며 가끔 비루한 글이다. 그래도 분명 참고할 만한 내용이었으므로 죽 읽어나갔다. 그런데 중반 이후 이런 구절들이 정신을 번쩍 나게 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범죄에 빠져들게 될까?'에 대해 너무도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대다수의 살인은 열정적으로 계획한 게 아닙니다. 그저 상황에 따라 멍청하게 저지른 행동일 뿐이에요." "살인을 저지 른 사람들의 상당수가 약간의 영향만 있어도 다르게 행동했을 겁니다." 책 속 경찰관 살해범의 말이다. 이는 내 재판 경험에 비추어봐도 틀리지 않다. 특히 '멍청하게'란 표현은 정말 적절하다. 악마 같은 흉악범이 계획적으로 벌이는 살인은 드물다. 평범한 사람이 사소한 분쟁에 휘말려 순간 울컥해 저지르는 범행이 더 많다. 심지어 동네에서 막걸리 내기 윷놀이를 하던 오십대가 옆에서 자꾸 귀찮게 훈수하는 이웃을 때려 숨(p. 198)지게 한 경우도 봤다. 이 책엔 비행청소년이 많은 한 고등학교에서 십대 때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의 충고를 녹화한 동영상이 상영되자, 그 어떤 교사 애기도 듣지 않던 소년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일화 도 등장한다. 해당 동영상을 본 소년들의 반응은 이랬다. "형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어떤 교사도 그 말을 더 낫게 얘기하진 못할 것 같아요."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얼마나 신세를 망칠지 당신들이 얘기하고 있었다는 거죠. 당신들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면 난 잠을 잤을 거예요. 그래서 절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누구 말도 듣지 않을 것 같던, 막가는 소년들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엔 귀기울인다. 저자는 살인 등으로 종신형을 받은 소년 죄수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각색 작업을 맡겼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이들은 사랑 얘기가 아니라 (로미오처럼 착한 아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압박하는) '또래 집단의 압력'에 작업의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각색 희곡은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이고 경찰에 체포되는 걸로 끝난다. 이 희곡으로 연극을 공연한 후 소년수들은 말했다. "전 열네 살에 살인으로 교도소에 들어와 199년형을 살고 있습니다." "전 열일곱 살에 교도소에 들어와 가석방(p. 199)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습니다.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 다." "우린 여러분이 로미오의 잘못에서 뭔가 배우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잘못에서도." 래리 뉴턴은 베이츠 교수의 '교도소 제자'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이고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실제로 그는 영문학자들이 놀랄 정도로 셰익스피어에 관한 독창적 글을 많이 남겼다. 오랜 수업 끝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저지른 폭력 행위와 이 모든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거나 칭찬받고 싶은 사고방식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어요. (....) 이젠 남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제 지적 능력이나 뭐 그런 걸로요." 소외 계층 청소년이 그리도 쉽게 범죄에 빠지는 이유 중에는 '내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들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보다 나은 집단에의 소속감을 제공해주지 못한 결과가 범죄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년범들과 대화를 나누던 베이츠 교수는 그들의 범죄 경험이 대부분 7~8세 때 시작된다는 얘길 듣고 놀란다. 한 소년범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곱 살부터 열 살까지의 아이의 경험이 십대와 성인으로서의 행동을 결정해요." 교육 전문가나 심리학자의 말이 아니라, 소년범의 말이다(p. 200). 실제로 베이츠 교수가 가르치던 소년수 한 명은 전학을 자주 다니던 아이였는데 가벼운 장난 몇 건 때문에 교사의 미움을 샀다. 교사는 그를 교실 뒤쪽 칸막이 뒤에 세워둔 채 한 학기를 보내게 했다. 이후 소년은 거리로 나섰고 그의 인생은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그 소년수는 말했다. "학생을 교실 뒤쪽 칸막이 뒤에 두면 그는 자라서 살인을 저지르게 될 거예요." 베이츠 교수와의 셰익스피어 수업을 통해 놀라운 지적 성장을 이룬 래리 뉴턴이 한 학술지에 기고한 에세이가 있다. 그중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수많은 죄수들이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 될 것입니다. (...) 어떤 종류의 죄수가 여러분 옆에 살길 원하십니까? (...) 여러분에겐 그들이 좋은, 혹은 나쁜 이웃이 되도록 도와줄 힘이 있습니다. 교육만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과학입니다." 그렇다. 죄수들 중 대부분은 결국 사회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들을 모두 사형시키거나 무기 복역시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이 점을 쉽게 잊곤 한다. 그래서 범죄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고,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일 때가 많다. 범죄자들은 선천적으로 위험한 괴물이고, 장기간 사회(p. 201)로부터 격리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자가 구제불능의 괴물일까. 히스 형제의 책 『스위치』에 어린 자녀를 구타해 골절상을 입히는 등 아동학대 부모들을 대상으로 행동치료를 수행한 사례가 나온다. 처음 부모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녀와 매일 단 5분씩만 놀아주는 것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전화도 받지 말고, 뭘 가르치려 들지도 말고,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은 명령을 내려서도 안 되고, 비평을 해도 안 되고, 질문을 던져서도 안 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부모도 따라서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부모의 크레용을 빼앗으며 "나 이거 할래!" 하고 외치면 마음껏 쓰라고 내주고 다른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심술궂게 또 부모가 쓰는 크레용을 못 쓰게 하면 그에 순순히 따른다. "네 말이 맞아. 이 색은 어울리지 않는구나." 아동학대 부모들에게 이 5분은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자기통제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동 중심 상호작용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칭찬하는 법,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110명의 학대 부모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p. 202) 절반은 일반적인 분노조절 요법 치료를, 나머지는 위와 같은 부모-자녀 상호작용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전자의 60퍼센트가 다시 아동학대를 한 반면, 후자의 20퍼센트만이 다시 아동학대를 했다. 아동학대 부모 중 상당수는 선천적인 괴물이어서 아이를 때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너 살짜리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 교육 방법에 대해 무지했다. 제대로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교육받자 그들 중 80퍼센트가 아동학대를 멈추였다. 내 재판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범죄자 중 다수는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교도소에서라도 이들이 제대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들 모두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고, 이들 중 대부분은 언젠가는 이 사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래리 뉴턴의 에세이는 정확히 이 지점을 포착하고 있었다. "왜 하필 셰익스피어?'라는 첫 의문에 대해서도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갱스터 생활을 하던 소년수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목한 지점은 (내가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또래 집단의 압력'이었다. 뉴(p. 203)턴의 셰익스피어 해석이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도 당연하다. 그는 일반인과 다른 지점에서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들의 오욕칠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고전은 거울이다. 그 앞에 서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마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난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을 발견, 탐독하면서 현란한 언어유희의 묘미에 빠졌었다.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은 그 정도였다. 반면, 소년 시절에 폭력• 마약• 살인을 저질러 지하 독방에 갇힌 무기수들은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셰익스피어를 통해 천국에서 무간지옥 바닥까지 경험한 것이다(p. 204). 일자리를 빼앗기고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거라는 공포의 밑바탕에는 '노동' '쓸모' '일' 등에 관한 오래된 관념이 있다. 하지만 이런 관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인간이 바꾸어온 것 아닌가. 영국의 1833년 공장법이 9세 미만 아동 고용 및 18세 미만 소년의 야간노동을 금지하자 공장주들은 시장 경제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들이 지금 시대의 의무교육을 보면 어리둥절할게다. 어린 녀석들이 자기 밥벌이를 하기는커녕 세금으로 공짜로 공부를 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하고. 탄광 노동자들에게 하루 열몇 시간씩 석탄을 캐도록 시키던 이들이 오후 네시에 퇴근하는 현대 유럽의 사무직 노동자들을 보면 이 미친 시대에는 그냥 앉아서 잠깐 놀게 하고는 공짜로 돈을 준다고 놀라(p. 227) 자빠질 거다. 시대가 달라지면 관념 자체도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알파고 이후 쏟아진 온갖 요란한 기사들 보다 '멍때리기 대회' 기사가 더 혁명적인 함의가 있다고 느꼈다. '미래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지?'라는 질문만 하지 말고 그런데 우리는 꼭 일을 해야 되나? 그런데 일이라는 게 뭐지?'라는 질문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기계에게 일을 빼앗기는 상상만 할 뿐 기계에게 일을 시키고 우리는 노는 상상은 하지 못할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에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과거 시대 사람들 눈에는 그냥 쓸데없는 놀이나 미친 짓일 뿐일 거다. 혀와 배꼽에 피어싱해주는 직업, 프로 스케이트보더, 먹방 찍어 돈 버는 유튜 버들,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유행의 패션 산업... 인간이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유희의 축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전히 동굴 생활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쾌락은 우리를 단조로운 동굴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쾌락의 카탈로그를 늘리고 늘리며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상력도 재미도 없는 성공충들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엔 즐기는 자들이 이길 것이다(p. 228). 미래는 결국 우리가 공유하는 이야기다. 자기실현적인 예언이다. 다수가 공유하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것이 곧 법이 되고, 도덕이 되고, 가치가 된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발전도 인간들의 무수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패턴화해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현재의 사회부터 바꾸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우할지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 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를 보면 된다. 더 먼 미래에 인공지능 또는 그와 결합한 신인류가 평범한 인간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는 이미 만들어 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p. 229). 통근길의 고통을 반전시킨 계기는 전철 승객들의 분포도 및 승하차 패턴 학습, 그리고 어디서 내릴지 관상 보는 법에(p. 248)서 비롯되었다. 상당 구간에서 앉아 갈 수 있게 되자 매일 책 을 들고 다니며 읽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철은 도서관이 되었고, 통근길은 견뎌야 하는 고통이 아니라 끝나가는 것이 아쉬운 즐거움이 되었다. 사람 심리라는 것이 참 묘하다. 한가한 휴일에 집에서 뒹굴 거릴 때는 등허리는 소파와, 손은 리모컨과 합체하는 폐인이 되는 주제에, 통근길 전철에서는 세상 다시없는 독서광으로 변신한다. 주변이 시끄러울수록 더더욱 책에 몰입하게 된다. 통근길 전철은 책이 유일한 도피 수단이던 소년기로 잠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었다. 하루 세 시간에 가까운 독서 시간이 강제로 확보되자 참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언급한 책들 중 대부분이 전철에 앉아 흔들거리며 읽은 것들이다. 그 외에도 엘리자베스 워런 미 상원의원의 자서전 『싸울 기회』, 경제 학계 두 거목의 일대기 『케인스 하이에크』, 심지어 900쪽이 넘는 벽돌책 『빈 서판』까지 전철에 앉아 읽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진지하고 무거운 책은 지하철에서 읽고, 만화책은 조용한 곳에서 정독하곤 했다는 점이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기 때문에 주변(p. 249)이 어수선해도 불편하지 않은 반면, 감각적• 정서적 체험이나 기억과 연관된 책들은 조용한 곳에서 봐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통근길 전철에서 책 읽기는 독서 시간 확보 외에도 장점이 있었다. '각인 효과'다. 오리 새끼가 갓 태어나서 사람을 보면 엄마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각인 효과처럼,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단 십 분이라도 책 읽기를 하면 뇌의 모드 설정이 그쪽으로 이루어지는지 자연스럽게 계속하게 되더라. 출근 때 책을 보면 퇴근 때도 보게 되고, 이어서 밤에도 뒤가 궁금해서라도 보게 되고. 반면 출근 때 페북질을 시작하면.... 이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읽든 못 읽든 책을 들고 출근길에 나서려고 한다. 하루의 시작을 책과 함께한다는 것은 충실한 하루를 여는 좋은 방법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객차 안을 둘러 보아도 책을 들고 있는 이는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모든 이들이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 엄청난 보물이라도 들어 있는 양 일제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은 사실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좀 무서운 모습이다. 사이비종교 의식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전파로 사람들을 세뇌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을 보고 놀란 나머지 메모까지 해둔 일이 있다. 노량진에서 종합운동장 가는 9호선 안이었는데,(p. 250) 책 읽는 이가 무려 아홉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키위새나 갈라파고스땅거북을 떼로 만난 느낌이었다. 여덟 명이 사십대 정도의 양복 입은 남성이고 한 명은 영어회화책 보는 여학생. 책 제목은 『아프리카의 별』 『대장정」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 가지 진실』 등인데 객차 사이 통로에 서서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를 읽는 신사가 이채롭다. 아니 그거 지하철에 사린가스 살포하는 얘기.....(p. 251).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는 구절을 만났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아수폭포를 보고 싶다, 남극에 가보고 싶다 등 크고 강렬한 비일상적 경험을 소원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마치 동화 『파랑새』를 연상시키는 일견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굉장히 과학적인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행복감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p. 252)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어떤 '큰 것 한 방'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습관이 행복해야 행복하다는 말이 좋았던 이유는 폭넓게 생각을 확장해갈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시민들이 행복한 습관을 누릴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한강시민공원에서 걷고, 자전거를 타고, 연을 날리고, 낚시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라. 공원과 도서관은 행복 공장이자 행복 고속도로다. 교육도 중요하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요리를 하고, 다양한 운 동을 즐기고.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행복한 습관을 찾을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이 영재교육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인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솔직한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멋진 몸매를 위해 굶고 운동하는 것이 유행이라 치자. 바뀌어 가는 몸매를 보는 기쁨이 이를 위한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맛집 찾아다니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낫다. 남들 보기에 덜 번듯한 직장이더라도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을 매일 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내 일상을 보내는 공간을 내가(p. 253)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미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잘나가는 사람과 친해져보려 애쓰기보다 가족, 그리고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 낫다. 습관처럼 내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불행하면 내 삶 또한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끝에는 결국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좋아하는 책만 잔뜩 있다면 무인도에 있어도 행복할 것 같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욕심내면서 무엇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세상에는 크고 대단한 일을 이룬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본받고 싶은 '습관이 행복한 사람'은 따로 있다. 한 세기, 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고 계시면서도 아직도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이다.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님이다. 언론은 교수님의 장수 비결에 관한 기사를 앞다투어 싣곤 한다. 사십 년째 매주 세 번은 꼭 수영을 하고, 아침식사로는 무엇 무엇을 드시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는 것 같다. 교수님은 나의 처외조부 되신다. 내가 생각하는 교수님의 건강 비결은 먼저 '부지런함'이다. 이십 년째 댁에 갈 때마다 서재엔 언제나 읽고 계신 책이 있고, 쓰고 계신 새 원고가 있다. 사람들은 그동안 뭐하셨는지 묻지만 실은 언제나 똑같았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강연을(p. 254) 하셨다. 그중 어떤 것은 알려지고, 어떤 것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거리 두기'다. 총장이니 장관이니 남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탐내는 자리들에 한 점 관심조차 보인 적이 없다. 자식들 일도 그들이 묻기 전에는 먼저 말씀하지 않는다. 여기서 들은 얘기를 저기에 전하지도 않는다. 철없는 아들 걱정에 하소연을 늘어놓는 딸에게 그저 미소를 지으며 "네가 철이 나야 걔가 철이 들지" 한마디 하시더란다.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간섭하지 않는다. 평생 신앙생활을 하지만 맹목적인 열정과는 거리가 멀다. 합리적 이성을 토대로 교회나 목사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믿을 뿐이다. 뭔가에 열광하거나 뭔가에 분노해 소리를 질러대는 노인들이 가득한 시대에 그는 언성 한 번 높이는 일이 없다. 성공한 인생이라 아쉬운 게 없어 그럴 거라며 입을 삐죽일 이들을 위해 덧붙인다. 1947년 맨손으로 월남한 후 여섯 남매를 키우셨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하고 부부싸움도 아이들이 못 듣게 방에 들어가서 하며 언제나 웃음으로 남편을 맞던 부인이 그의 기둥이었다. 그 기둥이 육십 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눈만 깜빡이며 이십 년 세 월을 자리에 누웠다. 그는 그런 부인을 차에 태워 돌아다니며(p. 255) 세상을 보여주고 맛난 음식을 입에 넣어주었다. 결국 부인을 떠나보낸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부인의 손때 묻은 낡은 집에서 홀로 지낸다. 하지만 아주 가끔 딸에게 울고 있는 모습을 들키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다. 정초에는 송추에 있는 이북 식당에 가서 평양냉면을 드시며 고향을 생각한다.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윤동주 시인과 함께 숭실학교를 다니던 고향이다. 어느 날 노교수는 딸에게 말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그저 인내 하나 배우러 오는 것 같다." 감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이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p. 256). 에필로그 쓸데없음의 가치 내게는 큰 즐거움을 주었던 책들에 관한 기억을 신나게 써내려갔지만, 마칠 때가 되니 역시 읽을 분들의 책망이 두렵기도 하다. 독서에 관한 수많은 책들처럼 결국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책들을 소개해주겠지, 하고 기대했던 분들 말이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언급한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다.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도 그런 책들이 있을 것이니 스쳐 보내지 마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구체적으 로 책이 당신 인생에 무슨 쓸모가 있었다는 얘기냐고 묻는 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p. 257).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야간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중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관한 시간. 교수님이 처음에는 정해진 자료에 따라 강의하시다가 점점 관련 연구 이야기를 신나게 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에 간 구법승이 혜초 외에도 많았는데 그들이 얼마나 살아서 돌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단다. 그래서 온갖 고문헌을 추적하여 구법승들의 생환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보며 든 두 가지 생각. '아, 아름답다' 그리고, 아, 그런데 쓸데없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인문학의 아름다움은 이 무용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어디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하니까 그 걸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구법승 생환율을 토대로 당시의 풍토, 지리, 정세에 관한 연구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용도로 연구를 시작하신 것 같진 않았기에 든 생각이다. 실용성의 강박 없이 순수한 지적 호기심만으로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 아닐 까. 그 결과물이 활용되는 것은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고. 수학자들은 그 자체로는 어디에 쓸 일 없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350여 년간 몰두했다. 그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많은 수학 이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p. 258). '인문학적 경영' 운운하며 문사철 공부하면 스티브 잡스같이 떼돈 벌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CEO들께는 죄송하지만, 잡스는 나중에 뭘 하려고 리드대학에 가서 인문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히피, 외톨이, 괴짜들과 어울려 쓸데없이 놀다가 한 학기 만에 중퇴한 후 예쁜 글씨 쓰기에 매료되어 서체학calligraphy 강좌를 청강했다. 대학 갈 때 써먹을 욕심에 논술학원 보내서 초등학생에게 어려운 책을 읽히고 있는 학부모들께 죄송하지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입시 때문에 마지못해 본 책은 한 줄도 기억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몰래 보던 소설책,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보러 간 에로 영화는 방금 본 듯 생생하다. 글쓰기를 좋아하 여 책까지 내게 된 건 그 때문일 거다. 쓸데없이 노는 시간의 축적이 뒤늦게 화학 작용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현재 쓸모 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 말로 진정 쓸데없는 짓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고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쓸모 있을지 예측하는 건 불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게 진짜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도리가 없다 물론, 슬프게도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언젠가 쓸모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실(p. 259)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또 긁는 소리다. 하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 있는 일을 이미 한 것 아닌가(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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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2-18
  • 【북토크349】 제대로 된 상담이 필요하다
    정혜신이라는 정신과의사의 책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다. 저자는 책과 책상에서 벗어나 슬픔과 고통의 현장에서 상담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롭게 경험했다. 그래서 삶을 더 깊이 있게 보고, 더 공감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책머리에 누군가의 깊은 속마음을 듣고 난 후엔 꼭 묻는다. "오늘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했던 이야기를 몇발자국 떨어져서 또다른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속마음 말하기의 핵심이다. 속마음 털어놓는 일을 1부라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한 후의 마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2부다. 2부가 없다면 1부에서 생애 최초로 자신의 순정한 마음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했더라도 치유 효과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고통을 치유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내 상처의 내용 자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하지 않는다. 드러낸 상처에 대 한 내 시선이나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결정(p. 5)된다.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받은 사람이 그날 상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 상사와 관계가 어땠는지, 상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등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치열한 전장의 병사처럼 말할 때 나는 모든 체중을 실어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공감할수록 그는 더 격정적으로 생생하게 말한다. 그후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물으면 "내가 모멸감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알았다"거나 "내가 너무 측은하다"거나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다" 등 등 전투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지휘관의 말을 한다. 마음의 지휘관 기능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시선이 생기면 그 전투를 어떻게 정리하고 마감할지 결론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할 필요도 없다. 상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삶을 제대로 사는 것(1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조망하고 확인하는 행위(2부)다. 병 사로서 성공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p. 6)은 나의 전투가 훌륭했고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의 전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인정, 그 모든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확인과 인정을 지휘관으로서 인식하는 2부의 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까지 가야 온전하고 편안한 삶,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마친 삶에 다다를 수 있다. 얼마 전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지는 일을 겪었다. 그후 두달여 동안 나는 그와 함께 죽음을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더욱 절감한 것이 삶에 있어서 2부 시간의 소중함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급작스럽게 이별을 한 사람들의 남은 삶이 주체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은 상당 부분 삶에 대한 정리와 확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을 때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히 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삶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p. 7).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상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생전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들을 기도를 통해서 아이에게 말해주고 마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어야 부모들이 나머지 생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유가족 엄마들 중에는 눈을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 기도의 일부는 아이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하고 다시금 전하고 인정하는 일이 기도하다.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벼락같은 이별을 한 이들의 삶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벼락처럼 잃고 홀로 남거나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이별의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떠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둘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이다.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전투에 매일처럼 참전하는 전투병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정지를 겪은 두달 전부터는 지 휘관의 시선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그 느낌을 매일(p. 8)밤 그와 나눈다. 그 이야기의 결론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밤마다 정리하고 작별하고 아침이면 다시 새롭게 만난다. 삶과 죽음이 홀가분하게 동거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 삶은 뜻밖에도 암울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사랑이 넘치고 자유롭다.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삶을 또렷이 인식하기 시작한 후, 나의 매일은 꽃다발 같은 시간이다(p. 9). 세월호 참사 직후 저희 부부는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치유공간 이웃(이후로는 '이웃'으로 표기)이라는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긴 시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치유 활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어느날 남편과 저 두 사람 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 며칠 후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암이 의심되는 징후가 있다더군요. 남편은 간과 다른 한곳에 암이 의심되는데 간에는 직경 5센티미터나 되는 종양 덩어리가 보여서 전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게는 신장과 유방에 암이 의심(p. 18)된다며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했고요. 그 전화의 내용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이 1분쯤 가만히 있다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여한이 없다고 했지?" 제가 그렇다고 말하니 남편도 "그럼 됐어, 나도 여한이 없어" 하더군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서로 웃었습니다. 사실 그날 명동성당에서 3시간 정도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과 집단상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잠수사들의 고통에 집중해야 하는 날이었지요. 그래서 '왜 하필 전화가 이 순간에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화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 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담을 다 마치 고서야 알았습니다. 잠수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가 한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저희 부부의 건강검진 결과가 저를 심란하게 만들지 않았던 겁니다. 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제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였습니다(p. 19). 다른 사람들 보기에 우리가 이타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도 우리가 그 일을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 일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이 당시에는 바로 그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겁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잘할 수 없거나 끌리지 않는 일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절박해 보여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개입한 일은 오래 할 수가 없으니까요(p. 21). 세월호 피해자가 아니라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p. 26)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비난과 막말에 자기들도 똑같이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상처 입힌 말이나 30년 전 아기를 잃은 엄마의 가슴을 찌른 비수는 같습니다. 이제 그만하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다들 이제 그만하라는 말 때문에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죄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는 말 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극단의 고립감을 부추기는 무서운 말입니다. 슬픔 그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이 슬픔을 슬퍼하지 못 하는 거예요.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결코 그 슬픔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많은 분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에도 딱지가 앉는 치유를 경험했습니다(p. 27).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벼락같은 이별 앞에 목 놓아 울 수 있어야 나머지 생을 비틀리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압도(p. 31)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울고 있는 내 곁에 이제 그만하라고 재촉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지 같은 어쭙잖은 조언 대신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난 사람에 대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내 곁에서 산처럼 묵묵하고 바다처럼 먹먹하게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 수 있고 웃고 싶을 땐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슬픔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치유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사회안전망입니다(p. 33).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는 시간이 간다고 옅어지지 않지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상처의 통증과 함께 고름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 슬픔이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 벼락같은 고통이 다 사라지진 않아도 그 상처가 피눈물이나 꽉 찬 고름 같 은 형태가 아니라 뼈저린 그리움 같은 형태로 남아요. 둘 다 아프지만 큰 차이가 있어요. 고름이나 피눈물 같은 상처는 사람을 뒤틀어서 이후에 맺는 관계를 꼬아놓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뼈저린 그리움은 사람을 뒤틀지 않아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상처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관계를 파괴하지도 않지요(p. 34).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대면하거나 치유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를 온몸으로 보여준 인물이 박근혜씨입니다. 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는 트라우마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비극적인 사망 후 그는 완전한 고립 상태에서 슬픔을 삼키며 세월 을 보냈습니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 18년간 썼다는 일기를 보면 박근혜씨는 두문불출 집에만 있으면서 혼자 요가에 몰두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요가를 하도 열심히 해서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설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모두 끊긴 채 홀로 지냈던 18년 동안 그는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공감받고 치유받지도 못했(p. 53)습니다. 슬픔이나 그리움, 무력감 등을 통제하기 위해 요가에만 집중했다고 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 사람의 감정은 서서히 마비됩니다. 결국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겉으로는 고통을 이겨낸 듯 초연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극복이나 초월 같은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마비된 병적인 상태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씨가 보인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도 그는 세월호 피해자의 슬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민들이 결정적으로 분노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오랜 세월 감정이 마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수 없었을 수 있습니다. 슬픔이 넘쳐나는 경험에서 슬픔을 떼어내고 나면 뭐가 남나요? 감정을 배제했으니 정확한 사실관계만 남는 걸까요? 아닙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만 떼어가라(p. 54)는 주문이 불가능하듯 슬픔을 유발한 상황에서 슬픔을 소거하면 그 상황을 구성하던 사실의 절반 이상이 사라집니다. 그건 이미 사실이 아닙니다. 상황에 묻어 있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채 그 현실을 정확하게 감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모든 상황에는 사실과 정서가 함께 존재합니다. 감정 기능이 마비되어 정서를 느끼지 못하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러면 소통이 제 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관계는 당연히 꼬이게 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들도 잘못 끼울 수밖에 없듯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대인관계든 현실감각이든 그 사람이 내리는 모든 판단이나 해석들이 줄줄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통제하는 버릇이 가져오는 감정마비는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하고 끔찍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불러옵니다(p. 55). 사고로 가족을 여럿 잃은 분에게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지금도 제 슬픔은 자주 드러내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고 후 줄곧 제 평생 다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가족을 잃는 순간 제 삶에서 온전한 기쁨은 다 사라졌어요. 적극적으로 내 기쁨을 찾을 수는 없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기뻐요.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삶을 살기로 했어요." 가족을 잃은 죄책감 때문에 내 기쁨은 용납할 수 없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위로받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깊은 지하 동굴에 갇힌 사람이 자기 힘으로 길을 찾아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본 것처럼 울컥했습니다(p. 63). 목숨을 버리는 이유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기질, 심리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대개의 자살자들이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감정은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입니다. 죽을 만큼 외롭거나 자기혐오가 심할 때,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통제되지 않는 통증으로 힘들 때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은 극대화됩니다. 그럴 때 타인에게 손을 내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껏 움츠러들고 쭈그러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모멸감과 무력감을 더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통장 잔고가 충분한 사람은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잔고가(p. 76) 바닥인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누가 잔고를 확인하자고 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낄 만한 일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힘들게 말을 꺼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세상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채 끝을 맞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생을 유지하는 것보다 버리는 쪽이 자기가 지키려 하는 것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p. 77). 죽음에 대한 생각이 우리 부부의 일상에 미친 영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는 저축을 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돈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십여년 전 그간 매달 부어왔던 보험들마저 모두 해지해버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생계를 위해 하던 일들도 다 그만두면서 가입한 실손보험 하나가 우리 부부의 미래를 대비한 유일한 장치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생생한 삶의 현실은 노후나 미래를 대비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인지도 모른다는 자각이었거든요. 매 순간 우리 삶에 가(p. 117)장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 들숨과 날숨 사이마다 죽음이 어려 있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늘 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돈을 모으는 일은 우리 부부의 삶에서 가 창 불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지금 여기'만을 삶으로 여기고 살자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 영영 못 보는 상황이 될지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사는 것 외에 미래를 대비하는 다른 방도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합니다. 많이 웃고 많이 느끼고 많이 나눕니다. 평소에 저는 "나는 한 300년쯤 산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선택한 제 삶의 순간들을 최대치의 밀도로 채웠기 때문일 거라 느낍니다. 두달여 전 어느날, 집에서 함께 이야기하던 저의 연인이자 친구, 반려이자 영원한 배후인 그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정지로 쓰러졌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날 그 순간 나와 그의 동(p. 118)선이 3분만 어긋났어도 지금 이 시간은 저와 그에게는 없는 시간입니다. 반사적인 CPR과 응급시술, 입원치료를 거쳐 남편은 극적으로 회생했고 그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다시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두달은 죽음 곁에서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니 확실해졌습니다. 남편의 심정지 이후 우리 둘은 삶과 죽음에 대한 명료한 결론 하나를 얻었습니다. 죽음을 위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는 것을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이번 일을 거치면서 우리 부부는 거의 동시에 "이제는 진짜 죽을 준비가 된 것 같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죽어도 특별한 회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별의 위협 속에서 둘이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을 샅샅이 훑어보니 사랑하고 사랑받은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확인해서입니다. 그걸 확인하니(p. 119) 이제는 언제 헤어져도 준비가 됐다는 마음이 듭니다. 여한이 없다, 미련이나 아쉬운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공포까지 밀어낼 수 있는 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더 정교하게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진정한 대비인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여유롭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이번 일을 겪으며 그 시간을 기적처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축복이었습니다(p. 120). 따돌림 피해로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주변 사람들이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합니다. Q: 저는 40대 평범한 주부입니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으로 중3 아들을 잃은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의 아들을 죽음까지 몰고 간 가해 학생 중 한명은 평소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친구가 차려준 밥도 먹고 갈 만큼 아들과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아들을 잃고 고통과 절망에 빠진 제 친구에게 주위의 사람들 몇몇이 "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가해 학생인 아들 친구를 용서해줘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용서하면 친구가 조금이라도 더 편 안해질까요?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요? A: 우리는 보통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고 자제해야만 하는 것, 결국은 나를 상하게 만드는 것이(p. 124)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립니다. 남을 해치는 분노도 있지만 나를 지키는 분노도 있습니다. 갑질을 일삼는 사람의 일상적 분노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일방적으로 자기 감정만 분출하는 행위, 그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심각하게 더럽히고 훼손하는 것이 남을 해치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감정 배설이며 심리적 폭력이고 범죄입니다.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나쁜 일이 맞습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를 지키는 분노는 표출하지 못했을 때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병이 들거나 망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침범당했을 때나 인격적 모욕을 당했을 때의 분노는 표출하는 것이 건강한 행위입니다. 충분히 표출하도록 주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그 사람의 내면이 훼손되지 않고 지켜집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엄마가 가해자에게 갖는 분노는 정당합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끝까지 분노하고 증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감정을 바닥까지 다 끄집어낼 수(p. 125)있도록 누군가 전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분노할 수 있으면 마침내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더 쉬워집니다. 그러나 그런 정당한 분노를 막으면서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미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사람을 다시 짓밟는 일입니다. 슬픔에 잠긴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주지도 못한 상태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숙제까지 안겨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당장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마음껏 분노하고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받는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날 가해 학생에 대한 연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용서는 그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은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입니다(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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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6
  • 【북토크348】 상담의 흥미로운 접근 방법, 문학상담
    문학상담은 더 넓은 인문상담의 한 분야이다. 인문상담은 철학과 문학을 포함한다. 흥미롭게 읽었다. 상담과 문학, 철학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됐다. 6년간 상담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나는 나름대로 인본주의 심리학과 인문학적인 토대 위에서 상담에 대한 신념을 구축하게 되었다. • 상담은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인간 능력이 도달할 수 있는 무한한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지향하는 인간들의 노력으로 성장하는 학문이다. • 상담의 기초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안에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인간 전체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에 있다. • 상담이론의 근간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개인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성장심리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주(p. 37)체성을 확립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행자이며 격려자의 역할을 하는 전문가여야 한다. • 결론적으로 상담은 인간의 인간되기를 도와주는 노력 그 자체이다. 인간이 각각 천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여 존엄성과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성숙한 삶을 이끌어 주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의 시작은 상담이다(p. 38). 나는 더 넓은 지평을 향하는 상담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상담은 한정적이고 표면적인 다양한 병리적 증상의 치료와 사회적 적응에 국한하기보다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고 통합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여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 상담은 개인의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자기 성찰을 통한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주체성을 구축하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관계성을 회복하도록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넓은 지평을 열어 가야 한다. • 상담 과정에서는 용기를 잃고 좌절하는 사람에게 인문적 자기성찰을 통하여 그에게만 독특한 잠재능력이 있음을 알게 하여 용기와 도전 정신을 일깨워 주고 격려하여야 한다. • 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선한 본성을 깨닫게 하여 잃어버렸던 자신의 언어와 정서를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고유성을 박탈당하고 형식적이고 수량적인 기준에 얽매여 갈등을 겪는 사람에게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자기를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 상담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결과가 서서히, 막연하게, 특이하게 나타나는 학문이다. 상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의 힘을 길러주고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문학적인 통찰력과 표현력을 쌓아 가도록 내담자(p. 53)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상담에 대한 나의 근본 신념과 상담의 특성을 종합하여 '나의 상담'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상담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상담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와 상담 관계에서 상담 언어로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가 삶의 주인이 되도록 인간과 인간관계의 내면을 인문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이 정의가 상담에 대한 나의 믿음을 잘 나타내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허한 말장난 같기도 해서 나는 나의 믿음대로 상담을 실천할 수 있는 학문적, 실질적 내공이 나에게 있는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청소년대화의 광장 원장을 지낸 박성수 교수가 "상담은 20세기 인류 지성이 발전시킨 최고의 지적 결정이며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정밀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상담은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내는 힘과 지혜와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표현한 말에서 큰 용기를 얻으면서 '나의 상담'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p. 54). 상담의 핵심목표 : 삶 속의 삶을 찾아서 그동안 상담과 관계되는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나는 '내담자들이 왜 상담을 받으러 오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내담자들은 두 가지 이유로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확신한다. 첫째는 '되고 싶은 자기가 되기 위해서', 즉 자기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싶어서 상(p. 56)담자를 찾는다. 둘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기 때문에', 즉 타인과의 관계성을 회복하여 자기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치를 인식하기 위하여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되고 싶은 자신'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상담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상담은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는 인간의 가치 지향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여 인문적 자기성찰 과정을 통해 그 목적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나아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자신의 본성과 잃어버리고 있었던 자신의 언어를 찾도록 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상담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천착하는 인문학의 기본 가치'를 토대로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은 언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언어의 예술인 문학의 효율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는 인간을 무한 경쟁의 세계로 몰아가면서 광속의 속도로 인간이 움직여 주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본인의 능력과는 관계도 없이 쓸데없는 열등감과 쓸데없는 우월감에 시달리고 고통받으면서 자신의 주체성이 흔들리고 타인과의 관계성은 메말라 가고 있다. 튜더는 한국인들은 엄청난 경쟁 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는 열등감과 우월감 속에서 기적을 이루(p. 57)기도 했고 그 경쟁 때문에 기쁨을 잃어 가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상담은 경쟁 세계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인문적 자기성찰을 통해 삶 속의 삶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특별한 상담 관계를 통해서 내담자가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재능을 인식하고 열등감과 우월감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고 자신의 언어를 찾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p. 58). 인문상담의 근본 핵심목표는 인문적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성장에(p. 68)있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상담의 근본이라고 믿고 있다. 상담자는 내 담자로 하여금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문적 자기성찰을 하도록 이끄는 안내자이며 격려자이며 동행자 역할을 하는 전문가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에 인문학을 접목하여 인간을 보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상담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인문상담'이라고 부른다. 인문상담은 각자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개인의 참자아를 탐색하고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담 과정이다. 인문상담은 개인의 다양한 병리적 심리 상태를 해소하고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상담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타인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문상담의 이러한 창의적인 상담 방법은 우리나라 상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인문상담의 대상은 다양한 이유로 일상생활에서의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간 실존의 근본 문제인존재의 의미와 가치, 죽음, 소외, 고독 등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통찰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인문상담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인문상담의 이러한 특성은 바로 인간은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무궁무진한 잠재능력과 인간만의 존엄성과 가치와 권리를(p. 69) 내부에 간직하고 있으며, 이 요소들을 찾아서 충분히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간존중 상담의 원리, 목표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상담의 각 영역, 예컨대 발달단계별, 대상별, 주호소(증상)별로 실시하는 상담의 이론과 실제에 인문적인 정신, 곧 심리 문제보다 더 큰 인간 실존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을 근본 원리로 하여 진행하는 상담이 곧 인문상담이다(p. 70). '문학적인 상담'은 '문학적으로 상담을 한다'는 의미이다. 언어의 예술인 문학은 허구적인 삶의 다양한 형태를 통하여 사람의 생각과 느낌과 사람이 처한 환경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독자들의 예술적인 감동을 자아내고 그 은유의 빛으로 독자들이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이다. 언어를 매체로 하는 상담은 실제적인 삶 속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p. 73)적 문제를 위시하여 삶과 죽음의 실존적인 문제까지 다루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분야이다. 인간의 주체성 확립과 관계성의 회복을 주제로 하는 문학과 상담이 추구하는 목적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문학과 상담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한다면 상담을 더욱 깊이 있고 차원을 높이며 상담의 지평을 넓혀주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의 내용에는 상담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고 상담 과정과 내용에는 문학적인 특성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문학의 특성을 활용하는 상담을 '문학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p. 74). 그렇다면 문학은 상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문학은 상상의 이야기이고 상담은 실제 삶의 이야기인데 이 둘이 어떻게 서로 만날 수(상호보완) 있는가? 문학상담이 가능한 것은 문학작품 속에 상담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 가고자 하는 상담 과정의 내용이 문학작품 속에서는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다. 더 나아가 문학은 상담 과정에서 빠질 수 있는 경험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인생 체험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기술하는 문학은 구체적인 묘사로 우리의 몸과 감정, 정서를 건드리면서 우리의 체험을 일깨워 준다. 상담 과정에서는 상담 언어로 살아 있는 경험이나 구체적인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체험을 일깨워 준다. 문학상담에서는 상담 과정을 좀 더 깊이 있고 차원을 높이기 위한 매체로서 문학작품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단순한 문학감상이나 서평과는 다르다. 문학상담에서 문학작품을 활용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품의 내용에 반영되어 있는 저자 또는 주인공의 문학적 은유(p. 83)를 음미하고 문학적 담론을 상담적 담론으로 바꾸어서 자유로운 자기 성찰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에 대한 상담의 접근은 문학적 사고와 표현력과 통찰력의 훈련을 위해서도 기능할 수 있다. 문학상담에서 '문학'이란 반드시 문학작품만을 뜻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의 근본인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언어활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김대행 교수는 그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문학이란 일상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하는 말과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했다. 문학은 '우리가 쓰는 언어'를 쓰며, 문학 안에 담긴 삶은 '우리 삶', 즉 '일상적 삶'과 다르지 않으며, 다만 보다 정교화되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문학상담은 그런 말과 이야기를 통해 상담을 하는 것이다(p. 84). 문학상담의 특성 문학상담의 특성은 상담의 과정과 내용에 있으며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한다. 첫째, 문학상담은 상담 과정과 내용에서 문학작품을 활용하는 것이지 문학작품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상담은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내적인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를 상담의 과정에 대입하여 문학작품의 은유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는 상담의 모든 활동을 뜻한다. 둘째, 문학상담은 상담 과정과 내용에서 언어활동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지 정교하게 문학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문학상담은 상담 과정에서 언어활동을 활용하여 내재된 잠재력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돕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로 구현되는 문학활동을 통해 한 인간의 자기서사(Self-narrative)를 재발견하고 재구성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세계-내-존재'로서의 의미를 새롭게 형성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p. 91). 셋째, 문학상담은 상담 과정과 내용에서 문학작품이나 언어활동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상담이다. 넷째, 문학상담은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신의 감정과 신념이 녹아 있는 자기서사로 읽어내고 그 서사에 부여된 의미와 새롭게 부여할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참자기를 찾는 것과 또한 위기와 갈등을 자기 됨의 필연적 부분으로 파악하고, 자기 자신을 언어화함으로써 삶의 부조화와 분열을 극복하도록 돕고 발달과 성숙을 통한 총체적 성장을 돕는 것이다. 다섯째, 문학상담은 상담 과정과 내용에서 내담자의 표면적인 증상을 뛰어넘어 실존 문제(죽음, 고독, 분노, 용서, 선택, 생의 의미 등)를 토의하고, 내담자를 '전체적인 인간'으로 대하면서 그 결과로 인생의 의미, 인간적인 성장, 자기다운 삶의 보람을 깨닫는 경험을 얻도록 한다. 내담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인간의 실존 문제를 고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문학상담은 인간중심상담이고 실존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적 수용, 공감, 명료화, 적극적 경청, 상호신뢰, 진정성, 한결 같음 등은 인간중심상담에서 추구하는 것을 문학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실존적 상담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심리적 삶의 세계에 있는 추(p. 92)상적이고 철학적인 이슈들을 검토하고, 상담의 기술보다도 삶과 죽음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를 선호한다. 문학상담에서는 인간중심상담과 실존상담에서 추구하는 요소들을 융합하여 문학적으로 상담 과정과 내용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일곱째, 문학상담에는 특별한 매뉴얼이나 정해진 기술은 없으나 상담사례를 정확하게 기록하여서 문학상담의 효과를 검증한다. 문학상담의 과정을 통해서 내담자는 문학작품 속에서 얻은 '시간'과 '감정'과 '자기존재의 의미와 이해에 관한 새로운 지평'에 대한 '앎'을 '삶'의 현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학상담은 내담자에 따라 창의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며 결과는 다양하기 때문에 통계적 처리로는 그 결과를 측정할 수 없다(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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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5
  • 【북토크347】 호스피스 의사가 전하는 삶의 지혜
    이 책의 저자는 호스피스 의사이다. 수많은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배우게 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한다’는 것이 큰 울림을 줬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지만 찾아서 읽어볼만한 책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편안하게 삶을 끝내는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웰다잉 지도자 자격증도 보유하지 않았고, 입관 체험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전 의료 지시서나 유서 등으로 삶을 미리 정리해둔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 가지는 '나쁜 소식'이다. 그들은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긍정적인 죽음관'이다.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죽음관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냈거나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이나(p. 37) 장애인이 남들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워져서야 죽음에 대해 생각한 다. 긍정적인 죽음관도 나쁜 소식을 안 후에야 가질 수 있다. 나쁜 소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죽음관도 없는 셈이다. 문제는 가족 사이의 정이 두터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알리는 걸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p. 38). '나쁜 소식을 알면 빨리 죽는다'는 근거 없는 상식은 환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가족들은 자신의 병명을 모른 채 고통스럽게 떠나는 환자를 통해 죽음은 힘들고 무서운 것이라 인식하게 되고,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기회마저 놓 쳐버린다(p. 45). 죽음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등 뒤로 다가온 나쁜 소식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 그 자체가 불행은 아니다. 나쁜 소식을 불행으로 연결시키지 않기 위해선 떠나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슬픔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이 하 얗게 화하는 것 같은 슬픔이 지나가면 평온이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떠날 사람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 서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응어리진 일에 관해 화해하며 서로의 슬픔을 애도하고 위로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해피엔딩이다(p. 49). 암 환자의 분노에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분노가 사그라져야 삶도 보이고 죽음도 보인다. 그때 비로소 암(p. 75)성 통증도, 삶의 통증도 치유된다. 그래도 그에게 다가온 죽음을 내쫓아줄 수 없으니, 의사로서 나는 늘 미안할 뿐이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아프지 않게 해드릴 자신은 있어요." "선생님이 미안해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 병이 원래 그런걸요. 아프지만 않으면 되죠." 환자는 미안해하는 의사를 도로 위로한다. 그들의 분노는 의료진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향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오면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멀어버리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그 한마디에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통찰력이 생기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오늘도 나는 나의 환자들에게 미안하다(p. 76).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어떤 경우라도 삶의 의미를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호스피스가 하는 일도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사는 것이 서툴러 노숙자가 된 사람, 돌봐줄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사람.... 그가 누구든 어떤 삶을 살았든, 인생의 마지막은 석양처럼 눈부셔야 한다. 우리가 서로의 어둠에 물감이 될 때 마지막 남은 인생에 황금빛 석양이 비춰진다. 그때 컬러풀 호스피스가 완성될 것이다.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완성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p. 129).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64년에 발표한 《죽음의 춤》이라는 책에서 암과 싸우는 어머니의 고통을 차분하게 묘사했다. 마약성 진통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엄청난 통증과 맞서 싸워야 했다. 보부아르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 며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라고 썼다. 톱니바퀴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것은 보부아르의 말처럼 무엇으로도 정당(p. 173)화할 수 없는 폭력일 것이다. 나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당부하고 싶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모르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나는 신이 우리가 아프지 않게 죽어가기를, 그리하여 죽음의 맨얼굴을 응시 하기를 바랐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죽음의 맨얼굴은 평화롭다. 다만 통증 때문에 죽음이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왜곡되었을 뿐이다.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p. 174). 과일에 씨가 들어 있듯 우리 안에는 죽음이 내재되어 있다. 죽음은 나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함께 잉태된다. 그러나 철학적인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의학적인 죽음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맥없이 휘말리고 만다. 흔적조차 없이 소멸될 육신, 흔 자 내던져진 듯한 외로움, 암성 통증의 공포, 돌아갈 수 없는 세월에 대한 향수....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한다. 호스피스 활동은 우리가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고 타인의 외로움을 껴안는 방법이다. 우리가 내적 자아를 만날 때, 그리하여 스스로를 더 사랑할 때, 우리의 외로움과 타인의 외로움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p. 189). 돌이켜보면 참 극성스럽게 살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살다 보면 도움이 되려니 싶어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도 이것저것 배우게 했다.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여가며(p. 205)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끌고 다녔고, 애들이 피자나 햄버거를 먹고 있으면 당장 큰 병에라도 걸릴 것처럼 야단을 치며 현미 채식을 하게 했다. 내일 편하기 위해 오늘을 피곤하게 보내라고 강요했고, 내일 건강하기 위해 오늘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어리석은 엄마에게 모든 것의 초점은 내일이었다. 어쩌면 없을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지금 있는 오늘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집 안을 덜 쓸고 덜 닦는 대신 그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어도 영화를 보러 나간다. 아이들에게 성적표에 적힌 숫자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고 공부하는 동기에 대해 묻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일을 줄인다.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면서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을 포기하면 뜨거운 오늘이 있다. 나중에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아닐까. 오늘을 즐기는 사람은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삶도 즐길 수 있다. 이 순간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다(p.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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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5
  • 【북토크346】 정신과 의사가 밝히는 ‘상담이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때 정부가 이것을 어떻게 덮을려고 어떤 만행을 했는지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결국 박근혜는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탄핵됐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야만적인 폭력을 가한 집단과 인간 군상들이 있었다. 반면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아예 거처를 안산으로 옮긴 이 책 저자같은 정신과 의사도 있었다. 많이 동의하며 읽었다. 의사라는 절대적 권위가 보장된 곳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신과 진료실을 떠나고 한참 지나서야 그걸 알았다. 진료실에 있는 동안에는 사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입체적인 탐구에 게을러도 그닥 불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의학 지식과 약 물치료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상담도 잘하고 싶었고 어떤 사람의 핵심적인 문제를 빠르게 파악해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도 싶었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결정적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의 비대칭적 구도와 지나치게 의료(p. 10)적이고 편향된 시선을 가지고 한 인간의 핵심에 제대로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진료실의 환자는 의료적• 병리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철학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이기도 하다. 영적 존재이자 예술적 존재이고 물질적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정신과 진료실 구조 안에서 자신의 '환자'를 그렇게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진료실 구조 안에 있을 때 나도 그랬다. 진료실은 내 의식과 인식을 제한했다. 물론 내담자도 제한당했을 것이다. 진료실 무용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진료실 안의 심리적 구도와 공기를 바꿔야만 그 안에 있는 의사나 환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극단적일 정도로 진료실 문제를 거론하는 건 진료실을 떠난 후 내가 정신의학 방면의 직업인으로서 더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그간의 경험 때문이다. 진료실이 아닌 세팅에서 사람의 속마음을 만나면서 나는 삼십 대의 안개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섬세하고 더 과감한 상담도 가능해졌다. 그토록 원했던 상담 후의 개운(p. 11)함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내담자들이 느끼는 홀가분함도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피부로 느낀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용한 의사가 된 것 같다. 재벌 회장이나 대통령 후보인 정치인을 만나서 그들의 고충을 들을 때, 고문생존자나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서 촛농 눈물 같은 얘기를 들을 때 나는 무차별하다. 한 개별적 인간에게만 집중한다. 그런 순간 나는 예전 진료실의 의사였을 때보다 유능하다. 나와 상담한 이들의 변화와 반응을 보면서 그 사실을 순간순간 깨닫는다. 그런 점에서 그들과 진료실 밖 현장은 나의 스승이다. 그런 스승들로부터 사사받고 있고 그래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이제 나는 더 따뜻하고 더 편안하고 더 수월하게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정신과 후배들에게도 말하곤 한다. 진짜 실력을 키우려면 병원에 있지 말고 현장으로 나오라고. 흰 가운도 없고 전문가 아우라를 지켜주는 어떤 장치도 없는 곳에서 수평적인 관계의(p. 12) 개별적 인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이는 스승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깨달음과 통찰이 생기는지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의사가 아니고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된다. 오랜 현장 치유자의 경험으로 가지게 된, 신념에 가까운 믿음이다. 나의 진짜 사람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공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p. 13). 상담이란 건 기본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 자기 고통에 집중하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갖는 깊고 집요한 감정은 다름아닌 죄의식입니다. 내가 죽인 거다, 나 때문이다, 그런 감정과 생각에 마치 늪처럼 빠져들어요. 내가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힘있는 부모였더라면, 내가 안산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 이런 끝도 없는 '내 탓'으로 초주검이 됩니다. 생존학생이나 유가족들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는 감정이죠. 그런 죄의식이 너무 크면 사람은 '자기처벌'을 합니다.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거죠. 자기를 보호하지도 않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심리상담도 하기 어렵고 몸이 아파도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지요. 피해자들의 이런 어마어마한 죄의식을 심리적으로 잘 다루지 못한 상(p. 33)태에서는 심리치유가 한발짝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 점을 간과한 채로 이루어졌던 사고 초기의 심리치유 대책들은 그러니까 피해자 개인에게는 와닿지 않는 행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거죠(p. 35). 트라우마 피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닙니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외부적 요인' (사건)으로 인해 내가 유지해오던 심적•물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처한 사람이에요. '심리내적 요인'(자기 상처 등)으로 인해 생긴 정신과적 질병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퍽치기를 당해서 머리를 다쳐 중환자실에 입원(p. 42) 하게 된 사람이지 본래 고혈압 환자였다가 중풍으로 쓰러진 사람이 아니란 겁니다. 그런데 의사가 마치 원래부터 환자였던 사람 취급을 하면서 치료를 하려 들면 안 되는 거죠.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당장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상담을 받고 어려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마음을 여는 행위는 당위적인 이유로 되지 않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준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 수 있어요. 설득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게다가 환자화(化)하는 듯한 전문가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자아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저는 그걸 긍정적인 신호로 봅니다. 멀쩡했던 아이가 하루 아침에 그렇게 돼버렸고, 내 삶은 진흙탕 속으로 처박혀서 하루아침에 다 무너져버렸어요. 세상이 다 무너졌는데, 정신과 환자가 되어서 나조차도 다 망가져버린 느낌(p. 43)을 가지는 것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나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명백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이 무너졌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나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다, 단지 힘든 상태에 처한 것일 뿐이다, 라고 느껴야 무너져내린 세상을 자신의 어깨로 떠받치고 일어날 최소한의 힘을 확보할 수 있어요. 자신에게 남아 있는 힘을 확인할 수 없으면 트라우마 치유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갑자기 자신을 정신과 환자 취급하는 전문가에게 저항하는 모습을 저는 건강한 자아가 작동하는 증거로 봅니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나까지 망가졌다고 느끼면 피해자는 더 버틸 기력이 없어요. 결국엔 삶을 놓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트라우마 피해자, 생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이들을 대하는 모든 치유행위의 전제가 되어야 해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트라우마 피해자를 정신과 환자로 취급하는 모든 행위는 피해자 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건강한 자아의 힘에 상처를 입히(p. 44)는 거예요. 그 사람이 치유과정 중에 발휘해야 하는 자기 상황에 대한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아요. 고백 하건대 정신과 의사들은 부지불식간에 사람을 환자로 치환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키워진 전문가들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을 치유하는 데 이런 시각은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고 장애물입니다. 나는 이 질병에 대해서 다 알고 깨우친 자, 너는 병들고 모르는 자, 그러니 나를 믿고 따라와라. 이건 명백하게 반치유적인 시각이에요. 의사가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으면 쉽게 그렇게 됩니다.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시작한 일이 거꾸로 상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는 거예요. 저도 여태 죽을힘을 다해서 저항하고 성찰하고 있는 문제입니다(p. 45). 그렇다면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유가족들에게 상담받으라고 등 떠밀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극도의 혼돈 속에 있는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껏 자기가 구축해온 모든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지만 나 자신까지 무너진 건 아니라는 걸 확인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심리적•물리적 폐허 속에서도 그 사실을 최소한의 기반으로 삼아서 일어날 수 있습니(p. 46)다. 그 힘이 있어야, 그게 살아 있어야 전문가의 도움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자기면역력이 전혀 없으면 의 사가 아무리 좋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병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p. 47).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상황에 대한 자기주도권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상황에 대한 자기통제력이 생깁니다. 그때부터는 자기 문제에 대해 전문가와 상의할 수도 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요. 불안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자기 의지가 그때부터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이 가장 불안하고 공포스러울 때는 예측 불가능할 때 입니다. 혼돈과 불안이 극심해지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고, 그에 압도되면 마침내 탈진하고 말아요. 무력한 상태로 추락하는 거지요. 이런 상황으로 치닫지 않 도록 막는 것이 트라우마 현장에 있는 전문가가 할 일입(p.48)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서는 제대로 된 치유는 시작도 할 수 없어요(p. 49). '상담이란 모름지기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내 전공은 무슨무슨 심리치료 기법이다'라며 상황보다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몰입이 더 강한 경우가 현장에서 심리상담이나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을 더 쓸모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이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전문지식이 현장에서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는 거죠. 그렇다면 그때의 전문가란 무엇일까요. 그가 그간 공부해왔던 공부는 그럼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는 본래 지니고 있는 무의식적 건강성, 온전함이 있습니다. 저는 병원 상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던(p. 55) 시절보다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확신이 더 또렷해졌어요. 끝 간 데 없이 추락하다 벼랑 끝 나뭇가지에 간신히 걸린 듯한 아득한 존재들을 만나면서, 어쩌다 한순간에 지옥 같은 곳에 처박힌 삶들을 접하면서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확인했어요. 그것이 궁극적인 치유의 동력이자 치유의 핵심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젠 한톨의 의심도 없이 확신합니다. 그래서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 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 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내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있다면 오로지 그걸 하는 데 모두 쏟아야 한다고 느껴요. 내 지식, 내 힘, 내 명민함, 나의 분석과 계몽, 내가 배운 치유기법 등으로 사람이 구해지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니까요(p. 56). 아무리 빼어난 이론이라도 이론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이 가장 근원 적인 치유적 태도라 생각해요. 울어야 할 상황인데 울지 못하면서 생기는 복잡하고 초조한 마음, 자신에 대해 드는 이상한 생각들, 그런 것들을 알아주고 공감해줄 수 있 어야 편안하게 울 수 있어요. 울어야 한다고, 안 우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라고 채근하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면 저절로 울게 되어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론 너머의 이론이에요. 그런데 치유라는 것이 어떤 것이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런 이론적인 틀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공부한 것 때문에 방해를 받는 거예요. 공부가 덫이 되는 거죠. 사람의 마음을 공부한 사람들, 그런 지식이 많은 사람(p. 72)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p. 73). 사람 마음에 대한 진짜 공부를 원한다면 우선 자격증에 대한 이상화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짜 공부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요. 사실 자격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상당 부분 이런 자격증 중시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격증이나 학위, 자기 실력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가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심리상담과 관련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별도의 수련 기간이 따로 있고요. 그 끝에 얻는 것이 관련 자격증입니다. 그런데 자격증이 있어도 직업적 전망이 매우 암울한 수준인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손에 잡히는 뚜렷한 열매가 없는 길을 다른 분야보다 더(p. 122) 오래, 더 많은 비용을 들이며 공부하다보니 자기가 가진 자격증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가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 학문이나 이론에 대한 보수화 경향이 더 강하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 거기서 벗어나는 것에 매우 심하게 저항할 수밖에요. 그러다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보다 내가 한 공부, 내 자격증의 효용성 자체에 더 많이 몰두하기 쉽습니다.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생생하고 뜨거운 집중과 주목 없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건 그동안 현장에서 이런 모습들을 너무 많이 접했고 그러면서 깨달은 경험칙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진짜 공부가 하고 싶다면 너무 고생스럽게 학위를 따는 건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의미없다는 게 아니고 자격증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p. 123) 봐왔습니다. 학문과 학위에 대한 이상화 또는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면 진짜 공부에 접근하는 것이 더 수월할 거라 생각합니다(p. 124). Q. 세월호 참사와 같은 트라우마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심리적 문제와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트라우마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은 없을까요? A. 유가족 부모들이 아이가 떠났다는 걸 빨리 인정해야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도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많은 분들이 합니다. 그런 얘기들 때문에 유가족들이 계속 상처를 받고요. 그게 왜 인위적으로 되지 않는지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기억이 잊고 싶다고 해서 잊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억이란 끊어낸다고 해서 끊어지는 게 아니죠. 사고가 나서 다리나 팔을 절단한 사람이 수술 후 마취에서 막 깨어나면 절단해서 없어진 부분에 통증을 호소한다고 했잖아요. 이런 걸 '환상통'이라고 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없어졌어도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붙어 있는 거죠. 기(p. 134)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리적으로 종료되었다고 마음에서도 딱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나 컴퓨터죠. 이런 심리학 실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영화를 보여주는데 한 집단은 영화를 끝까지 다 보여주고 다른 한 집단은 결말 부분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수개월 뒤에 이 두 집단에게 그때 봤던 영화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집단이 더 분명하게 기억할까요? 영화의 결말을 보지 못한 집단이 영화에 대해 더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본 집단은 처음부터 결말 까지 다 보았기 때문에 완성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은 완성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결말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는 거죠. 사람은 욕구가 충족되면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거기서 계속 멈춰 있게 되고요. 모든 인간은 완료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갑자기 자녀와의 관계가 뚝 끊어져버린 거예요(p. 135). 그러니 완료되지 않고 도중에 중단된 그 관계를 마음 안 에서 충분히 완료할 수 있도록 곁에서 심리적으로 도와줘야 해요. 그래야 이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도의 과정이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는 말로는 애도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애도하려고 하면 불안해서 막아요. '이젠 그만 울어야지, 이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말해요. 어떻게 보면 유가족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또 없어요. 그런데 누구하고도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으면 혼자 생각하고 곱씹고 또 곱씹게 되죠. 결국 평생 그 기억 언저리에서 배회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능한 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아이에 대해 더 얘기하고, 더 많이 느끼게 해서 마음속에서 완료되지 않고 중단된 것들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해요(p. 136). Q. 전공서적을 모두 정리하고 시집과 소설 같은 문학책만 남겼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데 시집과 소설 같은 문학책이 도움이 되나요? A. 그럼요. 심리학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 그들이 주창한 개념과 틀을 중심으로 사람을 분석 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이론과 개념이 전부인 것처럼 절대화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고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훌륭한 전문가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아무리 탁월하고 근본적인 이론이라 해도 어느 한 학자의 개념과 틀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틀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얼마나 많고 깊은데요. 사람을 깊이 접하는 시간이 많아 질수록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p. 143).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해하고 접근하기가 막연하고 모호합니다. 어둠 속을 걸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지팡이가 있으면 그에 의지해서 주위를 천천히 더듬으면서 감을 잡고 최소한의 자기보호를 할 수 있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둠 속에서 내 시력으로도 주위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면 지팡이 끝으로만 세상을 인지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 눈을 통해서 내 주변이 어떠한지 통합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끝'으로 더듬어 세상을 '부분적으로 파악하는' 도구가 심리학 지식이라면, '내 시력'으로 세상을 '통합적으로 인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문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분적이기보다 통합적이고, 분석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 입체적 입니다. 인간을 유형으로 말하지 않고 한 인간의 개별성에 끝까지 집중합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입니다. 심리학 공부는 지팡이 역할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p. 144). 정신의학, 심리학 분야도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 중심, 학문과 학파 중심의 전문가가 아니라 상처입은 사람 중심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치료가 아닌 치유의 영역이라 명명했습니다. 치유의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죽기 전날 무엇이 가장 먹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특급호텔의 요리를 꼽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마가 해주었던 김치찌개나 어릴 때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같은 것을 떠올리겠지요. 전문가(p. 149)적 치료가 칠성급 호텔의 요리라면 엄마나 외할머니의 밥상이 치유입니다. 우리가 모두 요리사 자격증을 가질 수 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요리를 못 먹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집밥을 오래 못 먹으면 심리적으로 황폐해집니다.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p.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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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5
  • 【북토크345】 자기 주변 물건에 대한 사색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물건들과 함께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물건들과 인간 사이에는 서사가 생긴다. 저자도 책에서 밝힌대로 나이를 먹으니 물건을 덜 사게 된다. 사람과도 사물과도 관계 맺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과 관계 맺지 않고 심플하게 살고 싶다. 고대 철학의 역사를 가볍게 풀어낸 책 《그리스 철학사 1》에서 저자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페피노 루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소 할아버지는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는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인생철학'은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고대의 물활론의 연장선에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낸 모든 장난감이 즉시 영혼을 갖는 것은 아니오. 천만의 말씀이지. 그 순간에는 그저 단순한 물건일 뿐이오. 그런데 어떤 어린애가 인형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의 영혼이 플라스틱 사이에 스며들어 생명을 가진 물건으로 바뀌어 가는 거요. 그렇게 되면 비록 부서지고 상처 난 인형이라 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생명체 로 바뀌는 거고 말이오" 나는 이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사람이 홀로(p. 20)선다는 것이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라면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일 터이다. 그래서 단번에 할 수 없고 세월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 나는 그 아침, 이 가혹하고 부조리한 진실을 깨닫고 눈앞이 빙빙 돈 것인지도 모른다. 늘어나는 책들을 입주시키기 위해 어떤 책장을 마련할 것이냐 하는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그 고민은 고스란히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 일터. 나는 책이 든 상자를 성급하게 풀지 않겠다(p. 21). 친구들의 하소연에서 시작된 비공식 탐구에서 나는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바람을 얻었다. 엄마가 물려준 살림살이가 우리의 주방을, 아니 집 전체를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에서 영영 멀어지게 만들어도 딸들은 살림살이를 모으며 취향을 키우고 만족감을 느꼈을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엄마들은 그 귀한 살림살이를 당근에 내놓자고 설득하는 딸들을, 혹은 몰래 내다 파는 딸들을 너무 원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저 나름대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터이다(p. 48).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특히 폐기가 쉽지 않은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은 꼭 참고 바란다(p. 107). 한편 부모 잘 만난 번역 프리랜서가 뜨끈한 방구석 책상 머리에 앉아 맥이 어쩌고 윈도우가 저쩌고 인간성이 어쩌고 주체성이 저쩌고 할 때, 다른 한편에는 화장실에 갈 시(p. 140)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터에서 오줌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하루 일해도 하루 먹을 임금조차 주어 지지 않는다. 인간은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배설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기계에 끼이면 팔다리가 잘리고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 취급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으려는 세력은 인간을 계급으로 구분하고 우리와 남을 구분해서 착취를 합리화한다. 이는 인간 역사에서 무수히 되풀이되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1세기가 되면 로봇이 반란을 일으킬 줄 알았건만 반란은커녕 기계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날은 요원하고 일단은 인간의 밥줄을 위협하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고 한쪽에서는 작업 도구의 디자인을 따지는 사람이 있으며 또 한쪽에서는 작업 도구에 사람이 깔려 죽는 지금, 지금은 2022년이다(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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