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Home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소위 “스타” 목사 박영선, 김문훈의 몰락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몰락했다. 한때 한국교회를 들썩였던 스타 목사였다. 박영선 목사는 내가 신학교 시절이던 80년대 신학생들을 매혹했다.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잊혀졌는데 최근 뜬금없이 개척교회 40억 요구 건으로 언론에 언급되다 결국 문제 많은 아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정리됐다. 김문훈 목사는 교역자에 대한 욕설 녹음이 공개된 후 고신 교단 부총회장직과 담임목사직을 사임했다. 감추었던 그들의 실체는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한때 그래도 깊은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았었는데 망연자실하다. 목사는 타종교와 달리 쉽게 팬덤이 형성되고 스타 반열에 오른다. 불교, 천주교에서 이들처럼 명성을 떨친 이들이 있었는가? 기독교는 설교 중심이다보니 설교를 잘 하는 자는 주목을 받는다. 과거 전병욱도 그랬다. 스타 목사의 이면과 몰락을 보며 다시한번 다짐한다. “인간에게 소망을 두지 말자.” 인간이란 잘 난 것처럼 보여도 다 그렇고 그러니 너무 높이지 말고 따르지도 말자. 그랬다가 이처럼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인간은 기대할 것이 없다. 씁쓸하다!
-
【단상】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어떤 책을 보다 알게 됐다. 뜻과 달리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굴은 능력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보상이 세습이나 배경이 아닌, 오직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공정'의 기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최근에는 그 한계에 대한 비판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1. 주요 특징 성취 중심: 부나 계급 대신 지능(IQ)과 노력의 합산으로 성공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기회의 평등: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하고 실력으로 경쟁하는 것을 정의로 여깁니다. 객관적 지표: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시험'과 같은 정량적 평가를 통해 보상을 나누는 경향이 강합니다. 2. 주요 비판과 쟁점 최근 마이클 샌델 등 석학들은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고 지적합니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과신하고, 실패한 사람은 자책하며 소외감을 느낍니다. 기회의 불평등: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격차를 만들어 결국 '엘리트 세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공정의 착각: 성공에는 운이나 사회적 환경의 도움도 크지만, 이를 무시하고 오직 실력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3. 관련 주요 서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능력주의가 어떻게 공동선을 해치고 '폭정'이 되는지 분석한 책입니다. 능력주의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현대의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방식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비신자에게는 운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나름 성공하더라도 겸손해야 한다.
-
【단상】 세월은 빠르다
2026년의 2월이 지나가고 있다. 벌써 1월이 사라졌다. 2월은 28일 밖에 되지 않으니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세월은 물살과 같다. 빠르게 흘러간다. 이때 그물을 내려두면 물고기를 건질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넋놓고 있으면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같은 시간을 어떤 사람은 낭비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한다.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의미있는 일을 할려고 노력해야 한다. 1 시간을 10 시간처럼 생산성 있게 살아야 한다.
-
【북토크338】 존엄사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단식 존엄사는 말 그대로 굶어서 죽는 것이다. 다양한 존엄사 방법이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존엄사가 불법이다. 이 책의 배경인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저자의 모친은 단식 존엄사를 택했다. 의사인 딸의 도움으로 단식의 과정을 잘 거치고 3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도 존엄사가 합법인 국가에까지 가서 죽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실을 반영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 또한 때가 되면 말 그대로 존엄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우리 어머니는 64세에 두 다리를 한데 모으고 서지 못하고, 몸의 쏠림 현상이 생겨 진행성 소뇌실조증 진단을 받았다. 이런 병에 걸리면 동작 간의 조화를 통제해주는 소뇌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 말기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에 누워 생활하게 되고, 구음장애가 생기며,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진다. 말기에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을 나는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요가를 잘했다. 집에서 열정적으로 재활하다가 83세에 몸을 뒤집지 못하고, 음식을 먹을 때 쉽게 사레들리고,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 삶의 의미를 잃고 매일 온갖 불편함과 고통을 견뎌야 하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단식을 통한 자주적인 존엄사를 결정했다(p. 6). 3주 동안 점진적으로 단식을 실행했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어머니를 돌보고 함께해드렸다. 하늘이 도운 덕분에 모두 순탄했다. 어머니는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극락왕생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일련의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안락사 문제에 몹시 관심 있는 듯했다. 하지만 타이완에서 일반 대중은 죽음을 터부시하며, 안락사는 아직 합법이 아니다. 우리와 존엄사의 거리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1. 80퍼센트는 병원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사망한다. 21세기 의학이 각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며 질환 치료율이 대폭 상승하고 인간의 수명도 크게 연장됐다. 그러나 침입성 치료로 인한 고통도 늘었다. 중증 질환을 치료하고도 삶의 질이 낮아진 경우가 숱하다. 반세기 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임종했지만 현재는 80퍼센트가 요양 기관에서 사망한다. 임종자에게 병원은 낯설고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기에 적당치 않은 장소다. 하물며 어떤 환자는 특수병동에 입원해 짧은 면회 시간만 주어지는데 몸에 각종 튜브를 꽂고 있어 말하기도 힘들다. 많은 환자는 말기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의사가 허락하지 않거나 말기 돌봄을 걱정하는 가족 때문에 고통스럽고 한스럽게 차디찬(p. 7)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이 임종 때 삽관, 심장충격기, 심폐소생술CPR과 같은 응급 처치를 받는다. 이러한 '의료사' 과정은 임종을 앞둔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남겨진 사람을 아프게 한다. 2. 사망 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여명이 8년에 달한다. 내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국 평균 수명은 81.3세이고 남성은 평균 78.1세, 여성은 평균 84.7세다. 그런데 사망 전 건강하지 않은 상태(와상 상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보내는 여명이 8.47년에 달한다. 급사 사례를 제외하면 와상 기간이 수십 년에 달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된 왕샤오민은 와상 47년 만에 임종했다. 우리 시아버지와 시숙부님 두 형제는 치매로 인해 누워서 12년을 보낸 후 돌아가셨다. 나는 임신했을 때 안정을 취하느라 집에 누워서만 지낸 적이 있다.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석 달을 보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하루가 일 년 같고 머리는 멍했다. 반신불수로 오랫동안 와상생활을 하는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이제 그만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간병하던 사람은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을 봤으니 다음 대에 똑같이 넘겨주고 싶을 리 없다. 나는 나중에 이렇게 안 사느니만 못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무(p. 8)엇 때문에 국민 수십만 명은 이런 무의미하고 존엄하지 못한 삶 을 살아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서양 선진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타이완과 비슷한 실정이다. 마쓰바라 준코는 『장수 지옥』이라는 책에 이 현상을 담았다. 3. 사람들은 죽음 이야기를 기피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큰일에 대해 미리 의논하거나 당부하지 않는다. 죽음 이야기를 기피하는 일은 인류의 공통된 맹점인 듯하다. 아시아인은 더 심하다.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주제를 부모와 터놓고 말하지 못한다. 화교 중에 자손을 생각하는 마음에 본인의 사후 처리 당부는 하면서, 큰 부상을 입었을 때나 생애 말기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사고는 갑작스레 발생하기 마련인데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게 되면 당황한 가족은 의견이 분분해진다. 소송을 당할까 두려운 의료기관은 환자를 최대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와상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가족들은 나중에야 후회하곤(p. 9)한다. 이런 적도 있다. 방사선과 교수가 세미나 중에 우리 재활학과에 입원한 환자의 뇌 CT를 보고 상황이 안 좋다며 탄식했다. "CT를 보니 나을 기미가 전혀 없네요. 이 환자의 부인은 나이도 젊은데 생과부로 지내야겠군요!" 가족이 살리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한 건지, 외과 의사가 반드시 노력해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평소 죽음에 대해 가족끼리 자주 얘기하고, 의사는 치료 예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관건이다! 4. 당사자가 존엄하지 못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더라도 가족이 꼭 그 바람대로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위독해지면 중환자실에 보내지 말고, 어떤 튜브나 의료기기로 연명치료를 하지도 말라고, 차디찬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더 싫다는 의사를 살아 있을 때 분명히 밝혀두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인투베이션, 심장충격기, 비위관, 도뇨관 같은 것을 모조리 거부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혔(p. 10)을지라도 여전히 그를 깊이 사랑하는 가족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했음에도 가족들이 다른 의견을 내비치는 바람에 의사가 어쩔 수 없이 무의미한 의료를 하는 경우가 있다. 보험금이나 퇴직 연금 때문에 어르신의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거부하며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5. 안락사를 위해 원정 가는 일은 비인간적이다. 췌장암에 걸린 푸다런 선생은 담낭을 절제하고 위도 절반이나 절제한 탓에 소화 능력이 떨어져 무엇을 먹어도 고통스러웠다. 푸 선생은 총통에게 안락사법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총통부에서는 호스피스 도움을 받도록 해줬다. 하지만 완화의료를 받았음에도 고통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의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나는 푸 선생에게 며칠만 단식을 하면 스스로 안락사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디어에 나온 푸 선생은 정신이 또렷해 보였다. 사명감을 갖고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안락사를 공론화하려는 듯했다. 법치, 민주,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에 이러한 정책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 우리 나라(p. 11)도 신중히 관련 법률을 입법해 국민을 위해줬으면 하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후 푸 선생은 먼 스위스로 건너가 평가를 받고 안락사했다. 경비가 만만치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6. 장기 간병으로 심신이 지친 나머지 가족을 살해하고 양심과 법의 제재를 받는 상황은 인간 지옥이다. 원린현 더우류시에서 2021년 8월 반인륜적인 비극이 일어났다. 교통사고로 인해 오랜 병을 앓던 장 씨는 세상에 적대심이 생긴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아버지에게 조력자살을 부탁하고 유서를 남겼다. 장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아들을 칼로 찔러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 했다. 원린지방법원은 자살방조죄로 장 씨 아버지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집행유예 기간에 보호관찰을 선고했다. 전에도 어떤 남편이 장기 와상 환자인 아내를 살해한 비극이 있었다. 이런 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간병을 하는 사람과 간병을 받는 사람에게는 살든 죽든 인간 지옥이 따로 없다. 이런 상황은 점차 늘고 있어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다. 7. 의사는 사망을 의료 실패로 여겨 무의미한 의료가 이뤄진다. 의료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고통스럽지만 치료 효과가 없는 질환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치료를 포기(p. 12)할 권리가 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환자, 심지어 의료인조차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확률은 50퍼센트 이하다. 그래도 한번 부딪혀보고 싶어한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시작 하면 사망해서야 퇴원한다. 가족들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몸이 불편해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암 말기였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요양 하던 몇 달 내내 힘이 조금 없을 뿐 크게 불편하지 않아 진통제도 필요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는 소파에 기댄 채 나와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기도 했다. 떠나기 하루 전에는 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음식을 못 먹더니 다음 날 평온히 눈을 감았다. 이 것이 의료의 개입이 없는 전통적인 자연사다.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현재 중환자실에서 20퍼센트에 이르는 자원이 무의미한 의료에 사용되어 건강보험 부담을 높이고 다른 환자들이 응급 처치 받을 기회를 간접적으로 박탈하고 있다(p.13). 8. 삶의 의미를 잃고 고통만 남았을 때, 자주적 존엄사의 권리는 엄격한 법률의 제한을 받는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불의의 사고와 각종 질환 그리고 의료적 개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을 잃고, 반신불수가 되고, 생명유지장치에 기댄 채 살아가도록 만든다. 삶에 고통만 남은 채 아무 즐거움 없이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부담만 줄 때, 우리에게 자주적으로 존엄사할 권리가 있을까?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반대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주적 권리까지 제한할 자격이 있는가? 얼마 전 통과된 '환자 자주 권리법'은 어떠한 상황이 됐을 때 환자는 치료 거부, 응급 처치 거부, 자주적 존엄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음을 규범화했다. 그러나 20세 이상의 온전한 행위능력이 있는 일부 질환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정부가 정한 범위는 합당한가? 빈틈없이 고려되었는가? 사람들에게는 왜 스스로 선택할 완전한 자유가 없는가? 위와 같은 이유를 바탕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행한 자주적 단식 존엄사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국민이 평소에 가족과 존엄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도록 환기하고자 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민간 조사도 있었다. 정부가 하루 빨리 완벽한 대책을 강구해 '존엄사법'이 통과되도록 국민 여러분이 열정적으로 독려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태(p. 14)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죽음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통 없이, 존엄하게 자연사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이다(p. 15). 어느 날, 어머니는 가만히 앉은 채 평생 한 적 없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분은 한 번도 '루이야! 이리 와봐'라고 한 적이 없었어." (루이는 어머니의 아명이었다.) 나는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누가?" "네 할아버지 말이야!(p. 142). 어머니는 푸념했다. "우리 아버지는 날 딸로 생각 안 했어. 큰언니랑 큰오빠만 예뻐했지. 중학교 졸업 전에 우리는 남이나 다름없어서 난 아버지에게 말도 못 걸었고 아버지가 염라대왕 같았어. 졸업하고 나서는 돼지 두 마리를 돌봐야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일을 제대로 못 해서 돼지가 안 큰다고 하루 종일 혼냈어. 근데 난 아버지 안 미워해. 왜냐면 아버지는 하늘이고 난 땅이거든."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노년에 투병생활 하실 때 엄마가 제일 자주 찾아 뵀잖아. 할아버지는 엄마가 제일 효녀라고 하셨어. 아마 하늘에서 후회하고 계실걸. 엄마한테 잘 좀 해줄걸, 하고." 이런 위로의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증조할머니가 된, 나이 든 여든셋의 어머니가 떠나기 직전까지 유년기에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니 깜짝 놀랐다(p. 143)
-
【단상】 무례한 사람들①
구굴은 무례(無禮)란 “(사람이) 예의가 없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의가 왜 필요한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빨가벗고 살든, 아무데서나 똥오줌을 놓든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야하기 때문에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불편한 것이 있다. 나중에 좌석에 앉는 사람이 무조건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양쪽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가운데 자리가 비면 나는 의자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중간쯤에 앉는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운데 자리를 밀고 들어온다. 양쪽 사람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불편한다. 그런데 나처럼 가운데 자리에 앉을 때 양 편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리가 비면 산모를 위한 여성 좌석 옆에 앉는다. 이 자리에 산모가 앉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한쪽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좁은 지하철 좌석인데 겨울이라 모두 두꺼운 옷을 입어 더 비좁은데 제발 가운데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앉지 마시기를.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으니.
-
【단상】 아내와 보리굴비
취재 가서 보리굴비를 먹게 되었다. 보리굴비는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먹는데 아내 생각이 났다. 30년을 함께 산 내 반려자. 이제 아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먹으면서 목이 메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보리굴비 먹은 것을 말하고 보리굴비를 주문해 먹으라고 했다. 이때 아내 왈 “이제 보리굴비 별로 안 좋아해” 헐!
-
-
【단상】 소위 “스타” 목사 박영선, 김문훈의 몰락
-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몰락했다. 한때 한국교회를 들썩였던 스타 목사였다. 박영선 목사는 내가 신학교 시절이던 80년대 신학생들을 매혹했다.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잊혀졌는데 최근 뜬금없이 개척교회 40억 요구 건으로 언론에 언급되다 결국 문제 많은 아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정리됐다. 김문훈 목사는 교역자에 대한 욕설 녹음이 공개된 후 고신 교단 부총회장직과 담임목사직을 사임했다. 감추었던 그들의 실체는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한때 그래도 깊은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았었는데 망연자실하다. 목사는 타종교와 달리 쉽게 팬덤이 형성되고 스타 반열에 오른다. 불교, 천주교에서 이들처럼 명성을 떨친 이들이 있었는가? 기독교는 설교 중심이다보니 설교를 잘 하는 자는 주목을 받는다. 과거 전병욱도 그랬다. 스타 목사의 이면과 몰락을 보며 다시한번 다짐한다. “인간에게 소망을 두지 말자.” 인간이란 잘 난 것처럼 보여도 다 그렇고 그러니 너무 높이지 말고 따르지도 말자. 그랬다가 이처럼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인간은 기대할 것이 없다. 씁쓸하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소위 “스타” 목사 박영선, 김문훈의 몰락
-
-
【단상】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 ‘능력주의’라는 말은 어떤 책을 보다 알게 됐다. 뜻과 달리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굴은 능력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보상이 세습이나 배경이 아닌, 오직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공정'의 기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최근에는 그 한계에 대한 비판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1. 주요 특징 성취 중심: 부나 계급 대신 지능(IQ)과 노력의 합산으로 성공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기회의 평등: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하고 실력으로 경쟁하는 것을 정의로 여깁니다. 객관적 지표: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시험'과 같은 정량적 평가를 통해 보상을 나누는 경향이 강합니다. 2. 주요 비판과 쟁점 최근 마이클 샌델 등 석학들은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고 지적합니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과신하고, 실패한 사람은 자책하며 소외감을 느낍니다. 기회의 불평등: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격차를 만들어 결국 '엘리트 세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공정의 착각: 성공에는 운이나 사회적 환경의 도움도 크지만, 이를 무시하고 오직 실력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3. 관련 주요 서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능력주의가 어떻게 공동선을 해치고 '폭정'이 되는지 분석한 책입니다. 능력주의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현대의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방식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비신자에게는 운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나름 성공하더라도 겸손해야 한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
-
【단상】 세월은 빠르다
- 2026년의 2월이 지나가고 있다. 벌써 1월이 사라졌다. 2월은 28일 밖에 되지 않으니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세월은 물살과 같다. 빠르게 흘러간다. 이때 그물을 내려두면 물고기를 건질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넋놓고 있으면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같은 시간을 어떤 사람은 낭비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한다.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의미있는 일을 할려고 노력해야 한다. 1 시간을 10 시간처럼 생산성 있게 살아야 한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세월은 빠르다
-
-
【북토크338】 존엄사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 단식 존엄사는 말 그대로 굶어서 죽는 것이다. 다양한 존엄사 방법이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존엄사가 불법이다. 이 책의 배경인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저자의 모친은 단식 존엄사를 택했다. 의사인 딸의 도움으로 단식의 과정을 잘 거치고 3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도 존엄사가 합법인 국가에까지 가서 죽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실을 반영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 또한 때가 되면 말 그대로 존엄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우리 어머니는 64세에 두 다리를 한데 모으고 서지 못하고, 몸의 쏠림 현상이 생겨 진행성 소뇌실조증 진단을 받았다. 이런 병에 걸리면 동작 간의 조화를 통제해주는 소뇌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 말기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에 누워 생활하게 되고, 구음장애가 생기며,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진다. 말기에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을 나는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요가를 잘했다. 집에서 열정적으로 재활하다가 83세에 몸을 뒤집지 못하고, 음식을 먹을 때 쉽게 사레들리고,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 삶의 의미를 잃고 매일 온갖 불편함과 고통을 견뎌야 하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단식을 통한 자주적인 존엄사를 결정했다(p. 6). 3주 동안 점진적으로 단식을 실행했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어머니를 돌보고 함께해드렸다. 하늘이 도운 덕분에 모두 순탄했다. 어머니는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극락왕생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일련의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안락사 문제에 몹시 관심 있는 듯했다. 하지만 타이완에서 일반 대중은 죽음을 터부시하며, 안락사는 아직 합법이 아니다. 우리와 존엄사의 거리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1. 80퍼센트는 병원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사망한다. 21세기 의학이 각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며 질환 치료율이 대폭 상승하고 인간의 수명도 크게 연장됐다. 그러나 침입성 치료로 인한 고통도 늘었다. 중증 질환을 치료하고도 삶의 질이 낮아진 경우가 숱하다. 반세기 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임종했지만 현재는 80퍼센트가 요양 기관에서 사망한다. 임종자에게 병원은 낯설고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기에 적당치 않은 장소다. 하물며 어떤 환자는 특수병동에 입원해 짧은 면회 시간만 주어지는데 몸에 각종 튜브를 꽂고 있어 말하기도 힘들다. 많은 환자는 말기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의사가 허락하지 않거나 말기 돌봄을 걱정하는 가족 때문에 고통스럽고 한스럽게 차디찬(p. 7)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이 임종 때 삽관, 심장충격기, 심폐소생술CPR과 같은 응급 처치를 받는다. 이러한 '의료사' 과정은 임종을 앞둔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남겨진 사람을 아프게 한다. 2. 사망 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여명이 8년에 달한다. 내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국 평균 수명은 81.3세이고 남성은 평균 78.1세, 여성은 평균 84.7세다. 그런데 사망 전 건강하지 않은 상태(와상 상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보내는 여명이 8.47년에 달한다. 급사 사례를 제외하면 와상 기간이 수십 년에 달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된 왕샤오민은 와상 47년 만에 임종했다. 우리 시아버지와 시숙부님 두 형제는 치매로 인해 누워서 12년을 보낸 후 돌아가셨다. 나는 임신했을 때 안정을 취하느라 집에 누워서만 지낸 적이 있다.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석 달을 보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하루가 일 년 같고 머리는 멍했다. 반신불수로 오랫동안 와상생활을 하는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이제 그만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간병하던 사람은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을 봤으니 다음 대에 똑같이 넘겨주고 싶을 리 없다. 나는 나중에 이렇게 안 사느니만 못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무(p. 8)엇 때문에 국민 수십만 명은 이런 무의미하고 존엄하지 못한 삶 을 살아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서양 선진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타이완과 비슷한 실정이다. 마쓰바라 준코는 『장수 지옥』이라는 책에 이 현상을 담았다. 3. 사람들은 죽음 이야기를 기피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큰일에 대해 미리 의논하거나 당부하지 않는다. 죽음 이야기를 기피하는 일은 인류의 공통된 맹점인 듯하다. 아시아인은 더 심하다.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주제를 부모와 터놓고 말하지 못한다. 화교 중에 자손을 생각하는 마음에 본인의 사후 처리 당부는 하면서, 큰 부상을 입었을 때나 생애 말기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사고는 갑작스레 발생하기 마련인데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게 되면 당황한 가족은 의견이 분분해진다. 소송을 당할까 두려운 의료기관은 환자를 최대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와상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가족들은 나중에야 후회하곤(p. 9)한다. 이런 적도 있다. 방사선과 교수가 세미나 중에 우리 재활학과에 입원한 환자의 뇌 CT를 보고 상황이 안 좋다며 탄식했다. "CT를 보니 나을 기미가 전혀 없네요. 이 환자의 부인은 나이도 젊은데 생과부로 지내야겠군요!" 가족이 살리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한 건지, 외과 의사가 반드시 노력해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평소 죽음에 대해 가족끼리 자주 얘기하고, 의사는 치료 예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관건이다! 4. 당사자가 존엄하지 못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더라도 가족이 꼭 그 바람대로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위독해지면 중환자실에 보내지 말고, 어떤 튜브나 의료기기로 연명치료를 하지도 말라고, 차디찬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더 싫다는 의사를 살아 있을 때 분명히 밝혀두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인투베이션, 심장충격기, 비위관, 도뇨관 같은 것을 모조리 거부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혔(p. 10)을지라도 여전히 그를 깊이 사랑하는 가족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했음에도 가족들이 다른 의견을 내비치는 바람에 의사가 어쩔 수 없이 무의미한 의료를 하는 경우가 있다. 보험금이나 퇴직 연금 때문에 어르신의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거부하며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5. 안락사를 위해 원정 가는 일은 비인간적이다. 췌장암에 걸린 푸다런 선생은 담낭을 절제하고 위도 절반이나 절제한 탓에 소화 능력이 떨어져 무엇을 먹어도 고통스러웠다. 푸 선생은 총통에게 안락사법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총통부에서는 호스피스 도움을 받도록 해줬다. 하지만 완화의료를 받았음에도 고통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의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나는 푸 선생에게 며칠만 단식을 하면 스스로 안락사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디어에 나온 푸 선생은 정신이 또렷해 보였다. 사명감을 갖고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안락사를 공론화하려는 듯했다. 법치, 민주,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에 이러한 정책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 우리 나라(p. 11)도 신중히 관련 법률을 입법해 국민을 위해줬으면 하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후 푸 선생은 먼 스위스로 건너가 평가를 받고 안락사했다. 경비가 만만치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6. 장기 간병으로 심신이 지친 나머지 가족을 살해하고 양심과 법의 제재를 받는 상황은 인간 지옥이다. 원린현 더우류시에서 2021년 8월 반인륜적인 비극이 일어났다. 교통사고로 인해 오랜 병을 앓던 장 씨는 세상에 적대심이 생긴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아버지에게 조력자살을 부탁하고 유서를 남겼다. 장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아들을 칼로 찔러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 했다. 원린지방법원은 자살방조죄로 장 씨 아버지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집행유예 기간에 보호관찰을 선고했다. 전에도 어떤 남편이 장기 와상 환자인 아내를 살해한 비극이 있었다. 이런 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간병을 하는 사람과 간병을 받는 사람에게는 살든 죽든 인간 지옥이 따로 없다. 이런 상황은 점차 늘고 있어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다. 7. 의사는 사망을 의료 실패로 여겨 무의미한 의료가 이뤄진다. 의료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고통스럽지만 치료 효과가 없는 질환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치료를 포기(p. 12)할 권리가 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환자, 심지어 의료인조차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확률은 50퍼센트 이하다. 그래도 한번 부딪혀보고 싶어한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시작 하면 사망해서야 퇴원한다. 가족들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몸이 불편해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암 말기였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요양 하던 몇 달 내내 힘이 조금 없을 뿐 크게 불편하지 않아 진통제도 필요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는 소파에 기댄 채 나와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기도 했다. 떠나기 하루 전에는 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음식을 못 먹더니 다음 날 평온히 눈을 감았다. 이 것이 의료의 개입이 없는 전통적인 자연사다.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현재 중환자실에서 20퍼센트에 이르는 자원이 무의미한 의료에 사용되어 건강보험 부담을 높이고 다른 환자들이 응급 처치 받을 기회를 간접적으로 박탈하고 있다(p.13). 8. 삶의 의미를 잃고 고통만 남았을 때, 자주적 존엄사의 권리는 엄격한 법률의 제한을 받는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불의의 사고와 각종 질환 그리고 의료적 개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을 잃고, 반신불수가 되고, 생명유지장치에 기댄 채 살아가도록 만든다. 삶에 고통만 남은 채 아무 즐거움 없이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부담만 줄 때, 우리에게 자주적으로 존엄사할 권리가 있을까?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반대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주적 권리까지 제한할 자격이 있는가? 얼마 전 통과된 '환자 자주 권리법'은 어떠한 상황이 됐을 때 환자는 치료 거부, 응급 처치 거부, 자주적 존엄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음을 규범화했다. 그러나 20세 이상의 온전한 행위능력이 있는 일부 질환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정부가 정한 범위는 합당한가? 빈틈없이 고려되었는가? 사람들에게는 왜 스스로 선택할 완전한 자유가 없는가? 위와 같은 이유를 바탕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행한 자주적 단식 존엄사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국민이 평소에 가족과 존엄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도록 환기하고자 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민간 조사도 있었다. 정부가 하루 빨리 완벽한 대책을 강구해 '존엄사법'이 통과되도록 국민 여러분이 열정적으로 독려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태(p. 14)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죽음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통 없이, 존엄하게 자연사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이다(p. 15). 어느 날, 어머니는 가만히 앉은 채 평생 한 적 없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분은 한 번도 '루이야! 이리 와봐'라고 한 적이 없었어." (루이는 어머니의 아명이었다.) 나는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누가?" "네 할아버지 말이야!(p. 142). 어머니는 푸념했다. "우리 아버지는 날 딸로 생각 안 했어. 큰언니랑 큰오빠만 예뻐했지. 중학교 졸업 전에 우리는 남이나 다름없어서 난 아버지에게 말도 못 걸었고 아버지가 염라대왕 같았어. 졸업하고 나서는 돼지 두 마리를 돌봐야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일을 제대로 못 해서 돼지가 안 큰다고 하루 종일 혼냈어. 근데 난 아버지 안 미워해. 왜냐면 아버지는 하늘이고 난 땅이거든."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노년에 투병생활 하실 때 엄마가 제일 자주 찾아 뵀잖아. 할아버지는 엄마가 제일 효녀라고 하셨어. 아마 하늘에서 후회하고 계실걸. 엄마한테 잘 좀 해줄걸, 하고." 이런 위로의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증조할머니가 된, 나이 든 여든셋의 어머니가 떠나기 직전까지 유년기에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니 깜짝 놀랐다(p. 143)
-
- 오피니언
- 칼럼
-
【북토크338】 존엄사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
-
【단상】 무례한 사람들①
- 구굴은 무례(無禮)란 “(사람이) 예의가 없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의가 왜 필요한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빨가벗고 살든, 아무데서나 똥오줌을 놓든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야하기 때문에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불편한 것이 있다. 나중에 좌석에 앉는 사람이 무조건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양쪽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가운데 자리가 비면 나는 의자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중간쯤에 앉는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운데 자리를 밀고 들어온다. 양쪽 사람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불편한다. 그런데 나처럼 가운데 자리에 앉을 때 양 편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리가 비면 산모를 위한 여성 좌석 옆에 앉는다. 이 자리에 산모가 앉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한쪽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좁은 지하철 좌석인데 겨울이라 모두 두꺼운 옷을 입어 더 비좁은데 제발 가운데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앉지 마시기를.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으니.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무례한 사람들①
-
-
【단상】 아내와 보리굴비
- 취재 가서 보리굴비를 먹게 되었다. 보리굴비는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먹는데 아내 생각이 났다. 30년을 함께 산 내 반려자. 이제 아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먹으면서 목이 메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보리굴비 먹은 것을 말하고 보리굴비를 주문해 먹으라고 했다. 이때 아내 왈 “이제 보리굴비 별로 안 좋아해” 헐!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아내와 보리굴비
실시간 칼럼 기사
-
-
【단상】 톱도 악기다
- 아주 가끔 행사장에서 톱 연주를 듣는데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모처럼 톱 연주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쓰는 작업용 톱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톱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우연히 옆에 놓인 톱으로 소리를 내다 악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목재를 자르는데 사용되는 톱이 악기가 되기 위해선 톱을 악기로 보고 연주를 시도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톱이 악기로 쓰여지듯 부족한 나도 부족한 대로 주님의 손에 쓰임 받기를 바란다. 그러면 생각지 못한 음을 내는 톱과 같은 악기가 될 것이다(위 동영상 톱 연주자는 엄정철 장로).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톱도 악기다
-
-
【단상】 꽃과 벌 · 나비 · 똥파리
- 옥상 장독대에 있는 화분에 심은 부추가 꽃을 피웠다. 처음 보는 작고 흰 아름다운 꽃이다. 음식의 부재료인 부추가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니 참으로 경이롭다. 꽃이 피자 꽃 향기를 맡고 벌이 왔다. 그리고 나비도. 그런데 불청객 똥파리도 왔다. 꽃을 찾은 벌을 사진 찍고 동영상 촬영했다. 모처럼 만난 나비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똥파리는 내쫓았다. 감히 신성한 꽃에 똥파리라니. 이 세상에는 꽃과 같은 사람이 있고 그 주위에는 벌과 나비같은 유익하고 좋은 사람도 모이지만 똥파리같은 인간도 모인다. 똥파리같은 인간이 너무 많다. 인간 똥파리를 멀리하자. 꽃의 가치가 사라진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꽃과 벌 · 나비 · 똥파리
-
-
【단상】 손절이 늘어난다
- 손절(孫絕)이란 “'손을 끊는다'는 의미로 생각하여 사람 간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절교'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경제용어인 '손절매'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한다. 살아가면서 손절할 대상들이 늘어난다. 겪어보니 “더 이상 상종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서글프지만 멀리해야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반면 또 가까이 할만한 사람들도 늘어간다. 유유상종이 되는 것이다. 만나면 해가 될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사람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하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반복적인 실수와 잘못을 용납하다보면 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 단호히 연을 끊고, 절교하는 게 답이다. “걸레는 빨아도 역시 걸레다.”
-
- 오피니언
- 칼럼
-
【단상】 손절이 늘어난다
-
-
목사인가? 기자인가? 양아치인가?
-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전과자는 동종 범죄를 반복한다. 그래서 어떤 범죄가 벌어지면 동종 범죄 전과자를 조사하게 된다.” 한석지 증경총회장께서 계셨던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다가 15년 만에 사임하고 어쩌다 교계 기자로 살다보니 과연 그런 것 같다. 똑같은 취재비 착복, 슈킹 사건이 똑같은 기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아는 기자와 한 행사를 취재하러 갔다. 취재 후 기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우리 교단 한 기자가 “오늘 취재비는 없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소동이 일었다. 초교파 기자들은 행사장 이곳 저곳을 다니며 관계자들을 만나 결국 취재비를 받아냈다. 본 기자는 행사의 주인공이 아는 분이라 기사를 써서 보내 취재비를 주면 좋고 안 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같이 간 아는 기자가 행사 주인공을 찾아 가자는 것을 혼자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 교단 기자들을 위해 이미 취재비를 “오늘 취재비는 없다고 합니다”라고 발언한 기자에게 전달했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기자에게 전화하자 막 차를 타고 출발(도망?)하려다가 내려서 아는 기자와 본 기자에게 썩은 얼굴을 하며 마지못해 취재비를 주고 갔다. 또 당할뻔했다. 이미 이런 일로 유명한 자였는데 방심했었다. 아는 기자가 취재비를 전달한 당사자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취재비를 또 잃을 뻔했다. 역시 전과자는 똑같은 죄를 짓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또 다른 교단 기자도 이 일에 있어서는 두 번째라면 섭섭해 할 사람이다. 어느 모임에서 담당자에게 기자 참석자 숫자를 말해 다 받은 후 몇 기자에게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다 “인마이 포켓”했다는 말이 들린다. 이를 알게 된 다른 기자들은 “이번에는 가만 안 두겠다”고 하는데 과거에도 결국 유야무야했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 교단 목사 기자들 중에는 손버릇이 나쁜 자들이 있다. 그들이 목사인지, 기자인지, 양아치인지 그 정체가 궁금하다. 그러면서 가장 깨끗하고 정의로운 척하고 있으니 역겹다. 왜 연합 단체에서 취재비를 현장에서 주지 않고 기사를 보내주면 계좌로 보내주겠다고 하는가? 이 조치가 여러 단체로 확산하고 있다. 처음 한 곳은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7월 월례회였다. 순서지에 “기자분들의 교통비는 기사 확인 후 회계부에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돈을 줘도 기사를 쓰지 않거나, 성의 없이 쓰거나하기에 고육지책으로 이렇게 한 것으로 본다. 또한 기자 한 명에게 맡기면 배달사고가 빈번하기에 번거로워도 이렇게 한 것으로 본다. 두 번째로는 전국장로회연합회에서도 계좌송금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아치 짓은 반복되고 있다. 양아치는 “품행이 불량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교단 목사 기자들도 총신신대원은 나오지 않았는가? (본 기자가 1989년에 입학했을 때는 같은 총신신대원에도 과정이 다양했다. 정규과정 M.div. 외에도 알지 못하는 여러 비인가 과정이 있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다같이 목사이다.) 학교 교훈이 무엇인가?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목사라고 하면서 양아치가 돼서야 되겠는가? 법적으로 아직 처벌 받지 않아 동종 범죄를 버젓이 반복하는 그런 교단 기자들을 볼 때마다 저들이 “목사인가? 기자인가? 양아치인가?”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교단을 위해 양아치 목사 기자를 정리할 때가 됐다!
-
- 오피니언
- 칼럼
-
목사인가? 기자인가? 양아치인가?
-
-
【7천만원게이트③】 팩트를 감추려는 언론vs드러내는 언론
- 본 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제110회 총회 임원 A입후보자의 7000만원 게이트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최근 이 입후보자는 후보 등록했으나 선관위는 7000만원 건으로 후보 확정 보류하고 계속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7000만원 건이 공론화 되었기에 이제 부터는 A입후보자의 실명을 사용코자 한다. A입후보자는 바로 고광석 목사이다. 최근 기독교종합신문의 박기성 기자가 선관위 심사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정영교 목사의 고발장에 관해 정확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① 천안중부교회가 올린 내용, ② 짜리시 수준의 인터넷 언론, ③ 미확인된 소식을 보도한 언론' 등을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박기성 기자는 "짜리시 수준의 인터넷 언론"이라는 말을 했다. "짜리시 언론"은 처음 들어본다. 찌라시겠지! 이 언론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으나 본 언론이 이 건을 다루고 있으니 본 언론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갈 것 같다. 과연 누가 진짜 짜리시(찌라시) 언론인지는 상식적인 독자들이 판단할 것으로 보며, 본 기자가 7000만원 게이트와 연관해 경험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난 2023년 108회 총회(총회장 오정호 목사) 때 있었던 일이다. 삼 일째인 9월 20일 저녁 시간에 언론사 스마트에프엔이 처음으로 7000만원 뇌물 수수 사건 기사를 올렸다. 총회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인 목요일 총회 파회 후 박기성 기자가 남아 있는 교단 기자들을 새로남교회의 한 장소로 소집했다. 그는 “우리는(유성헌 목사 포함) 이번 총회에 와서 돈을 모았는데(벌었는데?) 다른 기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모은(벌은?) 돈을 나눠주겠다”라고 했다(몇 년 지나 정확한 워딩이 아닐 수 있으나 의미는 같다). 그리고 모인 몇 명의 기자들에게 15만 원씩(액수가 확실하지는 않으나 맞을 것이다) 나눠줬다. 고마웠다. 사실 3박 4일간 열심히 총회를 취재했지만, 노력 봉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참(?) 기자들이 돈을 나눠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박기성 기자가 “어제 뉴스가 나온 7000만원 건은 교단의 망신이니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 귀로 흘려들었다. 문제는 다음에 생겼다. 본 기자는 다음 날인 금요일 아내와 함께 베트남 다낭으로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미리 여행을 갔다. 가서 ‘천안중부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7000만원을 받고 개입해서 된 것’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해 단톡에 올렸다. 그러자 곧 박기성 기자가 카톡으로 “7000만원 건은 언급하지 않기로 했는데 왜 썼느냐”라고 했다. 순간 “아차” 했다. 돈을 주며 한 말이 떠올랐다. “아! 이게 덫이었구나”라고 깨달았다. 결국 기사를 수정해 7000만원 내용을 삭제해야했다. 두 번째는, 2년 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4일 총회 회관에서 소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교단언론사 협의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본인의 신문사 기사에서 밝힌 대로 이날 모임은 박기성 기자가 주도했다. 이 모임에서 ‘합동 목사기자단’의 운영을 위한 다짐도 의결했다. 이때 잊혀졌던 7000만원이 또 언급됐다. 모임을 주도한 박기성 기자가 “이번 총회 선거에서 7000만원 건은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에 본 기자는 즉각 “그것은 언론사 재량이며 나는 그 문제를 다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2년 전 기자들에게 돈을 나눠줄 때 함께 했던 유성헌 기자가 “그 건은 이미 법적으로 종결된 것이기에 다루면 처벌받을 것이다”라고 해 나중에 확인해 보니 수사 진행 중이었다. 2년 전 7000만원 건에서 등장했던 두 명의 목사 기자가 2년 후 7000만원 건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왜 그런가? 왜 동일한 두 언론사 기자이며, 똑같은 7000만원 건인가? 만약 기자단 모임에서 본 기자가 7000만원 건을 다룰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본인은 그에 관한 기사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번 당했기(?) 때문에 그 덫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 기자는 얼마 있다가 그 ‘합동 목사기자단’에서 유일하게 탈퇴했다. 결국 지난 7월 23일 7000만원 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천안중부교회 교인들이 고광석 목사에 대한 7000만원 수수 의혹조사촉구를 위해 총회에 올라왔고 본 기자만 이것을 취재했다. 본 기자는 그동안 천안중부교회와 관련한 기사를 수십 건 썼고, 7000만원 건에 연루된 고광석 목사와 이00 목사에게 소송도 당했기 때문에 "동병상련" 입장이다. 다른 기자에게 공동 취재를 권했지만 “그동안 천안중부교회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없는데 갑자기 다루는 것이 부담된다”라고 하며 사양했다. 그리고는 박기성 기자가 본 기자를 저격하기 위해 ‘이단 집회 참석하여 금품 수수한 교단 목사’란 기사를 7월 31일 게재했다. 이에 본 기자는 8월 1일 ‘기독교종합신문 박기성 기자의 거짓 기사에 대한 반박’ 기사를 올렸다. 박기성 기자는 본 기자에 관한 기사를 쓰고 카톡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다른 유튜버 기자를 통해 캡처한 사진을 보냈다. 곧바로 기독교종합신문 사이트를 확인했지만, 기사는 올라와 있지 않았다. 한때 박기성 기자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박기성 기자는 먼저 기사를 작성하고 캡처해서 상대방에게 보내 딜을 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 기사를 올리지 않고, 뜻대로 안 되면 기사를 올린다. 결국 나를 협박하기 위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방법을 사용한 것이고 나는 반박 기사를 올리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 관한 음해성 기사를 내리지 않고 있기에 언젠가 때가 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7000만원 건에 연루된 누군가는 이것을 감추려고 하고 어느 언론들은 이 일에 동조하고 있다. 이 언론들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금품수수로, 합동 목사기자단 조직으로, 음해성 기사로, 밴드 퇴출로(최근 임원 후보자 지지에 대한 이견으로 모 밴드에서 퇴출당했다.) 2년 전 선관위원이 연관된 1000만원 게이트로 총회가 얼마나 시끄러웠고 교계 언론들이 얼마나 떠들었던가? 그에 비해 7배나 많은 7000만원 게이트가 수면에 떠올랐는데 참으로 조용하다. 오히려 이것을 언급하는 본 기자에 대해 다른 교계 언론들이 합세해 공격하고 있다. 물론 각 언론사가 어떤 건을 쓰느냐 안 쓰느냐는 각 언론사의 재량이다. 본 기자도 모든 문제를 다루지는 않으니 말이다. 팩트를 감추려는 자와 이에 부역하는 언론과 그것을 드러내려하는 언론의 대결은 피할 수 없다. 독자들인 목사, 장로의 현명한 판단을 믿어본다. 누가 과연 짜리시(찌라시) 언론인가?
-
- 오피니언
- 칼럼
-
【7천만원게이트③】 팩트를 감추려는 언론vs드러내는 언론
-
-
총회임원 입후보 예정자, 학위 기재 주의 사항
- 벌써 다음주 8월 초면 110회 총회 임원 입후보 예정자들이 등록해야한다. 이때 이력서를 제출하는데 자신의 학력을 제대로 표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력위조(學歷僞造)”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학력위조란 “부당한 이익을 위해 자신의 학력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B.A.는 학사로 정규대학을 졸업했을 때 받는 학위다. 학사 학위(Bachelor's Degree)는 일반적으로 4년제 대학에서 받는 학위를 의미한다. 문학사(B.A.)는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등에 중점을 두고, 이학사 (BS)는 과학, 수학, 공학 분야에 중점을 둔다. M.Div.는 목회학 석사(Master of Divinity)의 약자로,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 석사 학위 과정이다. 주로 목사 안수를 받거나 교회 및 관련 기관에서 사역하기 위한 필수적인 교육 과정을 포함한다. M.Div.(Equiv.)는 신학 석사 (Master of Divinity)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로 신학대학원에서 정규 M.Div. 과정이 아닌 다른 과정을 이수했지만, 학문적 내용이나 교과 과정 측면에서 M.Div.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받을 때 사용된다. 특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등 일부 학교에서 M.Div. 학위 대신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한 경우, M.Div. 학위는 아니지만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M.Div. (Equiv.)라고 표기한다. 과거에는 M.Div. 정식 학위 과정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많았고, 이들을 M.Div. (Equiv.)로 표기했다. M.Div. (Equiv.)는 공식적인 학위는 아니지만, 학문적 수준이나 교육 내용 면에서 M.Div.와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M.Div. (Equiv.)과정을 한 사람이 M.Div.라고 표기하면 학력위조가 된다. M.A.는 Masters of Arts 라는 뜻으로 보통 인문과학 계열 전공과목에 붙는 학위명이다. Th.M. 신학 석사로서 MTh 또는 MTheol, 또는 Sacrae Theologiae Magister 약칭 STM으로 기재한다. 이 학위는 특정 교육 배경과 연구 기관에 따라 박사 과정 입학을 위한 전환 학위 또는 단독 최종 학위로 사용될 수 있다. 북미에서 신학 석사(Th.M.)는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에 입학하기 위해 최소 3년의 필수 대학원 과정을 요구하며, 일반적으로 신학 석사 또는 이와 동등한 학위이다. Ph.D.는 철학 박사(Doctor of Philosophy)의 약자로, 학문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학위를 의미한다. 이는 특정 분야의 연구와 학문적 기여를 인정받아 수여되는 학위로 Ph.D. 또는 PhD로 표기하며, 마침표 유무는 국가별 관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PhD는 특정 학문 분야에서 연구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수여되는 최고 수준의 학위로서 학문적 연구와 독립적인 연구 수행 능력을 요구하며,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야 한다. D.Min.은 목회학 박사로 독창적인 연구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목회자가 목회 활동을 병행하면서 취득할 수 있다. 이 학위는 종교적 리더십, 교육, 그리고 목회 학문을 준비하는 박사 학위로 분류된다. Th.D.는 신학박사(Doctor of Theology)의 약자로, 신학 분야에서 연구 중심의 최고 학위이다. 신학 분야에서 학문적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학위이며, 주로 목회자나 신학 연구자들을 위한 학위 과정이다. Honorary Doctorate는 명예박사로서 대학이 자체적으로 평가했을 때, 우리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특수한 기여를 했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특수한 공적을 나타낸 자에게 수여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바지하거나 대학에서 인정할 만한 탁월한 공적을 세운 이들이 대상이 된다. 명예 박사 학위의 영문 표기는 일반적으로 "Honorary Doctorate" 또는 "Doctor of (Field) (Honoris Causa)"로 표기한다. 여기서 "Field"는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분야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명예 법학 박사 학위는 "Doctor of Laws (Honoris Causa)"라고 표기한다. "Honoris Causa"는 라틴어로 "명예를 위하여"라는 뜻으로, 명예 박사 학위임을 명확히 한다. 명예철학박사는 영문으로 Ph.D honoris causa로 표기해야 하며 이때 Ph.D라고만하면 학력위조가 된다. 학위는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다. 심지도 않고 거둘려고 학력을 위조하면 명예를 얻을려다가 패가망신 당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라면 목회만 잘 하면 되지 부정한 방법으로 명예까지 탐하다 지탄을 받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짜 박사가 목사들에게 많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
- 오피니언
- 칼럼
-
총회임원 입후보 예정자, 학위 기재 주의 사항
-
-
‘기자분들의 교통비는 기사 확인 후 송금합니다’
- 드디어 교계 기자들에게 올 것이 왔다! 7월 24일 모인 제55회기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7월 월례회 순서지에 “기자분들의 교통비는 기사 확인 후 회계부에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왜 이런 특단의(?) 조치를 했는가? 첫째, 작은 행사에도 기자들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이다. 현재 교단 안에 목사 기자들은 15명 가량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을 출입하는 초교파 기자들도 여럿있다. 그러다보니 행사장마다 기자가 너무 많이 온다. 그래서 아예 기독신문 등에 광고하지 않고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자들이라면 넌더리를 치는 목사와 장로들이 많다. 교통비(취재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사장에 와서 교통비를 받아가서는 기사를 늦게 올리거나 부실하게 올리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여러 언론사의 기사를 받아보면서 서로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기사의 내용에 따라 차등 지급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실 본지는 기사를 일찍 올리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예 다른 언론이 본지의 기사를 베껴서 기사를 올리는 경우도 봤다. 물론 몇몇 언론사와는 기사 협약을 해서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언론들도 무단으로 베끼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러면 결국 2류 기사, 짝퉁 기사밖에 안 된다. 기자 입장에서 봐도 심각하고 한심하다. 둘째, 배달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자기가 기자들 여비 관리를 하겠다고 하고 받아가거나, 주최측에서 관리해 달라고 믿고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배달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다른 기자들에게 취재비가 전달되지 않거나 액수를 줄여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여러번 문제가 됐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처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면 배임행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본 기자도 다른 기자들에게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했다. 그래서 이전부터 해당 부서 회계에게 기자들에게 개별로 주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이제 회계부가 사후 통장으로 개별 입금하면 이런 배달사고는 없어질 것이다. 차제에 모든 부서가 기사 후불제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기사 올리는 속도도 빨라지고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기사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단체도 있다. 본 기자도 고정적으로 출입하는 곳이 있는데 다른 기자의 2배를 받고 있다. 내 기사와 다른 기사를 비교해 그렇게 대우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더 열심히 취재 한다. 그리고 빈번한 배달사고도 근절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기자들의 자업자득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 기자들이 상대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호락호락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단지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오피니언
- 칼럼
-
‘기자분들의 교통비는 기사 확인 후 송금합니다’
-
-
북토크의 호응에 감사드리며
- 북토크 기사가 251건이 되었다. 251권의 책을 다뤘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니 2023년 1월에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어느 날 많은 책을 읽지만, 잊히는 것이 아쉬워 내 신문 사이트에 북토크라는 섹션을 만들어 기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간단한 평과 중요하게 생각되는 내용을 발췌해 실었다.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보기 위해서이다. 북토크 기사는 기회를 봐서 단톡에 올리는데 올리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있다. 종종 북토크를 잘 보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 데 보람을 느낀다. 우선은 소소하게 500권을 기사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물론 독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천 권도, 만 권도 가능할 수 있다. 독서가 취미인 것이 너무 감사하다. 편리하게 도서관에서 대출해 볼 수 있는 시스템도 너무나 좋다. 취재하러 갈 때마다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열심히 읽고 있다. 책 읽는 게 참 좋다. 수십 년 독서 인생이다. 책을 써주는 모든 저자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꾸준히 북토크 섹션을 찾아주는 모든 분에게도 감사드리고 우리 모두 열심히 독서하자고 격려하고 싶다!
-
- 오피니언
- 칼럼
-
북토크의 호응에 감사드리며
-
-
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잘 활용하시길
-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소식을 접한다. 개인 간 소식을 나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 그것이 방송이든, 신문이든, 포털이든 접하는 모든 소식에는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다. 기자(記者)는 누구인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쓰는 사람이다.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들으며 취재한다. 이후 이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기자이기에 수많은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행사 기사의 특징은 내용이 자세하고, 사진을 많이 올리며 동영상을 첨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사를 글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잘 남기기 위해서이다. 글만으로는 부족해서 사진을 첨부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동영상까지 촬영해 기사에 첨부하는 것이다. 신문 기자든 방송 기자든 와서 행사를 취재하지 않고 보도해 주지 않으면 행사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사를 취재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고 등으로 알려진 행사에는 기자들이 취재하러 간다. 그렇다면 기자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행사를 잘 취재해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단회적으로 하고 잊혀져도 될만한 수준의 행사라면 취재와 보도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인터넷 신문을 관리하는 섹션에 가면 각 기사에 대한 조회수가 나온다. 어떤 기사는 수천 명이 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각 기사를 수백 명이 본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있다. 준비하는 데 노력했고, 또 남들에게도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라면 적극적으로 기자를 잘 활용해 기록하고 홍보하도록 하자. 적은 비용으로 큰 홍보 효과를 보게 된다. 나도 구두 계약을 통해 몇 년간 고정적으로 취재하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언론의 홍보 효과를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기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사가 잊힐 수도 있고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자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록으로 남길만한 행사를 하시기 바란다.
-
- 오피니언
- 칼럼
-
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잘 활용하시길
-
-
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 매년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끝날 때 결의문을 채택한다. 올해도 그랬는데 역시나 장로들은 목사들의 정년제 연장을 적극 반대했다. “우리는 항존직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우리 교단은 헌법에 항존직 정년을 70세로 명시하고 있다. 급변하는 AI시대에 걸맞게 젊고 열정이 있는 목회자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이것을 가리켜 혹자는 노(장로)사(목사)갈등이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목사 중에는 연장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 109회 총회에서 잠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로들의 벌떼 같은 항의로 곧 무효가 됐다. 올해도 정년 연장안과 고수안이 헌의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목사들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매년 연장안을 올리고 거기에 목을 매달 것인가? 사회 통념상 보면 70세까지 목회하는 것은 많이 하는 것이다. 젊어서 개척한 경우는 30년, 40년 목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40대 후반에 담임으로 나가는 지금 현실에 부임하면 25년 정도 목회를 한다. 그러면 일반 직장인 보다 많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교단마다 정년이 없거나 긴 경우도 있으니 70 정년제에 해당하는 목사들은 이래저래 심난할 것이다. 목사는 70이 넘어서도 더 목회하고 싶고, 장로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매년 총회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이는데 올해도 재탕이 될 것 같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해법은 그 어디에 있는가? 뭐든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과거 정년제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왜 그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한 이 노사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노년 정년 연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 글의온도 · 2025년)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p. 176-177).
-
- 오피니언
- 칼럼
-
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