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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 격 떨어지는 목사들
    조직교회 담임목회하다 15년 만에 접고, 교계기자가 되어 많은 목사들을 보게 된다. 이때 격 떨어지는 자들도 많이 본다. 격(格)이란 ‘사람의 수준’을 말한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의 교훈은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이다. 여기에 첫 번째로 “인격자가 되라”를 첨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도 취재 가서 격 떨어지는 목사들을 봤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까마귀가 출몰하니 어쩌란 말이냐! 목사이기 전에 먼저 인격자가 되라. 아니 먼저 인간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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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8
  • 천안중부교회를 통한 교훈...“이권”에 개입하지 말라
    최근 대전고등법원 제2민사부는 충남노회 재판국이 2022년 3월 31일 김종천 목사에게 내린 면직 및 수찬 정지 판결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해 반대 측이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지만 뒤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제 김종천 목사의 재판은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긴 교회 분쟁에 많은 기사를 썼던 본지는 감회가 남다르다. 중간 결산하는 마음으로 천안중부교회 분란에 개입했던 인사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 고00 목사: 고00 목사의 7000만원 수수건에 대해 교인이 고발한 건을 기사화했을 때 고00 목사와 이00 목사는 본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민형사 고발했으나, 결국 무혐의 처리됐다. 고 목사는 7000만원 수수건으로 인해 야심차게 출마한 부총회장 선거에서 탈락됐다. 2) 서00 목사: 서00 목사는 전남노회 석상에서 벌인 난동으로 인해 면직됐고, 함께 동조한 박00 목사는 제명출교 처리됐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공론화 되지 않은 가운데 서00 목사는 선관위의 부실 검증으로 부서기에 당선됐고, 이후 그는 측근 박00 목사를 천안중부교회 임시당회장으로 보내고 곧 공동의회를 통해 위임청빙하더니 작년 12월 25일 성탄절 저녁에 여러 총회 임원들이 순서를 맡은 가운데 위임식을 했다. 3) 장00 목사, 안00 목사, 김00 목사: 제명출교 되어 자격 없는 박00 목사를 위임식하는 국장을 총회 임원 안00 목사가 맡았고, 장00 목사는 설교했고, 김00 목사는 축사했다. 이들은 고발되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분쟁하는 교회에 개입했다는 것이며 그로인해 큰 댓가를 치뤘거나 치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분쟁하는 교회에 개입하는가? 왜 위임된 권한을 가진 자들이 불법에 동조하고 앞장서는가? 이권에 직접 개입했거나, 이권에 연관된 자들에게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제 김종천 목사의 담임목사 지위가 최종 확정되면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관된 자들은 목사로서의 명예가 짓밟힐 것이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더 큰 것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함부로 분쟁 교회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잘못된 편에 서서 이권을 챙겨서는 안 된다. 언젠가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 다 드러나고 그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분쟁 중인 북일교회도, 평택제일교회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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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6
  • 【단상】 꼴보기 싫은 인간들
    '꼴'은 주로 '사물의 모양새'나 '사람의 행동'을 뜻하며, 일상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살다보면 꼴보기 싫은 자들이 있다. 안 보고 사는 것이 상책이다. 똥은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 피하는 것이다. 똥 묻지 않도록 꼴보기 싫은 자들을 멀리하며 살고자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으로 똥같은 인간들이 많아 가끔은 똥물이 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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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5
  • 【단상】 외로움과 고독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
    나이 먹을수록 고독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AI에 “고독과 외로움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에 대해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외로움과 고독의 가장 큰 차이는 '자발성'과 '감정의 상태'에 있습니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1. 비슷한 점 (공통점) ▲혼자라는 기반: 두 감정 모두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으로 타인과 분리되어 홀로 있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보편적 인간 실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본질적인 감정입니다. ▲외형적 유사성: 제3자가 겉보기에 혼자 책을 읽거나 카페에 앉아 있는 행동은 외로움 때문인지, 고독을 즐기는 것인지 쉽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2. 명확한 차이점 ▲자발성과 통제력: 외로움은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을 때 느끼는 수동적인 아픔입니다. 반면 고독은 방해받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능동적인 상태입니다. ▲내면의 풍요로움: 외로움은 '내 존재의 결핍'을 느끼며 타인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정신적 에너지를 채워나갑니다. ▲환경의 영향: 외로움은 주변에 군중이 많아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깊어집니다. 반면 고독은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본인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자아와 대면하는 순간에 완성됩니다. 외로움이 타인과의 연결을 원하는 ‘결핍의 신호’라면, 고독은 나 자신과 깊어지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조사해 보니 위로가 된다. 살아갈수록 맘에 드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그런 사람들과 굳이 함께하거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내게 남은 인생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고독한 삶을 살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내게는 가족, 특히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좋고, 서로 대화가 통하는 대상이 적어도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언젠가 사별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래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다. 아내 없는 삶은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아내도 자기가 나보다 먼저 죽겠다고 하고 때로는 같은 날 죽자고 한다. 아이고야. 서로 사별의 아픔을 겪지 않을려고 애쓴다. 나는 피동적으로 외롭지 않고, 능동적으로 고독할 뿐이다!! 결국, 인생은 독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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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4
  • 【총회단상10】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에 대한 AI답은 다음과 같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라는 대사로 유명한 이 말은 2016년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에서 아역 배우 김환희(효진 역)가 아버지 곽도원(종구 역)에게 소리치는 최고의 명대사입니다. 정작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집착하거나 갈팡질팡하는 상대방을 타박하고 답답해할 때 쓰는 전라도 사투리 표현입니다. 이 대사는 영화 개봉 이후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패러디되며 대중적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화 속 실제 상황과 의미맥락: 작중 의문의 외지인에게 해를 입고 고통받는 딸 효진에게, 사건의 본질을 모르는 아버지가 이것저것 캐묻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절규하듯 내뱉는 장면입니다. 세태어로서의 확장: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거나, 결정 장애를 겪는 대중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표현으로도 자주 인용됩니다. 총회에서 활동하거나, 할려고 하는 목사, 장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뭣이 중헌디?” 도대체 무엇할려고 총회 활동을 할려고 하는가? 말로는 총회를 섬긴다고 한다. 그러면서 총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많다. 총회 출입하는 자들 중에 자기 욕망이 충만한 자들이 있다. 자기 욕망을 위해 교회, 노회, 총회를 어지럽힌다. 그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당신 욕망이 그렇게도 중한가? 그 야망을 위해 교회와 노회, 총회를 이처럼 능멸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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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4
  • 【총회단상9】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행8:20 제111회 총회 선거 입후보 예정자들은 비교적 깨끗하게 선거운동하고 있다. 대부분 돈을 뿌리지 않는다. 총회 선거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돈 선거가 되어야 하며, 언제까지 돈으로 표를 사야하는가? 세상에서 “고무신 선거”와 “막걸리 선거”는 이미 다 사라졌다. 사회에서도 돈으로 표를 매수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총회 정치꾼들은 선거철만 되면 혈안이 된다. 후보들에게 전화해 “내게 몇 표가 있으니 돈 가지로 나와서 밥 사고 교통비를 내라”고 하는 꾼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과연 그들이 제대로 된 목사와 장로인가? 총회를 망치는 작자들 아닌가! 여차하면 실명을 거론할 것이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구태를 벗어나기 바란다. 시몬은 돈으로 성령의 권능을 살려고 하다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는 책망을 들었다. 총회 선거철에 돈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꾼들이 있거나, 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라도 표를 살려고 하는 후보자들이 있다면, “모두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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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8

실시간 칼럼 기사

  • 문해력(文解力)의 위기
    문해력(文解力) 또는 독해력(讀解力)은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즉 음성적 읽기를 넘어 의미적 읽기까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이 문해력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기사와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에 잘 쓴 기사가 있어 읽은 후 전문을 인용 소개한다. “쌤, 무슨 말이에요”… ‘불통’에 갇힌 교실[아이들의 문해력이 위험하다] “선생님, ‘완강하다’는 ‘완전 강하다’ 아닌가요?” 수도권 고등학교의 한 영어 교사는 최근 고교 3학년 수업에서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 ‘완강하다’가 ‘완전 강하다’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은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 “‘모색한다’는 ‘색깔을 따라 칠한다’는 뜻인가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이 교사는 “내가 영어 교사인지 국어 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한 글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글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올 2학기가 시작된 8월 중순부터 지난 6일까지 전국 초중고교 교사 2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생 조사를 병행한 결과 교사들은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최근 2~3년 새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자기표현과 소통까지 불편을 겪기에 더 문제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문해력 저하는 초등학생부터 발견된다. 조기 교육으로 한글을 뗀 덕에 글자는 술술 읽지만 단어와 문장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김민중 대구 월배초 교사는 “고학년이 북한 이탈 주민에서 ‘이탈’의 뜻을 모른다든지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재난’ 같은 상의어나 포괄어를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했다. ‘같이’를 ‘가치’로 쓰는 등 비교적 쉬운 맞춤법을 틀리거나 문장 주술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고학년도 쉽게 볼 수 있다. 교사들이 겪은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불통’ 사례는 끝이 없다. 성교육 관련 조사를 위해 ‘성적 문제’에 관해 질문이 나오면, 공부 성적을 의미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국어는 물론 수학·사회·과학 등 다른 교과 학습에도 걸림돌이다. 수학 계산 능력은 뛰어나지만 서술형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미숙 교사는 “‘대변’(마주 보는 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똥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며 “수학 개념은 단어와 직접 연결된 게 많다 보니 더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사회나 과학 교과를 가르칠 때도 기본 단어 설명에 수업 시간의 10~20분을 할애해야 한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단어를 모르면 진도를 나가기 버거워서다. ‘매질에 따른 빛의 굴절’을 설명하는데 왜 때리냐고 물어서 한참 설명하거나(초등 6학년 교사) ‘왕이 승하한다’는 표현을 몰라 역사 시험에서 오답이 속출(고교 1학년 교사)하다 보니, 교사들은 어휘 설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글의 주제를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만 글이 길어도 읽기를 피하거나 엉뚱한 주제를 적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 보호를 위해 주인공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글의 주제를 ‘자전거를 타고 싶다’로 답한다는 것이다. 황수진 인천 이음초 교사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의도를 알아내는 걸 어려워한다”며 “긴 글도 영상 요약본으로 접하니까 스스로 찾는 힘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해력이 떨어지면 표현력도 함께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독후감 숙제를 받은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요약 영상을 보거나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본 결과를 적어낸다. 초중고교에서 공통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스스로 느낀 점을 적으라고 하면 단순 표현만 나열한다. 34년차 초등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재밌다’, ‘싫다’, ‘좋다’는 정도밖에 표현을 못 한다. 글로 풀어서 쓸 능력이 안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연수 탕정중 국어 교사는 “친구들이나 부모님과도 메신저로 짧은 메시지만 주고받으니 대화를 통해 단어나 표현을 터득할 기회가 줄었다”며 “전반적으로 언어생활 자체가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저 수준 문맹률과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은 왜 하락한 걸까. 인터뷰에 응한 교사 20명 모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와 영상 매체 이용 증가’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15년차 이상 교사들은 스마트폰의 등장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극명하게 느낀다고 한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 노출이 급격히 늘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SNS)와 메신저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토론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8시간(479.6분)으로 2019년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와 유튜브 쇼츠(68.9%),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으로 이용률 2~4위가 모두 쇼트폼 콘텐츠 플랫폼이었다. 교사들은 흥미와 자극 위주의 영상 시청이 글 읽기 방해의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15초 안팎의 짧은 길이에 언어도 거의 없는 ‘릴스’와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한다. 배주호 초등교사는 “쇼트폼 콘텐츠가 많아지고 짧은 메시지로만 소통하면서 전반적인 주의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공백도 주요한 문해력 저하 요인으로 꼽힌다. 교사 20명 중 13명은 문해력 저하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화했다고 봤다. 경기도의 23년차 영어 교사는 “학교에 못 나오면서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습량이 감소했지만 상위권 아이들은 코로나 전후에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중하위권은 어휘력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교사의 절반 이상인 11명은 한자어와 어휘 교육의 감소도 문제라고 봤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개념과 용어는 한자어로 돼 있어서다. 중학교 1학년 박모군은 “국어 교과서에 ‘민초’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민트초코’인 줄 알았다”며 “처음 보는 단어 중에도 한자어로 된 단어가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어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기식 서울 면일초 교사는 “한자어가 3학년 이후 교과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정확한 뜻을 모른 채 대충 이해한다”며 “한자어 속뜻을 가르쳐 주면 이후 학습에서도 훨씬 쉽게 배운다”고 강조했다. 독서 교육이나 글쓰기 교육의 부족도 한 원인이다. 일기 쓰기가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나온 이후 주제 글쓰기 등 다른 방식의 교육을 도입하거나 독서 활동을 만든 학교들도 적지 않다. 안연규 구미 선산고 국어 교사는 “최근 문해력이 주목받자 문해력 문제를 푸는 기술을 연습하는 사교육도 생겼다”며 “학교에서 오래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김지예·김우진 기자. 2024-09-10 1면). 나는 오늘도 문해력의 퇴보를 막기 위해 재미난 유튜브를 끄고 다시 책을 집어 든다. 그러나 곧 다시 유튜브 세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 중년인 나도 이런 판이니 젊고 어린 세대야 두말하면 잔소리라 앞으로가 걱정이다. 유튜브가 세상을 좌우하고 문해력은 날로 떨어지니 똑똑한 바보가 늘어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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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3
  • 재야에는 숨겨진 고수가 많다...겸손하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어느 한 책을 소개하는 것을 봤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우선 책을 소개한다니 좋다. 1985년 대학에 들어가서 써클(지금은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선배들을 통해 ‘추천도서’라는 것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관, 역사, 철학, 인문’ 등등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굶주린 아이 젖먹듯이 그러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분야는 ‘추천 도서’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이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책인가가 궁금해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다. 다음은 거기에 있는 소개 항목이다. 저자는 여르미라는 필명을 가진 16년 차 치과의사로 네이버 도서 1위 인플루언서로서 인문학 추천 도서를 냈다. 마흔을 통과하는 어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용기, 인문학의 쓸모! 사회가 시키는 대로 뚜벅뚜벅 잘 따라와 어느덧 ‘마흔’이라는 인생의 벽에 다다른 우리에게 인문학의 쓸모를 전하는 책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이 출간되었다. 마흔 무렵은 막연한 불안이 찾아오는 시기다. 반복되는 어제와 오늘에 지쳐 번아웃에 시달리기도 하고, 남은 절반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그리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문학’일까? 이 책의 저자는 16년 차 치과의사이자 연간 5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다독가, 그리고 3년째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그 ‘여르미 도서관’의 운영자다. “뼛속까지 이과 머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저자는 한창 치열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던 어느 순간, 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나보다 먼저 삶을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해답을 훔쳐 보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읽다 보니 모든 책은 인문학으로 통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 책 읽기는 ‘행복해질 자유를 얻는 일’이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는 일’이다. 인문학은 우리가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고,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되어준다. 모두가 인문학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책을 읽지 않으면 너무 아파서 살기 힘든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에는 《논어》, 《다산 산문선》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를 담은 책, 《총 균 쇠》, 《사피엔스》처럼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책,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알랭 드 보통의 《불안》처럼 인생이 던진 막막한 숙제 앞에 해답을 찾아가는 책 등, 마흔에게 권하는 인문학 필독서 50권을 엄선하여 실었다. 쉬운 책, 어려운 책, 얇은 책, 두꺼운 책, 오래된 고전부터 최근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어렵고 두껍다고 소문이 나서 아무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책도 일부러 넣었다”며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읽을 만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인생이라는 산의 중턱에서 숨을 가다듬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고자 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에 담긴 인문학의 위로와 용기가 큰 힘이 될 것이다. 저자는 5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1장…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를 발견하는 책 읽기 1.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2.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3. 《자기 결정》 파스칼 메르시어 4.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5. 《에밀》 장 자크 루소 6.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2장… 무력감을 느낄 때 책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 7.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8.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10.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11.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12.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13.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3장…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14.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15. 《피로사회》 한병철 16.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17.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18.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19. 《군중 심리》 귀스타브 르 봉 20.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21. 《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4장… 역사와 종교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기 22.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23.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24. 《미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25. 《제국의 시대》 에릭 홉스봄 26.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27. 《팡세》 파스칼 28.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윌리엄 제임스 5장… 냉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 힘이 되는 책 읽기 29.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30.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31.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32.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33.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6장… 불안하고 흔들릴 때 마음을 다독여주는 책 읽기 34.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35.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36.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37. 《불안》 알랭 드 보통 38.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39. 《도덕경》 노자 40. 《논어》 공자 41. 《다산 산문선》 정약용 7장… 나와 타인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42.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43. 《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44. 《사람을 얻는 지혜》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 발타사르 45.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46.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47. 《심리 유형》 카를 융 48.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50. 《에디톨로지》 김정운 이중에는 읽었던 책들도 있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있고, 읽었는데 내용을 다 잊어버린 것들도 있다. 과연 저자는 이 책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직 의사가 매년 500권의 책을 읽고 이를 평가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니 드러나지 않은 재야의 고수다. 1년 100여권의 책을 볼까말까한 나로서는 “깨갱”이다. 이런 고수들에게 겸손하게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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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9
  • 【단상】 출판계를 살린, 작가 한강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와 『흰』을 오래전에 읽었고, 『소년이 온다』는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읽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책꽂이를 살펴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 댁으로 이사하면서 옥탑방으로 책들을 옮겼는데 정리하지 않았기에 자세히 찾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흰』은 뭔 소린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 또한 다시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5.18과 제주 4.3을 다룬 소설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타자 역사 왜곡이라고 외치는 극단주의자들도 간혹 튀어나오지만 모처럼 “국뽕”이 차오르는 감격과 함께 모든 국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처럼 서점가가 활기를 되찾고, 출판사와 인쇄소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한 그동안 외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작품을 번역본으로 읽다가 우리 글로 된 노벨상 수상작을 읽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던가! 독서는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에 의해 멀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만 해도 유튜브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신 TV는 거의 안 본다. 봐도 유튜브에 올라온 것을 골라 본다. 유튜브는 재밌다. 그래서 정신줄을 놓고 보면 귀한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다시 책을 집어 들고 보는 데 또 얼마 안 가 유튜브를 본다. 정신이 그만큼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그런데 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젊고 어린 세대야 책과 독서가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학생들의 문해력(文解力)이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머리로 읽는 독서를 등한히 한 결과라고 본다. 국민들의 독서율이 매우 낮다. 지난 4월 18일 KBS 뉴스는 한국인의 독서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늘(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으로 전 조사가 이뤄진 2021년보다 0.6권 줄었습니다. 성인의 평균 독서 시간은 평일 18.5분, 휴일 25.0분이었고, 도서 구입량은 종이책이 1.0권, 전자책은 1.2권 등이었습니다.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종합 독서율(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비율)도 43.0%에 그쳤습니다. 이는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19∼29세)가 74.5%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68.0%, 40대가 47.9%, 60세 이상은 15.7%였습니다. 독서 장애 요인으로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았고,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다른 매체를 이용해서’가 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11.3% 등의 순이었습니다. 소득에 따라 독서율에도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의 독서율은 54.7%, 월 소득 200만 원 이하의 독서율은 9.8%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성인과는 달리 학생의 독서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초·중·고등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5.8%로, 2021년 대비 4.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연간 종합 독서량도 36.0권으로, 성인보다 10배 넘게 많았습니다. 평균 독서 시간도 평일 82.6분, 휴일 89.0분으로 집계됐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에게는 ‘도서비’라는 것이 책정되어 있다. 나도 담임목회할 때 월 20만이었다. 그래서 원 없이 책을 사서 읽었었다. 이제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고 있다. 책을 사서 둘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기사 분류 항목에 【북토크】를 만든 것은 내가 읽은 책을 잊지 않기 위해 요약해 두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항목을 좋아해 주고, 심지어 어느 분은 여러 책을 읽어 보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독서해야만 개발되는 인지능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필수이다. 그래도 책 읽기가 싫은 사람은 참 안타깝다. 다행히 나는 아직도 독서가 즐겁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 죽을 때 더 많이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도 같다. 한강 작가의 책들이 노벨상 수상 직후 100만 부가 팔렸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독서 열풍이 오래 가기를 바래본다. 아직은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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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8
  • 【단상】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40년 전에 개척해 교회를 성장시키고 은퇴를 얼마 앞둔 한 목사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개척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싸돌아다니지 않고 교회를 섬길 계획 가운데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총회와 외부 활동을 많이 했던 목사였다. 얼마 전 김종혁 총회장은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에서 “어떤 분은 108회기 때 6개의 상비부에 들어가 있던데 늘 교회를 떠나 총회에 와 있는 것을 봤는데 언제 목회하는지 모르겠다”며 “교회는 줄고 해야 할 일은 많다. 총회 일을 하면서 교회가 부흥됐다는 말을 마칠 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목사는 일차적으로 목회를 위해 부름을 받았지, 총회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총회 일도 하나님의 일이기에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목사에게 있어서는 교회와 목회가 우선이다. 그런데 총회 정치에 맛이 들면 목회를 등한히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총회 일을 하다 보면 여기에 시간과 에너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자인 주님은 목동인 목사들에게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잠 27:23은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고 말씀하신다. 총회 일 하느라 너무 “싸돌아” 다녀서는 안 되겠다. 주님이 맡기신 목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총회 일과 목회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종혁 총회장의 말처럼 “총회 일을 하면서 교회가 부흥”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총회원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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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2
  • 109회 김종혁 총회장의 리더십
    제109회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가 10월 11일 오후 2시 총회회관 5층에서 있었다. 약 2시간에 걸친 회의 취재 후 동영상을 편집해 보니 김종혁 총회장은 6분여 간의 설교를 제외하고 약 20분 정도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했다. 필자는 이 발언을 통해 앞으로 109회 총회를 이끌어갈 김종혁 총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배려의 리더십이다. 김종혁 총회장은 전국에서 대치동 총회회관에 모이는 것이 힘들기에 중간지점인 대전에 회의실을 마련하려고 한다. 대전 지역의 판암장로 · 남부 · 대전중앙 · 주사랑교회 등 4개 교회와 대전신학교가 거론되고 있고, 또 서대전역과 대전역에서 가까운 사무실을 임대할 수 있을 것으로 말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왕복하는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기에 중간 지점인 대전을 회의 장소로 활용코자 하는 것이다. 또한 매년 신년 예배 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데 식은 것을 먹기가 쉽지 않고, 또 임원 등은 사무실이나 식당에서 따로 먹는 것도 덕이 안 된다고 생각해 광명역 근처 한 교회의 협조를 받을 계획이다. 그러면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는 총회를 섬기는 이들과 총회원들을 위한 김종혁 총회장의 배려 리더십이다. 둘째, 합리의 리더십이다. 김종혁 총회장은 겸직을 금하겠다고 했다. 예년에는 한 사람이 6개 부서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한 50대들이 60대와 함께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특별위원회 배정에 신경을 쓸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각 지역을 골고루 배치해 3개 구도에 맞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행세칙을 보완해 제도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총회를 섬기며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매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비부가 행사할 때 총회에서 주어지는 예산이 정해져 있기에 부장들이 협찬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총회를 바르게 운영하겠다는 김종혁 총회장의 합리 리더십이다. 셋째, 믿음의 리더십이다. 김종혁 총회장은 총회를 섬길 때 재정 등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믿고 구하면 도와주신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정필도 목사에게 부교역자 때 배운 것이다. 하나님께 엎드려 승부를 보는 믿음으로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총회를 이끌어 가야 할 김종혁 총회장의 믿음 리더십이다. 넷째, 헌신의 리더십이다. 김종혁 총회장은 책임 맡은 자들은 헌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총회를 섬기면서 시무하는 교회들이 부흥해 세례헌금을 많이 내면 총회 재정도 든든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혁 총회장 자신도 헌신하겠다고 했다. 앞선 수많은 분의 헌신으로 총회가 109회까지 이어온 것이다. 이것을 알기에 더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김종혁 총회장의 헌신 리더십이다. 실제로 김종혁 총회장은 2시간가량의 연석회의 후 바삐 총회를 떠나가야 하는 참석자들에게 간식으로 준비한 떡 상자를 나눠줬다. 이는 원근각처로 떠나야하는 동역자들에 대한 배려와 헌신의 리더십이다. 김종혁 총회장의 이같은 배려 · 합리 · 믿음 · 헌신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해 109회 총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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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2
  • 【단상】 설교 중독자
    어느 원로목사가 강사로 초청된 집회의 설교 도중 “나는 설교 중독자”라고 커밍아웃(?) 했다. 본인은 수십 년 목회하며 수없이 설교했는데 은퇴한 지금도 설교 준비를 하고,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한 달에 한번 주일 낮 설교를 하고, 몇몇 곳에서 설교 요청을 받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하러 가서 그 목사의 설교를 듣는 내게는 은혜가 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그분이 교회를 세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설교에 큰 기대가 없었다. 행사장에 가서야 설교자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조금은 아는 분이라 설교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설교학의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는 “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것이다. 삶이 없는 설교자의 설교는 공허하다. 본인의 삶이 덕이 되지 않는데 어떤 메시지가 은혜가 되고 힘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설교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다행인 경우가 있다. 반대로 삶이 훌륭한 설교자라면 그에 대해 알 때 호감을 느끼고 설교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 중독자”가 되지 말고 “설교한 대로 사는 중독자”가 돼야 한다. 그러면 그가 전하는 설교는 힘이 있고 감화력이 있을 것이다. 그 목사의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았던 이유 두 번째는 예배 주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헌신예배로 모였다. 그런데 설교 제목은 “설교”에 대한 것이었다.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인 “설교”를 다룬 책을 보고 요약해서 전했다. 과연 그 주제가 헌신예배로 모인 회원들에게 합당한 주제인가? 강의인지, 설교인지 모를 메시지였다. 목사는 설교하는 사람이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바라는 것도 설교이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한다. 목사이면서 설교를 못 하는 것은 본인에게나 교인들에게나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설교를 잘하는 것은 타고난 것도 있고, 본인의 노력도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목회하는 동안은 늘 설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로서 취재를 가면 대부분 1부 순서가 예배이다. 수많은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된다. 기사에 설교 내용을 요약해서 싣기에 집중해서 듣는다. 어떤 설교는 들을 만하고, 어떤 설교는 그렇지 않다. 자칭 “설교 중독자”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런 딴생각이 난 것은 그분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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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1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 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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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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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3
  • 【단상】 기록....소멸에 대한 몸부림
    기자는 기자(記者)다. 쓰는 자라는 말이다. 나는 15년간 담임목회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됐다. 그래서 많이 미숙하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기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처음 기사를 쓴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한 행사에 동행해 기사를 써야하는데 막막했다. 결국 다른 기자의 기사를 참고해 어거지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지나가니 이 또한 “추억”이다. 기자는 어떤 사건,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자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글”이다. 글로 남기고 평가한다. 요즘은 녹음이나 녹화를 병행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남기기 위해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소멸한다. 어떤 행위, 행사, 말 등등은 다 과거로 사라지며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이에 대한 저항, 몸부림이 쓰거나,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녹화를 병행한다. 스마트폰에 촬영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방송 장비를 거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즉시 현장에서 촬영이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이번 43회기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촬영했다. 그리고 각 기사에 영상을 첨부했다. 너무 좋았던 설교나 강의를 남기기 위해서다. 기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모든 내용을 다 기록할 수 없고, 강사의 열정을 담아낼 수 없다. 기사에 대한 보완이 동영상 촬영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유익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언제라도 보고 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관심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유튜브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나만해도 거의 텔레비전을 안 본다. 유튜브가 더 재밌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들이 이곳에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들은 찾아서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시간 속에서 소멸해 가고 있다. 나는 기자로서 글과 녹음, 촬영의 방법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한다. 기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재밌고 보람이 있다. 이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소멸하는 어떤 것에 대해 흔적을 남기는 또 다른 기사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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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5
  • 【내이야기】 달라진 설 명절 풍경
    설 명절 연휴를 보낸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이 기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명절날 미리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부모님 댁에 와 아침을 동생네와 같이 먹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담임목회 중단 후 부모님 댁에 같이 살기에 명절날 아침 일찍 차 타고 올 일이 없다. 그리고 장모님께서는 재작년인 2022년에 세상을 떠나셨기에 처가댁에 갈 일도 없다. 처가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명절에 부모님 드실 것, 우리 식구 먹을 것 간단하게 준비해 밥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찾아갈 곳도, 찾아올 사람도 없다. 연휴 기간에는 취재할 일도 없기에 미리 대출한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그러다 심심하면 밥 먹고 운동 삼아 뒷동산 한바퀴 돌고 오면 된다. 참으로 평안한 설 연휴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명절을 맞아 긴 시간 차에 시달리며 고향을 찾아간다. 젊을 때 텔레비전에서 귀성길로 고속도로에 막혀 있는 차들을 보며 지방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경기도 여자이다. 나 또한 서울 태생이라 지방과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는 경기도 분이신데 젊을 때 서울로 올라오셨고, 어머니는 충청북도 분이신데 결혼 후 서울에서 사셨고, 외가댁도 사라졌기에 더 이상 지방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아가는 긴 행렬은 세월이 흐르면 아마 사라지지 않을까? 설레고 좋았던 어린 시절의 명절과는 너무 다른 명절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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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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